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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4년7월9일 수요저녁마14장13-21 내게로 가져오라

그리운시냇가 2014. 7. 9. 23:10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피하셨습니다. 가까운 친척이면서 자기에게 세례를 베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스라엘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 요한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으로 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한 마음으로 피하신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빈들에 모여든 것입니다.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압제자들에게 시달리고 생활에 쪼들리고 가난에 찌들고 무거운 세금에 눌리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 병들고 귀신들려서 지내다가 세례 요한마저 죽어 버리자 그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서글픈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당시의 백성들은 이제 예수님에게 마지막 소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이 빈들에서 저녁식사 때를 맞이합니다. 남자 장정들만 오천 명 이었으니 여자와 노인, 어린이까지 합한다면 족히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빈들에서 굶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향해서 달려 왔습니까? 사또 집의 개가 죽으면 사람들이 몰리지만, 정작 사또가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으시고 쫓겨나셨습니다(13:53-58), 게다가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요 동지인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피하셨는데 그런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들 대다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특히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주님께 모여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에 소망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께 오면 큰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은 예수님께 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해는지고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군중들을 마을로 보내서 각각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저들을 보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기적도 사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나아 온 많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원어로 보면 애끓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가슴으로부터,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허기지고 지치고 피곤하고 병든 영혼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그리고 무언가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은 사랑, 그 지극한 마음이 기적의 출발점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기적은 사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보면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기적이 일어나고, 나같은 죄인이 주님의 자녀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입니다.

 

로마서 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인도의 캘커타에서 일하던 테레사 수녀는 병이 걸려도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좀 편안히 죽을 수 있으면 어떨까?”하는 사랑의 마음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구호활동을 하고 건물을 지어서 캘커타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렁뱅이로 죽어가던 노숙자가 따뜻한 여인의 품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수 가 있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전쟁터에서 홀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료했기에 그녀를 통해서 적십자라는 위대한 구호단체가 탄생했습니다. 한 여인의 작은 사랑의 불씨가 오늘날 전 세계를 사랑과 섬김의 현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 분문에서 광야에서 있었던 기적도 주님의 사랑 때문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지기 전에 제자들은 먼저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가를 걱정 했습니다, 제자들은 저녁식사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충분히 상의를 해보았을 것입니다.

 

이 장소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밥을 지어서 이 사람들을 먹일 것인지, 아니면 요즘 우리가 하는 식으로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서 자장면을 배달시킬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모두 해산시킬 것인지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보면 군중을 먹이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대략 200 데나리온이라고 빌립이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그 돈으로도 부족하다고 고백을 합니다. 200 데나리온을 지금의 돈으로 환전하면 대략 1천만 원쯤 됩니다.

 

제자들은 많은 의논을 거친 후에 군중을 해산시키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제안을 듣고 던지신 예수님의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16절에 보면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은 너희가 먹을것을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저녁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짜낸 후에 내린 결론을 예수님이 뒤집어 엎었습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무척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저녁밥 문제를 해결할 방밥이 없는데 예수님은 너희가 저녁밥을 주라고 하셨으니 이제는 군중들을 돌려 보낼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이런 딜레마 사이에서 살아 갑니다. 이 세상의 문제를 내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능력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당위성 사이에 놓여서 갈등하게 됩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이 문제를 설교자의 딜레마로 바꿔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지 못한다는 불가능성과 더불어, 한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당위성 사이에 놓여 있다.”

 

우리도 이런 무능력과 당위성 사이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문제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모를 뿐만 아니라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그 고난과 문제들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사명이 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환자를 기적으로 고치실 수 있는 예수님이라도 남자 어른만 5천 명 이상의 군중을 무슨 수로 먹일 수 있다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한편으로는 기가 막힌다는 뜻으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적적인 사건을 희망하면서 자기들이 처한 형편을 17절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오병이어라고 합니다. 요즘 신세대들은 한문공부를 잘 안하니까 오병이어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 듯습니다. 떡 병()자에 고기 어()자를 써서 오병이어(五餠二漁)라고 합니다.

