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님이 상가 2층에 개척을 했는데 한창 교회가 부흥되어가던 어느날 건물 지하에 캬바레 술집이 들어 왔습니다. 그 술집에 밤낮으로 동네 술꾼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춤추고 노래 하면서 꿍짝 거리면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바람에 낮 예배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이 드렸는데 수요예배와 금요 기도회는 도저히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합심해서 기도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 술집을 망하게 하시던지 아니면 불이나서 이사를 가던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세요! 시끄러워서 도저이 예배를 못드리겠습니다”하고 날마다 통성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에 그 술집에서 불이나는 바람에 술집이 불타버렸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이 법원에 교회를 고소했습니다“우리 술집이 불이 난 것은 저 윗층에 있는 교회의 교인들이 날마다 기도 해서 불이 난 것이니 교회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라는 고소장을 냈습니다.
그러자 그 소식을 접한 교인들은 목사님과 함께 재판날에 법정에 가서 판사에게“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라고 항변을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그 술집에 불이 날 리가 없습니다”라고 변명을 했습니다.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 졌습니다. 술집 주인은 교인들이 기도해서 우리 술집에 불이 났으니 교회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교인들은 우리가 기도했다고 해서 술집에 불이 날 리가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믿음이 좋은 겁니까? 불이 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 놓고 정말 불이나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한 교인들이 믿음이 좋습니까? 아니면 저 교인들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주장하는 술집 주인이 더 믿음이 좋습니까? 누가 더 믿음이 좋습니까? 예 술집 주인이 훨씬 더 믿음이 좋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신자(信者)라고 부릅니다. “신자”는“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자인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있습니까? 불이 나서 술집이 없어지도록 기도해서 정말 불이 나서 술집이 망했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고 우리가 기도했다고 해서 술집이 불 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성도들처럼,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은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세계에서 전기는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비행기의 세밀한 기계장치들도 다 전기로 움직이고, 공장과, 가정과, 회사와, 나라의 모든 원동력은 전기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엄청난 양의 전기를 쓰고 있지만 그것을 눈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힘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운행됩니다. 세계도 나라도 우주 만물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지어 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3절은“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증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택하시고 이끌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실때 빛이 생겨났습니다. “궁창이 생겨나라”라고 말씀할 때, 하늘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관리하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힘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의 근원 되신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용서와 치료가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모든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받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질병과 저주가 떠나가고, 십자가를 믿음으로 천국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축복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뤄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산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수백대의 불도저가 몇 달씩 밀어야 산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너희가 믿음으로 이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라고 선포한후에 “그 말이 이뤄질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믿는 믿음으로 행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역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믿음이 있어야 이런 기적이 일어 나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믿음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참깨의 10분의 1 밖에 안되는 작은 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고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행하면 태산 같은 문제도 해결 된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가르침 중에서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솔라 피데”(sola fide) 즉 “오직믿음”을 외친 이후로 기독교는 이 믿음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이라고 마르틴 루터는 주장 했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마르틴 루터의 신앙을 이어 받았습니다. 이에 반해 로마 카톨릭교회는“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의 문제는 누가 옳다 그르다 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동등합니다.
예컨대 사랑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겉으로 아무런 실천이 없다면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선물 공세를 펼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사랑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상대방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척 하면서 얼마든지 거짓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주인공은 아주 유명한 바람둥이입니다. 그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는데 달인입니다. 그에게는 진정한 사랑은 없고 오직 여자를 차지하고 싶은 탐욕과 정욕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감미로운 말과, 좋은 선물들로 여자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그는 말과 선물공세로 여자들을 유혹하는데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말을하고 좋은 선물공세로 여자의 마음을 샀던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 걸리기만 하면 모든 여자들이 이 바람둥이가 던진 미끼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위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이나 믿음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단들이 그와 같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영혼을 미혹해서 자기 욕심을 차리는데 급급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나 교회공동체의 행복을 위한길로 성도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성도를 유린하고 미혹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진정한 믿음을 소개 합니다. 특히 히브리서 11장 1절은 신약성경에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구절입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바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대상"이 바로“하나님”, 또는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 또는 “하늘나라”를 담보한다는 뜻입니다.
