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이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라고 15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제 내가 너희들을 씼겼으니 너희는 깨끗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깨끗지 않다고 말씀 하시면서 그 사람이 나를 팔아 먹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룟유다가 자기의 마음을 들키자 당황해서 얼른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남은 열 한명의 제자들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과 들어가지 못할 사람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습니다. 33절을 보면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을 좆은 제자들은 하늘나라의 비밀과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줄때 그것을 믿었기에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겠지만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인 신앙으로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에게는 결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선 요한복음 8장 2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가리니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후에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되십니다. 그리고 다시 천국으로 올라 가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죄 가운데서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 모인 가운데서 하신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도 있었고 대 제사장도 있었고 관원들 고관대작들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나를 믿지 않은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너희는 지옥불에 들어 간다” 라는 구원의 비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들에게 요한복음 8장 41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의 행사를 하는도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44절 에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믿으라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은 마귀에게서 났기에 마귀의 언행심사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게다가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마귀의 욕심에 사로 잡혀서 온갖 악한 일을 행하고,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거짓의 아비를 따라 살다가 지옥불에 들어 간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기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45절에서 “내가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유대인들이 48절에서 이렇게 대답 합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님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씀 하시고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데도 유대인들은 마치 예수님을,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으로 여기는가 하면, 심지어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고 조롱을 했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날 새벽예배가 끝나고 감암에 지정심집사님과 나창희집사님을 모셔다 드리고 돌아 오는데 노량 덕신마을에 사람들이 열댓명이 나와서 길가의 텐트 안에 앉아 계셨습니다. 요즘 마늘쫑 때문에 새벽에 동네 분들이 그리로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주간에 우리 교회에서 어버이날 잔치도 있고 해서 전도를 하려고 제가 차를 세우고 내려서 어르신들이 모여있는 텐트로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 용강 산 너머의 설천면 사무소 아래, 남양회관 옆에 있는 남해 세광교회의 김다윗목사입니다!” 그랬더니 모든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싹 돌리고 저를 외면을 합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할 때는 저를 쳐다 보았는데 제가 목사라고 하는 순간에 하나같이 고개를 싹 돌리고 외면을 합니다. 세상에, 동네 개가 지나가도 “반갑다 메리야! 이리와라!” 할텐데 목사라니까 열 댓분이 하나같이 다 고개를 싹 돌리고 나몰라라 하고 외면을 하고 딴청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역시 교회에 대한 덕신 인심이 그렇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에 노량 감리교회에서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덕신 마을 분들이 교회에 대한 인심이 그리 좋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냉정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에 노량 감리교회 목사님의 장모님이 목사님의 어린 딸을 업고 애기를 보고 있었는데 한 동네 여자분이 등에 업힌 목사님 딸을 보고는 “그 아기 참 못생겼네” 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장모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나서 그 여자분의 따귀를 치는 바람에 동네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 후에 노량교회가 도로확장 때문에 철거를 당하게 되었는데 인심을 잃은 노량교회가 노량에 교회를 지으려고 안깐 힘을 썼지만 노량의 주민들이 결사 반대를 해서 결국 노량교회가 한 700미터쯤 떨어진 덕신마을로 쫓겨나서 덕신 땅을 사서 건축을 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안 좋은 소문이 난 목사님 가족이 덕신동네로 이사를 갔으니 동네 사람들이 교회 알기를 우습게 알고 무시하는 것도 어쩔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분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서 남해 세광교회의 목사라고 소개를 한 후에 목이 터져라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제가 목소리가 좀 큰 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외면하고 제 이야기에 코방귀도 안뀌니까 제가 약이 올라서 더 큰 소리로 목이 터져라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죄를 씻지 못하면 지옥에 갑니다. 지옥은 뜨거운 유황불이 끓는 곳입니다. 사람은 다른곳은 다 가도 지옥은 절대로 가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살다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둘중에 한곳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 천국은 무슨일이 있어도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에 갈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살아 생전에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 받고 천국에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꼭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주일날 저희 교회에서 어버이날 잔치를 하는데 여러분을 초대 하겠습니다. 꼭 오세요...”
그분들이 딴청을 하길래 제가 한 10분 동안 약장사처럼 텐트가 떠나 가도록 소리를 지르면서 목이 쉬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들 이야기를 하면서 “개야 짖어라 나는 모른다” 하고는 아랑곳도 없이 자기들끼리 떠들어 댑니다.
