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어린 아이가 아빠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시를 썼는데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엄마가 있어서 참 좋다 엄마는 나를 돌봐 주니깐!
집에 냉장고가 있어서 참 좋다 냉장고는 음식을 보관해 주니깐!
강아지가 있어서 참 좋다 강아지는 나랑 놀아 주니깐!
그런데 아빠는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들이 이 시를 읽으면 화가 날만한 시 입니다. 이 시는 자기 중심적인 철 없는 아이의 글 입니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땀 흘려 일을 하고 밤 늦게 들어오기에 아이는 아빠 얼굴 보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아빠는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는” 그런 존재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아빠가 자기랑 놀아 주지도 않고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까 그런 고백을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직장을 필요로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땅이 필요하고, 의지 할 자식들도 있어야 하고, 살아 가면서 서로 돕고 도움을 주고 받을 이웃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살아 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교회가 왜 있어야 하는지, 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모르고 살아 갑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철없는 아이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분인지를 모르고 살아 갑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 아이는, 자기가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모든 맛있는 것들과 학교에 다니면서 쓰는 책과 공책과 입는 옷과 용돈과 자기가 살아가면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왔기에 누리는 축복인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심한 고백을 한 것처럼, 사람들도 깨닫지를 못해서 예수님이 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셨는지를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에 영국에서 “억세게 운 좋은 사람” 이 언론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존 라인” 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폐가 발육부진이 되어서 의사들로부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성장을 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무려 열 여섯 번의 엄청난 사건 사고를 만나면서 죽을뻔한 고비를 맞이 했는데 그때마다 운 좋게 살았습니다. 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이 60만분의 일 인데 이사람은 두 번이나 벼락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살았습니다. 탄광에서 일하다가 탄광이 무너져서 매몰되는 위기를 당했는데 그때도 기적적으로 살아 났습니다.
대형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당했는데 그 사고에서도 살았습니다. 물에 빠져서 익사 직전까지 갔다가 구출이 되었습니다.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팔이 부러져서 병원으로 긴급 후송이 되었는데 병원에 실려가는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부러진 팔이 또 부러지는 변까지 당했습니다.
이렇게 수 많은 사고 속에서도 존 라인 씨는 58세가 된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 공사장에서 맨홀을 열어 놓았는데 그만 걸어가다가 그 맨홀 구멍에 빠져서 전치 32주의 엄청난 부상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포함해서 그의 아내와 가족들은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처럼 여기고 걱정도 하지 않는다고” 언론이 보도를 했습니다. 하도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기적적으로 살아 왔기에 또 당한 불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존 라인은 “나는 많은 불행 속에서도 운좋게 살아 남았다 나는 운이 좋은 행운아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은 존 라인처럼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믿고 지옥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가장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으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천국의 축복을 살아서도 누리면서 삽니다. 그러나 예수를 안 믿으면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날 정봉임집사님과 함께 금음회관 옆에 사시는 박해순 성도님댁을 방문 했습니다. 정봉임집사님께서 그동안 79세 되신 박해순성도님을 전도 하려고 많은 애를 썼는데 지 지난주에 마침 막내 며느리가 왔길래 며느리를 집으로 오라고 해서 “내가 시어머니를 교회에 모시고 갈테니까 그리 알아라!” 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며느리가 예수를 믿는 분이라서 기꺼이 협조를 하겠다고 했고, 그리고 박해순성도님이 큰 며느리에게도 전화를 해서 교회 가는것을 허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봉임집사님이 새벽기도가 끝나고 가면서 박해순성도님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을 하셨기에 저도 조만간에 함께 전도심방을 하기로 했는데 마침 지난 금요일날 오후에 정평관집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제 친구가 최근에 예수를 믿고 새롭게 새 출발을 했는데 기쁨이 충만 합니다! 그 친구 어머니가 금음에 사시는데 저도 어려서부터 잘 아는 분입니다. 친구에게 들으니까 정봉임집사님이 벌써부터 오셔서 교회 가자고 전도를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목사님! 기회가 되시면 한번 만나 주세요!”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새벽예배가 끝나고 정봉임집사님이 두 번이나 그분 이야기를 하시길래 조만간에 찾아 뵈려고 생각을 했는데 그분이 집사님 친구 어머니시라니까 전도 하기가 더욱 좋아 졌네요! 지금 전화 끊고 당장 가 보겠습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고나서 그분 댁으로 달려 갔습니다.
