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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5월26일 주일낮 눅15장1-24 참된 행복

그리운시냇가 2013. 5. 26. 21:30

 

 

오늘날 현대인들의 최고 관심사는 “3H”라고 합니다. 즉 health,건강과 home,가정과, 그리고 happy,행복입니다. 최근에 어느 여론조사 기관에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항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과연 이것만 가지고 행복 할 수 있습니까? 부자 중의 부자인 재벌 100명과 박사학위를 받은 지식인 100명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 라고 질문을 했는데 87%가 “아니오.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재벌이 행복하지 않고, 지식인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행복할수 있습니까?

 

독일의 시인 괴테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공부도 많이 해서 바이마르에서 재상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작가로 더 큰 명성을 얻었고 당시에 독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은 의외 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행운아라고 합니다. 나는 불행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 평생에 내가 행복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괴테는 이런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라는 여배우는 당대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여배우였습니다. 그녀는 전 세계의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습니다. 나는 매일 수백 통의 사랑의 편지를 받습니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 마음은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나는 하루 하루를 불행감에 젖어서 삽니다.

 

이상한 것은 내가 행복을 잡았다고 여기는 그 순간에 행복은 어느샌가 나를 지나쳐 가버립니다” 이런 고백을 한 그녀는 1962년 8월 5일 자기 집에서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을 닫는 해수욕장 같습니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 했습니다. 당

 

대에 가장 인기 있는 유명인사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행복합니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라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복자” 또는 “행자”라고 지었습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보다 지금이 살기가 백배 편하고 좋아 졌는데도 행복지수는 옛날보다 훨씬 더 못합니다.

 

왜 행복이 사라지고 불행감이 점점더 커지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 해답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세가지 비유를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가지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원망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5장 1절로 2절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자, 당시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판하면서 원망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교제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세리와 죄인들과 사귀고 그들을 가까이 하는 이유를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4절로 7절까지에 나오는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8절로 10절 에서 한 여인이 등불을 들고 방을 청소하면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비유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이 세가지 비유는 모두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너희가 얼마나 하나님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깨닳으라!”라는 의미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가지 비유는 하나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또한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을 잘 표현한 비유들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전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영광만 구하고 자기 배만 채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잃어버린 비유를 통해서 깨우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 이야기입니다. 어떤 목자가 양 100마리를 치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어 헤아려 보니까 그 중에 한마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놔두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온 산과 들을 헤맸습니다.

 

지난 금요일날 저녁에 허용식집사님이 만들어서 가져온, 저희 사택 앞에 있는 미니 동물원 안에있는 토끼가 땅굴을 파고 토끼장을 나갔습니다.

 

지 지난주에도 한번 굴을 파고 나가서 토끼를 찾아 헤멨는데 사방 팔방을 찾아 헤멘 끝에 드디어 한시간만에 토끼를 잡아서 토끼장으로 들여 보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날 낮에 토끼가 또 땅굴을 파고 집을 나갔습니다. 제가 설교 준비 하느라 낮에 토끼를 잡아 들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토끼가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으면서 신이 났습니다.

 

그러나 밖에있는 토끼는 행복을 보장할수 없습니다. 저희 사택 주변에 도둑 고양이들이 많은데 엄청 큰 고양이가 다닙니다. 그러니 언제 그 고양이한테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 나가서 한시간동안 토끼를 잡으러 쫓아 다니다가 못잡고 할수없이 그냥 들어 왔습니다. 토끼는 잡히는게 싫어서 도망 다녔습니다. 안잡히고 도망 다니면 그게 죽는 길인줄도 모르거 천방지축 도망을 다녔습니다.

 

제가 저녁식사를 한 후에 다시 서늘할 때 토끼를 잡으려고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밤 10시쯤 되어서 후레쉬를 들고 집 주변과 이웃까지 다 뒤졌는데도 토끼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밤 12시에 다시 나가서 찾는데 토끼가 마당에 와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게 너무나 기뻐서 잠자리채를 들고 토끼를 잡으려고 따라 다니는데 밭으로 이웃집으로 나중에는 초등학교 앞까지 도망을 가서 한시간동안 따라 다니다가 새벽 1시경에야 겨우 잡아서 토끼 우리에 넣었습니다.

