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부산에 가서 이진숙집사님 어머니 이정순권사님을 문병 했습니다. 이정순권사님은 뇌경색으로 쓰러 지셨는데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해서 며칠만에 거의 정상으로 회복이 되셨습니다. 아직 팔다리에 힘이 없지만 혼자서도 잘 걸으시고 회복 속도도 빨라서 한달 정도면 완쾌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보니까 이진숙집사님 여동생이 어머니를 얼마나 극진히 섬기고 있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부모에게는 딸이 있어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며느리도 와서 시어머니를 돌보고 수발을 하는데 두 며느리가 교대로 와서 시어머니를 수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정순권사님이 복있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동아대학병원을 나와서 다시 인창 병원에 가서 정두애권사님을 문병 했습니다. 인창 병원으로 옮기신 정두애권사님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 병실에서 몇몇 노인들과 함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돌보는 간병사가 있기는 있는데 간병사가 병실에 와도 잘 도와 주지도 않고 소변이나 대변도 그냥 기저귀에 싸라고 하면서 냉대하고, 무엇 보다도 병원에서 주는 밥이 너무나 맛이 없어서 밥먹기가 고역이라고 정두애권사님이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이진숙집사님도 지난주에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동아대학교 병원에 갔다가 돌아 오는길에 정두애권사님이 계신 인창병원까지 문병을 다녀 왔는데 정두애권사님이 이진숙집사님을 보더니 손을 잡고 슬피 우시더랍니다. 정두애 권사님이 하루빨리 회복되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오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산에 가서 제일먼저 김막순권사님 아들 윤인준집사님 사무실에 가서 윤인준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윤인준집사님을 만난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3년 동안 기도해 온 기도제목을 이루기 위해서 였습니다.
제가 윤인준집사님을 만나서 성전건축과 노인요양원을 짓기위한 설계도면을 윤인준집사님에게 드리면서 금번에도 남해 세광교회의 설계를 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새로짓는 예배당과 노인 요양원이 약 95평쯤 되는데, 건물을 다 헐고 신축공사를 하는것과 더불어 현재 기존해 있는 건물을 활용해서 거기에 덧붙여서 증축공사를 하는것을 비교 해 보았더니 현재 기존의 건물을 활용해서 거기에 덧붙여서 건축을 하는것이 건축비가 훨씬 절약이 되겠기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본당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건물의 앞쪽 큰 길 쪽에는 예배당 종탑과 입구를 신축하고 지붕은 새로 하고 강대상 옆의 방은 철거하고 예배당 뒤쪽 마당의 주차장에 10미터를 증축해서 예배당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윤인준집사님도 설계도면을 보고서, 신축하는 것 보다는 증축 하는것이 건축비가 절약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설계도를 그려서 군청에 제출 해 주시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교회 뒷편에 정평관집사님이 기증하신 컨테이너는 사택건물 2층으로 옮겨서 서재로 사용하고, 사택 뒤에있는 텃밭을 농지전용을 받아서 주차장으로 만들 계획 입니다.
