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박철호집사님이 안부 전화를 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박철호집사님께서 사천에서 크로커다일 매장을 경영 하실 때에는 종종 자녀들과 함께 저희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작년에 거창으로 사업체를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가신 후에는 집사님과 교제가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과 통화를 하면서 알고 보니까 집사님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저희 교회 카페를 찾아오셔서 매주 주일과 수요일 두편의 설교말씀을 읽으면서 은혜도 받으시고 사진도 보시면서 저희 교회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저희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저희교회 카페에 올려놓은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고 그리고 사진을 보면서 교회의 근황을 살피고 또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와 관계된 분들이 믿음생활을 하는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특히 자녀들은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신지를 매주 사진을 통해서 확인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님이 안보이면 저에게 안부 전화를 해서 어디가 아프시냐고 묻기도 하고 직접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서 교회에 갈 것을 권면 하기도 하면서 카페에 사진 올리는 것을 매우 고마워 하고 계십니다.
조금은 외람된 말씀이지만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 외에 두번째로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설교와 사진이라고 저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매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준비하는 설교와 더불어, 어디든지 누구든지 만나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이 두가지가 우리교회의 특징이요 자랑거리라면 자랑거리 입니다.
여러분들도 우리교회를 자랑하고 싶으면 "우리 남해세광교회 카페에 들어가셔서 우리 목사님 설교도 보시고 우리교회의 사진도 보세요!"라고 이야기를 해도 무방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지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남해세광교회를 사랑하셨는지를 설교와 사진을 통해서 보면 분명하게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제 집사람이 매주 교회에서도 사진을 찍고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찍는 이유는 방금 말씀 드린대로 우리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과, 자녀들과, 기도해 주시는 분들과 우리교회를 돕는 분들에게, 우리 교회를 알리고, 성도님들의 근황도 알리고, 그리고 “이번주에도 우리가 이렇게 은혜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천국잔치같은 친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제가 심방을 가서보면 권사님이고 집사님이고 대부분의 연로하신 성도님들이 반찬도 없이 김치에 물말아서 드시는 분들이 많고 어떤집은 냉장고를 열어 보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끼라도 잘 차려서 식사대접을 해야 겠다는 마음에 돈이 많이 들어도 정성껏 반찬을 많이 준비해서 대접을 하라고 제가 지시를 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이 바빠서 식사준비를 못하게 된 후부터는 지금까지 일년동안 사모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식사 준비를 해 왔습니다. 제 집사람이 토요일날 장을 봐 와서 교회 청소가 끝나면 6시부터 밤 12시까지 식사준비를 하고, 그리고 주일날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차량운행 나갈때까지 9시까지 죽어라고 식사준비를 해서 성도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 왔습니다.
윤영순사모님이 근 일년동안 그렇게 죽어라고 고생을 하면서 식사준비를 해서 성도님들을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사모가 식사 준비를 해 오는 동안에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 주지도 않았으면서 “음식이 많네 버리네” 하면서 떠들어 대면서 사모에 대해서 비판을 한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제가 심히 심기가 불편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눈에서 들보를 빼고 그리고 남의 눈에서 티를 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잔칫집에는 음식이 남아서 나누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먹고 남은 것은 버릴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식사후에 남은 음식들은 사모가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바리 바리싸서 혼자 사시는 연로하신 성도님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버린 음식은 최원산 성도님이 다 모아서 가져갑니다.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는데 음식 남은 것을 가져가서 개를 줍니다. 개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님들을 잘 대접하려고 제가 반찬을 많이 만들라고 지시를 했느데, 좀 남아서 나눠 먹을수도 있고 버릴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그렇게 비판을 한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역사 하려니까 별일이 다 생깁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이진숙집사님과 우리 사모가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제가 설교준비를 하다가 잠시 나와 보니까 최원산성도님이 교회에 트럭을 끌고 와서 세차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웬 트럭입니까?” 했더니 “트럭을 샀습니다. 550만원에 샀습니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축하합니다! 트럭을 샀으니 좋겠네요!” 했더니 “일해서 갚아야 합니다!” 하면서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세차를 합니다. 보니까 굴상자를 실었는지 굴 조각들이 차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굴 비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그래서 “차를 세차를 하려면 집에서 하시지 굴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데 교회에서 세차를 하면 냄새가 나서 되겠습니까?” 했더니 “물을 뿌리면 됩니다!”하고 계속 세차를 합니다.
