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귀한 분들이 저희 교회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왕지에 사시는 윤희운안수집사님과 류영점권사님께서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다같이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고 두분을 환영하겠습니다.
윤희운집사님과 류영점권사님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회가 갈라질때 저에게 중요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지금 당장은 남해 세광교회로 못가도 나중에 반드시 남해 세광교회로 가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년만에 그 약속을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두분을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
아울러 백광문집사님가 이경진집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정봉임집사님께서 서울 아산병원에 가셔서 진찰을 받으시기 위해서 멀리 출타를 하시게 되어서 두분이 부모님께 효도를 하려고 오셨습니다. 백광문집사님과 이경진집사님은 요즘 보기드문 효자 효부 이십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두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제 창원에서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시험이 있었습니다. 두달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그리고 다시 한달동안 집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한 후에 학원에서 두주동안 총 정리까지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 집사람과 이진숙집사님과 함께 셋이서 창원 반송여자 중학교에서 요양 보호사 자격 시험을 보았습니다.
아침 9시30분까지 도착해야 하기에 여섯시에 출발해서 진주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그리고 창원에 도착 하니까 8시20분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주차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서 보니까 정말 주차장에 주차할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려 나가서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돌리는데 제 집사람이 “하나님! 주차할 자리를 하나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차를 돌리고 있는데 바로 저희 차 앞에 주차했던 승합차 한 대가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입구에 가장 좋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들어갈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시험시간에 벌어졌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시험문제를 푸는데 일교시에는 40문제였고 2교시에는 45문제 였는데 한 과목당 60점 이상을 맞아야 합격인데 시험문제를 풀다 보니까 제대로 아는게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자신있게 맞춘 문제가 한 열문제에서 열 다섯문제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나창희집사님이 작년에 요양보호사 시험을 보았는데 시험문제가 학원에서 나누어준 예상문제와 똑같이 나와서 거의 다 맞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요양보호사 시험을 볼때마다 나왔던 문제들을 학원에서 프린트를 해서 나누어 주었기에 세사람 다 학원에서 나누어준 그 문제들을 열심히 보면서 죽어라고 답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을 보니까 학원에서 나누어준 문제와 똑같이 나온 문제가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들이 마치 함정수사하듯이 함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떨어뜨리려고 문제를 낸것처럼 아주 어렵고 까다롭게 문제를 출제를 했습니다.
수백명이 같이 시험을 보았는데 시험이 다 끝나고 나오면서 “합격이다!” 라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나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틀렸구나! 떨어 졌구나!” 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도 시험을 보고난 후에 “무슨 요양보호사 시험이 이렇게 어려워?”“이건 말도 안되는 시험이야!”라고 투덜거리면서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제 집사람과 이진숙집사님도 교실에서 나와서 주차장으로 와서 차를 탔는데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무슨 시험문제가 그렇게 어려워요?" 하면서 다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도 머리가 아프고 뒷골이 땡겨서 휴게소에 들어가서 쉬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좋았습니다. 아무래도 11월달에 재시험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보름후에 있는데 기대도 하지말고 다시 공부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노인 재가복지 센터를 운영하게 되거나, 노인 요양원을 운영하게 되면, 섬기는 일을 하는 사회 복지사나 요양 보호사의 기본자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운것과 더불어 실제로 요양보호 대상자들을 수발할 때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건강관리에 대한 지식들과 의료지식들에 대해서 배운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이것도 다 우리를 배려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다시 공부해서 시험에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윤리강령이 사랑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로 4절에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참된 크리스챤의 본분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본분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처럼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우주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본본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어머니가 아들 방문을 두드리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일어나야지! 교회 갈 시간이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다시 노크를 하면서 일어나라고 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자고있는 아들의 이불을 걷어내고 아들귀에 대고 외쳤습니다. “얘야! 교회 늦겠다!”
