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08년11월26일 수요저녁 왕상18장20-40 선택을 잘하면!

그리운시냇가 2013. 7. 3. 23:23

 

설교를 하다보면 은혜스러운 설교본문이나 예화들은 다시 반복하게 됩니다. 교회에 처음온 새신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나 예화도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전에 한번 들었던 예화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무슨 말씀을 주시던지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어제 아침에 류금련권사님이 보건소에 갈일이 있어서 집을 나섰는데 마음에 부담이 되더랍니다. 보건소가 저 농협 앞으로 이사를 갔기에 살빡을 찾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면사무소 앞에 갔는데 마침 전효인전도사님이 차를 세우더니 어디 가시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보건소에 간다고 했더니 전효인전도사님이 권사님을 모시고 보건소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뵈옵고 진찰하고 온갖 기계로 검사하고 약을 탈때까지 수발을 해 주시고 다시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노인들 섬기는 일은 제가 제일 잘하는줄 알았는데 저보다 더 잘 섬기는 전도사님이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오셔서 충성봉사하는 것을 볼때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전효인전도사님에게 사례비 50만원을 드렸습니다. 한달에 300만원으로 사시던 전도사님이 시골 교회에서 받는 50만원 사례비로 한달을 살려면 정말 난감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류금련권사님께서 노령연금 10만원 받으시는데서 절반인 5만원을 전효인전도사님 사례비로 보태 쓰시라고 저에게 주셔서 류금련권사님께서 주신 5만원을 전효인전도사님께 드렸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시는 전효인전도사님께 하나님이 크게 복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본문 21절을 보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여기서“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느냐”라고 했는데 “이 두 사이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과 바알우상 사이에서”머뭇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아합왕은 이세벨 왕비가 시집오면서 들여온 바알우상과 아세라우상을 섬기면서 나라 전국에 대대적으로 바알신상과 아세라신상을 세워서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그 우상을 숭배하도록 종용 했습니다.

 

마치 왜정시대 때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모든 공공기관과 학교에 일본천황의 사진을 걸어놓고 강제로 절하게 하면서 신사참배를 하게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바알신을 섬겼는데 이런때에 엘리야선지자가 나타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등하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겨야 되겠는데 왕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섬기지는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멜산에 모든 백성들을 모아놓고 너희는 하나님을 선택 하던지 바알신을 선택하던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 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을 싫어 하시고 믿음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것도 싫어하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믿음생활을 하면 차라리 토하여 내친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토하여 내친다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권에서 퇴출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머뭇 머뭇 거릴때가 있습니다.“오늘은 재미있는 수요 드라마를 하는 날인데, 오늘은 월드컵 축구 경기를 하는 날인데, 수요예배를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오늘은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데 교회를 갈까 말까?”하면서 머뭇 거릴때가 있습니다. 이럴때마다 하나님이 심히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네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것과 남편과 자식과 아내와 직장과 땅과 집과 부모와 일용할 양식과 평생을 살아갈 모든것을 다 주고 심지어는 내 생명까지 바쳐서 너를 사랑하여 너를 지옥에서 건져서 영원한 천국까지 들어가게 해 주었는데 그런데 너는 나를 위해서 일주일에 한 두번, 예배드리는 그 한시간을 결단하지 못하고 그렇게 머뭇 머뭇 거리느냐?”하면서 안타까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우상의 미혹을 받았습니다. 본래 가나안땅에 살던 가나안 원주민들은 바알신이 가나안땅의 농경 사회를 축복하는 번영과 다산의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바알신이 비를 내리고, 바알신이 복을 주어야 농사도, 가축도, 재물도 번성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미신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척박한 광야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적인 욕심 없이 하나님만 믿고 순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보니까 자기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풍요와 번영과 쾌락과 축제와 음란의 신이 두 팔을 벌리고 그들을 유혹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는 날이 제일 즐거운 날입니다. 서로 모여서 먹고 마시고 취하고 음란에 빠지는 날입니다. 그게 전통 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제사가 끝나면 여 사제들이 즐비한 바알신당에 들어가서 여 사제들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여자들도 축제 기간 동안에는 공공연하게 남자들을 만나서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사회적으로 그런 행동들을 묵인 했습니다.