그런데 그때 화장실 청소를 하고있던 사모가 “굴 실었던 트럭을 교회에 와서 세차를 하면 어떻게 해요? 집에서 해야지!”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최원산성도님이 교회에서 세차를 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설거지를 하는 두 분은 음식을 너무 많이한다 버린다 하면서 사모를 성토하고 이진숙집사님은 사모님이 자기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성토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두주 동안에 벌어진 여러가지 사건들을 가만히 지켜 보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입만 가지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시험에 든다는” 사실입니다.
세차 문제는 어떻게 생각 합니까? 비린내 나는 트럭을 교회에 끌고와서 세차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니면 세차하는 사람을 꾸중한 사모가 잘못한 것입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안하무인처럼 비린내 나는 트럭을 세차한 것은 정말 무식의 소치입니다. 비린내 나는 트럭을 가지고 절에가서 대웅전 앞에서 한번 세차를 해 보세요 무슨말을 듣겠습니까? 아마 당장 신고해서 붙잡혀가서 감옥에 갈 겁니다.
그리고 제가 고성세집사님의 발목절단 수술을 한 것을 설교시간에 언급을 했는데 발목이 절단 된 다음에 제가 심방을 가서 고성세집사님의 사진을 찍어서 우리교회 카페에 올려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두발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것보다 한발을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라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고성세집사님이 비록 가슴아픈 일을 당하셨지만 그러나 그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온다해도 그 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바라보고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 회개하고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사건중에 가장 기가 막힌 사건은 한 집사님이 새로온 새신자에게 추수감사헌금봉투에 새로온 새신자의 이름을 써서 준 사건입니다.
새신자가 봉투에 내 이름을 좀 써 달라고 부탁을 해서 봉투에 새신자의 이름을 써 드렸다면 그것은 상관이 없지만 새신자가 봉투에 이름을 써 달라는 부탁도 안했는데 헌금봉투에 새신자의 이름을 써서 새신자에게 드렸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새교회에 처음온 새신자에게는 절대로 헌금봉투를 주거나 헌금을 강요 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깨닳아져서 자기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낼 때 까지는 절대로 헌금을 강요 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그 새신자 분이 처음 교회에 나오신날 쌀 20키로를 그분에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후에 세주동안 교회에 나오셨는데 교회에 올 때 마다 헌금을 드렸습니다. 알고보니까 세주동안 3만원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3만원의 헌금을 드리고 나서 전도한 분에게 “내가 쌀값 3만원은 냈으니까 이제부터 교회 안나가겠습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 입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본인이 자기 이름을 헌금봉투에 써서 달라고 했다면 그건 문제가 없지만 본인이 부탁도 안했는데 봉투에 새신자의 이름을 써서 주었다면 그건 큰 실수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류복례권사님을 아주 심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류복례권사님이 아들뻘 되는 목사인 저에게 수치스러울 정도로 혼이 났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류복례권사님은 저에게 개망신을 당하고도 아무말 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 하셨습니다.
류복례권사님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목사님! 제가 고구마 농사를 지었는데 고구마를 좀 드릴까요?” 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고구마를 주시면 좋지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교회를 섬겨주신 서은경전도사님 장애자센터에 뭔가를 좀 보내 드리고 싶은데 권사님이 고구마를 주시면 실로암 장애자 요양원에 보내 드릴께요!”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 같으면 목사님에게 그렇게 혼이 났으면 “어디한번 두고보자! 너도 나한테 한번 당할때가 있을거다!” 하고 단단히 벼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혼이나고도 저에게 고구마를 주시겠다고 하셨고 화요일날 저에게 20키로의 고구마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김막순권사님께서 주신 고구마 10키로와 류복례권사님께서 주신 20키로를 합해서 30키로의 고구마를 서은경전도사님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류복례권사님은 시금치도 30키로를 캐 주셨습니다. 정영자집사님도 10키로를 캐 주셨습니다.
