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날 박해순성도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박해순성도님은 지난달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날 새벽예배에 나오셔서 축복기도를 받으시고 금요일 저녁에 평안히 돌아 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일하시는 박용하집사님이 염을 하는 일을 하시는데 “과연 예수믿고 돌아가신 분이라 다르다고” 하시면서 예수믿은 분들은 얼굴이 평안하고 잠자는것 같이 세상을 떠나신다고 하시면서 모든 유족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까지 하셨습니다.
작년 11월13일날 이윤보성도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나창희집사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화방동산에 계시던 이윤보성도님이 남해병원으로 이송하셨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임종예배를 드리는데 예배가 끝나자 눈을 감으셨고 임종기도가 끝나자 얼마후에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어제 박해순성도님의 입관예배를 마치고 상주들과 모든 성도들이 입관한 박해순성도님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 얼굴이 얼마나 평안한지 정말 죽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평안한 얼굴로 누워 계셨습니다.
영안실에서 일하시는 박용하집사님은 남해의 유명한 깡패였다고 합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믿고 큰 변화가 있어서 그후로 수 십년동안 장례식장에서 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을 교회식으로 할지 일반식으로 제삿상을 차릴지를 두고 형제들이 갈등이 있었는데 박용하집사님이 큰 형들에게 "어머니가 예수믿고 돌아 가셨는데 무슨 제삿상을 차리냐고 하면서 야단을 치는 바람에 결국 기독교장으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서 후새를 예비하여 다윗을 도운 것처럼 박용하집사님을 그곳에 두셔서 장례식도 기독교식으로 치르고 그리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들을수 있도록 배려 해 주셨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제 오후에 입관예배에 동참해 주시고 오늘 이른아침에도 발인예배에 동참해 주신 권사님들과 집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예배가 끝나고 화장장에서 마지막 안치예배가 있습니다. 예배후에 부지런히 준비하고 화장장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쁜 소식도 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어서 일년 칠개월동안 붙잡혀 있었던 정두애권사님 큰 아들 김형언집사님이 지금 풀려나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습니다. 어젯밤 9시 30분경에 허주 목사님이 전화를 해서 김목사! TV에 정두애권사님 아들 김형언집사님이 풀려나서 돌아온다는 뉴스가 났어!" 하면서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권옥란권사님도 그 소식을 듣고 반가와서 사모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때 저희는 한 집을 심방하고 있어서 전화를 못받았는데 전화를 안받으니까 권옥란권사님이 김막순권사님에게 전화를 하고 거기도 안받으니까 다시 정두애권사님과 윤옥희권사님에게 전화를 하고 동네 방네 전화를 해서 기쁜 소실을 전해 주려고 애를 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영순집사님은 오늘 아침에 장례식장에 가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감사해서 대성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식을 멀리 보내놓고 안타까와할 정두애권사님을 생각 하면서 눈물로 기도를 했는데 돌아 온다니까 너무나 기뻐서 대성 통곡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새벽마다 수요일마다 금요 기도회때마다 합심해서 통성으로 김형언집사님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 왔습니다. 상황으로 볼때는 우리 한국에 잡혀있는 해적들을 돌려 보내 달라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줄수가 없어서 돌아 오기가 더 어려워 졌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프리데릭 웨이글(C. F. Weigele)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871년도에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가 열두살 때 어머니를 따라서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기로 결심하고 신학을 공부한 후에 순회 전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찬송하고 설교하는 일에 전심 했습니다.
그런데 웨이글의 아내는 남편이 늘 집을 비우고 전도사역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어느날 순회전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웨이글은 아내와 딸이 집을 나간것을 알고 크게 낙담하여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는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 번민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다했는데 돌아온건 외로움과 공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가 바닷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었는데 내가 네 앞날도 지켜주지 않겠느냐?” 마치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칼을들어 이삭을 죽이려 할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고 돌보아 왔는데 내가 네 앞날도 지켜주지 않겠느냐?”라는 음성을 들은 웨이글은 깜짝 놀래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자살하려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한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즉시로 찬송을 작사 작곡 했습니다. 그 찬송이 바로 359장입니다.
