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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2년11월21일 수요저녁 역대하20장1-23 행복한 사람들

그리운시냇가 2012. 11. 22. 09:41

지난 추수감사 주일에 이어서 감사에 대한 말씀을 좀더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중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방법은 기도와 찬송입니다. 지난주에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같혀서도 기도하고 찬송 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건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도 성경과 더불어 은혜스런 간증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장애인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헬렌 켈러가 정원에 나갔다 오기만 하면 자기의 감정을 점자로 표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정원에 나가면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숨을 들여 마시면서 “하나님 감사해요 너무나 좋아요! 나는 너무나 행복해요”라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어찌나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던지 옆에서 동행한 선생님이 방에 들어오면 점자로 “헬렌! 뭐가그렇게 행복해?” 하고 물었는데 헬렌 켈러는 “저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의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주님이 저를 위해서 만드신 거쟎아요” 라고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이소연양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가서야 비로소 지구에서 사는 행복을 깨닳은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도 특별한 일에는 감사하지만 늘상 자기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에는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맑은 공기와 청정한 물과 따사한 햇빛과 때가 되면 적절하게 변하는 사계절의 환경과 기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신자가 거의 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전에는 모든 성도님들이 먼거리에서 교회를 걸어 다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걸어서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차량을 운행해서 편하게 옵니다. 차를 타면 감사 하시는지요? 아무것도 아니것 같지만 그런것 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기적을 불러 옵니다.

 

역대상20장에 보면 상황으로 볼때 도저히 감사하거나 찬송할 형편이 아닌데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송함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건이 소개 됩니다.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통치할 때 전쟁이 벌어집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 세 나라 사람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함께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왕이 모든 백성들과 함께 합심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의 성령이 성전에서 수종들던 스가랴의 아들 야하시엘에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야하시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 내용이 역대하 20장 15절 이하에 나옵니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 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 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야하시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백성들에게 이렇게 호소 합니다. 20절에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호사밧왕은 “여호와와 선지자를 신뢰하라고” 선포 했습니다. 이 말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야하시엘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준행 하라는 말입니다.

 

선지자를 믿어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선지자가 전한 말을 믿어야 복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리고 담임목사를 신뢰해야 합니다. 담임목사를 신뢰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를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해야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담임목사를 신뢰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여호사밧왕이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형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수들이 엄청난 군대와 함께 다가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선포하기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사밧왕이 전쟁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전쟁준비를 합니다. 여호사밧 왕은 먼저 노래하는 자들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군대의 맨 앞에 내 세웠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데 맨 앞에 선 선봉장들이 창도 없고 칼도 없고 방패도 없고 무기라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본적도 없는 찬양대를 선봉에 세웠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볼때 전쟁을 치루려는 왕이나 지휘관이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왕은 찬양대를 앞세워서 전쟁터로 갑니다. 전쟁터로 가면서 그들이 무슨일을 합니까? 그 장면이 21절에 나옵니다.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풍전등화같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강하게 무장된 장군들과 낼쌘 군사들을 앞세워서 전쟁을 해도 이길까 말까 한데, 창칼이라고는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노래하는 자들을 뽑아서 성가대를 조직하고 그들을 군대의 맨 앞에 세워서 찬송을 하면서 전쟁터로 나가게 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찬양대가 군대 앞에서 행진하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송하면서 나아 갔더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 찬송을 들으시고 그 전쟁에 개입 하셨습니다.

 

22절로 23절에 보면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찬송을 받으신 하나님이 그들중에 역사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 나라가 연합해서 쳐들어 왔다가 서로 싸우기 시작 합니다. 먼저 암몬과 모압 군대가 동맹하여 함께 동행한 세일 산 거민들을 쳐서 죽였고 그 다음에는 다시 모압과 암몬 군대가 서로 싸워서 모든 군사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 주심으로 유다 백성들은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승리하게 됩니다.

 

24절과 25절에 보면 전쟁이 끝난 직후의 모습이 소개 됩니다.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고로 각기 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취하니라”

 

이 모든 기적은 첫째, 여호사밧이 기도했기 때문이고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고, 셋째, 성가대를 세워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렸더니 자기들끼리 싸움이 벌어져서 전쟁에서 승리 했습니다.

