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13장 34절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신다고 말씀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구약성경에 나오는 옛 계명은 더 이상 지키지 말고 새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옛 계명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아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빨을 부러뜨리면 내 이빨을 부러뜨린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리고 내 눈을 상하게 했으면 내 눈을 상하게 한 그 사람의 눈을 뽑아 버리라고 구약성경은 명령 합니다. 내가 당한대로 되갚아주는 정의와 복수의 계명이 구약성경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사랑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던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저주를 받고, 내 대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난을 당하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깨닳은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신후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위해서 장렬하게 순교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되갚기 위한 몸부림으로 순교도 불사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5절에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요한 1서 4장 7절로 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 사랑의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시고 그 사랑을 이루면서 사는 참된 크리스챤이 된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나타내면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품부해 주신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보면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몹시 쌀쌀한 겨울에 엄마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아기를 안고 재우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문을 열고 보니 허름하게 입은 노인이 구걸을 하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든 엄마는 그 노인에게 들어와서 앉으라고 하고 저녁을 준비해 주기 위해서 노인에게 잠간 아기를 안고 있으라고 하면서 아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해서 가지고 나왔더니 그 노인이 아기를 안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다급한 엄마는 준비없이 추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애타게 아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밤새도록 아기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서 물에 빠졌습니다.
엄마가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물의 요정이 나타나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살아서 아기를 꼭 찾고 싶으면 당신의 눈을 나에게 주시요! 그러면 내가 당신을 물에서 건져내 주겠소!”합니다. 엄마는 살아서 아기를 찾고 싶어서 자기의 두 눈을 요정에게 주었습니다. 소경이 된 엄마는 더듬거리면서 아기를 찾아 다니다가 그만 벼랑에서 떨어졌습니다. 떨어져서 보니까 가시덤불에 떨어졌습니다.
가시나무는 어머니에게 “당신이 꼭 살아서 아기를 만나고 싶으면 이 추운 겨울 동안 나를 꼭 껴안아주시오 나를 얼어 죽지 않게 해 주면 봄이 될 때 당신을 여기서 나가게 도와주겠소!” 엄마는 아들을 찾고 싶은 마음에 한 겨울 내내 가시나무를 안고 지냈습니다. 봄이 되자 가시나무는 어머니를 튕겨 냈습니다. 소경이 되고 온 몸에 가시나무의 상처를 입은 엄마는 아들을 애타게 부르면서 다시 아기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공동묘지로 갔는데 엄마는 거기서 허리가 꼬부라지고 얼굴은 주름살투성이인 무덤의 요정을 만납니다. 무덤의 요정은 엄마에게 “당신의 젊음을 나에게 주면 당신의 아들과 만나게 해주겠소!” 그러자 엄마는 자기가 꼬부라지고 주름살 투성이의 할머니가 될지라도 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 무덤의 요정에게 자기의 젊음을 주고 자기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결국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안데르센이 쓴 동화속의 엄마는 진정한 부모의 모델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이런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면서 삽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눈이 멀어도 좋고 가시에 찔려도 좋고 추운 겨울에 고생해도 상관없고 꼬부라지고 주름살 투성이가 되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자기는 빈털터리가 되고 빈껍데기가 되어도 그저 자식만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하는 말은 오직 한마디 입니다. “너만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사랑을 품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부간에 나누는 사랑도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다고 창세기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하면서 살게끔 만들어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전주 예수병원에서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사고를 당해서 6년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6년 동안 눈도 뜨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의식도 없이 완전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내가 남편을 아주 극진히 수발을 했습니다. 의사는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의 아내는 다섯 살 먹은 딸아이를 친정에 보내놓고, 남편 곁에서 시마다 때마다 기도하면서 지극정성을 다해서 간병을 했습니다.
아내는 힘들어도 남편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하루에도 여러번씩 남편을 돌아 눕혀가면서 간병을 했습니다. 그녀는 6년 동안 단 한번도 원망하지 않고 남이 보든지 말든지 의식 없는 남편에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뽀뽀를 하면서 “여보! 사랑해요! 이대로 라도 좋으니 살아만 주세요! 여보! 정말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사랑고백을 하면서 남편을 수발 했습니다.