 

토끼는 안잡히려고 죽어라고 도망을 다녔지만 그러나 그대로 놔두면 틀림없이 큰 고양이한테 먹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교회를 떠나면 자유로울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죄와 불행과 죽음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이 목자는 우리를 떠난 양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최선을 다해서 양을 찾았습니다.

 

이 목자는 양을 찾다가 배가 고프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밤새도록 찾아 다녔습니다. 이 목자가 양을 찾고자 하는 열심은 정말 대단한 열심 이었습니다.

 

이 목자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양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를 찾으셨는지 2000년전에 예수님이 하늘영광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방황하는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사도를 유럽으로 보내고 다시 영국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미국에서 다시 선교사들을 우리나라에 보내셔서 우리까지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믿고 이렇게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려고 노력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나를 찾기도 하시고 이웃들을 보내서 부르기도 하시고 목사님도 보내고 장로님도 보내고 권사님 집사님들도 보내고 친구도 보내서 우리에게 예수믿고 구원 받으라고 전도를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우리를 찾으셨기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2009년도에 아카데미 상을 여덟 개나 휩쓴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슬럼독 밀리언 에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인도의 가난한 슬럼가인 뭄베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서 자랐는데 이 아이는 고아로 자라나서 거지가 됩니다. 그래서 앵벌이도 하고 온갖 고난중에 성장을 합니다.

 

이 아이가 열 여덟살이 되었을때 그 아이는 6억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는 퀴즈쇼에 참가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예상을 깨고 최종 라운드에 올라 갔습니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가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서 최종 결승전에 진출하자 이 아이는 졸지에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가 됩니다.

 

그런데 퀴즈쇼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의혹을 갖게 됩니다. 이 무식하고 가난한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잘 맞추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뭔가 부정이 있다는 생각에 이 아이를 경찰서에 고발을 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그 아이를 잡아갔고 이 아이는 경찰서에서 심문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 아이의 성장 배경이 밝혀 집니다. 조사해 보니까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살아 왔지만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배운 경험과 지혜를 통해서 퀴즈의 정답들을 스스로 맞춘것을 경찰조사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무혐의로 풀려났고 다시 마지막 퀴즈를 풀기 위해서 퀴즈쇼의 자리로 나아 갑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 아이가 돈독이 올라서 돈을 벌려고 나온 것이라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회자도 “너는 왜 이 퀴즈쇼에 나오게 되었냐? 돈 때문이냐?” 라고 묻자 이 아이는 고백하기를 “아닙니다! 나는 돈 때문에 퀴즈쇼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위로해 준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후로 저는 그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수도 없고 찾을수도 없어서 “내가 퀴즈쇼에 나가면 혹시 그 여자친구가 TV를 보고 나를 찾아 올 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그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서 퀴즈쇼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아이가 마지막 문제를 맞춥니다. 그래서 6억원의 상금을 타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 여자 친구가 그 퀴즈쇼를 보다가 남자 아이를 보고는 달려와서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됩니다. 그 아이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 아이를 찾기 위해서 퀴즈쇼에 나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돈이 필요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것은 헌금 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서 천국으로 데려 가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오늘본문 누가복음 15장 8절 이하에서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드라크마는 이스라엘의 은동전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보통 노동자 하루의 임금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한 데나리온과 같습니다.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5만원 정도 됩니다.

 

유대인들은 결혼 할 때 신랑이 드라크마 열 개를 신부에게 선물을 합니다. 신랑이 자기 사랑의 증표로 드라크마 열 개를 주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이 사랑의 징표로 준 드라크마를 줄에 꿰어서 목에 걸기도 하고 서랍장에 넣어 놓기도 하고 풀어서 하나씩 만지작 거리면서 남편이 사랑의 징표로 준 드라크마를 소중하게 바라 보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인이 집에서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등불을 켜고 온 방안과 집안을 다 쓸면서 잃어버린 드라크마 동전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잃어버린 드라크마 동전 하나를 찾았습니다.