진짜 성도는 주의 종이 무슨 책망의 말을 해도 아멘으로 받고 섭섭해도 다 풀어버리고 잘못 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성도가 진짜 성도입니다.
그런데 뭐가 좀 마음에 안든다고 인정 사정 보지않고 무조건 비판하고 정죄하면 그런 사람은 참된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을 통해서 보면 주의 종을 무시하고 주의 종을 대적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대적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잘못은 깨닫지도 못하면서 여기 저기 전화해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도 성도로서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일을 하는사람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레아와 라헬에 대해서 잘 압니다. 레아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야곱에 대한 사랑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사람의 관심과 사람의 사랑을 받아 보려고 노력해도 그게 다 무용지물 이었습니다.
레아는 첫 아들을 낳고서 “내가 아들을 낳았으니 야곱의 사랑을 받겠지?” 하고 좋아 했습니다. 그 후에 두 아들을 더 낳았어도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레아가 첫째 아들을 낳은후에 이름을 “르우벤” 이라고 지었습니다. 르우벤의 뜻은 “보라 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레아가 르우벤을 낳았지만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 번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지었는데 시므온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입니다.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들어 주셔서 둘째 아들을 낳았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둘째 아들을 낳고도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레아가 셋째 아들을 낳았을대 이름을 레위 라고 지었습니다. 레위는 “연합함” 이라는 뜻입니다. 남편과 하나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레아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아들을 낳은후에 레아는 비로소 그 아들의 이름을 “유다” 라고 지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유다를 낳은후에 레아는 비로소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구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네 번째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을 찬송하라”라는 뜻의 “유다” 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 레아는 비로소 위대한 여인이 됩니다, 그래서 레아가 낳은 유다에게서 모세가 나고 다윗이 나고 유다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앞에 엎드려서 레아처럼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어제 류복례권사님과 김막순권사님께서 주신 고구마30키로와 시금치 30키로 그리고 사과 한상자를 싣고 거제에 있는 실로암 장애자 복지센터에 가져다 드렸습니다. 저는 그 농산물들을 싣고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힘든일이 있고 넘어지고 자빠져도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주의 종을 선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새벽같이 나와서 밥하느라고 죽어라고 고생하는 사람을 위로는 못할망정 비판이나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비린내나는 차나 세차하고 주의 종이 하는 일에 딴지를 걸고 여기 저기 전화해서 선하고 착한 성도들을 나쁘게 선동하는 이런 모든 악한 일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주 동안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저도 이런 일들을 통해서 마음이 좀 피곤해 졌습니다. 그런데 월요일날 어디 기도원이라도 가서 기도를 하고 와야겠다 하고 집사람에게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준비를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박철호집사님이 생각이 나게 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박철호집사님과 전화 통화를 할때 집사님이 건축하시는 친구 장로님도 소개해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차라리 박철호집사님을 만나는게 좋겠다 싶어서 거창으로 갔습니다.
거창에 가서 오랬만에 박철호집사님과 아내인 정민희집사님 그리고 3학년짜리 딸 미서양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크로커다일 매장이 엄청나게 넓었습니다. 사천매장의 두배가 넘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박철호집사님이 갑자기 저에게 “목사님! 이 양복좀 입어 보세요!” 하시면서 거기서 제일 멋진 콤비 양복을 저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놀래서 “집사님 아닙니다!” 하고 사양을 했지만 집사님 내외분이 막무가내로 저에게 양복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래서 졸지에 새 양복 한 벌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민희집사님이 제 집사람에게도 30만원 상당의 오리털 잠바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졸지에 100만원 상당의 멋진 옷을 선물받았습니다. 박제가 오늘 입고나온 이 양복이 바로 박철호집사님과 정민희 집사님께서 선물해 주신 양복입니다. 박호철호집사님은 제 넥타이를 풀라고 하시더니 넥타이를 두 개를 선물해 주셨고 와이셔츠도 벗으라고 하더니 멋진 와이셔츠까지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새옷을 사 입은적이 별로 없습니다. 미제가 종종 말씀 드렸지만 미국에서 살때에는 아예 중고 물건 파는데 가서 옷을 사입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그 습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입고 다니는 빨간 가죽잠바도 미국에서 25달러에 샀습니다. 지금 입고 다니는 대부분의 옷들도 미국에서 사오거나 아니면 서울 세광교회에서 보내주신 옷들 입니다.
