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면 “하나님과 멀어지면 복하고도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진정한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시편 89편 21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하나님의 손이 도와 주신다고 증거 합니다. “내 손이 저와 함께 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있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면 어떤 환란과 고난에서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는데, 누군가가 나를 붙들어 일으켜 주고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그보다 고마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현대 목회 신학자 중에 “시워드 힐트너”라는 유명한 목회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목회의 기능을 세 가지로 구분 했습니다. 첫째는 상처의 치료(healing), 둘째는 지탱(sustaining), 셋째는 인도(guiding)입니다. 그중에서 지탱이 바로 붙들어주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처해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의 고난에 동참해 주는 것이 지탱 입니다.
우리가 노인 요양원을 지으려고 2년동안 기도를 해 왔습니다. 이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교회에서 노인 요양원을 짓는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확신을 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확신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소망이 없고 기쁨이 없는 일은 절대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노인 요양원을 짓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 하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우상숭배와 제사와 미신숭배에 빠져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오갈데 없는 가난하고 의지할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구제와 사랑을 베푸는 일이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하면 성전을 건축하고 노인 요양원을 짓는, 이 일들은 도무지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은혜중에 지어질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건축헌금은 형편이 닿는데로 하시고 형편이 안되는 분들은 기도만 해 달라고 당부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느혜미야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사에게 또 다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이 바사에 끌려가서 수십년의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본토 에서는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이 다 허물어지고 약탈을 당하고 피폐 되어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성전과 성벽을 건축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시대적 사명 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은 꼭 해야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모두가 가난했고 입에 풀칠 하기도 힘든 상황 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엉뚱한 곳에서 나타 났습니다. 하나님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천리 먼곳에 포로로 끌려가서 수 십년동안 포로생활을 하던 느혜미야를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느혜미야는 유다지파 하가랴의 아들입니다. 그가 포로생활중에 페르샤왕 아닥사스다의 술관원이 되었는데 그는 궁전에서 아닥사스다 I세(B.C. 465-424)의 신임과 총애를 얻고 지내다가 어느날 우연히 왕이 느혜미야의 얼굴에 근심과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서 “느혜미야야! 무슨 근심이라도 있느냐?” 하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느혜미야는 “저의 고국에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과 성벽이 있는데 그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 저와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제가 그 일을 할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들은 아닥사스다 왕이 느혜미야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은 느혜미야로 하여금 모든 준비물을 갖추고 고향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전보수와 성벽을 보수하는 일을 마무리 하고 오라고 특별한 긍휼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느혜미야는 B.C. 445년에 유대 총독에 임명되어서 예루살렘에 귀환했고 성곽 중수에 매진하여 52일만에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무지 소망이 없어 보이던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중수 공사는 그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나타 납니다.
지난 월요일 날 하영순집사님이 100만원을 건축 헌금으로 입금해 주셨습니다. 겨울이 다가도록 시금치를 팔아서 모은돈을 하나님께 건축 헌금으로 드린 것입니다. 또 반복 하지만 시금치 한단 묶으면 200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내 밭의 시금치를 캐서 파는 분들은 올해 시금치값이 비싸서 한단에 3000원씩을 받았습니다.
시금치를 묶는 분이 100만원을 벌려면 시금치 5000단을 묶어야 하는데 아마도 정영자집사님이 올해 겨울에 두 달 동안 시금치 5000단 정도를 묶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죽어라고 시금치를 묶더니 지난주에 감기 몸살이 와서 몸져 누웠다가 겨우 일어 나셨습니다.
죽어라고 두달동안 밤을 새가면서 시금치를 묶어야 100만원을 벌수가 있습니다. 내 밭에서 시금치를 캐서 판다 해도 인건비 비료값 수고비를 빼면 하루에 50단씩 한달을 묶어서 팔아야 100만원을 벌수가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100만원을 벌기 위해서 살을 에이는 들판에서 시금치를 캐고 밤새도록 묶어서 고생을 해야 100만원을 벌수가 있습니다. 그런 희생과 정성이 담긴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지난 주일날 또한가지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일 날 예배가 끝났는데 한 권사님께서 고백 하시기를 “목사님! 제가 금번에 건축헌금을 좀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 적금을 들은게 있는데 그 적금을 조만간에 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적금 1000만원을 하나님께 건축 헌금으로 드리겠습니다” 합니다.
