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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1월20일 주일낮 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

그리운시냇가 2013. 1. 21. 14:21

 

어제 오후에 류금막권사님과 안분님성도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오늘 두분의 장례예배가 거행 됩니다. 예배후에 식사가 끝나면 바로 남해 장례식장으로 가서 류금막권사님의 입관예배를 드리고 이어서 안분님성도님의 빈소에서 김천수집사님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류금막권사님의 아들 윤백선성도님을 만났습니다. 윤백선성도님은 설천에서 농협장을 지내시고 남해군 군의원까지 역임 하시고 남해군 새누리당 위원장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윤백선성도님은 설천에 최초로 교회를 설립하신 윤도준장로님의 장남 입니다. 

 

윤도준장로님께서 이곳에 설천교회를 세우시고 류금막권사님과 함께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셨는데 윤백선씨가 군대에 간 사이에 아버님이 돌아 가셨고 설천교회는 박복선장로님에 의해서 남양에서 금음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윤백선성도님이 군대에서 돌아와서 동생들을 돌보고 기울어진 가사를 돌보느라 주일성수를 잘 못했는데 그때 박복선장로님이 찾아와서 주일성수를 안한다고 혹독하게 야단을 치시는 바람에 윤백선성도님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서 그때부터 자기는 아예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윤도준장로님이나 어머니 류금막권사님을 생각하면 자기가 당연히 교회를 나갔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교회를 못 나왔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라도 교회를 나가갰다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머니 류금막권사님의 장례식을 기독교 장으로 해 달라고 저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오늘 예배후에 모든 성도님들께서 남해 장례식장에서 거행되는 류금막권사님의 장례 예배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파란만장하고 힘들게 산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러나 그는 역경과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하나님께서도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라고 극찬 하실만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은 다윗 왕이 말년에 자기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에 감사하는 “찬양 시”입니다.

 

다윗은 본래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열 다섯 살에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스무살에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워 승리하고 군대 장관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풍전등화같이 위태로운 조국을 건져 냈지만 그 공로 때문에 인기가 급상승하자 사울 왕이 시기질투하여 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십 수년동안 광야로 토굴로 변방으로 이웃 나라로 도망을 다니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사무엘의 예언대로 남 유다의 왕이 되었고, 35세에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통일하고 통일왕국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는 빼앗긴 이스라엘 나라의 모든 땅을 되찾고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훌륭한 임금이 됩니다.

 

그러나 60세에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는 바람에 다윗은 왕위를 빼앗기고 또 다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후에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제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평안하게 지내다가 7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와같이 다윗은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윗이 행복하고 형통할 때 지은 시가 아니라 캄캄한 절망의 때에 지은 시편입니다.

 

이 시편을 쓰게 된 배경이 바로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다윗이 왕궁에서 쫓겨나서 유리방황할 때 지은 시입니다. 다윗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셋째 아들 압살롬은 모든 자녀들 중에 뛰어난 아들 이었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디를 살펴 보아도 흠이 없는 인물이 압살롭입니다. 얼굴이 빼어나고 몸도 남자답고 머리까지 뛰어난 천재입니다. 게다가 그는 매사에 앞뒤를 살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는 지략가 였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생각하기를 장차 이 나라의 후계자는 내가 적격자인데, 아버지는 엉뚱하게 어린 솔로몬에게만 마음을 주고 있기에 심기가 불편했고 아무래도 왕의 자리가 자기에게로 올 것 같지가 않을것 같아서 늘 마음이 답답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압살롬은 무서운 음모와 계획을 세우고 쿠데타를 감행할 계획을 세웁니다. 먼저 그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매수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모든 비밀을 알고있는 다윗 왕의 모사요 책사인 “아히도벨”을 돈과 뇌물로 매수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특공대를 조직해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압살롬이 드디어 일을 시작합니다.

 

압살롬이 하루는 아버지 다윗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고백 합니다. “아버지! 제가 지난날에 지은 죄도 많고 해서 헤브론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특별제단을 쌓고 기도를 한 후에 새 사람 되어서 돌아오겠습니다”하고 고백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이 너무나 기특해서 그가 원하는 대로 허락해 줍니다.

 

이때 쿠데타의 거사 날자를 잡은 압살롬은 처음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척 하다가 돌연히 혁명공약을 선포하고 왕위 즉위식을 한 후에 자기를 따르는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을 데리고 “압살롬 왕 만세”를 부르게 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질풍같이 쳐들어갑니다.