저는 가면서 “아하! 이분은 하나님께서 강권하시는구나! 지금이 이분을 전도할 기회구나!” 싶어서 그길로 농협에 가서 콩우유를 한박스 사가지고 전도하러 가려고 농협에 들어 갔는데, 마침 정봉임집사님을 농협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집사님! 지금 박해순씨 집에 전도하러 가는 중입니다. 함께 가시죠!” 하고는 정봉임집사님을 차에 태우고 박해순성도님댁으로 가서 전도를 하고, 예수님을 영접 시켜 드리고, 기도도 해 드리고 그리고 주일날 교회에 오시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금요 구역예배를 드리는데 정봉임집사님이 말씀 하시기를 저희가 박해순성도님댁에 다녀간것을 안 박해순성도님의 막내 아드님 내외분이 어머니를 심방해서 전도해 주신것이 너무나 감사 하다고 하면서 그분들이 조만간에 목사님을 찾아 뵙고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더욱 마음이 기뻤습니다.
제가 아침에 차량운행을 하러 가서 보니까 박해순성도님이 정봉임집사님과 함께 차를 기다리시는 것을 보고서 얼마나 마음이 기뻤는지 모릅니다. 예수 안믿는 분이 예수 믿으려고 하면 발길이 잘 안떨어 집니다. 진목에서 오신 오선엽성도님은 교회에 한번 왔다가 그 동네에 사는 분들이 찾아와서 하도 난리를 치고 죽일려고 달려드는 바람에 교회 오는것을 포기 하셨습니다. 진목이 천도교 본부가 있는데 동네 분들에 거의다 천도교에 나갑니다. 그러니까 동네 분들이 교회 나간다고 찾아와서 얼마나 데모를 하고 난리를 치는지 그분이 교회 오는것을 포기를 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알다시피 이곳 남해는 자녀들이 교회 가는것을 대다수가 반대를 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려면 누구 보다도 자식들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다행히 박해순성도님은 막내 아들 내외가 예수를 믿어서 그 아들 내외가 큰 의지가 되었고 그리고 정봉임집사님이 열심히 전도 하셔서 박해순성도님이 오늘 평생에 처음으로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박해순성도님을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우리 교회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박해순성도님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날입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잔치를 벌이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왕지구역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날인데 정두애권사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어제 소고기를 10만원 어치나 사가지고 교회로 오셔서 소고기 무우국을 끓이셨습니다. 정두애권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구역예배는 정말 천국의 모형입니다. 구역예배를 드리려고 모이면 모두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행복할 수 가 없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저희 구역은 김오순집사님 댁에서 모였는데 가보니까 올해 84세 되신 김오순집사님이 구역예배 드린다고 집을 깨끗하게 치우시고 방도 따뜻하게 준비를 하셨는데 예배가 끝나자마자 감주를 내 오시고 떡과 다과까지 정성껏 준비해서 성도들을 대접 하셨습니다.
84세되신 김오순집사님의 정성과 사랑을 받고 보니까 송구 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70세가 조금 넘으신 젊은 집사님들이, 정봉임집사님과 하영순집사님이 설겆이를 하려고 부엌으로 갔더니 김오순집사님이 자기가 설거지를 한다고 아무도 부엌에 못들어 오게 하시고 막무가내로 밀어 내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런 훌륭한 어르신들을 어찌 모시고 살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연로하신 성도님들이 그저 힘 닿는대로 주의 종과 성도들을 섬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머리가 숙여질 뿐입니다.