 

마치 바울사도와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 했더니 기적이 벌어진 것처럼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기도와 여호사밧이 세운 성가대의 찬송을 받으시고 유다 나라를 구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와 찬송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려울때 기도하고 낙심될때 찬송해야 합니다. 환란과 고난의 때에 더욱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 최고의 여성 토크쇼 진행자입니다. 그녀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 했습니다. 그녀는 아홉살 때 4촌 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녀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후에 그녀는 아픔과 상처속에서 인생이 망가 집니다

 

그녀는 사춘기에 방황하다가 14살에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얼마나 타락하고 방탕했는지 임신을 했는데 어떤남자의 아이 인지도 몰랐습니다. 그후에 그녀는 마약을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간 그녀가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 했습니다. 어렸을때 교회에 다녔던 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믿음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를 믿고 회복한 것중에 하나가 감사입니다. 비록 아픔과 상처 투성이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깨닳은 순간부터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감사하면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이 그녀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TV토크쇼 진행자가 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시마다 때마다 “우리 주변에는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매일 매일 기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라고 토크쇼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가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그녀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계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로 우뚝 섰습니다. 경제잡지 “포브스”에 의하면 몇 년전에 그녀의 재산이 14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조 5천억이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녀는 돈만 잘버는 것이 아니라 기부를 많이 하기로도 유명한 여인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녀가 감옥에서 예수믿고 회개한 후에 감사하면서 살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살았더니 하나님이 그녀에게 명예와 재물을 덤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쏟아부어 주십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참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때 책상에 앉아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뛰고 행복이 밀려와서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날때가 많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길을 걸을때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너무나 감사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땅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때, 주일날이면 홍광교회에서 고등부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시간마다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청년때에는 기도실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성령이 충만해져서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방학때는 기타하나 둘러메고 시골교회에 봉사가서 아이들 모아서 여름성경학교와 전도 봉사 하느라 방학을 다 보냈습니다. 시간만 나면 기도원에 가서 밤을 새면서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인생 전체를 보면 어려운일도 많았고 고난도 많았지만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항생 감사하며서 살았고 요즘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밤마다 밖에 나가서 달을 보고 별을 보고 하늘을 바라 보면서 내가 무엇이관대 이런 좋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좋은 성도들과 함꼐 동거 동락하게 되었을까를 생각 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무한감사를 드리곤 합니다. 

 

감사의 힘은 인생을 바꿉니다. 송정열씨는 1986년도에 막노동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팔을 절단했습니다. 아들이 팔이 절단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달려 왔습니다.

 

믿음이 좋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얘야! 너무 낙심 말아라 그래도 한쪽 팔이 있지 않니? 하나님은 너를 사랑 하신단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면 왜 내 팔이 잘려 나가게 했어요?”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우는 아들의 오른손을 잡고서 “얘야! 하나님은 너를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단다. 우리가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니 너무 낙심 말아라 비록 한쪽 팔을 잃었지만 그래도 한쪽 팔이 남아 있으니 감사해라 이 세상에는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그래도 살아있으니 감사하고 남은 한 팔과 두 다리가 있으니 힘을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아라” 라고 위로를 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 가셨고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생각하다가 드디어 마음을 돌이키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리고 새출발을 했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여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되면서부터 자기와 같은 장애인을 돕기 시작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울산 물댄동산교회의 송정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은 지금까지 20년동안 울산 장애인복지회를 맡아서 장애자들을 도우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송정열목사님의 사진을 11월 4일자 우리교회 카페의 “하영이가 돌을 맞이했습니다” 라는 제목의 사진 아랫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한번 들어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일이 벌어져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15절에 보면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감사할 때 축복이 임함으로 감사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것이 널려 있습니다. 옛날에 헬라 사람들은 비가오는 날이면 신에게 “콧구멍을 아래로 뚫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면서 다녔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도 콧구멍이 위로 뚫렸으면 빗물이 들어가서 다닐수가 없습니다.

 

눈이 뒤에 달렸으면 우리 모두가 뒤로 돌아 앉아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귀가 발에 달렸으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말하는 사람에게 발을 들고 꼬랑내 나는 발을 들이대야 합니다. 머리카락이 엉덩이에 달렸으면 밤낮으로 엉덩이를 빗어야 합니다. 장경동목사님이 종종 그런 비유를 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범사에 감사할것 밖에 없습니다.

