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3년7월31일 수요저녁 마태복음26장3646 겟세마네가 있습니까? 2

그리운시냇가 2013. 7. 31. 23:33

 

오늘 노량에서 박인순집사님이 처음 나오셨습니다. 박인순집사님은 부산에서 믿음생활을 하시다가 노량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고봉례집사님 며느리이신 김미선성도님께서 인도해 주심으로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저희 교회에 오신 박인순집사님을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 할렐루야!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겟세마네가 있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두번째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삭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에 난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죽여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어떤 명령이라도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독자 아들 이삭을 바위위에 묶어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었습니다.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높이 들어 올렸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그래서 아브라함은 시험에 합격했고 아들 이삭은 죽기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5초만 늦었어도 이삭은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죽을때까지 누리면서 살아 갑니다.

 

전해지는 구전에 의하면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런 엄청난 경험을 한 이삭은 그 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자기가 죽을 뻔한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매달림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사는 동안에 죽을뻔한 상황에서 다시 살아난 경험이 종종 있었습니다. 내가 당연히 죽을뻔한 상황에서 살아나서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웬만한 괴로움과 아픔은 다 잊을 수 있습니다.

 

삭개오에게도 이런 구전이 전해 집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마치는 매국노였습니다.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친구도 없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은 삭개오는 “나도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인생이 너무나 외롭고 괴로웠기에 사랑많고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의 심경을 고백하고 싶었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고민과 스트레스를 고백할 때 그 이야기를 들어 줄만한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혼자서 삭히려고 고민하면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기가 가진 문제를 상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길가로 나갔는데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수많은 군중들 사이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생각다 못해서 길가에 있는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적어도 당시에 이스라엘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여리고의 세무서장이 뽕나무 위로 올라 간다는 것은 체면상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삭개오는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가 그렇게 예수님 을 만나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뽕나무위에 올라가자 그 아래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시고 삭개오를 주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 밑으로 오셔서 평생에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서 하루를 유하겠노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개하고 새롭게 살기로 결단한 삭개오에게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비록 네가 지금까지는 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왔고, 동족을 수탈하면서 살아 왔고, 죄가운데 살아 왔기에 사람들은 너를 매국노라 부르면서 사람취급도 하지않고, 하나님도 지금까지 너를 외면 했지만, 그러나 네가 나를 보기를 원해서 뽕나무위로 올라갔고, 나를 영접했고, 내 앞에서 회개 했기에, 이제 너는 누가 뭐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노라”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씀 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예수님이 너는 이제부터 죄가 없다 라고 선포 하시면 무슨죄를 지었던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그 밤은 삭개오의 인생이 바뀌는 구원의 밤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만나기를 사모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실 때 마지막으로 거쳐가신 여리고 도시에는 삭개오 외에도 수 만명이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마지막 가는길에 여리고에서 구원받고 복을 받은 사람은 단 두명 뿐입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와 삭개오 뿐입니다.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온 힘을 다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예수님을 불렀기에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되었고 구원도 받았습니다.

 

삭개오도 비록 죄가 많고 허물이 많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 했기에 그도 예수님을 만나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나 가실 때 주님을 구경만 하면서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도 구원받지 못하고 특별한 은혜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시자, 자기에게 세리장의 임명장을 수여해준 로마총독 빌라도를 찾아가서 임명장을 도로 반납 하고 공직을 그만두고 오직 주님만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로 삭개오는 인생에 자기가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뽕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뽕나무를 붙들고 기도를 했는데 그렇게 기도하던 삭개오가 주님의 부름을 받고 욥바지방의 감독이되어서 헌신 했다고 전해 집니다. 

 

