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1절로 2절에보면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가 장수해도 평강을 누리면서 장수해야지 병고로 시달린다든지, 근심한다든지, 한이 맺힌 상태로 장수하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라는 말씀은 십계명을 잘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첫번째 계명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계명도 중요 하지만 십계명 전체를 유지해 주는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제4계명 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지도 만들지도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 찬양하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주일성수를 잘 하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부모에게 불효하지 않습니다. 살인이나 간음은 더더군다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는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핵심되는 계명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는 축복을 선포 하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창세기 1장 28절의 복을 문화적인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문화적인 축복은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구별이 없이 다 누리는 복입니다.
창세기 2장 1절로 3절에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방금읽은 창세기 2장 3절을 다시 보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라고 증거 합니다.
창세기 2장 3절의 복은 영적인 복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부요하고, 성공하고, 또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만이 받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이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복입니다. 이 복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리는 복입니다. 이 복이야말로 인간이 누리는 참된 행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쫒겨나고 징벌을 받게 됩니다. 그 징벌이 창세기 3장17절에 선포 됩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죄값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형벌은 죽음이지만 그러나 땅에도 그 저주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땅은 끊임없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우리 인간들을 찌릅니다. 그래서 땅을 경작 하다보면 수고와 노동의 가시가 사람을 찌르고, 근심걱정이 찌르고, 병이 찌르고, 상처가 찌르고, 스트레스가 찌르고, 모든 원수가 우리를 찔러 댑니다. 이 모든 고통은 죄로 인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가운데서 살다가 지옥불로 가는 인생들이 불쌍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시켜 주시는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안식과 행복을 상실했던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축복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예수를 믿어야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일요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말합니다. 일요일은 태양 아래 있는 날이고,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이라는 말을 쓰면 “나는 불신자입니다!”라는 뜻이고 “주일”이라는 말을 쓰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참된 안식과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이 진리를 깨닳은 날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참 평안이 없었습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참된 안식을 찾았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에만 안식과 행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첫째날 빛을 만드시고, 둘째날 궁창, 즉 하늘을 만드시고, 셋째날 바다와 육지와 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삼일동안 세상의 윤곽을 다 만드신 하나님은 넷째날 부터는 만드신 그 공간들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셨습니다. 넷째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고, 다섯째날에는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육축과 짐승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신 후에 그 다음날인 일곱째 날에는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여기에 신비한 비밀이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함을 받자마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창조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과 함께 안식함으로 삶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인간은 내힘으로 노력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너희는 다만 은혜로 살아라”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창조된 바로 다음날 하나님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예수님께서 내 대신 나의 죄값을 대신 치르느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창조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고 구원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써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은혜나 구원의 은혜는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제일먼저 인간을 안식에 초대 하셨습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의 초청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달력을 보면 본래는 우리가 엿새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 쉬기 때문에 주일이 맨 마지막에 있어야 되는데 주일이 빨간글씨로 맨 앞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 받고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안식일이 제일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하고 쉬는 것이 아니라 은혜받고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쉬지않고 계속 일만 하면 빨리 죽습니다. 미국 서부지역을 개척할 때 동부 사람들이 땅도 확보하고 금도 찾으려는 욕심으로 마차를 타고 동부에서 서부로 달려갔습니다. 