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겨자씨

[스크랩] 2012년 3월7일수요저녁 창세기32장13-32 브니엘의 축복

그리운시냇가 2012. 3. 8. 00:01

오늘 낮에 이공엽성도님 장례식장에 다녀 왔습니다. 이공엽성도님은 96세의 나이에 소천 하셨습니다. 함께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사실 이공엽성도님의 자녀분들은 다 안 믿는 분들 입니다 그래서  이공엽성도님이 예수를 믿었을 지라도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문상은 가야 겠기에 어제 금음구역의 성도님들과 함께 남해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자녀분들이 아직 다 도착을 안해서 큰 아드님만 문상을 받고 계셨습니다. 문상을 한 후에 제가 잠시 볼일이 있어서 성도님들을 장례식장에서 기다리시게 하고 잠시 일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거제에 사는 막내 아드님이 오셨습니다. 제가 장례식장 밖에서 정봉임집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성도님들에게 나오시라고 전화를 했더니 정봉임집사님이 나오시면서 거제에서 온 막내 아드님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내 아드님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다 보니까 그 막내 아드님이 거제에서 예수를 믿은지 일년이 되셨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막내 아드님이 얼마나 믿음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한지 예수 믿은지 일년밖에 안되었는데도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길뿐 아니라 어머니 이공엽성도님에게도 극진히 효도한 아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자기가 예수 믿고나서 크게 변화가 되었다고 하면서 "제가 큰 형님에게 “일단 어머니가 예수를 믿으셨으니까 그래도 제삿상은 차리자 말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려야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큰 형님이 씨도 안 먹히더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고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동생분에게 “절대로 싸우지 말고 그저 형님들이 하자는 대로 하시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막내 아드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하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저 막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 예배를 드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광고를 드리고 성도님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안 믿는 모든 유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유족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 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상주들 중에 몇몇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뻐 하시는구나!” 라는 확신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이공엽성도님의 작은 어머니는 "큰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연상 기뻐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감사해 하셨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지긋이 든 한 어르신이 저를 불러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자기가 이공엽씨의 남동생이라고 하시면서 목사님이 이렇게 시골에 오셔서 귀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보니까 너무나 감사 하다고 하시면서 자기 아내가 구포 제일교회의 권사인데 오직 하나님 밖에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지금은 자기 아내를 따라서 교회에 다닌다고 하시면서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우리 누님을 위해서 애써 주신것을 감사 한다고 하시면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이분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간증을 하시는데 자기 아내가 새벽기도 갔다오면 하루종일 성경을 읽고 그리고 기도만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는 오직 성경 오직 기도 오직 예수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는 몸이 불편해서 장례식장에는 못오고 자기 혼자서 왔는데 자기 아내는 죽을 고비도 여러번 맞이 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고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권사가 되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제가 8순이 다되신 이공엽성도님의 남 동생분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동안에 깨닳은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까 이공엽성도님이 구원을 받으셨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날마다 기도를 하는데 가족들과 자녀들과 친지들의 구원을 위해서 평생을 기도를 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연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집안에서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의 손길을 뻗쳐서 가족들이 하나 하나 구원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공엽성도님이 구원받고 돌아가신 데에는 그 배후에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불철주야 기도하신 그런 훌륭한 권사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이공엽성도님의 남동생의 간증을 통해서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공엽성도님의 조카벌 되시는 분이 오늘 예배중에 큰 은혜를 받고 자기 간증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통일교를 믿는다고 해서 제가 깜짝 놀랬습니다. 어제 분명히 거제에서 온 막내 아들이 예수를 믿고 은혜 가운데 기쁨으로 믿음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 막내가 통일교를 믿는다고 해서 “이상하다 막내아들이 예수믿고 은혜중에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공엽성도님의 막내 아들이 통일교신자가 아니고 읍에 사는 자기의 막내 남동생이 통일교를 믿는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하마터면 오해를 할뻔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은혜스러운 예배를 드리게된 동기는 어제 정봉임집사님이 거제에서 온 이공엽성도님의 막내 아들을 데리고 나와서 저에게 소개를 시켜 주신것이 오늘 이렇게 장례식장에서 귀한 은혜를 나누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것처럼 이공엽성도님만 예수를 믿고 돌아 가시고 자식들은 아무도 예수를 안 믿는 가정의 상가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뭔가 불편하고 그리고 그동안 이곳에서 지내 오면서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 종종 안믿는 분들이 행패를 부려서 아주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기에 아무래도 이공엽성도님의 상가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봉임집사님이 막내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오늘 이렇게 은혜스러운 시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월곡에 사시는 이공엽성도님의 조카딸 정분순성도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이 우리 할머니에게 파리채로 얻어 맞으시면서도 열심히 전도를 하시고 그리고 일년동안 우리 할머니를 섬겨 주신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하시면서 정분순성도님이 사모에게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제가 이공엽성도님을 만나면 가끔 이공엽성도님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월곡에 조카딸이 사는데, 그 조카딸이 나한테 그렇게 잘한다! 그 조카 며느리한테 한번 가자! 나를 한번 그 조카 며느리에게 실어다 주라!” 하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장례식장에서 그 조카딸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이 예배중에 은혜를 받고 감사 헌금을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회를 봐서 월곡에 한번 심방을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은혜스러운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것을 감사 드리고 그리고 이제 날씨가 풀려서 할 일도 많고 다들 바쁘신데도 많은 성도님들이 동참해 주신것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특히 정봉임집사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빌립이 예수 믿은후에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오는 바람에 나다나엘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되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정봉임집사님의 수고가 오늘의 놀라운 역사를 있게 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제 하영순집사님이 박복선장로님과 윤옥지권사님이 입원해 계신 진주 고려 병원에 문병을 다녀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복선장로님께서 새벽에 차를 몰고 나오시다가 농협 구판장을 지나기 바로 전에 모퉁이를 돌다가 부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잘못해서 악세레더를 밟는 바람에 차가 집 돌담에 부딪치고 그리고 튀어 나가서 오른쪽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5미터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진 두 분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하영순집사님이 진주까지 버스를 타고 찾아가서 문병을 하고 왔다는 말에 "하영순집사님이 참 마음이 크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영순집사님이 우리 교회를 선택한 후에 장로님집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 장로님으로부터 온갖 핍박과 더불어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당하시고도 금번에 하나님의 사랑을 안고 그 먼곳까지 찾아가서 문병을 하고 금일봉을 드리면서 위로를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집사님이 요셉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 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배웠는데 하영순집사님께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본을 보여 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력으로 하면 이번주가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절 40일 전부터 부활절까지 40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 에서는 사순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하기를