그래도 저는 듣던지 안듣던지 하여튼 목이 쉬도록 열심히 전도를 하고는 “이번 주일날 어버이날 잔치를 하는데 이 앞으로 10시에 차가 지나 가니까 느티나무 앞에 서서 기다리시면 경상남도 최고의 미남이신 우리교회의 허용식성도님이 교회차를 몰고 이곳으로 지나 가다가 여러분을 모시고 갈테니까 나와서 기다리세요!” 하고 이야기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제가 그날 전도를 한 후에 차를 타고 돌아 오면서 바울사도 생각이 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서 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다 다니면서 전도를 했는데 전도를 하는 동안에 사람들에게 매를 맞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반대와 수모를 당하면서 전도를 했을 터이니 그 고난이 얼마나 컸을까?” 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마귀에게 사로 잡혀서 복음 듣기를 싫어하고 마음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외면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으니 참 안타깝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전도를 하다 하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8장 21절에서 마지막 심판을 선포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따라오지 못한다고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메시야 구세주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이적과 더불어 주님이 선포하는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핍박하고 훼방한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드러나게 믿지 못하는 은둔 그리스도인들도 있었고, 그리고 열심을 품고 예수님을 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드러나게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도 예수 믿습니다! 나도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드러나게, 당당하게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혹시 예수 믿는다고 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던지 또는 세상적인 사업이나 신분상의 직책에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서 예수 믿는다고 말하지 못하는 은둔형 신자가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요한복음 8장 42절로 43절은 어렇게 증거 합니다.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면 나에게 불이익이 올것을 염려하여 당당하게 예수 믿는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사람들 이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0장 32절로 33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믿으라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해야 할 상황에서 슬며시 입을 다물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아무말도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직역하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내 이름에 대해 입을 다물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에 대해 입을 다물리라” 그리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끄러워 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 김다윗목사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 앞에서 전도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습니다” 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직언을 하시면 나는 천국에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천군 천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전에 교통사고로 설천면의 중요한 직책을 맡은 분들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설천 면장님과 박삼준 군의원과 설천면 체육회장님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설면장님은 어저께 돌아 가시고, 설천면 체육회장과 박삼준군의원은 입원해 있는데 중태입니다. 세분이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 오다가 트럭과 부딪쳐서 사고가 난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지내는 동안에 면장님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장경태 면장님과 강신동 면장님, 두분에게는 제가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면장님은 아직 찾아뵙지를 못하고 “조만간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자”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돌아 가시는 바람에 복음전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박삼준 군 의원님은 정현태 군수님과 함께 저희 남해 세광교회에 두 번이나 오셔서 예배에 동참해 주셨던 분입니다. 일반 병실로 옮기면 제가 조만간에 병원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언제 어느때 세상을 떠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라고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9절로 20절에 보면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사람들을 만났을때 뭐라고 전도할까? 하면서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배우고 들은대로 그저 입에서 나오는대로 전도를 하면 성령께서 우리가 해야할 말을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고 나는 말재주가 없어서 전도 못해!” 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빌립 집사는 예수님이 하신 그대로 똑같이 전도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어느날 예수님이 요한에게 “와 보라!” 라고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런데 빌립도 똑같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와 보라” 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와 보라” 그 한마디에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와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전도에는 무슨 정도가 없습니다. 그때 그때 기도하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감동으로 전도하면 구원의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날 제가 덕신에서 전도할 때 아무도 듣지 않는것 같았은데 열심히 전도 하면서 둘러 보니까 한 할머니가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빤짝거리면서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께서 그 한 분의 마음을 감동해 주신 줄 믿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바울사도가 강가에서 많은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루디아 한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 루디아 때문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고 하나님의 은혜가 루디아를 통해서 나타 났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는 유럽을 전도하는 전초기지가 되었고 세계 선교의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그와같이 한 사람만 구원을 받아도 그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전도하지 아니하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도 “내가 전도하지 아니하면 나나 내 자녀들이 되는일이 없을거야!” 