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회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일일 수련회를 다녀 왔습니다. 중간 고사도 끝나고 아이들이 하루 일정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엘 다녀 왔습니다.
유엔 기념공원은 6.25당시에 우리나라에 참전했던 16개국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관이 있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죽은 외국인 장병들의 묘소가 있는 추모공원입니다.
오늘 그곳에 가서 영상관에서 전쟁에 관한 기록영화를 보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죽은 4만 800백명의 넋을 위로하고, 묘지를 돌아 보면서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생각 하면서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고 아울러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국 군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싸우다가 죽은 전쟁사를 돌아 보면서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희생과 사랑의 정신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점심은 부산의 명소인 더 파티 뷔페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전에 허주 목사님 사모님의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때도 친구 목사님들 8명이 더 파티 뷔페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사장님이 일인당 3만원씩이나 하는 식사비를 안받고 무상으로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그 뷔페식당의 사장님이 저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순춘집사님의 남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초동친구의 빽으로 남편 조강수사장님께서 저희를 특별하게 배려해 주셔서 큰 부담없이 점심식사를 대접받고 돌아 왔습니다. 저희를 선대해 주신 조강수사장님과 초동친구 김순춘집사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이 얼마전에 지나 갔지만 추석을 통해서 깨닫는 일이 있습니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석 때가 되면 한 차례 민족 대이동이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 고향을 찾아 가느라 보통 때는 서너 시간이면 가던 고향을 여섯 시간, 때로는 열두 시간이나 걸려서 갑니다.
명절이 되면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귀성길은 고생길이 됩니다. 그러나 오가는 길이 너무 힘들다고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생할 것 뻔히 알면서도 해마다 반복해서 찾아 나서는 것이 고향 가는 길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운전하기 힘들어도 고향가는 길은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계신 곳이요 정든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갈 때 부모님께 드릴 추석선물을 준비해서 갑니다. 과일도 사가고 부모님이 좋아 하시는것들을 준비해 갑니다. 그러나 가져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물을 되받아오는 것도 추석에 누리는 기쁨의 하나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타고 온 차에 바리바리 싸서 주십니다. 쌀푸대부터 고춧가루, 참기름, 깨, 채소, 추석때 만든 음식과 반찬과 부모님 드린다고 사온 과일과 곳감 떡까지 다시 다 실어 보냅니다. 떠날때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각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명절이 되어도 찾아갈 고향이 없거나 부모님이 안계신 분들은 마음이 허전해 집니다. 명절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독거노인이나 고아들은 더욱 마음이 허전합니다. 고향이 없는 실향민들은 오히려 명절이 가슴아픈 날이 됩니다.
멀리 동남아시아에서 돈벌러 온 사람들이나 시집온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부모형제 생각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리워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 하고 고향엘 가고싶어 합니다. 저도 마음은 늘 고향을 향합니다. 어릴때부터 함께 놀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 짝사랑하던 여자친구는 지금 뭘할까? 사촌들도 궁금하고, 뛰놀던 골목도, 동산도, 궁금합니다. 그래서 고향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고 상상속의 행복한 동화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땅에서의 고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부모 없이 스스로 세상에 태어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육신은 부모님을 통해서 받았지만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언젠가 죽어서 소멸되지만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죽으면 영혼은 천국과 지옥 둘중에 한곳으로 갑니다.
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지옥에 가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갈수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길을 우리 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아메리카에, 미국에 가는길을 최초로 가르쳐준 사람은 콜롬부스입니다. 세계에서 제일높은, 8844미터나 되는 히말라야산에 오르는 길을 최초로 가르쳐준 사람은 뉴질랜드의 등반가이자 탐험가인 에드문드 힐러리 경입니다. 지구의 북쪽 끝 얼음바다인 북극에 가는길을 최초로 가르쳐준 사람은 미국의 피어리이고, 지구의 남쪽끝 얼음바다인 남극에 가는길을 가르쳐 준 사람은 노르웨이의 아문젠입니다.
