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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3월13일 행3장17-26 유쾌하게 되는날이 오리라

그리운시냇가 2013. 3. 14. 15:22

 

 

지난주 목요일에 김금순집사님 어머니 조막례씨를 심방하러 가던날 박천엽집사님께서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조막례씨에게 전달해 달라는 봉투 였습니다.

 

저희는 심방중에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교회에서 드리는 금일봉과 더불어 박천엽집사님께서 건네주신 봉투를 조막례씨에게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용강에 사시는 박천엽집사님과 친척이신가요?” 그랬더니 조막례씨가 아니라고 하면서 박천엽씨가 누군지 잘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천엽집사님을 소개 하면서 “용강에서 장애자 자녀들을 데리고 사시는 분입니다 모르세요?”했더니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박천엽집사님 이야말로 주님의 참된 사랑을 실천하시는 귀한 성도님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천엽집사님은 나와 아무런 친 인척관계도 아니고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어렵고 힘들게 사는 김금순집사님과 그 어머니를 위해서 아무런 댓가없는 섬김으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봉우에 심방을 가서 몇분을 만났는데 성도님들과 대화를 나누는중에 또 한분이 사심없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푼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복례집사님이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김막순권사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고복례집사님은 정두애권사님이 입원한 후에 혼자서 교회에 나오시는 88세의 김태봉집사님을 측은하게 생각 하셨습니다. 그래서 김태봉집사님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김막순권사님에게 몇만원을 건네 주시면서 “내가 병원에도 못갔는데 이 돈을 김태봉집사님에게 전해 주세요” 하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박천엽집사님과 고복례집사님은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로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말고 가난한 자들을 대접하고 섬기면 복을 받게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박천엽집사님이나 고복례집사님 같은 분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을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분 다 상대방으로부터 다시 갚음을 받지 못할 상황인데도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때 차량운행을 하는데 정봉임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 집 2층에 앞쪽으로 베란다 창문 공사를 하는데 자기집에 와서 일을 하시는 분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하는지 간식도 안먹고 열심히 일을 하고 그리고 점심때에는 홀로계신 92세의 어머니 식사를 챙겨 드리느라 집에가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와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 그분을 칭찬 하셨습니다.

 

아내는 마산에 있는데 소대변을 받아내는 어머니를 아내가 수발하게 하면 아내가 혹시라도 수발 하다가 힘들어서 자기 어머니를 미워하게 될까봐서 아내는 마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게하고 60이 넘은 나이에 자기가 어머니를 수발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시대에 보기드문 훌륭한 분이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영순집사님도 자기논의 둑이 무너져서 포크레인을 불러서 담을 쌓고 집안에 물이 나서 그 공사까지 겸해서 사람을 불러서 일을 시켰는데 이동에서 온 장로님 아들내외가 와서 일을 하는데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그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박천엽집사님과 고복례집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일을 했고 그리고 정봉임집사님댁과 하영순집사님댁에서 일하신 두분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일을 했으니 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본받아야할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 믿는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칭찬받지 못하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면 예수를 잘못 믿은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기관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고 정화 시키려면 성도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만민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때문에 이 땅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인 교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 교회는 한국 교회에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의료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개화되고 건강하게 살고 구원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사 초기에 우리나라에 온 모든 선교사들이 칭찬받는 종들 이었습니다.

 

헤론(J. W, Heron)이라는 의료 선교사는 1885년도에 우리나라에 왔는데 그가 한국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헤론 선교사는 미국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입니다. 그는 교수직을 사양하고 1885년에 내한하여 의료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지 5년 뒤인 1890년도 여름에,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폭염 속에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더위와 과로로 이질에 걸려서 3주간 앓다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놓고 한국에서 사망 했습니다. 그의 희생은 한국교회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사 초기에는 이와같이 우리나라에 와서 순교한 많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섬김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오늘날 우리나라가 영육간에 복을 받게된 것입니다.

