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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4년4월23일수요저녁 시편20편1-3 환난날에 응답하신 하나님

그리운시냇가 2014. 4. 24. 22:12

 

 

오늘본문 1절에 보면“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라고 증거 합니다. 야곱은 환란이 닥쳤을때“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라”라고 고백하면서 온 가족과 함께 벧엘에 올라가서 단을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당면한 모든 환란을 면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환난의 때는 하나님께 기도 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환란을 이기고 응답을 받는 때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 하시면서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요한복음16장 33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성도는 환난 때문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고 환란 때에 부르 짖음으로 응답을 받습니다. 성도는 환난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성도는 환난 때문에 더 큰 은혜와 축복을 경험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시편119편 71절에서 증거한 것입니다.

 

미국의 LA 마라톤 대회에서 다리대신 두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서 마라톤 42.195 키로를 달린 사람이 있습니다. 보브 위랜트라는 사람입니다. 보브 위렌트는 베트남 전쟁 때 지뢰를 밟아서 두 다리를 잃은 참전 용사입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돌아와서 다리가 없어 걸을수가 없으니까 물구나무를 서서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연습한 그는 비로소 물구나무로 미국대륙을 횡단하기로 결심 합니다. 그래서 미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4,454km를 두 팔로 물구나무서기로 걸어서 3년 8개월 6일 만에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횡단을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걸어서 미국을 횡단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그는 물구나무를 하고서 밥만 먹으면 거꾸로 서서 팔로 걷고 또 걸어서 결국 3년 8개월만에 미국을 횡단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전 세계의 기자들이 모여서 “당신은 왜 그런일을 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보브 위렌트는“건강을 잃은 사람들과 장애자들에게 그리고 실의에 빠진 청소년들과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싶어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그 오랜시간을 물구나무서기로 걸었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위랜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3년 8개월동안 물구나무를 서서 걸었지만 그러나 내게는 힘들거나 지루하거나 권태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셨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걸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요 나의 자랑이십니다”

 

보브 위렌트는 불우한 청소년과 아이들 그리고 장애자를 돕고 싶다는 소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네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증거합니다. 5절에서는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드리는 기도와 성도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워터루 싸움에서 나폴레옹을 이긴 아더 웰링턴은 훌륭한 성품의 장군 이었습니다. 그런데 웰링턴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후에 교만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가 어느날 여러 부하들을 거느리고 여우 사냥을 나갔습니다. 여우를 발견한 웰링턴은 힘차게 말을 몰았습니다. 그런데 여우는 펄쩍 담장을 넘어서 한 농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농장에는 문을 지키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웰링턴은 그 소년에게“문을 열어라. 여우를 잡으러 들어가야겠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딱 잘라서 거절했습니다.“죄송합니다만, 농장 안으로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사냥꾼이나 외부인들이 함부로 농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주인님이 일부러 담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아무도 들여 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십시오.”

 

그 말을 들은 웰링턴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이건 명령이다. 빨리 문을 열어라! 난 웰링턴 장군이다!”그런데도 소년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열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각하처럼 높으신 분께서 농민의 어려움을 상관하지 않고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실수가 있십니까? 제가 보니 당신은 웰링턴 장군님이 아닙니다. 우리 웰링턴 장군님은 절대로 그럴분이 아닙니다 우리 웰링턴 장군님은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웰링턴은 할말을 잃고서 돌아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그래, 네 말이 옳다. 여우는 놓쳤지만 오늘 귀한 교훈을 얻었구나 내가 변하긴 변했나 보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잘되고 잘살고 이전보다 형편에 좋아 졌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거나 남을 우습게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명예가 높을수록 직분이 귀할수록 더욱 겸손하게 사랑으로 베풀며 섬기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합니다. 진도 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은 장관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예민한 때에 처신을 잘못한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공격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조선시대때 황희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습니다. 황희정승이 젊어서 정승이 되어 시골길을 가다가 두 마리 소를 몰고 일하는 농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가 하나는 황소이고 하나는 검은소입니다. 황희정승은 농부에게 “그 두 마리 소 가운데 검은 소가 일을 잘합니까, 누런 황소가 일을 잘합니까?”