 

"그동안 사순절이 카톨릭에서 미신적인 의미로 변질되어 시행이 되어왔고, 그 의미도 많이 퇴색했는데 성도들이 사순절에 금식과 고행등을 통해서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절기로 지키는 경우가 많아서 사순절 절기에 외식하는 마음으로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기에 카톨릭이 열심히 지키던 사순절을 폐지한다" 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4장 19-29)

 

그래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총회에서도 1999년도에 있었던 84회 총회때 “종교개혁이 폐지한 사순절을 우리 한국 교회가 또 다시 카톨릭 교회가 지키는 전통을 이어 받아서 지킬 필요가 전혀 없다” 라고 결의하고 사순절은 지키지 않고 부활절 전 한주간만 고난주간으로 지키는 것으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 달력에는 사순절이 시작하는 날을 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순절 40일 동안에는 사람들이 고기도 먹지 말고 부부관계도 갖지말것을 강조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또는 40일 아침금식을 하면서 보냈지만 이제는 40일 동안이나 힘들게 고난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중세시대에 사순절기간 40일 동안에는 너도나도 앞 다투어 금식을 하고 고행을 하면서 높은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거나 자기몸을 채찍으로 치면서 누가 더 힘든 고행을 하느냐를 비교 하면서 고행을 하는 사람들이 고행을 자랑하고 뻐기면서 자기처럼 금식을 하지 않거나 고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 하고 정죄하는 교만함에 빠져서 물의를 빚었기에 아예 사순절을 철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의 좋은 의미는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 주간은 물론이고 사순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이 당하신 채찍의 고난이나 십자가의 고난 또는 대속의 죽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믿음을 갖는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까 35장보다 우선해서 32장을 먼저 살펴 보는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오늘 본문을 32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새벽예배에 나오신 분들은 이 본문을 살펴 보았지만 오늘 다시한번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은 이기적이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욕심에 사로 잡혀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후에 오랜 세월동안 연단과 시험을 통과 하면서 믿음이 점점 정금같은 믿음으로 변화가 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서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 , “하나님의 집” 이라고 명명 합니다.(창28:18-19)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야곱은 일생에 처음으로 선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의 서원은 하나님께 무엇을 바라거나 댓가를 원하는 마음에서 서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기억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신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 감사의 마음으로 서원한 것입니다.