즉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대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이미 선물로 받아 놓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들도 믿음으로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도 오직 믿음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은사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 또는 갈등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앞에서 길을 건너가는 짐승들을 만나게 됩니다. 고양이나 다람쥐가 차 앞으로 지나가는데 어떤 고양이는 길을 건너 가다가 다시 되돌아 가거나 가다가 움찔거리고 서서 어쩔줄 모르고 서 있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급히 브레이크를 밟게되고 급정거를 하게 됩니다.
다람쥐도 도로 중간쯤 건너 가다가 차가 오는 것을 보면 몸을 세운 채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합니다. 빨리 판단하고 건너 가던지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다람쥐가 있습니다. 그런 다람쥐나 고양이는 차에 치어 죽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 가려면 믿음의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죄악많은 세상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귀가 유혹하는 것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물쭈물 하다보면 마귀에게 잡히게 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믿는 자를 찾아다니면서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 9) 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끊을까 말까, 할까 말까, 갈까 말까, 하면서 우물쭈물하다보면 마귀는 여지없이 그런 사람을 미혹하여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오늘본문 5절에 보면“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증거 합니다.(히11:5-6).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간의 사역 중에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요청을 그 자리에서 들어주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찾아와서“나를 개로 여겨도 좋으니까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주셔서 귀신들려 고생하는 내 딸을 고쳐주세요”라고 간청하자 예수님은 그 가나안 여자에게“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 라고 말씀하시면서 딸아이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한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달려와서“제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고쳐 주십시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마8: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사회적으로는 자기가 예수님보다 훨씬 높은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예수님의 종이라도 된듯이 예수님에게“저희 집까지 오실 필요 없습니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의 높은 지위를 내세워서 강제로라도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자기 하인을 고치라고 명령할수도 있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극정성으로 예우를 갖추고 예수님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모습에 감동하셔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 라고 말씀 하시면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 한 번은 유대의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회당장은 유대 어느 도시에서나 최고로 높은 지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이 나아와서 예수님께 엎드리고는“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마9:18).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지체없이 회당장을 따라갔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회당장이 보여준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즉시 따라가신 것은 회당장의 권세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따라 가신 것입니다. 특히 죽은 딸을 위해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요청은 그가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인정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사람들을 만났을때 오직 믿음만 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신분이나 배경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개 취급을 받는 이방인이든,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이든, 유대민족을 지배하는 식민지 통치를 하던 로마장군이든, 아니면 어떤 죄를 지었던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그가 가진 믿음만 보시고 그들의 요청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것은 믿음입니다. 진실한 믿음만 있으면 온갖 좋은 축복이 믿음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지게 됩니다.
1978년 1월 21일 오후 8시에 대구에 있는“아리아 악기 주식회사”사장 집에 다섯 명의 괴한이 식칼과 염산을 들고 침입했습니다. 괴한들은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위협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아리아 악기 회사의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요구조건은 무려 50%의 임금을 인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임금을 인상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8시간동안 경찰과 대치하다가 잡혔는데 다음날 이 사건이 주요 일간지에 대서특필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회사는 세무 조사와 경찰 수사까지 받아서 문을 닫아야 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후에 이 회사의 사장은 제대로 된 직원을 골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장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오갈데 없이 직장도 못잡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서 종종 재소자를 직원으로 채용하곤 했는데 그들이 인질극을 벌이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사장은 회사가 문을 닫게될 상황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를 했습니다.“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해결해 주실수 있습니다”사장은 오직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아리아 악기 사장집에서 인질극을 벌인 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박정희 대통령이 보게 되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은“우리나라에 이런 악기 회사가 있었나?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알아보고 보고해!”
대통령이 어떻게 된 사건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자 비서실장이 조사한후에 보고를 했습니다. "그 악기회사 사장은 교회 장로인데, 감옥에서 나온 출소자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고용했는데 그들이 임금을 50% 올려 달라고 인질극을 벌였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대통령은“정말 나쁜 녀석들이군, 그런 놈들은 혼내줘야지!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젠 제대로 된 악기 회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새로 조성되는 구미 공단에 공장부지를 주고, 지원 좀 해 주세요!”
