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도에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취임한지 겨우 33일밖에 안되었는데 졸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는 일생을 경건하게 살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한 추기경 이었기에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이 앞으로 세계평화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교황 이었습니다.
그런데 취임한지 한달만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온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데 사택에서 요한 바오로1세 교황이 쓴 일기가 발견 되었습니다. 그 일기문이 세상에 공개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부자들이여,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직장이 있는 분들이여, 직장이 없는 무직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건강한 자들이여, 병든 자를 기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분들이여 슬퍼하고 있는 사람을 기억해 주십시오
나를 위해서만 사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당시에 이 일기문이 온 세계에 공개 되었을때 그 일기문에 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노벨 평화상 위원회” 였습니다.
당시에 노벨 평화위원회는 중동문제를 잘 해결해서 전쟁을 막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조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 하기로 거의 내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황이 죽으면서 남긴 그 일기문이 세상에 공개 되면서 노벨평화상 위원회 임원들의 마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검토하고 숙고한 결과, 당시에 인도의 빈민촌에서 일생을 헌신함으로써, 지미카터와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 대상자의 명단에 올라있던 테레사수녀가 다시 재론이 되었고, 결국 마지막 심사에서 지미카터 대통령이 유보되고, 인도의 빈민촌에서 평생을 헌신한 테레사수녀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젊었을때 수도원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면서 돌아가시는 그림을 바라보다가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녀는 인도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더 조건이 좋은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봉사를 했는데 어느날 그녀가 다시 전보 발령을 받고 기차를 타고 새로운 발령지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네가 나를 위해서 헌신 할 수 있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에게 들려온 그 음성에 순종해서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어디든지 가서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는 그길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인도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그녀는 인도의 빈민가에서, 빈민촌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불치병에 걸린 문둥병자들을 돌보면서 평생을 헌신 했습니다.
어느날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그녀에게 한 기자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만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암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아 주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가장 무서운 질병속에 있는 사람들 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오히려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그녀가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여인이 된 이유는 병든자 가난한자 소외된자를 위로하면서 사는일에 자기 인생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은 자기만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을 맞이 합니다. 그런데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탄절이 무슨 날입니까? 그것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질병에 지치고, 가난과 학대에 지치고, 죄에 지쳐서 도무지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참된 소망과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 주신 날이 성탄절 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전 700년 전에 이 놀라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메시야 구세주가 세상에 오실 것인데 그 구세주 메시야가 오시면 너희들에게 큰 위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선지자에게 “너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이사야서 40장 1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위로를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나이든 부모는 자식이 찾아오면 가장 큰 위로를 받습니다. 자식이 찾아 온다고 하면 힘이나고 용기가 나서 열심히 자식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힘들게 고생해서 굴을 까거나 시금치를 묶거나 농사를 지어서 돈이 생기면 위로를 받습니다. 농사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나이든 성도님들은 20키로 짜리 거름이나 비료 한푸대를 논밭에 나르려면 허리가 휘어 집니다.
그런데도 수십포 수백포의 퇴비를 논밭에 나르고 비닐을 나르고 모종을 나르고 비료까지 나르면서 고생 고생해서 돈을 벌면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봐야 그 돈이 다 주사맡고 병치레 하느라 병원으로 가지만 그래도 돈을 벌게되면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내 자식이나 손주가 잘되면 큰 위로를 받습니다. 금번에 이상천목사님 아버님이 돌아 가셔서 다녀 왔는데 거기서 허주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허주 목사님도 목회에 어려움이 많지만 그러나 금번에 둘째 아들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아들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 자동차회사에 취직을 해서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는데 둘째 아들도 500대 1의 경쟁을 뚫고 취직이 되어서 큰 위로를 받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빴던 건강이 회복 되면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 곁에 좋은 믿음의 동반자가 생기거나 마음을 나눌 좋은 친구가 생겨도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도 작은 위로가 있습니다. 투표를 했는데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당선되면 그런 일에도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세상의 위로는 시간이 가면 다 소멸되고 사라지게 됩니다. 자녀가 됐든, 돈이 됐든, 무엇이 됐든 간에, 세상적인 위로는 잠깐 동안만 있는 위로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참된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선지자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적 대망사상의 위로 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이 세상이 주는 잠깐 동안의 위로가 아니라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영생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 진다는 위로의 선포입니다.