 

덕유산 요양원에서 일하는 정인영권사님의 간증입니다. 50대 초반의 뇌졸중 환자 두 명이 입소를 했는데 두사람이 다 중풍 때문에 한 쪽 팔과 한쪽 다리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믿음좋은 요양 보호사가 있었는데 이분이 중풍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늘 밝게 웃으면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 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중풍병자는 그 요양보호사가 인사를 할때마다 “예!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도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라고 화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감사하긴 뭐가 감사 합니까? 이렇게 중풍 때문에 산속에 갇혀서 감옥같은 곳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하면서 원망불평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예!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도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중풍 환자는 굳어있는 한 쪽 팔이 움직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굳은 다리도 빠른 속도로 호전이 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일년후에 자기 힘으로 걸어 다니게 되었고 아주 건강이 좋아 졌습니다.

 

그러나 원망불평만 하던 그 환자는 시간이 지나자 아예 온몸이 전신마비가 되어서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선택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 집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감사는 기적을 불러옵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힘입니다. 감사는 인생을 아름답게 바꾸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36편 23절에 보면 “우리를 비천한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비천한데서” 라는 말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주신 것을 말합니다. 노예생활이 얼마나 비천합니까? 가장 밑바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비참한 형편에 놓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마귀에게 끌려 다니고, 판단을 잘못해서 인생이 망가지고, 선택을 잘못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죄를 지어서 수치와 망신과 고난을 당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병들어서 절망하고, 인생에 실패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배신 당하여 증오가 가득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수많은 비천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비천함에 처해 있었던 우리를 건져 주셨고, 일으켜 주셨고, 회복시켜 주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학교에 다녀본적이 없는 한 유대인 어머니가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이야기가 소개 됩니다. 그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세가지를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감사 였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두 번째는 절대로 원망하는 사람하고는 놀지도 말고 사귀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친구든 누구든 만났을 때에 어쩌고 어쩌고 하면서 원망하는 사람은 절대로 사귀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원망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원망불평은 반드시 전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친구를 멀리하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하는 사람과 사귀고 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만 사귀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철저하게 가르쳤더니 아이들이 다 훌륭한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죠라는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저주는 세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보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것은 그가 버림받은 심령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읽어도 소귀에 경읽기 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람이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화인 맞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기에 저주받은 사람이다.

 

세 번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다

 

우찌무라 간죠는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것 설교를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소귀에 경읽기처럼 듣고 흘려 버리는것 그리고 감사하지 않는것이 저주받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1장 4절에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 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노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 서신을 쓸때 바울사도는 차디찬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사도는 열악한 감옥안에서 감사가 넘쳤습니다.

 

바울사도는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쳤습니다. 이사람을 생각하니 이 일이 고맙고 저사람을 생각하니 저 일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을 기억하면서 감사한다는 서신을 써서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사람이 있습니까? 고맙고 감사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망스러운 사람이 많고 “왜 그런일을 해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냐고” 하면서 원망불평을 하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의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죠는 결론으로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무슨일이 벌어져도 감사 합니다. 부모님이 죽어도 감사하고 자식이 죽어도 감사합니다.

 

오정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교회에서 대학생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난후에 그 집사님의 집에가서 한번더 예배를 드리는데 그 대학생의 아버지 집사님이 이렇게 기도를 하더랍니다.

 

“내 아들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신앙 생활하다가 주님 품에 갔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내 마음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먼저 하늘나라로 간 제 아들을 생각 하면서 하늘나라를 향한 나의 소망이 더욱 강렬해 지게 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놀라운 감사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닳은 참 그리스도인에게서만 나오는 감사입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끌려간지 일년이 되어 가는사람일지라도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진짜 신앙인이라면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후배 목사님 중에 한 목사님은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늦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고모님이 놀러 오셨는데, 고모님이 어린 초등학생인 자기에게 “정수야 참 고맙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자기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정수야 네가 열심히 공부를 잘 해서 고맙다” “그리고 네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서 고맙다.” “건강하게 잘 크니 고맙다.”, “또 교회 잘 나가서 고맙다.”라고 하시면서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고모님이 “착하다”라고 하지 않고 “고맙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런데 그 말이 너무나 고맙고 가슴에 와 닿더랍니다. 그런데 그 고모님의 아들 딸들은 하나같이 내노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모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언제나 “고맙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자란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칭찬받고 하나님에게도 칭찬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오브리가도”는 “감사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무슨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틈만 나면 “오브리가도”를 외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땡큐”“감사합니다”입니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언제 어디서나 “땡큐”가 생활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을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한번 알아맞혀 보세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씨발”이라고 합니다.