 

이 여인은 너무나 좋아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서 잔치를 벌렸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드라크마는 남편의 사랑이 담겨 있는 사랑의 징표 였기에 절대로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를 찾고 또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땅끝마을 남해까지 사람을 보내서 찾으신 끝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영국에서 구세군을 창설하고 대장으로 일한 윌리엄 부스는 영국에서 많은 사회사업을 하고 전도 사역도 감당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녀를 초청 했습니다.

 

왕궁에 들어가는날 윌리엄 부스의 참모들이 그녀에게 “혹시 여왕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까?” 라고 말하면 우리가 많은 사업을 하고 있기에 자금이 필요하니 돈을 좀 달라고 간청 하십시오!”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왕이 윌리엄부스에게 “내가 뭘 좀 도와 드릴까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윌리엄부스는 여왕에게 돈을 도와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왕님 저는 잃어 버린 영혼들을 찾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제가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참모들은 실망을 했습니다. 그때 월리엄 부스는 “우리가 주님의 유일한 관심사를 실천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 한다면 그 나머지는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맙시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31절로 33절에 보면 가장 유익하고도 분명한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행하면 내 인생에서 모든 여타의 문제는 주님의 해결해 주십니다.

 

제가 금번에 건축을 하면서 허용식집사님과 김안순집사님에게 정평관집사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평관집사님이 자기 교회에서 성전건축을 하는데 먼저 교육관을 리모델링 하고 그 다음에 지금은 성전건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평관집사님이 자기 교회의 교육관을 리모델링 할때 두달동안 아예 고물상에 출근도 안하고 아침 여덟시에 교회로 출근해서 밤 열두시까지 교회 건축에 올인해서 몸으로 헌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정평관집사님을 얼마나 기뻐 하실까?” 하고 생각하면서 “정평관집사님이 평생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정평관집사님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참 복이 있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평관집사님이 하는 말이 자기 교회의 청년들과 젊은 부부들이 다 자기처럼 헌신하고 봉사를 한다는 말에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모든 성도들이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단기 선교에 동참하고 매사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가장 반석위에 선 교회로 부흥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김안순집사님과 허용식집사님에게 금번 건축을 위해서 아낌없이 헌신해 주실것을 주문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정펑관집사님같이 충성과 헌신으로 섬기는 일군들이 많아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금번에 윤인준집사님이 600만원 상당의 건축 설계도를 무상으로 그려 주시고 건축 허가가 나오기까지 행정적인 제반 절차를 다 도맡아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김막순권사님 빽으로 아들 윤인준집사님을 통해서 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든 성도님들이 건축에 헌신적으로 동참해 주심으로 7000만원의 건축헌금이 모아 졌습니다. 그동안 제가 2년치 사례비를 드렸고 류복례권사님과 권옥란권사님이 천만원 김막순권사님과 조정숙권사님이 500만원 백주열 정봉임집사님이 300만원 그리고 강봉선권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200만원에서 100만원씩 건축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창조하는 분입니다. 가진것도 없고 벌이도 없는 가난한 시골교회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90%요, 평균연령이 70세요 대부분이 나이든 노인들로 구성된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서 이와같이 엄청난 건축헌금이 모아져서 개척교회와 식당을 리모델링하고 그리고 다시 60평의 식당을 짓고 다시 식당을 지은지 2년만에 성전건축과 노인 요양원을 짓게 된것은 정말 기적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 모든 기적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첫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사랑이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함께 하심이요, 둘째는 