 

왕궁에 있던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기절 초풍을 하고 놀래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과 왕의 보좌를 내어 주고, 충성된 신하 몇 사람만 거느리고 신발도 못 신은채로 도망을 갑니다. 다윗은 졸지에 비참하고 초라한 망명자로 전락해서 광야에서 노숙을 하면서 지냅니다. 이런때에 다윗이 지은 시편이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정말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면 인생의 모든 행복이 보장되고 안전도 보장 됩니다. 목자는 양의 보호자입니다. 목자는 야수들과 도둑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양떼 곁에서 지냅니다.

 

부상당한 양이 있으면 목적지까지 메고 가고 병든 양이 생기면 정성껏 간호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먹일 물과 풀을 찾아 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헌신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헌신이 있기에 내가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양은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양은 대단한 근시입니다. 눈 앞에 있는것 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냇물을 찾지 못합니다. 길을 잃으면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양은 무방비 상태의 동물입니다.

 

동물들은 저마다 적들로부터 자기를 방어할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다 못해 스컹크처럼 지독한 방귀를 뀐다든지, 사슴처럼 도망을 잘 친다든지, 아니면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으로 적의 시선을 따돌린다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위기때에 살아남는 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방어무기가 없습니다. 뿔이라고 해야 그저 악세서리 정도이고 자기들끼리 싸울 때나 쓸 정도입니다. 게다가 양은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힘이 없으면 지혜가 있거나 머리라도 좋아야 하는데 양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도 달나라와 화성까지 살피는 지혜가 있지만 그러나 인간도 진정 복 받을 길을 가지 못하고 망할 길만 골라서 갑니다. 우리 인간들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양들처럼 스스로는 절대로 본향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지금도 인간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지옥으로 가는 심령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양의 진정한 행복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은 선한 목자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선한 목자를 만난 양은 배고프지도 않고 원수의 공격에도 안전하고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으니 평안하게 지낼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0장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은혜와 축복의 길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재물을 의지하고 권력과 명예를 얻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족함이 없는 축복의 장소”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고” 2절은 증거 합니다. 푸른 초장은 먹고사는 목초지를 말합니다. 목자를 잘 만나면 내가 먹을것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는 말은 우리의 삶의 평안함을 의미합니다. 광야와 사막에서는 쉴만한 물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의 복음적인 의미는 교회를 의미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과 행복과 구원의 기쁨과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늘 찬송이 나오고 소망중에 즐거워 하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기에 죽을병에 걸려도 고침을 받게 됩니다.

 

얼마전에 미국에 있는 처제의 남편이, 동서가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종합진찰을 했는데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간암이 폐까지 전이가 되어서 먼저 폐를 수술하고 그리고 다시 간을 수술 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수술전에 먼저 항암치료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제 집사람과 함께 처제 남편에게 작년부터 신학공부를 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동서가 그동안 부동산 사업하다가 망하고 자동차 판매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했지만 다 망했습니다.

 

오히려 처제는 사업에 성공해서 하와이에서 가장 큰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동서는 하는 일마다 망해서 되는일이 없습니다. 동서가 U.C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수재입니다. 지금 화와이에서 제일큰 한인교회인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 감리교회에서 매주 김낙인목사님의 설교를 영어로 동시통역하고 있습니다.

 

동서의 어머니는 순복음교회의 여전도사님으로 은퇴를 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동서에게 목사가 되라고 서원기도까지 하시면서 평생 기도를 해 오셨는데 이 친구가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고 세상에서 돈을벌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썼지만 되는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신학공부를 하라고” 권면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집을 부리고 양처럼 제갈길로 가다가 드디어 하나님으로부터 한방 얻어 맞은 것입니다.

 

