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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 9월1일 주일낮 히11장6절 상을 받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운시냇가 2013. 9. 1. 18:37

오늘 귀한 분들이 저희 남해 세광교회에 오셨습니다. 다름아닌 저의 명지고등학교 동창들입니다. 지금부터 2년 전인 2011년 9월에 명지고 동창 친구들이 저희 교회를 방문 했었습니다.

 

그 때 온  친구들은 오동윤교수님, 김용숙웃음치료사님, 서대문구 이성헌국회의원 보좌관및 서대문구 여성부장인 김춘숙부장님, 강남 미용아카데미 원장이신 김은수원장님, 그리고 이명미 성가사님까지 다섯분이 다녀 가셨습니다.

 

그 당시에 다섯 친구들이 와서 해물파전도 부쳐주고 머리 컷트도 해주고 선물도 가져와서 나누어 주고 웃음치료까지 해 주셨습니다.

 

제가 남해에서 목회를 하는 10년 동안에 고등학교 동창친구들이 방문해서, 우리 성도님들을 섬겨준 그 일이 저에게는 참 가슴 뿌듯한 추억 이었기에 늘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저희 교회를 방문해 준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친구들이 돌아간 후에 우리 성도님들에게 친구들에 대한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래서 다섯 친구들의 이름을 크게 프린트를 해서 저 뒤에 교회 출입문 에다가도 붙여놓고, 여기 강댓상 앞에도 붙여놓고 늘 친구들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해 왔습니다.

 

저 뒤의 교회 출입문에 붙여 놓은것은 2년이 지나는 동안에 비바람에 떨어져 나갔지만 이곳에 붙여놓은 다섯분의 이름은 지금도 제가 늘 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이곳에 와서 섬겨준 동창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금번에 또 다시 네분의 친구들이 와서 다시 한번 저희 남해세광교회를 섬겨 주시기 위해서 천리 먼길을 달려와 준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이번에는 김춘숙친구와 김은수친구 그리고 이명미친구와 미국에서 오신 김애경친구 권사님까지 네분이 오셨습니다.

 

김애경 친구 권사님은 오늘 오후 세시에 시 고모부님께서 장로 장립을 받으시는 날이기에 아침 9시 버스로 먼저 상경하였습니다.

 

동창 친구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의 점심식사를 섬겨 주시기 위해서 서울에서 장을 봐 오셨고 어제 오후에 네분이 교회 식당에 오셔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떡도 준비해 주시고 이명미친구와 김은수친구는 아름다운 찬양도 하나님께 올려 주시고 아울러 김은수친구는 설교전에 은혜스러운 간증까지 해 주셔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김은수원장님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도 김은수친구의 어머니가 총신대학을 졸업한 선배 전도사님이신것과, 4대째 믿음의 계보를 이어 내려오는 신앙 가문인것과, 심지어 김은수친구가 광나루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신학공부를 하다가 일본에 가서 16년을 살고 돌아온 인생경력을 가진것을 간증을 듣고 처음 알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귀한 간증으로 저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끼쳐주신 김은수친구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아침에 먼저 상경한 김애경권사님의 남편 장로님께서 남해 세광교회에 헌금하라고 100만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귀한 예물을 보내주신 김기남장로님께 이자리를 빌어서 감사 드립니다.

 

오늘은 “상 받는 성도들이 됩시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0년도에 열렸던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김연아 선수의 선전과 함께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성적 세계 5위라는 놀라운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만 따도 그 선수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오늘날 우리나라 선수들은 정말 대단한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굴만 잘 생겨서 탤런트가 되거나, 노래만 잘해서 엄청난 돈과 인기를 거머쥐는 연예인들보다는, 피눈물 나는 연습과 각고의 노력 끝에 주어지는 스포츠 선수들의 영광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게다가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따는 메달은,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받는 상이라는 점에서 그 영광이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 믿음과 행위에 따라서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상을 받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서 영광의 하나님 앞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앞에서, 그리고 수많은 천군천사들과, 천천만만 성도들 앞에서 상을 받게 된다면 그것처럼 영광스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에 신앙생활을 한다면 반드시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식 팜플렛을 보면 두 종류의 명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졸업자 명단이고 하나는 수상자 명단입니다. 학교에 다닐때 상을 받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상 하면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저도 상을 종종 받았습니다. 특별히 명지 고등학교에 다닐때에는 영광스러운 대상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주최한 전국 중, 고등학교 미술실기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최고상이 제일 높은 상이었는데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서양화가가 된 김경열친구는 소묘 즉 뎃생부분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저는 동양화 부분에서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짜릿 합니다. 대학에서 받아온 상을 다시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한번 더 받았습니다. 그때 높은 단상에 올라가서 양근석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장과 상패를 받고 전교생의 박수를 받았는데 그때의 기쁨은 정말 하늘을 나는것 같았습니다.

