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고난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왕이 유명한 역사학자들을 다 불러 모아 “세계사를 한권으로 요약해서 올려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열심으로 세계사를 요약해서 한권의 책으로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왕이 보더니 “이거 너무 두껍다 더 줄여와라”라고 다시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으로 줄여 왔더니 “더 줄여라”합니다. 다시 줄여 왔더니 “한 장으로 정리해라” 합니다. 그래서 한 장으로 줄였는데 그 내용을 본 왕이 세계사를 한줄로 정의해 보아라 하고 다시 주었습니다.
그러자 역사 학자들이 세계사를 한줄로 정의를 내렸는데 “인류역사는 고난의 역사였다.” 라고 쓴 종이를 올렸다고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인생이 당하는 고난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서 노년이 될 때까지 사람은 살기위한 경쟁속에서 경제적인인 고난, 사회적인고난, 인간관계의고난, 육신의 질병의고난, 그리고 최후에는 죽음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은 고난 당한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 이유는 고난을 통해서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야 회개 합니다. 모든 것이 다 평탄하고 좋을 때에는 회개할 이유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길이 험해지고 역경이 다가오면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혹시 내가 벌받은 일을 하지 않았나?” 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전에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NBC 방송에서 종교 프로그램이 생중계로 방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반 방송사상 유래가 없는 사건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NBC방송이 방영한 내용은 미국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기독교 영성집회인 자마(JAMA)대회를 중계한 것입니다.
이 대회를 만든 분이 김춘근 교수님입니다. 김춘근교수님은 1967년도에 200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시체를 옮기고 치우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USC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끝에 한인 최초로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가 됩니다. 그는 페퍼다인 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페퍼다인 대학의 교수로 재직한지 4년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 교수로 승승 장구하면서 생활은 안정되고 여덟살된 딸과 두 살된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1976년 어느날 37세의 젊은 나이에 하늘이 무너지는 사건이 생깁니다. 간암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간경화가 얼마나 급하게 진행이 되었는지 수술도 할 수 없고 1년도 못산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절망적인 판정을 받은 김춘근교수는 하루 아침에 폐인이 되어 갔습니다. 배는 복수가 차서 점점 불러오고 호흡은 가빠지고 온몸이 아프고 힘도 빠지자 김춘근교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와 더불어 LA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빅 베어 마운틴으로 갔습니다. 산에 도착해서 오두막집을 빌리고 아내는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고 자기 혼자 산에 머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그때 김춘근교수가 하나님 앞에 절규했던 고백이 바로 Why me? “하나님 왜 하필 접니까?” “왜 하필 내가 이 병에 걸려야 합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라는 절규 였습니다.
김춘근교수님은 차가운 빅베어 산에서 슬픔속에 절규 하면서 하룻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동안 자기는 비교적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아 왔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죄를 지었다는 느낌없이 합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대학에서 기독학생회 회장도 지냈고 4년내내 장학생으로 공부(경희대 정경대학)하고 졸업할 때는 총장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주일학교 교사에, 성가대원에, 청년회 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스물 네 살에 총각집사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1967년도에 미국에 와서도 학교, 도서관, 교회, 가정밖에 몰랐습니다. 좋은 가장, 성실한 교수, 그리고 열심있는 집사로 큰 과오없이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을병에 걸렸으니 Why me? “하나님 왜 하필 접니까?” “왜 하필 내가 이 병에 걸려야 합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라는 절규가 나올만도 합니다.
그렇게 6일동안 탄식하며 울부짖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너는 네 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죽어가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네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네가 죽어가는 것을 모르느냐?”