그랬더니 아들이 피곤한 모습으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교회에 가고싶지 않은 이유가 두 가지 있어요! 첫번째 이유는 예배가 지겨워서 가기 싫고요! 두 번째 이유는 교인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것 같아서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래도 네가 교회에 가야되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네가 교회에서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이기에 교회에 가야하고 그리고 그리고 이제 네 나이가 50이니 이젠 네가 스스로 알아서 교회에 가야할 나이이기에 가야만 한다!”
전에도 한번 소개해 드렸지만 이 대화는 이미 목사님이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성도에 대한 사랑을 상실한 목사님 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라고 말씀 하셨고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남편들에게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라고 명령 하셨고 아내들에게는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골3:18)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내들에게는 한가지를 더 강조 하셨습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베드로전서3:1~2)
모름지기 사랑은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삶의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이미 서로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남녀가 왜 결혼식장에서 다시 서약을 합니까? 그 서약은 지금 당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 훗날을 위한 서약입니다.
지금은 죽고 못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이 충만 하지만 그 사라의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 사랑이 식을 때가 오기 때문에 그 때를 위해서 서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라고 서약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유학시절에 캘리포니아주의 LA에 있는 동양선교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임동선 목사님이셨는데 당시에 임동선목사님의 사모님이 건강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한번은 예배가 끝난 후에 임동선 목사님이 사모님을 부축하면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모님이 늦게 걸으시니까 임동선 목사님도 늦게 걸어 나오시고 사모님이 꾸부정하니까 임동선목사님도 꾸부정합니다. 서로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그리하신 것입니다.
그 모습은 나이든 부부가 보여줄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두분이 이미 건강과 기력을 많이 잃었지만 그러나 한 사람이 빨리 걸을 수 없기 때문에 나이드신 목사님이 아내에게 보조를 맞춰주면서 걷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간의 복을 받고 은혜안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도종환씨는 “도마뱀의 사랑”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수 년전에 한 번 소개해 드렸는데 새로 나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한번 소개 해 드립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때 스타디움을 건설하느라 그 주변에 있는 동네를 재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3년후에 스타디움 주변의 길을 넓히느라 스타디움 근처에 재개발을 했던 집이 헐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부들이 3년전에 지었던 집의 지붕을 다시 뜯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3년전에 재개발을 할 때 루핑지붕을 했는데 루핑지붕을 뜯어 내다 보니까 루핑을 고정하기 위해서 나무에 못을 박았는데 거기서 못에 박혀있는 한 도마뱀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도마뱀은 뒷다리와 꼬리사이에 못이 밖혀 있었기에 도망도 못가고 그 자리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인부들이 작업을 중단하고 그 도마뱀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꼬리에 못이 박힌 그 도마뱀은 3년전에 지붕공사를 할 때에 못에 박힌 도마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부들이 놀래서 그 도마뱀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은 그 도마뱀이 못에 밖힌채로 삼년 동안이나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도마뱀이 어떻게 못이 박힌채로 3년을 살아 있었을까? 하면서 다들 놀래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때 어디선가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와서 못에 박혀있는 도마뱀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다른 또 한마리의 도마뱀이 꼬리가 못에 박혀있는 도마뱀에게 먹이를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부들은 두 도마뱀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저 두 도마뱀은 틀림없이 사랑하는 관계가 틀림없을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었다면 못에 박혀서 고통당하는 도마뱀에게 먹을 것을 날라다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못에 박힌채로 꼼짝달싹 못하게된 도마뱀은 당시에 고통이 엄청나게 컷을 것입니다. “이제 내 도마뱀 인생은 끝났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 중에도 먹이를 날라다 주는 다른 도마뱀의 사랑 때문에 그 도마뱀은 끈질기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고 그 사랑 때문에 고통도 견디고 살아있게 되었습니다.
도종환씨는 이 도마뱀이 겪은 사건을 이렇게 썼습니다.