고통과 슬픔만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된 행복을 주실 메시야 구세주가 이땅에 오신다는 놀라운 위로의 선포 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다는 소식은 전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잊지 못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설천교회에서 목회할때 교회학교 아이들끼리 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저에게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김 아무개가 꼴도 보기 싫어서 교회에 나오고 싶지 않아요! 그 아이는 늘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왕따를 시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가고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안가면 제가 지옥에 갈테니까 지옥에 가기 싫어서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제가 그 편지를 읽고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교회에 꼴도 보기 싫은 아이가 있는데도, 그 아이가 자기에게 늘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데도 교회에 안나가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기에, 천국은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야 겠기에, 그 아픔과 상처를 이기고 열심히 교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 기특해서 그 아이를 불러서 위로한 후에 “내가 너의 문제를 해결해 줄게!” 하고는 그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를 불러서 타이르고 권면해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이야기를 한 후에 만약에 너희가 사이좋게 지내면 목사님이 너희들에게 큰 선물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선물이 바로 서울구경 이었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면 청와대와 롯데월드 그리고 최전방 땅굴견학과 남산과 명동 그리고 시청앞 스케이트장 등 서울의 명소를 3박 4일 일정으로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두 아이가 곧 화해를 했고 서로 사이가 좋아 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속대로 3박 4일의 서울구경을 시켜 주기로 했습니다. 편지를 쓴 아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 했기에 큰 위로를 받고 서울구경을 하는 행복도 누릴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까지 덤으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교회학교 아이들이 45명 이었습니다. 45명을 데리고 3박 4일의 서울구경을 계획 했더니 경비가 300만원이 넘는 경비가 예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교회에서는 그런 교회학교 행사를 위한 예산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3학년 이상으로 대상을 정하고 스물 세명만 데리고 가기로 하고 나머지 1,2학년과 유치부 아이들은 서울구경을 다녀온 후에 부곡 하와이 온천 수영장과 눈 썰매장에 데려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12월 보너스와 사례비를 다 털어서 서울여행 경비를 충당해도 경비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타고 다니던 엑센트 승용차를 벼룩시장에 내 놓았습니다. 엑센트 승용차를 팔면 200만원은 받겠다 싶어서 승용차를 팔아서 경비를 보태려고 진주 벼룩시장에 차를 내 놓았습니다.
그렇게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하루는 친구 이상천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우리 아이들을 서울구경을 시켜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경비가 모자라서 승용차를 팔아서 보태려고 차를 내 놓았다고 했더니 친구인 이상천목사님이 “그래? 아이구 참 대단한 일을 하는구나!” 하더니 전화를 끊었습니다 .
그런데 그 다음날 밤 10시경에 이상천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서울구경 한다는 말을 듣고 도와 주려고 오늘 수요예배 끝난후에 우리 장로님들과 당회를 했어! “시골교회 목사님이 차를 팔아서 아이들 서울구경 시켜 준다는데 우리가 좀 도와 줍시다! 하고 안건을 냈더니 장로님들도 다 흔쾌히 동의 하셔서 김목사 교회 아이들 서울구경을 돕기로 했어! 그러니 경비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올라와!” 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천목사님이 도와 주겠다고 하는데도 스물세명 밖에는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청와대에 들어가려면 두달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한달 전에는 이미 명단이 확정되어야 하는데 스물 세명만 신청을 해 놓았기에 스물 세명만 서울구경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스물 세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더니 이상천목사님이 대형 버스를 준비해 놓고 서울 남부 터미널에 마중을 나와서 우리를 데리고 3박 4일동안 서울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이상천목사님이 당회에서 결정 하기를 크리스마스 성탄헌금 전액을 김다윗목사님 교회의 아이들 서울구경 하는데 도와 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3박 4일동안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청와대도 들어가서 대통령 국빈 접대실도 구경하고 최전방 땅굴도 견학하고 남산도 구경하고 6.3빌딩의 수족관도 보고 그리고 롯데월드에 가서 하루종일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겁게 놀고 밤에는 시청앞 광장에 가서 스케이트도 타면서 원없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행중에 아이들이 장로님과 권사님들 댁에서 홈 스테이를 했는데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아이들의 옷을 사주시고 운동화 학용품 양말 책등 얼마나 많은 선물을 사 주셨는지 아이들이 돌아올 때 에는 선물을 한보따리씩 들고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못간 3학년 이하의 아이들은 제가 돌아와서 부곡 하와이 온천 수영장에 데리고 가서 실내 수영장에서 놀고 눈썰매장에서 썰매를 타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에 이상천목사님이 저에게 “김목사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골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감동 하셔서 이렇게 좋은일이 있는거야!”하면서 위로를 하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나왔습니다.