그런데 6년 동안 눈도 뜨지 못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의식도 없던 그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기도하는데 “아멘” 하고 의식이 돌아와서 깨어 났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일어나서 건강을 회복 했습니다. 정말 이런 기적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6년 동안 의식이 없다가 하루 아침에 의식이 돌아왔으니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아내의 지극정성과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이 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습니까? 내 남편이나 내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거나 산소마스크를 끼고 의식없이 누워 있어도 그렇게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 합니다. 사랑은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힘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은 27년 동안 외딴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최악의 정치범인 D급 죄수로 분류되어 갇혀 있었습니다.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허락되었고, 편지도 6개월에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이듬해에는 큰 아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물론 아들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만델라가 수감된지 얼마후에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서 비참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둘째 딸은 우울증에 걸려서 시달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만델라에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소식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지 14년째 되던해에 맏딸이 찾아와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가 얼마전에 편지로 딸 아이의 이름을 정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받으셨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만델라는 눈물이 글썽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딸아이가 그 쪽지를 펼쳐 보고는 종이에 얼굴을 묻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을수가 없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딸아이의 이름은 “아즈위”(Azwie) “희망” 이었습니다.
만델라가 기약없이 감옥에 갇혀서 지내고 있었지만 그러나 만델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려 27년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서 지냈으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감옥에서 나온 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데스 몬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자 노력 했습니다. 그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그동안 인종차별을 감행하면서 흑인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잡아넣고 때리고 핍박한 백인경찰이나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자기가 저지른 범행을 털어놓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 하기만 하면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지 재판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법을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을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만델라는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위대한 대통령으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 했습니다. 만델라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일4:20)”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 갑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져서 살아 갑니다. “우리는 만나면 힘이 됩니다”라는 책에 보면 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 됩니다. 고슴도치는 약 3만 개의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아주 날카롭고 단단해서 다른 짐승의 몸을 꿰뚫을 만큼 강력합니다. 고슴도치 가시가 몸에 박히면, 곪아서 죽게 됩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들은, 자기들 끼리도 서로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고슴도치는 외로운 동물입니다. 떼로 다니지 않고, 늘 혼자 다닙니다. 늑대와 양, 코끼리, 까마귀마저, 모여서 떼로 다니지만, 고슴도치만은 독불장군입니다. 고슴도치는 온 몸이 가시로 뒤덮여 있기에 가까이 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이것이 고슴도치의 딜레마입니다. 그런데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바로 사람의 딜레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과 분노의 가시로 덮여 있기에 어떤 사람은 가까이 하기가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서 사귀다 보면 상처를 주고 찌르는 바람에 나중에는 점점 멀어 집니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여지없이 찌르는 가시가 나타나서 찌르는 바람에 상처가 깊어 집니다. 그래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이, 바로 고슴도치의 딜레마요,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시투성이의 고슴도치처럼 찌르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 중의 기적은, 고슴도치들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고슴도치도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고슴도치가 사랑을 할때는 가시를 누그러트리고, 사랑을 한다고 합니다. 사랑을 하려면 가시를 누그려 뜨려야 하듯이 사람도 사랑하면서 살려면 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상처투성이의 십자가를 짊어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배신당하시고, 무시당하시고, 버림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서 몸이 상하고 찢기셨습니다. 인간이 받을수 있는 모든 상처를 친히 당하신 예수님이기에, 예수님은 상처받은 자의 아픔을 아십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그 상처에서 거룩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피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해서 보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헨리 나우엔박사님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상처투성이의 치유자”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닳은 사람은 어떤 상처나 아픔도 치유됩니다.
아울러 내가 지옥불에 들어갈 사람이지만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나같은 죄인이 예수믿고 천국에 가게 된것이 깨닳아진 사람은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지옥으로 가고있는 이웃과 세상에서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이웃을 전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닳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살게 됩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젊은 수도사가 부임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전도 했습니다. 그 수도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전도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그 수도사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처녀 하나가 불륜으로 임신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이 누구냐 말해라!”라고 하면서 딸을 죽일듯이 윽박질렀습니다. 다급해진 딸은 그 젊은 수도사가 임신을 시켰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그 수도사를 찾아가서 “네가 하나님을 믿는 수도사라면서 어떻게 내 딸을 강간했느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수도사를 때리고 발로 차면서 무자비하게 폭행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동네 사람들도 이런놈은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같이 때리고 돌을 던져서 결국 이 수도사가 돌에맞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중에 착한 몇몇 동네 사람들이 수도사를 산에 묻으려고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추스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수도사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그 수도사는 얼마든지 변명할수 있었지만 임신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 침묵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후에 임신한 처녀는 아기를 낳아서 키우면서 예수를 믿고 스스로 수도사가 되어서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죽어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지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이유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서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천국에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난 월요일날 제가 제 집사람과 함께, 제 집사람의 외할머니가 계시는 분당의 노인 요양원을 방문 했습니다. 제 집사람의 외할머니는 올해 105세 이십니다. 찾아가기 전에 외숙모님에게 전화를 해서 외숙모님과 함께 동행 했습니다.
그런데 제 집사람이 외숙모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이제는 나이드신 외할머니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계신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제 집사람은 외할머니를 구원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로 준비를 했습니다.
