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이 어느 날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서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없으니까 한 사람이 다가와서“ 선생님! 동석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하라고 말한 후에 음식이 나오자 머리를 숙이고 한참동안 감사기도를 드린후에 식사를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사람이 목사님에게“혹시 머리가 아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아닙니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그러면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왜 그렇게 음식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다가 식사를 하십니까?”“아닙니다! 저는 목사인데 식사하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밥을 먹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남자는“아, 그래요?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내가 음식을 사서 먹는데 왜 기도를 합니까? 저는 기도 안하고 식사를 합니다”
그러자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이“아 그래요? 저희 집 강아지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짐승들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지 않지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얼굴이 빨개져서 밥도 안먹고 밖으로 나가더랍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더니 이사람이 밖에서 기다렸다가
“목사님! 아까 목사님이 한 말에 제가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나빠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사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청소년 시절에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모르는 짐승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상했지만 그 말씀 때문에 제 정신이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난후에 지금까지 시험과 고난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회에 나가볼까 하고 생각도 했는데 목사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내가 그동안 은혜를 모르는 짐승처럼 살아 왔구나! 하는 회개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목사님! 이번주부터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나가겠습니다”하고는 그 분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령이 역사 하시면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 집니다. 동물과 사람의 차이는 은혜를 알거나 모르거나의 차이 입니다.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대통령은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투옥되어서 27년 동안을 감옥에 갇혀서 살았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그가 완전히 폐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넘어서 감옥에서 나왔는데 그는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한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갇혀 있어도 건강을 잃거나 늙어서 나옵니다. 그런데 당신은 27년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건강합니까? 도대체 그 비결이 뭡니까?”
그때 만델라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나는 감옥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감사하고, 강제 노동을 할 때도 감사했습니다. 감사가 건강유지의 비결입니다”
그 후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나라를 잘 이끌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은 환경이나 경제조건에 좌우된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좌우됩니다. 감사할 마음만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입니다.
토요일 새벽에 시편 57편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다윗은 인생에 고난이 많았지만 특별히 잊지 못하는 두 가지 가슴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것처럼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도피했을 때 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미친사람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문짝에 기대어 어그적 거리면서 바보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때 평생지기 친구였던 아히도벨의 배신으로 인해서 신발도 못신고 슬프게 울면서 도망간 사건입니다. 미친사람 행세를 한 첫 번째 사건은 가드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가드가 어디입니까? 가드는 다윗이 쳐 죽인 골리앗장군의 고향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원수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피신을 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땅에서는 더 이상 사울왕의 칼날을 피해 숨을곳이 없었기에 다윗은 할수없이 원수 골리앗의 고향으로 피신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거기서 미친 사람처럼 행세를 하면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후에 다윗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고서 사울왕에게 고발하자 다윗은 또 다시 병사들과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모압땅으로 피난을 갑니다.
다윗은 거기서, 이번에는 늙으신 부모님들의 안전을 위해서 모압왕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요 수모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모님을 위해서 이방의 할례받지 못한 왕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감뇌했습니다.
다윗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무릎을 많이 꿇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수없이 무릎을 꿇었고, 부모를 위하여도 무릎을 꿇었고, 부하 장수들을 위하여도 무릎을 꿇었고, 자기 죄를 위하여도 무릎을 꿇을줄 아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겸손한 다윗을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한 것입니다.
다윗은 모압땅에 부모님을 맡기고 이스라엘땅으로 돌아와서 다시 아둘람이라는 굴 속에서 짐승 같이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놀라운 신앙의 결단과 더불어 아름다운 찬송시를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시가 바로 시편 57편입니다.
