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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2년1월8일 주일낮 신명기28장1-7 새해에 복받는 비결

그리운시냇가 2012. 1. 8. 19:21

오늘 분문에는 복중에 복이 선포 됩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이 말씀을 붙잡으면 큰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이 저희 교회에 등록을 하셔서 지난주에 심방을 했는데 제가 이 본문을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심방 예배중에 간증을 나누느라고 본문을 통한 축복설교를 다하지 못해서 오늘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이 본문으로 신년 한 해 동안 큰 복을 받으시라고 이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 했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은 복 받기를 원하면서 살아 갑니다. 신년이 되면 누구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도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그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대문과 옷과 벼개와 오강에까지 복 복(福) 자를 새겨넣고 복 받기를 사모 했습니다. 떡에다가 복 복자를 콱 찍어서 먹는 민족은 우리 민족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복 복 자에(福), 덕 덕자를(德) 써서 “복덕방”(福德房)이라고 부르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는 없습니다. 복덕방에서 소개해 준 집에서 살면 복을 받고 덕을 받는다는 뜻으로 부동산 중개소를 복덕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 받고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지는 않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을 주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복이 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복은 누가 주는가? 둘째 참된 복은 무엇인가? 셋째,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가? 이 세 가지를 알아야 복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 까지에 보면 온통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 최대의 복 잔치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신구약성경 66권 전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한 말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오늘 읽은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에는 최고의 복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지상 최대의 복 잔치 본문” 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든 종류의 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는 “탁월함의 복”이 제일먼저 소개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믿은 민족을 세상 그 어떤 민족보다 탁월하게 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존귀하게 세워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라고 선포 합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복이 9절과 10절에서 다시 선포 됩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 하리라” 13절에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하나님을 믿은 민족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으로 세우시고 모든 사람 위에 세우셔서 언제나 머리가 되고 언제나 탁월한 삶을 살도록 축복하신다고 하나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2012년 새해에는 우리 남해세광교회와 모든 성도들과 자녀들이 이런 “탁월함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 축복은 “번영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잘 살게 해 주시고 자녀들에게도 복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3절로 6절에 그 축복이 소개 됩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을 섬기면 가정도 복을 받고 일터와 사업과 직장도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와 소유가 다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된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 즉 보물창고를 열어서 땅에 때를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심으로 많은 민족에게 꾸어주며 살고 베푸는 사람이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새해에는 이 번영의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 복의 종류는 “보호의 복”입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대적하고 훼방하는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한가지 조건을 따라야 이 모든 복이 나에게 임하게 됩니다. 축복에 대한 말씀만 붙잡고 하나님이 제시하신 조건을 무시하면 복이 오질 않습니다.

 

어떤 성도는 “내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축복의 말씀이 선포될때 그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믿었는데 왜 하나님이 약속한 복은 안오고 나에게 시험과 고난만 오는겁니까” 하고 탄식을 하기도 합니다. 이성도가 복을 받지 못한 이유는 방금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제시하신 그 조건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오늘 본문에서 네 번이나 거듭 반복됩니다.

 

먼저 1절에 나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2절에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9절에도 보면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13절에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절에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이 네가지 말씀이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면” 이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너를 찾아와서 너희를 따를 것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이 따라오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내가 복을 잡기 위해서 복을 따라가는 인생은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러나 복이 나를 따라오면 신이 납니다. 그런 사람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조선시대때 세종대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황희정승 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이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분은 아주 청렴결백합니다. 아주 가난하게 살고 옷 한벌밖에 없어서 옷을 빨면 옷이 마를때까지는 어딜 못 나갔습니다. 이분이 최고의 정승으로 대궐에서 영의정까지 지냈습니다. 그런데 청빈하게 살아서 삶은 지지리 가난했습니다. 세종대왕이 가만히 보니까 황희정승이 가난하게 사는것이 안타까와서 “황희정승을 좀 유복하게 살게 해 주어야겠다” 하고는 하루는 의금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일은 남대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물건들을 황희정승에게 갖다 주어라”

 

세종대왕이 큰 맘을 먹고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이 되었는데 하필 그날은 비바람이 얼마나 몰아 치는지 매일 전국에서 임금님께 드리는 물건들이 올라 오는데 그 모든 물건들이 도중에 올스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에서 올라오는 해산물도 안올라오고 충청도에서 오는 과일도 경상도에서 오는 옷감도 인천에서 오는 조기와 생선도 경기도에서 오는 채소도 곡물도 하나도 안 올라 왔습니다.

