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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4년11월16일 주일낮 왕하5장1-14 순종의 축복

그리운시냇가 2014. 11. 16. 20:35

 

지난 금요일날 오랬만에 박철호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박철호집사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언제 전화라도 한통 나누어야 겠다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집사님에게서 먼저 전화가 온 것입니다.

 

집사님께서 저에게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저는 거창으로 이사가신 박철호집사님께서 우리남해 세광교회를 잊어버리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박철호집사님은 지금도 여전히 매주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카페에 들어오셔서 교회근황을 돌아 보시고 그리고 설교도 빠짐없이 읽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아이디를 치지 않고 그냥 들어오셔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지금까지 매주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희 교회를 돌아보시고 설교를 읽으시면서 매번 은혜를 받으신다는 말에 제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박철호집사님의 친구분이 장로님이신데 사천에서 건축을 오래 하셨는데 예배당도 많이 지으시고 헌신도 많이 하셨다고 하면서 그분을 소개해 드리겠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꼭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장로님이 은혜가 충만해서 지금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동안 저희 교회의 건축을 맡아서 수고해 주시기로 했던 건축가 분들이 세 번이나 계속해서 말없이 유보하는 바람에 성전건축에 진전이 없었는데 금번에 박철호집사님이 전화를 해 주셔서 그 전화 한통이 저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날마다 새벽마다 성전건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축가가 짓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해 왔는데 그 기도가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큰 소망이 생겼습니다.

 

박철호집사님께서 작년 크리스마스때 방문 하셔서 가끔 십일조를 저희 교회로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만 멀리 이사를 가시는 바람에 그 일이 여의치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박철호집사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고 나니까 그것 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변화 무쌍한 세상에서 떠나가면 남이되고 잊어버리기 십상인 세상에서 여전히 저희 남해세광교회를 사랑하시는 박철호집사님에게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순종의 축복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블랙커비목사님이 쓴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삶이라는 책에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내가 처음 집례한 장례식은 어린 여자아이의 장례식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우리 교회 부부의 첫 아이였고, 조부모에게는 첫 손녀였다.

 

어느 날 내가 그 집에 심방을 가서 보니까 그 여자아이는 부모의 말을 대놓고 무시했다. 오라고 하면 가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섰다. 부모는 그런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그 여자아이를 귀여워 하기만 했다.

 

하루는 그 집 앞마당 문이 열려 있었다. 그 딸아이가 마당을 빠져나가서 길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엄마가 보니까.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딸아이는 길가에 주차해 둔 두 대의 차 사이로 빠져나가서 도로 쪽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제인아 안돼! 돌아와!”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딸에게 외쳤다. 딸아이는 잠깐 서서 엄마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돌아서서 길 건너편으로 곧장 뛰어갔다 그순간 달려오던 차는 그 아이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아이는 처참하게 죽어서 나동그라졌다 죽은 아이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부모의 통곡은 그야말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단장(斷腸)의 비애(悲哀)였다. 그것은 그 아이가 부모 말에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서 큰 교훈을 얻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반드시 즉각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리는 일이다!”

 

이 끔찍한 순간을 목격하고 장례식을 집례한 블랙커비 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분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믿음을 갖지 않으면 재앙과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순종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 하십니다.

 

인간은 얼마나 미련한지, 자기가 죽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합니다. “당신이 담배를 계속 피우면 폐암으로 죽게 됩니다라는 의사의 준엄한 경고와 책망에도 불구하고 계속 담배를 피우다가 죽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2009년도에 전체 암 사망자수가 7만명인데 15천여명이 폐암으로 숨졌습니다.