다윗은 1절로 6절까지에서는“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이 모든 재앙들이 지나가게 해 달라는 간구와 더불어 나를 삼키려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달라는 간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탄원기도를 드리던 다윗이 6절 부터는 갑자기 힘있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7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 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 하리이다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하나님이여 주는 하늘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비로소 결단 했습니다. 그동안은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갈등하고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으로 갔다가, 모압으로 갔다가, 광야로 갔다가, 아둘람 굴까지 도망와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도무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가장 열악한 아둘람 굴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이제는 마음을 정하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힘들고 위험한 일이 생기고 아무리 괴로운 일이 생겨도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살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결단을 내리고 나니까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9절 이하를 다시보면“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확정”과“새벽”이라는 단어 입니다. 확정은, 이제부터 내가 마음먹은 일을 결단하고 그대로 준행 한다는 말입니다. 새벽은 여명 즉 동틀 녘을 말합니다. 내가 이제부터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작정하고 기쁨으로 새벽제단을 쌓겠다는 말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실 지금 다윗의 형편은 찬송할 형편이 못됩니다. 얼마 전에는 사울왕의 핍박을 당하여 가드에 갔다가 미친사람 행세를 하면서 쫓겨나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압 땅에 가서는 부모님들을 위하여 이방나라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야 했기에 영적 자존심에도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서는 사람이 거할 수 없는 어둡고 캄캄한 동굴속에서, 뱀과 박쥐가 나오고 습기가 가득한 곳에서 속절없는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무슨 찬송이 나오겠습니까? 오히려 신세 한탄이 나오고 하나님을 원망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 어둡고 음침한 동굴속에서, 만민들과 함께 찬송하는 비젼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캄캄하고 암울한 자리에서, 열방의 모든 나라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비록 캄캄한 동굴 속 이었지만 그러나 그곳은 하늘위에 높이들린 하나님의 보좌가 보이는 곳이요, 넓은 궁창이 펼쳐진 아름다운 천상의 장소로 여겼습니다.
다윗이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렸더니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이 드린 찬양 그대로, 다윗을 회복시켜 주시고 높여 주셔서 다윗은 존귀한 자리에 앉게되고 거기서 모든 열방을 다스리고 주관하면서 수 많은 문무 백관들과 함께 날마다 하나님께 큰 영광의 찬송을 돌리면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고난의 때에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능력을 추켜 세우고 인간의 교만이 역사하면 큰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지
난 1998년도에 세계적인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11개 부분에서 모든 상을 휩쓴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는 타이타닉 이라는 영화입니다. 저는 미국에 있을때 그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밤새도록 잠을 못잤습니다.
첫째는 영화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주인공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아름다운 사랑과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 매료되어서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둘째는 소망과 꿈을 가지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서 미국으로 가던 기천명의 사람들이 대서양의 차디찬 바닷물에 빠져 죽는 광경이 자꾸만 뇌리에 떠올라서, 가슴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셋째는 배가 바다속으로 침몰해 가는데도 바이올린과 악기들을 들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이라는 찬송을 연주하면서 배와함께 물속에 수장된 그 악사들의 훌륭한 믿음에 감동을 받아서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인 1912년도에 영국은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 배는 길이가 259미터나 되었고, 무게는 46,300톤으로서 세계 최고의 초 호화 여객선 이었습니다. 그 배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해양제국이라는 명예를 걸고, 자기들의 영광을 세계 만방에 자랑하기 위해서 만든 배입니다. 그 거대한 여객선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신족인, 타이탄의 이름을 따서“타이타닉”이라고 지었습니다.
영국은 해양제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튼튼하고, 가장 호화스러운 배를 만든 것입니다. 그 배가 완성되자 세계의 모든 매스컴과 언론들은 그 배를 가리켜서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 라고 떠들어 대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배가 처음 출항할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영국을 출발한 타이타닉호는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 뉴욕을 목표로 거만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첫 항해 때,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2,340명 이었습니다. 타이타닉은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크기도 최고요, 호화스러움도 세계 최고였지만, 무엇보다도 첫 항해에서 한 가지 더,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건 속도입니다. 그래서 타이타닉은 전 속력으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미국 뉴욕에 도착했을 때“세계에서 최고로 큰 타이타닉호는 최고로 빠른 배였다!”라는 칭찬을 받고 싶었기에 선장은 최고속도로 달리라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첫 항해를 나섰던 그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배가 1912년 4월 14일날 미국을 향해 가다가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빙산에 부딪치는 바람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500명이 그 배와 함께 바닷 속으로 수장되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역사 이래로 가장 큰 침몰사고였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타이타닉을 바벨탑 사건에 견줄만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건은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낸 비극 중에 비극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들은 배를 만든후에“이배는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다”라고 건방을 떨면서 자랑을 했지만, 첫 항해에서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함을 지켜보신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입니다.
인간들은 지금도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자기들의 지혜와 머리로, 자기들이 만들어낸 발명품들을 자랑하면서 큰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이라는 죄악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인류의 적입니다. 그래서 중세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적하기를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 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사실 모든 죄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교만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죄악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게 만듭니다. 교만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면“교만은 자기 자신의 위대함과 훌륭함에 도취되어 있는 상태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남보다 조금만 더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성경 잠언 16장 18절에 보면“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오바댜서 1장에 보면 에돔에 대해서 소개 합니다. 에돔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할 당시에 가나안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에돔족속의 대표적인 죄는 환경적인 교만입니다. 좋은땅, 견고한땅, 높은 바위성같은 산성에 사는것 때문에 늘 교만 했습니다.
