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가 하는 말을 한번 따라서 해 보시겠습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 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빌3:20).
이 세가지가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예수 믿어서 구원받고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그리고 예수 믿어서 천국에 가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 예수 믿은 우리가 얻은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엄청난 행복을 그냥 공짜로 주는데도 받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오늘 본문 23절과 같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복받은 사람이구나” “예수믿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닳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느 부잣집 뜰에 난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난초 아래에 두꺼비 한 마리가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주인이 와서 아주 정성스럽게 난초에게 물을 주고 애정과 사랑을 다해서, 애지중지하면서 난초를 돌보아 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두꺼비는 너무나 부러운 마음에 주인이 간 후에 난초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난초야! 나는 목이 말라도 누가 나에게 물 한 모금 주는 사람이 없단다, 게다가 뱀은 날마다 나를 잡아 먹으려고 쫓아 다니는 바람에 나는 늘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지! 그리고 나는 못생겨서 어디를 가나 천대만 받는 천덕꾸러기인데 너는 무슨 팔자가 그렇게 좋아서 주인에게 그런 사랑을 받는거냐? 너는 참 복도 많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 참 부럽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난초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두껍아! 너! 그건 뭘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는 너처럼 발이 없어서 목이타도 물이 있는곳 까지 달려가서 물을 마실수가 없어! 그래서 아무리 목이 말라도 주인이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해!
그리고 소가 와서 나를 뜯어 먹어도 나는 도망도 못가고 꼼짝없이 당 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너는 발이 있어서 목이 마르면 물가로 달려가서 물도 마시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얼른 도망도 가쟎아? 그러니까 나보다 네가 더 행복한 존재야!”
그 말을 들은 두꺼비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비로소 자기는 난초가 가지고 있지 않은 또 다른 행복의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 믿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가진것들을 바라보고 부러워하거나 의기소침 해서는 안됩니다. 행복은 무엇을 가진 것에서 얻는것이 아니라 깨닫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쾌락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 바이런(Byron)은 말하기를 “인간이 쾌락에서 행복을 찾아 보려고 하지만 그러나 쾌락을 통해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힘들다 오히려 쾌락을 추구한 사람들이 얻은것은 고통과 비애 뿐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백만장자 였던 제이 고울드(Jay Gould)는 마지막 임종시에 고백 하기를 “나는 돈은 많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외롭게 산 사람이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이후에 정치적으로 대단한 권세를 누린 토리당의 지도자 비콘스 필드(Beacons Field)는 그 누구보다 권세와 명성을 누린 사람이지만 그는 말년에 고백 하기를 “젊음은 과오 투성이로 보냈고 장년은 투쟁으로 보냈으며 노년에는 후회로 인생을 보냈다”라고 탄식을 했습니다.
이 모든 고백들은 행복이 부와 명예와 권력에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복음을 듣고 깨닳은 사람입니다. 참된 행복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할 때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행복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행복의 근원이요 만복의 근원 이라는” 사실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마태, 누가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년시절에 관한 기록을 전혀 기록하지 않고 마가복음 일장 일절에서부터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선포 했습니다.
마가는 신앙생활에 실패한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때 마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힘들고 고달픈 선교여행을 견디지 못한 마가는 도중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후에 다시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때 마가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고 바울은 안된다고 다투다가 결국 두 사도는 갈라서게 됩니다.
