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날 처음으로 교회에 모여서 기도회를 했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니까 힘도나고 은혜스러웠습니다. 그동안 구역장님들 구역예배 인도 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분간은 구역예배를 교회에서 모여서 금요 기도회로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회때 성경퀴즈대회도 했습니다. 성경퀴즈 대회를 해보니까 성경인물들의 이름을 알아야 맞추는데 이름을 몰라서 못 맞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성경퀴즈대회를 하면 머리가 회전이 잘되어서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성경퀴즈와 간단한 레크레이션을 곁들여서 기도회를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성경 넌센스 퀴즈를 했습니다. 인류 최최의 씨받이 여인을 물어 보았는데 정답은 하갈이었고, 세계인구의 사분의 일을 죽인 사람을 물어 보았는데 정답이 가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구가 아담 하와 가인 아벨 네명밖에 없었기에 가인이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을 죽인셈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퀴즈는 “아담과 하와에게 없는것은?” 이라는 퀴즈 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손,발,눈,코,귀등 다 있는데 아담과 하와가 없는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고 물었는데 어떤분은 머리카락이 없었다고도 하고 어떤분은 배가 없었다고도 대답을 했는데 박천엽집사님은 “중요한거요!”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요한건 있었습니다! 중요한게 있었기에 아담과 하와가 가인도 낳고 아벨도 낳았지요!”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답은 배꼽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흙으로 직접 빚으셨기에 탯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꼽도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건 넌센스 퀴즈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배꼽을 만드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재미있는 성경 넌센스 퀴즈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찬양 시간에는 새 복음성가를 배우고 누구든지 먼저 부르는 분에게는 상을 준다고 했는데 지정심집사님이 손을 제일먼저 들어서 제일먼저 부른 맨 앞줄의 지정심집사님과 정봉임집사님과 정금순집사님이 상금을 만원씩 받았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찬양과 기도와 레크레이션을 통해서 친목도 도모하고 열심히 기도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요 기도회에 다 나오셔서 성도의 교제와 기도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곧 “Christian” 이라는 말은 두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크리스트“Christ”와 이안“ian”이 합쳐진 말입니다.
“Christ”는 “그리스도” “구세주” 예수님을 뜻하는 단어 입니다. 이안“ian”은 “무엇에 속해 있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Christian”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즉 “예수님에게 속한사람” 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믿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부처에게 속해 있거나 우상에게 속해 있거나 조상숭배제사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만든 말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붙여준 별칭이요 별명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날때에는 그 말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에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의 고귀함과 존경스러움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사람! 그리스도인이야!” 라고 하면 “아! 저사람! 믿을만한 사람이야! 훌륭한 사람이야!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 하면 세상에서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존귀한 이름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여자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라는 표시로 십자가 형상의 목걸이를 걸고 다니기도 하고 귀걸이도 십자가를 사용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표시 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내 자신이 작은예수로 살아야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형상을 발견해야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살았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었습니까? 첫째로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종교적인 편견을 깨뜨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하반에 보면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했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신아생활을 하다가 핍박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여러곳에서 전도를 했는데 그 사람들은 유대인에게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파 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는 선민사상이라는 우월감과 교만함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고 이방인은 멸망당해야 한다는 종교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문이 열린 유대인들이 이 편견을 깨뜨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받고 마음문이 열린 유대인들이 비로소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처음에 그들은 이방인을 개취급하고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들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던 감정을 다 털어내고 자기들을 핍박하고 미워했던 헬라인들 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편협한 민족주의와, 지역주의, 그리고 혈연주의와, 당파주의등 종교적 편견을 벗어나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함으로써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게된 것입니다.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1994년 12월 8일에 “만연한 원년의 풋볼”이라는 책을써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받았습니다. 그는 본래 사르트르의 소설에 심취했고 전후파 작가로서 전쟁 체험과 그 후유증을 소재로 날카롭게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비판의 명수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장애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장애자 아들을 낳아서 키우는 동안에 그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비판만 하던 그가 인간적이고 서정적인 글과 더불어 겸손한 자리에 낮아진 모습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받는 자리에서 이런 수상소감을 피력 했습니다. “나는 일찍이 문학계의 명성을 얻었던 문학평론가였습니다. 