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막순권사님의 손주 유재성군의 결혼식을 은혜중에 마쳤습니다. 유재성군은 청소년시절에 건강때문에 어려운 시간을 보낸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막순권사님께서 재성군의 건강을 위한 기도제목을 주셔서 우리 모두가 수년동안 재성군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재성군의 건강을 완전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재성군은 건강하게 장성했고 금번에 훌륭한 믿음의 배필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기에 우리는 재성군의 결혼식에 동참해서 남다른 감회와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동안 재성군을 위해서 기도해주신 김막순권사님과 모든 성도님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김막순권사님께서 인절미를 해 오셨습니다. 김막순권사님 딸 윤영희성도님은 인삼을 튀겨서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령강림은 인간 편에서 보면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성령강림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후에 40일 동안 세상에서 머무시면서 마지막 사역을 마무리 하신후에 마침내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한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다리고 있다가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령강림을 기다렸습니다. 제자들은 대충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도 받아야겠지만, 예수님이 떠나신 지금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는 산회드린 공회의 결정으로 예수믿는 사람들을 찾아서 가두거나 출교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고, 또 불안하고 절박했기에 사필귀정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이 절박한 상황이 되면 누구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되고 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이 프랑스군을 지원하고자 29만명의 군사들을 프랑스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완패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영국군도 전멸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영국군은 철수를 결정했고 급기야 도버해협을 건너서 후퇴를 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군을 무력화 시킨 독일군은 영국군까지 전멸시키려고 총력을 다해서 뒤를 쫓아 왔습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군대에 쫒기는 상황과 똑 같았습니다.
독일군에게 쫓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처칠 수상과 각료들이 모여서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빨리 도버해협을 건너지 못하면 영국군은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놀라운 발표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 모든 국민은 영국군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서 전 국민이 합심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처어칠 수상도 동일한 내용으로 라듸오 방송을 통해서 그 내용을 전달 했습니다. 그래서 전 국민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영국 국민은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몰살당할 위기에 있는 29만명 속에 내 아들들이 들어 있고, 내 조카, 내 동생, 내 형, 내 남편이 들어있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사필귀정으로 드리는 그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위기의 때에 드려지는 기도, 그리고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 공동체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국군이 도버해협을 따라 후퇴할 때에는 더 없이 날씨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독일군이 쫓아와서 건널 때에는 폭풍우와 돌풍이 불어서 독일의 배와 비행기는 한 대도 뜨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쫓아올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애굽군대가 이스라엘백성을 쫓아오다가 망한것처럼 갑작스런 폭풍우로 인해서 독일군대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후에 영국군은 무사히 후퇴해서 다시 재 정비를 한 끝에 독일군을 무찌르고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에게 불어닥치는 환란이나 절박한 상황은 재앙이 아니라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동기가 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절박한 심정으로 드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누구든지 절박한 상황이 되면 회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무능함과 교만함을 회개하고 또 원수맺은것과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회개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회개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회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응답이 임하고 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성령 받는 조건이 바로 회개하는 일입니다. 그
날 제자들은 무능함과, 교만과, 불신을 철저하게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오순절 날에 성령강림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성령강림은, 제자들이 기도를 시작한지 열흘 만에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모두 다 성령충만을 받고 성령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제자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나라의 회복이나 세상것들을 통해서 누리는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성령충만을 받기 전 까지는 모두가 영안이 닫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을 만나 주셨는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엉뚱한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본문 사도행전1장6절에 나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6절)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시자 “주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때가 지금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메시아 구세주가 오시면 그 메시야 구세주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유대인들이 전 세계를 다스리는 지상의 왕국이 세워질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구약시대처럼 신정통치(theocracy)가 실현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신 예수님이 하루 아침에 무기력하게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자 제자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젠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자 제자들은 다시 메시아 왕국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 자기들도 출세해서 높은 지위에 앉게 되리라는 환상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건가요?”하고 예수님에게 한심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도 세상적인 가치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는 우리조국 이스라엘이 언제 해방되고, 또 언제 메시아가 주변 나라들을 굴복시켜서 우리가 다스리는 나라가 올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자마자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6절) 라고 물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오로지 세상나라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모든 크리스챤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는 땅의 복만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변하기를 기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남이 변하기만을 바랍니다.