광야의 사막을 달리면서 정신없이 말에 채찍을 가하면서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잘 믿었던 사람들은 엿새 동안만 달리고 주일 하루는 쉬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킨 사람들은 매사에 건강하게 진행 했습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먼저 달려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길에서 시체로 뒹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쉬지않고 열심히 달리다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서부를 개척하고 복을 받은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개척한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느니라”(창 2:3) 왜 주일성수하면 장수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라는 뜻과 더불어 “하나님께 속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서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동참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에 세상 즐거움과 정욕이 사라지고 성령충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장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과 미국 텍사스주립대학 그리고 콜로라도 주립대 등 3개 대학의 공동연구진이 지난 9년동안 2만 2천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과 수명”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수명이 7년정도 장수한다는 사실을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82세인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75세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에 비해서 수명이 짧았고 교회 참석 회수가 높을수록 장수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연구진은 발표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으면 마음속에 있는 독이 빠지고 죄도 사함받고 모든 스트레스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를 잘하는 성도가 장수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제정하신 날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주일에도 일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주의 날을 지킴으로서 그 날에 받은 복으로 엿새동안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이 내 영혼을 지키시고 건강을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공휴일 날 망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엿새동안은 열심히 일하느라고 일하는 동안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않는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술마시고 방탕하다가 망하고, 술마시고 음주운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주말과 일요일에 야외로 놀러가다가 이런 저런 사고로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날을 거룩한 날로 지키면서 은혜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살기에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5공화국시절에 전두환 대통령과 장관들, 각료들이 미얀마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버마의 영웅인 아웅산의 묘소를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주일날이었습니다. 주일 오전 11시에 미얀마의 국립묘지에서 참배를 하도록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비서실장과 모든 장관들이 대통령보다 한발 앞서 가서 아웅산 묘소에 참배하려고 도열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북한이 비밀리에 지붕 위에 폭탄을 장치하고 터뜨리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유능한 장관들과 각료들 열 일곱명이 죽고 기자들과 도열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소위 아웅산 참사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당시에 참변을 당한 분들의 대부분이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님들 이었습니다. 그들이 만약에 주일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굳은 의지만 있었다면 비서실장인 함병춘장로님을 통해서 대통령에게 “각하! 주일에는 무덤에 참배할 수 없습니다! 다음날로 미루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건의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주일날 무덤에 참배하는 일에 대해서 건의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무덤에 참배하다가 모두가 즉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주일을 성수하는 믿음을 바로 지키지 아니하면 각종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전에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교회학교 교사에, 성가대에, 청년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군대에 다녀와서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목사님에게 취직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도 해야 하니까 1년간만 쉬게 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의 말을 수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1년간 봉사활동에서 그를 제외 했습니다.
그 청년이 봉사활동에서 자유로워지면서부터 교회에 나오면 뒷자리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시간에 졸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교회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알아 보니까 주일날 친구들과 함께 산에 놀러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점점 주님을 멀리떠나서 방황 했습니다. 세상 친구와 가까이 지매면서 늘 술을 마시러 다녔습니다. 토요일이면 밤새도록 마시고 취해서 주일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어느 토요일 밤에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서 실컷 마시고 놀았는데 그날 나이트클럽에 화재가 나서 수십명의 청년들이 불속에서 죽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사건입니다. 그 화재 현장에 그 청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불에타서 누군지 신원확인이 안되는 청년의 가슴에 뺏지가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그 뺏지는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와 충성스런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만들어준 교회이름이 새겨진 동으로 만든 뱃지 였습니다. 그 뱃지를 본 경찰이 교회로 연락을 해서 목사님이 달려왔습니다. 목사님은 시커멓게 불타버린 그 청년의 얼굴을 보고서 “영준아! 내가 너를 죽였구나!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는 바람에 네가 죽었구나! 내 잘못이다 내가 너를 죽였다!”하면서 우셨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봉사가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은 그 분복대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일 성수를 복으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봉사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면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인자와 진리로 교훈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88올림픽때 전 세계는 서울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전 세계의 TV방송은 한 흑인 여자에게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88올림픽때 세계적 영웅으로 떠오른 그 여자는 흑인 육상선수였는데 3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따는 바람에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수영복 차림을 하고 손톱에 아주 울긋 불긋한 색깔의 메니큐어를 칠하고 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트랙에 들어 섰는데 그녀는 100m와 200m에 이어 400m 계주까지 금메달을 따는 바람에 3관왕에 올랐고 1500m 에서는 은메달을 땄습니다.