금번에 성전건축을 위해서 목수이신 김길성집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김길성집사님이 바쁘다고 하시면서 시간을 내지 못하시는 바람에 성전건축을 허용식집사님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허용식집사님은 건축분야에 못하시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 하셔서 금번에 큰 헌신을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고재준집사님께서 전에 저에게 “목사님! 저는 성전건축 헌금을 많이 드리지는 못해도 성전건축을 하게되면 제 재능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금번에 성전을 건축할 때 건축의 총 관할과 진행을 허용식집사님이 맡아서 관장해 주시고 고재준집사님은 배관과 상하수도 그리고 보일러와 화장실등 전문적인 일손이 필요할 때 도와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금번에 건축 위원장은 허용식집사님이 맡아 주시고 부 위원장은 고재준집사님이 맡아서 수고해 주시도록 협조를 부탁 드렸는데 두분이 기꺼이 헌신 하시겠다고 동의해 주셨습니다. 이제 설계가 완성되고 건축 허가가 나오면 곧 바로 성전건축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윤인준집사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중에 윤인준집사님으로부터 “교회가 제대로 사명을 감당 하려면 담임 목사님을 도와서 마음을 같이하는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윤인준집사님은 안수집사님이라서 아직 당회에 들어갈 자격은 없지만, 그러나 김문훈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포도원교회의 성전건축을 위한 설계를 담당하신 안수집사님이기에 당회에 들어가서 참석을 했는데 당회에 들어가서 참석을 해 보니까
“목사님이 일을 잘 하시려면 목사님 옆에서 목사님을 돕고 협조하는 분들이 많아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울러 윤인준집사님은 제가 올린 설교를 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 읽어 보셨기에 근간에 우리 남해세광교회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소상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윤인준집사님이 저에게 한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다쳐서 상처를 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염려를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윤인준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 말도 맞는것 같아서 “그렇구나 악한 가라지를 뽑아 내려다가 알곡같은 성도가 상처를 입을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에 상처받은 성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간에 많은 교회들이 악한 가라지 때문에, 또는 이단과 사이비들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목사님이 쫓겨 나가고 교회가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집사님!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이 다치는건 미안한 일이지만, 그러나 요즘 가라지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교회가 패가망신을 다하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요즘 많은 교회들이 사이비 이단들 때문에 싸우고 갈라지고 난리가 나고 있는데, 악한 가라지를 그냥두면 나중에 교회가 망가질 수밖에 없기에 할수없이 단호하게 설교를 했는데 하나님이 가라지를 뽑아내 주셨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다윗은 문제가 생겼을때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받고나서 자기가 결단것들을 과감하게 실천해 나갑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을 하고 있었고 다윗은 도망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그런때에 자기가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인 그일라 지방에 살고있는 동족들이 블레셋에 의해서 약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런 보고를 받자마자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서 블레셋 사람을 물리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같이 지내고 있던 신앙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반대를 했습니다.
3절에 보면, 다윗과 함께 지내던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사울 군대를 피해 다니기도 힘든데 어떻게 그일라에 가서 그들을 구원하겠느냐”라고 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우리는 훈련된 블레셋 군사들과 싸워서 이길 승산도 없고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 코가 석자인데 남 걱정할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다들 다윗의 의견에 반대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민에 빠질 때가 바로 이런 때입니다. 기도해 보니까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이런일을 행해야 하는데 성도들이 따라오지 않을때 목사는 고민하게 됩니다.
다윗도 고민 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블레셋을 쳐서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런데 자기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있는 사람들은 그건 안된다고 하면서 다들 원망 불평을 했기에 다윗은 심히 난감해 했습니다.
이런때에 다윗은 4절과 같이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가야 합니까? 아니면 말아야 합니까?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해서 안주해야 합니까?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나님은 또다시 분명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다윗의 의견에 반대하던 무리들도 그렇게 무지한 사람들 많은 아닙니다. 사울왕의 엉터리 정치와 더불어 하나님을 외면한 언행심사에 환멸을 느끼고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 보겠다고 결단하고 다윗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다윗을 따르면서 그들은 점점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로 변해 갑니다. 사울 왕의 칼을 피해 아둘람 굴에 은신해 있던 다윗의 심경을 담은 시편이 시편 57편입니다. 시편57편 8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소개 됩니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당시에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제 다윗과 함께 어두운 역사의 새벽을 깨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뒤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역사를 시작해 보자고 모인 공동체가 다윗의 공동체 입니다. 지금은 캄캄한 어두움이지만 곧 밝아올 아침을 준비하려고 모인 무리들이 아둘람 동굴의 공동체입니다.
비록 지금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먼 훗날 다윗과 함께 새벽을 깨우고 사회를 깨우고 나라를 깨울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려고 하는데 함께한 사람들은 다윗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두가 하나 되어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우리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울왕의 사악함과 무식한 언행심사에 환멸을 느끼고 다윗을 따라왔으면서도 다윗이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일에는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그들은 다윗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고 결심하고 다윗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험과 환란에도 함께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윗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박해로부터 도망 다닌 십여 년 세월동안에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학교”였습니다. 다윗이 이 고난의 학교를 통해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련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이 더 든든했고 , 시련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피생활이라는 고난학교를 통해서 그 믿음이 성숙해 졌고 그로 인해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까지 얻었습니다.
다윗의 도피 여정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나서 처음으로 간곳은 제사장들이 거주하던 놉 땅입니다.(삼상 21:1).