 

술 마시고 운전하면 큰 일 납니다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음주 운전하다가 자기와 상대방까지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도 엄청 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서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노는데 배가 점점 하류로 내려가는데도 술을 마시고 배를 타고 노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배가 폭포를 향해서 가는데도 그걸 모르고 배안에서 고성방가를 하면서 떠들고 노는 것입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이 당신들 배가 점점 폭포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빨리 나오세요하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데도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떠들면서 놀다가 결국 물살이 빨라지자 그제서야 큰일났구나 하고 배를 저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래서 빠져 죽고 맙니다. 이런 끔찍한 사고가 매년 일어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도 하나님의 생각과 내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입니다. 당시에 군대장관이면 왕 다음으로 권세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문둥병이 들어서 살이 썩어들어갑니다. 그는 사방 팔방으로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보고 약도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문둥병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그는 죽을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한 여자아이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줍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장군은 기대와 소망을 품고 이스라엘 나라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군사들을 이끌고 엘리사의 집으로 찾아 갔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나오지도 않고 엘리사가 몸종을 내 보내서는 가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회복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나아만은 사환이 하는 말을 듣고 화를 벌컥 냅니다.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건방지게 몸종이나 내보내서 나에게 지시를 해?”하고는 화를 냅니다. 나아만이 성질대로 하면 당장 엘리사와 더불어 모든 식솔들을 칼로 쳐 죽였을 것입니다.

 

사실 엘리사의 입장에서 보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람나라는 툭하면 이스라엘을 괴롭힌 원수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원수나라 사람의 병까지 고쳐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왕을 찾아가서 부탁을 했고 왕도 나아만이 두려워서 그를 고쳐 주라고 엘리사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왕의 부탁도 있고해서 할수없이 그를 고쳐 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병을 고치려고 의사에게 왔으면 자기가 아무리 높아도 의사의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존심이 망가지고 체면이 망가져도 고침을 받기를 원한다면 의사가 옷을 벗으라면 옷을 다 벗고 환부를 보이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인간의 본성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병이 고침받을수 있는 처방을 내렸는데도 도리어 화를 내면서 혈기를 부립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 가려고 합니다. 그 내용이 11절 이하에 나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나아만은 처방이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화를 벌컥 냈습니다. 어제 새벽에 저도 류복례권사님에게 화를 벌컥 냈습니다. 남편인 고성세집사님이 발목 절단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류복례권사님을 모시고 두 번이나 고성세집사님이 입원해 있는 부산 병원을 다녀 왔습니다.

 

처음에 심방을 갔을 때 큰아들, 고자현집사님이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나서 어느정도 회복되면 보훈병원으로 옮겨서 거기서 요양치료를 받게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참전 유공자이시기에 보훈병원에 가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아버지를 모실수가 있다고 아드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날 두 번째 방문을 했는데 고성세집사님이 발목 절단 수술을 한 후에 많이 회복이 되셨는지 빨리 목발을 사다 달라고 아드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큰아드님이 하는 말이 아버지가 회복되면 다시 집으로 보내서 요양 보호사를 통해서 간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답답해 졌습니다. “아들이 셋씩이나 있는데 발목이 없는 아버지를 85세가 넘은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 보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이제는 류복례권사님도 자기 앞가림 하기도 힘든 나이인데 발목이 없는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보내서 어머니가 수발을 하게 하면 나이든 류복례권사님이 어떻게 그 수발을 할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타까왔습니다. 

 

고성세집사님이 생활하는 방은 불을 때는 방입니다. 하루에 두 번 불을 때야 하고 삼시 세끼 밥을 챙겨 드려야 하고 이제는 발목을 짤랐기에 툭하면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고 권사님에게 심부름을 시킬텐데 허리가 꼬부라진 권사님이 그런 몸으로 남편을 수발 하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 싶어서 마음이 답답해 졌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와서 수발을 하려면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목발을 집고 화장실을 다니면 등급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꼬부라진 어머니에게 다시 장애자 아버지를 수발하라고 아버지를 집으로 보낸다기에 제가 금요일날 새벽에 류복례권사님에게 권사님! 아들이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온다고 하면 절대로 아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말라고 단단히 이야기를 하세요!”하고 일러 드렸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에 아들하고 통화를 했다기에 제가 시키는 대로 하셨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들이 이런사정 저런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를 어머니의 집으로 모시고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가 집으로 오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화가나서

 

