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는 고난주간 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지내는 절기 입니다.
지난주에 몇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대구 딸집에 계신 박금련집사님으로부터 등기 우편물이 왔습니다. 집사님께서 기도 제목을 적어서 보내 주셨는데 대구에 사시는 셋째따님인, 이순지따님께서 5만원을 동봉해 주셨고 마산에 계신 넷째 따님인, 이우아집사님께서도 5만원을 동봉 하시고, 박금련집사님은 10만원의 건축헌금을 동봉해서 보내 주셨습니다. 박금련집사님과 따님들께서 보내주신 귀한 예물을 지난 주일날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박금련집사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남해를 떠나서 따님들 집에서 요양을 하고 계십니다. 따님들이 교대로 집사님을 돌보고 계신데 집사님께서 따님들에게 말씀 하시기를“우리 남해 세광교회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교회란다!”라고 하시면서 따님들에게 기도응답에 대한 자랑을 하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 남해 세광교회는 기도응답으로 점철된 교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교회도 복을 받고 모든 분들이 범사에 복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날에는 김길성집사님께서 오셨는데 김길성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남해 세광교회와 더불어 김다윗목사님은 큰 복을 받으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우리교회의 성전건축을 위해서 김길성집사님을 모시고 상의를 했는데 김길성집사님께서 건축을 도와주실 마음은 있으신데 요즘 집을 짓느라 가을까지 일이 밀려서 저희 남해 세광교회 건축을 좀 미루면 안되겠냐고 하셨습니다.
얼마전에 설천 교회에서 부목사로 계시다가 그만두신 권현석목사님께서 정태 마을에 땅을 사서 그곳에 교회를 새로 개척하려고 준비중에 있는데 권현석목사님께서 김길성집사님에게 건축을 부탁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음에 두곳 그리고 권현석목사님 교회까지 지어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권현석목사님은 저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후배 목사님입니다. 서울 세광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하신 유능하고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권현석목사님께서 설천 교회에서 계시다가 이제 이곳에서 개척을 하시게 되었는데 이곳에 좋은 목사님들이 오셔서 새로운 좋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이땅이 복을 받을 징조입니다. 개척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 권현석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날 오후에 김예슬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하영이 아빠가 직장에 갔다가 퇴근하는 길에 교통 사고가 났는데 차가 완전히 박살이 나서 폐차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기원집사님은 한군데도 다친데가 없이 무사 했다고 하면서 “목사님! 정말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어요”하면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윤기원집사님이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와 둘이서 같이타고 퇴근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차가 휴지처럼 되었는데도 두사람이 다친데가 전혀없이 무사 했다고 합니다. 오늘 새벽에 우리가 배운 것처럼“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는 말씀이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큰 시험과 환란과 시험이 와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에 안전한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은 내일일을 모르고 살아 갑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잘나가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 지금 어렵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어렵지도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인간은 질그릇처럼 연약하지만 보배이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고 증거 합니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빚어서 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로 구운 그릇입니다. 질그릇은 모양이 투박하고 작은 충격에도 잘 부서집니다. 사도바울이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한 이유는 인간이 그만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은 내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닳을 때 능력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병든 사람이 의사를 찾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아무리 약하고 어렵고 상황이 열악해도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만 의지하는 사람은 그 힘과 함께 소멸하고 맙니다.
우리가 어렸을때 박치기로 유명한 김일이라는 프로 레슬링 선수가 있었습니다. 김일 선수는 엄청난 덩치의 외국 레슬러들과 경기를 하는 동안에 얻어 터지고 깨지고 맞으면서 다 죽어가다가도 박치기가 터지면 박치기 한 방에 아무리 덩치 큰 외국 선수라도 다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강한 김일 선수가 은퇴한 후에 박치기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뇌질환이 생겨서 20년이 넘도록 고생 고생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나라에 극진 가라데라는 무술을 창시한 최배달씨가 계십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격투기 선수입니다. 그의 본명이 최영의 인데 이분은 전 세계를 돌면서 각 나라마다 당대 최고의 격투기 선수들을 만나서 경기를 제안했는데 모든 나라의 격투기 선수들을 다 격파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심지어 그는 맨 손으로 무려 47마리의 황소의 뿔을 쳐서 부러뜨렸고, 그 중 네 마리는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는 무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천하무적이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그도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폐암으로 인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깨지는 질그릇에 불과한 것이 인생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망치로 한 대 맞으면 맹구가 됩니다. 천하장사인 삼손도 하나님께서 손을 떼니까 하루 아침에 무기력해져서 블레셋사람들에게 잡혀서 눈이 뽑힌채로 연자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지경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7절에 보면 이와같이 깨지기 쉽고 무너지기 쉬운 질그릇같은 인생일지라도 그 안에 보배되시는 예수님을 담으면 인생이 달라 진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보배가 되시는 이유는 첫째로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배가 되십니다.