 

상을 받고 내려와서 우리반 줄에 가서 서 있는데 담임선생님이신 이종덕선생님이 저에게 오셔서 제 상장과 상패를 들여다 보시더니 “축하한다! 수고했다!” 라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그 칭찬을 듣는순간, 저는 그동안 3년동안 방과후에 밤 늦게까지 미술실에서, 외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고생했던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하나님 앞에 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4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42절을 다시 보면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자”란 어린 아이나 노약자 또는 세상에서 소외받는 연약한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은, “상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 노약자 소외받는 연약한 자들을 섬긴사람들은 반드시 상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상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고린도전서 3장 8절에도 보면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내가 차량봉사를 했던지 청소를 했던지 안내위원을 했던지 헌금위원을 했던지 식사를 대접 했던지 냉수 한잔을 대접해도 천국에서 상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3-24)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요한에게 말씀 하시기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울러 주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세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5)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바울사도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고백 했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와같이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상주시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하면서 다르게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상에 대해서 부정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면 그 자체가 상이고 상급이지, 또 무슨 별다른 상이 있다는 말인가?” 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목사들이 신자들의 경쟁심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조장한 인본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상”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급론자”라고 하면서, 상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수준이 저급한 사람들이라고 매도 합니다. 한 마디로 상 받기 위한 신앙생활은 고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매우 그럴듯 합니다.

 

게다가 하늘나라에 가면 모두가 공평해야지,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는 사람이 있고 상을 못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무슨 하늘나라냐고 하면서 상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하늘나라는 공평한 하늘나라는 못된다고 주장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것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고상한척 하는 망령된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안식교 같은 이단에서는 지옥이 없다고 주장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옥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형벌하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영혼은 죽는 그 순간, 존재 자체가 영원히 소멸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마치 하나님보다 더 사랑이 많은 척 하면서 성경을 왜곡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상을 부인하는 자들은 매우 잘못된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전도서12:14) 그리고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말씀 하셨습니다.(히9:27)

 

하나님의 심판은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에 달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는 정죄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은 정죄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아울러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상급 심판도 겸하여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보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구원 받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자기가 행한대로 행위에 따라 상이 주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서 행한 모든 크고 작은 헌신에 대한 상급을 되돌려 받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행한 모든 행적을 확인해서 거기에 상응하는 상급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땅에서 상급받을 일들을 열심히 행하여 상을 쌓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형편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은 거룩한 야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나라의 상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을 사모하는 성도일수록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가 됩니다. 하늘나라의 상을 사모할수록 우리의 삶은 성결해 지고 우리의 인격은 고귀해 집니다.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상 받기는 커녕 구원조차 받지못할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자는 아직 중생하지 못하고 진실한 회개와 참회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만약에 회개도 중생도 성령체험도 못하고 지내다가 죽으면 결국 돌밭에 뿌려진 씨나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처럼 결실치 못하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두 번째는 구원은 받지만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것 같이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자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기에 구원은 받지만,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거나 봉사한 일이 거의 없기에 하늘나라에서 아무런 상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가운데서 구원을 받은것과 같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좀 우스운 얘기 같지만, 우리가 천국에 가보면 다른 사람들은 다 아름다운 예복을 입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한쪽에 알몸에 팬티 하나만 걸치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실 때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과 같이 못박힌 강도입니다.

 

이 강도는 죽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강도는 죽기 직전에 예수님에게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라고 간청을 했는데 예수님이 그 강도의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강도는 임종 바로 직전에 팬티 하나만 걸치고 그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위해서 아무런 헌신과 봉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기는 받아서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 갔지만 그러나 불난집에서 겨우 빤스만 입고 구원받은 것처럼 그렇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구원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상급까지 받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이 유명해 지고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한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땅에서 아무리 대통령에 재벌에 잘나가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지도 않고 아무런 헌신도 하지않고 산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8.15 해방 이후에 미국 유학 1호 학생이 전영창선생입니다. 그가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데 한국에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신문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논문 쓰는 것을 중단하고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교수님, 저의 조국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났는데 박사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고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아니 여보게, 잠시 후면 학위가 나올텐데 조금만 참지 그러나!” “교수님, 지금 박사 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조국으로 돌아가렵니다.”