그래서 인질극을 벌인 사람들은 중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고 아리아 악기회사는 이음해에 박대통령의 후원으로 구미 공단에 6,400평 대지 위에 새 공장을 지어서 이사를 했고, 회사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아리아 악기 회사 사장인 하태봉 장로님입니다.
하태봉장로님은 그후에 크게 성공해서 고향인 경남 산청군 덕산면에 있는 고향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목사님! 우리 고향 덕산에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하고는 큰 돈을 헌금하셨고 산청군 덕산면에는 산청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지어 졌습니다. 여러분도 돈 많이 벌어서 이렇게 귀한 일에 헌신 하시기 바랍니다.
하태봉 장로님은 오직 믿음으로 살면서 귀한 헌신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태복장로님이 복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전과자를 불쌍히 여겨서 고용해 준 것 때문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한때는 은혜를 배신한 그들 때문에 인생의 위기와 사업의 위기도 맞이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장로님의 중심을 보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우리가 분명히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은 점점 사랑이 식어가고 냉냉해 지지만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무엇을 근거로 결정합니까?
"나는 보는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는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유물론자들(materialists)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과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진화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유물론적 세계관(materialistic world-view)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봉합니다.
한편 "나는 아는 것으로 살아갑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성주의자(rationalists)들 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것 외에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안다고 하는 지식에 대해서만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배우고 깨닳은 세상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완고한 지식에 대한 고집과 아집 안에 갇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자기 이성의 틀로 걸러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자기 멋대로 종교”를 신봉하면서 자기 뜻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심히 배우고 또 가르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오직 “자기 뜻대로 믿음”만 가지고 살아 갑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안들면 하나님이고 뭐고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교회에서 욕하고 난동을 부리면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느낌으로 살아갑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감각주의자들 (sensualists)입니다. 기분파입니다. 오늘날은 포스트모던시대이기에 그냥 자기 느낌만 좋으면 그만인 사람들입니다. 지금 당장 자기 기분만 좋게 해 주면, 그것이 환각이든, 거짓이든, 속임수이든, 악한 것이든,이단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도 역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이 사람이 진리를 따르는 사람인지 성경말씀에 근거를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사상과 믿음과 신앙이 정말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그런것은 살펴 보지도 않고 그저 자기에게 잘해 주고 자기를 기분좋게 해주니까 무조건 맹종하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뇌물에 넘어가고 거짓 사랑에 속아서 값싼 은혜(cheap grace)를 추구하면서 살다가 결국은 실족하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갈수록 은혜는 소멸되고 소망도 사라지고 후회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인생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세계관(worldview)에 관한 질문이고, 인생관(view of life)에 관한 질문이고, 가치관(value system)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사도는 고백하기를“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5:7) 라고 확실한 정답을 제시 했습니다.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중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있습니다.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어머니는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믿음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외손녀를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게 해서 오직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외우게 했습니다.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어머니는 처녀때 외할아버지 댁에서 외운 성경구절만 600절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외우고 하나님 말씀으로 훈련을 받은후에 결혼해서 아이젠하워를 낳았는데 어머니가 이 아들에게 신앙교육을 잘 시켰습니다.
아이젠하워는 가난해서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해에 소위로 임관 했습니다. 소위때 아이젠하워는 주일날 동네 아이들을 데려다가 탱크 안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점점 높여 주시더니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 세계 연합군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면서 전쟁을 지휘 했습니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런 아이젠하워가 날마다 외우는 성경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스가랴 4장 6절이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 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아이젠하워는 인생사, 가정사, 나라사, 세계사가 인간의 힘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으로, 성령으로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승리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권력으로도 이 세상의 어떤 군사적인 힘으로도 승리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하셔야만 승리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 1 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선언 합니다. 이 말은“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라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증거 합니다.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었는데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많은 자손을 주심으로, 자기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그는 자기가 믿은대로 세계 모든 족속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더불어서 믿음이란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도저히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기다리면서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현실을 따르자니 낙심되고 비참한 생각이 들고, 말씀을 따르자니 비웃음거리가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소망중에 바라며 나아가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폴 레스먼”은 1972년도에 미국 텍사스주의 달라스에서 청년 엑스플로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신청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8만 5천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꺼번에 8만5천명이 모여서 집회를 하려니까 달라스에 있는 모든 호텔과 모텔과 유스호스텔까지 모든 숙소를 다 동원해도 5만명밖에 수용이 안되고, 3만 5천명이 숙소를 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청한 학생들을 안받을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폴 레스먼”은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달라스는 한창 신흥도시로 부상하면서 임대 아파트를 많이 지어놓았습니다. 아직 분양하지 않은 임대아파트가 500동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는“그 임대 아파트를 빌려서 숙소로 사용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 고등학생이 열 명씩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 새 아파트가 지저분해 지거나 기물이 파손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선뜻 새 아파트를 빌려주겠습니까?
