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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2년6월17일 주일낮 신명기33장26-29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리운시냇가 2012. 6. 18. 15:07

 

 

벨기에 작가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를 찾아서” 라는 동화에는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등장 합니다. 두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온 세상을 다 돌아 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 왔는데 집에와서 보니까 자기들이 기르고 있었던 새가 자기들이 그렇게도 찾아 헤메던 파랑새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동화에서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동화가 바로 “파랑새를 찾아서” 라는 동화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꾸면서 살아가고 또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 하면서 살아 갑니다. 그런데 파랑새라는 동화에서 보듯이 참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 주변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제 나창희집사님 아들 지홍석군이 박지민양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창희집사님 남편 지영달성도님이 자기 친척중에 경찰청장으로 은퇴하신 분이 계셔서 한달전에 그분에게 주례를 부탁 드렸는데 그분이 지난주에 갑자기 못 오신다고 연락이 와서 제가 대타로 어제 결혼식 주례를 위해서 부산에 다녀 왔습니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성도님들이 승합차에 두 대로 나눠타고 부산의 골든뷰 컨벤션 웨딩홀까지 가서 나창희집사님의 아들 홍석군의 결혼식에 동참해서 축하해 드렸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주례를 맡아 달라는 나창희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지홍석군이 참 복이 있는 청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창희집사님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가 주례를 서느냐 라는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근 일년동안 지홍석군을 위해서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홍석군이 어렵고 힘든 경찰 시험에 합격해서 이제 7월달이면 정식 발령을 받게 됩니다. 

 

저는 어제 예식장에서 신랑 신부의 얼굴을 처음 보고 주례를 섰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제 예식장에서 신랑신부를 처음 만났는데도 홍석군과 지민양이 마치 오랬동안 알고 지내온 제자처럼 여겨 졌습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성령 안에서 홍석군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었기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주례사를 하면서 신랑 신부를 바라보고 주례사를 하는데 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있는 신랑 신부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어제 제가 두 사람만 바라보고 기쁜 마음으로 주례사를 진행 했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 결혼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결혼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주례로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결혼을 축복하고 싶으셨기 때문에 저를 그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게다가 또 한가지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창희집사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저를 주례로 세우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주례를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명예가 있는 사람이 주례를 서면 체면치레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 보다는 주의 종이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때 축복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동안 홍석군을 위해서 기도해온 나창희집사님을 축복해 주시려고 하나님이 저를 주례로 세우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나창희집사님의 남편과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도 확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랑 신부에게 주례사를 권면할 때 지홍석군과 박지민양이 눈 한번 떼지않고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성실하게 저의 주례사를 듣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식장에 모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예식장에 와서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 모든 하객들이 복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하루를 지내면서 저는 “하나님이 나창희집사님의 아들 결혼식에 많은 축복을 예비해 주셨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전에 근 한달만에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우리 남해는 이 절기에 비가오면 고구마 모종을 해야 하고 깨 모종을 해야 하는 아주 바쁜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사님들과 집사님들 열 다섯분이 만사를 제쳐놓고 나창희집사님 아들 결혼식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이웃의 기쁨이나 슬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교회 안에서 신앙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성도가 바로 나의 친 형제요 자매임을 알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일이 있고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도 나와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의 애경사에 동참하는 사람이 가장 복 받을 성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제 한창 바쁜 농번기 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부산까지 동행해 주신 권사님들과 집사님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백주열집사님과 정봉임집사님은 요즘 감기에 걸려서 기침이 심하고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은데도 기꺼이 동참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제가 어제 부산에 가서 결혼식 주례를 집례하고 돈을 벌어왔습니다. 그래서 어제 벌어온 돈으로 오늘 족발을 대접하려고 주문을 해 놓았습니다. 멀리 다녀오시느라 수고하신 분들이나,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행복을 빌어주신 성도님들 모두가 족발 드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요즘 제 집사람이 운전 하는것을 아주 힘들어 합니다. 운전을 하면 허리가 아프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 집사람이 장거리를 가면서 운전을 안했습니다. 김안순집사님과 허용식성도님이 진교까지 오셔서 거기서 제 집사람이 운전할 승합차를 허용식성도님이 운행을 해 주시는 바람에 부산까지 두 대로 무리없이 잘 다녀 올수가 있었습니다.

 

장거리를 차량 두 대가 운행 하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중간에 다른차가 끼어들면 따라 오다가 길을 잃어 버리기도 하고, 시내를 주행할때는 신호등에서 뒷차가 끊기면 앞차가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시내에서는 툭하면 차선을 바꾸면서 가야 하는데 두 대가 같이 가는것이 보통 힘든일이 아닙니다. 네비게이션이 하나밖에 없어서 뒷차는 무조건 따라와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용식성도님이 얼마나 센스있게 따라 오시는지 제가 앞에서 차선을 바꾸면 미리알고 뒤에서 오는 차들을 막아 주는 바람에 제가 앞에서 운전을 하면서 가는 동안에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전을 했습니다.