 

야곱이 서원할 때 그 중심에는 “이제부터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살겠다는 믿음과 더불어 장차 벧엘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겠다는 결단의 마음으로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이것은 벧엘에서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갚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제 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면서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야곱이 허물과 실수가 많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러나 야곱이 한가지 잘한것이 있다면 그는 청년때부터 중년때까지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타게 갈망 했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도 장자권을 차지 하려고 했던 이유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때문 이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일한 이유도 하나님이 축복하신 축복이 이루어 질것 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한 것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은 사실 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을 누리고야 말겠다는 악착같은 신념이 있었기에 결국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쟁취한 것들과 더불어 비 신앙적인 방법으로 얻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연단과 징계차원의 고난을 허락 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음모를 꾸민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에게 음모를 당해서 20년간 고생을 하게 하셨고 나중에 노년에는 자기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하고 결국 요셉을 잃는 엄청난 가정적 불행도 맛보게 됩니다. 야곱이 이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온갖 풍파를 겪어 나가는 동안에 비로소 그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기 까지에는 많은 시험을 통과 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무려 20년을 지냅니다. 그래서 고생 고생한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재산을 모으고, 두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종들을 거느리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20년 만에 가나안 땅으로 금의 환향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20년 전에 형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래서 형 에스는 야곱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오매불망 야곱을 만나기를 기다랍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을 품고 기다리는 형 에서를 만나야만 하는 한가지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우리가 배운 것처럼 야곱이 고향에 가까이 오자 사환을 에서에게 보냈는데 그 사환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에서가 군사 4백 명을 이끌고 야곱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야곱의 귀향은 금의 환향이 아니라, 그동안 모은 모든 재산은 다 빼앗기고 게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도 빼앗길 수 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상황을 맞이한 야곱이 이제 이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에서를 맞이 할 방법을 강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야곱이 에서를 맞이하기 위해서 대처하는 모습이 참 가관 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꾀를 최대한 발휘 합니다. 그동안 살아오는 동안에 인간적인 욕심과 꾀로만 살면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고생을 했으면 이젠 정신을 차릴 만도 한데 야곱이 다급해 지자 그는 또 다시 과거에 행했던 인간적인 꾀를 발동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 사건에서 또 한번 변화 되지 못한 “옛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죽으나 사나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사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 인데,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멋대로 신앙으로 행동 합니다. 그러니까 괴로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2장 7절로 23절에 보면 야곱의 인간적인 꼼수가 얼마나 간교하고 한심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야곱은 자기를 죽이러 오는 에서의 마음을 달래 보려고 자신의 소유 중에 많은 짐승 떼를 뇌물로 에서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물질공세로 염소, 양, 낙타 등을 무려 550마리나 에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이 짐승들을 보내는데, 여러 떼로 나누어서 보냅니다. 많아 보이게 하려고도 그렇게 했지만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에서가 먼저보낸 짐승들을 받지 않고 돌려 보내거나 죽이거나 하면 그 와중에 도망을 치려고 여러떼로 나누어서 보낸 것입니다. 정말 잔 꾀의 명수 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뇌물을 형에게 보내고도 야곱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자식들과 아내들을 보냅니다. 32장 21절 이하를 보면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짐승떼를 뇌물로 보낸 야곱은 고민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두 아내와 자식들까지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자기 혼자만 강 반대편에 머물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보냈는데 그 내용을 다시보면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뇌물로 보낸 짐승만 500마리가 넘습니다. 그리고 네 명의 아내와 11명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이것들을 쟁취하기 위해서 밤잠을 안자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에서, 자신의 품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놓고 싶지 않았지만 놓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제 혈혈단신 혼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야곱을 창세기 32장 24절에서 이렇게 표현 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창32:24)

 

야곱은 태어나면서부터 형의 발 뒤꿈치를 붙잡고 태어 납니다. 그래서 시작부터 붙잡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러나 결국은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얍복나루터에서 직시하게 됩니다.