권사님이 그런식으로 자식들을 교육 시키니까 지금까지 힘들게 사시는 겁니다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평생 고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장가 보내고 장가 보낸 후에도 뼈빠지게 농사 지어서 평생동안 쌀보내고 마늘보내고 시금치 보내고 고구마 보내면서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을 했는데, 그만큼 헌신 했으면 이제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돌보고 수발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장애자 아버지를 또 늙은 어머니가 수발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한것 같아서 제가 화를 냈습니다. 게다가 금번에 수술을 할때에도 류복례권사님이 그동안 농사 지어서 모은돈 300만원을 수술비로 쓰라고 드리고 이번에 문병을 갈 때에도 권사님이 쌀 농사 지어서 매상 받은 돈이라고 하면서 100만원을 또 아들에게 드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랬으면 이제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섬겨야 마땅 합니다. 그래서 저는 권사님에게 그동안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남은 여생을 좀 편안하게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권사님에게 고성세집사님을 절대로 집으로 모시고 오지 말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괜히 남의 집 일에 끼어 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남이 아닙니다. 제가 사랑하는 양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제 양입니다. 제 양이 고생만 하다가 죽으면 제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게다가 류복례권사님은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설천교회에서 사례비도 못받고 쫓겨 났을때 류복례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제가 500만원을 드릴테니까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미국으로 가세요!"하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권사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돈은 받지 않았지만 하여튼 류복례권사님은 정말 훌륭한 권사님입니다. 그래서 저는 류복례권사님이 더욱 건강하게 장수 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노인 요양원이 지어지면 제가 류복례권사님을 모시고 살 것입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지금까지 죽도록 고생만 하면서 사셨는데 이제 또 다시 장애자 남편을 수발하면서 지내면 얼마 못사실 것 같아서 제가 안타까와서 고성세집사님을 집으로 모시고 오면 안된다고 강하게 반대를 하면서 권사님을 책망 했습니다.

 

나아만도 엘리사의 언행심사가 마음에 안들어서 화를 벌컥 내면서 몸을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그대로 떠나가 버렸다면 그는 문둥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아만이 마음을 돌이키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간절히 호소를 한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의 종들은 아니 주인님!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데 그것도 못하십니까?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시켜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충고를 했습니다. 참 훌륭한 종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같이 바른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달콤한 말이나! 좋은 말만 해 주는 사람들만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서 듣기 싫어도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는데 옳은 소리는 하지않고 엉뚱한 소리만 하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못하게 막는 고약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내 생각입니다. 11절에 보면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내 생각은, 나아만의 생각입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나와서 자기 환처에 손을 올려놓고 손을 흔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고쳐주기를 바랬습니다. 이건 순전히 나아만의 생각입니다. 나아만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나아만의 생각은 교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저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내 생각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아니하고 내 뜻대로 행하면 망하게 됩니다. 나아만을 망하는 길로 인도한 생각은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11절을 다시보면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라는 말씀이 증거 됩니다. 이 말은 적어도 내가 이스라엘나라보다는 훨씬 강한 나라인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니까, 그런 높은 사람이 왔으니까, 내가 왔을 때 너는 당연히 황급히 달려 나와서 나를 영접했어야 옳았다라는 말입니다. 이 교만한 생각이 그를 문둥병자로 살다가 죽게 할 뻔 했습니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연못에 오리 두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지나자 연못물이 말라서 오리와 개구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만 했습니다. 오리 두 마리와 개구리는 함께 이사를 가기로 하고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먼저 날 수 있는 오리가 양쪽에서 막대기를 물고, 그 막대기 한가운데를 개구리가 물고 날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오리와 개구리는 떠나기 전에 그 누구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가 입을 열면 개구리가 떨어져서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리가 양쪽에서 막대기를 물고 그 막대기 한가운데를 개구리가 물고서 공중을 날아가는데 마침 그 광경을 본 농부가 야 멋지다 누가 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지?”하고 감탄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우쭐해서 내가 생각해 냈지요!”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하느라 입을 벌린 순간 개구리는 바위에 떨어져서 배가 터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증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아만은 자기 생각만 주장 합니다. 11절에 보면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라는 말씀이 증거 됩니다. 나아만장군은 선지자 엘리사가 자기 앞에 서서 상처부위에 손을 흔들어서 병이 낫게 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이런 행동은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이방신을 부를 때 했던 행동과 습관입니다. 그리고 이방종교에서 병을 고칠 때 사용했던 주술적인 행위입니다. 나아만은 자기가 섬기는 나라의 종교적 행위를 엘리사도 똑같이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신과 그들의 주술적인 치료 행위로는 문둥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아만은 병을 고치지도 못하는 엉터리 신들의 주술행위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습니다.