그 말씀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탄식만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답답하셔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지적하신 영혼의 독소는 죄의 문제였습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김춘근교수는 자기를 돌아 보면서 회개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회개기도를 시작하자 지금까지 살면서 지은 모든 죄가 TV의 화면처럼 눈앞에 환상으로 펼쳐지는데 그 죄를 보면서 비로소 김춘근교수는 자기가 회칠한 무덤같은 인생을 살아 온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죄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회개하기 위해서 그 죄의 목록을 적었는데 무려 52페이지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날 비로소 김춘근교수는 자기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죄가 교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인 교만이 자기안에 가득 찬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6년 동안의 지독한 공부과정을 통해서 석사를 거쳐 미국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을때 까지 매일 평균 4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아내와 함께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병원청소, 시체 치우는 일, 주유소에서 기름넣는 일 등을 하면서 애썼고 비좁은 집에서는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병원 도서실에서 수많은 밤을 꼬박 새우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고생하면서 노력한 결과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1973년 1월달에 자기를 가르쳤던 7명의 교수들의 적극 추천으로 108대 1의 경쟁을 물리치고 페퍼다인 대학의 교수로 뽑혔고 교수를 시작한 후에 많은 논문발표와 스피치를 통해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만 4년만에 최우수 교수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해서 얻은 지식과 명예가 자기를 엄청나게 교만하게 만든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교수에 집사로 신앙생활을 했지만 주님 앞에서 속을 들여다 보니까 자기가 주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욕심과 교만에 빠져서 살아온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면서 살아 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춘근교수는 철저하게 회개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지내온 모든 신앙생활이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진것을 발견하고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통곡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회개하자 주님이 나타 나셔서 안아 주시면서 “내가 너를 치료하리라! 내가 너를 치료 하리라” 라고 말씀해 주시더랍니다.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김춘근교수님은 너무나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감격속에서 울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시편 118편 5절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그 말씀이 떠오르면서 “하나님이 나를 치료해 주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그래서 산을 내려 왔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김춘근박사님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대학의 교수들에게 자기가 체험한 경험을 간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병원에 가질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미쳤다고 조소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일년 이라도 더 살려면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병원에 다니라고 조언을 했지만 김춘근교수님은 병원도 안가고 기도하면서 주님만 의지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년만에 간암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후로 김춘근교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계획하고 그일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일이 바로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 즉 “미주 예수 대 각성 운동”이라는 단체입니다.
그 단체를 만든 김춘근교수님은 집회를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앙과 도덕성 회복운동을 통해서 수많은 청년들을 변화 시켜 나갔습니다.
김춘근교수님은 이제는 자마 운동을 하면서 다시 한번 “Why me?”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가 왜 나를 암에 걸리게 하셨습니까? 라는 탄식과 절망의 부르짖음 이었지만 이제는 “왜 저 같이 부족한 죄인을 이렇게 귀하게 써주십니까?”라는 감사의 고백으로 “Why me?”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고난은 축복의 예고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도 채찍을 맞고 고난 당하면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게 됩니다.
양떼를 기르는 목자가 양이 바른길로 가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면 막대기로 때려서 바른길로 가게 만듭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잘못된 길로 가다가 나중에 사나운 짐승에 잡혀먹던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래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보니까 평탄한 중에 회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평안하고 좋은데 왜 회개합니까? 그러나 고난당하면 회개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7절에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하였고 71절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고난은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징계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사랑과 훈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징계는 인간의 편에서 보면 고난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사랑입니다.
히브리서12장7절로 9절에 보면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라고 증거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에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면 파멸당합니다. 사람들은 꿈과 소망을 잃어 버리면 절망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던 사람은 고난당하면 더욱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고난이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게 만듭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후 한국교회가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세계에서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철야기도를 시작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산 기도를 시작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육간에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한국교회가 게을러지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의 불이 시들해지고 믿음도 형식화되고 열심도 잃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교회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열심을 되찾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방법을 동원하셔서 교회를 깨우십니다. 하나는 성령을 부으사 열심을 내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 핍박이 오게 하여 열심을 내게 하는 것인데,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핍박을 당하기 전에 회개하고 성령 충만을 받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죄의 댓가로 인한 사망의 고통과 질병의 고통과 온갖 고통을 하감해주시려고 예수님이 우리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할 엄청난 고통이 면제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깨닳았다면 우리가 주님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지어서 고난을 당할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일로 인하여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에는 상급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도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된 믿음과 교만한 자아를 무너뜨리려고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성도의 고난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유영교선생님이라는 유명한 조각가가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가 그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그 선생님이 저에게 “너 조각한번 안해볼래?”