“낡은집에 살던 도마뱀은 어느날 지붕이 헐리고 다시 새로운 지붕으로 교체되는 공사 때문에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만한 곳을 찾아서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다가, 그만 자기의 꼬리가 못에 박히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꼬리에 못이박힌 도마뱀은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몸부림을 칠 때마다 살을 찔러오는 그 고통은 또한 얼마나 컸을까? 못에찔려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아야만 했던 또 다른 도마뱀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은 절망했을 것이고, 옆에서 그 아픔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도마뱀도 어찌 할 수 없는 마음으로 못박힌 도마뱀을 바라보면서 애만 태우고 있었을 것이다.
말도 할 수 없는 이 미물들은 오직 눈짓과 몸짓으로, 서로를 쳐다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었으리라!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상황속에서 지내던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훌륭한 도마뱀은, 바로 못에 찔린 도마뱀의 곁을 지켜준 도마뱀이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도마뱀이 못에 찔려 괴로워 하면서 몸부림을 치다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탈진하여 쓰러졌을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도마뱀은 어디론가 가서 먹을 것을 물어와서 그 먹을 것을 입으로 건네 주면서 “죽으면 안돼요! 살아야 돼요! 정신 차려요!”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못에 찔려서 꼼짝 달싹 못하는 도마뱀은 아픔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 먹을 것을 거부한채 “이제 나는 틀렸어! 나는 끝났어! 당신이라도 잘 살아야해!” 라고 고백하면서 먹이를 외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먹이를 가져온 도마뱀은 고통 당하는 도마뱀을 두고 떠나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에 빠져있는 도마뱀 곁을 지키면서 계속해서 먹을 것을 구해다가 입에 넣어 주었을 것이다.
이 도마뱀은 먹이를 물어 올 때마다 고백하기를 “나는 너를 절대로 버릴수가 없어! 나만 살기 위해서 너를 떠날수는 없어! 난 끝까지 네곁에 있을거야 죽어도 같이죽고 살아도 같이살거야”라고 외치면서 못에 찔려 고통당하는 도마뱀을 위로하고 그 도마뱀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켰다.
그렇게 하루 하루 먹을 것을 구해다 주면서 살다 보니까 어언 삼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도마뱀들은 어두운 지붕 밑에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함께 고통을 같이하면서 지내왔다. 작은 미물들에게 있어서 그 삼 년은 얼마나 길었을까? 나는 오늘도 그 도마뱀들을 생각하면서 미물보다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두 마리의 도마뱀들은 지붕 공사를 하기 위해서 지붕을 걷어내던 인부들에 의해서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참으로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못에 박힌 도마뱀처럼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하루 하루를 지내야만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못박힌 도마뱀 곁을 지키면서 고난 당하는 사람을 돕고 사랑하며서 살아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은 우리 예수님도 못박힌 도마뱀처럼 십자가에 못박혀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지만 그러나 삼일 후에는 부활하여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실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2차 대전때 독일 나치가 만든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나갔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이름을 부르면 이름이 불리운 사람들은 끌려 나가서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자기 이름이 불린 가요니체크는 독일군의 발에 매달려서 안타깝게 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저를 좀 살려 주세요! 저에게는 갓 결혼한 아내와 갓난아이가 딸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죽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하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 목사님이 나와서 나찌 장교에게 “이보시요! 내가 끌려나갈 날짜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젊은이와 나의 순서를 바꿔주십시오! 내가 저 청년을 대신해서 오늘 죽겠습니다”
그러자 사형을 집행하던 독일장교가 부하에게 그 목사님의 원대로 시행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그날 죽었고, 가요니체크는 살아 남았는데 그는 계속해서 처형이 미뤄지다가 결국 연합군이 포로들을 해방시킬 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가요니체크는 1972년 10월에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를 대신해서 끌려나가시던 목사님이 저에게 미소를 보내 주시고 담담하게 끌려 나가신 후에 , 저는 그 목사님이 왜 저를 대신해서 끌려 나가셨는지를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을 통해서 저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그 이유도 뒤늦게 깨닳았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고 목사님은 그 사랑의 죽음의 의미를 아셨기에 저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저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살겠습니다” 가요니체크는 목사님의 희생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평생 하나님의 사랑과 목사님의 희생을 전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에 화재가 난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화재를 일으킨 방화범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이 하루는 새벽 두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늦게 들어왔다고 어머니가 야단을 치니까 어머니를 때리고 홧김에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나자 어머니는 급히 119에 신고를 했고 소방차와 소방관들이 달려오자 어머니는 소방관들을 붙들고 “아들아이가 아직 못 나오고 집안에 있습니다 제발 아들 아이를 살려 주세요!”