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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4년3월26일시편146편110 나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그리운시냇가 2014. 3. 27. 22:36

 

 

 

지난주부터 사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족 전체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19년 3월 1일입니다. 삼일절은 일제의 압제와 탄압으로부터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만세를 부른 날입니다. 이제 올해로 95주년이 되었습니다.

 

1910년도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진지 9년이 지난 3월 1일날 고종황제의 국장일에 맞추어서 서울 탑골 공원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60일 동안 전국에서 1,542회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고, 202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연해주 등 해외에서도 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당황한 일본 군대와 경찰은 군경을 동원해서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그 결과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자 46,948명이었습니다. 부서지고, 불에 탄 주택이 715채, 학교가 2곳이 불탔습니다. 그리고 47개의 교회가 불에 탔습니다.

 

1919년 4월 화성에 있는 제암리 교회에서는 23명의 교인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본경찰은 만세부른,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교회안에 몰아넣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일본 경찰은 뜨거움을 참지 못해서 문을 부수고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23명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마을 가옥 30여 채를 불살랐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사람의 살 타는 냄새가 10Km 밖에까지 진동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일 독립운동의 주체는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었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 전체의 기독교인은 약 30만명으로 전체 인구 1천7백만명중에 1.8%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독립만세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삼일독립운동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철저하게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건 구국운동이었습니다. 당시 3.1 운동을 지켜 본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예수교인들만이 현 시점에서 국제정세에 가장 정통하여 민족 자결의 횃불을 들 수 있었다. 예수교만이 참혹한 식민정책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인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3·1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민족의 기개를 온 세상에 떨쳤을 뿐 아니라 이 민족이 독립된 민족임을 온 세계에 전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오늘날 역사가들 가운데는 삼일운동을 종교적 측면에서 “한민족의 출애굽”(Korean Exodus) 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삼일절 거사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한 희생적 독립운동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삼일 독립운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국 초기 기독교는 소수였지만 그들은 희생을 통해서 이 민족을 구원해 냈습니다. 그들은 암울한 상황 속에 있었던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대기독교는 기독교 학교를 세워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은 기독교인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서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 기독교 역사상 찾기 힘든 영적 부흥을 이뤄 냈습니다. 선교 130년 만에 6만개의 교회와 10만명의 목회자, 그리고 약 900만명의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주일이면 한국처럼 밀물처럼 교회에 몰려와서 예배를 드리는 민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서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세계 선교는 한국 교회의 손에 달렸다고 말할 정도로 선교의 열기가 뜨거운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교회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간의 견해차가 너무 큽니다. 한 사건을 놓고도 기독교 안에서 찬반이 엇갈립니다. 각종 사건 사고에 기독교인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기독교에 대한 훼방과 폄훼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 기독교에 관련된 일만 하면 불교계에서, 사사건건 종교차별이라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특히 조용기 목사님이 이슬람 채권법, 즉 일명 수쿠크(Sukuk)법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 하면서“수쿠크법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하야운동을 펼치겠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그 발언을 계기로 언론에서는, 정교분리를 내세우면서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수쿠크 이슬람 채권법”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대단히 위험한 법입니다. 그 법이 왜 통과되면 안되는지를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저지로 결국 그 법이 무산되고 지금은 좀 잠잠해 졌지만, 그러나 언제 어느때 또 다시 국회가 이 법을 통과 시킬지 모릅니다. 이 법은 국가간의 통상적인 경제 거래가 아닙니다. 정부는 외국자본을 빌려오는 창구를 다변화한다는 이유로 이슬람금융에서 차관을 빌려 오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쿠크채권은“이슬람 형제단”에서 만든 금융회사입니다. 이 사람들은“샤리아 위원회”라는 단체의 지배를 받는 금융 지하드(성전聖戰)입니다. 이들은 세계를 이슬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쿠크금융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쿠크채권은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단체입니다.