 

왜냐하면 축제때에 그런 성관계를 가져야 하늘에 있는 바알신과 아세라신도 사람들이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보고 흥분해서 자기들도 하늘에서 성관계를 갖고 땅에 비를 내려주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이면서 그런 성적 유희를 즐긴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땅의 토착민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전통적으로 행해온 문화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땅을 정복할때 이런 악한 음란문화가 극성을 부리는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멸절하되 심지어는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고 짐승들 까지도 모조리 진멸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정복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고 곳곳에서 많은 가나안 족속들을 살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살아남은 그들이 다시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문화를 부활시키자 순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유혹당해서 그들의 문화를 따라 행함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다 보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너무나 재미있게 삽니다. 자기들은 늘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보고 죽으나사나 하나님 말씀대로만 사는데, 가나안 사람들은 시마다 때마다 신나게 놀고 먹고 즐기면서 축제를 벌이고 축제 끝에는 너도 나도 눈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은밀하게 짝을지어 쾌락의 밤을 보내는 것을 보고는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 사람들은 저렇게 즐겁고 신나게 즐기면서 인생을 살아 가는데 우리는 늘 고리타분하게 예배당에 모여서 지루한 설교나 듣고 있고 늘 다람쥐 체바퀴 도는 생활만 하고 있으니 우리가 인생을 잘못 살아 온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부러워 하면서 동경하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점점 콩밭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얼씨구나! 신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합이 왕이되고 이세벨이 왕비가 되더니 두 사람이 모든 나라와 모든 동네에 바알신당과 아세라 신당을 세우고 “이제부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라!”라고 공포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심 가나안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왕이“너희도 가나안사람들처럼 살아라”라고 하면서 성적인 개방과 자유를 선포 했으니 온 나라가 신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타락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나마 신앙양심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고민을 했습니다.“과연 어떻게 하는것이 합당한 일인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도 가야겠고 한편 저들이 즐기는 세상도 즐기면서 살아야 되겠는데 이를 어쩌면 좋을꼬”하고 고민을 하다가“아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생활의 풍요와 즐거움과 쾌락은 바알신으로부터 받으면 되겠다!”그래서 그들은 급기야 하나님과 바알신, 두 신을 같이 섬기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삶의 현장 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바알숭배를 하면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두 마음을 품고 신앙생활을 하는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머뭇머뭇 하는 것은 박쥐같은 모습이요 위선된 삶이기에 둘중에 하나를 선택 하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믿고 믿음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을 멀리하면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는것이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 됩니다.

 

하나님을 안 믿었을 때에는 그저 열심히 일을해서 돈을 벌고 놀러가고 여행가고 마음대로 살았는데 하나님을 섬기다 보니까 주일마다 교회 때문에 얽매이는것 같고 자유도 제한되고 하지 말아야 하는것도 많고 다람쥐 체바퀴 도는것 같이 틀에 밖힌 생활이 따분하게 여겨질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의 즐거움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마음의 갈등이 심해지고 교회 가는것이 부담스럽게 되면 서서이 교회를 떠나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떤 동기로 인해서 상처를 받게되면 아예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가룟 유다도 처음에는 열심히 주님을 따르다가 어느날 믿음이 식어지고 신앙생활에 회의가 생기니까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하나님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가룟유다는 나중에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예수님을 팔아먹고 받은 돈을 제사장에게 다시 반납하고 자신은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그 귀하신 예수님을 돈 몇푼에 팔아먹고 자살을 선택한단 말입니까? 돈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긴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행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도 소개 했지만 선교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와 소설가 카뮈(Albert Camus)는 1957년 같은 해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을, 카뮈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상금으로 각각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지금돈으로 환산하면 10억쯤 되는 돈입니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과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60년 1월 4일, 고급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 병원을 지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원주민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카뮈는 “어떻게 하면 내가 평안하게 살고 즐겁게 살고 나를 영화롭게 할까”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반면에 슈바이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느냐가 관심사였습니다.

