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어촌에 남해세광교회가 있습니다.
오래전 남해 바닷가 마을에 있는 교회에 주일예배를 드리러 갔던 동생 김다윗목사님이
목사도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80~90세의 노인분들 만 있는 교회를 보고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선교사역을 중단하고 담임목사로 눌러 앉은지 10년이 되어 갑니다.
아래 글은 남해세광교회카페에 김목사께서 2011. 6. 1 일상의 모습과 교회생활의 회고를 올려 놓은 글입니다.
예전 글을 읽다가 감동과 은혜가 솟아 올라 옮겨 왔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도 남해세광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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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노인 요양원에서 한 달 동안 실습을 했다
한 달 간의 사회복지 현장 실습을 통해서 많은 배움을 얻게 되었다.
실습 둘쨋날 어르신들의 목욕 도우미로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식사를 못하시는 어르신들의 식사 도우미 일을 하면서도, 중풍으로 쓰러지신 아버지를 7년 동안 수발하신 어머니가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셨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내 자신을 돌아보는 귀한 체험 이었다.
그리고 실습 기간 동안에 날마다 식사 수발을 하고 목욕을 도와 드리면서 도움과 수발이 필요한 분들에게 사회복지를 통한 후원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의 현장실습을 통해서 무엇 보다도 중요한 배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낮아져서 섬기는 일과 더불어 조건없는 사랑의 헌신을 다시 배운 일이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노인들에게 밥을 떠 먹이고, 목욕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혀 드리면서,
아버지가 살아 계실때 아버지를 그와같이 섬기지 못한것과 더불어 내가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함께 지냈던 모든 성도들을 그와같이 정성껏 섬기지 못한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습을 하는 동안에 더욱 깨닳은 마음으로, 매주 점심때 마다 한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류금련권사님 수저에 더욱 자주 반찬을 놓아 드리게 되었고, 앞을 전혀 못 보는 윤희만집사님에게도 더 많은 애정을 쏟게 되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하신 정춘자집사님에게도 이전보다 더욱 많은 사랑을 베풀게 되었고 그리고 고령의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마음으로 세심한 배려와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사회복지 공부가 이제 팔부 능선을 넘어섰다. 앞으로 이곳에서 도움과 후원이 필요한 분들을 섬기기 위해서 시작한 이 사회복지 공부가 언젠가 반드시 유용하게 쓰임을 받게 될 때가 있으리라 믿으면서 소망을 가져 본다.
종종 우리 교회가 시작하던 그 때를 다시 되돌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일만 반복하는 그런 교회로는 더 이상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이곳에 우리 남해 세광교회를 세워 주셨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 첫 개척예배를 드리던 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그 후로 성전을 리모델링하여 세우고, 그리고 계속되는 부흥으로 인해서 더 이상 40석의 좁은 식당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할 수가 없게 되었기에 우리는 또 한번 믿음으로 건축을 시도하여 70석의 식당과 현대식 남녀 화장실과 사택까지 건축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본당과 식당을 지었다. 두 번의 건축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단돈 일원의 성전 건축 헌금을 모아둔 적이 없었고, 식당 건축 헌금도 준비해 놓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교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역사 이기에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이런 엄청난 역사를 준행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특하게 보셨는지 하나님은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늘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는 정식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매달 고정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었다. 7, 80대가 대부분인 모든 성도들이 거의 다 농사를 지으면서 살거나 몇몇 성도들도 고정 수입이 없는 일당 수입에 의존한다. 그나마 매달 고정적인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가 한 두분 계시지만 그 분도 이미 퇴직을 한지가 오래고 그나마 유일하게 도움이 되었던 성도님도 무슨 연고인지 십일조를 중단한 상태다
다만 연로하신 대부분의 성도님들과 더불어 몇몇 성도님들이 매주 성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드리는 귀한 헌금만이 작지만 우리 교회를 지탱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건축 하느라 융자받은 원금과 이자를 기백만원씩 매달 갚아 나가고 있을뿐 아니라, 3 대의 승합 차량을 운행하고 있고, 그리고 끊임없이 투자를 해야하는 주일학교와 더불어 사회복지 공부까지 해 가면서도 부족함이 없이 목회를 하는것은 정말 하나님이 베푸시는 땅끝 마을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개척을 하여 성전 건축을 하던 첫 해에는 나도 하나님께 사례비 1년치를 건축 헌금으로 작정하여 드렸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것처럼 정말 하나님은 원방 각처에서 후원자를 통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후원해 주셨다. 그리고 다시 식당과 사택을 지은 후로는 갚아야 할 융자금이 더욱 많아져서 마음의 짐이 조금 더 무거워 졌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좋으신 하나님 이시기에 이 모든 무거운 짐을 쉽고 가벼운 짐으로 여기고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몇몇 분 들과 친지들이 나의 목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기에 나는 땅끝 마을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땅에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소멸 당하지 않도록 든든한 후원자들을 배려해 주셨다.
