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전에 삼성그룹의 창업자였던 고 이병철회장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보낸 질문내용이 주목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이병철회장이 질문했던 내용을 차동엽 신부가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에서 공개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암 투병 중에 죽음을 앞둔 1987년도에 한 천주교 신부에게 종교에 관한 자신의 질문 스물 네가지를 정리해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아보기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병철회장이 보낸 질문은 종교와 죽음에 관한 것들입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고 똑똑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의 질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매우 궁금해 했고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분이 천주교 신부에게 질문지를 보내기 전에 먼저 기독교에도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에 영락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박조준 목사님에게 사람을 보내서 목사님을 만나뵙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박조준목사님이 마침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대신 신학자 한 분을 보내서 만나게 해 드렸습니다. 이 신학자는 이병철회장을 만나서 질문을 받았고 그분이 궁금하게 생각한 질문들에 대해서 정성껏 답을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답장이 왔는데 안타깝게도 “믿어지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전해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게 되면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 고민하게 되고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알고싶어하고 그리고 과연 하나님이 계신가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자 애를 써 봅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세상에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됩니까?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17세기 최고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1654년 11월 23일날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그 날의 영적 체험을 자기의 저서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팡세”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난 그날은 온통 불에 휩싸인 은총의 밤 이었다”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밤에 파스칼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 주셨고,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스칼은 그날의 체험후에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자기 나름대로 명명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숨어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숨어계신 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려면, 나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출애굽기 3장6절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 말은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기존의 철학이나 지식으로 알고자하는 인식론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대신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 같은 인식론적 태도를 가져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파스칼은 이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인식론적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동안은 여느 철학자들처럼 “나는 생각한다”(cogito)라는 이성 중심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만났던 모든 믿음의 사람들처럼 “나는 믿는다”(credo)라는 신앙 중심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었고 유럽의 철학과 기독교의 은혜를 접목시킨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파스칼의 말대로 하나님은 “숨어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해 주실 때만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의 태도로 그분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사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을 만나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더 깊게 그리고 더 많이 알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세상 모든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목제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내가 떠나면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야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영생을 얻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요14:6)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우리말로 “보혜사”라고 번역했습니다. “파라”는 “곁에서돕는다”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는 “부른다”라는 뜻입니다. 합하면 “남을 돕기위해서 부름받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오신 상담자, 위로자, 변호사”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떠나셔야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육체적인 한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기에 동시에 예루살렘에나 갈릴리에 함께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신령한 영적 존재이기에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동시에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모든 진리를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라고 증거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성령님입니다.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인해서 탄생되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고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늘 원망불평하거나 아무리 가르쳐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포기 하고 맙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는데 길 옆에서 한 사람이 소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그를 불러서 “이런 경망스러운 놈! 너는 사람이면서 짐승처럼 사느냐?”라고 하면서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공자앞에 머리를 읍조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시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큰 대로에 연결된 다리위에서 한 사람이 개울쪽으로 엉덩이를 디밀고 대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공자가 그에게 불벼락을 내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를 본척만척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자들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 사람은 아까 소변을 보던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왜 그냥 지나치시나요?” 그때 공자는 말하기를 “저 인간은 야단을 쳐도 들을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도 변화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포기 하십니다. 책망도 들을만한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책망을 해도 소용없는 사람에게는 아예 책망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은 책망받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책망을 받을만한 일을 했을 때 정당한 책망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책망을 무시하고 내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포기 하십니다.
참된 신앙은 내 멋대로 신앙이 아니라 책망을 듣고 돌이키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실수 하더라도 책망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오스왈드 챔버스는 복음에 순종하는 일을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말씀하시지만 절대로 강제로 시키지는 않으십니다. 다만 내 스스로가 주님과 하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참된 신앙인으로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자기 권리를 포기할수 있어여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사랑하는 관계라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할 것입니다. 만일 행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만이 영적인 사명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말 가혹한 시련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믿었으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프레드릭스버그 대전투”라는 유명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육탄전까지 치른후에 수 많은 부상자를 중간에 남겨 놓은 채 쌍방은 후퇴하여 대치했습니다.
이때 북군 병사 하나가 물통을 들고 부상자들을 향하여 달려나갔습니다. 그러자 남군에서 사격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병사는 목숨을 걸고 남군, 북군을 가리지 않고 돌아 다니면서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목말라 하는 자들에게 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남군의 장군이 사격을 중지시켰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해서 쌍방은 한 시간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하고 서로 부상자 처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부상자를 옮기던 남군 장교가 물을 가져다준 북군 병사를 보고 물었습니다. “What is your name?” "네 이름이 무었이냐?" 그러자 그는 “My name is Christian.” "내 이름은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리스챤 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있어서 목숨을 건 이름이요 인생을 건 이름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말만하고 희생하지 않기에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 갑니다.