 

이런 섬김과 희생은 교회를 통하여 진리를 깨닳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복하여 예수님의 복음과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선교사로 헌신 했기에 세상 모든 나라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의 시작은 초대교회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성령강림 사건이 소개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야말로 그리스도로서 세상에 오신 구세주요, 구약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라고 선언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시대의 유대인들은 이와같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메시야 구세주의 증거를 친히 보여 주셨는데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민인 자기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서 공적을 쌓을 때 구원을 받게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구닥다리 신앙입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빠졌고 인간적인 혈통만 자랑하고 율법만을 신뢰하는 세속 종교주의자들로 변질 되었기에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율법주의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종교적 상황 속에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삼 년동안 그들의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무진 애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신실한 이방인인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라고 말씀 하시면서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1-12).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수백년 수천년 동안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라는 사명적 설교를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이런 거룩한 목적과 사명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는 천국 복음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서 세상에서 빛된 사명을 망각했기에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믿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세계적 선교사명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같은 이방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되어서 천국을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마 21:43)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복을 주시려고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화합치 아니하므로 하나님은 유대교를 버리고 새로운 교회를 탄생시킵니다.

 

새로운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세워 집니다. 이때 베드로는 가장 먼저 회개를 촉구 합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 에서 오늘 본문 17절과 같이 선언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줄 아노라” 이 말은 “여러분들이 멋모르고 예수를 죽인 것을 잘 압니다. 너희 높은 사람들 즉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역시 모르고 그런짓을 했을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절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선포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너희가 무지해서 예수님을 죽였지만 그러나 회개하면 용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베드로사도는 선포 합니다. 그리고 회개 하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회개 할 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첫째로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죄 없이 함”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말은 “죄를 지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면 내가 지은 죄가 깨끗하게 지워져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운전하다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DMV 즉 교통국에 내가 위반한 내용이 서류에 기록 됩니다. 빨간줄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참 좋은 나라인 것은, 그 붉은 줄을 완전하게 지울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익스펀지(expunge) 즉 말소한다고 하는데 정한 기한동안 위반을 하지않고 운전을 하면 위반한 내용이 다 지워 집니다.

 

미국에서 지내는 불법체류자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특정일에 대사면을 해주고 신분을 완전하게 회복시켜주는 날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회개하면 그 순간부터 죄가 말소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는 그날이 “죄를 말소하는 날”입니다. “대 사면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는 항상 지우개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 지우개는 아주 신기한 지우개입니다. 그 지우개는, 인간들이 제 아무리 스스로 지워서 없애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죄”라는 잉크를 지울 수 있는 십자가 보혈의 지우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 얻게 되는 사죄의 특권이요 회개할 때 받게되는 면책특권입니다.

 

이어서 우리가 회개할 때 얻게 되는 두 번째 축복은 “회복의 도래”입니다. 19절을 다시보면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는 뜻은 예수님께 회개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매일 상쾌하게 산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더 정확한 뜻은 “회복의 날”(the time of refreshment)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죄가 사해지면 참된 자유함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인을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서 형을 살아야 다시 자유인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형을 산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모든 죄들은 하나님이 씻겨 주셔야만 정결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자유인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다 보면 언젠가는 자유인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유인이 되기는 커녕 율법으로 정죄 받고, 또 그 정죄 받은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갈수록 짐이 점점더 무거워 졌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로 그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고 좋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제라도 너희가 예수님 죽인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설교를 한 것입니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먼저 그 병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런 중병에 걸렸어 내가 난치병에 걸렸어 이게 현실이야” 라고 하면서, 병에 걸린것을 인정부터 해야 그 다음단계의 치료가 가능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출구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성도는 자기가 문제가 있는 사람인줄 알지 못합니다. 자기는 다 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 합니다. 자기가 형편없는 신앙인인데도 자기는 아주 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이 진리를 가르치고 신앙적 교리나 말씀을 가르쳐도 들을 생각도 안하고 자기 멋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변명만 하고 나는 잘못한게 없다고 떠들어 댑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무능하고 부족한 사람이요 내가 죄인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중증환자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수술을 한 후에는 원기회복이 필요 합니다. 악성세포가 제거되었으니까 중증은 제거된 것이고 그때부터는 원기회복만 필요합니다. 19절의 “유쾌하게 되는 날”이 바로 이와 같은 날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는 엄청난 죄를 지은 구제불능의 죄인 일지라도 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보혈의 지우개로 죄를 지워 주심으로 그 죄가 말소되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다시 원기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불치병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면 자기 인생을 돌아 보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헌신이나 좋은 의사를 만난 것, 또는 가족들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는 “내가 이제 퇴원하게 되면 이런 이런 일을 해야지. 더 보람 있게 살아야지. 행복하게 살고 유익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지” 하면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이중표(李重表) 목사님은 기독교장로회 출신 목회자로서 유일하게 교회부흥과 성장에 성공한 목사님이요 한국 교계의 지도자이십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에도 네 차례나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1973년 이후 수년에 한번씩 죽을 고비를 넘기던 목사님은 별세신앙을 주창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근거해서 날마다 자신을 죽이고 대신 자기 안에 예수님이 사시고 예수님이 주인 되는 삶을 주장하면서 별세신앙을 가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소천하기 전 담관암 수술을 받으신 이중표 목사님은 다시 거지(巨智)선언을 했습니다. “큰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별세는 큰 깨달음이니 자기를 비우고 거지로 살라”라는 교훈을 남기셨습니다.

