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린이 주일인데 어린이를 주제로한 말씀은 수요 저녁예배때 하기로 하고 오늘은 믿음에 관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통합측 총회장을 지낸 고(故) 유호준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일찌기 조실부모하시고 이모님 밑에서 자라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어느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모님이 임종을 하게 되었는데 이모님이 임종하면서 마지막으로 유호준목사님에게 이런 유언을 하셨습니다.“유 목사님! 예수 잘 믿으세요! 예수 잘 믿으셔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 없는 당부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목사에게 예수를 잘 믿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예수 믿는 일이 직업이고, 예수 믿는 일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유호준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는 목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 목사도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총회장을 지낼 정도로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그런 목사님에게 예수를 잘 믿으라는 말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유목사님의 이모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중요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성의 최고봉은 사랑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우선해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살아있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런데 우리를 영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영생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사랑도 행치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수십년 믿었어도 믿음이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믿으면 그런 사람은 최고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지난 목요일날 제 집사람과 이진숙집사님이 하동 요양원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91세되신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 할머니가 제가 목사인것을 알고는 제 손을 붙잡고 “아이고 목사님이세요? 목사님! 어떻게 목사님이 이곳에 오셨습니까? 저는 요양원에 있으면서 우리 목사님도 뵌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곳에 오셨으니 고맙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하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들이 온 것 보다 좋아 하셨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가 제 손을 붙잡고 기뻐서 좋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참 복받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목사가 되어서 생면 부지의 할머니 집사님이 자식보다도 나를 더 기뻐하니 이게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안나처럼 애타게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지내셨고 또 주의 종을 사모하고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 집사님이 얼마나 성경을 읽고 얼마나 찬송을 불렀는지 머리맡에 가지고 계신 성경 찬송이 다 닳아서 너덜 너덜 해 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목사님! 저는 찬송을 마음껏 부르고 싶은데 이곳에 있는 다른 할머니들이 싫어 할까봐서 찬송도 마음껏 못 부른답니다! 찬송 좀 마음껏 불러 보았으면 좋겠어요!”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몸이 너무 아픕니다! 몸이 아파서 하루종일 쑤시고 저려서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하나님께 하루종일 기도를 한답니다! 저녁에도 밤 9시만 되면 기도를 합니다. 한시간 두시간 기도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쓰러져서 잠이 듭니다! 그러면 새벽 두시나 세시에 깨는데 그러면 잠이 안와서 다시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기도 하다가 새벽이 됩니다 목사님! 비록 몸은 아프지만 저는 예수님이 너무나 좋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았으니 너무나 행복 합니다. 예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91세 되신 그 집사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옆에서 그 집사님의 간증을 함께 들은 제 집사람과 이진숙집사님도 동일한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세상에, 나이가 91세 인데도 외롭고 고독한 노인요양원에서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속절없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도 그 연로하신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기뻐 하면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목사님이 오셨다니까 마치 예수님이라도 만난듯이 기뻐하시면서 제 손을 붙잡고 놓아 주질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귀한 믿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 하기를 “나도 이다음에 나이가 들면 저런 믿음으로 인생을 마감 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는 제 집사람과 이진숙집사님과 셋이서 또 다른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권사님 이셨습니다. 그분은 수십년을 교회에서 직분자로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망 불평만 늘어 놓았습니다.
“아이고! 내가 죽어버려야지! 열흘만 굶으면 죽는다는데! 남자는 열흘 굶으면 죽고, 여자는 12일만 굶으면 죽는다는데, 내가 굶어 죽어야지! 살아서 뭐하나!”하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어떻고 며느리가 어떻고 영감이 어떻고 저사람이 어떻고 하면서“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죽어 버려야지!”하면서 쉬지않고 원망 불평을 쏟아 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듣다 듣다 못해서 그 권사님에게 “권사님! 권사님은 하나님을 왜 믿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소망을 가지고 살려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언젠가는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그 소망이 우리에게 최고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고난중에도 즐거워 하면서 살 수가 있는데 왜 그렇게 비관하고 낙심하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원망을 하십니까?"
"권사님! 두가지만 생각 하세요! 첫째는 오직 예수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붙잡아야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갑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회개 해야 합니다! 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권사님은 예수님을 붙들고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제가 그 권사님에게 진리를 가르쳐 드렸는데도 그 권사님은 제 이야기는 소귀에 경읽기 처럼 여기시고 계속해서 쉴새없이 자기말만 떠들어 대셨습니다.