다윗은 하나님이 계신 제사장의 성읍을 첫 번째 도피장소로 선택 했습니다. 이것은 고난과 환란의 때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다윗의 믿음을 잘 보여준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환란을 만나면 부모를 찾아 가거나 형제 또는 친척집에 가서 숨어서 지냅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모형제를 찾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있는 놉 땅으로 갔습니다.
놉땅의 제사장들은 사울왕으로부터 녹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잘못하면 당장 사울왕에게 신고가 들어 갈 수도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첫 번째 도피처로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생기거나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먼저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때 목사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서 다른곳으로 가는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먼저 목사님을 만나고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인격을 종합적으로 살찌우기 위해서는 담임목사님 중심으로 그리고 교회 중심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마치 사람의 심장과 같습니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가 인체의 각 구석에 전달되어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성도는 교회에서 받은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생활은 성도의 행복을 좌우합니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하나되어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담임목사와 멀어진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담임목사와 멀어진 사람은 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은혜를 회복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어서 다윗이 두 번째로 간곳은 가드입니다. 놉 땅에있던 다윗은 다시 블레셋 지역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피합니다(삼상 21:10).
그런데 그곳에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게된 다윗은 미친 체하면서 그곳을 빠져 나옵니다. 다윗은 그곳을 빠져 나오기 위해서 대문짝에서 어그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립니다.(삼상 21:13).
그 모습은 골리앗을 죽이던 때와는 영 딴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위해서는 수치스러운 일도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참고 인내하면 종국에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다윗이 세 번째로 간곳은 아둘람 굴입니다(23:1) 가드 왕 아기스의 수중에서 벗어난 다윗은 아둘람 굴로 갑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숨어 지낼때 사울왕의 폭정에 시달리던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400명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그후에 다윗이 400명을 이끌고 찾아간 곳이 모압 땅 미스베입니다(23:3). 모압땅 미스베는 이방땅 이지만 그러나 그곳은 사실 다윗의 도피행로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었습니다.
모압 왕은 다윗과 먼 친척입니다. 다윗의 증조모 룻이 바로 모압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압 왕에게 자기의 부모를 부탁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다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후에 다윗은 헤렛 수풀에서 거하게 됩니다.(23:5) 그런데 다윗이 헤렛수풀에서 지낼때 다윗을 붙잡지 못한 사울왕은 다윗이 놉땅의 제사장들이 있는 곳에서 지내다가 간것을 알고 화풀이로 놉 땅의 제사장 85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반역죄로 몰아서 학살했습니다. 사탄마귀가 사울을 통해서 이런 악한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중에 한 사람 제사장 아비아달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 아비아달이 훗날 다윗왕조의 제사장이 됩니다. 한사람은 대단히 중요 합니다.
어제 한 장로님을 만났는데 그 장로님의 할아버지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살면서 믿음생활을 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서 조선땅으로 오게된 간증을 들었습니다.
러일전쟁후에 블라디 보스톡이나 북간도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강제로 소련에 의해서 소련의 중앙 아시아로 이주를 했는데 그 장로님의 할아버지는 유일하게 아내와 함께 남하해서 조선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의 할아버지는 조선땅에서 복된 믿음의 가문을 이루게 되었고 후손들도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집안이 된 것입니다. 장로님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 였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아비아달을 남겨 놓으심으로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때 귀한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헤렛 수풀에 숨어 있을때 벌어진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일라사건 입니다. 실제로 현실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데리고 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울은 오직 다윗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모름지기 누군가가 내 생명을 노리면서 죽이려고 하는데 그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쫓겨 다닌다는 것은 아마도 피가 마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때에 다윗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일라라는 곳에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약탈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포로로 잡아 간다는 소식을 듣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라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기도로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은 “쫓기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에 쫓길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건강할 때보다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배로 느끼게 됩니다.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라는 바울사도의 고백이 아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제프 핸더슨은(Jeff Henderson) L. A. 빈민촌에서 태어나서 자란 흑인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열 살 때 친구와 싸우다가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 했습니다. 그후로 그는 도둑질을 일삼게 되었고 도둑놈이라는 별명이 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도둑질을 하던 그는 마약에 빠졌고 청년이 되자 마약을 사고 파는 일을 하다가 스물 네 살에 잡혀서 19년형을 받고 감옥에 같혔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 간 것이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과거를 청산 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가 이제부터라도 성실하게 옥살이를 해서 감옥에서 나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자원봉사일을 신청 했습니다. 