성경은 언제나,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고 내가 죽어져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점점더 복을 받고 또 범사에 형통하기를 바라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도 제자들과 비슷한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저를 돌아보아 주시옵소서 이 모든 억울함을 회복하심이 어느때 입니까?” “주여 언제 저에게 재물의 복을 주시렵니까? 주여 언제 저의 아들딸들에게 복을 주시렵니까?” 그게 우리 기도의 내용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 흥분해서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다시한번 제자들에게 중대한 사명을 고취시켜 주셨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는 아버지께서 정해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행1:7-8)
제자들은 오직 세상 나라에 대한 희망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더 이상 부질없는 세상일에 연연하지 말고 어디든지 가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들이 그와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받을때까지 기다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성령님이 곧 삶을 변화시키고 사명을 따라 살도록 이끄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18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라고 증거 합니다. 즉 성령충만을 받으면 거룩한 생활을 하게되고, 성화의 삶을 살게 된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오늘본문 1장8절은 사도행전의 핵심절입니다. 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되리라. ② 나아가 너희들은 증인이 되리라. 이 두 가지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32,500가지의 약속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특별히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소중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약속과 ②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권능은 “뒤나미스”(δύνμίς)라는 단어인데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이나마이트(dynamite)이고 하나는 다이나믹(dynamic)입니다. 다이나마이트는 폭발적인 힘, 신비한 힘을 말합니다. 이 힘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한편 다이나믹은 내면적인 힘을 말합니다. 즉 삶의 변화나, 순교적인 헌신도 불사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런 능력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예수님의 유언적인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또한가지 단어는 “증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증인은 헬라어 원어로 “마르투스”(μάρτυς)인데 영어로는 Martyr입니다. 즉 증인, 또는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을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순교자가 되리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이처럼 중대하고 심각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령강림 이후에 제자들은 하나같이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바울사도도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자로 죽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인격이 변하고 신앙이 변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신령하고 거룩한 비젼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종종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받은 이익만 간증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천국에가서 자랑할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부를 누리고 건강을 누리고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것도 복된 일입니다. 그런 축복도 천국의 그림자로서 이 땅에서 누리는 분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생명의 손해를 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리고 손해 보는 것, 그것이 순교자의 삶이요, 천국의 상급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때문에 무엇을 손해보았습니까? 무엇을 뺏겨 보았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시간을 뺏기고 마음을 뺏기고 재산을 손해본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젊음을 바치고 예수님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받았다면 그런 사람도 순교자입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는 사람은 한번 죽음으로서 순교자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병든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순교적 정신은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영적인 침체에 빠진 결정적인 시점은, 소득이 이만불 시대가 된다고 떠들어 대면서부터 사향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세상의 부요함에 정신이 팔리면서 한국교회는 침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은 영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따라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일은 외면하고 오직 땅에서의 형통만 바랐기에 교회는 퇴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었기에 이제부터는 몸과 마음을 더러운 정욕이나 술이나 마약이나 도박으로 더럽히지 않겠다!”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기뻐 하겠다!” 이런 자세로 사는 것이 참된 크리스챤의 삶이요 증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순교의 정신과 순교의 피가 말랐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라도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으로 살수가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세상을 이길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① 손해를 보아도 천국에서 예수님이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②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가치관입니다.
불교나 유교는 이성적 종교입니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고 도리를 깨닫고 수양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수양종교가 아니라 영적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령에 사로잡혀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면 성령께서 내 삶을 주관하고 내 생각과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성령 강림 사건은 제자들의 삶의 분수령이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더 이상 비겁하거나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성령받은 제자들은 삶의 방향과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로 U턴한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희생과 댓가를 치르더라도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알고 세상의 즐거움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교를 불사하는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획득합니다.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다 아는 대기업의 회장이 있습니다. 그의 성공담은 근대 한국사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맨손으로 시작하여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별다른 취미생활도 없이 하루 열여섯시간을 일하는 지독한 일벌레였습니다. 그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책을 써서 더욱 유명해 졌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어서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큰 낙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두뇌가 명석하고 일찍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대기업 회장인 아버지는 이 아들에게 큰 기대와 희망을 걸고 일찍이 미국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MBA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온갖 정성을 들여서 후원해 주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업이 끝나갈 무렵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자 회장 아버지는 세상이 끝난것처럼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때부터 사업에 대한 의욕도 상실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고 했던 사랑하는 아들이 죽자 그는 삶의 목적을 잃어 버렸습니다.