한번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이 세상사는 동안에 주 이름 전파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이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사랑안에 살면서 딴길로 가지 맙시다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사랑안에 살면서 딴길로 가지 맙시다
”
그 후로 웨이글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고 미국에서 유명한 순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절망스러운 일이 생길때가 있습니다. “죽어버려야 겠다” 라고 생각할 만큼 괴로운때도 있습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면 인생이 달라 집니다.
신명기 30장 15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아침에 장례식장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향락과 돈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 갑니다.
사람이 생명과 복의 길을 가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만이 생명과 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통일을 위하여,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아름다운 우정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살아 갑니다.
그러나 가장 차원이 높은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입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가 사랑하고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바울사도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인생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돈이나 재능, 인기, 권력은 사는 것을 돕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런것들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위해 살면 수전노에 자린고비가 되기 쉽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면 독재자가 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2만명의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중국에서, 러시아에서, 선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중앙아시아에서, 선교사 신분이 탄로 나면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회교권에서, 영적으로 삭막한 일본에서, 선교사에 대한 배척이 심해지는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오지에서, 여러 곳에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조앤 크로크 (Joan B. Kroc) 여사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8천만 달러를 구세군에 기부하였습니다. 약 1,000억원을 기부한 것입니다. 구세군 133년 역사상 최대의 기부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레이 크로크도 살아 생전에 엄청난 기부를 했느데 그녀는 남편이 죽은후에 더 많은 돈을 기부를 했습니다. 이 두 부부가 바로 맥도날드의 사장입니다.
현재 맥도날드(Mcdonald's)는 세계 111개국 2만3,000개 체인에서 연 330억달러의 매출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오직 청지기 정신으로 사업을 했습니다. 열심히 벌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천문학적인 돈을 흔쾌히 기부 했습니다. 레이 크로크와 조앤 크로크의 청지기 정신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누리는 건강도, 지식도, 지혜도, 능력도, 부함도 사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맡았을 뿐입니다.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나눌수가 있고 줄수가 있고 베풀수가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말라위 공화국에는 리빙스턴선교사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기념관에는 리빙스턴의 평소 가훈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리라”
목숨도 내 것이 아니요 시간이나 물질 또한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증거 합니다.
평안북도 선천의 가물남 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성주(李聖柱) 목사님은 공산주의를 앞장서서 반대하다가 붙잡혀서 아오지탄광으로 끌려 가서 죽도록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에 이성주목사님은 워낙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던 분이라 공산당 간부들이 이성주목사만 돌이키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의 수하에 들어올것을 알고 이성주목사님을 회유 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공산당 고위 간부가 목사님을 불러서 이런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일을 해보니까 어떻소? 당신은 바보요. 그까짓 목사 짓을 해서 무슨 소망이 있겠소? 그러지 말고 우리와 손잡고 공산주의를 해 봅시다 다 잘되자고 하는일 아니겠소 목사님이 우리를 도와주면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리다”
그러자 이성주목사님은 “내 소망은 점점 커지는 나팔통과 같습니다. 나팔 통은 처음에는 가늘지만 갈수록 굵어지고 넓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내 소망은 갈수록 커지고 종국에 천국에서 그 영광이 극에 달합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소망이 없습니다. 당신들의 소망은 거름통과 같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패하고 추해질 것입니다 내 말은 진리입니다. 당신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신도 영광중에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될겁니다”
이성주목사님은 공산당 간부 앞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담대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산당 간부는 화가나서 총살을 명령했고 이성주목사님은 순교 했습니다. 목사님은 환난을 끝까지 참고 인내 하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이 왜 없겠습니까? 때론 가족과 사별하기도하고 사업에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환난 중에 참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중에 살아가는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미국의 교회학교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는 헌금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헌금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교사가 아이를 불러서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집이 너무 가난해서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기도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드려요” 라고 합니다. 