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잘 하고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세워 주실줄 믿습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는데 가장 큰 충격과 변화가 오는 때는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죽었을때” 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이 경우의 심경의 변화수치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에 심적인 변화와 충격수치를 계산했더니 이혼했을 때가 73 의 충격이었고,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 의 충격과 변화의 감정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때도 12 의 충격과 변화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크리스마스도 사람들의 마음에 생각 보다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절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매 년 크리스마스를 맞이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연말과 새해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때에 우리는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새로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는 절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2000년 전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역사의 분기점이 됩니다. 그래서 인류역사는 B.C와 A.D로 갈라지게 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성탄절의 키워드는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탄을 예언하면서 이사야7장14절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선포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입니다. 성탄은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기에 그리고 그 몸을 십자가에 대속하여 드리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인류 최고의 경사요 최고로 영광스러운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참된 위로와 소망을 주시려고 이땅에 오셨다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날은 정말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군중속의 고독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많고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서 상처와 고통을 않고 절망중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병든자와 가난한자와 상처받은자와 죄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참된 위로와 구원이 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과 같은 위로로서 사람들을 감동시킨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 였습니다. 필리핀보다 못사는 나라가 우리나라 였습니다. 당시에 박정희대통령은 나라와 민족을 부흥성장 시키려고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고 3차 경제개발 계획을 세워서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와서 차관을 해서 경제개발을 하려고 했지만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난해서 돈을 빌려주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차관을 한다해도 보증할 담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차관을 대신해서 담보로 보내게 된 것이 광부와 간호사였습니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번 봉급을 담보로 해서 차관을 빌리게 된 것입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건너간 광부가 7,968명이었고, 간호사가 만 2천명이 독일에 가서 생활을 했습니다.
특히 광부들은 지하 천 미터 이하의 막장으로 내려가서 석탄을 캤습니다. 지하 갱도는 섭씨 40도가 넘는 찜통더위가 계속 되었지만 광부들은 그 안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했습니다.
안전모를 쓰고 일을 했지만 천정에서 석탄과 돌이 떨어지면 얼굴과 몸통 팔등에 상처가 났는데 문제는 몸에 떨어진 석탄 가루가 살과 피부에 그대로 박히면서 그 자리가 곪기도 하고 아물기도 하면서 검은 석탄 가루가 피부속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른바 “광부 문신”이라고 합니다. 광부들이 목욕을 하면서 손이나 발 또는 몸에 박힌 석탄 가루를 일일이 파내고 타월로 빡빡 문질러도 얼굴과 몸에 밖힌 그 석탄가루가 지워지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부들의 얼굴과 피부에 밖힌 석탄이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검버섯처럼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이 외로운 이국땅에서 목숨을 담보로 탄광에서 일을해서 번 돈과 더불어 간호사들이 삼교대로 벌어서 고국으로 보낸 돈이 그 당시 우리나라 외화 수입의 1/3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배경에는 이와같이 깊은 탄광속에서 고생한 광부들과 더불어 자기 못하고 향수병과 싸우면서 병원에서 고생한 간호사분들의 눈물과 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낯선 나라에 가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하루종일 일만 하다가 인생을 보낸 그분들의 가슴은 시퍼렇게 피멍이 맺혔다고 기자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64년 12월달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식순에 따라서 애국가가 시작되자,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 밀려온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식장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단상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졌는데 박정희대통령이 당시에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난 때문에 이억만리 먼곳까지 와서 지하 천 미터 아래의 막장에 들어가서 일을하느라 새까맣게 변한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질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면서 못살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 후손들에게는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그날 박정희대통령의 목 메인 연설을 듣던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식장은 이내 목노아 우는 사람들 때문에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연설이 끝나고 식순이 다 끝난 후에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설움에 목이 멘 광부와 간호사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껴안아 주고 위로 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백성이 남의 나라에 가서 밑바닥 일을 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고 있을때, 그런 때에 대통령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함께 울어준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 할 나위 없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어도 참고 어려워도 참으면서 끝까지 꾿꾿하게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팔순 노인이 된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당시에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찾아와서 함께 울어주면서 위로한 그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군가가 내 곁에 와서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 준다면,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그저께 이진숙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쌀이 20키로가 있는데 그 쌀을 정봉칠씨에게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진숙집사님과 함께 정봉칠씨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정봉칠씨는 안 계시고 그분의 아내가 계셔서 쌀 20키로를 드리고 구제비 10만원을 드리고 왔습니다.