 

그 말을 들은 농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황희정승이 몇 번씩 물었지만 농부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정승 같으면 농부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이놈아! 내 말이 말같이 들리지 않느냐?”하면서 당장 고을 사또를 불러서 불호령을 내리고 곤장을 칠 일입니다. 그런데도 황희 정승은 낮은 직급으로 있을때나 영의정으로 일할때나 워낙 선하고 착해서 기분은 좀 나빴지만 내색을 하지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만큼 가고 있는데 그 농부가 뒤쫓아와서 절을 하더니“선비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아까 어르신께서 물어 보실 때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리 짐승이지만, 주인인 제가 저 누런 황소가 일을 잘 못한다고 하거나 저 검은소가 일을 잘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일을 잘 못한다는 말을 들은 소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사실은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누런 황소는 꾀를 좀 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품이 훌륭했던 황희 정승은 그 농부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랫사람들을 대하거나 누구를 대하더라도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희정승은 조선시대 최고의 정승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환란날에 하나님을 의지 하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환난을 체험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항상 밤낮이 바뀌는 것처럼 좋은 일과 고난이 서로 바뀌면서 수레바퀴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환란과 고난이 오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든지 뜬금없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 집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직접 불러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과거를 묻어 버리고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새로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소망을 품고 행복을 꿈꾸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수천리 먼길을 여행해서 약속의 땅으로 왔는데 그 땅에 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은“이러다가 객지에서 온 가족이 굶어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애굽으로 이사를 갑니다.“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그때 아브라함은 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살 수가 없는 땅인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으로 오게 했을까? 갈대아 우르에서 얼마든지 잘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기근의 땅으로 인도한 것인가? 말씀을 따라, 믿음을 따라 왔는데 왜 고난이 오는가?“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약속의 땅에도 실패가 있고 믿음 따라 가는 길에도 어려움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도 직장에서 실직하고 아이들이 독감에 걸리고, 빚은 늘어가고 예수를 믿는데도 가족들이 서로 짜증을 부리면서 갈등이 계속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도 회의가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믿음 따라 나선 길의 결국이 이거란 말인가?“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님이나 장로님 또는 권사님을 만나면 ”그럴 때일수록 더욱 기도하고 믿음의 줄을 꽉 붙드세요 굶어 죽을지언정 약속의 땅을 떠나서는 안돼요“라고 충고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이런 문제를 내가 직접 당하면 말처럼 믿음을 따라서 사는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약속의 땅에서 버티어 냈더라면 분명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길목에서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위기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인간적인 방법을 택할 것인가?" 라는 갈림길에서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찾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 것은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신본주의입니다. 그래서 방법이 출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출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26:2) 라고 명령 하신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삭의 아비인 아브라함도 당연히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고민 하다가 애굽으로 내려 갑니다.”성경에도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 거류 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창12:10) 라고 증거 합니다.

 

생각이 떠올랐다고 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타락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내려갔다는 말은 단순히 지리적 개념만은 아닙니다. 신앙도 내려가고 영성도 떨어지고 기도의 열심도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따라 가다가 다시 과거로 회귀한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열심히 제단을 쌓으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내려가서는 한번도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애굽에 가서는 몸부림치며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육체를 따라 갔기에 모든게 망쪼요 죽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을 떠나면 두려움이 찾아 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문제가 찾아 옵니다. 믿음이 떨어지고 나니 기근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불안입니다. 그것도 예쁘게 생긴 아내 때문에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가면 갈수록 두려운 마음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창10:11-13)

 