“폴 레스먼”은 임대 아파트 사무실을 찾아가서 “임대료를 줄터이니 일주일만 아파트를 빌려 주십시요”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파트 사무실에서는 아파트를 빌려주지 않을 요량으로“믿을 만한 보험회사의 보증을 받아오면 빌려 주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엑스플로 기간 중에 아파트를 깨끗하게 쓰고 만약 하자가 발생하면 전부 수리하겠다는 내용의 보험보증을 받아오면 아파트를 임대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이 계약조건은 어느 보험회사도 선뜻 나서지 않을 계약 조건입니다. 그때“폴 레스먼”은 다시한번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 미국에서 제일 큰 보험회사의 사무실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험회사를 찾아간 날, 마침 그 보험회사의 회장이 사무실에 나와 있었습니다.
폴 레스먼은 회장에게 자기를 소개한 후에 자기가 찾아온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장이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참 잘 오셨습니다. 당신이 무슨 집회를 하는지는 몰라도 내 막내딸 아이가 그 엑스플로 대횐가 뭔가에 참석을 한다고 법석을 떨었는데 며칠후에 방이 없어서 참석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집에와서 안달을 하더군요, 내가 당신을 도와주면 내 딸이 그 집회에 참석할수 있겠네요?”하더랍니다.
정말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그 보험회사 회장의 막내딸이 예수를 잘 믿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딸이었는데 그 엑스플로 대회에 참가하려고 신청을 했는데 늦게 신청한 사람들은 방이 없어서 참석을 못할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고서 딸이 안절 부절 못하는 것을 본 아버지가 그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을 했는데 폴 레스먼이 찾아와서 숙소 이야기를 하니까 아버지가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숙소 문제가 해결되는 바람에 엑스플로 영성집회는 무사히 진행되었고 그 엑스플로 영성집회에서 2만명의 결신자가 나왔다고 집회측은 보고를 했습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까 그 결신자 들 중에 1000명가량의 학생들이 목사가 되었고, 500명의 학생들이 선교사가 되어서 하나님께 헌신 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달라스에서 있었던 그 엑스플로 대회는 1970년대에 히피문화에 찌들어서 마약과 음란으로 죽어가던 미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복음의 불을 지핀 그런 집회였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고 믿음의 항해를 계속해야 합니다.
더불어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증거를 얻는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믿음의 비젼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미래를 창조하는 비전에서 출발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나안땅은 보이지 않는 땅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기에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날 수가 있었고 결국 상상도 하지 못하는 축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보고 그것을 확신하면서 행동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말씀에서 증거는“확신”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1884년도에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선교사는 목사가 아니라 의사였습니다. 개신교 선교사로서 공식적으로 입국한 최초의 선교사는 알렌 선교사입니다. 그는 민비시해 사건때 칼에맞아 죽게된 민영환을 치료하여 인정을 받고 고종황제의 시의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 병원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병원을 주관하는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져서 원성이 커졌습니다. 결국 선교사들은 병원의 재산권과 운영권을 자신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조선에서 철수하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오랜 협상 끝에 정부는 선교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에 광혜원의 4대 원장은 캐나다에서온 에비슨선교사였습니다. 1893년도에 우리나라 온 그는 제중원의 발전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병원의 수준을 높이려고 사방 팔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에비슨이 처음 우리나라에 도착했을 때 병원은 한국식 단층건물로 12.5평 크기였습니다. 그는 설계사에게 부탁하여 10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병원을 설계하게 했고 그 건물을 짓는 비용은 1만달러 정도가 들어가게 될것으로 추정 했습니다. 당시에 일만달러를 오늘날로 환산하면 100억원이 됩니다.