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을 하겠다고 자원한 것입니다. 죄수들 천 오백명이 음식을 먹고나면 설거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남자 죄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주방에 가서 그릇 을 닦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프 핸더슨은 예수믿고 새사람이 되자 자원해서 그릇을 씻는일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가 그릇을 씻으면서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과 친하게 되었고 어깨 넘어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음식만드는 법을 배우던 그는 감옥에서 나가면 요리사가 되기로 또한번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열심히 그릇을 닦고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와주면서 그는 19년형을 받았지만 모범수로 분류되어 10년 만에 감형을 받고 감옥을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음식점에 취직해서 주방에서 일을 시작 했는데 음식점 주방일을 시작한 그가 다시 고급 요리를 만드는 것을 배워서 드디어 메리엇 호텔 주방에 취직해서 호텔 요리사가 됩니다. 그런데 다시 그는 리츠 칼튼호텔의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식사가 나오는 라스베거스의 벨라지오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벨라지오 호텔의 주방장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매스컴이 주목하는 유명한 요리사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는 절망의 과거를 버렸습니다. 상처 입은 과거도 떨쳐 버렸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자기 모습만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을 만나서 청소년들에게 늘 이와 같이 권면을 했습니다.
“실패란 추락이 아니고 추락한 채로 그대로 절망해 있는 것이 실패 입니다. 많은 흑인들이 자기가 범죄자가 된 것은 사회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총을 겨누면서 죄를 지으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선택을 한 사람은 결국 내 자신입니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는 무능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 하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이제부터 “나는 희망이 있어”라고 선포하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붙잡혀서 늘 원망과 불평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인생이 파멸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인생이 달라 집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인생에 축복이 선물로 주어 집니다.
나는 마약을 팔다가 19년 형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제2의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기 바랍니다“
제프 핸더슨이 강연을 할때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감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 갑니다. 사울왕은 자기가 가진 권세와 힘과 부귀영화를 악한일에 사용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불안해 합니다! 갈팡질팡합니다. 그래서 돈이 있다고 힘이 있다고 행복한것이 아닙니다.
힘있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다 이루었다”라고 고백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에게 오히려 죄사함을 선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 믿은 모든 자들에게 천국을 선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고 죽인 자들은 불안이 극에 달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평안 속에서 부활의 영광에 들어 가셨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다윗)를 그(사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막강한 힘으로, 온 세상을 이잡듯이 찾아다니는 사울왕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다윗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불러오는 말씀은 다윗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내가 누구 누구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제 블레셋을 다윗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한 후에 “우리가 그일라를 쳐서 블레셋을 쳐 부시고 동족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간곡히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다윗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던 무리들이 비로소 다윗의 진의를 깨닫고 협조하게 됩니다. 깨닳은 후에 그들은 더 이상 의견이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과 말씀에 모두가 순응하는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왜 이런일을 하느냐? 이러다가 우리가 망한다” 하면서 다윗이 하는일을 반대하고 원망 불평을 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모두가 마음이 하나되어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이 모두 다 다윗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담이 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2장에는 400명이었는데 오늘 본문 23장14절에 보면 600명으로 불어나 있습니다. 군 식구들이 더 늘어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속에는 어중이 떠중이도 있었습니다. 원망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굴로, 광야로 피난을 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들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한 일꾼들이 됩니다.
다윗은 모여든 그들에게 단순히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호해 주는 것만으로 사명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그들을 필요로 하실 때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재목들로 다듬어 나간 것입니다.
우리도 몇주 전부터 금요 기도회때 제직 수련회 교재로 제직들이 갖추어야할 신앙인격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장로님이 없기에 첫 시간에 권사의 직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권사는 첫째로 담임목사를 돕는 일이 첫 번째 직무입니다. 권사를 세운것은 담임목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심방의 직무를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병든성도를 심방하여 기도해 주고 가난한 성도를 돌아보면서 구제하는 직무가 권사가 해야할 직무입니다.
세 번째는 덕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권사님이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권사가 남의 밭에 있는 농작물을 도둑질하고 이웃과 싸워서 갈등을 빚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집니다.
