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5년10월21일수요저녁 에스겔17장 열매맺은 가지

그리운시냇가 2015. 10. 22. 12:08

 

어제 새벽에 대구에서 이종환성도님께서 오셔서 새벽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예배가 끝난후에 제가 본당의 불을끄고 차량운행을 하려고 나갔더니 이종환성도님께서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면서 하시는 말이 목사님! 남해세광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기도가 잘 되는지 은혜와 성령이 충만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도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시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분의 고백이 생각났습니다. 입당예배때 강둘자집사님의 시누 권사님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데 시누 권사님께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남해세광교회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얼마나 기도가 잘 나오는지 기도를 하다말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크게 복주신 교회임이 틀림없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맞는 말입니다. 성전건축을 끝낸 후부터는 교회에 들어가서 앉기만 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평안과 기쁨과 성령충만이 임합니다. 요즘은 매일 밤에 예배당에 가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성령충만을 주시는지 하나님께서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성전건축을 정말 기뻐 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도님들도 이구동성으로 예배당을 새로 지은 후부터는 교회에 오면 마음이 기쁘고 소망이 넘치고 행복해 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재준집사님은 저에게 목사님! 교회 오는 날과 교회 오는 시간만 기다려 집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나서 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 하셨으면 솔로몬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구하라 라고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성전건축을 크게 기뻐 하신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지난 주일날 예배가 끝난후에 왕지 성도님들과 함께 병원에 입원해 계신 윤희운집사님을 심방 했습니다. 윤희운집사님께서 건강이 악화 되어서 심방을 갔는데 숨을 잘 못쉬고 가슴이 답답해서 입원해 계시던 윤희운집사님께서 병문안 심방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집사님께서 숨을 잘 쉬고 몸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희가 병실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바로 건너편 병실에 고봉례집사님이 입원해 계셨습니다. 고봉례집사님은 링거주사를 맞고 계시다가 찬송 소리가 들리자 금방 ! 저 찬송소리는 김다윗목사님의 찬송 소리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인데도 목사님을 만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려고 준비를 하셨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링거 주사병이 달린 링거대를 움직여서 병실 문 밖으로 나오는데 무려 20분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밖으로 나온 시간에 우리는 이미 예배를 마치고 윤희운집사님과 류영점권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병실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이 밖으로 나와서 보니까 마지막으로 제 집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있었고 류영점권사님은 복도에서 배웅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집사님이 사모님!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집사님이 워낙 힘이 없어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병원을 나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고봉례집사님은 저희 일행을 만나고 싶어서 온 힘을 다해서 복도로 나왔지만 끝내 못만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일행을 못만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간 고봉례집사님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습니까?

 

게다가 고봉례집사님은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저를 사랑하고 저를 좋아하는 집사님입니다. 제가 설천교회에서 쫓겨날 때 고봉례집사님은 큰 갈등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고봉례집사님은 설천교회의 박복선장로님의 숙모님 이셨습니다. 그러니 혈연으로나 지연으로 볼 때 절대로 설천교회를 떠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고봉례집사님은 혈연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저를 선택하셔서 남해세광교회로 오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고봉례집사님과 집사님의 자녀들은 적잖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고봉례집사님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남해세광교회를 선택 할 수 없는 가정적 배경과 혈연관계 속에서, 남해세광교회를 선택하신 고봉례집사님의 선택과 결단은 마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아버지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다윗을 선택한 선택과 같은 결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선택한 것은 왕인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당할수도 있는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고 참된 길을 선택했기에 다윗을 돕고 다윗을 따르는 일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남해세광교회를 선택한 모든 성도님들이 동일한 선택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성도님들 한분 한분을 심방해 보면 하나같이 모든 성도님들이 가면 갈수록 점점더 영육간에 복을 받고 계십니다. 그게 바로 선택을 잘 한 분복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 환란과 고난이 계속되는 가운데에서 사울왕을 선택한 사람들과 다윗을 선택한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더 극명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사울왕을 선택한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환란과 시험과 고난이 닥쳐왔고 다윗을 선택한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영육간에 복을 받고 범사가 형통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찬송소리를 듣고 죽을 힘을 다해서 일어나서 링커 받침대를 의지하여 복도로 나온 고봉례집사님의 중심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일날은 그렇게 저와 우리 일행들을 못보고 다시 병실로 돌아가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봉례집사님에게 귀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제 저희 부부가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교회건물의 등기서류를 찾으러 읍내로 나갔습니다. 서류를 찾은후에 그동안 입당예배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해주신 김상철성도님 부부를 만나서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저희는 돌아오는 길에 윤희운집사님 병실을 한번더 방문해서 기도를 해 드리려고 남해읍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갔더니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한분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셨는데 바로 뒤를 따라서 한분이 휠체어를 밀고 따라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달려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두 번째로 휠체어를 밀고 따라 들어간 분이 바로 고봉례집사님의 딸이었고 그 휠체어에 고봉례 집사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우리는 반가와서 인사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까 고봉례집사님이 지난 토요일에 병원에 입원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봉례집사님의 병실을 알아놓고 윤희운집사님 병실에 가서 병문안을 했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서 보니까 윤희운집사님은 누워 계시고 류영점권사님께서 빵과 음료수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시간이 세시쯤 되었는데 류영점권사님께서 점심식사도 못하시고 빵 하나와 우유를 드시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스러웠습니다.