오바댜1장 3절로 4절에 보면“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돔은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에돔 족속은 사해 남동쪽에 있는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들과 요새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수도인“페트라”는 약 3km에 달하는 좁은 암반을 계속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군사가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그들은 적은 군사를 가지고도 적들을 막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자연적인 환경이 에돔을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세력도 에돔을 침공하거나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누가 능히 우리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교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평안과 번영은, 자기들이 당연히 누려 마땅한 영광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4절에 보면“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복을 받고 살게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지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에돔 사람들은 이걸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 잘난맛에 살았기에 결국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오바댜 1장 6절로 7절에 나옵니다.“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에돔은 믿었던 동맹국들에 의해서 배신을 당하게 되고 결국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멸망하게 됩니다. 에돔은 평화수호조약을 맺었던 바벨론에 의해서 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황폐해지고 다시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현재 에돔 땅은 지구상에서 가장 황폐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에돔사람들은 지형적인 조건과, 물질적인 풍요와, 동맹국과의 연합과, 강인한 자기들의 힘이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단번에 부숴버리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에돔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적인 부와 명예와 가족과 자녀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살아 갑니다.
그러나 성도의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과 은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제 집사람이 딸레미 졸업식때 미국에 가서 그 자리에 동참 했습니다. 그런데 딸레미가 단상에서 총장님으로부터 의학박사 학위기를 받을때 제 집사람이 학부형들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사람이 낼수있는 소리중에 가장 큰 소리로“Praise the Lord”“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처제가 그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저에게 동영상으로 보내 주어서 저도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졸업식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 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그 동영상을 보고 ”과연 우리 윤영순사모님이 남해 세광교회 사모 답구나!“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종종 연예인들이나 가수들이 연말에 시상식을 할때 대상이나 또는 큰 상을 받고나서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들으실 때 얼마나 마음이 기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 전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멀리 서울에서 박에스더집사님과 친구분이 저희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박 에스더집사님은 저의 대학 후배이신데 30년 전부터 박 에스더집사님이 고등학교에 다닐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박 에스더집사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살아 오셨습니다. 제가 10년전에 설천교회에 와서 목회를 할때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 엄청난 헌신으로 저의 목회를 도와 주셨습니다.
지금은 성경책이 바뀌어서 우리 교회도 새 성경책으로 바꾸었지만 설천교회에 있을때 한권에 4만원씩 하는 큰글 성경책을 60권이나 사서 보내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매달 헌금을 보내 주시고 시마다 때마다 박 에스더집사님께서 많은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박 에스더집사님에게 아무것도 해 드린것이 없는데도 박 에스더집사님은 그저 대학 동문이라는 그 한가지 만으로 그리고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는 저를 크게 선대해 주시고 많이 도와 주셨습니다.
박 에스더집사님은 절대로 헌금 이야기도 하지말고 소개도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지만 저는 박 에스더집사님이 이곳에 오기만을 10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제발 한번만이라도 오셔서 우리 남해세광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좀 드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얼마전에 제가 다시 집사님을 초대 했습니다. 한번 남해에 오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박에스더집사님이 하는 첫마디가 "만약에 가더라도 절대로 저를 소개하지 마세요 소개하면 안갈거예요"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가 가져야할 기본이 바로 겸손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으려면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과연 그 모습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칭찬하신적도 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부은 마리아는 주님이 오실때까지 언제 어디서나 자랑하고 칭찬하고 간증하고 복음을 전할때마다 증거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칭찬도 있는 것입니다.
올 초에 제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성경책을 사 드렸습니다. 한권에 4만원씩 하는 성경책을 교회학교 학생들 성경까지 70권을 샀습니다. 크레딧 카드로 긁어서 300만원 어치의 성경책을 샀는데 매달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박에스더집사님께서 300만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카드빚을 갚고 무거운 짐을 벗었습니다.