사람은 이제 달도 정복하고 화성에 가는 길도 정복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정복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을 정복했고 천국에 가는길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와서 너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 하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혼인 풍습에 의하면 한 청년이 여자를 보고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아내를 삼고 싶으면 먼저 자기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 후에 아버지로부터 그 여자 집에가서 잔치를 벌일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자 집에가서 그 돈으로 한 주간 잔치를 벌린 다음에 마지막 날 여자에게 포도주 잔을 건넵니다. 그 때 여자가 그 잔을 받으면 청혼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청년은 다시 아버지에게로 가서 여자와 살 거처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결혼할 때와 기한을 정합니다. 그리고 와서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거처를 준비하러 간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결혼식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천국으로 시집가기 위해서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시고 천국에 가는길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그길을 가지 않고 지옥불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안다면 지옥을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에 데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지옥을 억만분의 1 정도를 체험한 것입니다. 제가 청년때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져서 배기통에 손목을 데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그 흔적은 20년동안이나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지옥은 꺼지지 않은 유황불이 타는 곳입니다. 죄가운데 살다가 죽으면 영원한 지옥불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앗뜨거 앗뜨거 하면서 죽지도 못하고 고통중에 영원히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고향은 천국입니다. 죽으면 영혼은 고향인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세상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추석 때만 되면 망향의 한을 품고 임진각에서 북녘 땅을 향해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면서 슬픔과 쓸쓸함을 달래는 실향민들이 있습니다. 고향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갈수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가지 못한다면 이보다 슬픈일은 없습니다.
내 아들과 딸과 손주 손녀가 불에 타 죽었다면 평생을 가슴아파 할 것입니다. 내 부모가 불에 타 죽었다면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안믿은 영혼은 뜨거운 불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뜨거운 불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니 지옥가는 사람을 그냥 불구경 하듯이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불이나면 만사를 제쳐놓고 자식들을 구해내고 난리 법석을 떨면서 119를 부르던지 이웃을 부르던지 내가 뛰어 들어가서라도 자식을 구하고 손주 손녀를 구해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야 할 곳은 천국입니다. 부산으로 가려면 경부선을 타야하고 광주나 목포로 가려면 호남선을 타야 하는 것처럼 천국에 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일명 “위로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서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한 주 전만해도 제자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온 백성이 예수님을 높이고 찬양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이 큰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겠구나!” 하면서 신나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고 왕이 될것을 믿었기에 기대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고생하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보람이 있구나!”하면서 예수님이 왕이되시면 “누가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을 것인가”를 놓고 서열 문제로 자리다툼까지 하면서 싸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13:21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마디 한마디 하실 때마다 제자들은 불안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잘 나가던 예수님이 갑자기 죽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판다고 하시고 그런데 갑자기 가룟유다가 밤에 만찬석상에서 일어나 나가더니 돌아올 생각을 안합니다. 제자들은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됩니다. 급기야 불안이 엄습하고 염려와 근심이 몰려 옵니다.
온 세상이 다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할날이 코 앞에 다가온줄 알았는데 뭔가 상황이 자기들이 생각한것과는 정 반대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힙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공포에 휩싸여서 아무말도 못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이미 제자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에 의해서 배신을 당하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수제자 베드로조차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대 제사장에게 잡히시면 나머지 제자들도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짊어진 인류의 모든 죄 때문에 하나님아버지 에게서도 버림을 받으시게 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나 크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내일 처형을 당해서 죽는데 남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불안과 공포에 빠져서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찬송가474장에 보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찬송가 가사처럼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라는 가사처럼 이 세상에는 곤고한 일이 많습니다.
욥처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졸지에 재산도 잃고 자녀도 잃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나니, 사는 것이 너무 곤고하고 괴로워서 생일을 저주한 욥처럼 인생을 탄식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슬픈 일도 많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랑하는 동생 나사로가 죽었을 때 너무 슬퍼서 통곡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도 많고 곤고한 일도 많고 슬픈 일도 많고 두려운 일도 많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일은 이별과 죽음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입니다.