구역예배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고봉례집사님 아들 박한언성도님이 일이 있어서 여러 동료들과 함께 동네 음식점엘 갔는데 그 음식점 주인이 하는 말이 “박한언씨! 한언씨 어머니가 설천교회에 나가다가 세광교회로 가는 바람에 죄를 받아서 돌아 가셨다면서요?” 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들 박한언씨가 어이가 없어서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했더니 “저쪽교회 사람이 와서 밥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요?” 하더랍니다.
아마도 저쪽 교회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 남해세광교회 성도들이 죽기만 기다리고 있는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강오심권사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문을 내서 강오심권사님이 혀를 차더니 이번에는 고봉례집사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다음에는 누가 돌아 가셨다는 소문이 날지 궁금 합니다.
전에 신문사의 실수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갑부 노벨이 죽었다고 신문에 대서 특필을 한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름없는 노벨의 형이 죽은 것인데 신문기자가 잘못알고 노벨이 죽은줄 알고 “노벨이 죽다” 라고 신문에 낸 것입니다. 신문사에서 실수로 노벨이 죽었다는 기사를 냈는데 그 기사를 노벨이 보았습니다. 죽지도 않은 노벨이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난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문기자가 뭐라고 썼는가 하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살인마 노벨이 죽었다" 라고 시작해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가 되었다" 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 기사를 본 노벨이 자기를 혹평한 신문을 읽고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노벨이 자기의 전 재산을 기증해서 노벨상을 만들었습니다.
노벨은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가 되어서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드려서 노벨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노벨이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영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죽었다는 소문이 난 성도님은 하나님 앞에 큰 영광을 드러내고 교회와 가정에서도 큰 축복을 받아서 모든 분들게 행복을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고 건강하게 장수 하시고 오래 오래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금요 구역예배가 끝나고 돌아와서 컴퓨터를 키고 우리 교회 카페에 들어가서 보니까 김명심집사님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김명심집사님이 큰 상을 받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명심집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무슨 상을 받았냐고 했더니 겸손해서 이야기를 안하십니다.
그래서 알고 보니까 집사님이 시무하시는 이동 보건소가 경상남도 건강증진사업 최우수기관으로 선정이 되었는데 김명심집사님이 그 임무를 가장 훌륭하게 잘 해낸 간호사라서 김명심집사님이 경상남도 도지사 상을 받고 1500만원의 상금까지 받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가 남해시대신문 4면에 났는데 제가 그 신문기사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김명심집사님이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성도인것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지난번에는 권옥란권사님이 남해에서 노인들을 잘 섬긴일로 인해서 남해 노인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셔서 신문에도 나고 유명인사가 되어서 자랑스러웠는데 이번에는 김명심집사님이 이렇게 큰 상을 받으셔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다시헌번 큰 상을 받으신 김명심집사님을 축하 드립니다. 우리모두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다음 사진을 보니까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매달 45만원의 후원금을 보내 주시는 류금련권사님의 손녀딸 강소애성도님과 남편 조내원성도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소원양의 사진이 올라와 있길래 그 사진을 보고 기뻐서 댓글을 올렸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소원이가 얼마나 예쁜지 “역시 미남 미녀에게서 절세 미인이 났구나!” 싶어서 축하를 해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낼때 조내원성도님과 강소애 성도님이 보내주신 사랑의 후원은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한번, 변함없이 우리 남해세광교회를 사랑하시는 조내원성도님과 강소애성도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그리고 두분이 섬기시는 분당 우리교회의 이찬수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전에 분당 우리교회에서 시골 교회들을 후원 한다는 광고를 알게 된 강소애성도님이 저에게 문자를 보내서 한번 신청을 해 보라고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에 들어가서 신청서류를 보니까 노회에 가입한 교회라야 신청을 할 수가 있게 되어 있어서 신청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올 봄에 저희 교회가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남부노회에 정식으로 가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노회에서 지원하는 후원이나 총회에서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이나 전도 프로그램 또는 농촌교회를 후원하는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도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노회에 가입하면 교회의 모든 재산이 총회에 속하게 되고 모든 소유권이 총회 소유로 바뀌게 되고 총회소속의 정식 교회로 등록이 됨으로써 명실공히 우리 남해 세광교회가 우리나라 장자 교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 이상한 여자가 동네 방네 다니면서 “남해 세광교회는 호적이 없어서 안가느니 어쩌니" 하면서 떠들어 대는 그런 엉터리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노회 가입 문제를 위해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서울노회에 소속해 계신 허주 목사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수고해 주신 허주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그동안 새벽기도 시간에 살펴 본 야곱에 대해서 다시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이 노년이 되었을때 야곱은 아들 요셉이 출세해서 애굽나라의 총리 대신이 되는 바람에 아들을 잘 둔 복으로 애굽왕 바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애굽왕 바로가 야곱을 처음 보는 순간에 야곱에게 물어본 것이 야곱의 나이 였습니다.