작년 초에 어머니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심장 수술을 받으시고 한달동안 입원해 계셔서 병원비가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때도 박에스더집사님께서 목돈을 보내 주셔서 많은 병원비를 무사히 치를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귀한 신앙의 동역자 후배집사님을 만나게 해 주셔서 정말 꼭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게해 주셔서 시골 구석박지에서 목회를 하고있는 저를 크게 위로해 주시고 도와 주셔서 어려운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이곳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귀한 후원자가 세분이 계십니다. 첫째는 정평관집사님이시고 둘째는 박에스더집사님이시고 셋째는 고경실권사님의 아들 이상헌집사님입니다. 이분들의 사랑과 섬김이 있기에 제가 늘 힘을 얻어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조내원집사님과 서은경전도사님등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희교회를 돕는 분들이 계십니다. 작년에 어머니권사님이 심장수술을 하신후에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젠 심장이 약하고 혈압이 높아서 절대로 비행기를 타서는 안됩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어머니권사님이 가끔 미국에 있는 딸집에 가시는 것이 큰 행복이요 낙이었는데 비행기를 못타신다고 하니까 조금은 낙심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권사님께서 심장 수술을 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권사님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미국에 다녀오실수 있도록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여동생집에 다녀올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년 동안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권사님의 건강이 갈수록 좋아 지더니 지난달에 검진하러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참 건강이 좋아 지셨네요! 이제는 비행기를 타TU도 되겠습니다"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 어머니권사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권사님이 건강할 때 한번 더 미국에 다녀오게 해 주세요! 여동생이 이사 했다고 어머니를 초대 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기가 힘들어 질테니까 지금 다녀오게 해주세요“ 하고는 두주전에 카드로 비행기표를 사서 지난 목요일날 어머니권사님이 미국에 가셨습니다.
돈은 쥐뿔도 없는 가난한 시골교회 목사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을 믿고,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시마다 때마다 꼭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신것을 믿기에, 믿음으로 비행기표를 사 드렸습니다.
이시간에 우리 교회를 대표해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저희 교회를 후원해 주시고 목회를 도와주신 박 에스더집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참 궁금했을 겁니다. 목사님이 월급을 100만원 남짓 받으시는데 어떻게 저렇게 우리에게 성경책을 사 주시고 툭하면 60명 성도들에게 족발을 제공해 주시고 식사 대접하고 과일에 빵에 간식까지 제공해 주시는건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 비밀이 바로 박 에스더집사님의 후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10년동안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와 저희 교회를 섬겨주신 박 에스더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고 가난한 자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시고 그리고 귀신들려 말못하는 사람의 귀신을 쫓아 내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자 한 여자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눅11:27) 당신같이 훌륭한 아들을 낳은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복있는 사람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다시 에돔사람 이야기를 좀더 하겠습니다. 에돔사람들의 또한가지 죄가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형제지간 인데도 불구하고 동족인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괴롭히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괴롭히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뿌리가 같은 사람들입니다. 뿌리가 같은 형제들인데도 에돔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방관자적인 죄를 지었습니다.
에돔은 사탄의 길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에돔뿐만 아니라 에스겔서26장에 보면 두로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 선포 됩니다. 두로가 심판을 당한 이유는 그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두로는 앗수르의 살만에셀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패와 좌절을 은근히 좋아 하면서 쾌재를 불렀기에 그들도 에돔사람들처럼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성도는 남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웃는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고통을 당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사회의 제도들과 관습 때문에 가정에서 고통을 당하는 여인들이 많습니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과, 성폭력을 당하는 청소년들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웃의 아픔을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에서“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제사장과 레위인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강도 만난 이웃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천대받고 멸시 받던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이웃을 끝까지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너희도 선한 사마리아사람처럼 행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것은 나를 부인하고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로 43절에 보면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가난한자들과 고난 당하는 자들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아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도 잘 믿어야 하지만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전에 제직회를 할 때 재정보고를 하면 꼭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병자를 심방하면서 금일봉을 주고, 혼자사는 독거 노인들을 돌아보면서 음식이나 과일을 사들고 가서 심방하고,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교복을 사주고 장학금을 주면서 섬겼습니다.
그런데 재정보고를 하면“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쓰냐고”따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헌금을 쥐뿔도 안내면서, 재정보고만 하면 재정지출에 대해서 딴지를 걸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권사님이 보다 보다 못해서 “앞으로 제직회의를 하지 맙시다”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다른 권사님들도 모두가 동의를 하고 결의를 해서 그때부터 우리교회는 일이 있을때만 제직회의를 열고 정기 제직회의는 하지않고 있습니다.