저는 두사람의 믿음을 비교해 보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행하여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진리를 듣고도 행치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서 구원받지 못했다는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그날 제가 만난 집사님과 권사님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한 분은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고 또 기뻐 하셨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기도를 해 드려도 아무런 감동도 기쁨도 없고 기도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기도가 끝나자 마자 “여기는 운동할 기구도 없고 기동 하기도 불편하고, 전화기가 어떻고, 이사람이 어떻고” 하면서 기도가 끝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시 연상 쓸 데 없는 말만 떠들어 댔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이 권사님은 정말 믿음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91세가 되었는데도 목사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그 나이가 되도록 일편단심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그 집사님은 참으로 복된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 권사님을 만나고 나오기 전에 다시 권사님에게 “권사님! 예수님을 믿고 회개 하셔야 합니다”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중병으로 걷지도 못하고 침상에서 생활하는 그 권사님에게 회개 하라고 했으니 그 말이 좀 섭섭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여러분도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느때 죽을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죽음을 예비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날에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갑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그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아마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죽이려고 달겨들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언제 죽음이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959년도에 미국 인디애나 주(州)에 있는 해먼드 제일침례교회에서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데 한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는 잭 하일스(Dr. Jack Hyles) 목사님에게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빚나가서 목사님은 무사했습니다. 성도들이 그를 덮쳐서 총을 빼앗고 제압해서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없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 성도는 살인미수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권총을 쏜 사람은 그 교회의 성도 였습니다. 그 성도가 목사님에게 총을 쏜 이유는 매주일 계속되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매 주일마다 죄에 대한 책망설교를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믿은 성도는 도둑질이나 강도질 또는 거짓말이나 강간죄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라고 매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책망과 회개를 촉고하는 설교를 매주 계속 했습니다.
목사님으로부터 매주 책망과 회개하라는 설교를 듣다 못한 한 교인이 화가나서 권총을 가져와서 목사님을 향하여 총을 쏜 것입니다. 그런데도 잭 하일스 목사님은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여전히 죄를 책망하는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목사님이 또 총에 맞을까 봐서 방탄유리로 강단을 감쌌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죄에 대한 책망과 회개를 촉구하는 목사님의 설교에 부담을 느낀 성도들은 결국 잭 하일즈목사님을 교회에서 사임하도록 권면했고 목사님은 다른 교회로 옮겨 가셨습니다.
그런데 잭 하일즈 목사님보다 훨씬 앞선 시대를 사셨던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58)목사님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나단 에즈워드 목사님은 세기의 대 설교가 이십니다. 요나단 에즈워드 목사님의 별명이“대각성운동의 기수”“사도시대 이후에 가장 뛰어난 설교가”“가슴으로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바울을 닮은 목사”“미국의 보물”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최고의 목사님 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 에즈워드 목사님도 노스햄턴 교회에서 시무하실 때 매 주일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선포하고 성도들의 잘못을 가차없이 야단을 치셨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이 그런 설교를 싫어 하는줄 알면서도 선지자의 사명으로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런 설교를 계속하는 목사님의 설교가 부담스러워서 사임해 달라는 권면을 드렸고 결국 그 훌륭하신 목사님은 다른 교회로 이임하셨습니다. 죄를 회개 하라는 설교는 이땅에 오신 예수님이 최초로 하신 설교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회개와 책망은 설교의 기본입니다. 모든 성도가 당연히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문제가 있는 성도를 주시하다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성도를 단호하게 대하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정평관집사님이 섬기는 마산 열방교회의 목사님께서는 성도들이 잘못하면 가차없이 야단을 치신다고 합니다. 잘못하는것이 보이면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성도는 냉정하게 쫓아내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과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신앙으로 교회 공동체를 훼방하고 교회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훈계 하고 책망 하다가 끝까지 말을 안들으면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평관집사님 교회의 성도들은 알곡들만 넘쳐 납니다. 성도의 90%가 매일 8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저녁기도에 모두 다 동참 한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좋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앞에 칭찬받는 믿음을 가지려면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서 믿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예로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한 후에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사야 41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나의 벗 아브라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로 여기셨습니다. 친구가 되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대화가 통해야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좋은 친구가 될수 없습니다. 좋은 친구는 보고 싶고 가까이 하고싶고 늘 함께 있고 붙어 다니고 싶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한 친구를 사귀었는데 유경식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한지 제가 홀딱 반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귀고 보니까 그 친구는 유식하고 아는것도 많아서 대화중에 그 친구를 통해서 많은 상식과 지식도 얻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는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친구도 저를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교안에 아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동창들도 있고 중학교 동창들도 있었기에 발이 넓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진학 했기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1학년때 양양승이라는 친구를 사귀었는데 반이 바뀌는 바람에 헤어지고 다시 사귄 친구가 유경식친구였는데 저는 유경식친구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 친구와 같이 있는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유경식친구가 다른 친구를 만나거나 다른 친구와 어울려서 놀러가면 저는 속이 상해서 질투가 났습니다.