100m와 200m에서는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는데 그녀가 경신한 100m와 200m 세계 신기록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인으로 등극하여 만인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바로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남쪽 빈민가에서 10명의 형제중에 9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정은 너무나 가난해서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겨우 겨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녀의 소녀 시절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늘 절망 속에서 살았고 우울증에 걸린 소녀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소녀의 인생을 바꾼 한가지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어느날 한 흑인 영웅이 이 소녀가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 흑인영웅은 “슈거레이 레너드” 라는 유명한 권투선수 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복싱 챔피언으로서 전 세계의 모든 복싱 팬들의 우상이었습니다. 슈거레이 레너드가 학교에 들어서자 수백명의 흑인 학생들이 “슈거레이”“슈거레이”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슈거레이가 강당에서 강연을 하면서 가만히 보니까 한 여학생이 맨 구석에 앉아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로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슈거레이는 강연을 끝낸 다음에 맨 뒷자리의 구석에 앉아서 땅바만 바라보고 있던 그 소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얘야! 어디 아프니?” 그리피스는 깜짝 놀랬습니다. 그 위대한 복싱영웅이 다른 아이들을 제쳐놓고 자기에게 와서 말을 거는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소녀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고백을 했습니다. “아저씨 저는 다 싫어요! 집도 싫고, 학교도 싫고, 모든 것이 다 싫어요!” 그러자 슈거레이가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네 이름이 뭐냐?”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조이너 예요! 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그러자 슈거레이는 “조이너야! 네가 다 싫어도 그래도 한가지 좋아하는건 있겠지?” “내가 권투를 좋아 한 것처럼 아마 너도 한가지는 좋아하는게 있을걸?” 그러자 조이너가 눈을 반짝이면서 “저요? 저는 뛰는 건 좋아해요!”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다 싫었는데 권투가 좋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어!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열심히 뛰다보면 세계적인 육상 스타가 될 수 있어! 꿈을 가진 사람이 제일 부자란다!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너도 위대한 육상선수가 될거야! 내가 지금 너를 위해서 기도해 줄까?!” 그리고는 슈가레이가 조이너의 두 손을 꽉 잡고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슈가레이가 인자한 말 한마디로 그녀를 위로하고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는데 그 일이 그 어린 소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날부터 이 소녀가 달라졌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십년동안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한 그녀는 마침내 88 서울 올림픽때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그녀는 당시에 미국 전체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여성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던지는 한마디의 위로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던지는 막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둡고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님의 인도를 받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수가 있습니까? 그 첫 번째 방법이 예배를 귀하게 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했을때 영국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때 윈스턴 처칠과 영국 황실은 영국교회에 요청해서 전쟁이 발발하던 그 날에, 모든 교회에서 같은 시간에 종을 울리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황실은 영국성공회의 존경받는 주교였던 “윌리암 템플” 주교에게 전 국민에게 보내는 방송 설교를 의뢰했습니다. 템플 주교는 그날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대영제국의 국민 여러분 잠시 후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 종을 울릴 것입니다. 종소리를 듣거든 모든 국민들은 교회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다. 역사의 주인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입니다”
그렇게 처칠 수상과 영국 황실이 하나되어 모든 국민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전쟁을 감당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영국과 미국의 연합군이 독일군과 싸워서 승리하게 하심으로서 2차 세계대전에 승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사람이 음식을 잘못 먹거나 운동을 안 해서 걸리는 암보다도 심령속의 분노와 적개심을 3년 간 품고, 풀지 못하면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어떤일을 만났던지 어떤 괴로운 일이 있던지 예배를 통해서 해결받을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모든 고통과 질병과 슬픔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아울러 예배와 더불어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세상은 나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마귀는 나를 이렇게 멸시하고 실망시켰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을 선으로 바꾸실 날이 반드시 올줄 믿습니다” 라고 확신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나는 주안에서 승리자입니다”라고 선포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영육간에 새힘을 얻게 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라고 증거 합니다. “네 명철”은 너의 의견, 너의 경험, 너의 생각을 말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 새롭게 하실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많이 신뢰합니다.
1980년대 말에, 미국에서는 큰 교회의 목사님과 유명한 부흥강사 목사님들이 잇따라서 여자문제로 스켄달이 터지는 바람에 목사님들의 도덕적인 문제가 언론에 노출 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창 인기있는 미국의 TV시사 프로에서 기독교 교계를 대표하는 미국 목사님 열 분을 초청해서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프로가 진행 되었습니다.