새벽마다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이요, 셋째는 남해 세광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모아진 결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전건축과 노인 요양원을 건축한 후에는 전도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전도도 성과가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금번에 전효인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시골교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준비된 귀하고 아름다운 여종을 하나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전효인집사님께서 부산에 살고있는 대학 동창인 박세권성도님을 남해로 모시고 왔습니다. 박세권성도님은 건축을 전공하고 벽산건설에서 근 10년간 건축에 몸담고 계시다가 여러가지 사업도 병행 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이제 남해에 오셔서 새출발을 하기로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실하고 믿음좋은 젊은 남녀 일군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믿음의 성도님들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예배가 끝난후에 여럿이 모여서 전도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여름에 수박을 사서 정자마다 다니면서 전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은 음식을 만들어서 독거 노인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전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도 띠를 두르고 노방전도를 하고, 그리고 성극도 연습해서 노인정이나 정자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 곳에서 성극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허용식집사님은 아무래도 자기는 성극은 어렵겠다고 고백 했지만 그러나 제가 보기에, 허용식집사님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인자하고 사랑많은 아버지 역할을 하면 아주 잘 할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휘해서 전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효인집사님은 앞으로 토요일날 와서 전도를 하고 금음집에서 자고 교회학교 차량운행과 예배까지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의 보배 장로님인 황수관 박사님 돌아가셨습니다. 황수관박사님이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것은 안타까왔지만 황수관박사님은 우리나라 기독교에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황수관박사님의 간증을 제가 들어 보니까 황수관박사님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 하셨습니다. 졸업후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셨는데 뜨거운 학구열에 다시 야간대학과 대학원을 공부 하시고 어렵게 어렵게 지방에서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강원도에서 의료에 관계된 교수님들 세미나 모임이 있어서 참석했다가 돌아 오는데 황박사님이 기차나 버스를 타면 늘 그랬듯이 기차안에서 자기 옆에 앉은 분에게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때 자기 옆에 노 신사가 앉아 있었는데 황박사님이 자기 간증을 하면서 기차를 타고가는 내내 그분에게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노신사가 전도가 다 끝나자 빙그레 웃더니 “사실은 나도 크리스챤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참 부럽습니다! 난 크리스챤이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전도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전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서로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하고는 명암을 꺼내서 주고 받으면서 통성명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이분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수석 교수님 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황수관 박사님도 의과대학을 나와서 지방대학의 교수로 있는것을 알고는 이 분이 “마침 우리 연세대학에서 의과대학 교수님을 한 분 뽑으려고 하는데 당신이 응시하면 내가 추천하겠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황수관박사님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교수채용신청을 했는데 그 높으신 교수님이 추천을 하는 바람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황수관박사님이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후에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유명한 교수님이 되셨습니다. 게다가 그때부터는 광고모델로 한번 나가면 무조건 1억 내지 2억을 받았습니다. 방송이나 대학이나 기업에 특별강연을 하러가면 한번에 몇 백만원씩 받았습니다.