교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류금련권사님의 손녀인 강소애양이 조내원군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조내원군이 주례를 부탁하러 와서 뜻밖의 제안을 했다. 결혼을 하면 십일조를 우리 남해 세광교회로 보내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십일조는 자기가 출석하는 본 교회에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도 물론 목회를 하면서 그렇게 가르쳐 왔다. 그래서 조내원군에게 십일조를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드리면 “담임 목사님이 싫어 하실텐데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내원군이 하는 말이 “우리 담임목사님은 그런것 안따집니다. 할 수 있으면 시골 교회나 고향 교회를 섬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우리 한국 교회에 그래도 열린 마음을 가진 훌륭하신 목사님이 계시는구나!” 하고는 마음으로 그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 목사님은 내가 다닌 총신대학 신학 대학원 후배인 분당 우리교회의 이찬수목사님 이셨다.
그 후로 조내원군과 강소애양은 매달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45만원의 십일조를 보내오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한 가정의 후원을 예비 하셨다. 조정숙권사님의 딸 천경아성도님이 교사로 임용이 되면서부터 남편 가성훈성도님과 함께 30만원의 십일조를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보내주고 계신다.
이 두분의 섬김은 고정수입이 없는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기둥같은 재원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또 한분, 7년 전부터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의 목회를 돕고 있는 대학 후배 박인혁집사님의 후원은, 빈들에서 고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갈증을 채워주신 주님의 도우심처럼 힘들고 어려운 목회 현장에서 지칠 때 마다 힘과 위로를 주기에 충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몇달 전부터 강소애양의 엄마인 김명심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하고 예배에 동참하게 되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정식으로 매일 직장에 출근 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으로 인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첫번째 성도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헌금을 전혀 못드리는 가난하고 연로하신 성도님이 오셔도, 예수님이 소외된 사람들을 환영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심으로 그런 성도님을 환영하고 축하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경제적인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까 교회 설립 1주년이 되면서 부터 나와 사모는 "하나님! 우리 교회에도 물질적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룰수 있는 성도님들을 보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김명심집사님을 우리 교회로 보내 주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번의 건축을 하는 동안에, 주님을 위해서 관제와 같이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바울 사도처럼, 나 또한 그동안 모아둔 적립금과 적금 그리고 사모가 미국에서 올때 꿍쳐 두었던 마지막 비상금까지 다 털어서 개척교회에 쏟아붓고 또 건축하는데 다 쏟아 부었기에 이제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고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대로 목회를 하다가 10년 후에 은퇴를 하게 되면 우리는 오갈데 없는 가난한 부부가 될텐데 그러면 장차 어디서 인생을 살아야 하나?”하는 은근한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평관집사님을 통해서 놀라운 위로를 허락 하셨다. 그것은 정평관집사님께서, 아버지 정효범성도님이 사시던 설천면 금음리의 집과 땅 500평을 나에게 명예 이전을 해 주면서 “목사님! 그 땅을 좋은일에 쓰시다가 노후에 목사님께서 사세요!” 하고 기증을 해 주신 것이다.
게다가 정평관집사님은 많은 돈을 드려서 그 집을 깨끗하게 수리까지 해 주셨고 그 집 앞마당에 정자를 지을 때에도 정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후원해 주심으로 우리는 그 집과 정자를 금음리를 구원하는 전초 기지로 삼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노후에 어디가서 살아야 할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이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 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정평관집사님이 헌신한 그 헌신이 드디어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정평관집사님이 기증한 금음리 집에 수시로 드나 들면서 바로 앞집에 사시는 이공엽성도님을 섬겼더니 이공엽성도님이 드디어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등록을 하시고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분의 성도님도 우리 교회로 나오시기로 약속을 하셨다. 정평관집사님의 헌신이 드디어 복음의 불모지 였던 그 동네에 생명과 구원의 열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정평관집사님이 헌신한 그 땅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열매가 더욱 넘쳐 날 것을 확신한다. 그 땅에 우리는 2층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정자를 짓자마자 그 정자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사용 되고 있다. 매일 사용하지는 않지만 시험때와 필요할 때 아이들이 공부를 할수있는 유용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방이 세개나 되는 금음리 집은 우리 교회를 찾아오시는 손님들과 더불어 목사님들의 쉼터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주말에는 죽마지우 친구인 이상천목사님이 안식년을 맞아서 사모님과 함께 남해에 올 예정이다. 나는 친구 목사님 부부에게 3개월의 안식년 휴식 기간 동안에 이곳 남해에 와서 쉬면서 재 충전을 하라고 이야기를 했고 친구 목사님 부부는 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드렸다.