지난주에 건강도 안좋고 일이 있어서 교회도 못나온 이진숙집사님이 고난당한 이웃을 생각하고 쌀을 나누어 준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때에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는 소동이 일어 났습니다.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헤롯 왕에게 성경의 기록을 언급하며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구세주 메시야, 예수님이 탄생 하신다는 소식을 헤롯 왕이 알게 되었고 온 예루살렘 백성들도 알게 되었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알고서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 났습니다. 당시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 했습니다.
메시야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헤롯왕에게 가르쳐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영광의 메시야 구세주가 탄생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예수님을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밝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죽은 믿음의 소유자들 이었기에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동방 박사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을 별였던 예루살렘 사람들도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오직 동방 박사들과 양을 치던 목자들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 부류의 사람들만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성탄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목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소개 됩니다. 목자들은 들판에서 양을 지키다가 천사로부터 성탄의 기쁜소식을 듣게 됩니다.
성탄이 가까운 어느날 로마 황제가 천하 모든 만민은 모두다 호적을 등록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찾아가서 호적을 하느라 민족 대 이동이 일어 났습니다.
이스라엘도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서 나라가 어수선 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양치는 목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밤에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은 당시에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한밤중에 일을 했기에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밤새도록 성실하게 양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목자들에게 천사를 보내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비천한 목자들에게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들려 주셨다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은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영광을 보여주실 가능성이 적습니다.
누가 보던 안보던 깨어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오실것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충성되고 신실한 안나와 시므온같은 믿음의 사람들만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목자들은 그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예수님께 달려가서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던 제사장들이나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메시야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사람도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짓 믿음과 참 믿음은 반드시 가려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요 성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과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아울러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박사는 최고의 지식인들입니다. 똑똑하고 인품이 있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박사입니다. 생각이 깊고 학문에 통달한 사람들이 박사입니다.
예전에는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면 우러러 보고 존경심이 생겼는데 요즘은 가짜 박사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리고 박사가 너무 흔해서 박사라고 해도 별로 우러러 보지 않습니다. 박사 실업자도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5만명이 넘는 박사가 배출 되는데 그중에 70%가 실업자 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에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대단히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본래 하늘의 별을 연구하던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천문학자이면서 또 점성술사들입니다. 그들은 별들을 통해서 나라의 운명과 왕의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에 왕의 자문을 담당하는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굉장한 지식과 권력과 영향력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먼길을 찾아 왔습니다. 그 길은 험한 길이요 사막과 강과 짐승과 강도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러나 새로 태어날 왕을 만나고 그리고 그 왕께 경배하기 위해서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온 것입니다.
2000년 전 첫 성탄절에 가장 먼저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한 사람들이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성탄의 계시인 메시아별을 발견한 이유는 그들이 항상 하늘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나 깨나 하늘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종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하늘에서 그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 보면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재림 하실 때에 “하늘이 열린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실 때에는 하늘이 열리고,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들리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린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첫 성탄절에 하늘에서 메시아별이 나타나고, 천군천사들의 합창이 울러 퍼지면서 성탄의 계시가 하늘에서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이와 비슷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자나 깨나 하늘을 바로보고 살아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 데는 한달이 넘게 걸렸을 것이라고 성경 학자들은 증거 합니다. 낙타를 타고 아라비아사막을 가로질러, 광야를 지나서 산 넘고 물 건너 온것을 생각하면 그 수고는 정말 엄청난 수고입니다.
자기 나라의 왕이 탄생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먼 길을 걸어서 베들레헴까지 와서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다는 것은 보통열정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런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동방박사들은 첫 성탄절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들이 먼 길을 찾아온 이유가 2절에 나옵니다.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서, 예배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먼 길을 찾아 왔지만 그들을 반겨주거나, 알아주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잘왔다고 환영하거나 잘왔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만왕의 왕 메시야 구세주를 만나려는 열망 때문에 어떤 희생도 고난도 감수하면서 달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로부터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배는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예배와 경배는 생명을 바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예배하고 경배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망과 사모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잠언8장 17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오면 그런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와서 경배하는 자세에 따라서, 은혜를 받는 양과 질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사가 설교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은혜를 받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만나러 오느냐에 따라서 은혜의 양과 질이 결정 됩니다.
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을 듣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서, 교회에 오는사람도 있습니다. 모태신앙인들 중에는 주일날 예배 안드리고 놀러 가면, 사고 날까봐 마지 못해서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부적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예배당에 나오면 안됩니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예배당에 나와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나와야 복을 받습니다.
동방박사처럼 어떤 희생의 댓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기필코 하나님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야 주님이 만나 주십니다.