 

그래서 그는 귀국해서 자원입대를 요청했지만 나이가 많아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도 초등학교에 천막을 치고 무료 구호소를 세운후에 전쟁터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고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음식과 약품을 얻어다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자기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 교수님들과 아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원조를 받아서 고아원을 운영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후에 독실한 신앙과 사랑으로 일해 온 그를 알아본 숭실대학교에서 그를 숭실대 부총장으로 청빙하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영창선생은 하나님께 기도를 한 후에 “내가 숭실대학교 부총장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평생 고무신을 신고 골덴 바지를 입고 살면서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라고 고백하고는 확실한 지위와 평탄한 미래가 보장되어있는 부총장 자리를 버리고 당시에 폐교 직전에 있었던 경남 거창고등학교를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거창고등학교는 호주 선교사가 설립했고 주남선목사님의 장남인 주경중장로님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재정난으로 인해서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해서 인수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영창선생은 성경책과 담요 한 장을 가지고 거창읍에서 40리나 떨어진 산중턱의 동굴속에 들어가서 일주일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자 전영창선생은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거창고등학교를 인수해도 좋다는 응답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금식기도가 끝난후에 서울로 올라가서 일간신문에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라는 광고를 내겠습니다” 라고 땡깡을 부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날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아무 염려 말고 내려가라!”라는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는데 정말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산에서 돌아와 보니까 미국에서 “조우복”이라는 분으로부터 2050달러라는 거금이 부쳐져 왔습니다. 그 돈은 당시에 거창고등학교가 떠앉고 있던 빚과 똑같은 금액의 돈 이었습니다. 당시에 2천만원이 있어야 학교를 인수 할 수 있는데 정확하게 그 당시 돈으로 환산해서 2천만원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전영창선생은 1956년도에 거창고등학교를 인수해서 교장으로 취임을 했습니다.

 

교장 취임식에 참석한 교사는 3명이었고 학생은 8명 이었습니다. 전영창교장은 부임 하자마자 “나는 월급을 절반만 받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교사들도 동조했고 그때부터 흩어진 학생들을 모아서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후에 거창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전영창선생은 오직예수 오직믿음 오직말씀에 입각하여 믿음좋고 정직한 제자들을 양성해 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정권때 유신에 반대하다가 교장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다가 대구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복직했습니다. 전영창선생은 상상을 초월한 계명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 계명이 바로 “취업10계명”입니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열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전영창선생이 가르친 “거창고 취업 10계명”은 정말 이시대에 별처럼 빛나는 계명이었고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이 담겨있는 계명이었습니다.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자 하나님께서 거창고등학교에 복을 주시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거창고등학교는 최고의 명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2년도에도 114명의 졸업생중에 113명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서울대 연대 고대에만 28명이 진학했고 수도권에만 77명이 진학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거창고등학교가 워낙 전인교육과 신앙교육을 잘 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자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도 자기 아들을 거창고등학교에 보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 모든 열매는 전영창선생의 기도와 헌신적인 노력의 산물입니다. 한사람이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자 60배 100배의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6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전영창선생은 숭실대학교 부총장으로 부임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얻어서 원하는 대로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에서 썩어질 불의의 재물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실 예수님의 상급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의의 재물은 수입 면에서의 불의한 재물을 말씀하신것이 아닙니다. 지출 면에서의 불의한 재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돈을 벌었거나 돈이 생겼을때 그 돈이 불의하게 없어졌다면 그 재물이 불의의 재물입니다. 먹고 마시고 치장하고 쾌락을 즐기고 술마시는 데 재물을 썼다면 그 재물이 불의의 재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전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돕고 소외된 노인들을 섬기는 데에 재물을 썼다면 그 재물은 복받을 재물이요 상급으로 다시 돌려받을 재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돌아볼때 내가 사용한 많은 재물들이 불의의 재물로 사용 되었다면 이제라도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불의하게 없어질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친구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재물을 사용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친구삼아 주시고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시고 하늘나라에서 상까지 받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기도 만이라도 무당처럼 열심히 기도하면 놀라운 기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돈이 없어서 이웃을 사랑할 재력이 없다면 기도라도 무당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무당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무당은 한번 기도를 시작했다 하면 밤새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를 합니다. 무당은 온갖 신들을 다 부릅니다. 최영장군도 불렀다가 서낭당 귀신도 불렀다가 몽당귀신도 불렀다가 작두에 까지 올라타서 목숨을 걸고 기도합니다.

