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에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로 갔던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선교사님이 도착해 보니 그곳에는 작은 도서실이 하나가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도서실에 들어 가서 보니까 그 도서실을 세운 이력이 기록이 되어 있어서 읽어보니 이런 내용 이었습니다.
“본 교단에서 독신여성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녀가 인도네시아 말을 배우던 중에 밤에 강도가 들어와서 그 여 선교사를 살해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교회가 이 여 선교사님을 기념하고자 이 도서실을 지었습니다”
선교사로 간 목사님은 그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로 삼아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 항상 있겠다”라고 말씀하신 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선교지에 갔는데 그것도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직장도 포기하고 가족과 친척을 떠나온 이 젊은 여성이 어떻게 전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곳 원주민의 말을 배우다가 흉악한 강도의 칼에 죽임을 당할 수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단 말인가? 항상 함께 하시겠다던 주님은 어디 계신가? 나 또한 많은 사람들의 만류와 여러 가지 좋은 삶을 다 포기하고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이 인도네시아에 왔는데 나도 과연 무사할 것인가? 내가 여기서 선교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선교하다 죽어 버리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면서 이 목사님도 고민이 되더랍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님이 숙소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먼저 왔다가 돌아가신 선교사님의 방에 누군가가 이런 글이 담긴 액자를 걸어 놓았더랍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는 때때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생기는 일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정의의 편이시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한 구절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있기에 우리는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진 십자가가 남의 것보다 무거울수록 주님의 위로도 더 크고 위대할 것을 믿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스러운 삶이 내 앞에 다가오고 원치않는 일들이 생길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때에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지식도, 지혜도, 의지도, 경험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 때문에 우리가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 라고 고백 했습니다.
광야 같은 이 나그네 인생길에서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십니다. 인간에게는 죽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인생에는 연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는 날이 그림자 같고 아무리 길어도 한 뼘 정도 밖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우리의 일생이 영원 앞에서는 없는 것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옵니다. 인생의 종말이 옵니다. 언제 어떻게 오느냐?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날은 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인생길에서 넘어야할 마지막 고비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약을 먹고 왜 수술을 하고 병원에 갑니까? 죽음의 강을 건너기가 두렵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교계에 총회장을 하셨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중병이 들어서 수술을 하셨는데 결국은 수술을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심히 고통스러운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 목사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아버지목사님께 갔더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이봐! 김목사! 내가 어제 꿈에 천당을 갔다 왔어!” 그래서 아들 목사가 물었습니다. “좋으셨습니까?” “참 좋더라! 성경에 있는 그대로더라!”
그러자 아들 목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보고 말합니다. “아버지, 그럼 빨리 가이소.”
진정으로 효심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시느니 어서 좋은 천국으로 가셔서 평안하게 지내시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목사님이 말합니다.
“싫다! 내가 조금만 더 너희들과 같이 있고 싶다! 아내와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손녀, 친구들 사랑했던 성도들, 그들과 이 세상에서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정춘자집사님은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셔서 고난중에 사셨지만 그러나 은혜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오늘 새벽에 소천 하셨습니다.
제가 정춘자집사님을 처음 만난것은 2007년 10월달입니다. 도마교회의 김도심권사님의 소개로 부산에 입원해 있던 정춘자집사님의 남편 김진규성도님의 문병을 갔다가 돌아와서 정춘자집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후로 남편이 돌아가신후에 제가 정춘자집사님을 찾아가서 전도를 했고 그래서 이듬해 봄에 설천교회에 등록 하셨습니다. 그후로 5년동안 제가 매 주일마다 정춘자 집사님을 모시러 가서 부축해서 차에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예배가 끝나면 정춘자집사님을 집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남해 세광교회를 개척한 후에 저는 지 지난주까지 3년동안 주일마다 정춘자집사님과 한 상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장애가 있는 성도와 가난한 성도와 병든 성도를 누구보다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저도 장애가 있는 정춘자집사님과 윤희만집사님과 함께 매 주일마다 한 상에서 식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두분과 함께 식사를 한 것입니다.
저는 정춘자집사님의 시종 이었습니다. 아침에 모시러가서 모시고 오고 식사 시간에는 정춘자 집사님에게 물을 떠다 드리고 식사가 끝나면 제가 손수 커피를 타서 드렸습니다.
지금 저희 어머니 권사님이 서울에서 오셔서 오늘 장례예배에 동참하고 계시지만 저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저의 어머니권사님과 함께 식사를 한 후에 저희 어머니권사님에게 한번도 커피를 타 드린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춘자집사님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제가 섬겨야 할 성도라는 생각에 그리고 하나님이 저에게 섬기라고 부탁하신 분이기에 제가 어머니권사님보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그 어떤 성도님들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섬겼습니다.