“너는 나이가 몇 살이뇨?”
왜 바로왕이 야곱을 처음 만났을때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겠습니까? 대개 왕이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면 “네 이름이 무엇이냐? 어디서 왔느냐? 직업이 무엇이냐? 자식은 몇이냐? 등을 묻는것이 통상적인 질문인데 바로왕은 야곱에게 “나이가 몇 살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바로왕이 보기에 야곱의 외모에서 풍겨지는 모습이 나이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었던것 같습니다. 바로왕이 야곱을 보니까 야곱의 외모가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인생의 험한 자국이 그의 얼굴에 거칠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제일먼저 나이를 물어 본것 같습니다.
그때 야곱이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년 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험악한 세월이란 환란과 시험과 고난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이 한마디 대답 속에는 자기의 인생을 총 망라하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나이와 얼굴은 내 인생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인생의 이력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지난 금요일 날 박해순성도님을 처음 만났을때 저도 “실례지만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박해순성도님이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이면서 “79세 입니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박해순성도님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해 드린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세히 보니까 박해순성도님이 79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참 아름다운 할머니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있었지만 그러나 눈도 서글 서글하고 얼굴형도 동그란게 달덩이처럼 예쁘게 생기셨고 이목구비가 아주 또렷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해순 할머니에게 “자세히 보니까 할머니가 참 미인 이시네요” 하고 칭찬을 해 드렸습니다. 제가 박해순성도님을 꼬실라고 그런 말씀을 드린게 아니라 정말 자세히 보니까 박해순성도님이 참 예쁘게 생기셨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의 얼굴에 살아온 삶의 흔적이 묻어 납니다. 야곱도 그랬던것 같습니다. 야곱의 얼굴에도 파란만장한 인생의 이력서가 그의 얼굴에 보여 졌습니다.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야곱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이고 어머니는 리브가인데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난 쌍둥이 중에 동생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뒤꿈치를 잡은 사기꾼”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장성한 후에 외삼촌 라반의 꾀에 빠져서 레아와 라헬, 두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서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아내의 몸종인 빌하와 실바까지 첩으로 들여서 모두 네명의 여자 에게서 열두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야곱이 낳은 열 두 아들은 후에 이스라엘 나라의 열두 지파가 됩니다.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 났는데 형보다 일분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동생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동생으로 태어난 것을 늘 억울하고 불만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가 맏아들로 태어 났으면 장자권의 축복을 받게되고 아버지로부터 땅도 재산도 두 배로 받을 수가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권도 자기를 통해서 자손들에게 계승 되는데 한발 차이로 동생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장자권의 축복을 받지도 못하고 차자로 살아야만 했기에 억울한 생각을 하면서 지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큰 아들이 누리게 될 장자권의 축복을 자기가 차지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날 형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와서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 되었을때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팔라고 제안을 합니다.
