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배우기/하모니카연주곡

[스크랩] 엄마와 둘이서 간 벌교 (바램 A/A# )

그리운시냇가 2016. 9. 10. 11:57

 

 

 

 

 

 

 

 

 

 

 

 

 

 

 

 

 

 

 

 

1. 엄마의 목소리

보성여관에서 엄마랑 2015년의 마지막 날을 자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예약이 다 차 있다.

지인과 차를 마시는데, 전화가 왔다.

예약취소한 사람이 있단다.

얼씨구나.

내 바램이 이뤄지다니...

엄마께 전화했다.

어머나... 엄마의 목소리 좀 봐. 평소의 힘없는 목소리가 아니다.

통통튀는 목소리다.

엄마한테서 이런 목소리를 언제 들어보았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다 고향집을 떠나게 되었고, 6개월후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신지 5개월여.

그 동안 혼자서 잘 적응하신게 참 고맙다.

둘째딸과 여행간다니 설레시나보다.

엄마의 목소리는 젊어있었다.

 

2. 김밥

엄마를 위해 싼 김밥은 처음이다.

두 아이를 위해 숱하게 쌌던 김밥.

그걸 엄마를 위해 싸게 될 줄 몰랐다.

설레며 김밥을 싼다.

기차에서 맛있게 먹어야지.

 

3. '벌교'는 어려워 !

논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엄마, 우리가 가는 곳이 벌교야. 벌   교 ! 따라해 봐."

엄마는 웃으며 입술을 움찍거리며

"별    규"

"하하하 하하하"

"아니, 벌교라니까? 다시 해 봐. 벌   교."

엄마는 수줍게 웃으며

"별    규"

"하하하 호호호"

"그 말이 어렵구나."

 

4. 기차안에서

기차 타기 전 엄마가 그러신다.

"너 덕분에 기차도 타보네. 처음 기차탄 게 54년 전인디. 그 때 울산에서 시집 올 때 기차타고 아버지랑 왔는디 그때 타 보고 처음이여."

"으응? 그려 엄마? 그렇구나."

기차 타서 보니 엄마는 기차 칸 사이에 문 여는 것도, 화장실 문 여닫는 것도 잘 모르신다.

당연한 일이지.

모든 걸 동행한다.

새벽에 싼 김밥을 먹으며 하시는 엄마 말씀.

"저기 새파란 게 다 보리네. 전국에 보리가 다 여기서 나는구먼. 새파란 싹 보니께 봄 같으네."

"엄마, 그러네. 봄이 따로 없구먼. 여기 오니께 봄이 보이네."

예당역 근처에서

"골짝 골짝마다 집이 있는 것 좀 봐."

조성역 근처에선

"여긴 뺑 둘러 산여."

엄마는 세상구경이 신기한 듯 말씀하신다.

엄마가 반응하는 건 농사 일과 사람 사는 모습이다.

햇볕이 나른하다.

덜커덩 덜커덩 느리게 돌아가는 기차소리에 졸리웁다.

 

5. 보성여관에서

숙소의 열쇠를 건네 받고 둘이 차를 마신다.

오늘과 내일의 일정을 말씀드리자, 갑자기 엄마가

"여긴 워디여? 보성여?"

"하하하 엄마, 여기? 벌교잖여, 벌교. 하하하"

"하하하 자꾸 까먹어. 별규!"

한참 웃다가 조용히 차를 마신다.

"엄마,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날마다 군 병원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고생많았지. 나를 잘 낳아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널 안 낳았으면 어쩔뻔했어."

너무도 순박하고, 내향적인 엄마가 이런 표현을 하신다.

이 여행의 시간에서 사랑을 받은 건 누굴까?

 

기차에서 김밥 도시락 하나를 먹고 하나가 남았다.

좀 있으면 저녁시간, 꼬막정식을 먹어야 하니 김밥 먹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보성여관 직원에게 주니, 답례로 레드향과 수첩을 주신다.

여행길에 만난 사람과 주거니 받거니... 행복하다.