 

사실 떡 이라는 단어도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붙인 말이지만 새로 번역을 한다면 정확하게 빵 다섯 개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떡이라는 개념보다 빵이라는 개념이 맞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우리가 군중들을 마을로 보내자는 게 그렇게 허튼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이걸로 누구의 입에 풀칠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지금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을이 멀어서 빵을 사올 수도 없습니다. 사온다고 하더라도 만명을 먹이려면 1천만 원 이상의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먹어야 할 사람은 많은 데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 없는 상황은 우리의 삶에서도 자주 벌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 집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날마다 아홉 명의 식구들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양식이 부족하니까 할머니는 쌀을 솥에 넣고 콩나물을 넣어서 푹푹 끓였습니다. 그러면 멀건 콩나물죽이 됩니다. 콩나물 죽은 사실 먹는다기 보다는 마신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콩나물죽은 먹고 나면 금방 배가 고픕니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은 빈들입니다. 아무것도 없는곳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 안드레가 한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기적이 시작 됩니다. 이 아름다운 광야의 기적의 배후에는 작은 소년의 헌신과 드림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의 드림이 없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가난한 소년의 도시락을 가지고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기적에는 많은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가장 작은 것을 가지고도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제가 청년때 충남 예산의 목양교회에 봉사를 다녔습니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17년동안 여름과 겨울방학때는 아예 거기가서 살았고, 그리고 시마다 때마다 시골에 있는 목양교회에 가서 섬겼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제가 교회가 오래 되고 낡았으니 성전건축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태균목사님과 함께 성전건축 헌금을 모으기 시작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대학생 이었기에 용돈을 모아서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명지고등학교 교사로 들어간 1982년도에는 건축헌금으로 300만원을 작정하고 적금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3년동안 그 적금을 갚아 나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권사님도 목양교회 건축때 목돈을 드렸습니다. 저는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명지고등학교 선생님과 교목 목사님까지 아는 분들을 다 동원해서 건축헌금을 드리도록 협조를 구했습니다.

 

인태균목사님도 사방 팔방으로 섭외를 해서 드디어 아름다운 목양교회가 지어 졌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의 땀과 정성으로 목양교회가 지어 졌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던 인태균목사님은 지금 은퇴를 하셨고, 제자인 오철환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그 교회를 통해서 많은 주의 종과 크리스챤들이 배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지어지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교회가 게딱지만 할 때에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지만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나니까 주변 학교의 선생님들과, 동네 유지들, 그리고 많은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이 와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은 작은 헌신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이 자기 집을 열어서 바울사도를 영접 했습니다. 루디아는 우리 집에 오셔서 예배드리시고 여기 머무세요.” 하고 바울사도를 영접 했는데 그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가장 복받은 여인으로 그 이름이 남아 있게 됩니다.  

 

내 마음문을 열고 내 가정을 열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지극히 작은 자를 선대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자자손손이 복을 받고 하나님나라에서도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가서 나귀새끼를 풀었더니 주인이 나귀를 왜 푸느냐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가 쓰시겠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나귀 주인은 "그러면 얼른 가져가라"라고 하면서 자기의 나귀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나귀의 주인은 나귀새끼 한 마리를 드리고 역사에 남는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나귀새끼를 드린 사람의 섬김과 희생을 통해서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이루셨고 십자가의 대업을 완성하게 됩니다. 비나귀새끼를 드린 사람은 그것이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그 사람은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내 마음을 드리고 내 사랑을 드리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성전건축을 하는데 그까짓 내가 드린 5천원, 만원의 헌금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까짓것 드려봐야 그게 그거지...” 아닙니다. 적은 것이라도 정성과 사랑이 담긴 예물은 하나님은 들어서 크게 사용하고 위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적은 재능을 통해서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땅에 최악의 가뭄이 왔습니다. 36개월이나 시냇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곡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갑니다. 거기서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떡을 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는 과부에게 그 마지막 떡을 나에게 가져 오라고 명합니다. 내가 먼저 먹자는 것입니다. 벼룩이 간을 빼 먹는다는 말이 그럴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부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사실상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이 물 뜨러 가는 사이에 다시 불러 얘기합니다. “내가 몹시 배가 고프니 내게 떡을 좀 만들어 줄 수 있소?”