 

나중에는 헤까닥 가서 미친사람처럼 방울을 흔들면서 정신 나간사람처럼 밤새도록 뛰면서 꽹과리를 치면서 징을 치면서 고개를 흔들면서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하물며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렇게 무당처럼 열심히 기도한다면 기적이 일어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예배 시간에 예배가 끝나면 2-30분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한 20분이 지나면 기도를 끝내고 졸고 있거나 남이 하는 기도소리를 듣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야 무당도 밤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기도 하는데 너희는 뭐하냐?" 하고 바라보실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이제부터 무당처럼 열심히 기도 합니다. 전영창선생님 처럼 “하나님!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내가 일간신문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라는 광고까지 낼 각오로 열심히 기도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4:7~8) 라고 권면 했습니다.

 

성령의 반대가 망령입니다. 망령이 들면 망령된 행동을 하게 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만 하게 됩니다. 예수믿고 망령들면 허탄한 이야기만 합니다.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다 보냅니다. 입만열면 남 욕하고 싸우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됩니다.

 

망령의 반대는 성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운동하면 몸의 건강에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생활과 경건생활에 정진하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저 천국에서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플라톤이 한때 주변 사람들의 오해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찾아 와서 해명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그는 말하기를 “나의 올바른 행위만이 저들의 비난을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다” 라고 고백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에 “죽도록 충성하라”(고전4:2)라고 권면 했습니다.

 

한 동네에서 두 사람이 구멍가게를 열었습니다. 새벽에 문을 열고 저녁 늦게 가게문을 닫는 것이 똑 같았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후에 두 가게는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한 집은 3년 만에 문을 닫았고, 한 집은 큰 수퍼마켓으로 발전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3년만에 문을 닫은 사람은 40대 후반에 명퇴를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권유로 퇴직금을 털어서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이 구멍가게 주인은 회사 임원 시절의 향수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침이면 승용차와 기사가 대문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모셔 가던 시절만 생각 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수위들이 차 문을 열어주었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여비서가 커피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명퇴후에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려니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10원, 100원, 500원 남는 물건을 파는 자신이 한심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아내에게 때려치우자며 아내와 다퉜습니다. 그런데 정말 3년 만에 때려치우기 전에 망해서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또 한사람은 그 역시 40대 후반에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어서 명퇴를 신청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아내와 의논 끝에 이 사람도 구멍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구멍가게를 시작하면서 승용차를 용달차로 바꿨습니다. 두 부부는 건강 주신 것을 감사했고, 일거리를 주신 것을 감사했고,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을 감사했고, 부정한 짓을 하다가 쫓겨나지 않고 명퇴한 것을 감사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즐겁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손님들에게도 늘 친절했고 손님들도 친절한 이집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가까운곳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섰는데도 동네 사람들은 항상 친절한 이 부부의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가게는 점점 돈을 많이 벌었고 결국 이분은 또 다른 대형마트를 개업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길이 열리지만 원망하면 길이 막힙니다.

 

요한계시록 2장10절에서 주님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 집에서 종살이 할 때 충성되게 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가정총무가 되었고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충성을 다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충성해야 합니다. 얼마나 오래 충성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속담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충성스럽게 일하지만 그 열심히 얼마나 오래가느냐가 중요 합니다. 10년, 20년 꾸준히 봉사하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성도입니다.

 

지난주에 이진숙집사님과 함께 읍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일을 다 끝낸후에 강둘자성도님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선소횟집에 갔더니 한 중년 여자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통성명을 하고 보니까 그분은 강둘자성도님과 함께 남해읍 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강둘자성도님 가게에 종종 놀러와서 함께 식사도 하면서 강둘자성도님과 친하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분은 남해읍교회 권사님 이셨습니다. 그분이 강둘자성도님을 열심히 전도해서 강둘자성도님이 남해읍교회에 몇 달동안 나가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강둘자성도님이 교회를 안나오길래 “아마도 바빠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까 강둘자성도님이 김상철성도님과 함께 우리 남해 세광교회로 교회를 옮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때 열심히 전도한 분의 심경이 어떻겠습니까? 자기가 전도한 성도를 다른 교회에 뺐겼으니 대단히 섭섭하고 아쉬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남해 세광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는 몰라도 목사님도 꼴도 보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게로 들어가자 강둘자성도님이 저에게 “목사님 오셨네요!” 하고 인사를 하니까 이 권사님이 저에게 인사를 하면서 “우리 강둘자씨가 나가는 교회 목사님이군요?!”하더니 몇마디 안부를 나눈후에 곧 어디론가 휙 나가시더니 얼마후에 쟁반에 식혜 세 대접을 받아가지고 오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식혜파는 가게에 가서 식혜를 사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사님은 시종일관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더니 다시 우리가 써대가 맛있다고 써대 이야기를 했더니 이 권사님이 자기 가게로 가셔서 말린 써대 다섯 마리를 봉지에 넣어 가지고 오셔서 그 써대를 저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게 값으로 따지면 2만원어치 입니다.