 

여자들은 그게 잘 안됩니다. 운전은 조심스럽게 잘 하는데 어느때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지 그게 잘 안되기에 함께 동행하면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런데 허용식성도님은 제가 깜빡이만 켜면 벌써 알고 뒤에서 센스있게 운전을 하셨기에 그 먼길을 하나도 어려움이 없이 다녀왔습니다.

 

특히 부산에서 시내를 통과해서 조정숙권사님댁으로 갈 때 네비게이션이 또 말썽을 부려서 말을 안들어서 부산 시내를 잠시 헤멨는데 그때에도 뒤에서 허용식성도님이 잘 대처를 잘 하면서 도와 주셨기에 시내를 잘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어제 돌아오는 길에 조정숙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조정숙권사님께서 지금 부산의 아들 며느리 집에가서 해산간 수발을 하고 계신데 거기서 틈틈이 시간을 내서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찬양집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한 찬양집이 조정숙권사님이 만들어 주신 찬양집 입니다.

 

우리 교회가 6월 25일부터 부흥집회도 시작되고 하니까 권사님이 애기를 보면서도 부지런히 서둘러서 찬양집을 만드신것 같습니다. 어제 부산에 가면서 전화를 드렸더니 권사님이 찬양집을 다 만드셨다고 하시면서 손주 지호와 병원에 가는것이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서 결혼식장에는 못오지만 마침 권사님이 결혼식장에서 아주 가까운 동네에 계셨기에 돌아오는 길에 조정숙권사님을 만나서 권사님이 만드신 찬양집 70권을 차에 싣고 돌아 왔습니다.

 

권사님께서 성도님들 대접 하라고 금일봉까지 주셔서 돌아오는 길에 그 돈으로 휴게소에서 망개떡을 사서 한봉지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찬양집을 만들어 주시고 금일봉까지 제공해 주신 조정숙권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 아침에 출발할 때에는 나창희집사님이 저희를 위해서 미리 수육과 떡과 음료수와 수박까지 준비해 주셔서 저희가 예식장에 가는길에 사천 휴게소의 정자에 짐을 풀고 나창희집사님이 싸주신 푸짐한 음식들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 승합차에 올라 타기조차 힘들어 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아지고, 그리고 허리까지 아픈 성도님이 계셔서 지난 목요일날 허용식성도님과 함께 승용차를 사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구입할 차량의 차주와 함께 차량등록을 위해서 군청에 갔더니 군청 직원이 저에게 “이 차는 택시를 부활시킨 차입니다”라고 귀뜸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차를 구매하지 않고 그냥 돌아 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정평관집사님 일터를 지나가게 되어서 정평관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정평관집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동안 정평관집사님에게 큰 복을 주신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평관집사님께서 우리 남해 세광교회를 위해서 헌신한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 달라고 계속해서 기도를 해 왔습니다.

 

서울 세광교회의 권사님들 기도팀에게도 부탁을 드려서 정평관집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권사님이 서울 세광교회의 기도하는 권사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분들에게서 받는 인사말이, “정평관집사님 어떻게 됐어요? 하나님이 복을 주셨나요?”하고 묻는것이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금번에 하나님께서 정평관집사님에게 큰 복을 주신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는 축복을 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나중에 새벽시간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하나님께서는 정평관집사님이 그동안 우리 남해 세광교회를 위해서 충성봉사를 다한 그 수고대로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평관집사님에게 복을 쏟아 부어 주셨는데 그동안 애쓰고 힘쓴 모든 수고보다 몇 배의 축복을 내려 주셨고 그 축복이 단회적으로 끝난 축복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축복임을 알고 더욱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희가 정평관집사님으로부터 그 간증을 듣고 돌아오는데 너무나 기뻐서 저와 제 집사람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해서 시종일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면서 돌아 왔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본문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선포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현실적으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땅을 향해서 나아가기 일보 직전입니다.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 가려면 무슨일을 만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는 철옹성벽 여리고가 버티고 있고 그 외에도 도무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들이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땅한평도 없고 집도없고 가진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그들을 향하여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행복한 사람들이로다” 라고 선포 했습니까? 첫 번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의로운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행복한 사람들이로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26절을 다시보면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에 대한 별칭인데 “의로운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즉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선택되고,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대명사”입니다.

 

이사야서 44장 2절에 보면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잘나거나 혹은 숫자가 많고 강해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을 선택해 주셨기에 그들이 복을받은 것입니다.