하면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방관 여섯명이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우르르 집안으로 뛰어들어 갔는데 그때 여섯명의 소방관이 불길에 쏟아져 내린 천정에 깔려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불을 지른 아들은 멀쩡하게 살아서 밖에서서 불에 타고있는 집을 구경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티비 화면을 통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죽어야 할 놈은 저 놈인데 처자가 딸린 아까운 소방관들 여섯명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구나!”라고 이야기들을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후에 저는 그 사건을 생각 하다가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네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사실은 진짜 죽었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불속에서 죽은 소방관들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바라본 그 못된 아들처럼 그렇게 나도 예수님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네가 장차 예수님 때문에 그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서 살텐데, 나는 나에게 엄청난 축복을 선물해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뭘 하고 있는걸까?”
나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플랭클박사는 나치에게 잡혀가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전 재산을 빼앗고, 나의 아내를 빼앗고, 나의 자녀들을 죽이고, 나의 결혼반지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수용소로 끌려간 나는 나치의 군인들 앞에서 발가벗겨진채로 고문을 당하고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까지는 빼앗지 못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했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기로 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나온 빅터 플랭클 박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했기에 지금도 전 세계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랑의 씨를 심고 사랑을 거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유방암에 걸려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백혈구 수치가 800이 넘어야만 항암주사를 맞을 수가 있는데 백혈구 수치가 800이 안넘어서 항암제를 맞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집사님의 백혈구 수치가 정상적인 사람의 수치에 가까운 3000까지 올라 갔습니다. 담당 의사는 “이제 항암제를 맞을 수 있겠습니다 내일부터 항암제를 맞읍시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날 항암제를 맞으려고 다시 검사를 했더니 이 집사님의 백혈구 수치가 다시 800으로 떨어 졌습니다. 의사는 이상하게 생각 하면서 항암제 주사를 연기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다시 검사를 했더니 또 백혈구 수치가 3000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의사는 이 환자의 백혈구 수치가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것이 이상해서 간호사는 통해서 자세히 관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믿는 시어머니가 병원에 오는 날에는 이 집사님의 백혈구 수치가 800으로 떨어지고, 불교 신자인 친정 엄마가 오는 날에는 백혈구 수치가 3000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시어머니가 이 집사님에게 평소에 하도 스트레스를 주면서 살았기에 시어머니만 오면 백혈구 수치가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유없이 무조건 자기를 사랑하는 친정 어머니가 오면 마음이 기뻐서 백혈구 수치가 쑥쑥 올라갔습니다.
갈등은 세상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예수 믿은 후에도 여러 가지 갈등이 찾아 옵니다. 예수 믿은 후에 왜 갈등이 생깁니까? 갈라디아서 5장17절에 보면 갈등의 원인을 이렇게 소개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기에 갈등이 벌어진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육체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의 유익만을 위하여 살아가기에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살면 평강과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은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거스리면서 사는 것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갈등은 여기서 시작 됩니다. 전에 예수 안믿을 때에는 주일날 결혼식이 있으면 그냥 다녀오면 되었지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후 부터는 하나님의 계명이 우선이기에 교회를 가야할지 결혼식장에 가야할지 갈등이 생깁니다.