그런데 나의 삶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가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 “히카리”라는 정신박약아가 태어난 것입니다. 나는 어째서,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 하면서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은 것은 그 정신박약아 아들이 나의 문학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정박아 아들을 통해서 생명의 신비로움과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소중한 아들, 히카리는 오늘 나로 하여금 이 자리에 나를 있게 만든 문학의 스승입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비로소 자기가 당한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바뀌고 편견이 바뀌고 마음을 넓히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디옥교회의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구원하려고 노력했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안디옥교회의 교인들은 환란과 고난을 잘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당시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아서 도망온 사람들입니다. 집도없고 돈도 없고 하루 하루 살기가 힘든 그런 상황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공의회에서는 안디옥에 도망간 사람들까지 모조리 잡아 들이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람들을 이끌고 안디옥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런 환란과 고난 중에도 그들은 개의치 않고 복음 전하는 일과, 예배 드리는 일과, 성경을 가르치는 일과,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중에 환란중에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핍박하고 환경이 어렵게 해도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모든고난을 극복했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말가리다 라는 여자는 종종 재정난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그 지역은 흑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빈민가였기에 고아원 운영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연말에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아이들에게 성탄절 선물을 주고 싶은데 재정적으로 아무런 선물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말가리다여사는 원장이지만 직접 모금함을 들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연말분위기에 한창 들떠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열심히 모금을 했지만 생각보다 모금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다보니 술집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술집으로 들어가서 술취해서 떠드는 사람들에게 “연말을 맞아서 추위에 떨며 배고파하는 고아원 어린이들을 위해서 조금씩만 도와주세요” 하면서 도움을 요청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두사람만 동전을 넣고 다들 외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돌아서 나오려고 하는데 술을 마시던 한 사람이 무슨일로 화가났는지 자기가 마시던 맥주잔을 말가리다 원장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술마시는데 왜 재수없게 와서 방해하는거야?”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던진 맥주잔이 말가리다의 이마에 맞으면서 깨졌습니다. 이마에서는 피가흘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놀랬습니다. “이제 큰일 났구나? 신고를 하면 경찰이 오고 저사람은 잡혀 가겠구나!” 하고 다들 쳐다 보았습니다.
말가리다 원장은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서 피를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떨어져서 깨진 컵조각을 다 모아서 쓰레기통에 넣고 술을 마시던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분위기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추위에 떨면서 굶주린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모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폐를 끼쳤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하고는 돌아 섰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다들 놀랐습니다. 맥주잔에 맞아서 피를 흘린 그 여자가 그 남자와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고 경찰에 신고하고 한바탕 난리가 날줄 알았는데 이 여인이 너무나 조용하게 모든일을 처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다들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다가와서 모금함에 돈을 넣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맥주컵을 던진 사람도 술이 깼는지 그녀에게 다가와서 “미안합니다 내가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 하십시요!” 하더니 수표를 한 장 넣고 나가버렸습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모금함을 열어보니 그 수표에는 10만불 우리돈으로 일억원짜리 첵이, 수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 였는데 그날 돈 때문에 아내와 싸우고 홧김에 술을 마시러 그 자리에 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2억을 주고 다이아반지와 목걸이를 샀는데 도둑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술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녀가 모금함을 들고 자기 앞을 왔다 갔다 하는것을 보고 짜증이 나서 홧김에 자기도 모르게 맥주잔을 집어 던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겸손하게 행동하면서 미안하다고 하자 그는 곧 반성을 했고 고아들을 돕는일에 일억원을 기증한 것입니다. 그가 준 수표 뒤에는 “이 돈을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서 써주십시오 나도 한때는 힘든때가 있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날 말가리다가 맥주잔에 얻어맞고 피를 흘리면서 경찰을 부르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 했다면 아무것도 얻은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인 으로서 예수님을 생각 하면서 참고 인내 했기에 그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이와같이 고난도 조롱도 핍박도 잘 참고 이겼기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게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움을 받는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 이름 때문에 받는 핍박도 기뻐하고 그 이름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을 감사 했습니다.