 

나의 잘못된 언행심사를 계속해서 고집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것들을 다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아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헬렌 로즈비어(Helen Roseveare) 선교사님은 콩고에서 선교하신 훌륭한 여 선교사 였습니다. 그분의 일대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마마 루카 귀향하다라는 영화입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엄격한 장로교 집안에 태어나서 캠브리지 의대에 들어가서 의학을 공부합니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의대를 졸업하면 선교사가 되어야지하고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졸업 하자마자 세계적인 선교단체인 WEC 선교단체에 가입해서 그 단체의 파송을 받고 아프리카 콩고로 갑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콩고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님! 빨리 이곳을 떠나세요! 폭동이 일어나서 위험합니다!”하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자 헬렌 로즈비어 선교사는 내가 아프리카 사람을 위해서 내 삶을 희생하러 왔는데 내가 왜 도망을 갑니까?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을것입니다! 저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결국 폭도들에게 붙잡혀서 5개월 동안 매를 맞고 성폭행을 당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폭도들의 두목이 그녀가 의료 선교사역을 하면서 기록해 둔 모든 자료들을 다 가져다가 불살라 버리고 그녀를 나무에 묶어 놓고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탄식어린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지난 10년 동안 이곳에 와서 희생하고, 헌신한 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까? 내가 여기에 와서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런 모욕을 당하고 이런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도 주님이 허락하신 것입니까? 정말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이 가치가 있는일이엇습니까?”

 

우리들도 종종 로즈비어 선교사가 질문한 것처럼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일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헌신적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 내가 이렇게 온맘다해 주님을 위해서 헌신을 했는데 내가 왜 이런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야 합니까? 내가 왜 이런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하면서 탄식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고 분해서 탄식하는 그녀에게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는 지금 이 모든일이 가치가 있느냐고 묻고 있지만 그 질문이 잘못 되었느니라” “그렇면 나도 너에게 묻겠다 내가 당한 십자가의 고난은 너에게 어떠한 가치가 있느냐? 내가 당한 십자가 고난이 너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이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주님의 뜻을 깨닳았습니다. 자기가 질문한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깨닳았습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이 높임을 받으시면 그것으로 우리의 사명은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펑펑 울면서 주님 에게 “Yes, you are worthy!” “, 주님만이 가치가 있으신 분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고 없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시고 나의 전부가 되십니다하면서 주님께 모든 아픔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봉사 하다가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헌금도 많이 하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도 많이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하게 핍박을 받아야 하는거야?”하고 분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입니다.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일본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창립 10주년이 되어서 1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성도님이 한 50명 정도 되는데 10주년 감사예배를 앞두고 마이크와 앰프가 없어 졌습니다. 알고 보니까 마이크와 앰프를 헌신한 성도가 그 전주에 와서 마이크와 앰프를 다 띠어가 버린 것입니다.

 

이분이 교회에 와서 처음에는 차량봉사도 하고 주방에서 봉사도 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마이크와 앰프도 기증하고 한달에 한번씩 전 교인 식사도 대접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헌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좀 교만합니다. 그리고 자기 고집이 강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안수집사를 세울때마다 그분을 탈락 시켰습니다. 교회에서 일군을 잘못 세우면 교회가 망가지는건 불보듯 뻔합니다

 

이분이 안수집사 임직때마다 탈락을 하니까 화가나서 교회를 떠났는데 자기가 기증한 마이크와 앰프를 뜯어가지고 가버렸습니다. 자기를 안 알아준다고 안세워 준다고 하나님께 바친 마이크와 앰프를 뜯어갔으니 그분은 장차 어떻게 될지 안봐도 뻔합니다.

