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얼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얼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몬타나 주의 배노크에 살고 있던 수십명의 백인들이 금광을 찾아 나섰습니다. 험한 산과 들을 지나 금이 있을만한 곳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인디언들이 공격해서 싸우다가 절반이 죽었고 다시 여행중에 독사에 물려 죽고 병들어 죽고 음식을 잘못먹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삼분의 2가 죽고 삼분의 일만 남았습니다.
남은 아홉명의 백인들은 그대로 갔다가는 모두다 죽을 거라는 생각에 금을 찾는것을 포기하고 다시 배노크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계곡에서 쉬고 있는데 한 사람이 자기가 앉아서 쉬던곳의 돌이 이상해서 돌을 주워들고 깨뜨려보니까 그 돌속에 금이섞여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금이다” 라고 소리쳤고 기진맥진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들 몰려와서 보고 돌에 금이 섞여 있는것을 보고 기뻐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변을 살펴보니까 그 계곡에는 엄청난 금이 묻혀 있었습니다. 바위와 돌에는 금이 섞여 있었고 바닥의 모래에는 온통 사금이 가득 했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며칠 동안 금을 채취 했는데 음식이 떨어지고 금을 담을 장비가 없어서 더 이상 금을 캘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배노크의 집으로 돌아가서 음식과 장비를 다시 챙겨서 아무도 모르게 정한 날에 만나서 다시 그 곳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함께 동행한 아홉사람은 자기가 사는 동네 근처에 오자 서로 목숨을 걸고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에 누구에게든지 금을 발견한 일에 대해서이야기를 하는자는 죽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금을 발견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깊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서 아무도 몰래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며칠후에 다시 떠나기로 약속한 동구 밖의 한 장소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이 일하러 가는척 하고 마차를 끌고 사방 팔방으로 흩어졌다가 자기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갔는데 배노크에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 백여명이 너도 나도 마차를 타고 그들을 따라온 것입니다.
아홉명은 누군가 자기들 중에 비밀을 누설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다들 분해서 그 사람이 누군지를 찾기로 했지만 아무도 금 이야기를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계획을 알고 따라 나섰습니까? 동네 사람들은 멀리 금을 찾으러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이 금을 발견 했다는 사실을 알아 챘습니다.
함께 동행한 사람들의 삼분의 이가 죽었는데도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나 절망한 기색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금을 찿으러 갔던 사람들을 며칠동안 만나서 그들의 동태를 살펴보던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말은 안해도 뭔가 숨기는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그것은 금광을 발견한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전에 볼수 없었던 기쁨과 생기와 희망이 용솟음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수 십일을 여행하고 동행한 일행을 삼분의 이나 잃고 돌아온 그들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고 눈은 반짝였습니다. 그들은 돌아 오자마자 먹고 마시면서 쉰것이 아니라 돌아온 그날부터 부지런히 마차를 수리하고 음식을 챙기고 가죽푸대와 궤짝과 물과 여러 가지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금을 캐러 갔다가 돌아온 아홉명이 하나같이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생기와 소망이 넘치는 표정을 보고서 저들이 금광을 발견한 것을 눈치를 챘고 자기들도 똑같이 그들처럼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가 그들이 떠날 때 함께 출발해서 모이기로 한 장소로 따라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얼굴에서 나는 광채 때문에 비밀이 탄로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다지를 발견한 사람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와 기쁨의 빛이 넘친다면 하물며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의 노다지를 얻고 영광의 빛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얼마나 더 얼굴에서 빛이 나야 하겠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황금 노다지를 발견한 것보다 수천배 수만배 귀한 노다지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얼굴빛을 나타내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즘 금 한돈에 20만원을 호가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 열돈이면 이백만원이고 백돈이면 이천만원입니다. 금방을 운영하는 사람은 수십억 수백억을 가지고 있는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것 부럽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면 마당이 다 금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온통 길이 다 금이요 밟고 다니는 모든 땅이 다 금입니다.
세상에서는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살아도 천국에 가면 집 전체가 다 보석입니다. 그까짓 보석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는 소망이 넘치고 우리의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가 넘쳐야 합니다.