 

그는 얍복강 나루터에서 "인생은 붙잡는다고 붙잡아지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나이 90이 넘어서야 그는 이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무기력함과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필립 얀시(P. Yancey)는 말하기를 “은혜란 상처와 흠집의 갈라진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과 같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내 모습 그대로 “나는 허물많은 야곱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씀 입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가장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질 않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나의 상처와 나의 허물과 흠집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노출시킬 때 임하는 것입니다.

 

금번에 윤영순사모가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 감리교회에서 간증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모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간증을 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살아온 모든 인생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성령을 따라 간증을 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간증들을 사실대로 고백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의 간증에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처제 윤영애집사님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끝까지 자기의 약점을 숨기고 가족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자기만 살겠다고 갈등 하면서 살기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야곱은 여차 하면 마지막에 혼자 남아서 자기 혼자라도 줄행랑을 치면서 튀겠다는 속셈으로 그런 준비를 했습니다. 여기서 또한번 야곱의 교활한 인간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야곱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본성을 다시한번 드러낸 것입니다.

 

야곱이 이와같이 20년간 모은 모든 짐승과 재물과 처자식까지 다 보내고 자기는 강을 건너지 않고 얍복나룻터에 혼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밤이 깊어 가면서 점점 더 마음이 불안해 졌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겉똑똑이 였습니다. 잔 머리를 잔뜩 굴렸지만 멍청한 짓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그렇게도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숱한 시험과 환란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살아 왔으면 이제는 한번쯤 하나님을 의지 할 만도 한데 야곱은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이 내 팽개치고 자기 머리만 굴리면서 인간적인 꼼수만 부리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와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안절 부절 하면서 불안에 떨고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찾아 오셔서 놀라운 축복을 선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2장 24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라고 증거 합니다.

 

갑자기 홀로있던 야곱에게 어떤 사람이 나타납니다. 야곱이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너무나 두렵고 불안해서 초죽음이 된 상태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캄캄한 밤에 어떤 사람이 불쑥 나타났으니 아마도 야곱은 이 사람이 에서가 보낸 자객이나 또는 자기를 죽이려고 다가온 사람으로 여겼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성육신 하시기 전에 구약 시대에도 종종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야곱에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도 모르고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을 붙잡고 죽자 사자 사력을 다해서 씨름을 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이 자기를 죽이려고 온 자객인줄 알고 죽기 살기로 그를 붙잡고 싸운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겠다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서원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막상 무슨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참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범사를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문제가 생겼을때 하나님은 제쳐놓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 하다가, 하다 하다 안되면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신앙은 제대로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려울때만 도와주시는 해결사나, 119 구조대원이 아닙니다. 심부름센터 직원도 아닙니다. 내 인생길에 범사에 매사에 언제 어디서나 무슨일이 벌어지던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이제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는데 야곱이 너무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니까,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내리쳐서 환도뼈 즉 엉치뼈가 부러집니다. 엉치뼈가 부러진 그는 절름발이가 됩니다. 32장 25절에 보면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왜 하필이면 천사가 환도뼈를 쳤습니까? 사람 몸에서 가장 강한 뼈가 머리뼈와 환도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고집을 꺽기 위해서 하나님이 환도뼈를 치심으로 옛사람의 자아를 꺾어 버리신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은 성도가, 교만하여 내멋대로 살면 반드시 손을 보셔서 고치십니다. 예수 믿었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순종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인간적인 방법과 술수로 뭔가를 해 보려고 하고 세상 즐거움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이 손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야곱을 불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의 모습이 32장 31절에 나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러나 야곱이 불구자가 되자 비로소 거듭나게 됩니다. 육신적으로는 장애자가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에 처음으로 참 평안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은혜가 넘칩니다.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자 비로소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평안이 몰려 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그곳 이름을 “브니엘” 이라고 명명 했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햇빛이 환하게 비춰오듯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신령한 빛이 비취었고 감당할수 없는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변화가 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멋대로 살던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주인 삼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본주의자(神本主義者)로 변화가 됩니다.