패널 형식으로 토론회가 열렸는데 열 명의 게스트 중에 애나해임 빈야드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신 존 윔버 목사님도 동참 하셨습니다. 죤 윔버 목사님은 세계 제일의 풀러 신학교에서 신학강의도 하셨습니다. 당시에 모든 교인들과 그리고 신학생들도 이 프로를 관심 있게 시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존 윔버 목사님은 이 토론회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미국에서 한다 하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데 큰 대형교회를 담임하셨던 존 윔버 목사님이 한마디도 하지않고 나오자 못내 아쉬웠던 성도들이 주일날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 어려운 자리에 나가셨는데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더니 죤 윔버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토론회를 시작 하는데 성령님이 나에게 너는 입을 다물고 있어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그 이야기를 들은 모든 목사님들이 “역시 성령 충만한 분은 다르구나”하면서 이구동성으로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티비 프로에 나오면 누구라도 한마디 하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것이 인지 상정입니다. 그런데 존 윔버 목사님은 한시간 동안 침묵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음성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온갖 의견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고 노인이고 의견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신문을 보아도, 방송을 들어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아도 온통 사람들의 의견 투성이입니다. 선거한번 했다하면 온 세상은 다 잘난 사람들 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자기주장 자기의견 내세우느라 난리들입니다. 회사나 공장이나 택시 기사나 무슨 일을 하던지 너나 할것없이 자기주장 자기의견 내느라 열을 올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까지 와서 또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의견을 들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는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에 가능한 한 교회에서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나 차안에서 정치 이야기 세상 이야기 사람들에 대한 가십 이야기를 하는것은 옳은일이 아닙니다. 교회에 오면 하나님 앞에서 내 의견을 절제하고 겸손한 언행심사를 갖는것이 좋습니다. 요한 계시록 8장1절에 보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하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늘에 반시간 동안 고요함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한 준비시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예배가 축제와 같은 그런 모습도 있어야 하지만, 한편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경건한 모습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TV를 보다가 전화가 걸려오면 TV를 줄이든지 아니면 TV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으로 가서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내 의견의 볼륨을 줄여야 합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줄일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나와, 교회와, 민족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비로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전도서 5장 2절에 보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스러운 교회는 부질없는 말을 늘어놓는 말많은 교회가 아니라 쓸데없는 말은 적게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남을 험담이나 하는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질 않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찬송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교회가 복받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랑을 배우는 곳이요 모든 사람들이 차별없이 모이는 곳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요셉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았더니 인생이 달라지고 때가차매 하나님이 존귀와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원칙과 조건이 있습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그런 축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복을만한 확실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의 아집과 교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 잘못 가던 길을 돌이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U-턴 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과 자기 주장, 자기의 경험, 자기의 재능, 내가가진 물질과 명예등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 마땅한 죄인입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님을 나의 마음에 왕으로 모십니다! 주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내 마음에 오셔서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고 복된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그리고 온유한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마음이 강팍하면 안됩니다. 신학에서 “will breaking”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자기 아집 깨기”라는 말입니다. 자기의지를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깨지고 온유해 지면 비로소 십자가의 의만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오늘본문 5절과 6절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 은혜요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사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하나님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세는 신명기4장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래서 동행의 복은 가장 큰 복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이 선교 보고차 고국에 들렸다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누가 물었습니다. 이미 이 때는 리빙스턴이 사자에게 물려서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 빈 소맷자락이 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굶고 못먹어서 얼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를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나올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사나운 맹수와, 야만인들 속에서 그토록 어려운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입니까?”
그때 리빙스턴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제일 존경 받는 두 사람을 든다면 모세와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말 잘하게 만드셔서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체격을 좋게 하고 힘을 주고 검술을 뛰어나게 해서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말 잘 못하는 그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셨고 어린 소년 다윗의 돌팔매에 역사하셔서 골리앗을 물리치셨습니다.
나의 약한 데서 주님의 강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부족해서 못한다고 하지 맙시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내가 내 재능을 발휘해서 잘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인정 받겠다는 교만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을 맡기시려는 것은 주님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게 복 주고 싶으셔서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예배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범사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소망중에 감사하면서 살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 함으로서 하나님이 언약하신 모든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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