“형! 형이 가진 장자권을 나에게 팔래? 그러면 내가 맛있는 팥죽을 줄게!”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형 에서는 “내가 지금 배가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권은 무슨 얼어죽을 장자권이냐! 우선 살고나 보자!” 하고는 “그래! 장자권은 너나 가져라!” 하고 큰 아들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그 사건후에 야곱은 다시 아버지 이삭이 죽기 전에 큰 아들에게 축복하는 축복 기도를 자기가 받으려고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가 큰 아들이라고 속여서 장자가 받는 축복기도까지 자기가 받아 냅니다. 이런 사건이 진행 되면서 형 에서는 자기를 속이고 아버지까지 속이고 장자권의 축복을 갈취한 동생 야곱을 심히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노리는 것을 알게된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가 특별히 사랑한 둘째 아들 야곱을 자기의 오빠가 살고있는 밧단아람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해서 부모형제를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서 천 오백리나 떨어진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야곱은 형이 쫓아 올까봐서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죽어라고 도망을 갔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720km가 넘는 먼 거리입니다. 그곳으로 가는 여정은 험한 광야 길로써 보름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먼 길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과 모래먼지를 통과해야 하고 밤에는 전갈과 뱀과 늑대와 추위를 견뎌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도망을 갔는데 하루만에 벧엘 이라는 곳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 까지는 약 90km입니다. 200리가 넘습니다. 야곱이 200리를 하루만에 달려 간것을 보면 야곱이 얼마나 죽어라고 도망을 쳤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해가 저물자 지친 야곱이 돌을 취하여 베개를 삼고 땅바닥에 누웠습니다. 야곱은 “이 세상에 이제는 나 혼자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 하면서 외로움과, 형에 대한 두려움과, 맹수의 공포 속에서 떨면서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세파에 시달리면서 광야같은 세상을 홀로 걸어가다 지쳐서 괴로워 하는 야곱의 모습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광야에서 야곱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야곱이 그 밤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야곱에게 나타 나셨습니다. 야곱이 꿈에 보니까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그 위에서는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일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광경이 오늘본문 12절로 15절에 소개 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기하게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양치는 목동으로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다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됩니다.
엘리야도 광야에서 지쳐 쓰러졌을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요셉도 노예가 되어 끌려가서 감옥이라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이라는 광야에서 환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고 먹고 자면서 생활을 한 곳도 광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하신 곳이 광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광야같이 외롭고 고독한 곳에 버려진것 같은 모습으로 지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때 입니다. 나 홀로 외롭게 있을때 아무도 돌아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그네 인생길에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광야에서 쓰러져 잠든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야곱이 보니까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에는 대단히 중요한 진리가 소개 됩니다.
우리의 광야같은 인생길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하나님과 연결된 사닥다리만 있으면 우리는 새 힘을 얻게되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새벽기도 시간에도 말씀 드린것처럼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 야곱의 사닥다리 사건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한복음1장 43-51절)
이 말씀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사닥다리 되신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려워도 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면 그 십자가가 사닥다리처럼 하나님께 닿아 있기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심으로 우리는 영육간에 축복을 누리면서 살게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이 누웠던 그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셔서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이 마지막 시대에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통해서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5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주신 그 약속을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으시고 늘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에 우리의 인생길이 외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이 언제 야곱에게 주어 졌습니까? 야곱이 뭘 잘했기에 이런 축복을 선포해 주셨습니까? 야곱이 성전을 짓는데 일조해서 그런 축복의 말씀이 주어 졌습니까? 야곱이 수 십년간 예배도 잘드리고 헌금도 잘하고 전도도 잘해서 이런 축복의 말씀이 주어 졌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이 죄를 짓고 죽어라고 도망을 가는데, 하나님이 야곱을 쫓아 오셔서 야곱에게 이런 축복의 말씀을 선포 하셨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잘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기치고 아버지를 속이고 형까지 속이고 인간적인 욕심과 재물에 대한 탐욕에 사로 잡혀서, 오직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다가 큰 죄를 짓고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때에 하나님이 나타 나셔서 전무 후무한 축복을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내멋대로 살고, 죄가운데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축복하마!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내가 너에게 천국도 주고 살아 생전에 온갖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마!” 하고 축복을 선포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가 죄 가운데서 살았을 지라도 내가 가진 하늘의 영광과 땅의 기름진것과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과 구원의 은총을 너에게 값없이 주겠노라!” 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잘한것이 없는데도 일평생 죄만 짓고 살아 왔는데도 그런데도 예수만 믿으면 황금집이 내 집이 되고 온갖 금은 보화로 지어진 천국집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지고 먹어 보지도 못하고 입어 보지도 못했던 산해진미와 각종 신기한 과일들로 차려진 잔칫상이 내 앞에 차려지고 날마다 잔치 하면서 영원히 사는 영생의 축복이 예수 믿은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고 그리고 자녀들이 잘되고 형통한 삶의 축복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사명도 주십니다. 전에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세상 정욕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거룩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선한일에 쓰임을 받고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놀라운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날 처음으로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서 “야 이제 보니까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 겠구나!” 하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먼저 하나님은 야곱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13절에 보면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네 자손에게 주리라” 땅은 세상을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터전입니다.
