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내원집사님의 동생 조채환군의 결혼식이 있어서 경남 김해에 있는 엠 컨벤션 웨딩홀에 다녀 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교회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조내원집사님과 강소애집사님을 만났고 그리고 집사님부부의 사랑스런 딸 소원이도 만났습니다.
조내원집사님의 아버지 조재규장로님과 어머니 조금숙권사님도 만나고 조내원집사님의 두 남동생들도 만났습니다. 미세스 남해세광인 김명심집사님도 만나고 조내원집사님과 회사에서 생사고락을 갖이하는 친구분도 만났습니다.
조내원집사님부부와 아름다운 관계가 되다보니까 조내원집사님과 관계된 모든 가족들과 지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사람들로 여겨 졌습니다. 어제 조내원집사님부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조내원집사님의 태국 사업이 정상적으로 잘 진행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우리교회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조내원집사님에게 시금치10키로와 굴3키로를 선물로 가져가고 그리고 20만원을 동생 결혼 축하금으로 전달해 드렸습니다. 식사후에 조내원집사님이 저에게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봉투에는 “목사님 먼길 오셔서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집에와서 열어보니까 20만원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조내원집사님의 사려깊은 마음에 고마움을 금할길이 없었습니다. 조내원집사님께서 배려해 주신 사랑이 너무나 고마워서 오늘 교회학교 예배때 그 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희를 선대해 주신 조내원집사님과 강소애집사님에게 이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다녀오는길에 함안에 계신 정평과집사님도 만나고 왔습니다. 정평관집사님에게도 시금치10키로와 굴3키로를 드렸습니다. 정평관집사님은 일터에서 트럭에 짐을 싣다가 저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정평관집사님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고 잠시만 뵙고 왔는데 정평관집사님이 추진하고 있는 8억7천짜리 땅과 공장문제가 어떻게 진행 되는지를 물었더니 그 사업체를 소유한 분이 8억까지 줄테니까 정평관집사님에게 사라고 제안을 했는데 집사님은 조금더 기다려 보자 하고 계약을 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업체를 사겠다고 나선 분이 계셔서 그분이 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엉뚱한 일이 생겨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바람에 그분과의 계약이 무산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희도 새벽마다 그 땅과 사업체를 정평관집사님이 원하는 값에 사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금번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다른분과의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서 참 마음이 기뻤습니다.
저의 형님 김동문집사님께서도 지난주에 중국에 다녀 오셨는데 이번주에 다시한번 중국에 가신다고 합니다. 중국 사업문제가 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데 다음주에 한번 더 방문하면 구체적인 윤곽이 잡힐 것 같습니다. 모든일이 잘 마무리 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섬기고 경외해야 할 구세주 이십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자기를 낮추고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사람이 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않고 죄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로 5절에 보면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람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모든 사람들이 죄를 따라서 살았기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육체의 정욕과 이기적인 욕심만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고 죽음 후에는 죄의 형벌로 인해서 유황불이 펄펄끓는 지옥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서 지옥불로 들어가는 인생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옥불로 가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함”인데 “라함”은 “긍휼”과 “창자”라는 두가지 뜻으로 쓰이는 단어 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긍휼입니다.
중국의 한문에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장”은 “창자가 끊어진다”라는 말입니다. “단장”이라는 말은 중국 “진(晉)나라” 시절에 있었던 사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환온태수”가 “촉” 땅을 정벌하기 위해서 군사들을 배에 태우고 양자강을 항해 할 때 환온의 부하가 강가에서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그 원숭이 새끼를 배에 싣고 갔는데 원숭이 새끼가 울부짖자 어미 원숭이가 새끼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새끼원숭이는 배를타고 어디론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 배가 가는 쪽으로 강가를 따라서 따라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 어미가 무려 100리가 넘는 곳까지 새끼가 탄 배를 따라갔습니다. 드디어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어미 원숭이는 사람을 아랑곳 하지않고 새끼가 있는 배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보자마자 새끼를 끌어안고 기진맥진해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원숭이 요리를 좋아 합니다. 그래서 배 위로 뛰어 올라와서 죽은 원숭이를 보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죽은 원숭이를 요리를 해서 먹으려고 원숭이 배를 갈랐는데 배를 갈라 보니까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거의 토막 토막 끊어지다시피 오그라져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떠나가는 새끼를 향한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어미를 잃은 새끼가 얼마나 어미가 보고 싶을까 하는 애절한 마음 때문에, 애가타서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지다시피 오그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창자가 끊어질 듯이 괴로운 상태를 “단장의 아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으로 창조한 인간이 죄로 인해서 지옥불에 들어가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단장의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입고 세상에 오셔서, 당신 스스로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승천 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쩔쩔매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 주시려고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7절로 8절을 다시 보면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셨다”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겸손하게 낮아져서 사람들을 섬기느라 하루도 쉴 틈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자들을 온전케 하시고, 배고픈자들은 먹이시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시느라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 다니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기시고 마지막에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섬김의 삶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처럼 섬김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존귀하신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섬겨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6.25사변 때 아픔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라 전체가 아파서 울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전쟁고아들이 여기 저기서 울부 짖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 미국 병사가 전쟁통에 돌아다니면서 방황하는 한 소년을 섬겨 준 사건이 동네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1934년도에 경기도 화성군 안용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태어 났습니다. 그는 4남 1녀 중에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제시대 였기에 모두가 지지리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그 소년의 아버지는 자식들을 데리고 수원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자라면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서울로 간 이유는, 누군가가 철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학비도 안내고 국비로 공부할 수 있고 용돈도 준다고 귀띔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년이 철도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보려고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상경한 바로 그날 6.25전쟁이 터져서 북한군이 삼일만에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그 소년은 우여곡절 끝에 도망을 다니다가 전쟁통에 미군을 따라 다니면서 초콜릿과 껌을 얻어 먹으면서 지냈습니다.