마가는 그 후에 선교 여행을 통해서 믿음이 깊어졌고 예수님이 구세주 이심과 더불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됩니다.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마가는 예수님의 은혜가 나무나 감사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과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마가복음을 쓰게 됩니다. 마가는 복음서를 쓰면서 마가복음 1장1절에서 거두절미하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예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은 복음서를 쓸때에 예수님의 족보부터 상세하게 기록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실때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들을 자세하게 기록했지만, 그러나 마가는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서 첫 장 첫절부터 예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입니다. 이 단어는 복된소식이라는 뜻인데 황제의 아들이 태어났을때 그 소식을 온 세계에 전했는데 그런 대단한 기쁜 소식을 복음, 즉 “유앙겔리온” 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앙겔리온은 “세계사를 바꿀만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그 당시에 황제의 아들이 태어 났을때 온 세상에 그 기쁜 소식을 전할 때 사용했던 단어인 “유앙겔리온”, 즉 “복음” 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 사용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복된 소식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소식을 듣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가 전파 되는것이 참된 복음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깨닳은 사람은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불을 때서 방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구들장이 뜻뜻해져서 밤새도록 방이 따뜻 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 불을 때다보면 재와 검은 연기가 엉겨서 굴뚝이 막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굴뚝을 뚫지 않으면 불도 잘 타지 않고 방도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 굴뚝이 막히면 아궁이에 아무리 불을 때도 소용이 없습니다. 방안에 연기만 자욱하고 방도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굴뚝을 뚫어야 비로소 불길이 잘 들어가고 연기도 잘 빠지면서 방바닥도 따뜻해져서 열효율이 좋아졌습니다.
이와같이 막히면 문제가 심각해 지고 뚫리면 형통해 집니다. 하수구나 변기가 막히면 오물이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금번에 비가 왔는데 강남지역에 물이 안빠져서 침수가 되는 바람에 수많은 차가 잠기고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람은 호흡이 막히면 죽습니다. 사업도 돈 줄이 막히면 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영적으로 형통한 복을 받아야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면 형통한 복을 누리면서 살수가 있습니까? 역대하 26장 5절에 보면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막힌 것이 뚫어지고 형통한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모든 막힌 것을 뚫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형통한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 보혈에 의해서 사함받게 됩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영적인 통로가 열리고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빨리 만날수록 예수님을 빨리 알수록 복된 사람입니다.
한 가난한 집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했습니다. 옆에있는 친구가 이 아이에게 “야! 훔쳐서라도 준비물을 챙겨야지”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래! 훔치면 되지” 그때부터 그 아이는 도둑질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도둑이 되었고 급기야 사람을 죽이고 돈을 뺏는 살인강도짓을 하다가 잡혀서 재판을 받았는데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갔는데 이 사람이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보니 비로소 자기가 잘못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세상은 더럽고 악하다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회개하고 세례받고 나서 다시 세상을 보니까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느꼈던 세상과는 전혀다른 세상이 내 눈에 펼쳐 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이 귀한 진리를 너무나 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비록 늦게라도 깨달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 저는 누군가를 사랑할 시간도, 누군가를 섬길 시간도, 하나님께 봉사하고 충성할 시간도 없습니다. 이렇게 감옥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늦게 만나면 늦게 만날수록 행복을 늦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처럼 됩니다.
버나드 쇼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버나드 쇼는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습니다. 청년 시절에 부동산 중개사로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그리고 다시 전기 회사에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쫓겨 납니다.
그런데 공부도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그가 우연히 글을 써서 친구가 운영하는 잡지사에 냈는데 그 글이 인정을 받아서 신문사에서 초청을 받았고 그후로 버나드 쇼는 글쓰는 재주를 인정 받아서 글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게 30세때입니다.
그렇게 13년간 글을 쓰다 보니까 그는 어느새 영국 최고의 극작가가 되었고 결국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됩니다. 세계 최고의 정상에 선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정신없이 살아 갑니다. 그는 죽을때 까지 쉬지않고 글쓰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죽으면서 자기 묘비명에 이런 글을 써 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쓰여졌습니다.
“갈팡질팡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묘비명 이야기를 할때 한번 소개 했습니다. 버나드쇼는 자기가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갈팡 질팡 하다가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지만 갈팡 질팡 하다가 끝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끝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옛날에는 염라대왕이 사람의 인생을 주관하는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을 사는 동안에 너무나 가난하게 살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가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갔는데 너무나 화가 나서 염라대왕한테 가서 따졌답니다.