그동안은 손님이 와도 머물곳이 마땅치 않아서 우리 교회를 찾아온 손님들을 모시고 바닷가에서 민박을 하시는 김막순권사님댁에 모시고 가서 머물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손님들이 와도 편히 쉴수가 있는 처소가 마련이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몇 주 후면 우리 교회는 개척한지 만 2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하나님은 지난 2년 동안에 우리가 20년 동안에 이루어야 할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 주셨다. 그리고 어디를 둘러 보아도 도무지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시골 구석 박지에 있는 우리 교회에, 귀한 믿음의 성도들을 한사람씩 한사람씩 보내 주셨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 사회 복지사가 두분이나 계신다 (나까지 포함하면 머지않아 3사람이 된다) 그리고 은퇴하신 목사님도 보내 주시고, 젊은 장교 부부도 보내 주시고, 그리고 최 고령의 95세의 성도까지 보내 주셨다. 게다가 다 흩어진 교회학교도 다시 서서히 부흥 일로에 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볼때 무엇 보다도 감사한 또 한가지 일은, 비록 건축을 하느라 어느정도 무거운 빚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매달 필요한 만큼 채워 주시는 기적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무한하신 사랑을 체험하게 해 주시는데 교회에 필요한 것도 채워 주시지만 개인 적으로 필요한 것도 늘 도와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들을 다 소개 하자면 아마도 여러장을 더 써야 할 것이다. 전에 신학대학원 후배인 지주안(지유진)전도사님께서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면서 사모님과 함께 우리교회에 와서 자기가 받은 장학금을 몽땅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헌금을 하고 가셨다.
우리가 알다시피 전도사 시절에는 정말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 전도사님은 고향에 좋은 교회가 생긴것을 기뻐 하면서 자기가 받은 장학금을 몽땅 우리 교회에 헌금을 해 주셨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날 내가 지 전도사님에게 안부 전화를 해서 근황을 물었더니 지 전도사님이 교회를 사임하고 새 목회지를 구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전도사님은 12월달에 사임을 했는데 2월달이 되도록 새로운 사역지를 정하지 못하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당장 전도사님에게 강권해서 은행 구좌번호를 달라고 강청했고 그길로 전도사님에게 30만원 정도의 생활비 후원금을 보내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교회 형편으로는 30만원의 생활비 후원금을 보내 드릴 형편이 못 되었기에 나는 일단 재정부장님에게 “지주안전도사님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재정부장님과 상의한 후에 교회 재정에서 십만원을 도와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0만원을 신용카드로 빼서 30만원을 지주안전도사님에게 보내 드렸다. 물론 교회 재정 보고시에는 10만원만 보고를 했다.
사실 이런일은 오래 전부터 반복 되어져 오는 일이다. 그런데 3월달에도 이런 일들은 계속 되었다. 여전히 병원에 입원한 성도들과 더불어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이 많았고, 장례식도 있었고 그리고 공사중에 다친 어떤 성도의 병원비까지 어머니와 함께 갚아 주기로 했기에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지출이 많아 졌는데 그런 것들이 누적이 되어서 4월달에는 많은 금액의 카드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런때엔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 밖에는 없다.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이번달에는 결재할 카드빚이 많습니다. 도와 주셔서 다 결재할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다. 실로암선교회의 서은경전도사님이 갚아야할 돈을 정확하게 보내주신 것이었다. 서은경전도사님은 백광영 집사님의 소개로 알게된 전도사님 이신데 거제에서 장애우들을 도우면서 목회를 하시는 전도사님 이시다 서은경전도사님은 매달 5만원씩 후원금을 보내 주시는데 4월달에는 갑자기 덤으로 많은 돈을 보내 주시는 바람에 나는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죠지 뮬러가 경험한 기적과 같은 동일한 경험을 늘 체험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요, 또한 이와같은 하나님의 후원을 통해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 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목회사역에 전심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사실 교회의 재정 상황을 보면 가끔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그래서 작년 12월달에는 재정부장님과 상의를 해서 승합차를 하나 팔아서 마이너스 재정을 500만원이라도 갚기로 했다. 그래서 윤인준집사님이 사주신 스타렉스 승합차를 진주 자동차 시장에 내 놓았다. 차를 팔려고 중고 자동차 가게로 차를 가져가는 내 마음은 몹시 안타 까왔다.