그 말에 감동한 교사는 아이를 격려하면서 그 아이에게 돈을 50달러를 주면서 이 돈을 바꾸이서 매 주일마다 1달러씩 헌금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아이는 헌금시간에 눈을 감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이 지나자 다시 소년이 눈을 감고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선생님!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꾸어서 매주일 일달러씩 헌금을 했는데 돈이 있으니까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헌금으로 사 먹으면 죄를 짓는 것이기에 그럴수는 없고 해서 고민하다가 지난 주일날 나머지 돈을 몽땅 하나님께 바쳤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다시 예전처럼 헌금시간에 나를 바치겠다는 기도를 하기로 했어요”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면서 헌신 하겠다고 다짐하고 기도하던 이 소년이 바로 1884년 부활절에 한국에 온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rant) 선교사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어렸을때부터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겠다는 믿음과 다짐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를 구원하는데 크게 일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12장 17절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흔적은 전에 한번 소개 했는데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소나 양에게 찍는 불도장 낙인(烙印)을 의미합니다. 당시 노예나 포로에게도 이 불도장을 찍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소유를 나타내는 흔적인 스티그마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예수를 편하게 믿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손해 안 보고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손해 보고 힘든 일더 감수해야 합니다. 희생과 섬김이 요구 됩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위해서 살다가 당한 무수한 고난이 자기에게 주신 예수님의 흔적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우는 손양원(孫良源) 목사님은 여수 애양원에서 나병 환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과 교회학교 아이들도 그곳을 방문 해서 잘 압니다. 옛날에 정상인이 애양원에 들어 가려면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소독한 장갑을 끼고, 발에는 장화를 신었습니다.
그러나 손양원목사님은 아무것도 안쓰고 안끼고 맨손으로 나병환자를 만지고 그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환자들이 놀라며 경계의 눈빛으로 손목사님을 대했습니다. 피를 나눈 부모 형제도 나를 꺼려해서 쫓아내고 백년해로를 약속한 아내도, 남편도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나를 버렸고, 자식도 더럽다고 나를 쫒아냈는데,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기에 우리를 가까이하면서 섬기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문둥병환자들이 비로소 손목사님의 진실한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문둥병환자들이 손양원 목사님을 거절하면서 도망쳤습니다. “목사님, 가까이 오지 마세요. 목사님도 문둥병에 걸립니다. 그냥 멀리서 기도해주세요.”
그런 문둥병자들을 보면서 손양원 목사님은 “차라리 내가 문둥병에 걸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가까이 오지 말라고 뒷걸음치면서 도망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나도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함께 마음을 나눌수 있을텐데” 라고 고백하면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문둥병에 걸리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닳은 분이기에 그런 사랑을 줄수가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오랜 세월동안 로마에 의해서 엄청난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AD 312년에 기적이 벌어집니다. 콘스탄티누스 장군이 밀비안 브리지 전쟁터에서 놀라운 계시를 받게 됩니다.
전쟁을 앞둔 그는 태양 빛에 싸인 십자가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장군은 병사들의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게 한 후, 전쟁을 했는데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 전쟁의 승리로 콘스탄티누스 장군은 결국 로마의 황제가 되었고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이때부터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게 하고, 몰수된 교회의 재산과 토지를 되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들을 모아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할뿐 아니라 기독교를 새롭게 정립하려고 회의를 개최 했습니다. 그 회의가 바로 그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s of Nicaea)입니다.
기독교 최초의 세계적 회의인 니케아 종교회의에 모인 목회자의 숫자가 3백명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 참석한 지도자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불구자들 이었습니다. 한쪽눈이 뽑힌사람 양손이 잘린사람 두 다리가 잘린사람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사람들이 수도없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 하면서 주님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다가 눈이 뽑히고 팔 다리가 잘리고 온 몸에 흉터 자국이 가득했습니다.
이제 성찬식을 집례 하는 감독이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다가 온 몸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의 흔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했던 사랑의 흔적이요, 주 앞에서 칭찬받을 가장 영광스런 흔적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을 따랐기에 결국 우리가 오늘날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 증인들로서 그 고난의 흔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합시다" 라고 외쳤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기뻐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에서 영향력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 영광에만 동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려고 하지 않고 섬김만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것 때문에 세상에서 손해 본 흔적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 때문에 고통당한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바로 거룩한 흔적인 "스티그마"를 가진 흔적입니다. 그런 흔적을 가진 성도는 마지막 날에 주님이 그 흔적을 상급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몸과 마음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일거수 일투족이 작은 예수가 되어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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