 

본래 이슬람교는 법적으로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줄 때,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나라의 돈을 가지고 돈을 빌려가는 나라의 건물을 사는것처럼 계약을 합니다. 빌딩이나 땅을 사는 것으로 계약하고 그리고 나서 돈을 빌려줍니다. 돈을 빌린 나라는 건물 임대 사용료를 지급하는 형식으로 거래가 이뤄집니다. 그리고 돈을 갚을 때는 다시 우리가 이슬람으로부터 건물을 사는 형식을 취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눈 가리고 야옹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건물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등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이 들어가는데 우리나라 국회가 통과시키려는 수쿠크 법 즉, 일명“이슬람채권 과세특례법”은 이 모든 과세를 면제해 주자는 법입니다. 이슬람자금에 대해서만 특혜를 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방 금융에 비해서 이자가 싼 것도 아닙니다. 겨우 0.3%정도 저렴합니다. 더 큰 문제는 수쿠크 이슬람법에 의한 거래를 통해서 발생한 이자의 2.5%는 의무적으로 이슬람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송금한 이후에는 반드시 증서를 불태웁니다. 결국 이 자금이 알카에다나 테러범들의 자금줄이 되거나 이슬람 선교에 쓰이게 됩니다. 결국 수쿠크는 오일달러를 가지고 이슬람의 세계화를 위해서 쓰여 지는 이슬람채권입니다.

 

게다가 이슬람 자금을 도입하는 나라는 반드시 샤리아 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위원회는 돈을 빌려주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위원회로서“돈을 빌려가는 나라의 법보다 이슬람교의 율법을 우선시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빌려쓰고 나면 이슬람교의 율법에 따라서 이슬람 사원이 지어지고 이슬람교를 포교해도 아무런 법적 조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자본 유입 창구의 다변화라는 미명아래 모든 세금을 면제해 주려고 조세형편에도 어긋나는 초 헌법적인 일들을 국회에서 감행하는가 하면 특정종교에 특혜를 주는 말도 안되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국회에서 이런 수쿠크 법을 통과시키려고 한 이유는 아이엠에프 이후에 모든 나라들의 국내 자금이 대거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금융위기가 생겼습니다. 그때 이슬람국가의 수쿠크 자본을 가져다가 위기를 모면하고 급성장하는 국가들이 생겨나자, 우리나라에서도 수쿠크 자본을 빌려다가 UAE원전도 짓고 경제적인 도움도 받으려고 그런일을 도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쿠크 법이 통과되어서 이슬람의 자금이 들어오면 온 나라 전체에 이슬람교 성전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슬람화 된 나라가 바로 아프리카와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수쿠크 자본을 빌려 쓴 후에 나라 전체가 이슬람화 되었습니다. 선진국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자본이 들어오면 우리나라도 이슬람화 되는것이 시간문제입니다. 그들은 초 현대식으로 성전을 짓고 이슬람성전에 온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다양한 종교행사를 통해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수쿠크를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의 정치 개입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의 발로요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명박대통령이 국가 조찬 기도회 때 대통령과 영부인이 예배 인도자의 인도에 따라서 단상에서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불교계에서는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를 쳤습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체신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고 매스컴과 신문에 투고를 했습니다.

 

아니, 한국교회가 주최한 기도회에서 장로 대통령이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한 것이 뭐가 잘못한 일입니까? 대통령이 절에 가면 합장하고 예를 표하는 것처럼 예배시간에 모두가 무릎꿇고 기도했는데 불교계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생떼를 썼습니다.