에비슨선교사는 새로운 병원을 짓기 위해서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1900년도에 미국으로 갔습니다. 에비슨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초교파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해서 조선땅에 세워질 병원에 대해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약하고 소심했던 에비슨선교사는 청중이 너무 많은것을 보고 겁이나서 심장이 쿵쿵 거렸습니다.
당시에는 마이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비슨은 목소리도 작았고 마음도 소심했기에 청중들을 쳐다보지도 못할만큼 간이 작아져서 어쩔줄 모르다가“그래도 내가 이 연설을 잘해야만 조선땅에 병원을 지을수 있지!”라는 생각에 단상에 올라서서 자기의 시선을 카아네기홀 이층 맨 끝의 두번째 발코니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킨후에 ”저 끝에 앉아있는 사람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조선땅에 병원을 새로 건축해야 하는데 협조가 필요 합니다”라고 힘주어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2층 발코니 끝에 앉아있는 사람만 바라보고 연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에비슨선교사가 바라보고 연설했던 그 2층에 앉아있던 사람이 바로 록펠러가 운영하던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뉴욕 지배인인 “세브란스”였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세브란스가 에비슨을 찾아와서 그 계획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습니다. 그때 에비슨은“이미 설계도까지 다 만들었는데 후원금이 필요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브란스는 “오늘 나는 당신이 연설을 할때 이상하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헌신하라는 뜻으로 알고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얼마후에 세브란스는 에비슨에게 자기가 1 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세브란스가 일만불의 돈을 기증 하겠다고 통보를 했는데도 선교부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을 빚었습니다. 조선땅에 병원을 짓는데 너무 큰 돈을 허비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여러곳에 작은 병원 여러 개를 짓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부는 결국 에비슨이 기도했던 계획에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1902년도에 세브란스의 기부금과 더불어 제중원이 있던 자리의 기존 병원 판매 대금을 합쳐서 서울역 맞은편에 새로운 병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1904년 11월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종합병원이 세워 졌는데 그 병원이 바로 세브란스병원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은 그렇게 한 이름없는 무명의 의료선교사의 비전과 더불어 비록 어눌한 강연이지만 확신에 찬 믿음으로 호소한 그의 강연에 감동받는 세브란스를 통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마음에 품고 확신에 찬 믿음으로 그 비젼을 이루어 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된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건 우리 형편에 전혀 안맞는 다고 주장해도, 믿음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 내고야 맙니다.
다시 믿음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겠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라는 말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인간적인 시각으로볼때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들을 이미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이미 손에 넣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믿음은“보이지 않는 것”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하늘나라의 시민권은 증명서도 없고 그 나라는 세상에서 지도에 그릴 수도 없습니다. 그 나라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오감으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에서는 실재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고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식으로나 생각으로나 또는 경험으로 믿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알아가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3절을 이해가 쉽게 바꾸면“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깨닫습니다”라고 바꿀수 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은 논리적인 추론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실험실에서도 알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만 알게 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라고 고백했고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는 믿음으로써 안다"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관한 한, 아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분명하다면 믿음은 반드시 구체적인 증거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선진들 곧 우리의 선배들이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증거라는 말은 법적인 효력이 있는 물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불가능한 상황속에서 좋은 결과들을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사슬에서 해방시키고 바로를 굴복시키고 홍해바다를 가르며 출애굽에 성공 했습니다.
우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치의 병에서 치유 받았다든지,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믿음의 기도로 해결되었다든지 하는 일들을 우리도 직접 체험함으로서 믿음의 증거를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믿음은 말씀에 의지하여 바랄 수 없는 큰 선물을 바라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열정적인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함으로서 응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되고 하나님 안에서 소원하는 모든 믿음의 비젼들이 다 이루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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