동방박사들은 별 하나만 바라보고, 무작정 먼 길을 왔습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무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나아 왔기에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먼길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에게 예수님이 계신곳을 누가 가르쳐 줍니까? 대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달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가져와서 읽어 주면서 메시야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면서 설교까지 했지만 그들의 설교는 아무런 감동도 없고, 은혜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인 신앙과 율법적인 신앙에 물들어서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해도 아무런 은혜도 없고 감동도 주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태어난다는” 인류 최고의 중대한 진리를 소개 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그리스도를 만나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를 듣는 내가 중요 합니다.
실제로 아무런 감동도 없고 행함도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진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가르쳐준 설교를 들은 동방박사들은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서 결국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께 경배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르친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설교만 했지 하나님의 은혜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옥불에 들어가고 맙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설교자를 기대할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대하고 말씀을 기대해야 합니다.
설교를 잘하던 못하던, 어떤 목사가 설교하던, 설교를 판단하고 비판하면서 잘하니 못하니 따지는 사람은 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든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준행하면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언제 어느때에라도 설교를 들을때 그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사람은 그 한번의 설교를 통해서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릴때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그런 기대와 소망을 품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마지 못해서 예배당에 오는 사람은 복을 받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은 그 수고한 것 보다 만배로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
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라고 증거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먼 길을, 생명을 바쳐서 예수님을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보배합을 열어서 그들이 준비한 보물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예물은 황금과 유황과 몰약입니다.
황금은 예수님이 왕 되심을 표현하는 예물입니다.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예물입니다. 몰약은 사람을 장사지낼때 쓰는 예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닳았다면 희생과 섬김과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예배때는 반드시 희생제물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예배를 제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사를 드릴때는 양과 소를 죽여서 드림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릴때마다 양과 소를 가져와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서 1장 8절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 제물을 가져 오는데, 어떤 사람은 눈이 먼 짐승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고 절뚝거리거나 병든 것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제사제물을 드리는 것을 보시고 “내가 그런 엉터리 제물을 드리는 자들의 제사는 절대로 받지 않겠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지못해서 드리고 억지로 드리고 쓰다 남은것을 드리고 찌끄러기를 드리고 팔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능력이 없고, 감격과 기쁨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와 순결한 제물을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와 헌금에 감사와 감격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참된 예배는 영적 예배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릴때마다 마음과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순결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과, 은혜가 감사해서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장 귀한 예물은 나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드린 예물들은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돌보는데 귀하게 사용 되었습니다. 그 예물들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신해서, 헤롯이 죽기까지 오랜 세월동안의 생활비로 쓰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되고 예수님을 지키는데 사용되고 결국 세상을 살리는데 귀하게 사용 되었습니다.
지 지난주에 김안순집사님이 50인분 개스밥솥을 헌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다시 또 압력밥솥과 전자렌지를 헌물 하셨습니다. 김안순집사님과 허용식집사님은 그저 좋은 것만 생기면 무조건 교회로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정소례성도님이 추운 겨울에 방에 아무것도 없어서 국도 데어 드시지 못하시는 것을 보고서 어제 김안순집사님이 가져온 전자렌지를 정소례성도님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김안순집사님에게 전화로 상의를 했더니 전자렌지를 또 가져오면 된다고 드리라고 해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드리는 모든 헌금과 헌물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일에 쓰여지게 됩니다.
이어서 동방박사들이 훌륭한 또한가지는 그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
헤롯왕은 그들에게 경배를 마친후에 자기에게 와서 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갔으면 아마도 칭찬을 받았던지 포상금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 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왕의 말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십니까?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부어 주십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참된 예배는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성경을 보면, 순종할 때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굳게 닫힌 여리고 성도,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돌았을 때 무너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때 홍해바다가 갈라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요단강이 갈라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천국 문도열리고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더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순종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말씀이 어떤 때는 마음에 안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놀라운 축복이 주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 명령을 절대로 준행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순종했더니, 이삭도 돌려주시고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축복을 더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내 멋대로 믿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식으로 교회를 섬기고 내식으로 봉사하는 사람은 이사람 저사람과 부딪쳐서 시끄럽고 문제가 생깁니다.
예배중에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연결되어야 복이 옵니다. 한국 교회는 예배당도 많고 예배의 열기가 뜨거운 교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은혜도 받고 감동도 받는데, 예배 후에 순종이 없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 복이 옵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복된날에 우리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처럼 무관심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는 안됩니다. 헤롯처럼 남을 괴롭히는 크리스마스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동방박사들처럼,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나아오고 귀한 예물로 헌신하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남았습니다. 이번 주 중에 꼭 전도 대상자를 만나서 그들과 교제하고 선물도 주고 음식도 나누면서 그들을 성탄절 잔치에 초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드릴 최고의 선물은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그 헌신이 그 어떤 제물보다 헌물보다 귀한 헌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금번 성탄절에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님께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연말이 되면, 하나님의 일을 내려 놓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젠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습니다.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 나는 빼주세요!” 하면서 하던일을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사내 아이를 잉태할 것이다” 라고 말했을때 마리아가 처음에는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잉태 합니까?” 라고 하면서 당황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닳은 후에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는 그 사명을 감당합니다.