저는 유경식친구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유경식친구에게 잘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학교에서 반을 다시 가르고 섞는 바람에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로도 저는 항상 유경식친구를 잊지 못하고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꿈에도 그리던 동창 유경식친구가 저희교회 카페에 들어와서 제 설교아래에 댓글을 남겨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카톡을 통해서 한두번 유익한 글을 보내주어서 무언의 인사치레를 했지만, 비로소 교회 카페에서 그 친구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유경식친구는 미국으로 이민가서 장로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저에게 있어서 대단히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당시에 늘 경건했고 시를 좋아했고 아는것도 많고 인물도 잘 생겨서 저는 그 친구를 마치 데미안처럼 생각 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제 자신을 싱클레어라고 생각했고 그 친구는 데미안처럼 위대한 친구로 생각 했습니다. 같은반에서 지내는 동안에 그 친구는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대화의 상대 였습니다. 저는 제 인생의 모든 이야기와 모든 고민과 모든 생각과 장래와 가정사까지를 그 친구에게 다 털어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그 친구는 자상하고 친절하게 좋은 조언과 도움이 될만한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믿음좋고 착한 친구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황하지 않고 사춘기를 보낼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여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사랑하는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가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시는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무엇보다 중요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경으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직접 말씀 하시기도 하고 설교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직접듣고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 시대의 설교자들을 감동 하셔서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설교자를 통해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주로 생각이나 감동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분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달 쯤 전에 예배를 마치고 사택으로 가는데 사택 마당에서 김강태집사님이 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김강태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곳에 예배당을 지으면 참 좋을텐데"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습니다. 며칠동안 그 말씀이 기억에서 뱅뱅 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하! 김강태집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께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전에 이 개울쪽으로 성전건축을 하면 경치도 좋고 동네에서 시끄럽다는 소리도 안듣고 여러모로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김강태 집사님을 통해서 개울쪽으로 예배당과 노인 요양원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 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한 끝에 성전건축을 개울쪽으로 짓기로 하고 새롭게 추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10장19절로 20절에 보면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말씀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사도행전8장 29절에도 보면“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행 10:19에 보면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행 13:2에도“성령이 이르시되” 성령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성령님을 통해서 감동하시는 말씀도 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에 보면“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변론이 무엇입니까? 사리를 밝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변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의견을 나누자는 말씀 입니다. 대화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믿음생활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가족들과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이 가정생활을 잘합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안통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꾸만 하나님께 말을 걸어야 합니다. 길을 갈때나 차를 탈때나 논밭에 있을때나 언제든지 주님께 사랑고백을 하고 도 내 사정을 늘 아뢰면서 지내야 합니다. 어런 손녀딸이나 손자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조잘 조잘 대면서 이야기를 하면 시끄럽다고 쫓아낼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또 자상하게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와 동행을 하는데 대화가 전혀 없이 동행한다면 서로가 불편해 지고 서먹서먹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가 잘 통해야 합니다.
영국의 한 보험회사(Sheilas' Wheel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국 남자들은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잃어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물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국 남자 10명 중에 9명은 목적지를 안 가면 안 갔지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1년에 한사람이 평균 450km를 헛 주행 한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헛고생 하는 셈입니다.
믿음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물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늘 형통하지만 하나님께 묻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만큼 못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고생을 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제 허주 목사님의 아들 허성인군과 장한결양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 오는데 오후 세시에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까 새박 한시 였습니다. 무려 10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은혜를 깨닳았습니다. 결혼주례를 맡은 허주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말씀을 깨닳았고 그리고 돌아 오면서 명절때마다 부모님을 찾아오느라 고생하고 수고하는 자녀분들의 수고로운 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결혼식장에서 저희 남해 세광교회에 150만원 상당의 빔 프로젝터를 헌물해 주신 하철순권사님도 만나고 친구 목사님들과 더불어 오랬동안 못난났던 총신대학 신학 대학원 동창 목사님도 만나서 감회가 새로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 주셨고 그 교회에서 목회할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그래서 제 집사람과 함께 찬송하면서 기도 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 하면서 돌아 왔습니다.
믿음생활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느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족을 의지하고 친척도 의지하고 재물과 땅도 의지하면서 살아 갑니다. 아브라함도 가족과 친지를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더 이상 부모나 친척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우리들의 신앙의 여정을 미리 보여준 예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한가지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 40년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물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거기서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광야에서 단 하루도 살아남기 힘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존 했습니다.