 

그렣게 황수관박사님이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하나도 자기가 안쓰고 몽땅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시고 좋은일에 사용 하셨습니다. 그래서 황박사님은 더욱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황수관박사님은 전도 하다가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이 기뻐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때로는 고난도 따라 옵니다. 심지어 전도 하다가 이땅에서 순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도하다가 순교하면 하늘나라에서는 최고의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전에 아프리카의 맛사이 족이 사는 곳에 들어가서 선교하는 여 선교사님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맛사이 족에게 전도하러 가려면 맛사이 족이 자기들에게 온 손님을 접대 하는데 우유를 발효시켜서 만든 음료에 설탕을 타서 주는데 그 음료수를 가져오면 파리 떼가 몰려 든다고 합니다. 단 냄새가 나니까 파리가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맛사이족이 대접하면 그걸 먹어야 하는데 마시다 보면 뭔가 건더기 같은게 입에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뭔가 하고 빼보면 시커먼 똥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똥파리를 뱉어내고 또 마시는데 한번 그 음료수를 마실 때 보통 똥파리가 서너 마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똥파리도 마다않고 그 음료수를 마시면서 전도를 한다고 합니다.

 

전도 하는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섬김과 희생이 없이는 전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온갖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해 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살인범죄가 비일비재로 일어납니다. 걸핏하면 살인강도, 성폭행과 살인, 묻지 마 살인등 여러 가지 의도된 행동으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듣자 하니까 덤프트럭이 사고를 내면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장애인이 될 경우에 치료비와 보상비가 죽는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차라리 쓰러진 사람 위를 차로 한번더 깔아 뭉개서 아예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망으로 인한 보상이 장애로 인한 보상보다 훨씬 돈이 적게 들어가기에 사람을 아예 깔아 죽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귀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서 애쓰시다가 결국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목자가 양을 찾았을때 기뻐하면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왔다고 증거 합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자녀를 찾았을때 목마를 태우고 돌아오는 광경과도 같습니다. 그 만큼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목자는 너무나 기뻐서 6절과 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이웃들까지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고백 하기를 “나와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잃어버린 생명을 찾으면 하늘나라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교회에서도 한 영혼이 돌아오면 잔치를 벌이고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이어서 7절에 보면 이 이야기의 결론이 증거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돌아올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 하시는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 잃어버린 양의 비유 다음에는 드라크마의 비유가 소개되고 드라크마의 비유 다음에는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소개 됩니다. 탕자의 비유는 만인이 아는 유명한 스토리입니다.

 

탕자는 자기 딴에는 행복을 꿈꾸는 아들이었습니다.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는 꿈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소개한 비유에서 탕자가 세상에서 실패한 데에는 네 가지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탕자는 세상에 행복이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탕자는 상속받을 재산을 달라고 해서 아버지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갑니다. 그 먼 나라가 바로 세상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행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가 아닌,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탕자는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어! 나는 내 스스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세상에서 성공하면 돼!”하면서 아버지 집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참된 행복이 주어 집니다.

 

세 번째로 탕자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오해 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집도 생기고, 먹을 것도 생기고, 예쁜 여자도 생기고, 친구도 생기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돼!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라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근심이 자기를 찌르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딤전6:10). 그래서 철학가 베이컨도 말하기를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의 유원미길(有原末吉)이 쓴 “교훈예화사전”에 보면 단순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가 소개 됩니다.

 

큰 부자 상인의 건물에 한 가난한 신발 수선공이 세를 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은 부자는 언제나 날마다 벌어들인 많은 돈을 세면서 혹시나 도적이나 강도에게 빼앗길까봐서 밤이면 돈과 재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을 못잡니다.

 

그러나 구두 수선공은 가난하지만 늘 즐겁게 살고 노래를 부르면서 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자는 은근히 부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그 구두 수선공에게 많은 돈을 주어 보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구두 수선공에게 큰 돈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구두 수선공이 큰 돈을 받고나서 드디어 근심에 싸이기 시작합니다. “이돈은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아야지 누구라도 알면 훔치려고 할거야. 아내한테도 비밀로 해야지” 많은 돈을 가진 구두 수선공은 그때부터 사람들을 피합니다. 아내조차도 꺼려합니다. 오직 돈에만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에도 재미가 없고 옛날처럼 노래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당신 왜 갑자기 사람이 변했어요?” 하면서 계속 따지자 수선공은 할 수 없이 실토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울면서 “우리가 그 돈이 있기 전에는 행복했었는데 공짜로 생긴 그 돈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니 이제라도 그 돈을 다시 돌려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행복해 질거예요”하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큰 결심을 하고 그 돈을 부자에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부터 구두 수선공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돈만 많으면 행복해 질 거라는 거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번째로 이 탕자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멀리 떠나야 한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가장 큰 오해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서 멀리멀리 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가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 하면서 좀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하나님을 떠나 갑니다. 집을 나간 탕자는 돼지치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립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왜 이렇게 불행해졌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면 세상의 모든 자유와 행복과 기쁨이 내 것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나고 보니까 그때부터 불행의 시작이었고 파멸이 찾아 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들을 다 모아도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삶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나면 멸망과 지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떤 개인이나 국가나 민족이나 가정이 하나님을 떠나서 행복한 개인이나 국가가 없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역사는 껍질을 벗기고 나면, 결국 영적인 부분만 남는다” 역사란 권력을 잡은 자들이 투쟁해서 승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스토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나 우리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영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있습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거나, 입을 것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국민소득 만불을 회복했지만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호세아서7장9절에 보면 “저희가 이방인에게 그 힘을 다 빼앗기고 백발이 되어가는데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저기 바쁘게 돌아 다니면서 행복을 구했지만 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이 모든 고난과 환란을 당하고도 저희가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 했다고 증거 합니다. 그만큼 고난을 당했으면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아야 하는데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설익어서 여전히 애굽만 그리워 한다고 11절은 증거 합니다.