지난주 주일날에도 말씀 드렸지만 여러분에게도 나만의 겟세마네가 있습니까? 누구든지 문제가 생기면 찾아가고 싶은 겟세마네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괴로울때 우리의 겟세마네는 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곳은 예배당도 될 수 있고 골방도 될 수 있고 동산이나 바닷가도 될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저의 겟세마네는 공동묘지 였습니다. 미국에는 기도원이 많지 않습니다. 큰 도시 근교에는 있지만 그 외에는 기도원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기도처로 공동묘지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미국의 공동묘지는 세미터리라고 하는데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묘지는 평안하고 아름다운 장소에 조성해야 한다는 풍습 때문에 미국의 공동묘지는 그 도시에서 가장 좋은 장소에 조성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공동묘지는 그 어느 곳보다 기도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더불어서 공동묘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주검이 있기에 인생을 돌아 보기에도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목회하는 동안에 저의 겟세마네는 공동묘지 였습니다. 마음이 울적 하거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공동묘지로 달려가서 거기서 혼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위로와 은혜를 통해서 다시 새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습관적으로 찾아가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힘입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습관적으로 찾아가서 기도한 감람산에는 감람나무가 많습니다. 감람나무열매를 짜면 기름이 나오는데 기름짜는 틀이 많은곳이 겟세마네입니다. “겟세마네”라는 뜻은 “쥐어 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감람열매를 틀에 집어넣고 쥐어 짜서 감람유를 만드는 곳이 겟세마네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열매를 쥐어 짜듯이 하나님께 간절히 쥐어짜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쥐어짜는 기도를 드렸던지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정도로 기도를 하셨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힘을얻고 문제도 해결되기 때문에 주님도 사필규정으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됩니다.

 

사무엘상 9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소개 됩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어느날 나귀를 잃어 버렸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승용차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나귀가 승용차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잃어 버렸으니 큰 재산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나귀를 찾아 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사울은 사환 한 명을 데리고 며칠동안 고생하면서 나귀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사환에게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삼상 9;5)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사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삼상 9;6)

 

몸종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이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들은 사울은 그 말을 듣고 즉시로 복받을 만한 반응을 보입니다. 사울은 사환에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는 싶은데 드릴 예물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사환은 “마침 제 주머니에 돈이 조금 있으니 그것을 예물로 드립시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사울이 복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찾아 가세요 라는 제안을 받아드린 것이고 둘째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환이 옆에 있었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이 사환은 비록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집안에서 물긷고 장작패고 심부름하고 짐승들을 돌보는 별볼일 없는 몸종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사환은 문제가 생겼을때 하나님께로 가면 문제를 해결받을수 있다는 확신에 찬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이 사환 때문에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고 결국은 나귀도 찾게 됩니다.

 

사울이 사환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찾아 갔더니 그날 사무엘이 사울을 보자마자 “하나님이 당신을 이나라의 왕으로 삼을것을 나에게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라고 하면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를 부어 장차 왕이 될 것을 선포했고, 그리고 나귀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때 믿음좋은 사환의 권면을 받아 드리고 하나님을 찾아 감으로서 문제를 해결받고 엄청난 축복까지 얻게 됩니다.

 

만약에 사울이 별볼일 없는 몸종의 말을 무시하면서 “야 그까짓 하나님의 사람이 뭘 안단 말이냐? 차라리 내 주먹을 믿어라” 하고 무시해 버렸으면 사울은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종의 말이라도 신중하게 듣고 그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면 문제를 풀수 있다는 말을 아멘으로 받아 드렸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적지만 몸종이 제공한 귀한 예물을 하나님께 봉헌했고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시키는 대로 순종 했기에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문제라도 거의 다 해결할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한번 결정하고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사형수라도 대통령이 특별 사면하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형수는 대통령이 사면하여 살려 줄 수 있지만 불치병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울어도 못 하고 힘써도 못 하는 문제가 생기면 오직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1960년도에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큰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마오마오 지역에 살던 수 많은 백인들이 살해되고 시체가 토막나는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 졌습니다. 폭동이 일어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에 침입해서 각종 천연자원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착취해 왔기에 분노한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느날 들고 일어나서 백인들을 죽이고 살인한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아프리카에 살던 수 많은 백인들이 살해를 당하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프리카 케냐에서 10년간 선교사로 일하던 미국 선교사 하긴스 부부도 “폭동이 일어났으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 오시요”라는 선교부의 전갈을 받고서 폭동을 피해 급히 귀국하려고 선교하던 쟝글에서 나이로비 공항쪽으로 차를타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 부부가 탄 차가 나이로비 외곽 17마일 지점에서, 바로 폭동이 일어난 마오마오 지역 근처에서, 그만 밤길에 차가 고장이 나서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차 속에서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폭도들이 그들을 발견하면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 부부는 심히 두렵고 불안 했지만 그러나 이내 성경을 꺼내서 시편 4장 8절 말씀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그 성경구절을 찾아서 읽은 그들은 차 안에서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한 후에 차에 앉은채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날이 밝자마자 선교사는 본넷을 열어서 고장난 차를 수리한 후에 무사히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까지 안전하게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행기를 타기 바로 직전에 폭동이 일어난 마오마오지역의 원주민 교회를 담임하는 케냐인 흑인목사가 부랴 부랴 공항으로 달려와서는 그 선교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원주민 흑인 목사님은 하긴스 선교사의 전도로 구원을 받았고 또 유학까지 시켜주어서 목사가 된 후에 다시 케냐로 돌아와서 하긴스 선교사 부부를 도와서 일하던 목사입니다.