 

여인은 말합니다. “사실 우리 집은 너무 어려워서 이제 밀가루 통에 가루가 조금 남았고 기름병에 기름이 조금 남아서 마지막 떡을 나누어 먹고 아들과 나는 대책없이 죽어야 할 판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녀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마지막 남은 그것을 주의 종에게 드렸습니다.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다 끝날 때 까지 통에 가루가 끊이지 않고 병에 기름이 다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주님은 나에게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 하실때가 있습니다. 베풀것이 없는데 베풀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꼭내가 필요해서 모아 놓았는데 주님은 그것을 남에게 주라고 말씀 하실때가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였던 스펄젼 목사님이 하루는 자신이 돌보는 고아들을 위해 서 한 도시에서 3백 파운드의 금화를 모금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금화가 모아진 것이 감사해서 감사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돈을 조지 뮐러 목사에게 갖다 주어라!” 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스펄젼목사님은 자기가 돌보는 고아들에게 급하게 필요한 돈인데 하나님이 조지 뮐러 목사에게 그 돈을 갖다 주라고 말씀하실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애써서 모은 돈인데 그 돈을 몽땅 조지 뮐러 목사에게 갖다 주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목사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조지뮐러 목사님을 찾아가서 그 돈을 몽땅 건네 주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도시의 독지가가 찾아와서 스펄젼목사님에게 600파운드의 금화를 기부한 것입니다.

 

로랜 커닝햄 목사님의 벼랑끝에서의 용기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로랜목사님은 선교지를 돌아보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선교지로 갔습니다. 나이든 선교사 부부는 공항에서 로랜목사님을 태우고 집으로 출발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타이어를 교환하려면 45달러가 필요한데, 선교사 부부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로랜목사님의 주머니에는 45달러가 있었습니다. 그 돈은 거기서 배를 타고 강을따라 100키로가 떨어진 선교지를 한곳 더 방문할 때 써야할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로랜목사님에게 네가 타이어값을 주어라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로랜목사님은 결국 자기 돈 45달러를 드려서 타이어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이틀을 묵은 후에 마지막 선교지로 가려고 하는데 나이든 선교사님의 딸이 방문을 해서 타이어 사건을 알고 로랜 목사님에게 100불을 드렸습니다.

 

도저히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스펄전 목사님과 로랜 커닝햄 목사님이 줄 상황이 아닌데 준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네가 주어라라고 명령하실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할 겁니다. 줄 겁니까? 안 줄 겁니까? 베풀 겁니까? 안 베풀겁니까? 순종할 겁니까? 순종하지 않을 겁니까?

 

3년전에 저희 교회에서 허주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철순권사님께서 허주목사님 밥을 해 드리기 위해서 오셔서 동참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데 성령님께서 하철순권사님에게 감동하기를 네가 이 교회에 프로젝터를 헌물해라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흥집회가 끝난후에 하철순권사님께서 150만원 상당의 프로젝터를 헌물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철순권사님이 부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까 권사님은 생각보다 형편이 녹녹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권사님께서 헌신하시겠다고 하셔서 제가 로젝터를 선물받으려고 서울에 갔는데 허주 목사님이 나오셔서 프로젝터를 사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하철순권사님께서 허주 목사님의 크레딧카드로 프러젝터를 사고 매달 월부를 하철순권사님께서 갚으시기로 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찬송가를 찾지 않고 은혜가운데 찬송을 부르고 복음성가를 부를수 있는 것은 하철순권사님의 귀한 헌신 때문입니다.