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전도를 해야 합니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무조건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두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승천 하시기 바로 전에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라는 전도의 사명을 주셨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는 유언처럼 "사랑하라"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사랑에 대한 명령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명령할 수 있습니까? “야! 너희들 지금부터 서로 사랑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은 서로 마음이 통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사랑을 정서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면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저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야!” “저 사람은 말 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도저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야!” 그래서 우리의 감정이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을 의지적으로 접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의 감정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 합니다. “주님, 저 사람만은 제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제발, 저 인간만은 저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 우리에게는 이런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기에 주님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닥치고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랑의 모본이 34절에 증거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사랑의 섬김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데도 종이 되어 섬기셨습니다. 마태복음2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는 역마차가 장거리 교통수단 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의 역마차에도 좌석 구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기차나 비행기는 1등석 2등석 3등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마차는 다 똑같은 좌석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좌석의 등급을 매겼을까요? 먼저, 1등석 차표를 산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몇 날 며칠이든지 마차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마차 바퀴가 진흙탕에 빠졌을 때도 1등석 차표를 산 사람은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좌석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2등석은 마차가 고장이 나거나 빠지면 일단 내려서 길 옆에 서서 구경을 하는데 내려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2등석 이라고 합니다. 3등석은 마차가 고장이 나거나 빠지면 팔을 걷어붙이고 마부와 함께 마차를 밀거나 함께 옷을 버려 가면서 마차를 수리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1등석, 2등석, 3등석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항상 좋은 자리에서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1등석 신자입니다. 2등석 신자는 “그래? 그렇게 잘났냐? 너 어디 한번 잘 해 봐라!” 하면서 구경만 하는 성도가 2등석 성도라고 합니다. 3등석 성도는 누가 뭐라고 하던지 그저 열심히 일하고 자나 깨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충성을 다해서 일하는 성도들이 3등석 성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1등 2등 3등석 성도들이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그 순서를 확 바꿔 주신다고 합니다. 땅에서 처럼 1등석, 2등석, 3등석 신자 순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즐겁게 살면 좋겠는데 천국에 들어가면 대접만 받던 성도는 맨 말석에서 가장 궂은 일과 비천한 일을 하면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게 되고, “너 잘해봐라” 하고 구경만 한 성도는 천국에서 잔치 준비하고, 설거지 하고, 음식 나르고, 써빙 하면서 지내고, 세상에서 충성하던 3등석 신자는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곳에 앉아서 대접을 받으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35절에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고 증거 합니다. 주님의 제자된 증거는, “너희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가 아닙니다. “너희가 기도를 잘하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도 아닙니다. “너희가 찬송을 잘하면 내 제자인줄 알리라?!”이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성경암송을 잘하면 내 제자인줄 알리라?!”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상실한 근본 원인은, 주님이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심지어 사랑은 못할망정 교회가 싸움판이 되어서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마치 비리의 온상처럼 보여진것은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는 무슨일이 있어도 싸워서는 안됩니다. 중직자들이 본을 보이지 못하고 갈등하면 실족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런일을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감 입니다. 지옥에 가게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랑하라”는 말씀이 쉰 여섯번 나옵니다. 이 56번 가운데 예수님이 고별 설교를 하시는 13장과 21장 사이에 사랑하라는 말씀이 마흔 네 번 나옵니다. 주님은 이제 며칠후면 십자가에 죽으시고 떠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 방황할 것이며 그 충격으로 교회 공동체가 무너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 뿐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하루종일 시도때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합니다. 부엌에서 만나도 “I Love You”거실에서 만나도 “I Love You”마당에서 만나도“I Love You” 차를 타고 가면서도 “I Love You” 그저 부부 사이에 입만열면 “I Love You”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씁니다. “I love pie” “I love pizza” “I love apple”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I need you” 라고 고백을 합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당신이 없으면 안됩니다. 나는 정말 당신이 필요 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 함께 가족이 됩시다” 라는 소원이 담긴 간절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우리 교회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 합니다”“우리 함께 가족이 됩시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아픔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면 주님이 나를 도와 주십니다. 주님이 나의 삶에 형통함을 주십니다.