나는 가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사실 우리 교회에 승합차는 세대가 다 필요합니다. 운영을 지혜롭게 하려면 반드시 3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정상 어쩔수 없어서 차를 팔러 갑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차가 꼭 있어야 한다면 차가 팔리지 않게 해 주시고, 파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팔리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면서 진주로 갔다. 차를 매매상에 건네 주면서 "500만원을 받아 주세요" 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 오는데 꼭 자식을 맡기고 돌아오는 기분 이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록 차가 안팔렸다. 두달이 지나도 차가 안팔렸다. 그래서 결국 내 놓은 차를 다시 도로 가져오게 되었다. 가져 오는데 마음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3월달 부터 차량 세대가 정상으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차 한대를 왕지구역에 놓고 조정숙권사님이 차량을 운행하기로 하면서 새벽기도 때에도 두번씩 차량운행을 하지 않게 되었고 주일날도 마찬가지로 차량운행을 합리적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세 대의 차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렇게도 인기가 좋은 스타렉스 차량을 두달 보름동안 팔리지 않도록 꼭꼭 붙잡고 홀드해 주신 것을 확신했다. 나는 차가 팔리지 않은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윤인준집사님이 사 주신 검정색 스타렉스 차를 탈 때 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고마와요!" 라고 고백하면서 차를 타고 다닌다. 차를 탈때마다 적자 재정에 대한 부담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넘치는 감사와 찬송만이 흘러 넘친다. 하나님은 지난 한달 동안에 여섯분의 새신자를 보내 주셨다 그리고 차를 팔지 않고도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신다는 믿음과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또한가지 감사한 일은 권옥란권사님이 70이 넘으신 나이에 운전 면허증을 따셨는데 얼마전에 소형 차량을 구입 해서 몇 달간 연습을 하시더니 드디어 주일 날 우리 교회의 장애우 들을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는 일을 시작 하셨다. 이제는 진목까지 가셔서 성도님들을 모시고 오신다.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헌신이 아닐수 없다.
지난주에는 정영자 집사님의 아들 김석헌집사님과 며느리 안수경집사님의 아들 지훈군 득남 축하 잔치가 있었다. 그런데 김석헌집사님께서 득남 했다고 점심식사 후원금을 보내 주시는 바람에 교회에서 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마침 부산에서 이사 오셔서 감암에서 태양 횟집을 시작 하시게 된 새신자 나창희성도님께서 싱싱한 생선회를 두 소쿠리나 제공해 주시는 바람에 우리는 김석헌집사님의 후원과 더불어 나창희성도님의 섬김으로 맛있고 싱싱한 회가 가득한 식사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늘 은혜가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하다. 예배 시간마다 춤을 추면서 찬양하고 예배가 끝나면 매주 뷔페식으로 식사를 하면서 천국 잔치를 맛보면서 지낸다. 하나님이 기뻐 하셨던 초대교회의 행복이 우리교회에서 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도회지에서 시골로 이사오실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우리 남해군 설천면으로 이사를 오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교회같이 좋은 교회를 선택해서 믿음 생활을 하면 일평생 행복하게 믿음생활을 할수가 있고 또한 즐거운 인생을 사실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 드리고 싶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교회로의 도약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올해의 표어를 전도와 선교의 해로 정하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제목을 응답해 주심으로 갈수록 신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소망을 잃지않고 기도한다 " 하나님 우리 교회의 빚을 한번에 다 해결해 주시고 소마굿간을 리모델링한 성전도 아름다운 빨간벽돌 성전으로 다시 건축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복주신 교회임을 온 세상에 알리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남해 세광교회가 이땅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감사 합니다!"
6월1일 새벽에
주님의 은혜를 감사 하면서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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