 

하나님께 드렸으면 하나님의 것이지 자기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엉터리 신앙이면 주님 앞에 바친 마이크와 앰프를 뜯어 갑니까? 자기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자기 이름 내려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분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이듬해에 큰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으로 누워서 지낸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금번에 승합차를 새로 샀는데 제가 승합차를 사야 하니까 헌금을 좀 합시다라는 이야기를 일체 내비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기에 차를 사면서도 전혀 차량헌금에 대해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도님들이 다들 가난하고 힘들게 사시는데도 류금련권사님을 비롯해서 여러 성도님들이 한분 두분 차량헌금을 해 주시는 바람에 조만간에 승합차를 사느라 융자받은 돈을 다 갚을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시마다 때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정말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시골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믿음이 있기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게 내 일이요 이게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주인의식이 있기에 이런 헌신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복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한다 하면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입에 게거품을 품고 모두들 헌금합시다하고 떠들어 대는데 우리교회는 처음 개척할 때에도, 식당과 사택을 지을 때에도, 다시 금번에 성전건축을 할 때에도 헌금 합시다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성도님들이 기쁨으로 헌금을 드려서 교회가 세워졌고 식당과 사택이 지어졌고 그리고 다시 금번에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기쁨으로 성전건축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승합차 한 대가 노후되어서 브레이크가 밀려서 안되겠다 싶어서 권사님들과 회의를 하고 차를 다시 샀습니다. 혹시라도 제직회의를 해서 성도님들이 알게되면 부담을 가질까봐서 광고도 하지않고 조용히 차를 산 것입니다.

 

그런데 차를 산지 한 주 밖에 안지났는데 여러 성도님들이 100만원씩 50만원씩 헌금을 해 주셔서 융자받은 돈을 하루 아침에 다 갚게 되었으니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바로 우리 남해세광교회라고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정말 98%가 일정한 소득이 없는 농사꾼들입니다. 출석 교인중에 직장을 다니면서 고정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가정이 두 가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기적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우리 성도님들이 정말 큰 믿음을 가졌기에 이런 기적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제가 성도님들에게 80권의 성경책을 사 드릴 때 류금련권사님이 100만원을 도와 주셨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승합차를 사는데 류금련권사님이 또다시 100만원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류금련권사님은 일년에 마늘 500평 심어서 거기서 나오는 소득이 전부입니다. 올해 부터는 그나마 농사도 그만두셨습니다.

 