어제 아침에 중참을 사러 농협에 갔더니 김명심권사님이 와 계셨습니다. 제가 중참을 챙겨서 나오는데 김명심권사님이 계산을 해 주셨습니다. 아침부터 김명심권사님때문에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권사님을 보니까 복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상철성도님은 문어 10마리와 방어15마리와 조기 20마리를 가져오셨습니다. 10키로가 넘는 양이었습니다. 문어는 휴가철이라 천정부지로 값이 뛰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더운 여름날씨에 갑비싼 생선들만 골라서 한보따리를 가지고 교회로 오셨습니다. 그 사랑에 또다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날들을 돌아보아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앞으로도 말씀대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2012년 6월 23일 자 “weekly biz”에 “중국에 뼈를 묻으리라! 대륙의 마음을 얻은 이렌 웨이”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많은 기업이 중국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는 철수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런데 김성수회장이 경영하는 “이랜드 차이나”는 이례적으로 13만 제곱미터의 땅을 시중 가격보다 70% 싼 값에 분양을 받았습니다. 이랜드 차이나가 있는 상하이시는 이랜드를 향해서 “세금을 정직하게 너무 많이 내줘서 고맙다 부디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상하이시의 민항구에 계속 있어 달라”라는 부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상하이시가 “이랜드 차이나”에 1억 위안 (약 180억 원)의 세금을 환급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랜드 차이나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기적을 쏜 기업”이라고 불리웁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네 번째만 소개합니다. “술. 담배 안 하는 이랜드 방식으로 비즈니스 개척”
이랜드의 비즈니스 방식은 독특합니다. 중국에서 보편화된 술 담배나 금품 제공, 성접대, 유흥접대, 등을 거부하고 “이랜드 방식”으로 일관했습니다.
예컨대 “이랜” 입점을 위해서 백화점 실력자나 지역 유지들을 만날 때도 “이렌”은 향응이나 일체 금품을 제공하지 아니하고 사업 발전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답답한 방식을 고집했습니다. 정부 공무원들에게는 초청 강의를 자주 맡겼고 한번 만난 공무원들에게는 친필로 편지를 써서 친밀감을 보였습니다.
매출, 이익등 경영 실적은 분기별로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당한 세금을 철저하게 꼬박꼬박 다 냈습니다.
“이렌”의 관계자는 “민항구 내 13만 평방미터 규모의 토지를 분양받기 위해서 2년 6개월에 걸쳐 서 정부 당국자들을 220회 정도 끈질기게 만났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들과 면담을 할 때마다 한국 연속극 CD 같은 작은 선물을 들고 가서 그들의 마음을 얻고 또 정을 쌓으려고 애썼고 결국에는 이런 진심이 통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현지화를 핑계로 중국 방식에 물들지 않고 원칙에 입각한 ‘인내’와 ‘신뢰’로 돌파하는 “이랜드 웨이”가 적중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세상의 방법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에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도 직감적으로 복음에 반응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복을 주십니다.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체험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제 서용원인테리어 사장님께서 오셔서 간증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전기담당과장과 상의할 일이 있어서 그분에게 통화를 했는데 얼마나 친절하고 자상하게 이야기를 하는지 그분이 완전히 변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행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바꾸어 주셨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면 신비한 일들이 많아집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처음에 어부 였습니다. 그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보아라.”
베드로는 “선생님! 내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신비에 매료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말씀을 시험해 보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L.A은혜교회의 유의웅 장로님입니다. 장로님은 옷 가게를 하셨는데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은 “하나님! 우리 교회가 건축을 하는데 저는 장로입니다. 제가 건축헌금을 제일 많이 하고 싶습니다. 옷 장사가 잘 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마친 후부터 갑자기 옷이 팔리기 시작 하는데 그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매상이 10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건축헌금을 하셨습니다.