 

목사님은 죽기 직전에 “나는 죽어도 행복합니다” 라는 책을 출판하셨습니다. 축복보다 더 좋은 것이 죽복 즉 죽음의 행복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중표목사님은 평생 자기를 위한 통장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두 자녀를 입양하여 키우셨습니다. 이중표목사님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삶이 위대한 삶인지, 어떤삶이 성공자의 삶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 뜻을 이루면서 사는삶이 가장 위대한 삶입니다. 즉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죄 가운데 살다가 죽어서 지옥불에 들어갈 인생인데 그런 중증 죄인인 나를 예수님이 살려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면서 회개함으로 내 죄가 말소되고 나에게 “유쾌하게 되는 날”이 임한것을 감사 하면서 “이제부터 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지” 하면서 소망중에 사는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한국에서 꽤 부자로 살았던 사람이 떠들썩하고 자랑스럽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좋은 집을 구하여 살고,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옷을 사 입으면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자랑하는 사람은 거드럭 거리면서 살맛이 났는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빌딩 청소하는 사람도 벤츠를 타고 다니고 식품점 사장님도 BMW 차를 타고 다닙니다. 아파트에 살아도 행복하고 부자들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기에 좋은 차를 사거나 좋은 집에 살거나 좋은 옷을 사 입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자랑할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도대체 살맛이 나지 않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무엇이 행복인지를 모르는 몰지각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내가 얼마나 큰 죄인 이었는지에 대한 자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행복지수가 높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큰 헌신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닳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존 그레이(John Gray) 박사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라는 책에 보면 부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라고 표현 합니다.

 

즉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결혼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육체적 외모와 언행심사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게 되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는 여자에게 “나를 이해하고 나를 따라오라!”라고 주장하고 여자도 남자에게 “왜 자꾸 자기 주장만 하는거냐! 여자의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라고 하면서 싸운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할때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의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섬기지만 사랑이 식어지면 자기의 권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우리 크리스챤들도 권리보다 의무를 더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을 생각 하면서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라고 증거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기도하다가 오순절 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듭났습니다.

 

사실 성령을 받기 전에도 그들은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다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이었을 뿐입니다. 무늬만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거듭난 이후에 저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 졌습니다. 삶의 목적도 달라졌습니다. 내 자신의 이기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이 변했습니다. 온전히 주를 위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거듭나면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변화가 따라옵니다. 희생의 삶이 가능하게 됩니다.

 

로댕의 조각작품중에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이라는 명작이 있습니다. 이 조각작품은 여섯명의 주인공들이 등장 합니다.

 

이 여섯명은 영국과 벌어진 백년전쟁때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가 영국군에 의해 포위 됐을 때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포기하고 죽음을 자원한 여섯명의 영웅적인 시민들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1347년도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에 저항해 오던 프랑스 칼레의 시민들은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영국군에게 백기를 들게 됩니다.