“내 인생은 이게 뭡니까? 남들은 다 잘살고 잘먹고 잘 입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나는 이렇게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죽었으니 너무나 억울합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그래 그럼 넌 무엇을 원하느냐?” “저도 한번 권력가가 되어서 권세를 부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한번 권력가가 되어 보거라” 그래서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려 보내져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어서 열심히 정치를 했는데 사람들은 정치를 잘 못한다고 데모를 하고 난리를 치면서 싫어 했습니다. 결국 그는 어느날 데모데에 의해서 암살을 당해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어서 다시 염라대왕 앞에오자 염라대왕은 “그래 이제 만족 했느냐?” 그러자 이 사람이 “어휴! 권세 부리면서 사는 것은 정말 못할 짓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 후에 365일 하루도 편하게 자본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이번에는 돈이나 한번 원없이 실컷 쓰면서 살고 싶습니다 재벌이 되게 해 주십시요”
“그래? 그럼 어디한번 재벌이 되어 보아라!” 그래서 그를 재벌로 만들어서 다시 세상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향락을 많이 누렸던지 그는 못된 병이 들어서 또 일찍 죽었습니다.
“그러자 염라 대왕이 이제 만족했느냐?” “아닙니다 그것도 할 일이 못됩니다. 대왕님! 한가지만 더 부탁 드립니다. 제 마지막 소원이니 한번만 더 들어주십시오.” “그래 무엇이냐?”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몸매도 아름답고 마음씨도 착하고 남편을 대왕같이 받들면서 살아 줄 사랑스러운 여자 하나를 저에게 주시면 제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런 여자를 제게 주십시요”
그러자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야 이놈아!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가 데리고 살지 너에게 주겠느냐? 나도 아직까지 그런여자는 만나보질 못했다!” 하더랍니다.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세상 살이에는 만족이 없다는 말입니다.
일전에 말레이시아의 카마루딘이라는 72세의 노인이 53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53번째 결혼 상대는 1957년에 결혼했다가 이혼한 첫째 부인이었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해 아래 새 것은 없다고 성경은 증거 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꾸 바꾸면 도움이 안됩니다. 물론 정말 바꾸어야 할 때는 과감하게 바꾸어야 하지만 그러나 바꿀 때도 나의 사정(事情)보다는 사명(使命)을 따라 바꾸고, 편의(便宜)보다는 대의(大義)를 따라 바꾸고, “부담이 없는 삶” 보다는 “부담을 지는 삶”을 위해서 바꾸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사명과 대의 없이 나 혼자만 잘먹고 잘 살자고 무작정 바꾸면 인생은 오히려 망가지고 후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심지어는 고난조차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좋은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고난과 어려운 문제들은 더 큰 축복과 새로운 은혜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국민일보에 성공한 신앙인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연재하는 “역경의 열매”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거기에 “주님을 찬양하는 영원한 디바 윤복희 권사”가 소개 되었습니다.
윤복희씨는 오빠 윤항기 목사님과 함께 유명한 가수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버지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의 정식 부인이 아니었기에 윤복희씨는 다 크도록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도 윤 권사가 어렸을 때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도 뛰어난 재능은 있었지만 아편중독으로 수용소를 들락거리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윤복희씨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재능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무대에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그러나 갈곳이 없고 잘곳이 없어서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혼자서 추운 길거리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며칠씩 굶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운좋게 식당 부엌에서 잘 수 있게 되었는데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가 밤중에 깼는데 엄마 아빠 생각이 나면서 슬픔과 무서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슬피 울면서 죽어 버릴까 하고 생각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여골절끝에 윤복희씨가 성공을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고백 하기를 “오늘날 나를 키운 것은 배고픔과 무대였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권사가 된 후에 그녀는 “이 모든 고난은 나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하시며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였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만약에 자기가 잘되고 잘살고 형통 했다면 자기는 반드시 타락했을 거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고난이 스승이 되었기에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고난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모든 고난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얼마전에 강진영씨가 오바마 대통령의 입법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미국 이름이 크리스토퍼강입니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 보좌관이요 국가장애위원회 차관이었던 강영우박사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변호사인데 아버지에 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보좌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버지 강영우박사는 열네살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고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영우 박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찍 돌아 가시고 소녀 가장이었던 누나마저 과로로 죽고, 남은 3남매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영우박사는 그 절망의 순간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품고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비록 고아에 맹인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인도해 주실줄 믿습니다!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당시에 한국에서 소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쟁이가 되거나 안마사가 되는 것이 전부 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강영우 박사는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점쟁이가 되거나 안마사가 될수는 없어”라고 생각하고 내가 이런 현실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맹아학교에서 점자로 공부해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시 연세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그리고 또 미국으로 유학하여 교육학, 심리학 석사를 받고 교육행정학 박사 학위까지 받아서 한국인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부시 행정부에서 차관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고백 하기를 “내가 눈이 멀어서 장님이 된것이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동기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저의 아내는 저 때문에 장애자 교육을 공부해서 장애 전문가가 되었고, 큰 아들은 나의 눈을 고쳐주겠다고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안과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은 나의 연설문을 쓰는 것을 도와 주다가 글을 잘 쓰게 되었고 결국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눈을 실명한 것은 우리 가족들에게 큰 축복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은 우리 인생의 경력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하느라 애쓰다가 당한 고난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돌아올 상급의 경력으로 싸여 집니다.