이런 기쁨을 깨닳은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 34편 5절에보면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잠언 15장 1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증거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마음의 창입니다.
조엘 오스틴목사님이 지은 “긍정의 힘” 이라는 책에 보면 성도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얼굴이 달라진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얼굴이 달라 집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광채를 받아서 얼굴에 빛이 납니다.
전도서 8장 1절에 보면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미국의 한 똑똑한 목사님이 설교가 뛰어나서 개척한지 3년만에 교인이 많아 졌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돌아오질 않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이 예배당에 오면 감동적인 설교를 해서 그 사람을 감화 시키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드디어 그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교회에 왔습니다. 목사님은 신이나서 그 사람을 상대로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였습니다. 예상한대로 그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기뻐서 예배가 끝난후에 그의 손을 붙잡고 어떤 동기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옆에 있는 한 노인을 가리키면서 저 노인이 우리 옆집에 사는데 저 노인의 얼굴을 보고 나도 예수를 믿어야 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저 노인은 항상 얼굴이 환 하고 웃음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나도 교회에 다니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어서 예수를 믿기로 했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얼굴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것을 이웃에게 보여 주어야 이웃이 구원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전에 한 초등학교의 학급에서 착한 어린이를 뽑아서 상을주는 투표를 했습니다. 반 아이들이 모두 30명 이었는데 놀랍게도 두 표를 얻은 아이가 한명 이었고 나머지는 모두가 한 표를 얻었습니다. 한 아이만 다른 아이 이름을 쓰고 다들 투표 용지에 자기 이름을 써서 낸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자기가 다른 친구 이름을 쓰면 다른 아이가 상을 받게 될지 모르니까 너도 나도 자기 이름을 쓴 것입니다. “상을 절대로 다른 아이에게 줄 수 없다! 절대로 남에게 질수 없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이런 아이들의 얼굴에서 무슨 광채가 나겠습니까?
그나마 이 반에서 제일 착한 아이는 누구 입니까? 두 표를 얻은 아이 입니까? 아닙니다, 한 표도 얻지 못한 아이가 가장 훌륭한 아이입니다. 한표도 얻지못한 그 아이만 다른 아이 이름을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각박해 지고 살기가 힘들어 지는 이유는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 공부를 해도 저만 위해서 하는 사람, 돈을 벌어도 저 혼자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사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오직 자기의 명예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각박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누가 키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녀를 그렇게 키웠습니다. “너는 무슨일이 있어도 잘 되어야 한다 남들은 쳐다 볼 필요가 없다 너만 잘되면 된다” 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봉사를 하고 이웃을 돕는 일을 할라치면 “내가 너를 봉사나 다니라고 키운 줄 아냐? 딴 생각 하지 말고 공부만 해라. 그래서 출세만 해라 그게 엄마 아빠의 소원이다” 라고 하면서 봉사다니고 선교 다니는것을 싫어 합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벼라 별 얼굴들이 다 등장을 합니다. 죄를 지어 놓고도 자기의 죄를 남에게 핑계 대는 아담과 하와의 얼굴이 처음으로 등장 합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서 동생을 돌로쳐 죽이고야 마는 무서운 안색을 한 가인의 얼굴이 등장 합니다.
처음에는 겸손하고 온유 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욕심과 갈등과 질투로 가득차 있는 사울의 얼굴이 등장 합니다. 음흉한 마음으로 악한 일에 가담하여 기회만 엿보고 있는 가룟 유다의 얼굴도 등장 합니다.
그런가 하면 무슨일이 벌어져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서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얼굴도 등장 합니다. 회개와 용서의 사람 다윗의 얼굴도 보입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빛나는 얼굴을 보여준 스데반의 얼굴도 나타 납니다.
채소만 먹고 살았는데도 그 얼굴빛이 산해 진미를 먹은 사람보다 아름답고 밝았던 다니엘의 얼굴도 보여 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얼굴도 보여 집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얼굴을 어떻습니까? 요즘은 성형 수술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한 아내가 거울을 보다가 자기도 조금만 얼굴을 성형하면 예뻐질 것 같아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조금만 성형수술하면 더 예뻐질것 같은데 성형수술을 할까요?”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이 “나도 당신이 예뻐지는 것을 보면 좋지! 그런데 이 다음에 당신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당신을 보고서 “이건 내가만든 작품이 아닌데? 지옥으로 보내도록 해라! 하시면 어떻게 할래?” 했더니 여자가 놀래서 성형수술을 포기 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 여자는 한 시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쉴새없이 조잘 조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오늘 성형외과에 갔더니 내 입이 너무 커서 몇 바늘만 입을 꼬매면 내 입이 아주 예뻐진데요” 합니다.