주님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속상한 일이 생겨도 가르쳐 준 그대로 순수하게 믿습니다. “예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이 기뻐 하지 않으시고 천국에도 못들어 간다” 라고 가르치면 그대로 순종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교회에서 좀 섭섭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냉정하게 교회를 떠납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이사를 가던지 직장일로 옮기는 것을 어쩔수 없지만 마음에 안든다고 쉽게 교회를 옮기는 것은 좋은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중에 가장 큰 축복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어떤 죄를 지었던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 용서 해 주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감싸 주셨습니다. 주님은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첫 성탄절에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서를 모릅니다. 계속 과거를 물고 늘어지면서 과거를 캐고 과거를 비판하면서 마귀가 좋아하는 정죄에 빠져서 악을 행합니다. 정치가들이 잘하는 일이 바로 수십년전에 다 지나간 일들을 들춰내서 비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캐고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마귀가 하는 전형적인 일입니다. 반대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덮고 소망을 주는 일은 전적으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헤밍웨이의 단편 중에 이런 스토리가 있습니다. 스페인에 어느 갑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와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인생관이 맞지않고 세대차이로 인해서 계속 갈등이 일어 납니다. 아버지의 시각으로 볼 때 그 아들이 하는 일이 아주 못마땅 합니다.
아들 아이가 머리를 빨갛게 물을 들여서 폭탄 터진것 처럼 하고 다니고, 바지는 찢어서 너덜너덜하게 입고 다니고, 무릎팍과 볼기에는 구멍을 뻥뻥 뚫어서 거지처럼 하고 다니고, 귀에는 귀걸이 코에는 코걸이, 그리고 밤낮 헤드폰을 귀에 끼고 손을 흔들면서 “헤이 맴! 나는 네가 좋아 네가 좋아! 미치도록 네가좋아! 어디한번 흔들어봐!” 하면서 날나리처럼 하고 다닙니다.
아버지가 볼 때 참 기가 막힙니다. 아니 재벌 아들놈이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거지처럼, 날나리처럼 하고 다니는지 정말 보면 볼수록 화가나고 기가 차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아들이 하고 다니는 행동을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가고 사람같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부자지간에 충돌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가 화가나서 아들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야이 자식아 나가! 더 이상 내집에 들어오지마!”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집을 나갑니다. 그렇게 집을 나간 아들은 시간이 갈수록 길거리에서 거지처럼 살면서 방황을 합니다. 그런데 아들을 내 보낸 후에 오랜 시간이 흘러가자 죽을날이 다가오는 아버지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아들놈이 하도 되바라지고 꼴갖지 않아서 화가나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러나 아들을 내보낸 아버지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들 생각에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인생을 정리하고 재산도 물려 주어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집을 나가고 없으니 아버지가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생각다 못해 마침내 아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냈습니다.
“내 아들 파코야 내가 너를 용서한다 12월 25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 아버지가 너를 다 용서했다 부디 돌아만 와 다오! 아버지가!”
이제 아버지가 정한 시간에 몬타나 호텔로 갑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놀랍게도 무려 700명이나 되는 스페인의 젊은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스페인에는 “파코”라는 이름이 아주 흔한 이름이라서 집을나간 아들들중에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중에 자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상봉을 하고 화해를 한 후에 새로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빠는 너를 용서했다!” 여기에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청바지에 구멍을 뚫어서 거지처럼 입고 다녔건, 머리를 빨갛게 물을 들여 폭탄터진 것처럼 하고 다녔던, 그런것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용서 했기에 지나간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그저 다 용서한다! 사랑으로 너를 용서한다” 이게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입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있어도 상관없고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던지 돌아 오기만 하면 다 받아주고 용서하고 지옥에서 건져내서 천국에 가게 하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알고 죄를 지었던, 모르고 죄를 지었던, 무슨 죄를 지었던지 하나님은 다 용서 해 주십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다는 그 소식을 듣는것이 복음이요 그 예수님을 믿는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에 그 파코라는 아들이 아버지가 낸 신문 광고를 보고서 “웃기네! 용서는 무슨 얼어죽을 용서? 아버지가 나를 보면 또 다시 나를 구박하고 미워할걸?” 하면서 그 광고를 무시해 버렸다면 파코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수도 없고 또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비록 잘못 했지만 돌아 오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돌아오면 큰 복을 받게 됩니다. 바로 이런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지는 날이 크리스마스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깨닫는 날입니다.