그 소년이 미군 24사단 21연대가 주둔한 곳에서 손짓 발짓을 하면서 미군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먹고 지냈는데, 어느 날 한 미군장교가 그 소년을 하우스 보이로 발탁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미군들의 막사 청소도 하고 군화도 닦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중공군의 남하로 미군들이 후퇴하자 이 소년도 미군들을 따라서 경북 경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 소년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은혜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칼 파워즈상사” 입니다.
칼 파워즈상사는 미군 막사에서 충성스럽게 일을 하는 이 소년을 눈여겨 보다가 “이 아이를 공부 시키면 장차 훌륭한 일을 하겠다” 싶어서 사비를 털어서 그에게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칼 파워즈 상사의 도움으로 1951년 11월 12일날, 열 여섯 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는 하우스보이 시절에 모아둔 미화 130달러를 가지고 부산항에서 미국행 배를 탔습니다. 이 아이가 미국에 도착해서 밥 존스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아이는 고향이 그리워서, 향수병에 걸려서 매일 울었습니다.
그가 지독한 향수병으로 힘들어하자 룸메이트로 같은 방을 쓰던 미국학생인 고3 선배가 그를 데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데리고 나가서 예수님을 믿게했고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모든 외로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와서 농림부장관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공부를 했습니다. 농림부 장관이 되어서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 점점 신앙이 깊어진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바꾸어서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그는 밥 존스 신학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가 밥 존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까지 다녔는데 그는 대학과 대학원을 공부하는 동안에 시종일관 올 A의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축복은 1958년 8월달에, 같은 대학교에서 만난 “트루디”라는 아름다운 백인 여자와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는 1959년 2월달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9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25세에 목사가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몇몇 지인들이 그에게 “목사로 출세 하려면 서울에서 개척을 해야 한다”라는 권유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고향인 수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아온 1959년도에 수원에는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단 2사람 뿐이었습니다. 수원은 당시에 우리나라의 도시들 중에 가장 가난한 도시중에 하나였습니다. 그가 수원에서 개척해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일년이 지나도 가족을 포함해서 12명의 교인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 복을 쏟아부어 주시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1만5000명의 대형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도대회인 빌리그래함 여의도 대 부흥집회때 통역설교를 통해서 우리나라 전체의 신앙부흥에 크게 일조를 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수원 중앙침례교회의 김장환 목사님입니다.