성령과 믿음이 충만할 때는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모든 사람이 형제 자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떨어지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도둑놈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생각도 부정적으로 변해서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내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고 내 입에서 남을 원망하면 그게 바로 내 믿음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을 만나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면 성령과 믿음이 세상을 이기지만 성령과 믿음이 떠나면 세상 사람들에게 반드시 지고 맙니다. 가나안에 있으나 애굽으로 내려가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 좆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겐 말씀이 있고 진리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애굽인들은 대게 함의 자손들입니다. 피부는 검고 몸은 작습니다. 한편 아브라함과 사라는 셈족 자손입니다. 피부가 하얗고 인물이 좋습니다. 게다가 사라는 특별한 미인이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당시 애굽인들 중에는 여인을 얻기위해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아내를 뺏길까봐서 두려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저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내 아내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력을 발동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꾸며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하기 전 까지는 아무도 아브라함의 아내를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자마자 진짜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잠언 29장 25절에 보면“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 보아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믿음 따라 살아왔다면 기근이 와도 고난이 와도 하나님께 내 믿음의 진실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고난의 때가 바로 믿음의 줄을 더욱 단단히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 믿음의 줄을 단단히 붙잡으면 하나님이 개입 하셔서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애굽에 내려가면 아내를 누이라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죽이지는 않겠지.”라고 생각 했습니다. 인간의 잔꾀와 꼼수가 발동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꼼수와 잔꾀를 발동한 순간 엄청난 문제가 일어납니다.“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10:15)

 

아리따운 아내를 누이라고 하니까 애굽의 대신들이 아내 사라를 애굽왕의 후궁으로 천거한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신이 판 무덤에 자신이 묻혔습니다. 게다가 사건은 더욱 꼬여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전개가 됩니다.“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16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작은 시련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내멋대로 행했더니 인생이 계속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을 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수습조차 할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갑니다.

 

이 문제가 왜 중요한 문제냐 하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무너지면 믿음의 가문이 무너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을 이어갈 아들 이삭을 낳아야 합니다. 그 핏줄을 타고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애굽 왕의 후궁이 된다면 그 후손에서 메시야가 탄생하시는것이 아니라 당장 사탄마귀의 자식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떨어지면 모든 것을 사탄마귀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나도 아내도 가정도 모두가 세상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작전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승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 됩니다. 내가 바로서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바로 섭니다. 나의 신앙생활의 승리는 교회의 승리요 선교의 승리입니다. 복음이 승리하는 그 길이 바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전화위복"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라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고난은 반드시 전화위복이 됩니다. 이걸 바울사도는 로마서 8장28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날, 한 여 집사님이 담임목사님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목사님! 이번에 우리 딸이 사법시험을 봤는데 꼭 떨어지게 기도해 주세요!”목사님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집사님! 왜 딸이 사법고시에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그러자 집사님은“고것이 공부를 잘해서 너무 기고만장해서요! 우리 딸아이가 사법고시까지 합격하면 콧대가 높아져서 아마 시집도 못갈거예요 차라리 떨어져서 겸손하게 지내다가 시집을 가야 평생 행복하게 살죠! 그래서 이번 고시에서 반드시 떨어져서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겸손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엄마는 정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게 뭔지를 아는 엄마입니다. 딸아이가 시험에서 떨어져야만 하나님을 경외 하면서 인생을 제대로 살겠기에 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 집사님은 딸아이의 인생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결코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고난은 오히려 우리를 살리고 흥하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금번에 윤기원집사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 했는데 다음날 김예슬집사님이 전화를 해서“목사님! 이번에 하영이 아빠에게 있었던 사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멧세지가 틀림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남해로 이사 왔는데 그만 믿음의 느슨해 져서 주일성수까지 못하고 헤이해 지니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믿음생활 잘하라고 이런 사고를 주셨어요 이번일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라고 하면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난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노새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노새가 물 없는 우물 속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그 노새를 구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심하던 농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노새는 이미 늙었고, 마른 우물도 언젠가는 메우려고 했으니 노새를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웃들과 함께 마른 우물 속에 흙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노새는 흙에 파뭍혀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새가 위에서 쏟아지는 흙을 털어내고는 발로 그 흙을 밟고 점점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노새는 우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물에 흙을 쏟아 붓는 것이 노새에게는 분명히 죽음을 맞이할 위기상황 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노새가 다시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고난이 쏟아지고 피할길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게서 피할길을 주십니다. 그래서 길게 보면 지금 당하는 고난이 약이 되고 거름이 되어서 내 인생을 더 건강하게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 사업가가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면서도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진실을 선택 했습니다. 그는신용을 지키고 진실편에 서서 인생을 살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그사람의 이름이 최태섭입니다.