 

개척 당시에 임환탁장로님께서 서울세광교회에서 사용하던 마이크와 앰프를 기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권옥란권사님 사위 주재용집사님이 여름 방학때 아이들을 데리고 저희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이크와 스피커소리가 웅웅 거리는 것을 보시고 앰프 시스템을 헌물 하고자 하는 감동을 주셔서 주재용집사님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저희가 처음보다 훨씬 좋은 음향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예배기구와 주방기구들이 하나같이 서울 세광교회의 장로님과 권사님들 그리고 우리교회 성도님들과 자녀분들의 헌신으로 장만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의 헌신을 반드시 기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제자들에게 왜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 해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에게 왜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까? 고민 끝에 얻은 분명한 결론은 너희가 못주면 내가 준다라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내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겠다는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을 정도로 풍성하게 주어진 음식은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것들이 없어도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다고 못 먹이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는 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를 나에게 가져오라고 하신 그 말씀 속에는 나에게 가져오면 내가 책임져 준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태복음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너희가 나에게 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해 주겠다라는 보장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모든 문제를 가져와라!내가 책임져 주리라!” “너희의 모든 질병까지도 가져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낫게 하리라!” “너희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무슨 문제든지 가져오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람 찾아가지 말고 먼저 내게로 오라고 말씀 하십니다.  

 

고장 난 가전제품은 그 제품을 만든 회사로 가져가야 잘 고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고칠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더니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가 갈라지며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로 불레셋 군대를 일천 명을 무찔러 죽였습니다(15:15-16)

 

축복의 열매도 주님께 가져올때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이지만 어린아이는 오병이어를 안드레에게 가져갔고 안드레는 예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남보다 자기의 허기진 배를 먼저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어린아이는 그것을 먼저 주님께 바쳤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희생과 감사가 포함된 예물을 기뻐 받으시고 그 예물에 축사하신 것입니다희생적인 섬김 봉헌이 있을 때,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게 됩니다우리도 주는 사역과 주님께 가져오는 사역을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가져오라면 가져오고 주라면 주면 됩니다. 주님이 더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집사 시절에 선교사님이 오셔서 간증 하시고 선교지에게 어떤 계획이 있다고 하시면서 기도 제목을 내면, 담임 목사님이 나오셔서 그 자리에서 선교헌금을 하자고 제안을 하실때마다, 이유 불문하고 가계수표를 써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오늘 생활비가 동이 나도 무조건 수십만원씩 드렸습니다.

 

저의 이런 과거를 알고있는 제 집사람은 제가 목회를 하면서 어려울 때마다 그리고 고비마다 뜻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것을 보면서 당신이 과거에 그렇게 남을 돕더니 하나님께서 당신이 과거에 베푼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와 주시나봐요라고 종종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선행과 섬김과 헌신을 다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네가 주어라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부요하신 주님이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주님께 붙잡히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중동의 아랍에미레이트에 두바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요즘 중동의 샛별로 떠오르는 두바이는 인공섬을 만들어 관광지 뿐만 아니라 은행 그리고 리조트 휴양지로 세계저인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오일달러로 인해서 두바이에 건설붐이 일어서 사막땅이 낙원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실 중동건설붐은 70-80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곳에 수 많은 노동자들을 파견해서 그들이 흘린 땀으로 수많은 오일달러를 벌어와서 한국 경제가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한국에서 많은 중장비가 동원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중장비중에 포크레인 즉 굴착기가 공사장에서 최고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굴착기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가야 만들 수 있는 복잡한 기계인데 중국이 아직도 흉내내지 못하는 산업이라고 합니다. 중동에서 사용하는 모든 굴착기의 95%가 국내에서 생산될 정도로 굴착기는 한국이 세계 최강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굴착기는 세계 1위입니다.