김장환목사님은 늘 “사람이 사람을 잘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잘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동기는 “칼 파워즈 상사”의 헌신입니다. 칼 파워즈 상사는 6.25때 한국전쟁에 참전 했다가 김장환이라는 어린 소년을 보고서 “이 소년을 잘 키우면 귀한일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자기의 사비를 털어서 그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를 미국으로 유학시켜 주었고 결국 그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되어서 나라와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섬기면 그런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아프리카나, 제3세계의 어린이들 에게도 매달 만원씩만 후원하면 그 아이들도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칼 파워즈 상사 한사람의 섬김은 정말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가 후원해서 성장한 김장환목사님은 수원에서 제일 큰 교회를 세워서 수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고, 김장환목사님은 동양인 최초로, 미국 최대 교단인, 침례교 세계연맹 총회장에 올라서 세계 복음화에도 크게 기여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KBS와, CBS에 이어서 극동방송국을 세워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영성을 깨우는데 일조했고, 그리고 전파를 통해서 공산권 선교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와같이 한 사람 칼 파워즈 상사의 헌신은,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 칭찬받은 교회들과 책망받은 일곱교회들이 소개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 사데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심하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책망이라기 보다는 저주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사데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였기에 주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절) 몸은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들은 죽은 믿음을 가졌기에 책망을 들었습니다. 사데교회 성도들이 책망을 받은 이유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섬김도 없고 사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너희는 죽은 교회라고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교회는 교회인데 그 어느것 하나도 주님께 칭찬 들을만한 것이 없는 부끄러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가득한 사데교회를 질책 하시면서도 몇몇 사람은 칭찬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요한계시록 3장 4절에 소개 됩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
오늘날 한국교회도 점점 사데교회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회나 총회는 권력비리와, 돈 문제와, 여자 문제로 몸살을 앓고있고, 모든 교회들은 너나 할것없이 서로 갈등하고 다투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언론에 비춰지는 교계의 뉴스를 보면서 교회가 썩었다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와같이 교회가 총체적으로 침체해 가는 가운데서도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성도가 많아지고 교회가 많아지다 보니까 문제도 많아져서 교회안에 시끄러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지금도 성실하게 목회하는 주의 종들과 더불어, 이름없이 빛도없이 충성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특심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평생동안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도 은퇴한 후에 다시 선교사로 가서 죽도록 충성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어떤 분은 의사로서 아무 부족함이 없는데도 어느날 갑자기 의사의 직업을 내려놓고 아프리카나 오지에 가서 의료 선교로 희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중직의 임원인데도 임원자리를 내려놓고 선교사로 봉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을 흠모하는 청년들중에는 여름방학이나 회사의 짧은 휴가 기간 동안에 단기선교로 봉사하면서 주님께 시간과 마음을 드리는 귀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정평관집사님의 가족들도 틈마나면 선교하러 갑니다. 어제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평관집사님 가족도 지난주에 목사님을 모시고 필리핀에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난한 나라에 선교하고 돕고 사랑을 베풀면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크게 기뻐 하십니다.
주님은 아직도 충성스럽게 섬기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희망을 걸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나 성도들을 볼 때 아직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갈아 엎을만큼 막장상황은 아닙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타락해서 그 도가 지나치면 하나님이 심판 하시던지, 아니면 마르틴 루터 같은 사람이 나와서 교회를 개혁하던지 아니면 청교도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축복의 촛대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한국교회를 심판하거나 갈아 엎지 않으시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만약에 한국교회가 더 이상 고질적인 죄악과 병폐들을 고치지 아니하고 죄악이 관영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갈아 엎든지 심판하시던지 아니면 축복의 촛대를 다른곳으로 옮기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기회가 있을때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이 되는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창성한 세상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고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는 어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혼예배를 드리기 전에 강소애집사님을 통해서 조내원집사님 가정의 신앙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일이라서 이야기하는 것이 누가될까 걱정도 되지만, 그러나 우리가 늘 사랑하고 기도하는 집사님부부 이기에 여러분들도 기도해 주십사 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알고 보니까 조내원집사님의 부모님께서 류광수목사님이 지도하시는 다락방 이단에 속한 교회에 출석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락방 이단은 18년전에 우리나라 모든 정통교단에서 이단으로 인정한 집단입니다. 다락방은 신구약성경과 십자가복음을 믿는 것은 우리와 같지만 포교활동이나 성경을 적용하는 방법에서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다락방은 기존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해서 교세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일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한국기독교 총 연합회가 다락방을 이단에서 해제 했습니다. 그러나 합동이나 통합측 정통보수 교단은 아직도 다락방을 이단에서 해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류광수목사님과 다락방이 기성 교회에서 성도 빼내기를 한 것과 성경을 부분적으로 지나치게 인용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래서 류광수목사님이 정식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교회 전체가 다락방을 정상적인 교단으로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조내원집사님의 어머니가 다락방에 심취해서 다락방교회 신자가 되었고 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서 다락방교회에 나가셔서 거기서 장로임직까지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조내원집사님은 절대로 부모님이 나가는 교회에 안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명절이나 가정에 애경사가 있어서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가더라도 절대로 부모님이 다니는 다락방교회에 간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이니까 한번쯤은 구경삼아서라도 부모님을 따라갈법 한데 조내원집사님은 명절에 집에 가서도 한번도 부모님을 따라서 다락방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믿음입니다. 주님이 칭찬하신 것처럼 옷을 더럽히지 않은 믿음입니다.