그러자 남편이 “성형수술비는 얼마나 된데?”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겨우 50만원이에요” 그러자 남편이 “1000만원을 줄 테니까 입을 더 많이 꿰매 달라고 해” 하더랍니다.
외국에 가면 거리의 표정이 굉장히 밝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얼굴을 보면 Hi! 인사를 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다 좀 아는 사람을 만나면 하이 파이브를 하고, 껴안으면서 허깅을 하고, 서로 펄떡펄떡 뛰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째려 봅니다. 그러다가 왜 째려보냐고 시비를 하다가 상대방을 죽이는 일도 있습니다.
제가 청년때에 감동을 받은 간증중에 코리텐붐 여사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 많이 소개해 드렸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못들은신 분을 위해서 한번 더 소개 합니다.
코리텐붐은 유태인인데 나치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의 언니는 자기가 보는 앞에서 독일군에게 사살되었습니다. 그녀가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후에 그녀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됩니다. 어느날 독일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마치고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와 언니를 성추행할뿐 아니라 언니를 죽인 독일남자가 자기 앞에서서 인사를 하려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 속으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안됩니다! 실습니다! 저 인간만은 제가 절대로 악수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점점 자기 앞으로 다가 옵니다. 한 사람씩 악수를 하는데 진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음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라!” 그녀는 “주님! 도저히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네가 용서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라는 것이다!”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깨닳은 그녀는 그와 악수를 했고, 그를 껴안아 주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를 껴안는 순간 성령께서 그녀를 감동했고 상처와 증오는 봄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성령이 충만하게 그녀에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우리를 성령 충만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때때로 내 마음이 불편하고, 혼란스러울때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면 성령충만이 임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 됩니다. 그리고 해같이 빛나는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사람이 타고난 자기 얼굴을 인격적인 얼굴로 바꿀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어렸을때 서당에서도 그리고 보통 학교에서도 “정상수업을 따라 갈 수 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당시에 제일 하급관리 시험을 보았는데 그만 떨어져서 다시 재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재수를 해서 시험을 보았는데 또 낙방을 했습니다. 가장 낮은 말단 하급관리 시험에 떨어졌으니 무슨 취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김구선생이 시장을 지나 가는데 관상쟁이가 김구선생을 부르더니 “이봐! 당신의 관상은 흉상이야! 천한 상이야! 어디에 나설 사람이 못돼! 당신은 중이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평생 남을 섬기면서 종처럼 살아야 할 상이야!”하고 혹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그 말을 듣고 중이되어 불교에 귀의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는데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성경을 읽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예수를 믿은후에 “겅찰서 열 개를 짓는것 보다 교회 한 개를 짓는것이 더 낫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김구선생은 예수님을 의지해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나라를 개화시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김구선생은 예수님을 통해서 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평생 남을 섬기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한국 근대사에 가장 빛나는 인물이 됩니다.
관상은 도적놈 상 이라는 말을 듣고 형편없는 인생을 살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나라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더 이상 그 얼굴에서 악한 모습이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선함과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온유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선하고 천사같고 천진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그 얼굴이 추해지고 일그러지고 욕심이 가득한 얼굴이 됩니다. 얼굴은 마음의 창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세례 받았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통령이 된 링컨에게 하루는 한 친구가 자기 친구를 데리고 링컨을 찾아 왔습니다. 그를 좀 취직을 시켜 달라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의 얼굴을 본 링컨은 단호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진실성이나 겸손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 왔느냐레 따라서 얼굴이 악하게도 보이고 선하게도 보이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부모가 준 얼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러나 40년 후에는 자기가 만든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셰익스피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얼굴을 주셨는데 살아가면서 사람은 그 얼굴을 악한 얼굴로 만들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타고난 얼굴은 자기가 선택할수 없습니다. 태어나 보니까 이렇게 생긴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들이 내 얼굴을 바꾼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습니다.