한경직(韓景職)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에게는 남을 위해서 져야 하는 십자가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기에 져야 할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고통당하는 자, 가난한 자, 억압 받는 자, 탈선 한 자, 죽어가는 영혼을 가진자들을 위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를 잘 감당해 나가는 사람을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성도는 십자가를 축복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한경직목사님은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하시면서 십자가를 축복으로 여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미움과 증오와 복수심을 키워 갑니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아 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 고난을 통해서 성숙해지고 고난을 통해서 더 위대하게 쓰임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앞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극복해 나갑니다.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그렇게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 했기에 칭찬을 받게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이 함께 하셨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 21절에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마다 주님이 도와 주시고 그들이 기도하는 것마다 주님이 응답해 주시고 그들이 계획한 일마다 주님이 함께 하셨기에 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들은 정말 그리스도인들이야!”라는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전도하면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손대는 일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핍박과 환란 중에도 여전히 기뻐하고 감사하며, 예배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주께서 복을 더하시는 축복이 함께 하심으로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후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후에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후에 한 10년 동안은 믿음이 부족해서 혼란을 겪었습니다. 바울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일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충격을 받고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도대체 자기가 누구인가를 놓고 치열한 몸부림을 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후에 대단히 오랜 세월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만난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동안 은둔 생활을 하면서 지냈고 다시 고향 다소에 가서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새사람이 되는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나서 찾아오는 것이 정체성의 혼란입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문제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예수 믿은 다음에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 믿고 나서도 제사 문화를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술 문화를 거절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세상 사람들이 하도 기독교를 비방 하니까 기독교인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우리에게 큰 은혜의 말씀을 선사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배를 가진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진흙을 구워 만든 그릇을 말합니다. 한자로는 “도기”(陶器)라고 하고, 일본식 표기로는 “토기”(土器)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뚝배기나 옹기 그리고 항아리 같은 것이 질그릇입니다. 이 질그릇의 특징은 우선 값이 싸다는 것입니다. 재료가 흔한 진흙이기 때문에 비쌀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질그릇은 예로부터 서민들이 손쉽게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재료가 아주 쌉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도 질그릇처럼 값싼 존재입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해부학 교수인 “할리 멘센”교수는 인간의 육체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알아 냈습니다. 보통 사람의 인체는 체중의 65%가 산소이고, 18%가 수소이고, 10%가 탄소이고, 3%가 질소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칼슘이 2.25kg이고 인산염이 500g, 칼륨이 252g, 나트륨이 168g, 마그네슘이 28g, 철이 28g, 그리고 소량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현재 시가로 계산하면 겨우 10달러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사람을 분해해서 팔면 우리 돈으로 만원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 싸구려인생인 것입니다.
질그릇의 또 다른 특징은 약하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들고 있다가 떨어뜨리면 박살이 납니다. 뚝배기나 항아리는 돌멩이 한방에 속절없이 깨지고 맙니다.
로널드 레이건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대통령의 직분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 되었던 냉전을 종식시킨 장본인입니다. 역사의 큰 획을 그은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안되어서 알츠 하이머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도 기억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가운데 10년 동안 투병하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자녀들과 갈등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끝나고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끝내 자녀들과 화해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질병 때문에 한 순간에 인생에 금이 갔고 자식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것은 그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연약함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은 질그릇처럼 연약하기에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깨지고 맙니다. 질병 때문에 그 육체가 깨지는가 하면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 때문에 그 마음이 깨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대단한 것처럼 큰 소리를 칠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 연약함은 아무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렇게 값싸고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냥 질그릇이 아니라고 증거합니다.
그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보배를 가진것과 보배를 갖지 못한것의 차이 입니다.
그러면 그 보배가 무엇입니까? 바울사도는 고린도후서4장 6절 이하에서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보배” 입니다. 왜 예수님이 보배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어찌보면 질그릇처럼 한 없이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그 안에 보배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에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그리스도인 입니다.