저는 동서가 간암에 폐암까지 겹쳐서 당장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보름전에 듣고서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하면서 기뻐 했습니다. 그렇게 죽게되지 않으면 동서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죽을병에 걸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거나 교회를 하나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뜻을 거스리면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하나님 무서운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주의 종의 말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쳐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간암 폐암 진단을 받은 동서와 처제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항암치료 일정을 통고 받고 준비를 하던중에 처제와 동서가 결심하고 하와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로스 엔젤레스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동서의 어머니도 계시고 그리고 기도원도 있고 매주 집회를 하는 미국교회도 있기에 기도를 한 후에 부흥집회를 하는 교회에 가서 집회에 참석한 후에 목사님으로부터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처제와 동서가 기도하는 중에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건임을 깨닫고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L.A로 가서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안수기도를 하신 미국 목사님께서 “당신은 하나님이 부르신 종이니 이제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시요”라고 예언을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몸에 이상한 기운이 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만져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받은후에 L.A의 종합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했는데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간암의 종양이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날 제 집사람이 처제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런 기적이 벌어진것을 전화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부부가 어제 다시 하와이로 돌아 왔는데 이제 다시 병원에 가서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던 의사들을 만나서 다시 종합진찰을 받고 되어진 일들에 대해서 한번더 진료를 받을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믿고 의지하면 죽을병에 걸렸어도 병 고침을 받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목자를 의지한 양들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 보호받는 것처럼,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교부요 성자인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내가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기 까지는 영혼에 안식이 없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하나님의 품에 돌아올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더불어서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는 사람은 “영혼이 소생되는 은혜”속에서 살아가게 갑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말씀은 병들고 망가진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 상처 입은 인간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 이름” 으로만 소생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죽음의 늪에 빠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탄마귀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끝없는 갈등과 불안과 질병과 슬픔과 괴로움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상처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도를 닦은 일들이, 인간의 영혼을 소생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영혼을 소생시킬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영혼의 치료와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독교는 부도덕한 종교다. 왜냐하면 죄를 짓고도 무조건 회개만 하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하니 그러면 얼마든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닌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잘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면 하나님께서는 의의 영인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죄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바울사도는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다는 진리를 깨닳았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서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를 꾸짖어 주시고 책망하여 주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경성하여 조금씩,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천사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곡식이 열매를 맺으려면 일 년이 걸립니다. 사람이 성년이 되는 데에는 20년이 걸립니다. 하물며 죄악속에 살다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많은 시일이 걸립니다.

 

다만 우리 성도가 세상 사람과 다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끊임없는 회개와 결단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점점 변화되어 의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어서 여호와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면 “능력의 손”이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팔레스타인은 지형의 특징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많습니다. 기복이 심한 산지가 많습니다. 어둡고 험한 골짜기, 협곡이 많습니다. 특히 요단 지대는 좁고 급격한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나운 짐승들도 많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이끌고 나갔다가 늦어지면 들판에서 무서운 짐승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 위험을 무릎 써야 하는 계곡을 선택할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나운짐승과 싸울 것도 각오하고 양떼를 몰고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게 됩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곤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고통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건강을 잃었을때 또는 납치를 당했을때, 사업이 실패했을때, 직장에서 쫓겨났을때 아니면 우리가 세운 계획이 무너지고 어려움이 닥칠때가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놓여있을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김형언집사님이 소말리아에 납치가 되었을때 우리 모두가 근 일년동안 정말 간절히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것을 믿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붙잡혀 있는 김형언집사님이 반드시 살아서 돌아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김형언집사님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김형언집사님의 어머니 정두애권사님이 쓰러 지셔서 병원에 입원 하셨습니다.

 

정두애 권사님은 아들 김형언집사님이 돌아와서 그동안 기쁨과 행복을 누리셨는데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중에, 저는 이번에 정두애권사님이 당하신 고난에는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믿음생활을 하신 권사님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들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하나님 앞에서 늘 회개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동안 제가 정두애권사님에게, 조카인 김동순집사님과 화해 하라고 여러번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두애권사님이 끝까지 화해를 하지 않으시면서 “나는 죽어도 화해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권면 하기를 “조카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믿지않는 조카와 화해를 해야하고, 내 영혼의 행복을 위해서도 화해를 해야 합니다”라고 여러차례 권면을 드렸는데도 권사님은 끝내 화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설천교회에 있을때 수십년동안 장로님과 함께 목사님을 쫓아내는 일에 가담하여 악한 일을 한 것도 회개 해야 한다고 제가 여러번 말씀을 드렸는데 권사님이 그 권면도 받아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로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와 한배를 타고 남해 세광교회에서 동고 동락 하면서 함께 신앙순례의 길을 가는 사랑하는 권사님이지만, 그러나 권사님이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옥에 갈수도 있기에 제가 평소에 심방을 갈 때 마다 제가 늘 회개 하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권사님이 쓰러 지셨을때 저는 이 일이 오히려 권사님에게 복이 될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권사님도 회개하지 않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지옥에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난이 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 고난이 정두애권사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주시는 축복의 기회요 회개의 기회라는 사실을 확신 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매일같이 밤 9시에 병원에 심방을 가서 권사님 병상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면서 은혜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면서 권사님을 치료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권사님은 제가 하는 말을 다 들으시고 대답을 하시고 마음에 있는 말들을 단답형으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을 찾아간지 일주일 째 되는날 저는 권사님에게 “비록 병상에서라도 하나님께 회개 하세요”라고 권면을 드리면서 지나간 과거에 행한 모든 죄들을 겸허하게 회개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회개해야 건강도 회복하고 구원도 받을수 있기에 제가 주의 종으로써 진언을 한 것입니다.