저는 그 권사님의 고백을 듣고 너무나 놀래서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겨울에 그 권사님댁에 가서 신년축복 대 심방예배를 드리는데 그 추운 겨울날 기름 아낀다고 권사님이 보일러도 안 때고 냉고래 방에서 지내시는 것을 보고 참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렇게 절약하고 안쓰면서 수년간 모든 1000만원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 하는데 건축헌금으로 드린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저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라서 어안이 벙벙 했습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그 권사님을 껴안아 주면서 “권사님 고마워요! 그 귀한 결단과 헌신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고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는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전건축은 믿음과 마음으로 짓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동안 믿음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크게 성장한 그 권사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결단 하시고 수 년동안 힘들게 모든 1000만원을 하나님께 드렸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 권사님이 어렵고 힘들게 모든 돈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 귀한 헌신을 얼마나 기쁘게 보시겠습니까?
“얘야! 네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모든 돈을 나의 영광을 위해서 작정하고 드렸구나! 너의 그 헌신을 내가 기억하고 너를 위하여 나도 은혜와 축복을 예비하마!”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김막순권사님께서도 금번에 500만원을 작정 하셨습니다. 김막순권사님은 그동안 왕지 수협에서 나온 돈과 이런 저런 일로 모든 돈을, 대학에 들어가는 손주 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이 하나도 없는데도 500만원을 작정 하셨습니다. 돈이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김안순집사님이 일월 첫주에 제일 먼저 하나님께 건축헌금을 작정 하시면서 헌신을 하시더니 그후로 많은 성도님들이 너도 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노인 요양원을 짓는 일에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구나!” 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정평관집사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평관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와 감동을 주시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그 사명을 이룰 감동을 주시니까 이런 일이 이루어 지는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자고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과부의 두 렙돈을 축복하시고 칭찬하신 이유는 그 적은 예물에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 하십니다. 제가 처음에도 말씀 드렸듯이 금번에 건축을 위한 일에는 두가지 방법으로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건축헌금으로 헌신 하실 분들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해 주시고 만약에 형편이 어려워서 헌금을 못하시는 분들은 기도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의정부 순복음교회의 박종선목사님께서 나와서 간증을 하시는데 자기가 청년때에 개망나니 처럼 살았는데 믿음좋은 고모님이 자기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 했기에 자기가 이렇게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능력사역 입니다. 그러니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해 주시는 분들도 귀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서울 세광교회는 매년 엄청난 역사를 감당 했습니다. 한번 하고 끝난것이 아닙니다. 매년 신학교를 후원하고 선교지에 교회를 짓고 지역사회의 전도를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하고 끈임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서울 세광교회에는 재벌이 하나도 없습니다. 돈 많은 부자도 별로 없습니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변두리 지역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열정과 성도들의 헌신이 오늘날 그렇게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도 죽을때 까지 하나님께 헌신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계속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이 중단되고 열정이 식어지고, 믿음이 식어지면 하나님의 축복도 중단되고 은혜도 중단 됩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고난을 당할때에 도와 주십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때 히스기야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을 섬긴것을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좀 고쳐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면 고난의 때에 무슨 면목으로 하나님께 “나를 좀 고쳐 주세요! 우리 자식을 좀 고쳐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가서 기도 하려면 늘 주님과 동행 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믿음생활을 하는것이 중요 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죽을병에 걸린 환자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죽을날만 기다리는 환자를 만났을때 내가 그분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을때 저는 목회자로서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줄수 없어도 내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믿음의 사람은 줄 것이 있습니다. 저의 고종사촌 누님이 위암으로 40대에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인천의 병원에 입원해 계신 사촌누님의 병상을 찾아가서 병문안을 했는데 항암치료를 받느라고 머리는 다 빠지고 몸은 대꼬챙이처럼 말라버린 사촌누님을 보는 순간에 저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예수님처럼 병고치는 능력이라도 있어서 병을 고쳐 줄 수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제가 심히 답답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누님의 손을 붙잡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누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갈수 있으니까 예수님을 믿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을수가 있어! 그러니까 꼭 예수님을 영접해야해!”