 

씨발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쌍욕입니다. 설교시간에 이런말을 하면 안되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씨발은 “?할 놈”“?할 년”“?할 새끼”라는 말입니다. 앞에 놓인 수식어 “씹할”이 씨팔이 된 것입니다. 또 “씨팔”의 어감을 여리게 하면 “씨발”이 됩니다.

 

며칠전에 목욕을 갔는데 제 옆에서 목욕하는 두 남자가 한시간동안 대화를 하는데 씨발로 시작해서 씨발로 끝났습니다. 씨발이 안들어가면 대화가 안될정도 입니다. 말끝마다 씨발입니다.

 

씨발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주일날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아이들이 뒤에 앉아서 연상 "씨발**"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욕을 하지 말라고 해도 모든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욕을 상습적으로 사용 합니다. 

 

씨발은 우리 한국사람들의 언어생활에서 입말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쌍욕을 가장 많이 쓰니까 우리나라가 그 욕대로 되어서 음란천국에, 성범죄의 천국이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짜”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 많이 쓰는 말은 “솔직히”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욕을 제일 많이 하는데 욕은 저주입니다. 저주를 제일 많이하고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가짜가 많고 정직하지 못하고 불신이 많기에 “진짜 솔직히” 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평균 2만 6,000개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중에 상대방을 가장 즐겁고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언어도 역시 “감사합니다”입니다. 그 다음이 “사랑합니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노래는 부를 때까지는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는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는 사랑이 아니고, 감사하기 전 까지는 축복받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받은 은혜와 축복을 공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에는 강한힘이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다 아는 말이지만 스펄젼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밝은 천국을 주신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펄젼목사님은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은 마음이 병든 사람이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5장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이 원망불평 하지말고 감사하라고 하는데도 시종일관 입만열면 원망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믿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믿고 원망불평하려면 뭐하려 교회 다닙니까? 다른 교회로 가던지 교회를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해세광교회를 세운 이유는 그런 엉터리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다른 좋은 교회를 만들려고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어떤 사람은 입만열면 저주를 했습니다. "그사람 나에게 잘못 하더니 저주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집을 뺏기고 땅을 뺏기고 도망가서 안디옥교회를 세웠는데 그 성도들은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했고 자기가 가진 재산과 땅까지 다 팔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나중에는 예수 믿는다고 잡혀서 화형을 당하고 목짤려 처형을 당하는데도 찬송하면서 죽고 감사하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셔서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는 못할망정 늘 원망불평 하는 사람은 성도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안다니는게 낫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입만 열면 원망불평하는 사람은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똥입니다.

 

하나님은 원망불평하는 제자를 두신적이 없습니다. 무슨일이 벌어져도 감사하고 순종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제자가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제자입니다.

 

며칠전에 잠을 자는데 갑자기 사모가 자다말고 일어나서 엉엉 통곡을 하고 웁니다. 그래서 놀래서 무슨일이냐고 물었더니 대답도 안하고 계속 엉엉 웁니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사모가 진정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바닷가에 섰는데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오더랍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도망을 쳤는데 높은 산으로 도망을 쳐서 올라 가는데 길이 얼마나 협착하고 좁은지 발 하나 간신이 디딜만한 길로 낭떠러지가 보이는 좁은길로 올라가는데 죽도록 힘들게 올라가서 보니까 거기에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다들 예복을 입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예수님이 오시는데 자기만 예복을 안 입고 잠옷을 입고 있더랍니다.

 

우리가 배워서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실 때 예복을 입고있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고 서 있는데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빨리 예복을 입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그래서 보니까 옆에 예복이 있길래 얼른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을 입자마자 저 앞쪽에서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예복을 입은 사람들만 데리고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도 구원을 못받고 다 지옥불에 들어가더랍니다.