신천옹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태평양에서 사는데 새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새입니다. 약 60년에서 80년을 삽니다. 이 새는 오래 날고, 멀리 납니다. 이 새가 멀리 날고 오래 날 수 있는 비결은 하늘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새의 날개 길이는 2미터에서 3미터 정도가 되는데, 일년에 3200키로나 되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면서 살아 갑니다.
이 새가 날아갈 때 10%는 자기 힘으로 날고 나머지 90%는 바람의 힘으로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람의 힘으로 나니까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날 수 있고, 멀리 날 수 있고, 에너지 소비가 적으니까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신천옹인데 (믿을신 新) (하늘천 天) (늙은이옹 翁)입니다. 하늘을 믿고 오래 사는 새라는 뜻입니다.
한편 벌새는 신천옹과 반대입니다. 벌새는 약 6cm의 작은 새인데 벌새는 1초에 80번 날개짓을 합니다. 벌새는 신천옹처럼 바람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힘으로만 날아 다닙니다. 그래서 벌새는 오래 날수도 없고 멀리 날 수도 없습니다. 벌새는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울타리에 앉았다가, 꽃에 앉았다가 하면서 돌아 다니는데 수십미터를 못날아 갑니다. 수명도 4년밖에 못산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 힘으로 살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힘들지 않게 오래 삽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래서 인생이 고달픈 것입니다.
인생이 고달픈 것은 돈이 없거나 몸이 병들어서가 아니라 영적인 만족과 안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만족과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만 누릴수 있습니다.
이어서 믿음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하기를 “완전한 축복은 하나님의 비전속에 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완전한 축복은 내가 목적하는 것을 이루거나 내가 만들어낸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에 집중하여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향해서 살 때 완전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빌 2:13). 하나님께서 하고 싶으신 일이 계시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에 강력한 소원을 주십니다. 그러면 마음에 소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세상 쾌락과 즐거움을 멀리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집을 떠나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디모데는 가르치는 사명을 받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주의 종을 섬기는 사명을 받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사명을 받았고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장사 지내는 사명을 받았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명을 받았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사명을 받았고 사도요한은 계시를 받아서 천국과 지옥을 소개하는 사명을 받았고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를 세우고 전도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믿음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과 비젼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어 드리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 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유명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따라 사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영광이 주어 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한 명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사니까 큰 민족의 비전이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아주 작고 소박한 비전도 있고 또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큰 비전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전을 받게되면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포기합니다. 나에게는 그런 비젼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되고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비전도 이루어 낼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비젼을 감당할 능력과 믿음을 주셔서 그 비젼을 성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비젼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모든 기적이 말씀과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벌한 시대에 국가적인 핍박 속에서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온갖 훼방과 핍박 속에서 우리 남해 세광교회가 세워 졌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신실하고 믿음좋은 착한 성도들만 불러내셔서 남해 세광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성도들은 하나같이 순한 양같은 성도들이 모여서 세워 졌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복을 쏟아 부어 주셔서 다른 교회가 수십년에 걸쳐서 이룰 일들을 5년만에 이루어 주셨고 지금도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비젼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합력하여 이룬 역사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과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릴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기도할 때에 응답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찬양할 때마다 치유와 성령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도님들이 아멘으로 말씀을 받아 결실하게 하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상달되어 응답되게 하시고, 질병이 치유되고, 병마가 떠나가고, 귀신이 물러가는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대로 복이 임하게 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네 믿음이 너를 치유했다! 네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가져왔다!“라고 선포되는 주님의 선포와 축복과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합심해서 드리는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 한 대로 믿음대로 하나 하나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런 모든 기적을 불러오고 나타내고 기적이 계속되는 결정적인 동기는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에는 긍정적인 믿음과 부정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믿는 믿음은 긍정적인 믿음입니다. 한편 자기 생각과 자기 습관대로 믿는 믿음은 부정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축복과 응답이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두분의 상반되는 믿음이 그와 같습니다. 한 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바라보고 있기에 요양원에 있어도 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한사람은 예수님을 전혀 바라보지 않고 지내기에 수십년을 믿으면서도 입만 열면 원망 불평이 나오고 내가 굶어 죽어야지 못살겠다고 탄식을 하면서 지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기도 하고 복을 차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그는 38년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방식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물이 동할 때 먼저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면 낫는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그는 전통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믿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을 믿었습니다.