네 번째는 전도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권사를 세운 이유는 기도하고 전도라하고 권사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전도하고 그리고 이웃을 전도하라고 권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아울러 권사님들은 교회에서 사랑으로 성도들을 감싸고 희생을 감수하고 초신자를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사는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듣는 일꾼 이어야 합니다. 집사도 목사님을 도와서 교회를 섬기는 직분입니다. 술 담배를 금하고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교회의 모든일에 충성봉사 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비젼을 가지고 자기에게 모인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무장시켰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일라를 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를 했을때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 했지만 다시 재차 기도하고 그들을 설득하자 그들 모두가 다윗의 말에 순종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됩니다.
전쟁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들이 전쟁터에 기꺼이 참여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서 헌신과 결단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의 공동체는 그렇게 서서이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을 치고 그들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 되찾아 주었습니다.
흔히 전쟁을 하면 전쟁을 도운 자들이 나중에는 도움을 주었던 집단을 지배하는 제2의 침략자가 되기 쉽습니다. 북한을 점령했던 소련군이 그랬고, 남한을 점령했던 미군이 그랬습니다. 어쨌든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기에 도와준 것입니다. 과거에 삼국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세계역사에서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국가간의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일라를 구해 주었는데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합니다. 그일라의 어떤 사람이 사울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다윗과 그 무리들이 그일라에 와 있다고 두 번씩이나 다윗을 고발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그 즉시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이 정말 나를 사울에게 고발하겠습니까? 정말 이 사람들이 나를 배반할 것입니까?”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이 너를 사울의 손에 붙이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배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일라 사람들이 왜 자기를 구해준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왕에게 고발 했습니까? 그 이유는 도망한 다윗을 도왔던 놉 땅의 제사장들 85명이 사울왕에 의해서 모조리 처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가족들, 생명이 있는 모든 짐승까지 놉 땅에 있는 생명은 모두 도살을 당합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있었던 그일라 사람들은 비록 다윗의 도움을 받아서 구원은 받았지만 고민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합니다. 사울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다윗과 그 일행들이 우리 동네에 와 있다고 고발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그 소식을 들은 즉시로 군대를 동원해서 그일라를 향해서 진격을 했습니다.
이런때에 다윗이 12절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그래 붙일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6백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조용히 그일라를 떠납니다.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면서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아 저주를 받아라” 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그일라를 떠났습니다. 그일라 주민들에게 공을 세우고 생명의 은인이 되었지만, 그러나 다윗은 놉땅의 제사장들처럼 자기 때문에 그일라 거민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조용히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기득권이라고 하는 것이 생깁니다. 새로운 정부가 개혁을 해 보려고 하지만 개혁을 하는데 가장 큰 저항세력은 기득권세력입니다. 기득권이 바뀌면 손해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이, 끊임없이 데모를 하고 시위를 합니다.
다윗에게도 기득권이 있었습니다. 자기와 자기의 공동체가 생명을 다해서 그일라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일라에서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기득권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습니다. 분당 우리교회의 이찬수목사님은 작년 7월1일날 주일 설교시간에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 교회의 교인 숫자의 절반이나 4분의 3 정도를 줄이겠다”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2만명중에 만오천명의 교인들을 다 내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1년 5월달에 650억 원에 매입한 교육관을 10년 후에 되팔아서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를 위해서 쓰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계획했던 교육관 증축도 철회했습니다.
이찬수목사님은 “특정한 교회가 이렇게 비대한 것은 옳지 않은 일이고 내 교회만 잘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분당 우리교회가 사람 많이 모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가 위기인데 희생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교회 해체 선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일날 저는 이찬수목사님이 정말 그 일을 실천하려고 칼을 빼든것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개척교회나 지역에서 여렵게 목회하시는 목사님들 교회에 성도들을 보내는데 몇십명 몇백명씩 떼어서 보내고 아예 교회안에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서 천명을 내 보내려고 계획하고 계신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교회들이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자기세력을 넓혀 가려고 안깐 힘을 쓰는데 이찬수목사님은 대교회 해체를 통하여 교회 살리기 운동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찬수목사님이야말로 과연 이시대의 참된 지도자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가 설립된 후에 변함없이 우리 교회를 돕고있는 조내원집사님과 강소애집사님이 바로 분당 우리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부흥성장 하려면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먼저와서 뿌리를 내리고 건축에 힘쓰고 헌신한 분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온 분들에게 양보하고 일할 기회를 주어야 교회가 점점 발전 합니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새로온 사람들이 발들이지 못하게 하면서 기득권을 주장하면 그런 교회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없습니다.