장로님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더니 감동을 받아서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65세가 넘었는데도 카자흐스탄의 가라간다에 선교사로 가셨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을 믿으면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살게 됩니다. 사람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차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삭개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세리장이 되어서 권력을 가지는 것이 인생의 성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후에 그는 참되게 사는길을 선택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리의 일을 하면서 세금을 착복하거나 더 걷은 것이 있으면 4배씩 갚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바른 삶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유명한 가수, 엘리스 프레슬리를 잘 압니다. 그는 처음에 트럭 운전수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콩클대회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다가 발탁이 되어서 유명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노래를 잘 불러서 70억불 약 8조원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수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 수 백개를 청중을 향하여 뿌리기도 했습니다. 자가용 비행기에 50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약에 중독되어 40세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번도 선한 일을 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어제 박경호사장님께서 가구를 기증해 주시기로 한 회장님을 문자로 소개해 주셨습니다. 명함을 찍어서 보내 주셨는데 국민권익위원회 부산총연합여성회장님 이셨습니다. 박경호사장님에 의하면 회장님께서 그동안 많은 좋은일을 하면서 살아오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서주신 능력과 부와 재능으로 이웃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달란트를 받고도 방황하다가 죽은 사람은 아무런 축복의 분깃이 없습니다.
아틀란타 올림픽 때 성화를 점화한 사람은 권투의 황제 무하마드 알리였습니다. 그는 주먹하나로 1초에 300만원씩 벌었습니다. 그는 권투 시합 때마다 명언을 하나씩 남겼습니다. “나비처럼 날라가서 벌처럼 쏘겠다.” “쏘련 전차처럼 들어갔다가 프랑스의 미라지기처럼 빠져 나오겠다.”
그는 자기 주먹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의 날랜 주먹 앞에서는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은퇴한 그가 파킨슨 병에 걸려서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병중에 아틀란타 올림픽 때 성화를 점화했습니다.
그가 단상에 올라가서 점화를 할 때 제대로 점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이 떨렸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가 기자 회견장에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하나님이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저에게 파킨슨 병을 주셨습니다.” 자기 주먹이 제일 강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늘 낮에 한선균목수님께서 오셔서 그동안 일하신 공사대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기초공사를 할 때 한선균목수님께서 레미콘을 열 다섯 대를 계획하고 공사를 했는데 레미콘이 3대가 더 왔습니다. 그래서 계획한것보다 돈이 좀 더 들었다고 하시길래 제가 기초공사 대금으로 200만원을 더 드렸습니다. 고생하시면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돈을 더 드리고 싶어서 그리한 것입니다.
한목수님도 그 일을 고맙게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사를 맡아서 일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조적공사가 끝난후에 중간결산을 하는데 제가 생각을 잘못해서 200만원을 추가로 더 드린 것을, 전체 공사대금에 포함해서 계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200만원을 더 드렸지만 실제적으로는 전체 공사대금에 더했기에 더 드린 것이 아니라 견적대로 공사 대금을 드린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목수님의 이야기를 듣고보니까 한목수님의 이야기가 옳다는 생각에 200만원을 더 드리기로 했습니다. 만약에 저 같으면 중간결산을 할 때 “200만원은 목사님이 덤으로 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돈까지 결재금액에 그대로 포함하면 더 주신것도 아니지 않습니까?”하고 따질법도 한데 한목수님이 워낙 인품이 훌륭해서 아무말도 안하고 계시다가 오늘에서야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시면서 설명을 하시는데 듣고 보니까 한목수님의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목수님의 제안을 받아드리고 200만원을 더 드리기로 했습니다.
제가 대화를 마치고 들어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한선균목수님은 정말 훌륭한 크리스챤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죽도록 고생하고도 200만원을 못 받게 되었는데도 한달동안 아무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일만 하다가 일이 끝날 무렵에 그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통해서 상의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인품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이런 인품입니다. 할말이 있어도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그런 인품을 가진 사람이 가장 존경스럽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이 우리의 목표이지만 때로는 내 자신의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원망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겉으로는 훌륭한척 하다가 때가되면 본성이 드러나서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이중인격자들을 보면 그들의 언행심사가 왜그렇게 역겨운지 모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조차 품어주시고 받아 주셨는데 저는 부족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면하기가 싫어 집니다.