오늘도 용강마을에서는 또 시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여러 마을에서 시제를 지내는 바람에 몇몇 성도님들이 교회에 못나오셨는데 오늘도 동네제사 때문에 몇몇 집사님들이 교회에 못나오셨습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날, 시제 제사 때문에 주일예배에 빠진 분들이 수요예배에 나오셨기에 “집사가 제사 때문에 교회에 못나온다는게 말이 됩니까?”하면서 신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주에도 또 제사 때문에 교회이 못나온다고 전화가 왔길래 제가 야단을 치면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책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타락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입니다. “그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시대 시대마다 세상이 타락해서 의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때에도 하늘의 별과같이 빛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찬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18:21) 라고 말씀 하시면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 때문에도 망했지만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망했다고 증거 합니다. 세상은 죄 때문에 망하기도 하고 심판을 당하기도 하지만 한편 의인이 없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한 사람이 있으면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삽니다. 아무리 망나니 같고, 도무지 소망이 보이지 않는 인간일지라도 그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으면 그 자녀는 소망이 있습니다.
부랑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소년시절에 열 일곱살에 한 여자와 동거하다가 18살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라고 간곡하게 권면을 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종교에 심취해 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성경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아들을 위해서 날마다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들으시고, 방탕하게 살던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실로 13년동안 기도한 기도의 응답 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그는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역사 이래로 기독교를 훼방하는 모든 이단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켜낸 훌륭한 신학자입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한 어머니의 기도가 그런 위대한 결실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무너져도 반드시 구원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습니까? 그 이유는 나도 변화된 한사람이 되어서 사명을 감당하라고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방금전에 소개한 사데교회는 칭찬은 하나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들은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에게서도 희망과,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데교회의 성도들이 다 믿음이 식어져서 우상숭배도 마다하고 엉터리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중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가 몇 명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족한 모습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이유는, 충성된 믿음의 성도들이 처처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그리고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만 크리스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중요합니다. 내 교회와 내 가정과, 내 직장에서, 내가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옥같은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창기들이 변화되고, 삭개오처럼 세리가 회개하기도 하고, 70문도처럼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제자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은후에 순교도 불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유독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주옥같은 설교를 들어도 아무런 감동도 없고 반응도 없고 회개도 없고 변화도 없고 오직 비판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대부분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은 복음을 들을 때 반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면 기뻐하고, 회개의 말씀이 선포되면 회개하고, 책망의 말씀이 선포되면 근신하고,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면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서, 이건 내 마음에 안든다고 싫어 하거나 또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사랑과 열정과 감동이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또한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해서 변함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교회가 잘되려면 잘난 사람은 낮아지고 못난 사람은 높아져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지향목표는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잔칫집에 계시듯이 흥겹게 사셨습니다. 주님에게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4절로 15절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합니까?”
그때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슬퍼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혼인잔치집 분위기에 젖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늘 혼인잔치집처럼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서 교회에는 희생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하나님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사람이 없어서 유다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가 살고있는 동네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내 직장에서, 또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그 한 사람을 찾으신다면, 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그 한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까? 나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면 내가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내 가정을 살릴 책임이 내 무릎에 있습니다. 우리도 모니카 같은 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사데 교회에서 신실한 몇몇 성도를 찾으시고 그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3-5)라고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이기는 신앙을 가진자에게는 흰옷을 입혀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환란과 핍박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란의 시험에서 이긴 자에게 영광의 옷을 입혀 주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쓴 “주를 위해 살다”라는 책에 보면 놀라운 간증이 나옵니다. 한 믿음좋은 사업가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공산권에 들어가서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기도를 한 후에 그는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명목은 사업차 갔지만 목표는 전도 였습니다.
그는 북한에 가면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청소도 하고 막일을 하는 한 소년를 만났는데 이 소년이 호텔 방에서 갑자기 자기손을 붙잡더니 손바닥에다가 십자가를 긋더랍니다.
그래서 “아!, 이 아이가 예수를 믿는 아이구나”싶어서 비밀리에 몰래 그 아이를 다시 만나서 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을 한 후에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아이가 하는말이 “우리 가족은 예수를 잘 믿는 가족인데요 몰래 숨어서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이 되어서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셨고요! 어머니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가족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어요! 저는 이 호텔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저는 혼자서 몰래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분이 감동을 받아서 “내가 너를 위해서 뭘 도와주면 좋겠니?” 하고 물었더니 “제가 몇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먼저 제가 그동안 호텔에서 일하면서 번 돈의 십일조를 가져가셔서 제 대신 헌금해주세요! 둘째로 저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세요! 세례를 받고 싶은데 세례를 받지 못했거든요! 셋째로 성만찬도 베풀어주세요! 그리고 네 번째는 성경책을 좀 주세요! 성경을 읽고 싶은데 성경이 없어서 읽지를 못하고 있어요!”