 

세계 빅3는 두산중공업, 현대 중공업, 볼보코리아인데 빅3 회사가 다 한국업체입니다. 이 빅3가 무려 중국 시장점유율 40%를 넘습니다. 정말 효자 중장비입니다. 그중에 1위인 두산이 작년 한해 중국에서 굴찰기로 3300억원을 벌어들였고 그리고 두산은 올해 해외에서만 올린 건설기계 매출이 131700만달러(12000억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다른 대기업들도 가장 아쉬워 하는 사업이 굴착기 사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진작에 이 사업에 뛰어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아쉬워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삼성이 제일 아쉬워 한다고 합니다. 삼성이 실패한 대표적 사업은 자동차와 건설기계입니다.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삼성자동차는 프랑스 르노사에 인수됐고,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 부문은 스웨덴의 볼보그룹에 매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볼보는 삼성 중공업을 4700억에 인수 해서 작년에 매출만 1조원을 넘겼습니다. 완전히 성공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손에 맡겨지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계속 투자하고 그 어려운 시기를 넘겼더라면 굴착기사업은 지금쯤 볼보가 아니라 삼성이 세계를 제패하여 큰 수익을 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삼성의 지도자들이 안목이 부족해서 그만 굴착기 사업을 볼보에 떠넘기고 말았습니다. 볼보는 굴착기사업을 시작하면서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가 우리를 인도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 집니다. 마귀에게 붙들리면 늘 자기 욕심에 빠져서 시험에 들고 넘어지고 병들고 죄짓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면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받은 은사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면 점점 더 은사가 넘치지만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면 은사도 사라집니다. 고린도 전서 7장 7절에 보면 "너희가 각각 받은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 7:7)” 고린도전서 129절에서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베드로로전서 410절에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전에 개봉동의 한 집사님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기도하고 안찰하면 병원에서도 어렵던 환자들이 낫곤 했습니다. 그의 집에는 점점 몸이 아픈 신자들과 안믿는 사람들까지 몰려 왔습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사례비와 예물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집사님은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찰하면서 자기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사역을 시작 했지만 그러나 차츰 담임목사님을 멀리 하게 되었고 예배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와 멀어지고 목사님과 소원한 관계가 되더니 잘나가던 그 집사님의 기도는 삼년이 못 되어 효력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기도와 안찰을 열심히 받아도 병이 안낫자 아무도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고 그 집사님은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은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 보잘것 없는것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수만 명의 군중들 사이에서 밟혀버릴 수밖에 없었던 부스러기 조각들도 모으니까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부스러기만도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와 여러분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 아름다운 기적은 주님의 감사하는 손길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본문 19절에 보면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배 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를 거두었다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축사하셨다는 말을 원어로 보면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소년의 도시락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주라고 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때 마다 항상 감사하셨던 흔적들을 우리는 찾아볼 수 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141절에 보니, 나사로가 죽어서 이미 나흘이 지났고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마르다 마리아의 슬픔을 보다 못해서 예수님은 무덤가에 찾아가십니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래서 죽었던 나사로가 베를 동인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이루는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감사가 위대한 능력을 발휘합니다다니엘서 610절에 보니까,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들이 모략을 꾸며서 앞으로 이 우리의 왕 외에 다른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을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이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와서 예루살렘 쪽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고된 대로 그는 체포되고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그의 머리 털 하나도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결국 사자 굴 에서도 그는 구원을 받고 다시 모든 영광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감사의 능력입니다.

 

욥도 하루아침에 모든 재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가족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건강까지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했습니다. 입술로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42장에 보면 욥의 노년에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셔서 풍랑을 일으키셨습니다. 배에서 던져 져서 바다에 빠졌는데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영락없이 죽은 신세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기 뱃속에서 회개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고기가 요나를 토해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명을 회복하고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모진 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두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감사가 기적을 불러 왔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지혜를 깨닳아야 합니다.

첫째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은 우리가 해야 할 의무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시는 말씀입니다.

둘째 그것을 이리로 가져오라는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주님께 가져오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부스러기를 모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부스러기 같은 인생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구원의 진리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서 은혜가 필요한 곳에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때 아낌없이 주고 모든 문제를 하님께 가져와서 해결받고 그리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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