그래서 의분이 가득해서 하나님앞에서 “하나님 이런 문제아들을 선악간에 판단해 주시고 공의로 다스려 주십시요”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으로 행하시다가 끝까지 곁길로 가면 공의로 책망하시고 꾸짖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랑보다 공의가 앞설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공의와 의분으로 행할때는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행할때는 열매가 있습니다. 모든 기적은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홍해는 모세가 믿음으로 지팡이를 들어 쳤을 때 갈라졌고, 요단강도 믿음으로 발을 디뎠을 때 갈라졌습니다. 베드로도 믿음으로 풍랑속에서 바닷물을 디뎠을 때 물 위를 걸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작은것이지만 사랑으로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을 위해서도 오셨지만 그러나 사랑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죄를 사해 주심으로 천국에 들여 보내려고 오셨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것도 이왕이면 가장 좋은 것을주고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요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생명입니다. 죄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대신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시 살다가 영원한 영생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이병철회장이 마지막에 죽기전에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다면 그는 지금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을수 없다고 부인하고 외면했기에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로 살았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어리석은 부자처럼 지옥불에서 영원한 고통중에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로 4절에 보면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라고 증거 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집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여기서 성전이라는 말은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의 집은 집 가(家)자를 붙여서 부르지만 벼슬을 하는 사람의 집에는 집 관(館)자를 붙여서 부릅니다. 그래서 “총리공관” 또는 “외무부 장관공관”이라고 호칭을 합니다.
그러나 왕이 사는 집은 “궁 또는 전”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성전이라는 말은 “거룩하신 임금이 사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은 천지의 창조주되시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속에 들어와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마귀를 들여놓고 사는 마귀의 집입니다. 귀신의 집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한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는데 아무리 돌아다녀 보아도 마땅히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이 전에 살던 그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나가서 돌아다니는 동안에 집을 깨끗하게 수리를 했습니다.
이 귀신이 수리된 집에 돌아와서 보니까 깨끗하게 수리는 했는데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빈집입니다. 그래서 이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귀신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형편이 이전보다 훨씬 나빠지고 악해 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빈 집의 재앙과 화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않고 빈집으로 그냥 두면 집이 어수선해지고 썰렁해지고 망가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초가집이라고 해도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은 비록 낡아도 온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집도 오래 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생령을 불어 넣어 주셨기에 생령 즉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시는 성령의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면 그 사람은 살았지만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사탄마귀가 주인노릇을 하기에 인생의 집이 제대로 유지될수 없습니다. 마귀는 죄를 짓게하고 파멸하고 병을주고 고통을 주는 존재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결국 온갖 벌레와 짐승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허물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흉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생기가 없으면 악령이 들어와서 거하기에 그 결과는 죽음과 심판입니다. 도둑이 언제 집에 들어옵니까? 주인이 없을 때 들어옵니다. 그러나 든든한 파수꾼이 있으면 도둑이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영생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시는 생명의 목자 이십니다. 그리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보혜사(保惠師) 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말인데 우리말에 적당한 말이 없기에 한문 세 글자를 모아서 이 말을 붙였습니다.
보존할 보(保)자, 은혜 혜(惠)자, 스승 사(師)자. 글자 그대로 한다면 “은혜로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고 또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보존시켜 주는 분”입니다.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은 법정에서 쓰는 용어인데 “내가 할 말을 대신해 주는 대변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변호사라는 말입니다. 변호사는 내 대신 변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사람이 변호사입니다.
세상 변호사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대신해 줍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대신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 곁에 항상 계셔서 나를 보호해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등학교 450명중에서 꼴등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성적도 나쁘고 가정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대학 시험은 보려고 했습니다. 세 번 재수해서 세 번 떨어졌습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열등감 투성이였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어느 날 군종병을 따라서 교회에 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공부하고 싶어요 저를 좀 도와 주세요.”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암기력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한번 읽거나 한번 들으면 그대로 암기가 되었습니다. 제대한 후에 두 달 공부하고 수능시험을 치른후에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수석합격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졸업할때까지 늘 수석만 했습니다. 대학을 다닐때에도 늘 성경을 읽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1987년 제23회 기술 고등고시의 수석합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허 법률사무소를 창업했습니다. 그가 바로 조 현석 변리사입니다.
예수님이 도와 주시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선지자는 예수님을 기묘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까맣게 잊어버렸던 일들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내 옆에 계시면서 보호해 주시고 항상 인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잊어버린것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내 곁에서 내게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할을 한 마디로 “보혜사”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나 혼자서 일을 하려고 하면 곧 힘이 빠지고 지쳐 버립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힘이 되어 주시고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면 능력이 더해집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시도록 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가 하면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즉 평안이 생기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안은 이 세상의 평안과는 다릅니다.
이 평안을 가리켜서 전인적인 평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려면 한두 번만 평안해서는 평안이 안 됩니다. 전인적인 평안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뭘 말하는가 하면은 몸이 평안해야 하고 마음이 또한 평안해야 하고 또 심령의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함께 평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찬양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되어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고 또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평안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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