하루는 링컨이 국회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때 상대편 당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그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 저 사람은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입니다! 엉터리 가짜입니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국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미국 사회에서는 굉장한 욕입니다. 어떻게 감히 연설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라고 소리를 지를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 때 링컨이 굉장히 억울 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여보시오! 지금 소리지른 의원님! 내가 만약에 얼굴이 두 개라면 왜 하필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내가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이 말 때문에 국회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세계 의정사에 남는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링컨 대통령은 미남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릴라처럼 못생기고 길다란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턱수염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턱수염이 있는 그의 얼굴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고 또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많이 당했다고 해서 누구나 호감이 있는 얼굴이 되거나 천사의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도 고난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런 얼굴이 된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얼굴 표정도 바꿉니다. 고난이 사람의 얼굴을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 시키기도 하지만 때때로 고난은 사람의 얼굴을 악마의 얼굴로 변화 시키기도 합니다.
고난은 분명히 변화를 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극심한 가난을 겪고나서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가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극심한 가난을 겪고나서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혹독한 직장 상관을 만나서 고생을 한 후에 자기가 상관이 되면 따뜻한 상관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혹독한 상관을 만나서 고생을 한 후에 나중에 자기는 그 상관보다 더 혹독한 상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겪은후에 얼굴이 아름다워지는 사람도 있고, 고난을 겪은후에 얼굴이 추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고난에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고난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내 자아가 죽었느냐 안 죽었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고난을 당하고도 내 자아가 죽지 않은 사람은 그 고난을 통해서 얼굴이 더 망가집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내 자아가 죽은 사람은 연달한 마음으로 넓고 인내심을 가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픈일을 만나고 슬픈일을 만나도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상처 입을 자아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동안 주어진 인생의 고난이 그 사람을 천사의 얼굴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15장 1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잠언 17장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내 마음은 영혼의 거울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얼굴은 그사람의 인격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입니다. 얼굴을 보면 그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나있는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대충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성품과 인격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피부는 4년마다 한번씩 바뀐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얼굴을 예쁘게 보이려고 맛사지를 하고 열심히 화장을 합니다 그러나 얼굴의 아름다움은 무엇을 바른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닙니다. 병들고 나면 아무리 화장을 하고 포장을 해도 별로 신통치가 않습니다.
오이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제가 오이를 좋아 합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오이무침을 해 주셨기에 오이를 좋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시장에 따라가서 보면 집사람이 오이를 살때가 있습니다. 장바구니가 무거우니까 들어주러 따라 갔는데 오이를 사는것을 보면 “야! 오늘 저녁에 내가 좋아하는 오이무침이 올라 오겠구나” 하고 기다리는데 오이 무침이 안올라 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안올라 옵니다. 그런데 밤에 설교 준비를 마치고 자려고 침대로 가보면 제 집사람이 그 오이를 얼굴에 더덕더덕 붙이고 잠이들어 있습니다. 그 맛있는 오이를 얼굴이 다 빨아먹고 있습니다. 그런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참다 참다 못해서 제 집사람에게 “시장에서 늘 오이는 사오는데 도대체 오이무침은 언제 상에 올라오는거요?” 하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비로소 오이를 사다가 오이무침을 해 주었습니다. 제가 먹은 오이보다 아마도 제 집사람의 얼굴이 먹은 오이가 훨씬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밭에 심을 모종을 사면서 오이모종을 다섯포기나 샀습니다. 오이를 실컷 먹어 보려고 다섯포기를 사다 심었습니다. 벌써 오이가 달려서 오이를 따 먹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이무침에 오이소백이에 생오이찍어먹기등 오이가 많아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여자들이 아무리 오이를 얼굴에 붙이고 애를 써도, 짜증을 부리고 한숨쉬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서 살면 피부 색깔도 얼굴 모양도 형편없이 찌들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가운데 기뻐하면서 즐겁게 살면 하나님이 빛나는 얼굴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고서 “네가 얼굴에 분하여 함은 어쩐 일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쩐 일이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과 안색이 일그러지는 것 조차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얼굴이 일그러진 가인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이 말은 “네가 악을 행하니까? 떳떳하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떳떳합니다. 당당합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부끄러워합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면서 40일을 하나님과 대면하여 있다가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40일 40야를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있었더니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하고 나타 났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닮던지, 가르치는 선생님을 닮던지, 아니면 친구를 닮던지 누군가를 닮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사모하고 흠모하고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지금 하나님과 같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다보니 하나님처럼 변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그것 하나로 행복 합니다.