 

자기들은 정부 지원 받아서 템플 스테이(temple stay) 명목으로 매년 수백억 씩 가져다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전에 나라가 어려워서 예산을 좀 깎았는데 그때 불교계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면서“이제부터 절에서 하는 행사에는 정부여당 인사들은 절대로 참여를 못하게 하겠다”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불교계를 비판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교회만 물고 늘어졌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지말고, 목사들도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기독교는 이 민족을 살리는 등대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구한말 민족이 절망에 빠졌을 때 민족의 아픔과 고통의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일제의 압제아래 신음하던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삼일 독립운동에 앞장선 사람들도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6.25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도 미국의 기독교와 한국의 기독교가 힘을 합쳐서 국가 재건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이루는데도 기독교가 역량을 모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 민족의 근대화와 민주화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고아원과 양로원 학교 병원 교회등 모든 축복이 교회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한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한국 기독교가 이 민족을 살리는 역할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의 시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할렐루야”는“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시편 146편은 다윗 왕이 지은 찬양노래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성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라를 다스릴때는 형통한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왕이 형통한 복을 받고 나라가 강성했던 이유가 오늘 시편146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가장 잘 사는 것이며 나라도 복을 받고 형통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사람을 지었다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습니다.“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다윗은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근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절과 2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강조 합니다. 그것도 자기 속사람, 즉 자기 영혼에게 찬양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여러곳에서“내 영혼아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도 다윗은“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니 내 평생에 하나님을 높이 찬양한 다윗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늘 찬송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닳은 사람은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갑니다.

 

제가 종종 이전에 말씀드린 예화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신자나 교회에 오신지 얼마 안되신 분들을 위해서 은혜스러운 예화는 다시 반복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성악가로 정평이 나있던 테너 성악가 배재철 집사는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면서 세계 모든나라 음악계의 기대주로 발돋음 했습니다. 그는 독일명문인 자르란트 주립극장의 주역성악가로 발탁이 되어서 한창 잘나가고 있었는데 2005년도에 뜻하지 않은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갑상선암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갑상선암 적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암세포가 몸에 넓게 펴져있어서 결국 성대신경까지 절단 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는 일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대신경을 절단한 후에는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습니다. 가족들도 크게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나서 하나님께 나아와 매달리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고 묵상하는 동안에 그는 잃어버린 신앙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후에 그는 일본에서 성대복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은후에 그는 3년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할수 있게 해 달라고 계속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2008년 12월에 도쿄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콘서트를 열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중요한 무대로 부르셨습니다. 그 무대는 바로 하용조 목사님이 개최하신 “요코하마 러브 소나타”전도집회 였습니다. 목사님의 초대를 받은 그는 6천명이 참석한 무대에 섰습니다. 그때 그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에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곡은“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와“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무대에서 찬양을 하는데 자기가 걱정했던것과 달리 은혜스러운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찬양을 하면서 스스로 놀랐습니다. 찬양이 끝난후에 그는“내가 이렇게 다시 노래를 하다니! 이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구나!”라는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다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찬양이 끝난후에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나의 목소리를 바꾸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에 나의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 목소리는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명예와 돈을 위해서만 노래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어느 무대에서든, 어느 시골교회든 가겠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노래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제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겠습니다! 목소리가 언제 완전히 회복될지 모르지만 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인한 행복입니다!”그는 비로소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증거 합니다. 다윗은 인간의 유한성을 언급하면서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여기서 귀인은 능력이 많은 통치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세상의 통치자라 할지라도 일순간에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5절에 보면“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야곱의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권길중 박사는 세계 100대 조형건축가로 선정 된 유명인사입니다. 그런데 한창 잘나가던 때에 그는 식도암에 걸렸습니다. 식도암에 걸려서 음식을 먹을수가 없게 되자 그는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빼빼 말랐습니다. 음식도 코에 호스를 끼워서 죽만 먹으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의사는 그의 아내에게“살 소망이 없으니 장례를 준비하시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죽어 가는 자신이 너무나 억울하고 비참했습니다.“이제 고생 끝에 정상에 올라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병들어서 죽다니”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그는 본래 예수님을 믿는 성도 였습니다. 병상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엉터리 신자로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는“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하고 자신을 돌아 보다가 하나님께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박사학위도 주시고 명예와 돈도 주셨는데 십일조 한번 제대로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으니 내가 이렇게 된것이 하나님의 징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병상에서 어느날 예수를 믿는 지인이 연변 과학기술대학 총장인 김진경 박사님의 간증 테이프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테입에서 김진경박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압니까?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가장 복된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일에 헌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사명을 감당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변 과학기술 대학으로 오십시오. 중국의 젊은이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장차 중국을 변화시킬수 있도록 우리가 그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장래에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간증을 듣는순간 권길중박사의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그 간증에 도전을 받았고 그 초청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는 그 간증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진작에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병든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나님!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세요 저를 낫게 해 주시면 제가 가서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그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통회자복이 터지면서 한참을 회개하면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차갑고 메말라서 뼈만 남은 손이 따뜻해 지는것을 느꼈습니다. 몸에 온기가 돌면서 무언가 자신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밤새도록 그런 은혜를 체험한 그는 새벽이 되자 무언가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코에 끼워넣은 호스를 빼버리고 24시간 문을 여는 병원의 구내 매점에 가서 호박죽을 사다가 먹었습니다. 그런데 소화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밥을 끓여 오라고 해서 그날 아침부터는 죽을 먹었습니다.