 

그런데 강원도에 사는 한 시골 노인네가 왕에게 드린다고 계란 한 꾸러미를 들고 찾아와서 남대문을 통해서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담당부사가 그 계란을 받고서 “그거라도 황희 정승에게 갖다 드려라” 라고 명령을 해서 그날 졸병이 그 계란을 황희정승에게 배달해 드렸습니다.

 

황희정승은 임금님이 보낸 계란 한꾸러미를 받고 너무나 황송해서 그걸 삶아 먹으려고 물에넣고 삶았는데 꺼내서 깨 보니까 그 계란이 이미 거의 병아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이 왕에게 드린다고 강원도에서부터 그 계란을 가슴에 품고 올라오는 바람에 몇칠 동안에 그만 그 계란이 부화가 되어서 병아리처럼 변해서 계란속에 뼈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계란을 먹을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란유골” “계란에 뼈가 생겼다” 라는 말이 생겨 났습니다.

 

이 말은 “안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무슨일을 해도 도무지 운이 따라주지 않는사람에게 쓰는 말입니다. 황희 정승이 청렴결백하게 산것은 그에게는 자랑이요 명예로운 축복이지만 그러나 왕이 그에게 아무리 유복한 삶을 선물하려고 해도 그에게는 물질의 복이 따라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희정승은 죽을때까지 정승인데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와같이 복이 따르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어도 소용없고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 여기 저기로 복이 빠져 나가 버립니다.

 

우리는 복을 잡으려고 따라가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복이 따라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이 따라오는 사람이 되려면 한가지만 잘하면 됩니다. 1절을 다시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제일 먼저 무엇을 하라고 말씀 합니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복을 받는 중요한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는 것입니다 삼가 듣는다는 말을 공동번역으로 보니까 “귀담아 듣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대충 듣지 말라는 말입니다. 설교를 들을때 졸면서 듣는 사람은 무슨 복이 됐든지 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졸고 딴 생각 하고 선포되는 말씀을 무시하고 마음과 생각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절대로 받을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배 드리나 마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기에 복이 오질 않습니다.

 

예배를 드릴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복 받을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차라리 목사님 설교가 마음에 안들면 교회를 옮길망정 목사의 설교를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설교를 비판하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목사님이 계신 교회로 빨리 교회를 옮겨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낫습니다. 자고로 성도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기쁨으로 듣고 감사함으로 듣고 아멘으로 듣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종하고 순종해야 복이 오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다녀온 사람이 “야! 오늘 시장에 갔더니 물메기가 네 마리에 만원이더라!” 하면 귀가 쫑긋 합니다. 그런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누군가 동네 사람이 “오늘 동네에 약장사가 왔는데 선물을 한보따리씩 준다더라 그 약장사가 신통한 약을 판다더라”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 갑니다. 그리고 약장사가 하는 말은 밤 늦게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듣습니다. 그리고 그 약장사가 파는 약을 수십만원을 주고 삽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러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때는 정신이 몽롱 해서 잘 듣지도 않거나, 밤낮 졸고 앉아 있거나, 무심하게 들으면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복이 오질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바로미터입니다. 예배시간에 늦게 오는 사람이나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이나 예배를 만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보면 예배에 정성을 다한 사람, 예배에 성공을 한 사람이 영육간에 복을 받았습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예배 시간에 듣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잘 듣는게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도 잘 듣고 순종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듣는데서 시작 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28장의 축복은 사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뼈에 사무친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해서 얼마 안 있다가 시내산에 도착했는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 만들고 금송아지에게 절하고 경배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나 실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 하시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셔서 2년후에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 합니다.

 

그들이 가데스바네아에 도착 했을때 하나님은 12명의 정탐군을 보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그런데 열명의 정탐군이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땅을 탐지하고 보니까 그 성이 얼마나 크고 견고한지, 게다가 가나안 사람들은 얼마나 장대하고 키가 큰지 우리는 그들이 보기에도 메뚜기 같아서 이제 우리는 다 그들에게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래서 열명의 정탐꾼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보고를 합니다. 이때 열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낙심해서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 달겨 들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데모를 합니다.