그런데 박철호집사님 덕분에 제가 아주 좋은 콤비양복셋트와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 두 개까지 선물을 받아서 완전 신사가 되어서 돌아 왔습니다. 제가 양복을 선물받고 얼마나 기쁜지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정평관집사님이 저희 부부를 오라고 해서 갔더니 정평관집사님이 저희를 데리고 유명메이커 옷가게로 데리고 가서 아주 좋은 코트를 한벌씩 사 주셨습니다. 그때도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는데 금번에 박철호집사님 내외분이 저에게 양복을 선물해 주시고 제 집사람에게는 오리털 잠바를 선물해 주셔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옷을 선물해 주신 집사님은 저희 부부를 데리고 거창에서 가장 유명한 요릿집으로 데리고 가서 별미를 사 주셨습니다. 식사중에 박철호집사님은 저희에게 크리스마스 시즌에 거창에서 축제가 있는데 교회들이 나와서 공연도 하고 크리스마스 추리도 장식하니까 꼭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을 모시고 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박철호집사님이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을 모시고 오라는 말씀을 하시는것을 보고서 집사님이 정말 우리 남해세광교회를 사랑하시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후에 집사님은 저희를 태우고 거창을 돌면서 거창 구경을 시켜 주셨습니다. 사천에 갔을때도 저희 내외를 차에 태워서 사천구경을 시켜 주셨는데 금번에도 집사님이 손수 운전을 하시면서 저희 내외를 데리고 거창을 한바퀴 돌면서 구경을 시켜 주셨습니다.
집사님은 거창의 교회들을 돌아보고 그리고 금번에 새로 사서 입주하신 아파트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집사님은 거창에서 가장 좋은 고층빌딩 아파트를 사서 입주를 하셨습니다. 저는 박철호집사님 댁에서 박철호집사님과 정민희집사님 그리고 태완군과 미성양 미서양까지 집사님 가족들을 위해서 간절히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저희 내외가 두주 동안에 이런 저런 일들로 마음이 심란했었는데 박철호집사님 내외분의 선대하심으로 인해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희 부부는 박철호집사님 내외분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고난의 때에도 더욱 힘내서 열심히 목회를 하라고 큰 위로를 주셨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되어진 일들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쪽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천국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엄청난 사랑을 받고 그리고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과 이적을 직접 보았으면서도 도무지 변화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고 제멋대로 행하면서 예수님을 외면하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11:20-23)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병자는 고쳐 주시고 상처 받은자는 위로하시고, 굶주린자는 먹이시고, 소망이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죄를 지은자는 용서해 주시고, 저주와 사망과 지옥불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행복과 생명과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특별히 고라신과 벳새다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라신과 벳세다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에 임했던 심판이 너희에게 임하고 소돔의 백성들의 당한 유황불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과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런 심판을 받게되는 이유가 무었입니까? 아무리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해도 전혀 들을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 멋대로 행하면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폐 일언하고 회개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받은 베드로도 오순절날에 밖으로 나와서 “너희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라고 선포 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회개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은 회개를 통해서만 새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 해야만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었어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회개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회개한 사람만이 지옥불을 면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를 믿고 세상을 따라 살던 삶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생활이란 회개의 연속입니다. 얼마나 회개하면서 살고 있는가?가 신앙의 척도입니다.
기본회개가 끝나는 지점에서 평생 회개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길은 나의 옛 죄를 벗어버리고 나의 악함도 버리는 것입니다.
뉴욕에 한국인 식당이 있습니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이용하는 식당입니다. 그 식당주인에게는 아들 하나,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큰 애가 딸이었는데 스물두살난 예쁜 딸이 납치를 당했습니다. 아침에 식당문을 여는데 강도들이 들어와서 권총으로 위협해서 딸을 납치해서 자동차 트렁크안에 잡아 넣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협박을 하면서 돈을 요구 했습니다.