 

이 분이 만주에서 사업을 했는데 만주 일대에서 대량으로 콩을 사서 중국인들에게 판매하는 중계업자 일을 했습니다. 한번은 만주의 대 지주로부터 수백가마의 콩을 사서 중국 상인들에게 넘기기로 하고 계약을 성사시켰는데, 계약한 콩을 넘겨받기 바로 직전에 갑자기 콩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중국 상인들에게 위약금을 물어주고 다른 상인들에게 콩을 넘기면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중계업자가 그렇게 했고 중국 소매상인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최태섭씨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앞에서 고민하다가 중국 상인들에게 계약 내용 그대로 이행 했습니다.

 

그러자 싼 값에 많은 콩을 넘겨받은 중국 상인들은 너무나 고마워서 이익금의 상당한 금액을 최태섭씨에게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최태섭씨는 그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이 중국 상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후에 중국 상인들은 너도나도 앞 다퉈서 최태섭씨가 경영하는 회사를 통해서 거래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최태섭씨는 만주에서 정직하기로 유명한 사업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해방후에 그가 남한에 와서 다시 사업을 하기 위해서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열심히 사업을 해 나가던 어느날 6·25 전쟁이 일어났고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는데 피란길에 오를 준비를 하던 최태섭씨는 자기가 빌린 돈을 갚아야 할 날이 6월 26일 인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서 은행으로 갔습니다. 전쟁이 나자마자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챙겨서 떠나는 상황인데 그는 거꾸로 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간 것입니다.

 

최태섭씨는 돈이 든 가방을 들고 은행 직원을 불러서 돈을 갚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은행 직원은 최태섭씨를 보고서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아니? 지금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전쟁 통에 대출 장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부는 벌써 차편으로 부산으로 보냈고 일부는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전쟁통에 무슨 돈을 갚으러 오셨습니까? 그래도 갚으시겠습니까?”

 

은행 직원이 하는 말을 들은 최태섭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습니다. 사실, 갚을 돈을 은행 직원에게 준다고 해서 그 돈이 은행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최태섭씨는 돈을 갚기로 작정하고 은행 직원에게 돈가방을 열어서 돈을 준 후에 영수증을 써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은행 직원은 최태섭씨로부터 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네주었습니다.

 

6·25전쟁이 끝난 후에 최태섭씨가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에서 군납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신선한 생선을 부대에 공급하는 일을 했는데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자, 그는 원양어선을 구입해서 고기를 잡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나 담보물이 전혀 없기에 배를 구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산의 한 은행을 찾아가서 배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융자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전쟁이 막 끝난 후라 아무런 담보도 없는 사람은 절대로 대출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대출이 안된다는 사실을 안 그는 은행 문을 나서려다가 문득 자기가 전쟁 중에 피란길에 오르던날 서울에서 갚은 빚이 잘 정리되었는지를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품에 간직하고 있던 영수증을 은행 직원에게 보여주면서“3년 전에 내가 빚을 갚았는데 그 빚이 잘 정리가 되었는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장의 영수증이 최태섭씨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 영수증을 본 은행 직원이 깜짝 놀라서“아! 바로 당신이었군요! 전쟁이 끝난후에 직원 연수가 있었는데 그때 피란 중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고객이라면 두말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 주라는 고위층 간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당신 이었군요! 당신의 정직함은 우리 은행가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그 말을 한 직원은 그를 은행장의 방으로 안내했고 은행장은“당신처럼 진실하고 정직한 사업가를 여기서 만나다니 참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직원에게 이분이 필요한 금액을 당장 대출해 드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최태섭씨는 대출 받은 사업자금과 은행권의 신용을 바탕으로 해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 나갔고 결국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나라 유리를 세계 시장에 수출한“한국유리주식회사”의 설립자인 최태섭장로님이십니다.