우리 예수믿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은 때때로 목적지로 가는 길에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 우리를 더욱 성숙시키시고, 복된 삶을 더욱 앞당기시는 분이십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했다” 라고 증거 합니다. 바로왕이 학대를 하면 할수록,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하면 할수록 이스라엘 자손은 더욱 번성하고 창성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핍박정책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핍박을 통해서 서로가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핍박을 통해서 가정이 더욱 하나가 되고 핍박이 오면 올수록 그들은 더욱 한마음 한뜻으로 행복과 사랑을 만들어 갔기에 창성한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고난은 목적지를 향해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4~50년 전에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쇠고기에 쌀밥을 먹고 사는것이 소원 이었습니다.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 모르는 좋은 주택에서 사는것이 소원 이었습니다. 옛날에 주부들은 더운 물, 찬 물이 나오는 부엌에서 행복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모든 가족들이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고, 그리고 모두가 자가용을 타고 주말여행을 떠나는 그런 환상적인 꿈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것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도 원하던 쇠고기에 쌀밥은 인기가 없습니다. 쇠고기에 쌀밥만 먹고 살았다가는 합병증에 병들어 죽는다고 다들 기피 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국민이 절대 빈곤에 허덕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 빈곤이 5퍼센트 밖에 안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복에 겨워서 어쩔 줄 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세상에 살면서도 너나 할것없이 도무지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자살통계 1위 교통사고 1위 저임금 1위 음주운전 1위 세계에서 평균 일인당 술 소비량 1위 아동 성폭행 1위입니다. 불명예스러운 일들의 1위의 대부분을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런 불명예 국가가 되었습니까? 이런 모든 불명예와 부도덕한 일들은 사탄마귀의 수하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탄마귀를 몰아내야 이런 일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행복하게 사는 것 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냐 아니냐의 정의를 세 가지로 구분 합니다.
첫째는 영혼의 구원을 분명하게 깨닫고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저 시계부랄마냥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구원의 확신이 생겼을때 그때부터 비로소 참된 믿음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둘째는 자신이 섬기고 봉사할 대상과 장소를 찾은 사람이 성숙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몸 바칠 대상인 하나님과 더불어 충성할 교회가 정해진 사람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 성숙한 믿음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 입니다. 어딜 가든지 목사님이나 성도들과 평화 유지를 잘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대인관계에서 늘 갈등을 빚고 문제가 생기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방법대로 처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이런 세가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에 있어도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허무하고 쓸쓸한 인생이 됩니다.
영국과 일본에서 가장 존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영화를 누리면서 사는 두 여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왕비입니다. 영국과 일본에는 지금도 왕비가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 두 나라는 경제 대국이요 군사 강국이요 앞서가는 선진국입니다. 이 두 나라의 왕비는 죽을 때까지 왕궁에서 최고로 좋은 것만 누리면서 삽니다.