 

하늘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보시던 하나님이 너무나 격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게 징계하기로 작정 하십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60만명의 장정들은 하나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포를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애굽에서 나온 60만명은 40년간 광야에서 다 업드러져 죽고 맙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아서 죽은 이유는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원망불평 하면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60만명이 40년간 광야에서 죽고난 후에 하나님은 다시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에게 새로운 축복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어도 그 은혜를 받을줄 모르고, 축복의 말씀을 선포해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 쓸어 버리시고 이제 다시 새롭게 출발 하고자 하는 새 세대의 성도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세대에게 축복을 선포 하면서 한가지 조건을 제시 합니다. “들어 보아라! 너희 부모들이 심판받아 광야에서 엎드러진 것은 불순종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성심껏 말씀을 듣고 순종해라! 이제는 더 이상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 어머니가 심판받아 죽었는데 너희가 또 불순종하면 너희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라!” 라고 하나님은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동이었던 다윗을 들어서 왕을 만드신 이유는 다윗이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오는것이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찬양하면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지는것도 몰랐습니다. 다윗은 그 정도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다윗에게 큰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높이 세우신 것도 다니엘이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조국을 떠나서 이방땅에 살았지만 하루에 3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문을 열고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날마다 기도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기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방법이 예배입니다.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에 집중해서 어떤 말씀이 선포 되던지 아멘으로 받고 예배 시간에 정성껏 찬송과 기도에 동참하고 예배 시간에 받은바 은혜를 감사 하면서 마음에 정한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서 그 성도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2012년에는 저와 여러분이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리써치 조사기관에서 부흥되지 않는 교회들의 공통점을 발견 했는데 부흥되지 않는 교회의 성도들은 설교를 들을 때 50%밖에 안 들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말씀은 받아 들이고 내 마음에 안 드는 말씀은 한귀로 흘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하나님 앞에서 교인의 의무입니다!” 하고 설교하면 그야 당연하지! 하고 들으면서 “십일조도 교인의 의무입니다!” 하면 듣기 싫어서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밥상을 차려 놓았는데 남편이나 아이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면 음식을 만든 아내가 기분이 좋지만,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거리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면서 짜내 맵내 하면서 따지는 사람을 보면 아내가 상을 엎어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진리를 말했습니다. “같이 앉아서 음식을 먹어보고 음식 가리는 사람하고는 절대로 사귀지도 말고 딸을 주지도 말아라!”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식 가리는 사람은 까다롭고 힘들고 피곤한 사람입니다. 밥상에 올려놓은 것은 무조건 다 맛있게 먹는 사람이 건강한 것처럼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로 무슨 말씀이 선포 되든지 다 받아들이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이성적 비판을 버리고 따를때 복이 됩니다. F.B. 메이어(Meyer) 박사님은 말하기를 “신앙이란 내 모든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라고 정의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아도 그저 “가라!” 하면 가고, “건너라!” 하면 건너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변론하거나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직하게, 때로는 바보같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물질의 복을 받는것을 축복으로 알았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복의 개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영적인 복을 누리는 사람이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지키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죽음이 와도 배교하지 않고 주님을 따른 사람이 진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신약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물질의 복을 받는것은 차원이 낮은 복이요 참된 신앙을 가지는 것이 진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1930년대에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면서 독일 교회와 독일교회의 지도자들은 심각한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히틀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죽기를 각오하고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가를 선택 해야만 했기 때문 입니다. 이때 제3의 길은 없을까를 생각하던 한 젊은 신학자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디히트리히 본 훼퍼”입니다.

 

히틀러가 교회를 핍박하고 자기를 추종하지 않는 목사들을 잡아 들이기 시작할 때 그때 마침 본 회퍼 목사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초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 회퍼는 한 일년간 미국에 건너가서 조국의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1939년 여름인 6월 2일에 미국에 도착을 했습니다. 본 회퍼 목사님에게 주어진 이 절호의 기회는 새로운 땅 미국에서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아 갈수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목사를 원수로 알던 사람입니다. 목사는 절대로 자기를 추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은 목사는 다 잡아다가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본 회퍼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셔서 그 지옥같은 나치독일에서 자기를 불러 내셨다고 생각 하면서 감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본 회퍼 목사님이 미국에 도착한 그날부터 기도를 하려고 엎드리기만 하면 성령께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미국이 아니라 독일이다!” 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으면 살벌한 독일로 돌아가느니 핍박과 환란이 끝날 때 까지 모른척 하고 미국에서 교수로 목회자로 안전하게 생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 회퍼 목사님은 미국에 온지 한달이 지난 어느날 아침에 기도를 마친후에 자기조국 독일로 귀향을 하기로 결단하고 유니온 신학교의 세계적인 교수 “라인홀드 니버” 교수님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기고 7월 8일날 다시 위험 천만한 독일로 배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독일로 돌아간 본 회퍼 목사님은 더 이상 설교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된 상황인데도 교회의 강단에 서서