 

이때 칼레에서 보낸 항복사절단은, 프랑스군에 의해서 도시 전체가 불타고 시민들이 처형되는것을 막기 위해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 놓았습니다. “좋다. 너희 시민들의 생명은 내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너희중에 시민 대표 6명이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와서 너희 도시의 국기를 우리에게 건넨 후에 그 6명이 처형되면 칼레의 시민들을 죽이지 않겠다”

 

영국왕이 선포한 말을 전해들은 칼레의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대표 6명이 자기들을 대신해서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내가 가서 죽겠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라 용기를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

 

그러자 칼레의 시장도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상인대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게 칼레 도시의 핵심 인물들이자 귀족들 6명이 앞장서서 죽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영국왕 앞에 가서 처형 되려던 순간에 에드워드 3세의 아내인 에노왕비가 “저 사람들을 살려 주세요”하고 간청을 했는데 그 간청을 들은 에드워드 3세가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에노 왕비가 하나님을 잘 믿는 크리스챤 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시민들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그 6명의 시민들이 독실한 크리스챤 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후에 프랑스 칼레의 시민들은 이들 6명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서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 로댕에게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믿음좋은 로댕은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여섯명의 용감한 시민들을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각으로 다시 태어나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희생의 위대함에 대한 교훈을 묵묵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2장 25절에서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자기를 포기하셨습니다. 자기의 뜻과 부유함과 명예와 심지어 생명까지 포기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기꺼이 자기를 포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온갖 하늘의 귀한 선물을 주시고자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서 목숨이라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세계 복음화를 이루어 나가셨고 그런 사명자들의 희생과 순교정신으로 세계 모든 나라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신앙의 스승은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입니다. 전에도 소개 해 드렸지만 하천풍언이라고도 불리우는 그는 일본의 명문인 메이지대학과 고베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톤대학에서 생물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귀국해서 빈민들을 돕고 전도와 사회사업, 그리고 농민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자유당 정권 때에는 개인자격으로 내한하여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을 방문해서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가가와 도요히코가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본래 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기생집에 가서 사귄 여자를 통해서 낳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4살 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5살 때 자기를 낳은 어머니마저 돌아 가시자 그는 아버지의 본처의 자녀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본처의 자녀들이 얼마나 구박하고 학대를 했는지 그는 이복 형제들로부터 학대를 받으면서 비참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가가와 도요히코는 성격이 삐뚤어졌고 부정적인 성품으로 자라났습니다.

 

열두살이 되었을때 집안의 어른이 그를 불교에 귀의하게 하려고 절간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간에서 불교에 대해서 배웠고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그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산에서 내려와서 장터에서 장을 보고 섰는데 구세군이 나팔을 불면서 노방전도를 하면서 지나 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세요.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하고 구세군 전도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지나 갔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가가와 도요히코는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구세군 전도자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자도 사랑하십니까?” 서자의 설움을 당하면서 살았던 가가와 도요히코는 “하나님이 서자도 사랑하시냐고” 물었고 구세군전도자는 “그럼요. 하나님 아버지는 서자도 사랑하시고 감옥에 있는 죄수도 사랑하십니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가와 토요히코는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고는 그 즉시로 그 대열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한 광장에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 했습니다.

 

그가 산에서 내려와서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담임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당시에 일본에서 예수 믿는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담임선생님이 그를 지도했고 예수믿는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두분의 선교사님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선교사님은 독일 선교사님이었는데 독일 선교사님은 더럽고 지저분한 빈민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전도를 했고 또 한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교사님 이었는데 가가와 도요히코는 이 두 선교사님을 통해서 복음을 배우고 그리고 가난한 빈민들을 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가가와 도요히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것은 나까오 목사님을 통해서 돌아오게 됩니다.

 