어느날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이 찾아 왔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 하느라 부엌에서 바빴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음식 만드는 것보다 우선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것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지금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40일 40야를 굶어도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이런 기쁨을 다윗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왕궁에서 거하는 천날보다 내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하루가 더 행복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것이 복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것이 복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형통한 복을 주시고 얼굴에는 은혜의 얼굴빛과 광채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얼굴에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웨슬레는 미국에 선교사로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서 낙심하고 절망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올더 스케잇가의 한 작은 교회에서 집사님이 읽어주는 말씀에 감동을 받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해서 세계를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엘리야는 지치고 곤한 몸과 마음으로 광야에서 쓰러져 있다가 하나님이 들려 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힘을얻고 다시 일어나서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이사야도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땅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를 팔아 먹으라” 라는 마귀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팔아먹는 바람에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롯은 소돔성 심판때 “빨리 나가라” 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 집 밖으로 나가서 산으로 달려갔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다나엘은 “와 보라” 라는 빌립의 전도에 순종해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신촌 살인사건은 카카오톡이라는 아이폰 채팅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이 악령카페에서 만나서 대화를 하다가 마귀가 시키는 말에 넘어가서 저지른 살인사건입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안드는 대학생을 “죽이자” 라고 결정한 후에 그를 만나서 칼로 40차례나 찔러죽였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말하기를 인간은 어딘가에 헌신하게 돼 있는 존재인데, 사람이 좋은 일에 헌신하지 못하면 나쁜 곳으로 빠질수도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에게 감동 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재보고 따져보고 생각만 하다보면 복을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세계적인 철학자입니다. 천재입니다. 인류 역사에 대단한 영향력을 준 학자입니다. 그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사에 생각은 깊이 하는데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그의 단점 이었습니다.
칸트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인과 사귀면서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서 결혼 하자는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칸트와 사귀던 여인도 칸트를 사랑했기에 칸트가 결혼하자는 말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칸트가 결혼하자는 말을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견디다 못해서 결국 칸트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당황한 칸트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면서 결혼을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지를 공부를 했습니다. 자기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하면 어떻게 인생이 전개될지 그것이 궁금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살아 가는데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는지라 우선 결혼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나서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자기도 그 여인을 사랑하지만 섣불리 결혼을 했다가는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몰라서 먼저 결혼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가 결혼을 연구하기 시작한지 무려 3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결국 자존심이 상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칸트는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 까왔지만 결혼에 대한 연구가 아직 끝나지 않은터라 할수없이 그녀를 포기 했습니다.
그후에 칸트가 다시 두 번째로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도 지적이고 총명한 칸트를 만났을때 칸트가 자기가 찾던 이상형임을 알고 칸트에게 푹 빠졌습니다. 칸트는 그 여자와 결혼을 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빨리 결혼에 대한 연구를 끝내야 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결혼에 대한 책들을 보면서 결혼 연구에 몰입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아무리 기다려도 칸트가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자 첫 번째 여자와 똑같이 용기를 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결혼해 주세요! 하고 청혼을 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가 먼저 결혼을 해 달라고 청혼을 하는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리고 예의에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칸트를 너무나 사랑 했기에 자기가 먼저 청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가 두 번째 청혼을 받고도 여전히 결단을 못 내리고 계속해서 결혼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고 연구를 하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결혼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어느날 드디어 칸트가 결혼에 대한 연구가 다 끝나서 이제 그녀에게 청혼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결론을 내리고 그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그 여인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제가 따님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결혼을 승낙해 주십시오”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따님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이보게 미안하지만 너무 늦게 왔구만! 내 딸은 자네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벌써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네”
칸트가 결혼을 연구하는 동안에 그녀는 기다리다 지쳐서 결혼을 해서 벌써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는데 칸트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결혼 연구만 하다가 결국 자기가 사랑했던 두 여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도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평생에 결혼 한번 못하고 노총각으로 지내다가 홀애비로 늙어서 1804년도에 80세에 결혼도 한번 못 해 보고 인생을 마쳤습니다.