무아버지는 납치범들과 14시간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트렁크안에 갇혀있는 딸은 좁고 컴컴한 공간에 갇혀서 강도들이 자기를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히 두려워 떨었습니다. 대가 납치를 당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트렁크 안에 있었던 딸도 두려움과 공포에 떨다가 "내가 죽기 전에 회개를 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큰 은혜를 주셔서 이렇게 번창하게 해 주셨는데 우리는 그 은혜를 저버리고 주일날 교회도 가지않고 십일조도 안하고 봉사도 안했습니다. 우리 아빠나 엄마 그리고 우리는 오직 돈벌기에만 바빴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번 경고를 주셨는데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딸이 울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회개하고 나니까 마음이 평안해 지면서 감사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하나님! 그래도 내가 잡혀온 것이 낫지 마음약한 제 어린 동생이 잡혀왔으면 어떻게 할뻔 했습니까?” 그러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트렁크 안에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동안에 아버지는 경찰에서 연락을 했고 아버지가 범인들에게 돈을 건네는 현장에서 FBI와 경찰이 공조해서 범인들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딸은 14시간만에 트렁크에서 나왔습니다. 부모는 딸아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서 실신했던지 초죽음이 되어서 나올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얼굴이 훤해서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기뻐서 나오더랍니다.
14시간동안 트렁크 안에서 회개를 통해서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딸아이에게 “얘야 힘들었지? 14시간동안 고생했다”하고 이야기를 하자 딸아이는 “제가 트렁크 속에 14시간 동안이나 있었어요? 저는 두 세시간밖에 안된 것 같은데요?”하더랍니다.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까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은혜가 임하니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공포도 사라지고 그리고 하나님은 기적을 만들어서 구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비는 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이 깨닳아진 사람만이 회개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온갖 축복을 선물로 받을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애통해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짓고 살면서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 갑니다. 그이유는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무지한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통하여 죽은 영혼을 살려 주십니다. 그래서 영혼이 살아나면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처음으로 영접하고 자기 죄를 자복하고 예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생에 단 한번 있는 사건입니다. 반면에 회개는 회심 후에 성도로 살아가면서 날마다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심은 한번뿐이지만 회개는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항상 죄에 물들기 쉽고 죄에 빠지기 쉬우며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은 성도도 연약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아무리 중생한 성도라 할지라도 옛 죄의 성품이 남아있기 때문에 거의 날마다 여러 가지 죄악에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성도는 늘 회개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거제를 다녀 오는 동안에 김문훈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부산 포도원교회의 김문훈목사님은 달변가입니다. 유모어가 풍부하고 설교가 긍정적이고 소망적이고 설교를 들으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김문훈목사님이 아주 진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실제로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면, 저는 겉으로는 늘 즐겁게 설교하고 신나게 설교를 하지만 그러나 진짜로 내 자신을 살펴보면 나는 너무나 부정적이고 원망불평을 입에 달고 살고 매사에 쪼잔하고 소극적이고 비판적이고 혈기방자하고 어디를 봐도 목사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고백을 하시는 김문훈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방금 고백한 저 모습이 바로 진짜 김문훈목사님의 모습이 맞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앞에서 자기 자신의 허물과 죄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김문훈목사님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문훈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서 안수집사 임직을 받은 윤인준집사님의 안수집사 임직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때 저와 제 집사람이 김막순권사님을 모시고 부산 포도원교회의 임직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시간쯤 일찍 도착해서 예배당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김막순권사님은 손녀딸과 며느리를 보러 가셨고 우리는 예배당에 앉아 있었는데 예배당 안에서는 한창 현수막을 부치고 데코레이션을 하는 집사님들과 청년들 그리고 부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한창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김문훈 목사님이 나타 났습니다. 목사님이 예배당에 들어오시더니 부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준비해 놓은 데코레이션을 보시더니 "이게 뭐야! 뭐 이따위로 해놨어!" 하더니 앞으로 와서는 붙여놓은 현수막을 휙 잡아 떼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걸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떻게 해! 이런 쪼다같은 것들! 다시 해!” 하면서 야단을 치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렇게 야단을 치다가 저와 제 집사람이 예배당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신 목사님이 정색을 하고서 “빨리 빨리 다시 준비해” 하고 이야기를 하더니 예배당 뒤쪽으로 나가셨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서 텔레비전에서 보던 목사님과는 전혀 딴판인 김문훈목사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고 은혜스럽고 유모어가 넘치고 말도 잘하고 정말 재밋고 신나게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에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목사님을 바라 보았는데,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까 목사님의 좋았던 이미지가 싹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음부터는 김문훈목사님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아무리 은혜스러운 설교를 해도 은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차안에서 김문훈목사님이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아주 진지한 태도로 자기가 형편없는 목사라고 고백을 하면서 내가 평소에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입만열면 원망불평에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소심하고 그러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온갖 혈기를 다 부리고 도무지 목사 자격이 없는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성토하고 회개하는 고백을 하는것을 들으면서