요즘 그렇게 힘든데도 정봉임집사님이 자기일도 바쁜데, 남의 집에 가서 이틀동안 마늘쫑을 뽑아 주셨다고 합니다. 하영순집사님도 툭하면 이웃을 돕고 섬기느라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김막순권사님은 정소례성도님을 전도하기 위해서 20년간 섬기셨습니다. 김안순집사님과 허용식성도님은 나창희집사님이 운영하는 태양횟집의 바닷가에 있는 야외 식탁이 낡은것을 보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셔서 그 야외식탁을 수리해 주셨다고 합니다. 장판을 다시 새로 깔아 주셨습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원해서 도움을 주는것은 정말 사랑의 본보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래 전에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에 아프리카에 가뭄이 10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수천만 명이 죽어 갔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내전으로 인해서 수백만 명의 난민들까지 생겼습니다.
그 난민들에 대한 소식을 들은 호주의 한 의사가 아프리카에 자원 봉사자로 찾아 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끝없이 늘어선 환자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어느날 끝없이 늘어선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그 의사에게 한 기자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치료하고 돌보아 주어도 끝도없고 헤아릴수도 없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 도와 주려고 합니까?” 그러자 그 의사가 대답 하기를 “저는 그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돌보아 주고 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기자가 인터뷰를 한 장면이 TV를 통해서 방영이 되었는데 마침 그 장면을 당시의 유명한 미국 가수였던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라는 가수가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가수가 “우리도 아프리카를 도웁시다!” 라고 제안을 했고 그의 제안을 수 많은 세계의 수퍼스타들이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유명 가수들이 모여서 아프리카를 돕기로 작정하고 구호운동을 시작 했는데 그때 그들이 만든 노래가 바로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 였습니다.
이 음반에는 세계의 스타 뮤지견 45명이 참여해서 음반을 만들었는데 “We are the World”는 그 음반의 타이틀 곡입니다. 이 곡은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이 작사 작곡을 했고 프로듀서는 흑인 음악의 거장 “퀸시 존스”가 맡았습니다.
당시에 이 음반은, 음반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음반 판매금으로 아프리카를 구호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한 의사의 사랑이 한 가수를 감동시켰고, 한 가수가 전 세계의 수퍼스타들을 모았고, 그리고 “We are the World”라는 세계적인 노래가 만들어 짐으로써 그 사랑의 힘이 아프리카를 구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랑의 힘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 합니다.
어제 스승의 날이라고 김안순집사님과 허용식성도님이 이곳까지 찾아 오셔서 저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 강대상 앞에 있는 큰 과일 바구니도 두 분이 선물해 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금일봉까지 주셨습니다. 어제 두분이 저를 선대 해 주신것은 저에게 대단히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영순집사님도 며느리 임수양성도님이 목사님과 함께 식사 하라고 금일봉을 보내 주셨다고 하면서 저를 선대해 주셨습니다.
저녁에는 김명심집사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스승의 날인데 작지만 선물을 준비 해서 인디안 옷집에 맞춰 놓았으니까 찾아 가세요” 하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통화를 하고 저녁식사 후에 갔더니 김명심집사님께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선물해 주셨는데 지금 입고있는 이 와이셔츠와 이 아름다운 넥타이가 김명심집사님이 선물해 주신 것입니다.
어제 제가 이와같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목회 20년 만에 제가 가장 행복한 스승의 날을 보냈습니다.
사랑을 받으니까 힘이 납니다. 사랑을 받으니까 엄청난 위로가 됩니다. 사랑을 받으니까 “죽도록 충성 해야 겠구나” 라는 다짐이 생깁니다. 사랑을 받으니까, 그동안 누적된 모든 피로와 상처가 다 사라진것처럼 마음이 가볍고 행복과 기쁨이 몰려 옵니다.
오늘 새벽에는 김연아집사님이 햇 콩을 따서 가져 오셨는데 아침식사때 그 콩을 삶아서 까 먹는데 80세가 넘으신 김연아 성도님이 다리를 절뚝 거리면서 애써서 농사를 지으신 콩이라고 생각 하니까 그렇게 귀하고 그렇게 감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90이 다 되신 김순애 집사님이 유모차를 끌고 숨을 몰아 쉬면서 사택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김순애집사님이 숨을 헐떡 거리시면서 들어 오셔서는 봉투를 한 장 내 놓으시는데 “목사님! 내가 3년 동안 굴 껍데기 끼면서 모아놓은 돈입니다. 노인 요양원 지을때 보태 쓰세요” “올해 굴껍데기 낀 값을 주면 그것도 건축헌금으로 드릴께요!” 하고는 50만원을 내 놓으셨습니다.