 

저는 그 권사님의 언행심사를 보면서 남해읍교회가 왜 남해에 세워진 40개가 넘는 교회들 중에서 가장 부흥성장이 잘되는 교회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에게 있어서 저는 솔직히 기분나쁜 목사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전도한 교인을 뺏어간 목사이니 저에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권사님이 얼마나 저를 극진히 선대하고 식혜를 사다가 대접하고 그리고 2만원어치나 되는 써대생선을 무상으로 공궤하고 하여튼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것을 보면서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권사님에게 축복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권사님의 성암이 김홍선권사님이신데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시면서도 얼마나 친절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자상하신지 제가 반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제가 “야! 남해읍교회의 정동호목사님이 참 부럽다! 정동호목사님이 참 복이 있으신 목사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돌아오는 길에 제 집사람이 야채를 사러 야채가게에 갔는데 그 야채가게 주인도 얼마나 친절하고 싹싹한지 제가 그분에게 "교회 다니세요?" 하고 물었더니 “예 남해읍교회 다닙니다!” 하십니다. 그분도 남해읍교회에 다니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 집사람이 남해에 와서 10년동안 생선사러 다닌 생선가게의 주인도 알고 보니까 남해읍교회의 권사님이셨습니다.

 

남해읍교회의 교인들은 누구를 만나도 친절하고 상냥하고 겸손하고 온유했습니다. 좋은 교회는 바로 이런 성도들이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 누구도 나잘났다 하는 사람이 없고 그 누구도 남 비방하는 사람이 없고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하거나 쌈박질을 하는 사람이 없는 교회가 복된 교회입니다.

 

남해읍교회 성도님들을 만난후에 제가 조금은 부러워 했지만 그러나 우리 남해세광교회 권사님들에 비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권사님들은 아낌없이 다 주는 그런 권사님들입니다. 쌀도주고 돈도 주고 가게도 빌려주고 내가 주인인데 내가 집을 지으면서 건물을 써야 하는데도 마음이 착해서 세입자에게 집을 비워 달라는 말도 못하는 그런 착한 권사님이 우리 남해 세광교회 권사님입니다. 그 권사님이 누군지 아세요? 예 김막순권사님입니다.

 

그런가 하면 노인 요양원 짓는다니까 땅도 팍팍 기증하고, 류복례권사님은 10년 시금치 농사 마늘농사 지어서 저금한 1000만원을 아낌없이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권옥란권사님은 노후자금으로 쓰려고 적금들어놓은 1000만원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권사님들이 이와같이 통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믿음을 가지신 권사님들이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권사님들 입니다.

 

돈 많은 부자 권사님들에게는 1000만원이 별것 아닐지 몰라도 우리 교회의 대부분의 권사님들이 10년동안 뼈골 빠지게 고생해서 모은 귀한 돈과 자녀들이 주신 용돈 모은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낌없이 드리셨습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을 줄 믿습니다.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에는 송죽의 절개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고 흰눈이 펄펄 내리게 되면 송죽의 참 절개를 알게 됩니다.

 

옛말에도 나라가 어지러워질 때 충신을 안다고 했고 집안이 가난할 때, 어진 아내를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충성은 어려울때 고난의 때에 참된 충성이 나타납니다.

 

충성된 일꾼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언제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달려오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말없이 섬기는 사람입니다.

셋째,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꾸준한 사람입니다.

네 번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28장 19절로 20절에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은 흔히 지상명령이라고 불리웁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부탁말씀 입니다.

 

이 부탁은 주님의 부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탁입니다. 충성된 자들은 주인의 부탁을 잘 지켜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 부탁을 누구보다도 가슴깊이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위해 죽을때까지 달려갈길 다 달려 가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구원 받은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제가 토요일 새벽기도회때 천국에 가면 꼭 예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그리고 그 다음에 바울사도를 찾아서 감사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사도가 예수님의 부탁을 잘 감당했기에 우리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에게도 감사를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믿고 이 아름다운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부탁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재능과 은사를 주님의 부탁을 들어 드리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주님께 충성을 다함으로, 천국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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