두 번째는 자손을 번성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14절에 보면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우리가 먹을 것을 안 먹고, 입을 것을 안 입으면서 애쓰는 이유는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자식이 잘된다면 내 몸은 부서져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내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번성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늘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15절에 보면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인생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죄를 짓고 도망가던 야곱이 받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어떻게 반응 합니까?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놀라운 반응과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먼저 야곱은 영적인 눈을 뜨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유의해서 보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꿈에 본즉”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뒤에도 “또 본즉” 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13절에도 “또 본즉” 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쓰인 “본즉”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히네”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그냥 단순하게 보는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어서 나도모르게 내뱉는 감탄사입니다.
“야! 정말 놀랍구나 야! 정말 희한하구나” 라는 뜻을 가진 감탄사가 바로 “희네” 입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후에 감격했습니다! 놀랬습니다! 감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눈이 열리니까 비로소 복 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시면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됩니다. 천국이 있음도 알게 되고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섭리도 알게 됩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깯닫게 됩니다. 남편의 가치와 아내의 가치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미워하는 대상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라고 말씀 하셨고 바울사도가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아나니아에게 “네가 바울에게 안수하여 그로 하여금 보게하라” 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영적인 눈이 열려서 “히네”의 감탄사를 연발하는 삶이 됩니다.
이어서 눈이 열린 야곱은 그 다음으로 귀가 열렸습니다. 13절로 15절에 보면 야곱이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받단아람을 떠날 때 야곱의 나이가 70살이 넘었습니다. 오늘날의 나이로 치면 50세쯤 된 것입니다. 야곱은 나이가 70살이 되도록 한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음성을 들려 줄 때 였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아버지 이삭도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도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서 살아가다 보니까 기도도 한번 한적이 없고 예배도 제대로 드린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비로소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이 “지난주 목사님의 설교가 꼭 나의 사정을 다 알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목사님의 설교가 감동이 되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가 경험한 체험을 고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고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동해 주셨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설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은 은혜를 받을 징조가 보인다는 증거 입니다.