김순애집사님은 팔다리가 쑤시고 저려서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 나시려면 “아고고! 아고고!” 소리가 열 댓번도 더 나와야 일어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김순애집사님이 3년간 가리비 끼어서 모은돈을 몽땅 가져 오셔서 주시고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감동을 받으셨겠습니까?
어제 하나님은 이모 저모로 저에게 큰 위로와 기쁨과 행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저녁에 “내가 무엇이관대 이런 사랑과 은혜를 받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우리 남해 세광교회를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목회를 잘 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면, 사랑은 사람을 죽기까지 충성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날 에는 김현옥목사님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샘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강댓상에 서거나 교회에서 무슨 행사가 있거나 성도들 앞에 설때 성도님들이 저를 위해서는 한 번도 박수를 안쳐 주시더니 지난 어버이 주일날 제가 은퇴하신 김현옥목사님에게 축도를 부탁 드렸는데 김현옥목사님이 걸어 나오시니까 성도님들이 박수를 쳐 주시는 모습을 보고서 참 부러웠습니다.
김현옥목사님은 이제 저희 교회에 오신지 만 일년밖에 안되었는데도 나오실 때 박수를 쳐 주시는 것을 보고서 제가 속으로 “야 김현옥목사님이 참 인기가 좋구나 모든 성도님들이 김현옥 목사님을 좋아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현옥목사님이 마지막 축도를 하시기 전에 기도를 하셨는데 그 기도에 제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목사는 나이가 어려도 교회의 어른이요 스승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 와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제가 이전에 목회를 했던 그 어떤 목회지 보다도 더욱 정성을 다해서 섬기는 목회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나도 성도님들의 발을 씻기고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죽기까지 헌신하자!” 라는 자세로 성도님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섬기는 목회를 하면서도 가끔은 문득 문득 이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받았던 존경과 대접이 생각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비록 자격이 부족한 목사요 아직은 존경을 받을 만한 업적도 없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목사는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자요 성도들을 이끌어 가는 목자 이기에, 때로는 저도 인정받고 싶을때가 있고 사랑을 받고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김현옥목사님께서 기도 하실 때 “목사님은 교회의 영적인 스승이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고” 기도를 해 주시는데 그 기도에 제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섬기면서 목회를 하고는 있지만 아마도 가끔은 저도 “섬김을 받고싶고, 사랑도 받고싶다” 라는 마음이 제 마음속에 내제되어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 제가 혼자서 곰곰이 생각 하기를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었을때 주님이 그것을 그렇게 기뻐 하시고 그 헌신을 귀하게 여기신 이유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사랑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가슴에 품은 사랑”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품은 사랑은 서로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런 사랑은 행복으로 이어질 수 도 없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것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때 행복해 집니다.
요즘은 자폐증이라는 병이 많습니다. 이 병은 작은 변화에도 견디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병입니다. 그리고 정서 발달 장애때문에 사람들과 단절되어서 더욱 힘들게 지내게 됩니다. 즉 “스스로에게 갇혀 사는 마음의 폐쇄증상”이 자폐증입니다. 쉽게 말해서 마음 문을 꽁꽁 닫아버린 상태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닫으면 세상은 온통 어둡고 불행과 고통스런 환경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대가 첨단 과학시대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마음들이 닫혀져 가는 그런 시대 입니다.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대화를 해도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들 사이에는 무관심이라는 깊은 계곡이 생겨납니다.
이런 관심을 깨뜨리고 서로가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랑 뿐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이면서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가족이 됐든 부모자식 간에든 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문을 닫아버리면 서로가 불행해 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해야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고 죄를 계속 지으면 더 열심히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나는 죄를 지었으니까 나는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어”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가기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욱 하나님께 나아와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축복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들을 향하여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증명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되어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을 알면 놀라운 일이 벌어 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를 알아주면 놀라운 일이 벌어 집니다.