자기 남편은 왕이요 왕이 죽으면 자기 아들이 왕이 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항상 국빈 대우을 받으면서 살아 갑니다. 이 두 왕비들은 불경기를 염려할 필요가 없고 전쟁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주변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스물 네시간 아랬사람들이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자리에 있던 다이아나왕비가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서 중동의 부자청년과 함께 돌아 다니다가 교통 사고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왕비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소식에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대표적인 두 분이 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한사람은 비참하게 죽고 한사람은 우울증에 걸려서 불행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첫째는 그 마음속에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갖지 못했기에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할 일이 없었습니다. 뭔가 보람있게 살아야 하는데 밤낮 먹고 마시면서 대접만 받는것이 그들의 생활이었습니다.
“거지왕자”라는 동화에 보면 왕궁에서 살던 왕자는 왕자 생활을 지긋지긋해 합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뛰쳐나가서 거지가 되었는데 오히려 거지 생활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낍니다.
세상에 평민이 많은 이유는 평범하게 사는것이 제일 행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평민을 가장 많이 만드신 것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 지면 그 순간부터 삶에 비극이 생기고 온갖 루머에 시달려야 합니다. 피겨여왕 김연아선수는 요즘 “결혼했다! 애기를 낳았다!” 라는 온갖 거짓말과 뜬금없는 소문에 우울증에 걸릴 정도 라고 합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요리를 잘하는 고급 요리집에 가서 최고의 음식을 먹었다면 “이야! 이런 맛있는 요리는 생전 처음 먹었다, 정말 맛있다” 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한테 복을 주셔서 “네가 오늘 먹은 그 요리를 평생 먹고 살게 해 주마” 하고 축복해 주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일주일만 계속해서 그 요리를 먹으면 그 요리는 질려서 쳐다보기도 싫을 것입니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누려도 똑같은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질려서 견디질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의 왕들은 수백명의 요리사들을 두고 날마다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태후 별장에 가보면 놀라운 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왕의 상에 같은 음식이 두 번 반복되면 요리사를 사형시켜 버렸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요리사들이 살아 남으려고 온갖 벼라별 음식을 다 만들어서 왕에게 갖다 바치다 보니까 중국이 요리의 천국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잘 먹고 사는 게 복이지만, 그러나 잘 먹지 못하고 사는것도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들이 잔병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천직임을 알고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고구마를 캐면서 “세상 모든사람들이 다 우리 농부 때문에 사는거야” 라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면 농부의 자부심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건축가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설계한 건물이 아름답게 서 있는것을 보면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국의 처칠이 말했습니다. “나는 정치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처칠이 유명한 정치가가 된 것입니다. 그의 정치 때문에 영국이 빛났습니다.
사업가는 사업에 미쳐야 합니다. 지난주에 수련회가 끝났습니다. 허용식성도님이 수련회에 따라가서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한주의 절반을 수련회를 위해서 헌신 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가 끝났는데 허용식성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건강관리 잘 하시고 맛있는것 드시면서 힘 내세요! 목사님! 좋은 일감이 많이 들어와서 참 좋습니다!” 하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렐루야! 허용식성도님이 하나님께 헌신 했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고 기뻐 했습니다. 건축헌금 5000만원 작정한 것을 드리려면 일이 많아야 하는데 돈 되는 좋은 일감이 많이 들어와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주셔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 했더니 우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복을 주셨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리빙스턴은 선교밖에 몰랐습니다. 리빙스턴이 10년만에 영국에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리빙스턴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아프리카에서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힘드시죠?”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리빙스턴은 “무슨 말씀 입니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 가운데 선교 사역이 최대의 축복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깨닳은 사람은 이와같이 환경이 나쁘고 삶이 고달파도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깨닳은 사람은 어떤 환경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 불평하면 그게 나를 잡아 묶는 도구가 됩니다.
돈 때문에 불평하면 계속해서 돈에 묶입니다. 환경 때문에 불평하면 계속해서 환경에 묶여 살게 됩니다. 질병 때문에 불평하는 사람은 결코 그 질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 때문에 불평하면 계속해서 사람에게 묶여 살게 됩니다.