 

며칠동안 그렇게 죽을 먹으면서 몸이 급속하게 좋아 졌습니다. 며칠 후에 의사들이 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다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며칠만에 정상으로 회복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하면서 연구해보자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권길중박사만 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지자 그는 짐을 싸들고 부인과 함께 연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연변 과학기술대학 건축과 교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작정하고 서원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는 오늘도 날마다 기쁨이 충만한 속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5절 중반절에 보면“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정월 대보름은 추석과 함께 달이 가장 완벽하고 크게 보여지는 날입니다. 대보름이되면 사람들이 달집을 태우고 쥐불놀이로 액을 태운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 2009년도에 경남 창녕의 화왕산에서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과 군민들 그리고 관광객들을 포함한 2만여명이 달집을 태우고 억새를 태우다가 강풍으로 인해서 큰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액을 태우려다 도리어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행복을 빌고 평안을 얻으러 갔다가 도리어 큰 환란을 당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창녕에서는 이제 억새 태우는 행사를 중단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모든 민속행사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새해에 떠오르는 태양이나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것도 미신과 우상숭배입니다. 첨단과학시대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미신이나 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연약함 때문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살이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미신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들거나 고난이 오면 의지력이 약화된다고 합니다. 그럴때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 생겨서 미신과 귀신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이나 우상은 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 이십니다.

 

평양신학교 교장을 지냈던 채필근(蔡弼近) 목사님은 한학과 동양학은 물론 해박한 신학과 철학을 겸비한 신학자였습니다. 본래 채필근 목사님은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유교경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14살 되던 1898년도에 아버지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당시에 소년 채필근은 훌륭한 한학자인 아버지를 이단에게 빼앗긴 것 같아서 슬픔으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아버지는 수천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던 유명한 한학자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니 아들 채필근이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그때 소년이었던 채필근은 공자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공자시여, 아버지가 그리스도교를 공박하고 유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시겠다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보시다가 불행하게 그리스도교에 빠지셨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에, 이단을 공부하면 해롭다고 하심이 바로 이것을 가리키심인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공자님의 도를 저버리지 않기로 맹세하겠습니다!”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한지 1년쯤 되었을때 아버지가 아들 채필근을 부르더니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당에 함께 가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는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불순종 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교에서는 절대로 아버지에게 불순종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채필근은 열 다섯 살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서 예배당에 갔습니다. 그 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채필근은 울면서 공자님께 다시 호소를 했습니다.