교회는 봉사하고 헌신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행복합니다. 사사껀건 트집을 잡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교회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잠언 22장 5절에 보면“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인류 역사 중에 가장 불행했던 사건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입니다. 히틀러는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히틀러의 만행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본래 실패한 화가요 실패한 건축가였던 히틀러가 자기의 분노와 좌절을 유태인들에게 쏟아 부은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 히틀러가 가지고 있었던 전 인류에 대한 증오심을 유태인들에게 쏟아부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 국민들의 분노와 적대감을 히틀러가 교묘하게 유태인들에게 돌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역사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한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독일 국민들 전체가 히틀러가 행한 잔인한 만행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당시에 나치독일이 국민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고, 대량 학살과 관련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방책을 강구했기 때문에 독일사람들은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 그런 만행이 자행되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독일 내 수용소의 하나인 부헨발트 수용소의 생존자인 오이켄코곤 씨는 나중에 뮌헨 대학 정치학과 교수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학살하려는 계획을 수많은 판사, 검사 변호사, 성직자들이 다 알고 있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게다가 독일의 수많은 대기업과 많은 대학의 교수들이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히틀러가 만든 의학연구소와 협동 연구를 했고, 국가소속 의사와 개인 병원 의사들도 그일에 동조하여 사람들을 살인하고 죽이고 생체 실험을 하는 일에 협력을 하면서 그일을 진행 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찌의 수많은 군인들도 곳곳에서 얼마나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을 학살한 일은 히틀러 혼자서 한 일이 아니라 독일국민 전체가 함께 자행한 일이었다고 그는 고백을 했습니다.
당시에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말하기를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있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것은“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모든 독일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일사람들은 묵비권을 행사 함으로서 자신의 잘못을 방어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어리석은 행동이 너나 할것없이 나치즘에 동조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가 자행하는 악행에 너나 할것없이 입과 눈과 귀를 다문 채“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라는 외면의 환상을 만들어갔고, 그래서 자기들 주변에서 이런 참혹한 학살이 수년동안 계속 되었는데도 자기는 그일에 공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이런 고의적인 방관과 무지함으로 대응한 우리 모두가 히틀러와 동일한 죄를 범한 죄인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죄를 지어야만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모른다고 외면하는 고의적인 태만함도 똑같은 죄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편하고 안전하면 그만이다 라는 고의적인 태만과 무관심과 방관도 역시 큰 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문창극씨가 총리 후보로 거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영방송인 KBS가 문창극씨를 일제와 결탁한 매국노로 몰아붙였습니다. 문창극씨가 온누리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짜깁기해서 전체적인 의미는 은폐하고 자기들 좋은대로 짜맞추기식 편집을 해서 문창극씨를 완전 매국노로 몰아 붙인 것입니다.
물론 문창극씨에게도 앞뒤 안가리고 말을 함부로 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매국노는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자기들 좋은 대로만 짜깁기를 해서 편파 방송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장로라고 기독교인 이라고 무차별적으로 매도하는 공영방송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매국노입니다.
문창극씨는 지극히 훌륭한 인격을 갖춘 언론인입니다. 그리고 온누리교회의 훌륭한 장로님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말도 안되는 편파 방송으로 문창극총리 후보를 매도하는 방송을 내보낸 KBS와 여러 방송들을 지켜보던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조갑제씨가 티비조선 방송에 나와서 엉터리 왜곡 보도를 한 KBS방송을 맹렬하게 비난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일이 있어도 문창극씨를 청문회에 세워서 KBS가 얼마나 편파적이고 왜곡보도를 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MBC 방송에서도 특별좌담 프로를 만들었는데 문창극총리 후보를 낙마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나와서 토론을 했는데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님은
“문창극씨가 교회에서 한 간증을 종교적 간증으로 봐야지 그걸 가지고 하나님에게 바치겠다”는 식으로 왜곡보도를 하면 안된다“라고 하면서“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됐지만, 그 때도 교회 지도자들 모임에서 한 발언이었고 문창극 후보자는 장로의 자격으로 교회에서 한 간증인데 그런 간증의 앞 뒤를 다 떼어내고 한 부분만 크게 부각시키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하면서 실체를 똑바로 보면 이건 종교적 간증인데 이걸 마치 무슨 중요한 역사의 주제로 보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넌센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날 매스컴은 기독교인들을 무조건 나쁘게 매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부정적으로 보도 합니다. 이 모든일은 사탄마귀의 궤계입니다. 마귀가 판을 치려면 교회와 기독교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하기에 기독교를 미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다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판단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를 귀하게 보시는 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교를 끌어 내리려고 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영육간에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에서는 기독교가 무시를 당하고 있고 모든 다른 종교계에서도 기독교를 비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할 때 에돔과 두로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을 즐기면서 방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에돔과 두로의 죄악에 대해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옵1:15)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여전히 지구상에 남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에돔과 두로라는 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영광의 나라에서 잔치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한 모든 사람들은 그 죄악의 결과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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