개미 1천억 마리가 있어도 그 개미를 한 사람의 생명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생명은 귀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사람의 생명을 다 합쳐도 예수님 한 분의 생명의 가치만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이고 그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배이십니다. 또 하나는 그분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배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그 며느리 때문에 늘 불화와 다툼만 있던 가정이 평안해 졌습니다. 기울어가던 사업도 며느리 때문에 번창했습니다. 며느리가 음식도 잘해서 병든 가족들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자식들 교육도 잘 시켜서 아주 훌륭한 인물들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며느리를 지켜보던 시부모는 사람들에게“우리 며느리는 우리 집안의 보배야”라고 말을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배가 되시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 때문에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윤기원집사님이 교통 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를 할 정도로 차가 완전히 망가 졌는데도 손가락 하나 안다치고 멀쩡한 것은 윤기원집사님이 그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살았기에 예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그 간증을 했더니 새벽예배가 마친후에 윤옥희권사님께서 울면서“목사님!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을 생각 하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신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나네요”하시면서 우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살아도 복이요 죽어도 복입니다. 예수님이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기도 응답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미국의 대니 로페즈라는 여자는 임신을 했는데 갑자기 뇌에 이상이 와서 47일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그녀를 진단 한 후에 회생불능의 뇌사상태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임신 4개월인 아기는 그녀와 함께 운명이 끝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그녀가 장시간 고통속에서 지내느니 차라리 산소호흡기와 생명 보조장치를 모두 떼고서 임종을 맞이하게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여서 산소 호흡기를 떼려고 하는데 그순간 갑자기 그녀의 배가 꿈틀 꿈틀 거리더니 뱃속의 아기가 심하게 움직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뇌사상태였던 대니 로페즈의 뇌파가 갑자기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뇌파가 완전히 죽었던 그녀가 뱃속에서 애기들이 엄마를 발로차고 몸부림을 칠 때마다 뇌파가 살아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산소 호흡기를 떼는것을 보류하고 그녀를 지켜 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몇 개월 동안을 뇌사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무의식 상태에서 건강한 쌍둥이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후에 그녀는 조금씩 의식을 회복하더니 나중에는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깨어난 후에 그동안 자기가 체험한 일들을 간증을 했습니다.“그녀는 쓰러지던날 정신이 몽롱해 지는데도 뱃속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와 아이들을 도와 주세요! 하나님 저를 살려 주세요! 그래서 아기를 낳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마비가 되고 뇌도 활동 할 수 없고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그런데도 자기의 영은 살아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자기의 영이 쉬지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기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녀는 뇌사상태에서 자기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뇌사상태 에서도 아기를 순산하고 나중에는 그녀도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배이십니다. 내 영이 깨어서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간구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서울에서 유영진집사님이 저희 교회를 방문 했습니다. 유영진집사님은 온누리 교회에서 지원하는 CGN 기독교방송 기기를 설치하는 집사님 이신데 어제 서울에서 오셔서 진주에서 일을 하고 그리고 오늘은 함안과 남해를 돌아서 다시 통영에 갔다가 내일은 통영 근처의 섬에가서 위성방송기기를 설치 한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까 젊은 나이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느라 불철주야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회사에서는 방송국 사장 장로님 운전기사로 일을 하고, 그리고 출장할 일이 생기면 전국으로 다니면서 방송기기를 설치하고, 그리고 일년에 한번씩 해외에 단기 선교를 나가서 봉사하고, 하여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집사님 이셨습니다. 집사님에게 여섯 살난 딸이 하나 있다는데 나이가 삼십대 초반밖에 안되 보이는 젊은 집사님이 예수님께 사로잡혀서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볼때 참 귀한 집사님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의 손에 잡히는 순간부터 보배로운 인생이 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는 예수님께 잡힌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의 150%까지 발휘 하면서 산다는 조사 보고를 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것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실 주님을 모신 사람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모신 사람은 주님의 도우심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헬렌 켈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이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가득하다.”그 능력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잘 알려진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은 선교사로 일하다가 65세에 중풍에 걸려서 쓰러졌습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은“뇌혈관이 터졌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라고 진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스탠리 존스는 오직 예수님만 믿었습니다.