디모데 후서 4장에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귀가 가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영적인 청각이 무디어 진다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절)
“귀가 가려워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쓸데없는 허탄한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서 잘 들으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는 귀가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밧모 섬에 있던 사도 요한에게, 무려 일곱 번이나 계속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계2:7, 11, 17, 29, 3:6, 13, 2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야곱의 입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20절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는 지금까지 영적인 벙어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입을 가지고 형에게 “팥죽을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파시오”라고 고백하면서 사기를 치고 아버지에게는 “내가 에서가 틀림없습니다.” 하고 거짓말만 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한 적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본적도 없습니다. 그는 영적인 벙어리였기 때문에 믿는 가정에서 태어 났으면서도 하나님께 제대로 된 신앙고백 한번 드린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자 그의 굳은 혀가 풀리고 처음으로 은혜스러운 말을 입으로 고백 했습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이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 본 적이 없는 구두쇠 였습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이고 스크루우지 영감처럼 자린고비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만나더니 입을 열어서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것을 오늘 제가 알았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에게 찾아와 주신것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께 약속을 드립니다. 제가 돌베게를 하고 잔 이곳에 제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반드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서 살겠습니다” 비로소 야곱은 입을 열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화배우 “헬렌 헌트”는 처음에 실패와 좌절을 맛보면서 지냈습니다. 처음에 TV의 단역배우로 시작한 헬렌 헌트는 좀더 비중 있는 배역을 맡기 위해서 여러 방송국의 드라마 배역 모집에 오디션을 보았지만 번번이 떨어 졌습니다. 그래서 수년을 도전하다가 결국 고민 끝에 배우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포기하고 나니 그동안 고생한 고생이 억울 하기도 하고 마음도 찢어질 듯이 아파서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래도 먹어야 살겠기에 돈 몇푼을 들고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물건을 사려고 마트 복도를 지나 가는데 마침 그 때 상품을 진열하던 한 직원이 한 방송국의 단역에 출연했던 그녀를 알아보고는 “헬렌 헌트씨죠? 내가 당신을 TV에서 봤는데 당신은 연기에 놀라운 재능을 타고 났더군요!”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그 직원의 한마디가 헬렌 헌트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녀는 슬픔에 잠겨 있다가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다시 도전을 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결국 “파이오니어 우먼” 이라는 드라마의 오디션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이 그녀를 일약 스타덤에 올라 앉게 만들었습니다.
헬렌헌트가 연기자 대상을 받은후에 그녀가 토크쇼에 나가서 그때 있었던 일을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죽으려고까지 절망해 있을때 마트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아마도 그 사람은 나를 도와 주려고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틀림이 없습니다” 헬렌헌트는 마트에서 일하는 그 사람의 한마디에 인생이 달라 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고백하는 그 신앙고백이 하나님께 상달되면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도 있고 지옥으로 가게 만들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입을 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날개를 감춘 천사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네 번째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에 야곱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됩니다. 야곱은 70살이 되기까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큰 돌기둥을 세워 놓고 혼자서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예배를 드리면서, 아주 인상적인 행동을 하는것이 소개 됩니다.
오늘본문 18절에 보면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야곱은 밤에 광야에서 잘 때 베개로 사용했던 돌을 치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헌신의 행위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이 기름은 자기가 가진 소지품 중에 가장 비싼 귀중한 물건입니다.
야곱이 살던 당시에는 동전이나 돈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름이 물물 교환의 중요 수단이었습니다. 야곱이 형에게 미움을 받아서 황급히 도망치는 상황에서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기름을 챙겨 주었습니다. 가다가 배가 고프면 그 기름을 따라주고 밥을 사먹기도 하고 기름으로 여행에 필요한 노잣돈으로 쓰라고 어머니가 챙겨준 것이 바로 기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기름은 여행자에게 있어서 생명같이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 소중한 기름을 지금 돌 위에 다 쏟아 부어 버렸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 나는 더 이상 기름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기름만 의지하고 재물만 의지하고 세상것만 의지하고 세상것을 소유 하려는 욕심과 세상 즐거움만 의지하고 살아 왔지만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만났고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으니 내가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 하겠습니다!” 라는 결단의 표현으로 그 귀한 기름을 하나님께 쏟아 부어 드린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지금까지 이 “기름”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기름을 붙잡고, 더 많은 기름을 소유하기 위하여 발버둥 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름을 위해서 살지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단으로 그 귀한 기름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어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 붙잡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되는 축복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가난과 저주와 절망이 떠나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광야같은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광야같은 인생길을 가는 우리에게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기름이 아니라 재물이 아니라 이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으나 사나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광야 같은 인생길에 주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드린 마리아처럼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가 가진 기름을 하나님께 다 부어 드리고 기쁨으로 인생여정을 새출발한 야곱처럼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과 사랑을 부어 드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나아 감으로 야곱처럼 영적인 눈을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인 귀가 열려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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