대기업 회장부부의 유일한 취미는 골동품과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 다니는 동안에 수많은 골동품들과 미술품들을 수집해 놓았습니다. 아들이 죽자 이들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따서 미술관을 건축했습니다. 그는 평생 수집한 엄청난 예술 작품들을 그 미술관에 헌당 했습니다.
그런데 lMF가 터지면서 그가 평생을 걸쳐서 이룩한 방대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는 파산을 한 후에 한국을 떠나서 세계를 전전긍긍 하면서 지냈습니다. 세계를 떠돌던 그는 남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미술관의 수많은 소장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소장하고있던 예술품들과 골동품들을 경매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유명한 미술품들을 경매한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전국의 골동품수집가들과 예술 작품 애호가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모두들 경매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자 맨 먼저 올라온 품목은 그의 아들의 초상화였습니다. 그 초상화는 별로 잘 그리지도 못했고 특색도 없는 평범한 초상화였습니다.
경매 진행자는 제일먼저 그 초상화부터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초상화는 50만 원에서 시작했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30만원, 20만원, 10만원, 드디어 5만원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초상화는 누구든지 거저 가져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그림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들 빨리 저 초상화가 낙찰 되어서 진짜 귀중품 경매가 시작되기를 학수고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누군가가 그 초상화를 5만원에 사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는 대기업 회장의 집에서 평생동안 일을 해오던 집사 아저씨 였습니다.
그는 회장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보살펴 왔습니다. 학교도 데려다주고 같이 놀아주던 아저씨입니다. 그 아저씨는 회장님의 아들의 초상화가 경매물품으로 나오자 정들었던 그 아들의 초상화를 기념으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가 그 그림을 5만원에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의 경매가 끝나서 아저씨가 그 그림을 넘겨받는 순간 경매 진행자는 그림 뒤에 붙어 있는 흰 봉투를 발견하고 그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 봉투 속에는 그 그림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았더니, 자기 아들의 그림을 사가는 사람에게는 미술관 소장품 전체를 다 주겠다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초상화를 사가는 사람은 자기 소장품의 전부를 가질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내용의 편지를 써서 그림 뒤에다 붙여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경매는 아들의 초상화를 경매한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의 모든 예술품들은 그 가난한 아저씨의 몫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았습니다. 예수님을 천히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의 편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고 사랑하고 그를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천국의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리라”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편지입니다.
그 축복은 그 아저씨가 아들의 초상화를 선택한 후에 받은 미술관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미술품들보다 훨씬 더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도 그에 합당한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상급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외면하고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들은 지옥을 상속받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다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일에만 성공하면 모든 일에 성공자가 됩니다. 예수 믿는 일에 실족하면 인생 자체가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믿음의 자녀로 살면서 승리하도록 도와 주시는 분입니다.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높은 산봉우리들이나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갈 때에는 등반을 도와주는 셀파가 필수적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들을 등정한 사람들은 자기 혼자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몰랐을 때에는 “야! 저사람 대단하구나! 저 높은 산에 혼자 올라갔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혼자 올라간게 아닙니다. 반드시 셀파의 도움을 받아서 올라갑니다.
셀파는 산을 등정하는 사람과 끝까지 동행합니다. 셀파는 등정하는 사람의 짐을 지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길을 안내합니다. 못 올라 갈 때는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붙잡아줍니다. 마지막에 정상에 올라갈 때에도 그 분의 도움으로 올라갑니다.
그걸 몰랐을 때는 “야! 저분이 산에 혼자 올라가서 어떻게 저렇게 사진을 찍었지? 단독 등반 성공이라고 이야기를 하는걸 보니가 혼자 단독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나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셀파의 도움을 받아서 올라간 것을 모를때에는 “저 사진 어떻게 찍었지? 산꼭대기에서 카메라를 나무에 걸쳐놓고 자동셔터로 찍었나? 산꼭대기는 나무가 없고 눈만 있던데 그럼 카메라를 얼음위에 올려놓고 찍었나?”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바로 셀파입니다.