 

윤희운집사님은 누워 계시다가 인기척이 나니까 깨셨는데 깨자마자 저를 보시고 하신 첫 마디가 목사님 제 집사람을 부탁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윤희운집사님이 더 이상은 자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을 부탁한다는 고백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윤희운집사님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그리고 나서 고봉례집사님 병실을 방문 했습니다.

 

그런데 고봉례집사님 병실에 가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고봉례집사님께서 지난 주일날 우리가 윤희운집사님 병실에서 예배를 드릴 때 고봉례집사님이 저희를 만나려고 사필귀정으로 온 힘을 다해서 일어나서 병실밖으로 나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고봉례집사님의 손을 잡고서 집사님!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저희를 만나려고 나오셨는데 우리를 만나지도 못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셨어요!” 하고 집사님을 위로해 드렸더니 집사님께서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냥 가버린 후에 너무나 슬퍼서 병실에 돌아와서 누워서 한참을 울었어요!”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저도 사모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집사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집사님의 중심을 보시고 오늘 우리를 만나게 해 주신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루가 24시간인데 스물 네시간 중에서 집사님과 우리가 어떻게 그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시간에 마주칠수가 있어요? 집사님이 30초만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셨거나 우리가 일,이분만 늦게 갔더라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집사님께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시간에 우리도 엘리베이터를 타서 집사님을 만났으니까 이건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거예요 집사님이 우리를 사모하고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만들어 주신겁니다. 집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했더니 집사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집사님은 우리를 만난 것이 감사해서 그리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셨는데 베겟닛이 다 젖도록 우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테넷에 고봉례집사님의 사진을 올릴때마다 내사랑 고봉례집사님이라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것입니다.

 

고봉례집사님의 올해 나이가 84세 이십니다. 그런데도 고봉례집사님은 순수한 소녀처럼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좋아하십니다. 저 또한 그런 고봉례집사님을 어머니처럼 그리고 애인처럼 친구처럼 사랑합니다.

 

어떻게 그런 관계가 가능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운명체요 또한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피보다 진한 사랑의 띠로 연결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모두가 주님이 만들어주신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날 예배가 끝난후에 다들 식당으로 가시는데 김막순권사님과 정영자권사님께서 밖으로 안나가시고 두분이 함께 앉아서 마치 연인이 껴안고 있는 것처럼 두분이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제가 강댓상을 정리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우리교회 카페에 올렸습니다. 80이 넘은 김막순권사님과 몇 살 아래인 정영자권사님이 서로 부등켜 안고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오직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또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 또한 그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그런 사랑으로 점철된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건강이 이데올로기인 세상에 삽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먹고 아무리 비싸도 구해서 먹습니다. 요즘 광고를 보면 인삼을 먹은 한우, 야생 쑥을 먹여 키운 한우, 마늘대와 마늘을 먹여서 키운 소, 복분자를 먹여서 키운 돼지, 바나나를 먹여서 키운 돼지, 홍삼을 먹여서 키운 돼지, 녹차를 먹여서 키운 보성 웰빙 삼겹살, 뽕잎을 먹여 키운 돼지, 당근을 먹여 키운 백구, 유황을 먹여 키운 오리, 한약재를 먹여 키운염소, 유황과 지네를 먹인 검정 오골계 등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요즘 이런 식용동물들은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삽니다.

 

얼마전에 새벽예배때 차량운행을 하는데 고라니가 나타 났습니다. 그런데 뒤에 앉아계신 한 성도님께서 "목사님 전에 한 사람이 고라니를 드리받아서 차에 싣고 가서 보신원에서 약을 내려 먹었어요! 고라니가 뼈에도 좋고 건강에 아주 좋아서 그렇게 했어요" 합니다. 그러나 동물을 죽이면 동물보호법에 저촉이 됩니다. 게다가 자연속에 있는 동물은 함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며칠 전에는 새벽에 용강에 갔다 오는데 큰 산돼지가 차 앞으로 지나 갔습니다. 산돼지는 건강에 최고로 좋은 동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저도 모르게 "야! 저 산돼지를 바베큐를 해 먹으면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포식을 할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애고 나도 별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최근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각 커피가 런던에서 한잔에 50파운드에 팔렸습니다.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커피 한잔이 약 10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카페라로라는 이 커피는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하면 그 열매를 수거하여 똥을 씻은 뒤에 구운 커피를 갈아서 만든 커피입니다. 잎과 열매는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식품이요 음식의 재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무와 열매를 비유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43절에 보면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중에는 돌감이나, 땡감 또는 탱자가 있습니다. 이런 열매는 과일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열매들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맺는 열매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맺는 열매입니다.