 

그 케냐 원주민 목사님은 선교사 부부를 부모처럼 섬기면서 충성을 다했고 자기가 새롭게 원주민 교회를 개척 했을 때에도 이 선교사 부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왔기에 하긴스 선교사부부가 미국으로 귀국 한다는 말을 듣고서 인사차 공항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주민 목사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하긴스 선교사의 차가 고장났던 그 밤에, 원주민 폭도 세 사람이 밤에 자기 동네로 차가 지나가는것을 보고 무슨찬가 하고 유심히 보니까 백인 부부 두 사람이 타고 지나 가길래 “당장 쫓아가서 죽이자” 하고는 차를타고 쫓아 갔는데 그 차가 숲속에 서는것을 보고서 폭도들도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달빛 아래에서 사람들이 보이는데 백인 열 여섯 사람이 그 차를 빙 둘러서서 에워싸고 총을 들고 지키고 서 있는 것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차에 탄 백인 부부를 공격하는 일을 포기하고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하긴스 선교사 부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게 무슨 영문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에 자기들이 타고있던 차 주위에는 자기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긴스 선교사 부부가 미국에 돌아와서 절친한 친구인 클레이 브랜트라는 친구를 만나서 또 한번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친구는 하긴스 선교사 부부에게 지난 3월 23일날 무슨 일이 없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 브랜트라는 친구가 그날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값자기 하나님께서 “케냐에 나가있는 네 친구 하긴스선교사 부부를 위해서 기도해라” 라는 성령님의 감동이 있어서 그 즉시로 기도하고 있던 교인들에게 기도 요청을 했는데 그날 교회에서 기도하던 성도들이 열 여섯명인데 열 여섯명이 하긴스 선교사부부를 위해서 밤새도록 합심기도와 더불어 릴레이 기도를 하면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하긴스 선교사 부부는 너무나 놀랬습니다. 그래서 그날 벌어진 사건의 자초지종을 친구에게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랬구나! 그날밤에 차가 고장났을때 하나님은 너와 더불어 함께 기도한 그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열 여섯명의 수호천사를 보내셔서 우리를 지켜 주셨구나”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를 지켜 주셨구나” 하면서 서로 얼싸않고 감격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서 밤새도록 기도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구원 하신것처럼 그날도 선교사 친구와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한가지만 더 간증하겠습니다. 서울 상계동에 한 감리교회가 있었는데 성전건축을 위해서 특별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도들뿐 아니라 교회학교 아이들까지 나와서 특별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특새에 나온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졸았습니다.

 

그러자 학교측에서 교회에 거세게 항의를 했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 열댓명이 하나같이 학교에 와서 졸고 있으니 시정 조치해 달라는 그런 항의 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특새에 계속 참석 했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새벽기도를 하고 나왔는데 교회 앞 길에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겨울에 아침 일찍 산책을 나왔다가 고혈압 때문에 쓰러진 것입니다. 그 아이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나중에 그 할머니의 아들이 학교에 전화를 해서 교장 선생님에게 자기 어머니를 병원에 바래다준 그 아이를 좀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교실마다 돌아 다니면서 “새벽에 할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에 모셔다 드린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서 “접니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며칠후에 그 할머니의 아들이 학교를 찾아와서 그 아이를 만나서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그 새벽에 할머니를 구할 수가 있었냐?” “예!, 제가 새벽기도하고 나오다가 할머니가 쓰러지신 것을 보고 병원에 모셔다 드렸어요” “아니?, 너 같은 초등학생도 새벽기도를 다니냐?” “아니예요!, 요즘 특별 새벽기도 기간이라 나간 거예요” “그래? 특별 새벽기도? 너도 무슨 특별한 소원이 있는거야? 내가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마 네 소원이 뭐냐?”