전에는 수요일날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었는데 예수 믿은 후에는 수요일인데 수요예배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때문에 갈등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에는 없었던 갈등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갈등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삶으로 나가간다는 증거입니다. 만약에 예수 믿었는데도 이런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안나와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고 마음이 평안하다면 그런 성도는 영적으로 병든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믿은후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고백 하면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성도가 성령을 따라서 살면 영육간에 복을 받고 성령의 열매가 주어 지지만 육체를 따라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죄의 열매와 사망의 열매만 맺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한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교육하면서 이런 교훈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얘들아 인간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있단다”
“어떤 짐승인데요?”
“한 마리는 착한 짐승이고 한 마리는 악한 짐승이야”
“그럼 착한 짐승하고 악한 짐승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건 너희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단다! 너희가 착한 짐승에게 먹이를 주면 착한 짐승이 힘을 얻어서 착한 짐승이 이기지만, 반대로 악한 짐승에게 먹이를 주면 악한 짐승이 이기게 된단다”
이 교훈은 사람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서 악한열매와 착한열매를 맺을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느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가면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마귀를 따라가면 죄의 열매와 나쁜열매가 맺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길 가던 사람의 지갑을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죄를 추궁해 보니까 이전에도 죄를 지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죄를 지은 것도 발각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정에 서서 보니까 공교롭게도 그 판사가 둘도 없이 친했던 고향의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판사도 초동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판사는 고민했습니다. 판사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란에 빠졌습니다. 친구에게 죄가 없다고 무죄 판결을 하면 판사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죽마지우 친구를 감옥에 집어넣자니 친구에 대한 우정에 금이 갑니다.
판사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판사는 친구에게 벌금 천만 원을 선고 했습니다. 이제 두사람의 우정은 끝이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천만원의 벌금을 선고한 후에 그 벌금 천만 원을 자기가 갚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판사는 우정도 건지고 공의도 지켰습니다. 마치 라과디아 판사가 그랬듯이 이 판사도 지혜롭게 행하여 두가지를 만족시켰습니다.
판사의 사랑과 희생은 우정도 유지하고 공의도 만족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사람은 이류 고하를 막론하고 형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판사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친구와의 우정도 지킨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희생시킴으로 우리에게 공의와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 후에 우리에게 딱 한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도 내가 사랑한 것과 같이 그런 사랑으로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열매가 따라 옵니다.
지하실을 얻어서 교회를 개척한 목사님이 어느날 아침에 쌀이 떨어졌다는 사모님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한 성도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쌀을 한 자루를 가져다가 교회에 갔다 놓았습니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 이었기에 쌀 한푸대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목사님이 화장실에 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교회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불을 켰더니 도둑이 들어와서 쌀자루를 들쳐메고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얼른 전깃불을 끄고서 도둑에게 “빨리 그 쌀자루를 가지고 나가시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도둑은 쌀자루를 들쳐메고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밖으로 사라 졌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목사님은 쌀자루를 도둑맞았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쌀자루를 메고 들어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이 보니까 그 사람은 바로 밤에 쌀을 훔쳐갔던 도둑이었습니다.