 

“주님은 이 어려운 시기를 나의 조국과 나의 국민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조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내가 나의 조국과 나의 국민들과 함께 이 고난의 시기를 같이 보내지 않는다면 나는 전후 교회의 재건에 참여할 특권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는 기독교 문명의 존속을 위해 조국의 패배를 소원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조국의 승리를 위해 기독교를 포기해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한 후에 본 회퍼 목사님은 얼마후에 나치독일로부터 “설교를 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고 출판과 언론의 자유를 금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목사님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그래서 결국 본 회퍼 목사님은 1943년도에 반체제 음모자로 몰려서 체포가 되었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1945년 4월 9일날 39세를 일기로 처형을 당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내 인간적인 생각으로하면 풍요로운 월급과 부족함이 없는 평안한 생활이 보장된 미국에서 행복하고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데도 본 회퍼 목사님은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서 고국으로 돌아갔고 결국 “플로센불그”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본 회퍼 목사님은 교수형을 당하기 바로 전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본 회퍼 목사님은 자기의 감정보다, 자기의 안일보다,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 했습니다. 자기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죽으러 가는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이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기에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한 것입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후에 완전히 패망해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독일은 놀라운 속도로 재건에 성공 했습니다. 독일이 새롭게 재기한 결정적인 원인중에 하나가 본 회퍼 목사님의 살아있는 순교정신 때문입니다. 전후에 독일의 모든 주의 종들과 크리스챤들이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부르짖으면서 기도  했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고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정상궤도에 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하면 그 결과가 고난과 죽음 일 지라도 그것은 복된 고난이요 복된 죽음이요 영광스런 죽음이기에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위로를 받고 영광스러운 이십사 보좌에 앉게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성령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학자요 실존철학의 대가인 키에르케고르는 “예수를 믿는것이 진리(하나님 말씀)라면 나는 그 진리에 목숨을 걸겠다” 라고 선포한 후에 그 진리를 위해서 결혼도 하지않고 독신으로 그 진리를 실천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 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너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으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안산 제일교회의 고훈 목사님은 청년 시절에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배중에 하나님께서 “너는 세상과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주의 종이 되라!” 라는 음성을 듣고 그길로 직장에 사표를 내고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 했습니다. 고훈 목사님은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감동이 분명했기 때문에 순종 한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나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왔기에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고 염려할 일도 없이 무조건 사표를 내고 주님을 따랐다고 목사님은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훈 목사님이 주님을 따랐기에 만명이 넘는 영혼을 구원하고 그리고 지금도 한국 교회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는 목회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령 하시면 이유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순종하여 받들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난 1992년부터 매일 아침마다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살던 대학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목원대학교의 사회과학대학원장이신 정만식교수님입니다. 정만식교수님은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추운 겨울에 쓰레기통을 뒤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안스럽게 여겼는데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너도 쓰레기통을 뒤져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수 있느냐?!” 라는 음성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음성을 들은 정만식교수님은 그 후로 학교일이 끝나면 허름한 옷을 입고 동네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셨습니다.

 

정 교수님이 쓰레기통을 뒤진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즉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서 였습니다. 정교수님은 골목 골목을 다니면서 버려진 옷가지와 장난감들 그리고 가제도구나 물건들 가운데 쓸 만한 것들을 주워다가 깨끗하게 빨고 닦아서 그것을 사회복지시설과 고아원 양로원등에 기증을 했다고 합니다. 