만복이 하나님을 통해서 오는데 그는 엉뚱한 것만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아서 천국에도 가고 병도 치료 받는데 그는 엉뚱한 것만 믿었기에 38년을 믿으면서도 고생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도 체험하지 못하고 은혜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고집대로 믿으면서 살아 왔습니다. "여기서 기적이 있었으니까 여기서 이대로 기다리면 되겠지!" 라고 생각 하면서 막연한 기대와 막연한 소망만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확실한 소망이나 확실한 기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38년동안 건강이 조금도 호전되지 않습니다.
이런 막연한 믿음과 엉터리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기적은 없습니다. 구원도 없습니다. 내 삶의 변화도 없습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내 소원을 절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믿고 자기 고집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베데스다 연못가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말씀을 선포 하셨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믿어온 믿음을 버리게 만드셨습니다. 물이 동할때 연못에 들어가려는 믿음에서 벗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믿음을 선포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이 병자가 평생에 처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합니다. 비로소 자기의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놀라운 기적이 임했습니다. 그가 자리를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순간! 38년된 질병이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기적은, 병이 나은 것도 기적이지만 38년된 병자가 자기 마음을 바꾸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기적입니다. 그 중풍병자가 ”당신이 뭔데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 겁니까? 지금 중풍병자인 나를 놀리는 겁니까? 38년을 이렇게 누워서 살았는데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니요? 나를 놀리지 마세요!“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 했다면 이사람은 죽을때까지 그대로 누워서 지내다가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람이 평생에 처음으로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자기의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전정한 은혜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과 고집스런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팍하고 완악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
너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려면 오직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한 나를 믿는 표적 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육체의 문제, 마음의 문제, 영혼의 문제, 죄의 문제, 지옥의 문제가 해결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사탄마귀에 의해서 그 영혼과 육체가 파괴되고 억압당하고 질병과 죄와 온갖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지배를 받게된 인간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정신 분열증 환자처럼 되어 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허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승리는 따논 당상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만 붙잡고 살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예수님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죄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거지 바디매오는 일생에 한번 주어진 기회를 포착합니다. "내가 오늘은 무슨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만나야지!"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갈 때 예수님을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18:38) 바디매오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향하여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을 외면 하신적이 없습니다.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르짖는 사람은 반드시 만나 주셨습니다. 고난의 때에 힘들때에 문제가 생겼을때 예수님을 부르면 예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은 자기의 실존을 걸고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인생 전체를 걸고, 내 몸 전부를 걸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디매오가 사필규정으로 예수님을 부르자 예수님은 가던길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18:41) 그때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선포 하셨고 그 소경은 그자리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2∼24)
산을 향하여“바다에 던져지라!”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으로 믿고 하나님께 아뢰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너에게 산같은 문제가 있다해도 믿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어 진다는 말씀입니다.
산처럼 우리를 억누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들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내게 고통을 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예수의 이름으로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속에 이런 무거운 산이 있습니다. 내가 바다에 던지겠습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이 산을 바다에 내던지겠습니다. 내 육체를 아프게 하는 것, 내 안에서 나를 쏘는 것들을 바다에 던지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예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내 믿음과 사랑의 대상이신 예수님께 모든 문제들을 맡기고 우리에게 주신 삶을 주님과 함께 새롭게 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려야할 축복입니다.
“하나님, 제 사업이 89년에 5백억, 90년에 1천억의 매출을 기록하게 하옵소서” 1980년 9월달에, 다른 사람에게 5백만원을 빌려서 두평짜리 가게를 얻어서 옷가게를 시작한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의 기도제목입니다. 수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이랜드는 1986년도에 본격 법인체로 등록한 이래 매년 300%의 성장을 이뤄왔고 89년도 총매출액은 1천억을 기록했고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성수회장에게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박성수 회장은 자신 있게 말합니다.“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기도하고 그 분의 뜻에 복종하십시오. 자신을 비우는 청지기적 삶의 자세와 물질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실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시길 원하시지만 우리가 받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기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박성수회장은 비록 두 평짜리 가게를 얻어서 옷장사를 시작 했지만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서 사업을 했기에 하나님이 복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5천억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대기업과 섬유업계도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박성수회장은 주일성수 때문에 백화점에 납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점마다 주일에 휴업하게 하고, 불건전한 스포츠 신문에는 자회사의 광고 선전도 안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믿음과 복종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회사는 더욱 번창했고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중에 하나로 성장 했습니다.
루터는 고백하기를“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보다 복종하는 사람이 되겠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은 복종하는 신앙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오직 믿음으로 행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을 품고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간에 복을 누리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오직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이루면서 살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육간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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