 

“공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의 가르침 중에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버지께 간청을 드리고 간청해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아버지를 좇으라“라고 말씀 하셨지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아버지의 명령을 3년까지는 고치지 말라고 하셨지요? 저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3년만 교회를 다니고 그리고 3년상을 치른후에는 반드시 공자님께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채필근은 끝내 공자한테 돌아가지 않고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평양 신학교의 교장까지 되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훗날 채필근 목사님은“공자께”라는 글을 썼습니다.

 

“공자님! 제가 다시 공자님께로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저는 공자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만약에 공자님이 성경을 읽으셨다면 공자님께서도 반드시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도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길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기독교 신앙입니다”

 

토니 캠폴로(Tony Campolo) 목사님이 오레곤주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교인이 전화를해서“남편이 암 때문에 고난이 심한데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좀 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캠폴로목사님은 그녀를 찾아가서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보름쯤 후에 환자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목사님이시죠? 목사님이 제 남편의 암을 위해서 기도해주셨지요?”캠폴로 목사님은“암이 낫았나?”하면서 기대를 하면서“예 제가 기도 했지요!”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목사님! 남편이 죽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순간 캠폴로목사님은“아이쿠 이 여자가 남편 죽었다고 따지려고 전화했나?”하고 일순간 긴장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계속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 남편은 그동안 분노로 가득 차 있었어요! 자녀중에 결혼하지 않은 딸아이가 있는데 딸아이의 결혼식도 못보고, 그리고 손자들이 성장해서 복되게 사는것도 못보고 죽는다고 억울하다면서 그동안 ”하나님이 왜 나를 죽게 만든거야!“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늘 원망하고 하나님을 저주 하면서 지냈어요! 우리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심히 마음이 안타까왔어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고 간 이후부터 남편에게 평안과 은혜가 임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남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신것 같아요! 목사님! 지난 보름 동안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남편이 짜증도 안내고 하나님을 저주도 하지않고 성경을 읽어 달라고 하고, 찬송도 불러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처럼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남편에게 성경도 읽어 주었는데 남편이 너무나 기뻐 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목사님에게 이런말을 덧붙였습니다.“목사님! 남편이 비록 암은 치료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치유되었어요(He was not cured, but he was healed) 그러니 이것이 하나님이 복주신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목사님께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남편이 치유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았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시편95편7절에 보면“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시마다 때마다 우리의 필요를 해결해 주시는 좋은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만 사모해야 합니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체험한 실화입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에 야곱처럼, 솔로몬처럼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소원을 물으셨습니다. "나의 아들아, 네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말해라 내가 들어 주겠노라

 

“ 그때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어거스틴은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썩어질 것, 사람이 만든 것, 허탄한 것들을 바라면 그것이 우상숭배요 그런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원하고 예수님을 흠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의 아들이나 딸은 잠시 잠간동안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기껏 5년 밖에 못합니다. 그 후에 그와 그 자녀들은 감옥에도 가고 욕도 바가지로 먹습니다.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 딸들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으로 채워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면 종종 상처를 입습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 갑니다. 그러나 부모의 소망대로 행하는 자식은 많지 않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도 저마다 자기에게 소망을 가져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가장 소망적인 후보를 택해서 표를 던지지만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를 하곤 합니다.

 

기도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묻지 말고 내가 직접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직통라인을 버리고 간접통화만 시도하면 응답의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응답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말씀과 기도로 깊이 교제할 때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거짓 음성과 엉터리 응답이 판을 칩니다. 어떤 청년이 몸매와 얼굴이 예쁜 자매에게“자매님!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자매와 결혼하라는 음성을 주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한 형제가 저에게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하면서 결혼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그런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남자 청년들은 예쁜 자매만 보면 그 자매와 결혼하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착각 합니다! 그 남자청년이 들은 음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매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음성과 감동이 중요합니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만 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가끔 기도시간에 또는 기도원에서 누군가가 신령한 방언을 합니다. 어떤 깡패는 기도중에 방언을 받았습니다.“우라질라 사카무라 이시키야 저시키야 칵칵 쥑일란다 팍 씨리삘라 직이삘라 싸가지야 바가지야”