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간절히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관계된 사람에게 내가 받은 축복과 내가 누리는 행복을 나누어 주라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믿음만 있으면 줄 것이 있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랑이 충만하면 그 사랑의 힘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소망을 줄수가 있고 영생의 축복을 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가진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에게나 세상 사람들에게나 엄청난 선물을 줄 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권옥란권사님이 하나님께 드린 1000만원은 앞으로 100배의 축복이 되어 권사님과 자녀들에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464장 2절과 4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친구들 나를 버려도 예수 늘 함께 동행 하므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니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2절) 능치 못한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오늘 본문 시편을 기록한 저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것이 내게 복이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에 여기까지 왔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내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지옥 권세에서 구원해 주시고 또 날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붙들어주셨기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 한것이 복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은 내 노력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면 어떤 위험 속에서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돌보아 주시면 폭풍우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그 많던 걱정과 근심이 봄눈 녹듯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아무리 강한 자가 위협해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편27편1-3절)
중년(中年)의 나이가 되면 삶에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건강에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중년이 되면 "아, 나도 별 수 없이 늙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삶에대한 공포와 불안이 엄습합니다. 노후대책을 생각 하면서 근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점점 불안해 집니다. 이런것이 현대판 골리앗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서 이렇게 고백 합니다. “너는 칼과 창을 들고 나에게로 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萬軍)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네게로 가노라 주께서 오늘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리라 그래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어떤 골리앗도 물리치게 됩니다. 우리도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찬양하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설교를 잘 듣고 믿음의 신앙고백으로 고백을 전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돌이키고 내 마음을 바꾸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작년에 벤쿠버 동계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김연아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던날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하면서 기뻐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가장 기뻤던 일은 숏트트랙 스케이팅에서 장거리로 전환한 이승훈선수가 만 미터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만 미터 경기는 워낙 체력이 강한 외국 선수가 있기에 금메달이 불가능한 종목 입니다.
그런데 그날 금메달이 유력한 유럽의 선수가 그만 자기 라인을 따라돌지 않고 같은 라인을 두 번 반복해서 도는 바람에 실격이 되어서 이승훈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중계방송을 하던 제갈성렬 해설의원이 너무나 흥분을 해서 뭐라고 외쳤냐 하면
“이승훈 선수 금메달입니다”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나 해설자들은 방송중에 절대로 정치적인 발언이나 종교적인 발언이나 남녀 비하의 발언을 해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스케이팅경기를 중계방송하면서 해설을 맡은 제갈성렬감독이 그만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서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제갈성렬감독은 방송국에서 짤렸고 종교편향적인 고백을 했다고 전국에서 엄청난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본래 제갈성렬감독은 1980년대부터 10년간 우리나라의 쇼트트랙 간판스타 였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림픽만 앞두면 부상과 사고로 인해서 유독 메달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수 생활을 접은 제갈성렬 감독은 춘천시청 감독으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부모님 밑에서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일을 했고 그리고 방송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40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총각으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반짝 인기 외에는 특별한 인기가 없는 스케이트 감독에게 시집올 여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고 고백한 그 고백 때문에 제갈성렬감독은 십억원을 날렸습니다. 방송광고 업자들이 제갈성렬감독의 재미있고 신나는 동계 올림픽 스케이팅 해설에 매료 되어서 다섯군데의 업자들이 제갈성렬감독과 광고 계약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바람에 제갈성렬감독은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 졌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전국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악플세례를 퍼부었고 방송에서도 연일 그 사건을 크게 보도 하면서 그에게 쏟아지던 방송광고계약건은 물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괴로운 것은 세상 사람들의 악플과 저주 였습니다. "개독교 믿더니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하냐?"라고 하면서 기독교를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제갈성렬 감독은 여자 연예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자살을 하는 이유를 깨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 정로로 비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김장환목사님이 진행하는 극동방송의 "만나고 싶은사람 듣고싶은 이야기" 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와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낙심해 있던 제갈성렬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매스컴에서 실수를 해서 온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데 또 나가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몰라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때에 담임 목사님이 용기를 주셨습니다. 의정부순복음교회의 담임목사님인 박종선목사님이 제갈성렬감독에게 "자네가 타 종교에서는 역적이 되었을지 몰라도 기독교 에서는 영웅감이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서 진실하게 고백해봐!" 하고 권면을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제갈성렬감독이 그 프로에 나가서 그 당시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고백을 했습니다. 제갈성렬감독은 이승훈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에 너무나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고백을 했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마음속에 있었던 믿음의 신앙고백이 금메달을 따는 순간에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서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갈성렬감독이 인터뷰를 한 라듸오 방송을 한 권사님이 들었습니다. 