마리아가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이유는 은혜를 깨닳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찾아온 천사가 한 첫 마디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라는 선포였습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까먹고 은혜가 떠나고 은혜를 망각하면 하던 봉사와 헌신을 포기하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축복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받은 은혜도 다 까먹고 습관적인 종교인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위기가 있다면 우리들의 가슴에 신앙의 열정이 식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정도 식어지고 주님을 향한 첫 사랑도 식어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자하는 열심도 식어버린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집니다.
나와, 내 가족들, 내 사업과, 내 직장 내가 짓는 농사나 내가 하고있는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남해 세광교회가 아직도 소망이 있는것은, 우리중에 주님의 심정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가 있다는 사실 입니다.
김막순권사님이 아무 말없이 한주동안 출타하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 했는데 알고 보니까 둘째 사위가 대장암 수술을 받게 되어서 출타 하셨다고 합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병세가 대단히 심각하고 다른데까지 전이가 된것 아닌가 하는 염려를 했는데 수술을 하고 보니까 아무 문제가 없어서 한시간도 못되어서 수술을 끝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 가정을 두루 돌아서 돌아온 김막순권사님이 어제 멀리 강원도 영주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진주로 진주에서 남해로 하루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오시는것을 알고 마중을 나갔습니다.
마침 그때 저희가 우리교회를 사랑하시는 진주 경상문구사의 옥해광장로님에게 유자청을 하나 갖다 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권사님이 진주를 통해서 남해로 오신다기에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김막순권사님을 모시고 경상문구사에 가서 옥해광장로님과 함께 잠시 인사를 나누고 그리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권사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그동안에 김막순권사님에게 큰 사건이 하나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막순권사님이 작년부터 면사무소에서 관리하는 길 청소 일을 다니셨습니다. 하영순집사님과 김연아집사님 그리고 정두애권사님까지 우리교회에서 네분이 길일을 다니셨습니다. 김막순권사님도 한달에 20만원을 벌기 위해서 여름에 그 뜨거운데 길 청소를 하시고 풀 베느라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정봉칠씨를 만났는데 하루는 정봉칠씨가 김막순권사님을 찾아와서 통사정을 하면서 “지금 급전이 필요한데 돈을 200만원만 빌려주면 아들이 돈을 갚아 줄테니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하더랍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정봉칠씨는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엄청난 빚을 지고있고 집과 땅도 다 경매에 넘어가서 모든 재산이 다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사채까지 끌어다가 쓰는 바람에 더 이상 돈을 갚을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막순권사님이 이런 사정을 다 알면서도 정봉칠씨가 하도 사정을 하면서 꼭 갚겠다고 하니까 200만원을 빌려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주쯤 지나서 정봉칠씨가 다시 찾아와서 하는말이 돈이 급하니 한번만 더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서 이번에 돈이 안되면 죽어 버리려고 이불을 싸들고 차에 싣고 나왔다고 하면서 또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더랍니다.
권사님은 두주 후에 돈을 준다고 해서 돈을 갚으러 왔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와서 돈을 또 빌려 달라고 하니까 어기가 없기도 했지만 그때는 이미 돈을 다 빌려준터라 돈도 없어서 빌려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막순권사님이 처음에 200만원을 정봉칠씨에게 빌려 주면서 “이 돈은 못받는 돈이다!” 라고 생각하고 돈을 빌려 주셨다고 합니다. 한달에 20만원씩 200만원을 벌려면 일년을 죽도록 고생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그 돈을 정봉칠씨에게 주면서 “이 돈은 주면 못 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그냥 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도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참 훌륭하구나! 그래도 예수믿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구나!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소망이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 200만원을 빌려 달라고 그 많은 돈을 선뜻 빌려주겠습니까? 가족도 나몰라라 하고 형제들도 다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그런때에 김막순권사님은 일년간 죽도록 고생 고생해서 번 돈을 “이돈은 못받는 돈이다” 라고 생각하고 빌려 주셨으니, 이것은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함께 하시는 분이었기에 그런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 김막순권사님이 정봉칠씨를 선대한 것이 생각나서 “하나님! 김막순권사님과 그 자손들이 크게 복을 받게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간절히 소리높여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금번 성탄절에 사랑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시고 구원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동방박사처럼 열정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고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 하면서 귀한 예물을 드리고
그리고 첫 성탄절에 자기몸을 대속제물로 바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메시야되신 동방박사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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