스텐리 존스는 자기 병실에 들어오는 간호사나 의사들에게 한가지를 부탁 했습니다.“의사 선생님! 제 병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스탠리 존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라는 말을 좀 해 주십시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그거야 못할것 없지요!”하고는 그때부터 의사와 간호사들은 농담삼아서 스텐리 존스 선교사가 시키는 대로 ”스텐리 존스는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그런 인사를 받은지 3개월만에 스탠리 존스 목사님이 건강을 회복하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한 스탠리 선교사님은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20년 동안 더 선교사역을 하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스텐리 존스 선교사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믿었기에 그런 은혜를 누린 것입니다.
우리도 내 인격이나 내 능력으로 살면 안 됩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보배이신 주님이 질그릇인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로 9절에 보면 4가지 어려움이 나옵니다. 먼저 8절에 보면 우겨쌈이 나옵니다. 우겨쌈은 사방으로 포위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배이신 주님을 모신 사람은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답답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18절에 보니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새벽기도 시간에 개인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한 자매의 기도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의 기도가 좀 특이하더랍니다. 자매가 기도하기를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보리보리 보리보리 가을보리,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보리보리 보리보리 가을보리. 하나님 봄보리는 있는데 가을보리는 모르겠어요. 봄보리는 있는데 가을보리가 뭡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자매를 불러서“자매님! 무슨 그런 기도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매님이“목사님이 오늘 새벽에 설교를 하시는데 가을보리를 믿으라! 가을보리를 믿으라! 라고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 봄보리는 있는데 가을보리는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래서 하나님께 가을보리가 어디 있는지 좀 가르쳐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아이고 답답해라! 봄보리 가을보리가 아니고 갈보리입니다. 갈보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산 이름인데 그 산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산이에요. 무슨 봄보리, 가을보리입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자매는“아이고 그렇게 간단한 건데 안 깨달아지는 바람에 무척 답답했어요”하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답답합니다. 그러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을때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이 모든 문제를 풀어 주십니다.
이어서 9절에 보면 박해가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지하교회 신자가 약 40만 명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7만 명 이상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도 기독교인인 것이 발각되면 공개처형을 당합니다. 그들은 고통중에 살고있고 버림을 받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9절에 보면 거꾸러뜨림의 어려움이 나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는 것은 비참한 지경에 처한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도 거꾸러뜨림을 당해서 비참해 질수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2년 전에 필리핀에서 조태환 선교사님이 괴한들의 총탄에 거꾸러졌습니다. 그가 거꾸러졌으니까 망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땅에 있는 그의 장막 집은 무너졌지만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천국에서 우리보다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조태환 선교사는 망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계 21:4에서 말씀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어떠한 환난이나 역경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37:23,24에서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성경 잠언 24:16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드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지만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통과하면 부활이 있는 것처럼, 광야를 통과하면 가나안이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 풍성한 것들로 예비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오베랑 목사님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성도를 찾아가서 보석 두 개를 보여 주면서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어느 보석이 더 빛나게 보이나요?” 그 성도는 더 빛나는 보석을 가리켰습니다. 같은 보석인 데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베랑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보석은 8번 깎았지만 더 빛나는 이 보석은 80번 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실수록 더욱 빛나게 됩니다.” 주님을 모신 사람도 어려움을 당하지만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10절 11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말은 언제나 그분의 공로를 인정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 영생 내 영생이라고 늘 믿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것은 내 것이라는 믿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을 쉽게 설명하면 독감주사를 맞으면 몸에 독감에 대한 면역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독감주사를 안 맞은 사람은 독감 바이러스가 찾아오면 감기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독감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은 독감 바이러스가 왔다가 그냥 가버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면 주님의 십자가 공로가 내게 여러 가지 면역력을 줍니다. 지옥에 대한 면역력, 마귀에 대한 면역력, 죄에 대한 면역력, 저주에 대한 면역력, 질병에 대한 면역력 사망권세에 대한 면역력등이 생겨서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이 약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주님은 보배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보배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모신 사람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보배로우신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가 구원받고 엄청난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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