이 소년은 발각되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푼푼히 받은 월급과 팁을 받은 돈 중에서 십일조를 모았는데 북한에는 교회가 없으니까. 그분에게 대신 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믿었는데 세례를 받지 못했기에 세례 받은 교인으로서, 언제든지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수 있도록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했고, 예수를 믿고도 성찬식을 한 번도 못했는데 성찬식을 하고싶고 성경을 읽는 것이 소원이니 성경책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소년의 믿음이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이 소년은 믿음을 지킬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을 지키면서 지냈습니다. 이기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즉 핍박을 이기고 우상숭배를 이기고 더러운 죄를 이긴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 하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3-5)
예수님은 영육간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를 이긴자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3가지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첫째는 1)천국에서 흰옷을 입습니다.
둘째는 2)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셋째는 3)그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 앞에서 시인하십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이 보혈로 씻겨주신 몸과 마음의 옷을 죄로 더럽힌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예복을 입지 못합니다.
둘째 하늘나라 생명책에서도 그 이름이 지워집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부인을 당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 믿으면 무조건 천국가고, 어떻게 살든지 용서를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 믿는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있고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70명의 제자들이 전도훈련을 받고 실습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했더니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보고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그동안 벌어진 기적들과 귀신들이 쫓겨 나가는 것을 신이나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18~20)
능력을 받아서 귀신들을 쫓아 낸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진짜 기뻐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능력을 받아서 귀신도 쫓고 병도 고치고 기적을 행해도 생명책에 너희의 이름이 없다면 능력을 행했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는, 교인 명단에 내 이름이 적혀 있지만 천국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졌다는 말은 신앙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옷을 더럽혀 졌다는 말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성도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나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데교회에는 옷을 더럽힌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옷을 가장 더럽힌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간음하는 사람들입니다. 옷을 더럽혔다는 것은 영육간에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브라질 삼바축제 때에는 축제를 개최하는 시에서 매년 4500만개의 콘돔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만큼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에는 옷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데교회는 경제적으로도 번창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사데지역은 귀금속생산으로 유명했고 인류최초로 금화를 만든 도시였습니다. 마이다스의 손은 황금의 손입니다. 즉 무엇이든지 손만 대면 황금으로 변한다고 하는 마이다스의 전설이 생겨난 곳이 바로 이 사데입니다.
사데지역 사람들은 돈이 많으니까 사치하기를 좋아하고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타락한 생활을 하니까 교인들도 다 타락 했습니다. 그래서 사데교회성도들은 풍요롭게 살면서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신전의 우상도 같이 섬기면서 지냈기에 교회로서의 영향력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는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데교회의 교회터는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되고 맙니다. 그 나라가 바로 이슬람교가 점령하고 있는 터어키인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한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비참한 모습이 바로 옷을 더럽힌 성도와 교회와 나라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주님의 심정으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애절한 마음으로 내 가족들과 이웃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진실한 성도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믿음에 굳게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최근에 한 엄마가 임신을 했는데 암에 걸렸습니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36세의 엘리자베스 조이스라는 여자가 암에 걸려서 항암 치료를 받았는데 그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된 조이스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조이스는 임신한지 4개월만에 허리에 암이 재발해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조이스는 암이 전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서 전신 스캔을 해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지워야 한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조이스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보다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암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 암이 퍼지기 시작 했습니다. 나중에는 폐에도 종양이 생겨서 숨쉬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기를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한 끝에 출산 예정일을 두 달 앞두고 8개월째 되던달에 제왕절개 수술로 딸 릴리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출산한 그녀는 한달 보름만에 딸을 안고있는 남편 곁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의 죽음을 지켜본 남편 맥스는 아내가 죽자 “삶에 대한 아내의 낙관적 인 태도와 그녀가 아이를 위해서 보여준 용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 했습니다.
오늘날 낙태로 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침없이 낙태를 자행하는 이런 시대에 뱃속에 있는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던진 그녀의 희생은 별과같이 빛나는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희생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를 위한 희생이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희생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인데도 나를 위해서 희생의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죽을때까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말고 마음과 몸을 죄로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록에 기록된 나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만 따라 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를 따라가면 얻을 분복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처럼 섬기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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