제가 설천교회에 있을때 아이들 서울여행 행사를 준행 하면서 다음에는 나이든 분들을 모시고 경로여행을 한번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모시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울진의 백암온천에 가서 온천을 하고 그리고 설악산에 가서 권금성에서 케이블카도 타고 그리고 평택의 성막성전을 관람하는 여행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믿었더니 우리가 이렇게 복을 받는구나” 라고 할 정도로 행복한 마음을 가질수 있도록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교회가 갈라지는 바람에 성막성전은 다녀 왔는데 온천에 가는 계획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기회가 되면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나라는 여인이 첫 성탄절을 맞이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사실 성탄절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로 보내는 날도 없습니다.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을 명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상가나 음식점이나 모두들 크리스마스 츄리를 만들고 캐롤을 부릅니다. 집과 거리에는 울긋, 불굿한 조명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성탄의 의미도 잘 모른채 즐거워 합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 하니까 따라서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어느 기독교 단체에서 사람들이 성탄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조사 했습니다. 그랬더니 세상 모든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것은 동그란 원이 다섯 개가 연결되어 있는 올림픽 마크였고 2위가 맥도날드였고 3위가 코카콜라였고 4위가 도요타, 5위가 메르세데스 벤츠, 6위가 애플 컴퓨터, 7위가 마이크로 소프트, 8위가 성탄절 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생신인 성탄절에 성탄절의 주인공인 아기예수는 없고 오히려 예수님 대신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나 루돌프 사슴 또는 토끼가 등장하고 백화점이나 대형마켙에는 예쁜 여자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성탄과 전혀 상관없는 세속적인 성탄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래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나 찬송은 사라지고 징글벨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르고 크리스마스 카드에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그림은 점점 사라지고 명화나 사진 또는 동양화나 세상적인 그림들이 들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탄의 의미가 이렇게 점점 퇴색해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 해에도 또 다시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 믿는 성도들 만이라도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가슴속에 새기고 참된 믿음을 가지고 성탄을 맞이해야 합니다.
성탄을 한 마디로 줄여서 말 한다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것” 그것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날 이기에 먹고 마시면서 선물과 카드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도요한은 성탄절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사건 이라고 요한복음1장 14절에서 증거 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신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무렵에 수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 구세주가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그러나 정작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나서 기쁨을 누린 사람들은 그리많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자세하게 소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에는 시므온과 안나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이 두사람은 자나깨나 성전에 가서 기도 하면서 지내다가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에는 살아가다보면 뜻밖의 일들로 인해서 안타깝게 기다리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에서 동해안 쪽으로 월성군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중에 치술령이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개 위에는 사람 모습을 닮은 큰 돌 하나가 서 있다고 합니다. 이 돌이 바로 그 유명한 “망부석” 이라는 돌입니다.
이 돌에는 가슴아픈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신라시대 눌지왕때 눌지왕의 형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눌지왕이 일본에 잡혀있는 형을 하도 그리워 하니까 당대에 신라 최고의 지략가인 박제상이 형을 구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갑니다.
박제상은 일본에 가서 지혜와 모략으로 눌지왕의 형을 구출하여 신라로 돌려 보냅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자신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대신 볼모 잡히고 눌지왕의 형을 신라로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박제상의 부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날마다 치술령에 올라가서 자기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결국 기다리다 지쳐서 죽고 맙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죽고나자 쓰러져 죽은 그 자리에 바위가 하나 솟았는데 그 돌이 바로 망부석이라는 유명한 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망부석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바위가 된, 지조가 있고 정조가 있는 귀한 여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돌입니다. 기다림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그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 했으면 그 기다림 때문에 지쳐서 죽었는데 그 시신이 다시 돌로 화하여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망부석이 된 박제상이라는 사람의 부인보다 더 간절하게 그리고 더 오랜 세월동안 구세주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이 소개 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시므온은 일평생을 메시야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오늘 본문 앞부분과 같이 28절로 30절에서 첫 성탄절에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는 “대 주재이신 하나님이시여 이제는 내 눈이 구원의 주님을 보았사오니 이 종이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저를 놓아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하면서 “이제는 제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면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죽어도 여한이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영생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죽어도 행복합니다. 안나과 시므온이 기다리고 기다려서 그 기쁨을 소유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안나도 평생동안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무려 84년을 기다렸습니다. 안나는 아셀 지파에 속한 여인인데 그녀는 참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안나는 결혼한지 칠년만에 남편이 일찍 죽어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살아도 살기가 힘든 시절에 여자 혼자서 인생을 개척하면서 살았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불행이라는 것은 때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수요저녁 예배때 소개한 야베스라는 사람은 태어날 때 얼마나 열악했는지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야베스” “고통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불행한 환경속에서 태어 났지만 종국에는 복을 받았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 원인은 그가 시마다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서 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기도 하기를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심으로 그는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때가차매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안나 역시 열악한 가문과, 남편과의 사별로 말미암아 살아가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야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특히 안나는 메시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평생을 기다려 왔습니다.