 

아무리 깡패라도 이런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보면 방언받고 유창하게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신령한척 하면서 옆사람에게 충고를 합니다“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하네요”그러나 방언하는 신령한 사람의 말보다 본인이 직접 받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감동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에 희망을 겁니다. 공해문제도 과학이 해결해 줄 것이고, 식량의 부족도 과학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삽니다. 그러나 체르노빌이나 후꾸시마 원전 사고, 또는 콜롬비아 우주선의 폭발 사건 등은 과학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더구나 인간은 과학 기술을, 선한 일보다 핵무기를 비롯한 전쟁 무기를 만드는데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은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하

 

나님이 아닌 사람이나 정치나 세상에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만이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결코 실망치 않게 되는 이유가 민수기 23장 19절에 나옵니다.“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사람을 가장많이 실망시키는 사람들은 정치인들 입니다. 미국의 국회의원이었던 리 애트워터(Lee Atwater)는 금세기 최고의 권력을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를 쥐락 펴락한 미국의 공화당을 움직이는 핵심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조지 부쉬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만든 킹 메이커입니다. 그

 

는 미국선거 사상 처음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노골적으로 매스컴과 신문을 통해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는 선거전략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악한 선거전략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략과 후원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들로부터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면서 무려 15년동안 세계 최고의 권력을 유지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는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한 이후에 엄청나게 많은 정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공갈협박과 위협을 받으면서 지냈습니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어느날 그에게 뇌종양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영광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기자들이“앞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는“집과 아내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 후에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회심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지나간 때에 잘못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다가 그동안 자기가 비난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사과 편지를 쓰기로 작정 합니다. 그래서 애트워터의 정적이었던 수많은 정치가들이 애트워터로부터 사과 편지를 받게 됩니다.

 

추수 감사절을 앞둔 어느날 어떤 민주당의 정치인이 그에게서 받은 편지를 공개 했습니다.“저는 공화당국회의원 시절에 당신을 비판하고 정죄하던 정치가 에트워터입니다! 이제 저는 뇌종양으로 인해서 얼마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뇌종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서 저는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자리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당신에게 용서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만하고 건방졌던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부로 당신을 폄훼하고 비방한것도 용서 바랍니다! 비판할 자격이 없는 제가 당신에게 무례하게 군것도 용서 바랍니다! 저도 용서받아야 할 자입니다! 용서 받아야할 사람이 당신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의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에트워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서 자기가 비판하고 정죄했던 모든 정치가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전에 1991년 2월 라이프 잡지에 마지막 기고를 통해서 공적인 고백을 남겼습니다.

 

“80년대는 부와 권력, 명성의 우상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나는 이 시대에 그 누구보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을 누리고도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의 증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 어떤 권력이, 가족들과 함께 하는 행복과 더불어 신앙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80년대와 90년대는 우리를 도덕적 타락으로 이끌었습니다! 저의 병이 그런 진실을 알게 했습니다!. 이제 누가 90년와 2000년대의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갈지 모르지만, 저는 뇌종양보다 더 무서운 영적 종양과 같은 영적 진공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런 글을 남긴 그는 얼마후에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마지막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가 예배를 마치고 교회 계단을 내려오다가 또 한번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내가 정치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오늘처럼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예배 드리면서 느낀 행복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말로 소감을 대신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나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죽을병에 걸려서 죽어가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영원한 영생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이르기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주시기도 하시고 취하시기도 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짧은 시간이 이렇게 부유한 나라가 된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백성에게는 복이 임하게 된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형통한 복이 임합니다. 이 형통이라는 말이 바로“번영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반드시 번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살아야할 또한가지 이유는 6절 이하와 같이 하나님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해서 공의로 판단하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주시고 악인을 물리치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GPS보다 정확하고 확실하고 안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GPS는지구위치 탐지체계입니다(Global Positioning System) 지구 밖의 11000마일 상공에서 24개의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면서 위치를 탐지해서 길을 알려주기에 아무리 캄캄한 밤에도, 한번도 안가본 길도, 꼬부라진 길도, 길바닥에 설치된 속도 제한 방지턱 하나까지도, 척척 알려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GPS보다 더 안전하고 정확하게 성도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GPS는 길이 있는 곳에서만 길을 알려 주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다가 길이 막힐때에도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길이 없는 천국에 가는 길까지 우리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는 일본의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나서 예수를 믿었던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중에 복음을 열방에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1930년 러시아 근처 리투아니아의 총영사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방에 복음전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1940년 7월달에, 그는 인생의 고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 영사관 앞 뜰에 나치의 체포를 면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도망치려는 유대인 2-3백명이 모여 들었습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그들은 스기하라 총영사에게 비자를 발급해 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일본 비자만 받으면 다른 나라로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기하라 총영사가 비자를 발급해 주기 위해서는 일본정부의 허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스기하라총영사는 즉시 동경에 전문을 보내서 비자 발급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거절 했습니다. 세 번이나 신청 했는데 세번 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당시에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와 삼국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싫어하는 일을 할 리가 만무 합니다.