 

제 진심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무슨 회개하라는 말을 했냐“라고 하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누구든지 죽기전에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기에 권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권면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 하라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병상에 누워 있다고 위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회가 되면 회개 하라는 말도 반드시 해 주어야 합니다.

 

참 목자와 거짓 목자의 다른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양이 잘못된 길을 가거나 위험한 길을 가면 목자는 막대기로 쳐서라도 위험한 길을 가지 않게 만듭니다. 꾸중을 하고 책망을 해서라도 돌아오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수제자 베드로가 잘못하자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고 책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삯꾼 목자는 절대로 책망이나 꾸중이나 교훈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도, 주일을 범해도, 술을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도박을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삶을 살아도 한마디의 책망이나 꾸중이나 바른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면서 먹고 마시면서 세속적인 삶에 동참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바울사도는 책망한 것입니다.(데전5:3)

 

그러나 참된 목자는 잘못된 길을 가면 꾸짖고 책망하고 야단을 칩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잘못된 길을 가면 안되기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때려서라도 바른길을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닫고 바로 서기만 하면 하나님이 새롭게 길을 열어 주십니다. 환란과 고난중에 있던 다윗도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오늘 본문과 같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라는 확신에찬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역사를 움직이는 손입니다. 예레미야 16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손은 대통령의 손도, 잘 나가는 대권주자의 손도 아니고 재벌의 손도 아닙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저울에 달아보고 계십니다. 구약 성경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바벨론왕궁에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서 글을 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벨사살 왕이 1천명의 술객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손이 나타나서 왕궁벽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손을 본 벨사살 왕은 얼굴이 하얗게 되었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한다하는 점쟁이들과 술사들을 다 불러서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게 했지만 아무도 그 글자를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글자를 해석 했는데 그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고 그 뜻은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자격 미달이 되어서 이제 왕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날 밤에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은 권능의 손이요 때로는 심판의 손으로 역사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영벌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는 손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손은 재물을 주관 하십니다.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성도 중에도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땅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재물이 남의 손에 넘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하게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친히 손을 내밀어서 그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은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은 사람을 붙잡는 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붙잡고 여호수아를 붙잡았습니다. 다윗을 붙잡았습니다. 원수의 나라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니까 고칠수 없는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그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나를 이 병상에서 고쳐 주시고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잔이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오늘 본문 5절은 23편의 절정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만족과 즐거움의 상태를 고백 하다가 이제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조차 축복해 주시고 마지막에는 “잔이 넘치게 채워주신다는”는 축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주님의 축복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궁합니다. “내 잔이 넘친다는” 말씀은 영적인 구원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도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퍼주고 나누어 주어도 마르지 아니하는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눅6:38)

 

더불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은 부어주신 은혜가 과분하다는 뜻입니다.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귀하게 쓰시려고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본래 미천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의 자리에 있을때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다윗은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사탄마귀에게 넘어가서 추악한 죄를 범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자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 하시고 그에게 다시 넘치도록 은혜와 축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잔이 넘친다는 말은 내 인격에 비해서 내가 살아온 모습에 비해서 내가 받은 은혜와 축복이 너무나 크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별로 한일도 없는데 크게 봉사하지도 못했는데, 기도도 많이 못하고 잘한것도 없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엄청난 은총을 쏟아 부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 잔이 넘친다는 말씀의 시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어제까지 넘치게 부어주신 하나님이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에서 “잔”은 기업 즉 재산을 비유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셨기에 날이 갈수록 점점 재산이 불어 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사람은 영육간에 재산이 불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목동 이었던 다윗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목자되신 하나님을 충성을 다해 섬기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엄청난 재산과 재물을 주시고 왕궁에서 살게 해 주시고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고 메시야 구세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명예까지 주셨습니다.(대상27:25-31, 29:2-5).

 

그런데 다윗은 복을 받고도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임금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재물을 자기의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아낌없이 다 바쳤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사람은 삶이 풍성해 지고, 기쁨의 잔이 넘치고 행복의 잔이 넘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는 사람은 종국에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천국은 아무나 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만이 가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업으로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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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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