안나는 과부된지 84년동안 성전에 가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없는 외로움이나, 가난이나, 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독한 환경이나, 이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더 이상 슬픔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소망이 있으면 돌이 되어도, 망부석이 되어도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 구세주가 반드시 오실 것이라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기에 그녀는 결국 그 영광을 보게 됩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심히 어려운 형편에 있었고 나이들어 아무에게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그녀는 결국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축복을 누리고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 됨으로써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녀가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된 또 한가지 이유가 오늘본문 28절에 나옵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제 나이들어 기동도 힘들고 아무것도 못하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하나님께 감사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100살이 가까운 나이인데도 나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구세주를 만났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님 인데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입니다!”하면서 열심히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전도하고 다닌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사람들에게 주어 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한 자들에게 영광과 명예와 천국이 선물로 주어 졌습니다.
지난주에 정봉칠씨를 만났습니다. 하영순집사님의 소개로 그분을 만나서 함께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분이 남해에서 잘나가는 유지 였는데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망하는 바람에 아버지도 함께 망했습니다. 아들이 사업자금이 필요해서 집과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었는데 집과 땅이 다 넘어가고 나중에는 사채까지 빌려서 아들에게 주었는데 그 돈을 갚지를 못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 빚이 수억으로 불어나서 두사람 다 엄청난 빚에 시달리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들어보니 인생이 하루 아침에 비참한 지경에 처해서 불티가 나르는 것같이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것을 다 잃게 된 그분이 하영순집사님과 함께 면사무소에서 관리하는 길 청소 일을 다니게 되었는데 한달에 20만원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데 그 돈도 다 사채업자들이 가져 간다고 합니다.
어느날 정봉칠씨가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나머지 자기가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밤에 저희 남해 세광교회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왔는데 차마 교회에 들어올 용기는 없고 저 마당에 서 있는데, 그때 교회에서 찬송소리가 들리는데 "아버지! 아버지! 나를 구 하신 아버지!" 라는 찬송소리가 들여 오더랍니다. 그래서 정봉칠씨가 자기도 모르게 교회 마당에 서서 그 찬송을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 어르신이 저 바깥 마당에서 그렇게 찬송을 따라 부르다가 집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어르신이 노인 복지관에 무료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만난 한 여자분이 "점심 얻어 먹으러 왔어요?" 하고 비아냥 거리면서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듣는순간 정말 죽고 싶더랍니다.
이 어르신의 고백인즉슨, 돈이 없으니까 사람들도 다 떠나가고 친척도 형제도 다 나몰라라 하고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자기 자신도 비참한 마음이 들어서 삶의 의욕이 사라지더랍니다.
이 어르신이 그날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다 하고나서 내가 앞으로 돈이 생기면 교회를 다니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교회는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아직은 안간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돈 없어도 되니까 나오시라고 했더니 아직은 아니라고 하면서 거절을 하셨습니다.
그날 식사를 마치고 돌아 오는데 차안에서 김안순집사님이 그 분 옆에 앉아서 그 어르신에게 자기의 과거 간증을 하면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은 자기가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살하려고 옷까지 다 태우면서 절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나를 낮추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감동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분이 김안순집사님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다 듣고나서 큰 위로를 받고 집으로 돌아 가시는 모습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주님은 돈이 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분들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망의 소식을 전하고 구원의 길을 가르쳐 드려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이 복된 성탄절기에 먼저 우리도 안나와 시므온같이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안나와 시므온이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린 것처럼 우리도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야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받은 감격과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한 안나처럼 우리도 그 감격과 은혜를 소망이 없는 이웃들에게 전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안나와 시므온같은 심정으로 성탄절을 맞이하고 그들이 누린 축복을 우리도 누릴뿐 아니라 그 축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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