 

오늘 면사무소에 가서 대출서류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교회 입당예배때 면장님께서 아름다운 난 화분을 보내 주셨기에 두유 음료수 한박스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직원중에 한분이 저에게 커피를 드시겠냐고 물어서 사양을 했습니다. 저는 바쁜중에도 다가와서 커피를 제공하려는 면사무소 직원의 호의가 감사해서 그분에게 명함을 한장 드리면서 커피를 받은걸로 할께요 하고는 면장님 책상에도 명함을 한장 놓아 드리고 서류를 찾아서 돌아왔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친절과 호의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우리 예수믿는 성도들이 바로 그래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친절과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하십니다. 우리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소망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스겔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 했지만 다시 이스라엘의 희망에 대한 예언도 선포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이 황폐되고 유다나라의 왕통은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루터기처럼 남은 백성 중에서 메시야 구세주가 태어날 것을 에스겔은 예언 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는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 연한 가지가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연한 가지의 모습을 가진 메시야 구세주 이십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비천한 마굿간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가문과 지위는 아주 비천 했습니다.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비방 했습니다.

 

예수님은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재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다라고 스스로 말씀 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증거에 의하면 예수님의 모습은 아주 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잘생기지고 못했고 고운 모양도 없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학교를 다닌적이 없습니다. 정식으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지도자들이 저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고 힐문했습니다. 예수님은 나 스스로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제자들에게도 업신여김을 받으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메시야 구세주가 태어 난다면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한 가지 같은 예수님은 시온 산에 심겨 져서 아름다운 나무가 됩니다. 그 나무아래 깃들인 사람들은 다 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 나무에는 모든 민족이 깃들여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백향목 나무의 높은 끝에서 연하고 부드러운 새가지이신 예수님을 꺾어서 높고 빼어난 산에 심으셨습니다. 그래서 23절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예수님은 백향목 높은 곳에 있는 아주 약하고 연약한 가지였지만 그 가지를 꺾어다가 높은 곳에 심었더니, 가지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각양 아름다운 새가 그 나무 아래로 모였으며, 그 가지 그늘에 피하여 쉼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당시에 고난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큰 소망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초라하고 힘없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꺾기워 죽은 것 같이, 연약하고 초라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이러한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이다라는 소망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금번 입당예배때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까 김문훈목사님께서도 엄청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제 집사람이 지난 주일날 김문훈목사님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찾아서 들었는데 김문훈목사님께서 우리 남해세광교회에 오셔서 보고 느낀 내용들을 설교시간에 소개 하셨습니다.

 

주보에는 살아있네 라는 제목으로 우리교회의 입당예배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해 주셨고 주일 설교시간에는 목사님께서 본대로 느낀대로 우리 남해세광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김문훈목사님은 우리 남해세광교회에서 성전건축의 불을 당기는 일에 일조한 김예슬집사님과 윤기원집사님의 헌신에 대해서 치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상철성도님의 변화된 삶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시면서 우리 교회는 기도가 살아있고 헌신과 섬김이 살아있는 교회라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저와 제 집사람은 김문훈목사님의 설교에 더욱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우리교회 입당예배를 다녀가신 그 주에는 가룟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악한일에 쓰임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우리교회의 입당예배를 통해서 받은바 은혜스런 간증들을 자상하게 소개하면서 우리교회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전건축을 완성한데 대해서 극구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김문훈목사님은 소마굿간에서 시작한 개척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부흥성장하여 성전건축까지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 이면서 또한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날 개척교회는 90%이상 소멸되거나 망한다고 목사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골 구석박지에서 시작한 개척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된것은 기도가 살아있고 헌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치하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김문훈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더욱 신이 났습니다. 마귀는 입당예배를 훼방했지만 하나님은 그 훼방 때문에 우리에게 더 엄청난 은혜를 쏟아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중에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입당예배를 드렸기에 그 기쁨이 더욱 컸습니다.