“칸트가 결혼에 대해서 10년 동안 연구를 했는데 그가 결혼에 대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혼함으로 여자는 자유로워지고, 결혼함으로 남자는 자유를 잃는다” 아마도 이런 연구 결과 때문에 칸트는 결혼을 안한것 같습니다. 똑똑한 철학자요 세계적인 지성인 이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와같이 가슴으로 느껴야 할 것을 머리로만 인식하려고 하기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사랑은 순수한 느낌의 교환입니다. 사랑에는 어떤 논리와 분석이 가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산하고 판단하고 이익을 따지게 되면 그 사랑은 이미 오염이 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순수 해야 합니다. 계산하는 사랑은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어떤 계산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죽으면 너도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하겠지?” 라는 계산을 하시고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려고 이유없는 사랑으로 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사랑과 신앙과 봉사는 계산으로 하면 안됩니다.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섬기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때와 기회가 있을때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하면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일을 하면 얼굴에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 사천에서 허태길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건축을 하시는 분인데 우리 남해 세광교회 성전건축과 노인 요양원건축을 조립식 짓는데 이분이 전문가라서 이분을 만났습니다. 허태길사장님과 대화를 통해서, 이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사천에서 태어나서 권투 선수로 성장 했습니다. 형님이 권투 선수 였는데 형님과 함께 서울에서 홍수환선수와 유명우선수와 함께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허태길사장님은 우리나라 주니어 플라이급 3위까지 오른 쟁쟁한 권투선수 였습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서부터 운동을 그만 두었고 제대한 후에 형님 친구의 소개로 건축을 배우게 되었는데 마산 창원에서 10년동안 건축일을 했고 다시 사천에 와서 15년동안 건축일을 하면서 이제는 사천에서 잘나가는 건축가로 명성을 얻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허태길사장님이 허용식성도님보다 한 살 더 많았습니다. 마흔 여섯 살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 보니까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건축하는 분들이 대부분 좀 거칠고 강인해 보이는데 이분은 건축일을 하는 분 같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처럼 꽃미남 이었습니다. 얼굴에 은혜가 있었습니다.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니까 이분이 건축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기 보다는 베풀고 섬기는 일을 많이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안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처갓집이 아주 신실한 믿음을 가진 집안 이었습니다. 처 외삼촌이 목사님이신데 진주 반성교회의 목사님 이셨고 교회에 충성 봉사를 다하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지금은 아들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처 외삼촌중에 별 두 개를 단 사단장님이 계신데 모든 식구들이 믿음이 좋고 복을 많이 받은 가정이었습니다.