이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신앙고백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묶고 있는 사슬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주심으로 닫혀있던 축복의 문들이 열리고 넘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시편 131편3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면 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 할랜드 센더스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 났습니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그는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초등학교도 못다니고 중퇴를 했습니다. 그가 열두 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떠나 버렸습니다.
그는 열두 살 때 농장에 들어가서 노예처럼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6살에 도망나와서 자동차정비소에서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돕는 페인트공으로 일을 했고 18살에는 도시로 나와서 전차의 차장일을 했고 다시 스무살에는 배를타고 연락선기사를 하다가 스물 두 살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을 했고 스물 세살에는 철도 노동자로 일을 했고 하여튼 안해본일이 없이 전전 긍긍 하면서 불우한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함께 조그만 사업을 시작 했다가 그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었고 아내는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이 없어서 죽기로 작정하고 술을 마시고 수면제를 먹은 상태로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운전을 하다가 정신이 몽롱하고 힘이 빠져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쓰러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구급차를 불러서 그는 병원으로 후송이 되었습니다. 의사는 수면제를 다 토해내게 해서 그를 살려냈습니다.
의식이 깨어난 그는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죽어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나를 살린거야!”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를 살린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손에 꽃은 링거를 빼 던지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진정을 하고 다시 쓰러 졌습니다.
그렇게 그는 두주를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 청소하는 흑인 아줌마가 있었습니다. 이 아줌마는 청소를 하면서 병원 복도와 병실을 청소할 때마다 항상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날도 병원복도에서 흥겨운 찬송가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볼품없는 흑인 청소부 아줌마는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웃는 얼굴로 들어와서 찬송을 부르면서 청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보니까 그 청소부 아줌마의 발 뒤꿈치가 다 갈라졌는데 동전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진 틈새가 세군데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흑인 청소부 아줌마는 늘 노래를 부르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청소를 하고 나갔습니다.
샌더스는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였기에 그 흑인 아줌마가 부르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몰랐습니다. 샌더스는 그 흑인 청소부 아줌마를 볼때마다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참 이상하다! 못생긴 흑인에다가 발은 쩍쩍 갈라져서 보기에 흉하고 밤낮 병원에서 더러운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하는 청소부 주제에 뭐가 저리 좋아서 날마다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는건가?” 하면서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만나는 그 흑인 청소부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 보니까 그 여자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눈동자는 빤짝 빤짝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샌더스가 그 흑인 청소부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아줌마는 뭐가 그렇게 기뻐서 날마다 노래를 부르면서 청소를 합니까?” “아들이 사법고시에라도 붙었나요?”
그러자 이 흑인 아줌마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지요!” “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행복합니다 천국을 생각해 보세요 안기쁠수가 있나요?"
그러자 샌더스는 “예수 믿으면 행복 하다고요? 천국에도 간다고요? 천국은 죽어서야 갈텐데 죽어서 갈 천국 때문에 지금 그렇게 기뻐 합니까?”
“그럼요! 예수믿으면 지금도 기쁘게 살고 죽어서도 기쁘게 살죠” 합니다. 그러더니 “청년은 왜 병원에 왔어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하고 물어 봅니다. 그래서 샌더스는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는 소망이 없는 인생을 살아 왔다고 하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샌더스의 이야기를 다 듣더니 “언제 퇴원해요?” 하고 물었습니다. 샌더스는 “의사 선생님이 이삼일 후에는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며칠후면 나가겠지요”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후에 헤어졌는데 다음날 그 흑인 여자가 샌더스에게 와서 봉투를 하나 주면서 “이건 청년이 예수 믿으라고 제가 드리는 선물 이예요 당장 나가면 밥도 사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는데 이걸로 필요한데 쓰세요”하면서 주고 방을 나갔는데 보니까 10달러가 들었습니다. 햄버거 하나에 10센트 할때니까 오늘날로 하면 10달러는 10만원입니다.