 

애굽은 세상입니다. 고난을 당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세상만 바라보고 사니 은혜와 축복이 올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다 참다 못해서 화를 선포 하십니다. 13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여 패망할 진저 저희가 내게 범죄 하였음 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말을 하고” 14절에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고 나를 거역하는도다”

 

저들이 하나님께 돌아온척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돌아온것이 아니요 안전한 처소와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돌아온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저들이 바쁘게 살면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을 하긴 하지만 헛수고를 하고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쁘게 사는데도 집에 가져오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니 얻는것이 없고 다 빠져 나갑니다.

 

여자들이 제일 짜증나는 것은 남편이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 바쁘게 일하는데 집에 가져 오는게 없을때 짜증이 납니다. 가져와도 어디로 새는지 돈이 다 새나갑니다. 그러니 아무리 가져오면 뭐합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 속에 황충이 먹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중요한 것입니다.

 

호세아 당시에 이스라엘은 다들 바쁘고 분주하게 살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헛수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호소한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지했던 그 발걸음들을 돌이켜서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돌리면 애굽의 조롱거리에서 벗어나서 여호와 닛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깃발을 높이 드는 승리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종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거제도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자기 교회에 큰 부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아들도 나중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장로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들 장로님이 아버지장로님의 엄청난 재산을 다 상속받았습니다.

 

아들은 하루아침에 그 지역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잘 했는데, 가면 갈수록 사업도 바빠지고, 정치쪽에도 머리를 드리밀고, 그러다 보니 장로가 주일을 빼먹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나중엔 가지 말아야 할 길도 가며서 타락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륜과 도박으로 전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결국 큰 빚을 진 그는 미국으로 야반도주하고 말았습니다.

 

당시에 그 동네에 살던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후! 하고 불어 버리니까 그사람 재산과 명예가 다 날아갔어!” 라고 이야기들을 했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극적인 전환을 하게 됩니다. 17절에 보면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리고 20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탕자는 돌이켜 아버지를 만나러 갈때까지 17절에서 21절까지에 8번이나 “아버지 아버지” 하고 아버지를 부르면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옵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평안이 있는 줄 깨닫고 돌이켰습니다. 탕자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버지께서 아들로서의 신분과 삶을 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까지 벌이면서 환영하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제가 종종 빅토르 위고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그는 탁월한 재능으로 글을 써서 인정을 받았고 정계에도 진출 해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공과 함께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권력자들과 어울리면서 고급 술집을 드나 들었고 술과 여자에 빠져 인생을 탕진 했습니다. 신앙이 좋았던 그가 타락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각성의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너무나 혹독 했습니다. 아버지가 타락한 길을 가는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한 그의 딸 레오가 강물에 몸을 던져서 자살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그 일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딸 레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는데 그 유서를 읽은 빅토르 위고는 감전된것 같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품으로 속히 돌아오세요.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거예요? 저는 존경했던 아버지의 비행에 상처를 받아서 세상을 마감합니다”

 

그는 딸이 남긴 유서를 보고서 비로소 회개를 했습니다. 자기 한사람 때문에 가족들과 더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 빅토르 위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파리에서의 화려한 죄악 생활을 다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새 사람으로 살기 시작 했습니다. 그가 회개한 다음에 새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회개한 후에 그가 쓴 작품이 “레미제라블”과 “노틀담의 곱추”입니다. 그 작품의 내용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던 자기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영적인 소설입니다.

 

회개한 그는 그후로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작가가 되었고 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참회한 이후에 빅토르 위고는 행복과 평안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가 국장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만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유일하게 대통령이 아닌 사람중에 빅토르 위고를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그의 인생도 빛이 났지만 이 땅을 떠났을 때 그의 인생은 더욱 빛이 났습니다. 그는 임종 전에 귀중한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긴 순간, 내 인생의 모든 저주는 다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저주는 떠나가게 됩니다. 슬픔과 고통도 끝나게 됩니다. 어떤 불행과 저주가 있을지라도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다 해결되고 행복해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 품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가운데 은혜안에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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