 

그래서 잠이 깼는데 깨어서 생각해 보니까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자기가 예복도 못입고 잠옷만 입고서 당황하고 안타까와 하는 모습을 보고서 충격을 받아서 목노아 울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님 뜻대로 살았기에 당당하게 구원을 받을줄 알았는데 예복도 간신히 입고 구원도 간신히 받아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미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처제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서로 놀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이서 주님 오실날이 가까왔나 보다고 이야가를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예복을 입은 사람만 천국잔치에 들어갈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예복이 바로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요한계시록 19장 7절은 증거 합니다. 성도의 옳은 행실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산 성도들입니다.

 

구약시대에 다윗은 무슨일이 벌어져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면서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보고 기뻐하시면서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감사를 가장 많이 고백한 사람은 바울사도입니다. 사도바울은 굶어도 감사, 핍박과 환란중에 매를 맞아도 감사, 감옥에 들어가도 감사, 죽어도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사도바울과 같은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오고오는 시대에 반드시 귀감이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 드렸지만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결혼한지 7년만에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녀는 과부가 된 후부터 84년동안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늘 기도하면서 살았다고 누가복음2장37절은 증거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3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했다”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20대 한창 나이에 남편을 잃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세상과 결별하고 주야로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만 소망하면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수님만 증거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녀를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나는 여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성도 였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기도하며 찬송하면서 살던 가난한 과부 였습니다. 그런데고 그녀가 늘 기도하면서 살고 감사하면서 살았더니 하나님이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남양리의 시골구석박지에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오늘 새벽에 제가 “80살이 넘었는데도 하나님의 성전에 오는것이 기쁘고 감사한 사람은 훌륭한 성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만나러 오는데 기쁨이 있는 성도는 소망이 있고 영혼이 살아있고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는데 기쁘지도 않고 부담만 있고 피곤하고 가기싫고 귀찮은 성도는 하나님도 그런 성도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귀찮아 하십니다. 그런 성도는 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식어지는것은 말세의 징조중에 하나입니다. 디모데후서3장1절 이하에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는데 그때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한다고” 증거 합니다.

 

종말이 되면 모두가 자기 위주로 살게 됩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내가 기분 나쁘면 하나님이고 목사고 뭐고 다 소용 없습니다. 그러니 목사 알기를 우습게 알고 “니까짓게 뭔데 나에게 명령하냐” 하면서 목사를 갖짢게 생각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하나님은 담임목사를 통해서 영적인 복과 물질적인 축복이 흘러 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담임목사를 우습게 알고 담임목사를 외면하고 멀리하는 사람은 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사랑이 식어진 성도와 그 마음에 교만함이 가득한 성도에게는 절대로 복이오질 않습니다.

 

전에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들이 자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하자원이나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한가지, 오직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혁명으로 쟁취하자”가 구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혁명으로 쟁취한 것이기에 감사가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모내기를 할 때에도 “모내기 혁명”이라고 써놓고 모내기를 한다고 합니다. 모내기가 어떻게 혁명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모내기도 싸워서 이겨야할 혁명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항상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게 쌈박질만 하는 자세로 사니까 감사가 있을수가 없습니다.

 

힘으로 빼앗은 것에 대해서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까? 쟁취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싸워서 쟁취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의를 내세우게 됩니다.

 

내가 쟁취했으니까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교만해 집니다. 내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감사가 없습니다. 율법적으로 비판하고 판단하면서 사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쟁취하고 소유하고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러나 올라간 순간에 또 다른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성취감이라는 기쁨이 있기도 하지만 성취된 그 순간부터 불안해 집니다. 성취한 것을 지속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살면 행복과 기쁨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오직 범사에 감사하는 삶만이 그 사람을 자유하게 하고 참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인생을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인생이 내 팔자요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운명론자들은 다 회의론자가 되고 그런 사상을 가진 민족과 나라는 소망이 없이 가난하게 살고 저주 속에서 망하는 것입니다.

 

 제가 청년때 듣고 큰 감명을 받은 예화가 있습니다. 독일의 한 여자가 혀에 생긴 설암(舌癌)으로 인해서 혀를 절단(切斷)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의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제 혀를 절단하면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혀를 절단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녀가 잠시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하더니 이렇게 고백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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