 

정 교수님은 자기가 주워온 물건들을 복지시설이나 아동시설에 전달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이 먼저 그 물건들을 사용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물품을 받아서 사용할 사람들이 혹시라도 망가진 물건이나 실어할지 모르는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 자기가 미리 살펴보고 사용한 후에 기증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님이 매일 버려진 장난감을 모아서 연구실로 가져오고, 또 이런 저런 물건들을 모아서 사회복지 시설에 기증하는 것을 알게된 학생들도 그 일에 동참했고 정교수님과 함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정교수님은 정년퇴직을 하게되면 남미에 있는 개발 도상국에 가서 자비량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서 준비 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봉사활동에 필요한 다섯 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스페인어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대학 교수가, 대학원 원장 이라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쓰레기통을 뒤질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교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일을 해 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실패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담과 예수님이십니다. 아담은 실패한 인물이고, 예수님은 성공하신 분이십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함으로써 성공과 승리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사명을 다 감당 하셨기에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고 운명 하셨습니다. 

 

아담 이후에 노아를 비롯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솔로몬 등, 수 많은 인물들의 인생사를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에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한 아이가 문제에 대한 답을 적었는데 이렇게 적었습니다. 문제 1번은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 인데 이 질문의 답은 뉴우톤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정답을 “죽었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답이 뉴우톤인데 이 아이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우톤은 수백년전 사람이니까 “죽었습니다” 라고 적은 것입니다.

 

문제 2번은 “불행한 일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하고는 네 글자 속에 괄호넣기를 하는 문제인데 <설( )가( )> 중에 답은 설상가상이기에 두 괄호안에 “상”자를 써 넣어야 하는데 이 아이는 이 문제의 정답을 <설(사)가(또)> 라고 적었습니다.

 

문제 3번은 “부모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인데  답은 “부모님은 희생정신이 강하시고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를 사랑한다” 인데 한 아이는 “부모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라는 질문에 “그러게 말입니다” 라고 썼습니다. 하나같이 모든 질문에 동문서답을 써 넣은 것입니다. 초등학생 이니까 이런 동문서답같은 대답을 해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왜 너에게 복을 주는지 아느냐?” 라고 물으시는데 우리가 “그러게 말입니다” 라고 대답해서는 안됩니다. 정답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내가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를 얻게 되고, 순종한 사람에게는 복이 따라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얻을 복들이 구체적으로 소개 됩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런데 이와같은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복된 길에 설 때 모든 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버트란트 러셀은 자기의 저서 <행복론>에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내 자신의 힘과 존재를 겸손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서 평가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성공에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 나는 이런 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부족한 나에게 어떻게 이런 복이 왔지?” 하고 겸손해 하면 자기 인생에 놀랄만큼 행복한 일들이 계속 벌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를 스스로 높이면서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의 실패에 대해서 놀라면서 산다고 합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어떻게 나 같이 괜챦은 사람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하면서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면서 불행해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나 같은 사람에게 주셨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을 한껏 높여서 상대방을 보면 “어쩌다가 내가 이런 사람하고 살게 되었지 정말 재수 옴붙었어 에이 실수야 실수 일생 일대의 실수야!” 하고 늘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복의 표상은 수(壽) 부(富) 귀(貴) 다남자(多男子)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 많고 명예가 있고 자식이 많으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도 수(壽)와 부(富)와 귀(貴)와 자식이 많은 것을 행복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사람들이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모든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누리는 모든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잠10:27)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신30:20)

 

재물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돈을 벌고 집을사고 땅을 얻고 부자가 되는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 합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존귀함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편 115편13절)

 

자식도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편127편3-5)

 

가정의 행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편 128편1-4)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경에 복이라는 단어만 1,037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펄전목사님은 성경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32,500개라고 고백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것은 복의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안에 살면 어디에나 복이 있고 무엇을 하든 복이 따라 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열쇠는, 말씀이 떨어질때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복은 조건부로 받습니다. 구원은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은 “만약에 너희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런 복을 주겠다” 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바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좋은 집이 있어도 열쇠가 있어야 들어가고 좋은 자동차가 있어도 자동차 열쇠가 없으면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습니다. 문을 여는 데는 반드시 열쇠가 필요하듯이 마찬가지로 복의 문을 열려면 순종의 열쇠로 축복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28장은 1절부터 68절까지나 되는 긴 말씀인데 주제는 두 가지 입니다. 1절로 14절 까지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고 15절부터 68절 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복과 저주는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로 결정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가 참된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복이 따라오는 축복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2012년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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