 

그후에 두 사람의 평가는 180도 달라 졌습니다. 슈바치처는 온 인류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고 까뮈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30장 2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대개 명예와 권세와 향락과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복의 길을 가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따라서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세상에 속한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 인격과 삶은 세상을 사랑한 만큼 추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내려 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서울대학교를 거쳐 미국 하바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코스타 집회에 참석했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몽골 에 가서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소개 했습니다.

 

아들 동연이가 두 살 때 함께 장난감 가게에 갔는데 아들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움켜쥐고 가게를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배워야 할 교훈은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장난감을 계산대에 내려놓는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때 이용규선교사님이 중요한 진리를 깨닳았다고 고백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유와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닳았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이용규선교사님이 또 하나의 책을 썼는데 제목이“더 내려 놓음”입니다. 미래의 성공을 내려놓고 몽골 선교사로 갔지만 몽골에 간 후에도 여전히 내 자신 안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내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것이 있구나”하고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그

 

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반드시 씨름해야 할 문제가 “자기 愛(애)와 자기 義(의) 라고 이용규선교사님은 고백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아직도 자기 사랑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방식으로 일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여전히 갈등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내려놓음”그 자체도 내 노력으로는 내려놓을 수 없다고 고백 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때 오직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는 자리에 설 때 진정한 내려놓음과 섬김이 가능하다고 그분은 강조 했습니다.

 

신명기 30장에 보면 그 선택을“오늘”하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 됩니다.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와 자손이 살기위하여 오늘 우리가 생명과 복을 택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음란과 방탕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불로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유황불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는 소돔성에서 롯의 가정을 구원해 냅니다. 그런데 유황불이 떨어지는 가운데서 롯의 가정을 구원해 낸 천사가 롯의 식구들에게 딱 한가지를 경고 합니다. 소돔성을 탈출하여 도망가는 롯의 가족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 보지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안돌아 보았는데 롯의 아내가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타는 소돔성을 뒤돌아 봅니다 롯의 아내는 자기집에 두고 온 금은보석과 패물들 그리고 아끼던 옷과 가재도구들과 아름답게 지어놓은 집 생각에 그만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 보는 순간에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로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고 맙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이 행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든 축복은 영적인 축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늘 예배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개그우먼 이성미 집사는 1980년 TBC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87년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연기상을 받았고, 88년도에는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라디오방송 진행상, 98년 제10회 한국방송 프로듀서상 출연자상도 탔습니다. 그녀는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웃음을 선물하는 개그우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어두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몰려온 상실감 때문에 2002년도에 세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7년 동안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웠는데 스트레스가 많아서 아들에게 엄청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에게 욕을 하고 돌아서는데 하나님께서“내가 네 아들을 정말 네가 욕하는 대로 만들어줄까?”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순간 그녀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듣고 기절 초풍을 했습니다. 그녀는 툭하면 아들 아이에게 “그럴려면 나가서 죽어 버려!”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자기가 욕한대로 아들이 나가서 죽어버리는 저주를 받는것을 생각할 때 자기가 큰 잘못을 행했구나 라고 깨닫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아이들에게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변하니까 아들이 완전히 달라졌고 그 아들이 지금은 신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성미집사는 오랫동안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해 온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돌아가라고 명하셔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연예인선교와, 북한선교에 온힘을 다하면서 보람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간증 했습니다.“귀신을 섬기는 무속인들은 귀신이 한밤중에도 산에 올라가라고 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귀신이 시키는 대로 순종 한다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 하시는 말씀에 어찌 지체할 수 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그동안 엉터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받지도 않는 예배를 드리고 받지도 않는 기도를 드리고 받지도 않으시는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성미집사는 이사야1장 11절로 13절을 인용 했습니다.“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즉 하나님은“너희가 드리는 예배 받기가 괴로우니까 차라리 예배를 드리러 오지 마라! 너희는 마당만 밟으러 오는 사람들이니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구나! 번제와 제사도 드리지 마라, 너희가 드리는 예물은 받지 않겠노라!”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인용하면서 현대 교회와 오늘날의 교인들에게도 하나님이 똑같이 말씀 하실거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기쁨도 없고 마음에도 없는 예배를 억지로 드리러 교회에 오고, 제물을 드려도 형편 없는 것들을 드리고, 십일조도 띠어먹고 드리고 봉사를 해도 시기질투로 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그런 수고와 헌신은 내가 받고싶지 않으니 그런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차라리 예배도 드리지 말고 그런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아예 교회 문을 닫는것이 낫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얼굴이 잘생긴 얼짱이 있고 몸매가 멋진 에쓰라인 몸짱이 있고 화장을 안해도 이쁜 쌩얼짱이 있고 마음씨가 너무 착한 마음짱이 있고 이런 저런 온갖 짱들이 난무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 하시고 가장 좋아하시는 짱은 어떤 짱입니까? 그것은 예배짱 믿음짱 기도짱 사랑짱입니다.