 

6. 창호지 방에서

꼬막 정식을 배부르게 먹고 벌교 시장에서 엄마모자와 베낭을 샀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늘 슬픈 엄마의 얼굴이 몇 컷 찍은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는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2015년 마지막 밤, 조촐한 송년회를 한다.

하모니카로 <작별>을 부르니

"그게 다여? 더 해봐." 그러신다.

여러 곡을 연주했다.

"너, 작아두 이쁘구 대견혀."

 

7. 해맞이

6시 30분.

엄마는 다리가 불편하여 혼자서 여관을 나섰다.

어둑어둑하긴 하지만 걸을 만 했다.

부용산을 행해 걸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제 저녁에 미리 입구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엄마가 힘드실까봐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알아낸 사실은 '중학교 뒤쪽 길로 가기'와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이크... 아니나 달라.

두세번 골목을 잘못 들어서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다가 부용산 해맞이하러 가는 할아버지를 만나 동행했다.

부용산 정자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있고, 키 큰 남자 사회자가 해맞이 행사의 진행을 맡고 있었다.

벌교읍의 행정을 맡은 사람들의 새해인사를 다 듣고도 아직 해가 뜨지 않는다.

하모니카를 꺼냈다.

사회자의 팔을 꾹꾹 찔렀다.

사회자가  나를 보자, 하모니카 연주해도 되냐고 물었다.

간략한 소개를 하고 <환희의 송가>를 베이스 반주를 넣어 불었다.

끝나자 박수와 앵콜소리가 났다.

내가 앵콜곡이 안 떠올라 생각하는 사이 저 쪽에서 두 남자의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어제 마신 술 탓이려니...

 

첫 해가 참 붉다.

홍시같은 붉은 해가 벌교 다리위로 올라온다.

여기저기 환호성이 들리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생각보다 해가 참 크게 보인다.

기도한다.

엄마와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그래서 그 건강을 바탕으로 행복을 엮어가기를.

아까 사회자 옆에서 새해인사 했던 분이 나에게 물으신다.

"하모니카를 오늘 여기서 불려고 가져왔어요?"

"아, 불고 싶어서 가져오기는 했는데, 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저도 잘 몰랐죠. 오늘처럼 새해맞이 산에서 하모니카 불기는 처음이예요."

"새해에 소원이 이루어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8. 부용산 떡국

빠알간 해에 폭 빠져 감상하는 사이 사람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알고보니 떡국 먹으러 갔단다.

나도 뒤따라 갔다.

어느 건장한 노신사와 같이 걸었다.

떡국 줄이 길다랗게 서 있다.

이런 줄에 서서는 떡국을 먹을 수 없다.

엄마와 약속한 시간이 있는데, 마침 내 핸드폰이 너무 늙어서 또 기절하시었다.

노신사께서 나를 보고 따라오라 하신다.

그 분 덕에 떡국 한그릇, 김치깍두기를 얻어 그 분과 같이 맛난 떡국을 먹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먹다가 신기한 걸 발견했다.

떡국 먹는 식탁위에 꼬막접시가 놓여져 있는거다.

아, 벌교에서는 떡국먹을때 꼬막도 나오는구나.

꼬막으로 유명해진 벌교.

그래서일까? 새해 떡국상에도 올린 이유가.

벌교 꼬막을 세상에 알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문학의 힘이 벌교에서도 느껴진다.

 

9. 새해 첫 날

여관에서 아침을 또 먹고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 여기가 어디라구?"

"여기? 별교!"

"어? 그래도 어제보다 발전했네. 하하하"

버스에서 내려 순천역 앞 대구탕집에 들어가니

"대구가 맛있는 생선여. 처녀때는 많이 먹었는디 시집가니께 잘 안보이대. 오십여년만에 첨으로 먹어보네."

"난 딸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것도 사주고 좋은 데도 다니는디, 너는 딸이 읍은깨 네가 너한테 좋은 거 사 주고 다니고 싶은 데 다녀."

 

첨부파일 바램 A.mp3

 

하모니카 동호회 회원님들께서 좋아하는 노래라 올려보았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출처 : 하모동산 - 하모 꿈동산
글쓴이 : 햇빛사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