제가 매년 류금련권사님의 마늘을 서울에 계신 지인들에게 팔아 드렸습니다. 마늘농사 지은 것을 다 팔아도 겨우 100만원이 될까 말까 합니다. 권사님은 앞이 안보이시는데도 비료와 거름을 끌고 다니면서 죽도록 농사 지어서 일년에 겨우 100만원 남짓한 돈을 버는게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자녀들이 방문할때마다 주신 용돈과 노령연금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그 돈을 다 모아 두었다가 교회에서 필요한 일이 생길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낌없이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어찌 복을 안주시겠습니까? 류금련권사님의 기도는 거의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모든 자녀들이 다 구원받고, 다 행복하게 살고, 들려오는 소식마다 좋은 소식들만 들려 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라면 항상 아낌없이 헌신하시는 권사님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도 권사님에게 늘 기쁨을 주시고, 감사의 신앙고백을 하게 하시고, 자녀와 손주 손녀들에게도 복을 주셔서 이 시골 구석박지에서 자란 자녀들과 손주 손녀들이 좋은 곳으로 장가가고 시집가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하영순집사님도 화요일 새벽에 50만원의 차량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하영순집사님은 허리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수술을 하지않고 믿음으로 내 병을 이겨보자!” 하고는 열심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연약한 몸으로 시금치를 캐서 조금씩 돈을 버는데 시금치 매상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요일 저녁예배때에는 정영자집사님이 50만원을 차량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정영자집사님도 이제는 허리수술을 받은후에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열심히 시금치를 캐다가 팔아서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부자가 이런 헌금을 했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당연히 여길텐데,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성도들이, 온맘다해 드린 귀한 헌금이기에 그 정성과 사랑을 하나님이 크게 보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안계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나만 잘먹고 잘살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하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시고 60100배로 갚아 주시고 하늘나라에서는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헌신을 하고나서 내가 이렇게 헌신을 많이 했는데 내가 이렇게 봉사도 많이 했는데 왜 날 알아주지 않는거야?”하고 원망불평을 하면 그 순간부터 나는 시험에 들게 됩니다. 섭섭마귀가 들어와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무슨 헌신을 해도 주님! 주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세요 제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수 있도록 복을 주신 것 감사 드립니다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래서 앤드류 머래이(Andrew Murray) 목사님은 그대에게서 교만이 죽지 않으면 하늘의 축복과 영광이 그대 속에서 나타날 수 없다! 교만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선생이요, 겸손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선생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29절로 30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의 온유함을 배우면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빌립보서 27절로 8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마지막에,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당시에는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왕이 되면 나는 장관자리를 하나 해야지!”하면서 자리다툼만 하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사람과 온유한 사람을 기뻐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순복음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신 이영훈목사님의 누나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병원에 수간호사로 있다가 어느 날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봉사가 하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무슨 봉사를 할까 하다가 아직은 성경을 모르니까 교회학교 교사는 할 수가 없고 성가대를 하자니 노래를 못하고 그러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봉사는 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설거지 봉사를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주방에서 설거지 봉사를 하는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얼마나 원망 불평을 많이 하는지 이분이 한달 설거지 봉사를 하고 났더니 교회에 가고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더랍니다. 그래서 주방봉사를 그만두고 교회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다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하와이에 있는 예수전도단에 들어 갔다고 합니다. 예수 전도단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선교사가 되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전도단에 들어가서 다시 주방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는 이전에 자기가 다니던 교회의 주방과는 완전 딴판이더랍니다.

 

설거지를 하는 분들이 얼마나 감사가 많고 사랑이 많고 섬김이 많은지 모든 분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위해 주면서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일을 하니까 이분도 거기서 섬기는 기쁨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행복을 깨닫고 더욱 은혜를 받아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연변에 가서 선교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평양에 고아원 두 개를 설립해서 매달 평양에 가서 고아원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원망불평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교회가 사향길로 가는 증거요!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교회는 소망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은 쓰신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잠시 쓰시다가 버리십니다. 그러나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기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주님이 오랬동안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저를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나를 순종의 종으로 써 주세요 겸손한 종으로 써 주세요 감사의 종으로 써 주세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나아만은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는다고 화가나서 소리를 지르고 떠나 갑니다.

 

엘리사선지자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낳을 것이라고 사환을 시켜서 지시를 했더니 우리 아람 나라에 있는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매우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인데 목욕을 하려면 그 강에가서 하지 왜 내가 더럽고 작은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냐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물론 아바나와 바르발강은 요단강보다는 깨끗합니다. 그러나 그 두 강이 요단강 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나아만의 지식과 교만이 지금 나아만의 치유와 회복을 막고 있습니다.

 

요단강은 진흙 색깔의 붉은 빛을 띄고 있는 혼탁한 강이지만 그러나 나아만이 순종하면 그 강은 치유의 강으로 변하고 은혜의 강이 됩니다.

 

자기의 얄팍한 지식과 판단을 사용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충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무슨일을 시켜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는데 못할게 뭐가 있습니까?”

 

종들이 간곡하게 권면을 하자 홧김에 분노해서 고국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던 나아만 장군이 종들의 충고를 듣고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서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 졌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5:14)

 

순종했더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육신적으로도 치유를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싸늘한 눈길로부터도 해방되고 근심과 염려와 절망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는 회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군대장관의 일도 떳떳하게 감당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그리고 육신의 질병과 환란에서 치유되고 회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살려면 내 교만과 내생각과 내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원망불평을 버리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주님을 닮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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