나 자신은 지극히 연약하고 별볼일 없지만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장 8절 이하를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보면 네 가지 힘겨운 상황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우겨쌈입니다. 세상에서 심각할 정도로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서 몹시 괴로운 상황에 처한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답답한 일 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매우 난감한 상황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박해입니다. 혹독한 핍박을 받아서 견디기 힘든 상황을 말합니다. 그리고
넷째는 거꾸러뜨림입니다. 심히 비참한 처지에 던져진 상황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보배되신 예수님 때문에 성도는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믿은 사람이 어떤 환란과 시험에도 넘어지지 아니하는 이유가 마가복음 14장에도 소개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2절에 보면 “저희가 먹을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네 몸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아주 중요한 네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첫째는 “가지사”(take)입니다.
둘째는 “축복하시고”(bless)입니다.
셋째는 “떼어”(break)입니다.
넷째는 “주신다”(give)라는 동사입니다.
헨리 나우웬박사는 이 네개의 동사안에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고 증거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속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가지사” “take!”입니다. 많은 떡 가운데 예수님의 성찬상의 떡으로 선택된 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찬상의 떡은 주님의 몸으로 선택된 떡입니다. 이 떡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떡입니다. 떡이지만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예수 믿은 사람은 주님의 형제로 주님의 가족으로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 믿은 사람은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형제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천국에 가서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축복하시고” “bless!”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고생하고 저주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해 주시는데 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떼다”“break!”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 입니다. 자기를 주고 자기를 드리고 자기를 깨뜨리고 심지어 자기를 죽는데 내어 주기도 합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순교하기도 하고 선교 하다가 죽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드릴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의 옥합처럼 깨어져서 향기를 내고 깨어져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내 시간을 깨어서 드리고 물질도 깨어서 드리고 내 몸과 마음을 드림으로 비로소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주신다” “give!”입니다. 생명을 받은 자는 생명을 나누어 주면서 살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는 그 구원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 갑니다. 사랑받은 자는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 갑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성찬의 마지막 목적은 나도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째가 되던 1948년 9월달에 뉴욕에서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특급열차 속에 “이누가이 미찌꼬”라는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몬로비아에 있는 폐결핵 요양소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폐병이 심해서 축 늘어져 있는 그녀에게 검표원이 “어디까지 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가 기차표를 보여 주면서 “몬로비아 결핵병원에 갑니다”라고 대답하자 승무원은 난감해 했습니다. 몬로비아 역은 아주 작아서 특급열차가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찌꼬양 역시 그 사실을 알고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몬로비아가 얼마 남지 않았을때 열차 안의 확성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승객 여러분, 이 열차 안에는 몬로비아 병원을 찾아가는 한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특급열차라서 몬로비아 역에 서지 않지만, 몸이 아픈 그녀를 위해서 철도청 본부로부터 몬로비아역에 임시 정차할 것을 허락을 받았습니다.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불편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승객들은 모두다 박수를 치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 놀라운 호의에 감동받은 일본인 여학생은 너무나 감사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몬로비아 역에 내렸더니 몬로비아 역에는 역장과 더불어 구급차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여대생 미찌꼬양에게 승객들이 다들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빨리 나아야 돼요.”
이 일본인 여대생은 미국인들의 배려와 사랑에 감복 했습니다. “미국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라더니! 그 의미가 바로 이것 이었구나!” 그녀는 보잘것 없는 자기에게 그것도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나라 사람인 자기에게 이렇게 놀라운 애정과 친절로 자기를 대해준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 사람들을 보면서 크게 감동을 받고 자기도 미국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결핵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은후에 그녀는 유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 예수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를 위해 주는 사람들과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살아갑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선대할 때는 우리도 예절을 가지고 선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하게 대할 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 하면서 참고 인내하고 희생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고 거기서 우리가 짓지 아니한 아름다운집과 우리가 쌓아두지 아니한 보물들과 우리가 심지 아니한 생명의 실과들을 먹으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편견의 장벽을 넘어서고 고난을 극복하고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과 칭찬을 받은 것처럼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 갈수록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강렬해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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