허태길사장님을 김안순집사님이 소개해 주셨습니다 김안순집사님과 허용식성도님이 그동안 사천에서 그분과 함께 건축일을 했는데 이분이 사심없이 소신껏 건축일을 하는것을 보고서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건축을 맡아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분을 저에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어제 그분을 만나서 우리 교회의 임시 설계도면을 보여 드리면서 우리 교회의 사정을 소상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당과 노인요양원을 겸해서 지을 것이라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어제 제가 그 도면을 먼저 윤인준집사님에게 팩스로 보내 드렸습니다. 그리고 윤인준집사님과 통화를 하면서 윤인준집사님에게 이번에도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설계도를 제작해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김막순권사님 아들, 윤인준집사님께서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건축 설계를 맡아서 수고해 주시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 남해 세광교회를 도우시고 사랑하시는 징표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동안 윤인준집사님의 수고로 우리 남해 세광교회가 처음에 세워질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성전건축과 노인 요양원 건축도 윤인준집사님을 통해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윤인준집사님을 귀하게 쓰시려고 집사님으로 하여금 건축공부를 하게 하신후에 부산 포도원 교회를 맡아서 설계를 하게 하여 주시고 그리고 집사님의 고향 교회인 우리 남해 세광교회도 윤인준집사님을 통해서 설계를 하게 해 주신것을 믿습니다. 윤인준집사님을 낳아주신 김막순권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제가 어제 허태길사장님을 만나서 대화를 해 보니까 건축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6월 7월 8월 이라고 합니다. 콘크리트를 부어서 숙성을 시킬때 가장 좋은 시기가 6,7,8월달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설계도면이 나오고 건축 허가가 떨어지는 대로 6월 중순경이나 6월 말경부터 건축을 시작하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립식 건축을 하게되면 한 달이면 공사가 끝나니까 일반 건축보다는 공기가 빠르게 지어질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건축을 맡아서 일을 해 주실 분을 위해서 기도를 해 왔습니다. 어제 우리가 새벽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에는 “마음에 감동된 자”가 와서 지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 하셨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사람들이 드린 재물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성막을 짓게 하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배제 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슬기로운 자들로 하여금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 하신 것은 슬기롭다고 하는 것이 IQ가 높은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말합니다. 즉 학력이 아니라 순종에서 나오는 믿음을 말합니다. 새벽에 말씀 드린것처럼 “주님이 오실 테니까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기다려라” 라고 말씀 하셨으면 그냥 바보같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서 밤새도록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행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기름이 많아! 나는 언제든지 기름을 준비할 수 있어” “나는 달리기가 빠르니까 신랑이 저기쯤 오면 그 사이에 얼른 뛰어가서 기름을 가져올수 있어” 하면서 혼자 잘나고 똑똑한 척 했던 사람들은 신랑이 왔을때 문이 닫혀서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쫓겨 났습니다.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에서 잘나고 똑똑하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과 겸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건축할 때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게 지으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에 감동된자와 자원하는 자와 슬기로운자 즉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하여 받드는 자들을 통해서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 에서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자 즉 성령충만한 성도가 많아지고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는 성도가 많아지고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많아져야 교회가 부흥되고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와 노인 요양원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 질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얼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마음에 담은것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좋은생각 아름다운 생각 즐거운 생각이 가득찬 사람은 얼굴이 밝습니다. 그러나 악한생각, 나쁜생각, 못된생각을 마음에 담고있는 사람의 얼굴은 어둡습니다.
평생을 못 되게 굴면서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의 얼굴은 꼭 마귀같습니다. 그 얼굴이 마귀 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성도는 그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4장 29절에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 하였더라”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자기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거울이 없었기에 몰랐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이유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말만 듣는 사람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있습니다. 깨만 잔뜩 묻어 있습니다. 죽은깨입니다.
내 얼굴에 광채가 나는것은 남이 먼저 압니다. 산상수훈설교에서 예수님은 빛가운데 사는 성도는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되고 그 빛은 감출수가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빛이 바로 성도가 세상에서 보여주는 착한 행실 이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착한 행실로 인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빛은 착한 행실입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을 행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행복한 위선자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동네에서 악한자로 소문난 한 사람이 아주 청순하고 깨끗한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남자가 그 여자에게 사랑에 빠졌는데 자기가 너무 나쁜 놈이라 그녀에게 다가갈 수 가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남자가 결심을 하고 멋진 남자의 가면을 쓰고 여인에게 접근해서 사랑을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즘은 가면이 얼마나 발달 했는지 사람 얼굴과 똑같은 피부의 가면이 만들어져서 가면인지 진짜 얼굴인지 구별을 못할 정도로 사람 얼굴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멋진 남자의 가면을 제작해서 쓰고 그녀에게 청혼을 해서 드디어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결혼은 했지만 자기 정체가 들어나면 그녀에게서 버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착한 사람이 되기로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랬 동안 발견되지 않고 그녀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옛날에 악하게 살 때 사귀었던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 친구가 너무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질투가 나서 여자가 보는 앞에서 친구의 정체를 가르쳐 주려고 친구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의 모습이 옛날의 흉악한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도 부드러운 선한 남자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내와 노력이 그의 마음뿐 아니라 얼굴 까지도 변하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하고 돌아가는 여러분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광채가 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말씀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함으로 어두웠던 여러분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세상 사람들이 놀라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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