저는 “그렇지 저 목사님이 저렇게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겸손하게 엎드릴줄 아는 목사님이기에 하나님이 저 목사님을 귀하게 쓰시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겉으로는 그럴듯한 목사처럼 생활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김문훈목사님이 고백한 것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다를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같은 죄인이 아직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쓰임을 받고있는 이유는 저도 다윗같이 엎드려서 늘 하나님께 회개하고 시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구하면서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강단에 서서 예배를 집례하고 설교를 할때마다 종종 자격도 없는 목사가 하나님의 존전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심히 송구스러울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주신 사명이 있기에 아직도 하나님께서 저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회개를 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건방을 떨고 함부로 입을 놀리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땡탈락입니다. 마이너스 백점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나면 끝장입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10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나는 죄 없어요. 나는 회개할 것이 없어요 이 모든게 당신 잘못입니다. 당신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원죄와 과거의 모든 죄에서 씻음을 받았기에, 이제부터는 매일 짓는 자범죄만 회개함으로써 용서를 받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인들의 일기를 살펴보면 대부분 날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한 것을 알게 됩니다.
회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니캄”과 “슈브”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의 뜻은 “죄로부터 돌아서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고 삶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메타노이아”인데 “마음을 바꾼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회개가 “Repent”인데, 그 뜻 역시 “돌이킨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회개하는 또하나의 단어는 ”에피스트로프“인데 이 단어의 뜻은 구약의 “슈브”에 해당되는 말로써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라는 뜻입니다.
한문으로도 “회개”(悔改)는 “돌이킬 회” “고칠 개”자를 써서 회개 입니다. 즉 회개는 “돌이켜서 고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더불어서 진정한 회개는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베드로는 비록 연약하여 마음에도 없는 말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합니다. 그러나 닭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그는 회개를 통해서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다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은 두 번 다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순교에 이르도록 그 결심을 지켜 냈습니다.
그러나 거짓 회개한 가룟 유다는 은 30을 받고서 예수님을 판 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를 뉘우쳤지만 그러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행위가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고민하다가 절망 가운데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거짓 회개의 비참한 결말일 뿐입니다.
사람이 회개를 하려면 내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만으로는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분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내 죄를 뻔히 알기에 회개를 해 보지만 회개가 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여시고 도와 주실 때 비로소 통회자복이 가능합니다.
가룟유다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는 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했고, 자기 죄가 고통스러워서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인간 스스로는 진정한 회개의 자리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의 역사가 있어야만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안 되는 성도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회개시켜 주시옵소서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시카고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세 살짜리 아기였습니다. 이 아기의 주검을 놓고 장례식을 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할 때 모두 눈을 감고 있는데 초라한 옷을 입은 거지 몰골의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죽은 아기의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그 신발을 35센트에 팔아 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살짜리 어린 딸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에 서 그 아기의 신발을 벗겨다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인간, 이런 자를 누가 인간이라고 하겠습니까? 짐승만도 못하지요. 이 사람은 더이상 소망이 없는 끝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를 상대로 전도하여 수천 명의 알코올 중독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그가 바로 “메트라이더”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이자 부흥사가 되어 시카고를 변화시킨 목사님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너나 할것없이 모두가 회개하고 새출발을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새출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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