 

나 중심(I-Centerd)의 사람이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의 사람으로, 죄와 욕심이 지배하던 옛사람(Old Self)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가는 새사람(New Self)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고난이 유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이 오면 괴롭고 힘들지만 그러나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주권(Lordship)의 문제 입니다. 주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 이 문제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면서 야곱은 정신이 확 깼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니, 이게 뭐야? 이분이 천사였어? 하나님이셨어? 그럼 이분은 내가 싸워야 할 분이 아니라 내가 붙잡아야 할 분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분을 놓칠수는 없지!” 하고 그분에게 죽자사자 복을 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야곱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이분만 붙잡으면 내가 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6절에 보면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안 야곱은 이제는 육체의 씨름이 아니라 영적인 씨름을 시작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복을 달라고 간청을 하자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27절~28절에 보면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천사가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은게 아닙니다. 그것은 "네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무엇이냐?"를 물은 것입니다. 야곱은 “사기꾼이요 발뒤꿈치를 잡은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그 이름은 쓰지말고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즉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내가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살았기에 실패자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 복종하면서 승리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복종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항복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불행한 마음이 들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지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복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마음속의 환도뼈를 깨뜨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 점에 대해서 강하게 표현합니다. 고린도 후서 10장 5절에 보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인간의 교만, 고집, 아집, 주관 등 모든 육신적인 것들을 깨뜨리고 무너뜨리라고 말합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께 복종하라는 겁니다.

 

다윗도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자기 욕망대로 살다 밧세바 범하고 우리야 죽이고 죄악에 빠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옛사람의 욕망에 이끌려 패배한 겁니다. 그것을 철저히 회개한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broken heart)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두더지 게임, 일명 뿅망치게임이 있습니다. 두더지가 여러 마리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씩 튀어 나오면 망치로 내리치는 겁니다. 그러면 망치로 얻어터진 두더쥐가 구멍으로 쏙 쏙 들어갑니다. 그런데요, 두더쥐가 쳐도 쳐도 계속 올라 옵니다. 여기저기서 계속 튀어 오릅니다. 그래서 점수를 많이 내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쉴새없이 계속 내리쳐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씨름도 이와 비슷합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옛사람이 튀어 나올때가 있습니다. 욕심, 못된 성격, 성질 나쁜 습관등이 불쑥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인정 사정없이 내려쳐야 합니다. 내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것이 살 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왜 인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집니까? 옛사람의 자아를 가지고 죄를따라 가니까 곤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좀 내려놓고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평안해지고 은혜가 넘치고 축복의 하이웨이가 펼쳐지게 됩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어서 도망도 못갑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불행하고 불쌍한 일입니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 집니다. 자기 자신이 변화되니까 오히려 평안해지고 담대해집니다. 그래서 원수 같은 에서와 감격적인 상봉을 합니다.

 

에서와의 상봉에서 살아남고 화해를 이룬것은 야곱이 더이상 돈으로 해결하거나 인간적인 꼼수로 해결한 일이 아닙니다.

 

창세기 33장 3절로 4절에 보면 변화된 야곱의 모습이 잘 보여집니다. 3절에 보면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간밤에는 짐승들과 가족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자기는 맨 뒤에 있었는데 이제는 야곱이 맨 앞에 서서 절뚝 거리면서 나아갔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그동안 야곱은 형에게나 누구에게도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밤에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고 변화되자 그밤에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서로 만날 때 눈물을 흘리고 입 맞추면서 화해를 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렇게 쉬운 길이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허튼 짓만 한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 성공의 비결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두손들고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면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엄상익 변호사는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씨 등 가난하고 어려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변호해서 유명해진 변호사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처리하려고 애쓰는 신실한 크리스챤 변호사입니다.

 

그러나 그가 본래부터 착하고 겸손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간증에 의하면 그는 대단히 교만하고 건방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환도뼈가 위골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하려고 운전석에 앉았는데, 갑자기 손가락에 마비가 오면서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전신의 모든 말초신경이 파괴되는 희귀병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고칠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정상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는데 하루 아침에 죽을병에 걸렸으니 기가 막혔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눈물로 기도만 하고 있었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처럼 사필규정으로 매달려서 기도한 끝에 수 개월이 지나자 발가락부터 회복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전신이 다 회복이 되어서 건강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기도하는 변호사! 복음 전하는 변호사! 가난한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나에게도 위골 되어야 할 환도뼈가 있다면, 그리고 내 마음속에도 깨져야할 환도뼈가 있다면, 하나님이 치시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진정한 행복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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