나까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인들이 통 모이질 않았습니다. 나까오 목사님은 매 주일마다 자기 아내인 사모를 앞에 놓고 설교를 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거지들이 교회로 왔습니다. 그 이유는 나까오 목사님이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욕도 씻겨 주면서 거지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지들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밥을 먹으러 교회에 오면서 주일날에는 오질 않았습니다. 주일날에는 반찬과 밥을 잘해주는 주민센터에 가서 밥을 얻어 먹느라고 교회에 오질 않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거지들이 주일날 교회에 오기를 기도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다 죽어가는 결핵환자 한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나까오 목사님은 그 사람을 씻기고 먹이고 보살펴 주면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일이면 세 사람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까오 목사님은 그에게 정성을 쏟으면서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알고보니 그가 바로 가가와 도요히코 였습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나쁜 친구를 만나서 타락하고 방탕하다가 결핵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고아인 그는 갈데가 없어서 길바닥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게되자 몹시 번민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방탕하더니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죄책감과 비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목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날까지 이웃을 섬기다가 죽자! 그게 내 죄를 씻고 회개하는 길이다!” 라고 생각하고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빈민촌에 가서 청소하고 자기보다 더 심각한 중병 환자들을 돌보면서 하루 하루를 그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렇게 한달 가까이 섬기다가 그는 결국 각혈을 하고 쓰러 졌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아시야거리의 나까오 목사님을 찾아가면 살수 있을텐데!” 하면서 지나 갔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가와 도요히코는 기진맥진 기다시피해서 나까오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나까오 목사님을 만난 가가와 도요히코는 비로소 새사람이 되었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고오베 신학교에 들어갔고, 유학까지 갔다와서 목사가 되어서 죽을때까지 일흔살이 넘도록 가난한 사람들과 빈민굴 전도에 전심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한복음 12장 26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이 예수님의 삶을 찬양하면서 따라가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성도들은 섬김의 은혜에 젖어야 합니다. 섬김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행함으로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교회도 이제부터 선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교회를 섬겨 주시는 분들이 여러분들이 계셨습니다. 조내원,강소애집사님과 천경아,가성훈집사님 그리고 김예슬,윤기원집사님 외에도 김석홍집사님 딸 김평숙집사님도 한달에 2만원씩 우리교회에 선교비를 보내 주셨고(올해부터는 3만원씩) 친구 김황순집사님 내외분도 2만원씩 보내 주시고 박희례권사님 딸 정성희집사님도 5만원씩 보내 주시고 백광영집사님이 봉사하시는 거제 장애자 선교원의 서은경전도사님도 5만원씩 보내 주십니다.

 

그 외에도 김안순집사님과 형님 김동문집사님과 처제와 박에스더 집사님과 오산 양일교회가 목회활동에 필요한 헌금과 후원금을 보내 주시는데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분들의 후원금은 모아서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성도들을 섬기기도 하고 그리고 애경사와 요긴한 일에 사용하고 그리고 때로는 한꺼번에 몇달치를 모아서 건축헌금이나 차량헌금 또는 감사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이분들의 후원이 없다면 100만원 남짓한 사례비로는 도저히 생계도 어렵고 목회활동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의 후원이 있었기에 제가 개척해서 2년동안 사례비를 몽땅 건축헌금으로 드렸고, 이제 다시 건축을 하게되면 또 다시 사례비를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변신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입니다. 4월달부터 한 두 교회를 선정해서 선교 후원금을 보내 드릴 계획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직접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있는가 하면, 선교사들이나 어려운 교회의 목사님들을 돕는것도 선교입니다. 다음달 부터는 후원이 필요한 한 두 교회를 선정해서 선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교회나 선교사님 중에 도움이 필요한 교회나 선교사님을 아시면 제직회의때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인호 씨가 쓴 “상도”라는 소설에 보면 이런 명문이 나옵니다. “햇빛은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내리쬐어 곡식을 익히고 과일을 열매 맺게 한다. 비는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마른 대지를 적시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 세상 만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남을 위해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으로 생색을 내는 존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남을 돕고 섬기는 이유는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입니다. 우리가 선교하고 이웃을 돕고 섬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베풀면서 자기가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우리도 당연히 은혜의 사람이 되어서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너희에게 유쾌하게 되는 날이 임할 것이라고 선언 합니다. 우리가 유쾌하게 되려면 첫째 회개 해야하고 둘째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따라 살 때 인생이 유쾌해 집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지상명령인 선교는 불신자를 신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영적 불구자들을 21세기의 새 이스라엘로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 자동차는 승용차를 만듭니다. 포항제철은 강철은 만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믿는 거듭난 성도를 양산하는 기관입니다.

 

마가복음16장 16절에 보면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교회는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자는 어느 민족이든지,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 축복을 받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첫째도 선교요, 둘째도 선교입니다. 이제 우리 남해 세광교회는 하나님이 명하신 선교에 집중하고, 복음전도에 진력할 때 주님께서 기뻐 하시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에 전심할 때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부흥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모든 문제 해결과 기도 응답의 축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남해 세광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전파의 사명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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