금번에 하나님께서 왕지 구역을 해체한 것도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여서 전도와 구제와 봉사는 할 생각은 하지않고 담임목사를 도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먹고 마시면서 교회와 상관없이 이기적인 모임으로 치달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모임을 흩으신 것입니다.
모름지기 교회는 먼저 와서 헌신의 땀을 뿌리고, 희생의 눈물을 뿌린 사람들이 늦게와서 섬기는 사람들을 포용할 때 성장에 가속도가 붙게 됩니다.
그런데 먼저온 사람이 늦게온 사람을 보면서 “늦게온 사람들이 꽤나 설치고 다니네! 누가 다 이루어 놓은건데!”하면서 고까운 마음으로 바라 본다면 그런 성도는 이미 죽은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교회를 누가 세웠는데!, 이 교회를 누가 건축 했는데!” 하면서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왕노릇 하기에 수많은 교회들이 하나되지 못하고 갈등과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목숨을 걸고 그일라를 구했는데도 자기를 배신한 그일라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을 떠나 갔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아울러 다윗은 어떤 일을 행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묻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우리는 먼저 결정을 하고 나서 하나님께 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검증 받는 일이지, 이미 내려진 내 결정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인준을 받는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먼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단정지어놓고 함부로 행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울왕입니다.
오늘본문 7절에 보면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라고 사울왕은 생각 합니다. 사울왕은 자기가 생각한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다윗은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가서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의 생각을 인정하시고 다윗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기도도 하지않고 자기 멋대로 “하나님께서 지금 다윗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나에게 주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니 혼자서 큰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윗의 평생에 다윗을 사울에 손에 붙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기도도 해보지 않고 “이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 맘대로 교만을 떨었기에 패가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구정명절이나 정초가 되면 계룡산이나 지리산에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제사음식을 한 보따리씩 싸들고 무당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올 해 무슨 좋은 일이 있을런지 산신령에게 물어보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중에는 천만 원 이상 드는 제사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쓰면서 제사를 위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제사 후에 마른 명태 한 마리를 물속에 던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꼬리가 가라앉고 명태 대가리가 물 위로 하늘을 향해서 곧추 서면 한 해가 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명태를 물속에 던지는데 사람들이 가고나면 얼른 장대를 가지고 그 물속에 던진 명태를 건지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건지는 명태가 평균 100마리가 넘는데 그 사람의 집 처마에는 말리려고 널어놓은 명태가 즐비합니다. 잘 말렸다가 반찬으로 해 먹는것입니다.
산신령이 있기나 합니까? 무당이 복을준다면 전국에 있는 많은 무당들이 왜 그렇게 지지리 가난하게 삽니까?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자기불안을 해결할 길이 없어서 그런곳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는 하지 않고 자기생각에 사로 잡혀서 내멋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것 역시 불신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검증 받는 것입니다.
아울러 다윗의 훌륭한 점은 자기 감정을 극복한 것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다윗은 생명을 걸고 보살펴준 그들이 돌변하여 자기를 배신했을때 밀려오는 배신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정이 상하여 판단력을 잃어버렸다면 그일라 거민들을 모조리 처형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나갔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대 부분의 이유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 20절에서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오늘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든 일들이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실 평상시에 나타나는 겉 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의 신앙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윤인준집사님도 말씀 하시기를 당회에 들어가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니까 평소에 당회 밖에서 보았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보면서 저으기 놀랬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만난 모든 장로님들이 겉으로 볼때는 훌륭한 인격자처럼 지내고 있었지만 막상 당회에 들어가서 회의를 할 때 보니까 장로님들이 서로 의견이 달라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니까 또 다른 세계를 보는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그 이후부터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를 다 떨쳐 버리고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주님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 안에서 영광스럽고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가문에 복이 임하고 자녀들이 잘되고 마음에 소원한 일들을 이루면서 살게 됩니다.
아무쪼록 이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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