한가지만 더 말씀 드립니다. 어려서부터 30여년을 길거리에서 구걸하면서 살아온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 거지는 어린 시절에 집에서 내 쫒긴 뇌성마비 증세가 있는 장애자 였습니다. 그는 듣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인 이지만, 말하는것이 조금 어눌 했고 손을 사용하는 것과 걷는것도 부자연 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걸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서울의 번화가 길목에 앉아서 동냥을 했는데 하루에 4-5만원정도를 벌었습니다. 한달에 120만원에서 150만원을 번 것입니다. 그 정도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허기진 배를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이 거지가 밥을 먹고 싶어서 음식점을 찾아가면 문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내쫓김을 당했습니다.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내고 밥을 먹으려고 찾아가도 그 어떤 식당도 그를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지체 장애자가 냄새나는 몸으로 식당에 들어어면 영업에 지장을 주기에 식당 주인들이 거절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문전박대를 당해서 서럽고 배고픈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나마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랑을 베풀어 준다는 사실을 알고 큰 교회 가 가까운 사거리 행길가에 앉아서 동냥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30년간 교회 근처에서 동냥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의 전도를 받고 마음으로 예수님도 믿었지만 그러나 교회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 거지 청년은 장가를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가 비록 장애가 있는 사람 이었지만 그러나 그도 남자 였고 청년의 젊음이 있었기에 종종 여자가 그리웠지만 그를 만나줄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를 생각하던 그는 용기를 내서 창녀촌을 찾아 갔습니다. “돈을 많이 내 놓으면 나를 문전 박대 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다행히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기로 마음먹은 한 창녀를 만났습니다. 거지 청년은 그 창녀에게 돈을 주면서 먼저 음식을 주문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주문했습니다. 밥을 좀 먹여 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창녀는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밥을 시켰고 그에게 밥을 먹여주기를 시작했습니다.
거지 청년은 밥을 받아 먹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구박을 받고 내쫒김을 당했는데 그래도 이 세상에 자기를 받아주고 밥을 먹여주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거지청년은 밥을 먹다말고 “이 여인이야말로 천사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어눌한 말로 “내가 보기에 당신은 천사입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창녀는 그 고백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 천대를 당하면서 살아 왔는데 그런 나에게 천사라니?” 그 말을 들은 이 창녀는 놀래서 “당신이 사람을 잘 못 본거예요”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사람이 나에게 농담을 하는구나" 하고는 계속 밥을 먹여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거지 청년은 떠먹여주는 밥을 먹으면서 “당신이 바로 천사입니다” 라고 우겼습니다. 그 거지청년이 눈물이 글썽해서 당신이 천사라고 거듭 이야기를 하자 이 창녀가 평생에 처음듣는 그 말에 감격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창녀가 그 거지청년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그 청년에게 “창녀를 천사라고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정말 천사네요!” 라고 고백을 했는데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눈물이 글썽해서 서로가 서로를 쳐다 보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그날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거지청년은 자기가 그 동안 수십년 동안 벌어서 저금해 놓은 돈 2000만원을 몽땅 통장에서 찾아서 그녀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거지 청년은 평생에 처음으로 진심어린 사랑으로 자기를 선대한 그 창녀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몽땅 바친 것입니다. 그러자 이 창녀가 감동을 받고 그 거지청년을 섬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들을 아는 동네와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두사람의 결혼을 축하 해 주었습니다. 그 거지 남편은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구걸을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러나 더 이상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고도 매일 밥을 먹여주는 아내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남자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지 않고도,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남편이 가져다 주는 돈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여자도 시간을 내서 일을 하면서 두사람이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거지 청년을 세상에서 구한것은 사회복지 정책도 아니요 자선도 아니요 교회도 아니요 한사람의 창녀 였습니다. 그리고 그 창녀를 구한것은 윤락 방지법도 아니요 보건 복지부도 아니요 상담사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한 사람의 거지 였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자 두 사람은 행복한 부부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해 지려면 서로가 마음을 열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만약에 서로의 외적인 모습과 조건만 생각 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마음문을 열지 않았다면 이들은 결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낮아지실대로 낮아 지셔서 저와 여러분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영광 보좌를 버리셨고, 그 존귀하신 예수님이 나에게 오셔서 내 마음문을 두드리시면서 "제발 나와 함께 살자!"라고 구애를 하셨습니다. 내가 처음에는 거절하고 싫어 하다가 급기야 예수님의 그 구애를 받아 드렸기에 오늘날 내가 이렇게 엄청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놀라운 축복이 주어 집니다.
더불어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도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라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웃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마음을 다하여 섬기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이웃을 구원 하려면 예수님의 복음도 전해야 하지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그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웃이 마음문이 열려서 그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가누리는 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에 동참하고 금생과 내세에 그 영광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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