 

예배를 생명으로 알고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모든일을 믿음으로 하고, 그리고 기도함으로 영감을 받아 행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진정한 예수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에게는 은혜와 믿음과 성령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모하는 사람에게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부어주십니다. 그런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본문 21절을 보면“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그들이 왜 한말도 대답을 못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다 하나님과 세상사이에서 그동안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왔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결단 하라는 것입니다. 양다리 걸치지 말고, 두 마음을 품지말고, 한쪽으로 마음을 굳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결단을 촉구 했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아니하니라”한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밭을 갈수가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 했으면 죽으나 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만 좆아야 합니다. 결단하고 따를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한 어린이가 동생과 함께 기도를 받으려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이는 축구공에 눈을 맞아서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그 여파로 왼쪽 눈의 시력까지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아이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매주일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이의 눈은 점점더 악화되어서 보이질 않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해 주실거다”라고 위로하면서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큰 일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경이 되었으니 이제는 모든꿈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시각장애인 학교를 졸업한 후에 연세대학교를 거쳐서 미국 피츠버그대학으로 유학을 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로가 되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가 바로 강영우(姜永祐) 박사입니다.

 

그는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믿는 도리를 붙잡고 담대하게 나아간 결과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는 사람을 하나님이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 보면“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증거 합니다. 믿는 도리는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굳게 잡을 때 비로소 예수를 통해 오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의 “굳게 잡으라”라는 헬라원어는 “크라테오”인데 소중한 것을 손에 쥐었을 때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꽉 잡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꽉 붙잡고 굳게 설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경제적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고 더욱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다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십니다. 믿음 생활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칭찬과 격려로 신앙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신앙이 자랍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어렵고 힘든 연단을 주시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거나 직분을 받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내는 귀한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잘 극복하고 인내한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젖이 필요하지만 성인이 되면 딱딱한 음식도 먹을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하다가 힘든일이 생기면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모세도 죽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하지 않습니까?“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신명기 30장 16절 말씀 입니다.

 

여호수아도 죽기 전에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섬길것을 촉구했습니다.“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24장15절)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섬기면서 살 것인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 것인지를 결단하고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 할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시는 손길을 늘 의지 하면서 살수가 있습니다.

 

전에 최홍만 선수가 배고픈 민속 씨름판을 그만두고 욕을 먹으면서 도 격투기로 전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고 명예와 재물도 갖게 되었습니다. 결단 했기에 그런 결과가 온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선택하고 결단하면 하나님이 그에 합당한 분복을 주십니다.

 

때로는 혼자라도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을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만 섬김으로 엘리야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