새벽 기도가 끝나고 성도님들을 모셔다 드리고 용강 고개를 넘어 올때면 종종 정춘자집사님댁에 들어가서 혼자계신 정춘자집사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집사님께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드리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은 제가 찾아 갈때마다 “목사님! 내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 합니다! 내가 이렇게 몸에 병이 나지 않았다면 내가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내가 몸에 병이 났기에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 자녀들 구원 받도록 꼭 기도해 주세요!” 하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마다 정춘자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큰딸 김정임집사님가족과 큰 아드님이신 김두홍아드님가족과 둘째 아드님이신 김원 아드님 가정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은 자녀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 기도 제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김두홍아드님이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오는데 무사히 잘 이사를 오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을 주셨을때도 저는 그 기도제목을 놓고 열심히 기도했고 그리고 김두홍아드님의 딸 연주가 대학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치를때에도 기도 제목을 주셔서 한달동안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연주와 연경이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그리고 김원 아드님의 아이들 태한이와 연정이를 위해서도 기도를 했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은 비록 몸은 불편했어도 늘 소망이 넘치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건강 회복에 대한 집념도 강하셔서 예배가 끝나고 모셔다 드리면 날씨가 좋은 봄 여름 가을에는 집에 안들어 가시고 몇 시간씩 운동을 하시고 들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집사님은 기도 응답에 대한 믿음도 충만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새벽마다 기도하시고 하루 세 번씩 열심히 성경을 읽으시면서 하나님께서 감동 하시는 성경구절을 기록 하시고 제가 갈때마다 “목사님! 이번에는 이 구절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시면서 자기가 읽고 기록한 성경을 보여 주시면서 은혜받은 성경 구절들을 저에게 읽어 보라고 노트를 펴 주셨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은 제가 보기에는 저희 남해 세광교회에서 가장 신실한 성도님 이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장애를 만나기도 하고 중병에 들기도 하고 실직을 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절망과 낙심 속에서 인생을 살기에 아무런 보람도 기쁨도 누리지 못하면서 살아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세상을 초월하고 질병과 장애도 초월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죽음도 초월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 죽음의 강 앞에서 우리의 위로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땅입니까? 집입니까? 자녀입니까? 다 놓고 가야할 것들 뿐입니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기독교가 고백하는 신앙고백 중에 여러가지 요리문답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첫 번째 물음이 이렇습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답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소망은 우리의 몸과 영혼이 우리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입니다.”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과 거듭난 영혼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상주 여러분은 여러분을 낳아주신 어머니가 예수믿고 변화된것을 아셨습니까? 정춘자집사님이 교회에 처음 오실때만 해도 자기가 장애자가 된것을 심히 부끄럽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보니까 장애가 오히려 나에게 복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 하면서 장애를 감사의 제목으로 생각 하셨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은 고백 하기를 “목사님 제가 자존심도 강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보니까 비로소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실제로 정춘자집사님은 아주 자존심이 강하고 교만하고 성질이 불같으셨습니다. 제가 차로 모시러 가거나 또는 차로 모셔다 드리고 차에서 내려서 문을 열어 드리면 집사님이 내리실 때 차 문을 붙잡고 일어 나셔서 차 밖으로 나오시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집사님의 다리를 내어 드리고 그리고 제가 부축해 드리느라 옆에서 도와 드립니다. 그런데 도와 드린다고 수발을 하는데 집사님이 자기 마음에 안들면 당장 소리를 지릅니다.
“목사님 내가 발을 디딜테니까 가만 계세요!”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저는 옆에서 "알았습니다" 하고 서서 기다립니다. 그래서 차에서 내리면 다시 집으로 올라 가는데 조심 조심 최선을 다해도 집사님이 수 틀리면 소리를 지르고 저에게 야단을 치십니다. 그래도 저는 옆에서 종처럼 수발을 합니다.
본래 사람이 몸이 불편하면 신경이 예민하고 장애자가 되면 더 예민해 집니다. 그걸 알기에 저는 집사님의 마음에 들게 수발을 하려고 5년동안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정춘자집사님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그렇게 정춘자집사님을 섬겼겠습니까? 제가 아들입니까? 동생입니까? 친척입니까? 이웃입니까? 혈연관계로 따지면 제가 정춘자집사님을 섬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5년동안 그렇게 정춘자집사님을 섬겨도 정춘자집사님의 자녀들이 저에게 밥한번 사준적이 없습니다. 자녀된 여러분들은 이제는 한번쯤은 저에게 밥을 사셔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밥 얻어먹으려고 그런일을 한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래뵈도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을 세 개나 다닌 사람입니다.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도 했습니다. 저도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골에 와서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정춘자집사님을 제가 종처럼 섬겼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러분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보다도 더 극진히 섬기고 한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매주 물을 떠드리고 커피를 타드리고 그리고 시마다 때마다 찾아가서 위로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정춘자집사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식사도 같이하고 별미를 만들면 갖다 드리면서 정춘자집사님을 섬긴 것입니다.
정춘자집사님의 가족이나 자녀분들중에 아직 교회에 안다니는 분들이 계신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 하실지 몰라도 기독교는 사랑입니다.
세상 마귀들이 아무리 기독교를 비판하고 욕해도 기독교는 여전히 세상 구석 구석에서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정춘자집사님이 그 비밀과 진리를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은 후에는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감사 하면서 찬송 하면서 기도 하면서 성경 보면서 여러분들의 구원과 여러분의 행복과 여러분의 잘됨을 날마다 기도하면서 지내신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은 이 가정에서 한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여러분도 어머니의 믿음을 본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날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못 다한 효도를 예수 믿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갚으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나님아버지, 오늘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올라간 정춘자집사님의 장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고인의 영혼을 거두셨사오니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편히 안기게 하심을 믿습니다. 정춘자집사님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겪었던 모든 슬픔과 눈물을 천국에서 닦아주심을 믿습니다. 여기 남아 있는 유족과 저희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사랑하는 유족들에게 한량없는 위로를 내려 주시옵소서 모든 유족들이 헤어지는 아픔과 슬픔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에서 정춘자집사님을 다시만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삼일동안의 모든 장례절차에 함께 하셔서 평안하고 은혜스런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정춘자집사님께서 저희 남해 세광교회에서 오셔서 소망중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으로 기도하였사오니 그 모든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자녀들과 손주 손녀들이 기도한 대로 복을 받게 하여 주시고 가문이 복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찬송:222장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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