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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원중 <바위섬> / 추억의 그 앨범

그리운시냇가 2015. 5. 22. 04:01

 

 

 김원중 <바위섬> / 추억의 그 앨범

 

 

절절한 시노래, 중견 뮤지션의 힘

 

좋은 음악이 반드시 히트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물론 음악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음악 외적인 재미가 있거나, 뮤지션이 매력 있어서 성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캐릭터와 스토리의 힘이 갈수록 크게 작용하는 추세이다. 음악을 소비하는 팬들의 존재도 중요하다. 팬층이 두텁지 않은 장르나 음악은 아무리 좋은 음악이 나오더라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13년 전 김원중이 내놓은 음반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가 딱 그런 경우이다.

 

 

이미지정보

 

3집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

  

1980년대 ‘바위섬’과 ‘직녀에게’로 히트한 김원중이 1987년에 발표한 2집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이 앨범은 매우 뛰어난 시노래 앨범이자 포크 팝, 어덜트 컨템퍼러리 음반이다. 그러나 1999년에 이 앨범을 듣고 호응해줄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중음악 시장은 10대에게 완전히 점령되었고,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30대 이상의 청장년층은 더는 새로운 음악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김원중은 서울이 아니라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었다. 모든 것이 서울로만 몰려드는 시대에 수도권 바깥 지역에 거점을 둔 뮤지션이 거점 밖에서 주목 받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의 가치는 아직까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돌 가수들과 이른바 댄스 가수들, 그리고 조성모와 막 시작한 인디 음악밖에 보이지 않았던 1999년에 이렇게 품격 있고 깊이 있는 서정가요, 성인가요가 나왔다는 사실은 한국 대중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줄기와 잎사귀로 이루어진 뿌리 깊은 나무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김원중 - 바위섬

 

  

 

이 앨범의 성취는 먼저 뛰어난 노랫말에 있다. 즉흥적이고 표피적인 노랫말들이 난무했던 시대에 김원중은 김용택, 도종환, 박노해, 안도현의 시와 김현성, 백창우, 박문옥, 배경희가 쓴 시적인 노랫말로 노래를 만들었다. 한국 서정시의 맥을 잇고 있는 시인들의 시와 서정적인 포크 음악을 계속 만들어온 싱어 송라이터들의 노랫말은 좋은 서정시가 갖추고 있는 품격과 완성도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정서가 1990년대에는 이미 고루하고 상투적인 정서의 수사로 관성화 되어가는 측면은 있었지만 김원중이 1980년대적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앨범은 참여적 서정시의 정서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들이 내놓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예술적 자기 발언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앨범이 이룬 성취는 단지 좋은 노랫말을 썼다는데 있지 않다. 바로 이렇게 서정적인 시어들을 음악으로 정확하게 조응하며 담아냈기 때문이다. 사실 시는 시 자체의 맥락과 구조로 구축된 언어적 건축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음악으로 고스란히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좋은 시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이 음악으로 옮겨지면서 흐트러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성민, 김현성, 박문옥, 배경희, 백창우, 안치환, 유종화, 이지상, 이채종 같은 민중가요와 포크 진영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은 시적 정서의 결을 내밀하게 따라가며 시 언어의 분위기와 지향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치환해냈다. 특히 이들은 시에서 밑줄 긋고 싶은 절창처럼 좋은 구절들을 입에 쩍쩍 달라붙는 좋은 멜로디로 만들어 냈다. 그럼으로써 시노래가 자칫 시어와 음악이 잘 달라붙지 않는 어색한 조합으로 실패하게 되는 사례와는 달리 잘 만든 대중가요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럽고 좋은 의미로 통속적인 노래들을 내놓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애절한 시는 애절한 노래가 되었으며, 유려한 시는 유려한 노래가 되었다. 딱 그 시 같은 노래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남성적이어서 선이 굵고 묵직하면서도 질박하고 호소력 있는 표현을 해내는 김원중의 보컬도 가사와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울림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고 수려하게 표현해냈다.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의 너끈한 위로, ‘모항 가는 길’의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상승, ‘사랑, 그날들’과 ‘봉숭아’, ‘가을 가을 가을’의 애절함, ‘바람 잘 날 없어라‘의 절망감에 ’내 사랑은‘의 담백함까지 김원중은 보컬의 풍부한 결로 웅숭깊게 재현했다.

아홉 명의 작곡가들이 서로 다른 분위기의 좋은 곡을 만들어내고,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되는 포크 음악의 편곡에서 벗어나 현악을 적절하게 사용했으며 하모니카와 트럼펫, 트롬본, 바이올린, 해금 등으로 멜로디를 섬세하게 부각시킨 편곡도 주효했다. 그 결과 이 앨범은 포크 음반이면서 뛰어난 어덜트 컨템퍼러리 음반으로 확장되었다. 포크의 소박함에 서정적인 격조와 고급스러운 품격을 더하고 대중적인 호소력까지 함께 갖춘 훌륭한 서정가요 앨범을 완성해낸 것이다. 슬로우 템포의 서정 가요만이 아니라 포크 록의 비트를 병행하고 동요풍의 곡과 시낭송까지 함께 함으로써 시노래를 담아내는 어법을 확장했다는 점도 이 앨범의 큰 미덕이다.

 

 

정호승 詩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김원중

 

 

  

이 앨범은 김원중의 앨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참여적 서정시를 써 온 시인들과 민중가요와 포크 진영에서 활동해온 뮤지션들, 그리고 함춘호가 함께 만들어 내며 중견 뮤지션들의 음악 역량을 증명한 결정체 같은 앨범이었다. 실제로 이 앨범을 함께 작업한 김원중, 김현성, 류형선, 배경희, 백창우, 안치환, 이지상과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은 이 앨범 작업을 계기로 시노래모임 나팔꽃을 만들어 시노래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시노래모임 나팔꽃이나 나팔꽃의 회원들이 내놓은 시노래 앨범, 혹은 그밖의 뮤지션들이 작업한 음악들 가운데 이 앨범에 견줄 수 있을만큼 서정적이고 풍부하며 완성도 높은 시노래음반은 드물다. 우리에겐 이렇게 좋은 시노래 음반이 있었다. 중년에 비로소 나온 수작. 서울 이외의 지역에도 뛰어난 뮤지션이 많다는 것과 중견 뮤지션들의 저력을 일러준 아름다운 음악 시집.

 

 

서정민갑 ('인디 어워드' 자문위원) / 다음 뮤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 / 김원중. 정호승 詩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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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글쓴이 : 기라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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