제 집사람이 기도를 하는데 외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때 외할머니가 정신이 돌아와서 복음을 듣게 하여 주시고 말도 하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 나타 났습니다. 분당에 가서 외숙모님을 만나서 외숙모님과 함께 노인 요양원엘 갔는데 제 집사람의 외할머니가 침상에 누워 계신데 정말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그냥 시체처럼 누워 계셨습니다.
저도 근 십년만에 다시 뵙게 되었는데 키 작은 할머니가 뼈만 앙상한체 미이라처럼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할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후에 제 집사람은 할머니의 귀에대고 방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시작 했습니다.
“할머니 저 영순이예요! 저 아시죠?”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외할머니가 “누고? 누고?” 하면서 입을열어 말을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제 집사람이 “할머니! 저 영순이예요! 왕지에 살던 손녀딸 영순이예요!”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영순이? 니가 영순이가?” 하더니 그때부터 “영순아! 영순아!”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시는데 얼마나 서럽게 부르면서 우시는지 제 집사람이 같이 울면서 “할머니! 그동안 살아 계셔주셔서 고마워요! 기다려 주셔서 고마워요!” 하면서 울면서 할머니에게 근 한시간동안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면서 예수 믿어야 천국에 간다고 전도를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네가 영순이가? 네가 영순이가? 영순아! 영순아!” 하면서 반가와 하시고 기뻐 하시고 울면서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영순어매는 잘 있나?” 하시면서 김막순권사님의 안부도 물으셨습니다.
저는 영순어매를 부르시길래 제 집사람의 이름이 영순이니까 “영순어매” 즉 “장모님은 잘있나?”라는 소리로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장모님은 경포 어머니이기에 동네에서 "경폰어매”로 불리우고 “영순어매”는 왕지에서 김막순 권사님이 “영순어매”로 불렸기에 영순어매를 부른것은 김막순 권사님을 부른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처 외할머니께서 김막순권사님을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외할머니는 딱 두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영순아! 영순아! 하면서 제 집사람을 수십번을 부르시면서 울고, 그리고 “영순어매 잘있나?” 하시면서 김막순권사님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먼 길을 찾아가서 수고를 한 끝에 외할머니가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제 집사람이 그날 노인 요양원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면서 울면서 예수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 “할머니! 예수 믿어야 천당가요!” 하면서 하도 소리를 질러서 노인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많은 할머니들과 요양 보호사들이 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외할머니가 누워계신 바로 옆침대에 계신 어르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드렸는데 그 어르신도 울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시어머니를 수발 하시다가 시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신 외숙모님은 “할머니가 지금은 말도 못하고 아무도 못 알아보고 듣지도 못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할머니가 “영순아! 영순아!” 하시면서 우시는것을 보고 아무말도 못하셨습니다. 외숙모님도 기적을 눈앞에서 목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어제 김상철성도님이 아침에도 오시고 다시 저녁에도 오셨는데 읍에서 친구분을 모시고 함께 오셨습니다. 친구분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친구분이 김상철성도님과 초등학교 동창이신데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까 목사님 딸을 사귀고 있더랍니다. 목사님 딸을 사귀었으니 복을 받았습니다. 평생을 축복하면서 기도해 주실 목사님을 사둔으로 맞게 되었으니 복중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김병구성도님도 오시고 그리고 지난주에 오신 김인석성도님께서 오늘 다시 예배에 동참 하셨습니다. 게다가 오늘 태양횟집의 지영달성도님께서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나창희집사님과 성도님들이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드디어 지영달성도님이 오늘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가 교회에 와야만 구원받아서 천국에 갈 수 있고 예수를 믿어야만 영생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에 웃지를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시고 너무나 안타까와서 웃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내 자녀가 뜨거운 지옥불에 들어가서 고통을 당할 형편인데 어찌 웃을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지옥불로 떨어질 수 많은 사람들의 장래와 미래를 다 꿰뚫어 보시고 계셨기에 그런 많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웃을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집에 불이났는데, 그 불속에서 아이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부모가 불가운데서 고통받고 있으면 내가 뛰어 들어가서 건져 내든지 119에 신고해서 소방대원들을 불러서 사람을 구원해 내야 합니다.
소방대원이 사람을 구하러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장화신고 들어가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건져 냅니다. 김상철성도님이 지난 수요일에 사촌동생인 김추태씨를 데리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어제는 김민우성도님댁에 가서 오촌 조카인 김민우씨를 데리고 교회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도해도 김민우씨가 교회에 안오셨는데 김상철성도님이 김민우씨를 데리고 교회로 와서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강권해서 교회로 데려 와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두면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사람을 구해 내는것이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는 것보다 잘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매주 새신자가 새로 등록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내 이웃들과 가족들을 구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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