 

“아저씨 정말이세요? 지금 저희교회가 교회건축 때문에 특별 새벽기도를 하는데 그러면 예배당을 하나 지어주세요!” 아니 예배당을 지어 달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이 할머니의 아들이 흔쾌히 “그래 알았다 내가 너의 청을 들어주마” 하더니 갔습니다. 얼마후에 그 아저씨가 비서를 보내서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났고 그 교회를 지어 주기로 약속 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할머니의 아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유력한 건설회사 사장님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기도가 그 교회를 새로 건축할 수 있게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서울 상계 제일감리교회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산도 옮기고 홍해도 가르고 죽은자도 살리고 암병도 고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답답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때에 참기만 하면 병이 되고 암이 되고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렇다고 속상한다고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실수하기 쉽고 경박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중에 세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고 일곱명이 괴한에게 저격을 당해서 죽을뻔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쏜 저격범들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 할 친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살한 사람들의 공통점도 대부분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사정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는 사람은 엉뚱한 사고를 저지르게 됩니다. 외톨박이로 외롭게 사는 사람이 남을 죽이거나 자기를 죽이는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마음속에 품고 있지도 말고, 세상적으로 먹고 마시면서 발산하지도 말고, 오직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시원하게 털어 놓으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제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면 응답이 됩니까? 기도는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솔직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사오니”(38) 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너무 미사여구를 넣어서 거룩한척 은혜로운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기도가 진실된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자기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가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39) 라고 솔직하게 기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위선적입니다. 기도중에 자기를 드러내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이중적인 저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하셨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 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 곳은 엉망진창입니다! 이 곳을 하나님의 은혜로 정화시켜 주세요!”

 

때때로 지쳐서 기도하기가 힘들고 어려울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 것으로 인하여 날 수가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항해합니다. 기차는 바퀴와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질주합니다.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서 날아 갑니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추가 너무 무거울것 같아서 시계추를 떼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시계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몸이 피곤하고 무거워도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때문에 우리도 앞으로 나아가고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나의 욕심과 나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응답이 빠릅니다. 예수님도 사형당하는것을 싫어 하셨습니다. 33세에 그런 고통을 당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잔을 마시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 결론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미국 뉴욕 실로암 안과 병원의 복도에 붙어 있는 기도문을 소개 합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하여 강한 힘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고 중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서 부요함을 구했더니 어려운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을 배우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칭찬을 듣고자 성공을 구하였더니 교만해 지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구한 것들이 하나도 응답되지 않은것 같았지만 알고보니 저의 소원 모두를 다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세 기도하신 시간은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때 부터 유월절을 지켜 왔습니다. “하가다”라는 유월절 예식서에 보면 보통 4시간 정도 걸려야 이 예식을 다 마칠 수가 있습니다. 해가 질 때부터 밤 늦게까지 예식이 진행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예식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에 잔칫상만 즐기신것이 아니라 세숫대야에 물을 떠다가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먹고 놀기만 했는데도 피곤해서 곯아 떨어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시간에도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잘 때에도 주님은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결사적으로 쥐어 짜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눅 22;44)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은 간이 저릴 정도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피처럼 변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게 중노동을 한들 몸에서 피가 나오겠습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는 노동 그 이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사적입니다.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보통 기도는 무릎을 꿇고 합니다. 때로는 두 손을 높이들고 부르짖어 기도 합니다. 그러나 얼굴을 땅에 파묻고 기도했다는 말은 성경에서 이 곳 밖에 없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에 대해서 어떤 주석가는 이렇게 주석을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육신의 물과 피를 다 흘리셨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때는 영혼의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그정도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결사적인 기도였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기도를 세 번 반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 번 반복해서 자는 동안에 예수님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기도 하셨습니다.

 

기도는 반복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해야 합니다.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승리의 자신감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반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게 해 달라고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고민하셨고 심히 슬퍼하셨지만 그러나 기도하고 난 후에는 다시 힘을 얻어서 죽으러 가시는 길을 당당하게 걸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당당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기도후에 주님은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슬픔도 없어졌습니다. 번민과 망설임도 떠났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도망가실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었습니다. 12 영이나 되는 천사를 동원시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정면으로 돌파 하셨습니다. 담대하게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이런 담대함은 기도 후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신학자 슐라이마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없는 행동도 문제이지만, 행동없는 기도도 문제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의 기도는 인류를 구원한 지고지순한 기도였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도 기도의 골방이나 겟세마네같은 기도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처에서 주님처럼 우리는 주님처럼 솔직하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기도하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이 도와 주실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처럼 기도할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기도응답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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