 

김문훈목사님은 우리교회에 오셔서도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해 주셨고 그리고 다시 본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때 저희교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증하시면서 우리남해세광교회를 격려하시고 치하해 주심으로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중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통해서 쑥대밭이 되고 잿더미가 됩니다. 그런데 전쟁후에 불과 수십년만에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불교 문화권에 있었고 미신과 우상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 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난 후에 우리나라는 인구의 1/3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 민족 또한. 외세침입과 고난이 많았던 민족입니다. 우리나라에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이 났기에 모든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불철주야 매달려 기도했고 전쟁이 일어나자 수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들어 왔습니다. 그들이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무지한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깨워 주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새벽기도와 금요철야를 하면서 구국기도회를 열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복을 쏟아부어 주셔서 동양의 기독교 대국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도 청년때와 집사시절 그리고 전도사시절에 서울이 다 내려다 보이는 삼각산 통일봉에 매일같이 올라가서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밤이 새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상급을 주실터인데 그 당시에 랜턴과 물을 들고 한시간 반이나 올라가서 통일봉 정상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목이 터져라 기도한 그 기도의 상급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어 기도 했기에 소망이 없던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무한축복을 받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다윗도 강하고 부할 때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연한 순처럼 심령이 가난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가 범죄했을때에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자 그는 내가 하나님께 범죄 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겸손히 엎드려서 회개하면서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용서하시고 다윗을 가장 높은 산에 심으신 것입니다.

 

세도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잃고 살인을 한 후에 도망가서 미디안 광야에서 이름 없는 목자가 되어 양똥이나 치면서 낮아질대로 낮아 졌을 때 하나님이 그를 높은 산에서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귀한 곳에 그를 심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왕의 친구로 지내면서 잘먹고 잘살 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던 왕이 죽고 의지할데가 없어지자 비로소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 하다가 자기의 죄를 깨닫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 하면서 겸손히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 하면서 주님앞에 엎드릴때 비로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제부터 나의 제자가 되어 사람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말씀 하시면서 그를 수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사도도 산헤드린의 권세를 받아서 말을 타고 갈 때에는 하나님의 미움과 진노의 자식 이었지만 말에서 떨어져 땅에 꼬꾸라지고 눈이 멀어 버리자 그가 비로소 회개하고 존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겸손히 엎드릴때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복음성가중에 약할 때 강함 주시네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번 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약할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 할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repeat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 돌보시고 낮아질때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연한 가지를 꺾어서 심으신다라고 증거 합니다. 왜 강한 가지를 심지 않고 연한가지를 꺾어서 심습니까? 강한 가지는 너무 강해서 잘 꺾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도 꺽이지 않습니다. 강한 자는 하나님과 겨루려고 하고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이기려고 합니다.

 

야곱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이기려고만 했습니다. 욕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얍복강 가에서 야곱과 씨름을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 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엉치뼈가 부러 집니다. 엉치뼈가 부러지자 야곱이 비로소 겸손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높은 산에 심겨져서 존귀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꺾어서 믿음의 조상들이 있는 높은 산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야고보서 410절에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베드로전서 56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고 복을 주십니다. 낮추고, 겸손하면 하나님이 직접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연한 가지를 꺾어 높은 산에 심습니다. 우리 모두가 높은 산에 심겨진 연한 가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23절에 보면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고 합니다.

 

더불어서 이사야서 532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연한 순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평안하고, 예수님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무성한 열매들입니다.

 

의사 아들, 변호사 아들, 목사 아들, 셋이서 아빠 자랑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의사 아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는 한 시간 수술하면 100만원 번다.” 그러자 변호사 아들이 아빠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아빠는 한 시간 말하면 200만원 번다목사 아들 차례가 되자 잠시 생각하더니 우리 아빠는 30분 말하고 나면 여러 사람이 돈 걷으러 다닌다목사 아들은 아빠가 헌금을 다 가지고 가는 줄 알았나 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예수님 덕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예수님 때문에 잘 된 예수님의 열매들입니다. 우리 민족은 약점도 많고, 결함도 많고, 부족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연약한 가지 같은 우리나라를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작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라지만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범하거나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다 편안하게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의 여권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은 한국이 지금도 존재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중국은 서쪽에서 한국을 압박합니다. 일본은 동쪽에서 한국의 위협이 되어 왔습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한국은 본의 아니게 전쟁 게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변국들이 아무리 한국을 삼키려 해도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습니다.

 

중국과 강 하나 사이에 있지만 한국은 중국과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중국에 소수민족이 56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소수민족으로 조선족이 있지만 한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로 생존하고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약하기에 강한 나라입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하고 무지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이사야서 6022절에 보면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여호수아 23:10에는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작고 약해도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을 기뻐한다고 고백 했습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합니다.

 

약해 보이는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삽니다. 병치레하는 사람이 장수합니다. 작은 사람이 무섭습니다약해 보이고 작아 보여도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좋아하십니다. 요한복음 15:8에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연한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고린도전서 127절에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미련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십니다. 약한 우리로 하여금 강한 자들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우리교회는 가진것도 없고 자랑할것도 없는 약한자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강합니다. 연약한 가지를 높은 산에 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도 연약한 가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연약한 가지 같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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