 

스기하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더 귀하지 아니한가? 어찌 이들이 죽는 것을 뻔히 보면서, 그들을 사지로 내몰 수가 있단 말인가?”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사도행전을 5장 29절말씀을 떠올려 주셨습니다.“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스기하라는“내가 국가의 명을 어겨 처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내 직권으로 그들에게 비자를 내주리라”라고 결심하고 그때부터 유태인들에게 비자 발급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정부에서 스키하라를 해직하기까지 28일 동안에 그는 무려 6,000명의 유대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는 일본으로 소환 되었고 감옥에 갇혀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같히자 그의 가족들도 같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전쟁이 끝난후에 이스라엘나라에서 유대인 학살 기념관인“야드 받셈”을 건립한 후에 이스라엘은 그를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해서 그와 그의 가족들을 이스라엘로 초청했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비자를 발급해줄 당시의 상황을 물었습니다.“당신은 비자를 발급해 준 후에 많은 고난을 당했는데 그런 결정에 후회가 없었느냐?”라고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몸이 불편한 스기하라 대신에 가족을 대표해서 스기하라의 아들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당시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희 아버지께 성령으로 감동하셨고 아버지는 그 감동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의 고난에 동참 했습니다. 우리모두는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했을 따름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아버지는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 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구원의 복음이 일본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그 빚을 갚은것 뿐입니다. 당신들을 인도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의 남은 날들을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슬라엘 사람들 모두가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후에 전 세계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고백을 접한후에 스기하라에게 후원금을 보내 주었는데 그 후원금이 무려 200억원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했더니 재물의 복까지 덤으로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24장24절에 보면“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라고 증거 합니다. 청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obedience)의 어원은“듣는 것(listen)”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곧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말씀을 행하는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죄를 짓다가 이따금 회개하면서 죄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 이십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깨어있을 때도 잠잘 때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셔야할 이유가 오늘 본문 7절 이하에 나옵니다.“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8)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9)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이 세상은 가난한 사람,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자를 깔보고 무시합니다. 남의 땅에 와서 사는 객들도 마찬가지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권력자들과 부한 자들은 이와 같은 약자들을 동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힘으로 억누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 되십니다(시 68:5).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과 압제 받는 자들의 후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당연히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3절 이하에 보면“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의 짐을 대신 져 주시며 진정한 마음의 쉼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갇힌 자들도 해방하시는 분입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갇힌 자들이 자유하게 되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노예를 사고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상전과 노예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믿는 자들이 한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예와 상전이 한 형제가 되어 서로 같은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한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기독교는 완전한 평등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허락받은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입니다.

 

탈무드에 보면“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장소는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찬송하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받을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평생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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