마이클 조 선교사님이 자살을 시도하고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께 소리를 지르면서 항의하면서 악을쓰고 발악을 한것도 인생의 허무함과 비참함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나의 미래가 불확실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 밖에 없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그리고 내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을 때, 그런때에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열한명의 제자들이 이런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2시간 후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입니다. 열두제자들은 자기들에게도 무서운 현실이 닥칠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 가신다면 자기들도 조만간에 모두 붙잡혀서 채찍질과 능욕을 당하고 고문후에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야고보는 그후에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27절에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천국을 예비하고 다시와서 너희를 데려갈 터이니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절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나라의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의 피의 공로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천국문을 지키던 천사가 “너의 공로를 말해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하고 막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외모가 훌륭한 한 사람이 천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천사가 공로를 묻자 “나는 목사인데 주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역시 당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막아 섰습니다. 그러더니 다른 천사가 와서 두 사람을 지옥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느 꼬부라진 할머니 한분이 천국문에 이르렀습니다. 천국문에 도착한 할머니는 손을 높이 들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러자 천사가 즉시 천국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진주 문이 열리면서 그 할머니는 천국에 들어갔고 천군 천사의 환영을 받으면서 예수님 앞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의 피 뿐입니다. 내 공로로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종교가 있어도 인간이 만든 종교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천국은 오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만이 들어갑니다.
마태복음16장 16절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너무나 기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 하시면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천국 열쇠가 참된 신앙고백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앙고백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열쇠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왕에 예수를 믿었으면 주님의 원하시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예수믿은 성도가 변화되고 거듭난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취직을 했으면 일을 잘해야 인정을 받고 기술자가 되었으면 차를 잘 고치던지 컴퓨터를 잘 고치는 기술자가 되어야 인정을 받듯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주님의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오산리 기도원에서 원로목사님으로 계시던 김상호 목사님은 천국을 직접 체험하신 분입니다. 김상호목사님은 목사가 되기전에 40세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자마자 천사들이 와서 가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려는데 보니까 방에 자기가 누워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내가 저기 방에 누워있는데요?” 했더니 천사가 “그것은 당신의 육신이고 당신의 영혼이 빠져 나오면 육체는 껍데기일 뿐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천사와 함께 하늘나라를 향해서 가는데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다 보니까 지구가 오렌지 만하게 보이더랍니다. 얼마후에 큰 빛의 세계로 들어갔는데 아름다운 천국이 나타 나더니 천국에 큰 책이 보이더랍니다.
저게 뭔가 하고 들여다 보니까 그 책에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지은 온갖 죄들이 다 기록이 되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으로 그 책에 기록된 자기의 죄의 목록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자기가 예수를 믿은 그 날부터는 자기의 죄가 다 용서가 되어서 아무런 죄가 없는 백지로 나타나더랍니다.
그런데 한 천사가 가까이 오더니 “당신보다 먼저 죽어서 천국에 온 아내를 만나러 갑시다!”하길래 그 천사를 따라갔더니 천국에 먼저 온 수 많은 사람들이 푸른 생명수 강가에서 열두 가지 과일나무에서 과일들을 따먹는데, 그 과일들이 입으로 들어가면서 아주 기가 막힌 향기가 풍겨 나오더랍니다.
천국에 가서 보니까 길들은 온통 황금으로 되어있고 각종 보석으로 만든 집들이 즐비한데 한 커다란 집에서 먼저죽은 자기 아내가 흰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데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믿어 지지가 않더랍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말이 “내가 죽은 후에 당신과 아이들이 나때문에 하도 마음아파 하길래 내가 예수님께 부탁해서 내가 이렇게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예수님에게 간청을 해서 당신을 천국에 오게 한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 천국에 올 때가 안 되었으니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천국 구경을 다 마치고 세상으로 되돌아왔는데 세상에 와서 보니까 자기가 죽은 지 3일이 지나서 죽은 시신을 내어가서 장사 지내려고 마지막으로 관 뚜껑을 덮기 직전이더랍니다. 그래서 관속에서 일어 나니까 사람들이 놀래서 무서워서 다 달아나 버렸다고 합니다.
김상호씨가 다시 살아난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서 일평생 복음을 전했고 나중에는 오산리 순복음기도원의 원로목사님으로 지내시다가 2007년도에 소천하셨습니다.
천국은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데려 가시기 위해서 다시 오십니다. 그때가 바로 예수님의 재림때입니다.
먼 나라에 간 남편이 귀국할 때가 되었는데도 기다리는 마음도 없고, 사모하는 마음도 없다면 그 부부관계는 잘못된 관계입니다. 더욱이 남편이 잘못 돼서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부부관계는 이미 깨어진 부부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지도 않고 세상만 좋아하면서 산다면 거듭나지 못했거나 신부의 자격을 상실한 성도입니다.
예수의 재림은 모든 구속사업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도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준행하면서 기다리고 충성된 종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주님을 맞이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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