샌더스는 노숙자 쉼터에 들어갔고 그 아주머니가 준 돈으로 닭을 한 마리를 사서 튀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닭을 튀기는데 언젠가 공원에서 만난 요리사가 닭튀김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그가 가르쳐 준대로 닭을 살 때 튀김에 들어가는 튀김가루와 양념까지 사서 맛있게 닭을 튀겼는데 정말 닭튀김이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샌더스는 시장에 가서 닭 세 마리를 사서 튀겨서 그 닭을 가지고 나가서 팔았는데 닭튀김이 금방 팔려서 다시 열 마리를 사서 팔았고 그렇게 시장에서 닭을 튀겨 팔기 시작 했는데 맛있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가 만드는 닭튀김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후에 그는 작은 학고방을 얻어서 닭튀김집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큰 가게를 얻어서 닭튀김집을 했는데 그 사업이 대박이 나서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가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상을 올리고 있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창시자 할랜드 샌더스입니다.
그는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그가 가장 좋아한 찬송이 바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 하면서 주께로 나가기 원합니다.”찬송입니다.
그는 흑인들을 위해서 엄청난 장학금을 후원했고 노인들을 위해서 수많은 양로원을 지었고 오갈데 없는 고아들을 위해서 고아원을 지었고 수많은 교회와 선교단체를 지원 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제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지만 그러나 할랜드 샌더스는 이 세상에 “켄터키 치킨” 이라는 훌륭한 체인점을 남겼고 그리고 그가 설립한 고아원과 양로원 그리고 그가 지원하는 수많은 교회와 선교사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보람있게 살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고생해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의미가 있고 소망이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든 수고와 희생과 헌신은 상급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 출세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지 못했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삶을 살아도 행복을 누리면서 살수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수도사로 살다가 죽은 로렌스라는 수도사가 있습니다. 로렌스는 어렸을때 나무에 올라 갔다가 떨어져서 한쪽 다리를 못쓰는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절뚝 거리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어느날 그가 열 여덟살이 되었을때 추운 겨울날 나뭇잎이 다 떨어져버린 나무를 보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저 나무에 지금은 나뭇잎이 하나도 없지만, 머지않아 다시 잎이 돋아나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겠지?” 로렌스는 그 벌거벗은 나무를 보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아무 것도 가진것이 없지만 그러나 때가 되면 싹이나고 잎이나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듯이 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작은일에 충성을 다하면 언젠가는 내 인생이 아름답고 복된 인생이 될거야!”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로렌스는 작고 사소한 일상생활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거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 갔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가장 힘든일은 읍내에 나가서 수도원에 필요한 물품을 장만해 오는 일이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면서 4키로나 되는 읍내에 걸어가서 물건을 구해 오는일은 그에게는 엄청난 고난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불평 하지않고 하나님께 기도 하면서 그 일을 수행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절뚝 거리면서 수도원을 나가서 큰 길을 걷다보면 꼭 지나가는 마차가 있어서 그를 태워다 주었고 다시 돌아올 때에도 그 산골짜기 까지 태워다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는 힘들지 않게 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는 수도원 주방에서 15년간 일했는데, 원래 그는 주방 일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 하면서 주방일을 했더니 주방일이 좋아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가 주방에서 봉사하던 어느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꼭 큰 일만 해야 할 필요는 없어! 후라이팬의 작은 계란 하나를 후라이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란을 뒤집으면 그게 행복한 일이야!"
그리고 일이 끝나서 방에 들어오면 그는 방바닥에 엎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 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이렇게 사는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야! 내가 기도하고 찬양한 후에 일어나면 나는 세상의 어떤 왕 보다도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니까 말이야!”
그는 자기가 쓴 <하나님의 임재연습> 이라는 책에서 이와같이 사소한 일상생활 속에서 깨닳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 하나 적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중요한 교훈은 “작고 사소한 일과 더불어,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누리면서 살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누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당장 행복이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예수님과 동행 하다보면 깨닳은 마음으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말씀을 듣고 깨닳은 자가 되어서 은혜와 축복과 행복과 구원의 열매들과 성령의 열매들이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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