 

믿음 따라 사는 길에도 고난이 오고 전쟁도 옵니다. 그러나 고난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실과 진실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전쟁통에 은행빚을 갚는 일이 바보같은 일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성공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손해가 오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진실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가 복을 주십니다.

 

한국교회가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 때문에 많은 열매가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한 선교의 첫세대는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반열에 앉게되고 최고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한국교회에는 수 많은 선교사님들과 순교자의 피가 있었기 때문에 축복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지켰기에 엄청난 부흥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제암리교회는 통째로 순교의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3.1운동이 벌어지자 하루는 일본군 장교가 지휘하는 부대가 수원의 제암리로 들이 닥쳤습니다. 일본군 장교는 교인들에게 훈시할 것이 있으니 기독교인들은 교회로 모이라고 지시를 했고 30명의 교인들이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교인들이 모이자 교회의 창과 정문을 잠그고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 한 여인이 제발 아이 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아이를 창문으로 내 보였는데 일본 경찰들은 무자비하게 총으로 쏘아서 아이 엄마와 아이를 죽였습니다.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나오려고 하자 일본 경찰들이 일제히 총을 쏘아서 나오는 사람들을 사살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다 교회 안에서 불타 죽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수많은 아픔과 고난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셨고 오늘날 이와같이 교회가 부흥 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잘못하면 주위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서면 가정이 바로 섭니다. 교회가 바로 섭니다. 시대가 서고 나라가 서고 민족이 바로 섭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려울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번 예수 믿었으면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이 와도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증거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에 보면“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재미교포 여성 기업가인 김태연 회장(TYK 그룹)은 지금은 크게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지만, 본래는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녀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가 손자를 기다렸는데, 손녀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지 않았습니다. 비관한 아버지는 매일 술에 젖어서 살았고, 아내와 다섯 살 난 딸을 마구 구타했습니다.

 

김태연씨의 어머니는 너무나 괴로워서 어린 딸과 함께 양잿물을 먹고 같이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죽기로 작정하고 양잿물을 준비해 놓고 이제 내일 아침에 남편이 집을 나가면 딸과 함께 양잿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다음날 새벽에 6.25가 터졌습니다. 그때 김태연씨가 다섯 살 이었는데 엄마와 함게 피란을 가는데 여기 저기서 폭탄이 떨어져 터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도 어머니와 김태연씨는 살아남았습니다.

 

6.25전쟁이 끝난후에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면서 김태연씨도 엄마를 따라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술주정은 여전했고 교회에 다닌다고 더욱 핍박하면서 모녀를 때렸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형편이 나아지질 않자 김태연씨는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바닥 생활을 했습니다. 미국생활 10년만에 1982년도에 너무나 힘들어서 2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데려가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두주 금식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시는데 자기가 성공을 해서 복되게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녀는 그 환상을 보고서 소망을 갖고 새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생각 하면서 다시 일을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일이 형통하게 풀리더니 1985년도에 재산을 몽땅 정리해서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을 했는데, 그때부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고 그녀는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여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간증하면서 외칩니다. “고난이 있다해도 절망은 없습니다.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복되게 살수 있고 승리하게 됩니다”아무리 극심한 고난이 있고 절망스러운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축복이 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잘 되어서 가족과 형제들도 돕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이 모든 영광은 고난을 이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온전하고 굳건하고 강하게 만드셔서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을 믿고 감사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사와 찬양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믿음으로 감사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의 사람을 크게 기뻐하시고 더 큰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를 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고난이 와도 감사 하면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면 고난은 크게 유익이 되고 훈련이 되어서 나에게 복이 되지만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탓만하면 아무런 은혜도 기업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고난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아름다운 무지개빛 행복을 발견하고 그 행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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