도둑이 쌀자루를 훔쳐 가지고 도망을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불을 끄고 자기에게, 빨리 쌀자루를 가지고 가라는 목사님의 배려와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만 감복해서 회개한 후에 가져간 쌀자루를 들쳐메고 교회로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 도둑은 새사람이 되었고 충성을 다한 끝에 그 교회의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천 만수동에서 목회하신 김정준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손해를 보지 않으면 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꼭 움켜쥐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으로는 이웃사랑은 불가능 합니다. 내 것을 잃고 손해보고 아낌없이 줄때에 이웃사랑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미 8군에서 근무했던 “토마스” 소령은 세 살 난 한국 장애자 어린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에게는 미국 본토에 부인 로리와, 자녀로는 매튜군과(13세), 딸 사라양,(10세) 그리고 아들 데이비드군(8세) 등 삼 남매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소령은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 장애아기인 태식이를 입양해서 데리고 갔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그가 이 장애아기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치료해 주기 위해서 중령진급도 포기하고 군생활까지 포기했을뿐 아니라 태식이의 이국생활이 외롭지 않도록 선옥양(5세)까지 입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웃사랑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희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사랑에는 대가를 바라는 어떤 조건이나 기대조차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가르쳐 주시면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 라고 말씀 하시면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도와주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최고한의 사랑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가장 잘하는 사랑이지만 한편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것도 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웃을 미워하고 함부로 이웃을 죽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돈 때문에 혹은 화가 나서 부모 자녀 이웃을 죽인 사건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요즘 한창 떠들썩한 사건이 있습니다. 재력가 송모씨를 살인교사 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형식 새정치 민주연합 서울시 의원(44) 사건이 바로 그 사건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김형식은 지난 2000년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에 지인 소개로 수천억대의 재력가인 송씨를 처음 만난 뒤에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그후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송 씨로부터 5억 여원을 빌렸고 2012년 말부터 빚 독촉을 받게 됩니다.
재력가인 송씨는 김의원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6·4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라는 압력을 넣었고 김의원은 친구인 팽씨에게 송씨를 살해하면 그에 합당한 댓가를 주겠다고 하면서 살해를 사주했습니다.
그래서 김의원의 친구인 팽 씨는 지난 3월 3일 오전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송씨 소유의 건물에서 그의 머리와 신체를 둔기로 수십 차례 때려서 죽였습니다. 현직 시의원이 부자인 송씨를 살인교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들 충격에 빠졌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이기적인 욕심과 혼자만 잘먹고 잘 살겠다는 유병언씨의 욕심이 잉태하여 그런 참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전에 중3 여학생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어머니를 때리자 화가 나서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배회를 했습니다. 아마도 이 여학생은 “이 칼로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죽여 버릴까?” 하고 홧김에 칼을 들고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벤취에 앉아 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웃으면서 헤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이 여자 아이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이렇게 불행한데 너는 왜 우리랑 달라야해? 왜 너희만 행복해야 하는거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이 여자 아이가 신나게 웃으면서 친구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여학생을 따라가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여학생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요즘은 이와같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살인과 방화와 해꽂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사회가 더욱 불안합니다.
한 해 동안에 우리나라에서 태어 나는 아기가 61만명 입니다. 그런데 낙태로 죽어 가는 아이들은 150만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건물이 무너져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이 모든일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의 단면이요 무엇보다도 돈밖에 모르는 물질주의 영향 때문에 빚어지는 사고들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죽이고 파괴하고 멸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사로잡히면 살리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한 잘 생긴 젊은 미국인 하나가 오사카에서 나카사키로 향하는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 선교사가 되려고 오랜 세월동안 일본어도 배우고 많은 훈련을 받고 이제 임지로 부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나서 구원할 영혼들을 향하여 깊은 사랑을 느끼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자기 위해서 자기의 숙소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풍랑이 심했고 비도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잠자리에 든 청년은 무엇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구명대를 메고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곧 이어 배는 침몰하고 폭풍 속에 몸이 잠겼습니다. 그는 바로 자기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는 할머니였습니다.
당시에 구명대는 일등 선실에 탄 사람들에게만 배당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구명대를 벗어서 할머니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배안에서 최초요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할머니, 나중에 구출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해 주세요! 내가 할머니 대신 죽고 내 생명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되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고 자기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으면 할머니는 영원히 살게 되고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영생을 얻게 됩니다.”
말을 마친 청년선교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에 할머니는 구출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방방곡곡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 청년 선교사가 가르쳐준 이야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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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대신 죽은 그 청년 이야기가 그예수라는 분이 내 죄를 위해서 그 청년처럼 죽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울었습니다. 그 후에 그 할머니는 죽을때까지 예수님을 전하고 청년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기를 대신해서 죽은 청년만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이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에 감복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택함받은 백성들 답게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26장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4절에 보면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서 최고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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