그 권사님이 제갈성렬감독의 고백을 듣는 순간에 갑자기 성령께서 감동 하셔서 자기가 찾던 사위감이라는 확신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이 김장환목사님에게 연락을 했고 김장환목사님이 중신을 해서 제갈성렬감독은 그 권사님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의 딸은 치과의사로 훌륭한 믿음을 가진 여인 이었습니다. 제갈성렬 감독이 공개 라이브 방송에서 중계를 하다말고 자기도 모르게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바람에 비록 엄청난 환란과 시험과 고난을 겪고 10억원의 광고수입도 날아갔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신앙고백을 보시고 10억보다 귀한, 아름답고 지헤로운 여인을 선물로 주셔서 행복한 결혼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내가 어떤 고백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향방이 바뀝니다. 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고백과 믿음의 신앙고백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시편 저자가 처음에는 실족할뻔한 고백을 합니다. 1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 이신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오히려 악인이 더 잘되고 복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악인은 망해야 되는데 오히려 악인히 형통해 보입니다. 그래서 실족할 뻔 하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응답이 왔습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는 비로소 마침내 하나님이 이런 악한 사람들을 그냥 놔두시는 이유를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 깨닫게 됩니다. 그가 성소에 들어가서 깨달은 내용이 18절과 19절에 증거 됩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악인은 아무리 형통하고 건강한것 같아도 하루 아침에 파멸될 존재요 졸지에 지옥불에 들어갈 존재인 것입니다. 미끄러운 곳, 파멸되는 곳, 황폐한 곳, 전멸하는 곳은 결국 지옥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날 그들이 가진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 날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그 날까지 잠시 동안의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악인이 형통하게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보응을 받게 됩니다.
이제 그는 20절에서 이렇게 고백 합니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꿈을 깨고 나면 꿈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악인들이 누리는 형통함도 결국은 다 무효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부귀영화는 꿈같아서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악인들의 행복도 순식간에 다 사라질 것입니다.
남해 군민의 멘토요 최고의 존경을 받던 박희태 국회의장이 하루 아침에 빛바랜 개살구처럼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서울법대와 버클리법대를 졸업하고 춘천·대전·부산지검, 부산고검 검사장을 거쳐서 법조계 최고의 수장인 법무부장관을 역임하고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낸후에 드디어 우리나라 삼부 요인의 한자리인 국회의장까지 되었는데 국회의장 선거때 돈봉투를 돌린것이 들통이 나서 그동안의 모든 존경과 신망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적인 형통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할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멸망할 자들과, 지옥 갈 영혼들에게 당분간 형통함을 주셔서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하면 "유기"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도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그들 마음껏 즐기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셨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지옥불에 들어가서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형통은, 파멸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적으로 모든 것이 형통한 사람들은 그 형통함과 부요함 때문에 예수 믿기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지옥으로 들어 갑니다. 그러나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서 사는 성도들이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위장된 축복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사모의 오빠가 갑자기 아파서 부산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차안에서 사모가 오빠에게 예수님을 영접 하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70 넘어서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던 오빠가 그날 사모의 말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영접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빠를 다 죽게 만들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죽도록 아픈것도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우리는 환란과 시험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개되고 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결국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찬송가 503장에 보면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믿는 성도의 고난을 보면서 회의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악인의 형통 때문에 미끄러질 뻔 했던 시편 저자는 최종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27-28절에 보면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그는 선포 합니다.
사자성어에 “근주자적(近朱者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사람은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서 인격과 삶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책을 가까이 하는 자를 좋아하면 유식해집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자를 가까이 하면 가난해집니다. 술을 좋아하는 자와 가까이 하면 술주정뱅이가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자와 가까이 하면 수전노가 됩니다. 원망 불평을 잘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면 반드시 원망 불평꾼이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을 가까이 하면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게 됩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는 분을 가까이 하면 전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봉사를 잘하는 분과 가까이 하면 봉사를 즐거워하는 성도가 됩니다. 내가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그는 믿음으로 살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무엇보다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가까워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가장 가까이 해야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누누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잘 되는 길은 오직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복을 받은 모든 인물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허물과 죄가 있을지라도 회개하고 주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복을 받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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