셀파들은 평균 4천 미터에서 해발 5천 미터에 살기 때문에 심장이 튼튼합니다. 신체적으로도 높은곳에 올라갈 수 있고 강추위도 견딜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셀파들은 길을 잘 압니다. 기후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그래서 등정가들은 셀파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셀파의 코치를 받으면서 등정을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또 승리할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 일으켜주시고 약할 때 힘을 주시고, 시험들 때 건져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늘 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이 모든 시험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아갈수 있는길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보호해 주시는 거룩하신 선생, 또는 위로자”입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파라크레토스”라고 하는데 파라크레토스는 “위로자,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나 외에 다른 보혜사가 너희에게 올 것이다 그리고 너희 마음 안에 거할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어려울 때 누구한테 사정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간청해야 길이 열립니다.
미국 대통령도 오바마도 취임사에서 “갓 헬프 미”(God help me)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옛날의 황제들은 교만해서 도와달라는 말을 안했습니다. 황제는 자기를 “짐” 이라고 불렀습니다. 국민에게 도와달라는 소리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국민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일을 합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성령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습니까? 이 환난 많은 세상에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성령받은 초대교회는 사랑이 넘쳤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로 46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라고 증거합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는 말은 모든 재산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내어놓았다는 말입니다. 공동체의 핵심은 성령의 능력과 사랑의 원리입니다. 초대교회는 인위적이거나 강제적인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다툼이나 불화도 없이 사랑으로 모이고 사랑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나누고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성령받은 초대교회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더 주고 더 대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님처럼 아낌없이 다 주고 몸도 마음도 재물도 다 주면서 사랑했습니다. 나중에는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사랑했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 엘리스 공주에게 네 살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이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사경을 헤맸습니다.
디프테리아는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입니다. 의사는 엘리스 공주에게 “당분간 아들과 떨어져서 지내야 합니다. 만약 아들과 함께 지내면 공주님에게도 금방 전염이 됩니다. 그러면 공주님도 비극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 공주는 아들의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멀리서 원망스런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어머니는 왜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나요? 저에게 오셔서 입을 맞춰주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엘리스공주는 아들의 안타까운 호소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숨에 아들에게 달려가서 아들을 와락 껴안고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미안하다 아들아, 사실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그일이 있은후에 몇 달후에 엘리스 공주와 공주의 아들은 디프테리아로 인해서 둘 다 사망했습니다.
이와같이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죽을줄 뻔히 알면서도 자녀를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드는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미움과 싸움은 악령의 역사이고 정죄와 비판도 악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2장 47절과 같은 은혜가 계속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의 모습이 가장 정확하게 묘사된 문서는 소아시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플리니우스는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조사 보고를 했습니다. 그가 보낸 서신에 보면
“기독교인들은 법 그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정한 날에 모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고 찬미할뿐 아니라 그들은 절대로 도둑질이나 간음이나 어떤 죄악도 범하지 않기로 서약하고 성경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들입니다”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플리니우스의 보고서는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세상에서 칭찬받고 존경받을만큼 훌륭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한 성도는 세상의 법을 초월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것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4년 후에 한 젊은이가 어느 모임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그때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배의 파편을 붙잡고 표류하는 내 곁으로 존 하퍼 씨가 표류해 왔습니다. 그는 내게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아니요 안믿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숨을 몰아 쉬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요!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존 하퍼목사입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으면 나를 천국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하퍼 목사님은 물속에 빠져 죽었습니다. 저는 구조된 후에 존 하퍼 목사님이 남긴 말씀을 생각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않고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서 천국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하퍼목사님의 애절한 전도는 한 청년을 구원했고 그 청년은 목사가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들어서 잘 알다시피 기러기는 서로 상부 상조 하면서 날아갑니다. 가장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가장 빨리 지치기 때문에 그들은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날아갑니다.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가장 힘들지만 그 덕분에 뒤에서 따라오는 기러기들은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러기들은 서로 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방향을 알려주고 서로를 격려합니다.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해서 날지 못하면 반드시 서너 마리가 낙오된 기러기와 함께 머뭅니다. 기러기는 동료의 불행을 외면하는 법이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떠나는 여행입니다. 함께 위로하고 도우면서 여행하면 더 행복해 집니다.
제자들이 받은 최고의 축복은 성령충만 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으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을 통해서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제자들처럼 성령충만을 받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전심하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도우면서 신앙 순례의 길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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