 

어제 제가 주례사를 하면서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은 선택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남녀가 하나가 되는것이 결혼입니다. 그런데 선택과 더불어 포기해야 할 것이 한가지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신랑 지홍석군은 박명희양을 선택했고 신부 박명희양은 지홍석군을 선택 했습니다. 그런데 지홍석군은 박명희양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포기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신부 박명희양도 신랑 지홍석군을 선택 했기에 이제부터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신부는 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들이 있지만 나를 선택해준 신랑에게 감사하고 지홍석군도 나를 선택해준 신부에게 감사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선택한 여인과 내가 선택한 남편을 통해서만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많고 많은 족속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복중에 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수십억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는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무조건적으로 불러 주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만 선택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우리도 하나님을 선택 했으면 더이상 점쟁이를 찾아 가거나 사주팔자 관상같은것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따라가야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툭하면 배신하고 반역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여튼 교만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모세는 그 누구 보다도 그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31장 27절에서 모세는 고백 하기를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은 마음이 삐뚤어지고 툭하면 원망불평과 반역함으로 일관해 왔음에도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는 행복자로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와 허물을 덮어 주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을 선포 하셨습니다. “너는 행복자로다!” 믿습니까? 옆에 있는 분들에게 한번 축복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행복자 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행복의 조건을 하나님에게서 찾으면 엄청난 행복의 조건이 넘치게 됩니다.

 

행복론의 저자 칼 힐티(1833-1909)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한 벌의 따뜻한 외투만 있으면 되지만 그러나 의복의 색깔이나 모양에 관심을 쏟으면 색 다른 열 벌의 외투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죠? 욕심이 가득찬 사람은 아무리 좋은것을 주어도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외투 한 벌만 있어도 그 외투를 입고 늘 감사합니다. 행복의 조건이 한 벌의 외투에 있듯이 행복의 조건을 만족에서 찾고 욕심에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의 조건을 축복의 근원되신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찾고, 누리고, 뿌리를 내리면 죽을때 까지 계속 행복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을 눈에 보이는 것에서만 찾으면 만족은 불가능 합니다.

 

이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행복자로다 라고 선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살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다시보면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라고 선포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세와, 영광을 표현할 때 “하나님이 하늘을 타고 온다, 구름을 타고 온다” 라고 표현 했습니다.

 

실제로 마지막날에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와서 우리 믿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데려 가신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이와같이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신다면 감히 그들을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구체적인 방법이 27절에 나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의 권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사건도, 홍해를 가른 것도, 반석에서 생수가 한없이 터져 나온 것도 아말렉을 이기게 하신것도 다 능하신 하나님의 팔이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모세는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하면서 40년을 지내 왔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특별히 모세는 아말렉과 전쟁을 할때 자기의 팔의 연약함을 체험 했습니다. 자기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전쟁에서 이겼지만 손이 내려가면 전쟁에 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는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우시는 능력의 팔은 이스라엘 위에 영원하실 것을 알고 있었기에 “너는 행복자로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때때로 내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의지할 데도 없고, 이 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때 그런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고 증거 합니다.

 

이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행복자로다 라고 선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확실하게 체험 했기 때문입니다. 29절을 다시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스라엘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은 바로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 중에서 그들에게 베푸신 인자와 긍휼과 섭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구원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은 인생의 의미가 바뀌고 목표가 바뀌고 삶의 참된 보람을 누리면서 살아 갑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과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인생의 목표가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에 목매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고 열심히 노력 하지만 그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평관집사님처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르고, 방식이 다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살아 생전에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살아 생전에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깨닳았기에 그 은혜가 감사해서, 그리고 나같은 죄인을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이한몸 다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도 죽고 오래 살아도 죽습니다. 잘나도 죽고 못나도 죽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둘 중에 한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아 생전에 갚아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구원의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은 그동안 살면서 보지 못한 새로운 영적인 안목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령한 세계를 보게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을 신뢰하게 되고 그래서 세상에 치심하지 않고 자기를 바쳐 선교사로 목사로 순교자로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늘 감사 하면서 찬송하면서 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찬양해야 할 찬양제목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한 감격하고 계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말할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보셨습니까? 그런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런 사람이 진정 행복한 성도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 버릴때 찾아 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감격을 잃어버리면 믿음은 식어지고 기쁨도 사라지고 우울한 마음이 됩니다.

 

교회에 왜 시험이 옵니까?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믿음이 식어져서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워서 일을 할때 교회는 분란이 생기고 문제가 생깁니다.

 

구원받은 기쁨이 충만한 사람들이 모인 초대 교회는 기쁨과 성령이 충만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기쁨이 사라지고 서로가 자기의 권리과 기득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초대 교회는 망해가기 시작 합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애굽에 그대로 있었으면 왕권을 잡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구원의 기쁨을 알게되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자리를 다 포기하고 이스라엘과 함께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히11:24~26).

 

모세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닳았기 때문에 세상 부귀영화를 다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깨닳은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구원의 감동을 가지고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신앙이나 한 가지만 가지면 되지 꼭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느냐?” 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길은 오직 한가지 길밖에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도 행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하고, 직장에서 실직하면 자유시간을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어서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하는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감사하고, 역경에 처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고 정화시켜 주시는 거라고 생각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하신 팔이 함께 하심으로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자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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