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조각은 제가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기에 “선생님 저는 조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사양을 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그 선생님의 충고에 순종 했다면 저도 조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선생님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나오셨는데 국무총리상에 대통령상까지 받으면서 승승 장구 하셨고 대학으로 영전하셔서 교수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끔 조각실에 가보면 그 선생님이 큰 바윗덩어리를 갖다놓고 열심히 조각을 하는데 그 큰 바위덩어리가 나중에는 아름다운 선녀가 되어 나타 납니다. 당시에 유영교선생님이 “운영” 이라는 작품으로 국전에서 조각부문에서 대통령상을 받으셨는데 저는 그 큰 돌덩어리가 아름다운 구름위를 나는 선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조각가는 바윗덩어리 속에서 자기의 꿈을 빚어 냅니다. 조각가의 꿈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냥 바윗덩어리이지만 조각가의 눈에는 그 속에 자기가 조각할 아름다운 형상과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서 조각가는 끌을대고 징으로 쳐서 바위를 찍어냅니다. 찍어내고 또 찍어내고 수천번 수만번 찍어내고 또 찍어내서 결국 아름다운 조각품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려고 계획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윗덩어리처럼 내멋대로 생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만드시려고 정으로 바윗돌을 찍어내는 조각가처럼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다듬으시고 성령으로 우리의 악한 습관들을 도려 내시고 더러운 죄는 십자가 보혈로 씻으셔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만드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과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새롭게 만드시려고 부단히 애쓰셔도 내가 변화되지 않고 탕자처럼 제갈길로 가면 하나님께서는 다리를 부러 뜨리던지 사업이 망하게 하던지 암에 걸리게 해서라도 우리를 성숙한 크리스챤이 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믿음좋은 정신과 의사인 칼 융(C. Jung)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슬픈 일을 당하거나 절망스러운 일을 당한 친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축배를 드세! 이제 곧 좋은 일이 생길 걸세!” 그리고 좋은 일을 만났거나 성공한 친구를 찾아 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곧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네! 그런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겸손하게 마음의 옷깃을 여미면서 지내게!”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끝없이 얽혀져서 진행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만났을 때는 곧 다가올 나쁜 일을 예상하면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나쁜 일을 만났을 때는 장차 다가올 좋은 일에 소망을 두고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유명한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Toscanini,1869-1957)는 세계적인 명지휘자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몇시간에 걸쳐서 연주하는 모든 악보를 다 외워서 지휘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악보를 외우게 된 이유는 선천적으로 그의 눈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는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하지만 점점 눈이 나빠져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는 피나는 훈련으로 자기 파트를 다 외우고 다시 다른 사람의 파트까지 다 외웠습니다. 왜냐하면 언제 무슨 파트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알아야 자기 파트에서 실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연주가 있을 때마다 전곡을 다 외우면서 연습을 했는데 하루는 연주회 직전에 지휘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전곡을 암기한 사람은 당시에 19세 밖에 안 된 토스카니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최측에서 하는 수 없이 토스카니니를 정규 지휘자를 대신해서 임시 지휘자로 단 위에 서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악보도 보지 않고 시종일관 아주 훌륭하게 지휘를 함으로써 연주를 성황리에 마칠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오케스트라 임원단에서 그를 정식 지휘자로 임명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이 평생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태어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토스카니니가 눈 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는 커녕 구라파의 한 첼로 연주자로 지내다가 이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때에,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신문에 보면 고난과 역경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그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자살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자살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남깁니다.
전에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한강다리에서 어린 두 자녀를 물 속에 던지고 자기도 죽으려고 했던 비정한 아빠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10억원 만들기 신드롬의 환상을 쫓던 아버지와 딸이 돈을 모두 탕진하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아버지와 딸은 딸이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금 5천만 원을 가지고 1년 이내에 10억원을 만들지 못하면 함께 자살하기로 약속한 후에 그 돈으로 로또복권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10억 원은 커녕, 매주 복권 사는데 5000만원을 다 날려 버리자 먼저 딸이 목매달아 죽고 아버지도 딸을 따라 죽으려다가 죽지 못하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자살은 가장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살은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됩니다. 마음만 바꾸면 자살이 살자가 됩니다. 고난이 변하여 복이 된 사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어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이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만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날은 어두워졌고 불행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마저 잃어버리고 배는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삼부자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보이더니 그 불빛이 점점 커져서 불기둥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이 보이는 곳이 바로 육지라고 생각하고 사력을 다해 노를 저어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뛰어와서 울먹이면서 소리 쳤습니다. “여보 막내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가 그만 집이 몽땅 불타버렸어요! 이제 어쩌면 좋아요!”하고 울었습니다. 그 순간 그 이야기를 들은 삼부자는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육지를 찾지 못해서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삼부자는 집에 불이 난게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고난이 다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고난은 때때로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쫓겨났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세운 것처럼 전효인집사님이 아발론 영어학원 원장으로부터 쫓겨 났기에 비로소 이곳에서 평소에 꿈이요 하고 싶었던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효인집사님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총회직영 신학대학원을 사이버 원격신학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효인집사님은 신학공부를 해서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서 하나님의 귀한 사역에 올인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고난의 도가니에 몰아 넣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길로 가게 만드십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감으로 회개하고 니느웨를 구원하는 선교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김안순집사님도 쫄딱 망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이 전에는 절에서 일등신도 였다고 합니다. 자기가 섬기는 절에서 불공도 일등 시주도, 연보도 일등, 봉사도 일등 하여튼 절에서 최고로 유명한 사람이 김안순집사님이었다고 합니다. 절에가면 돈 많이 낸 사람의 이름을 새겨 놓는곳이 많은데 김안순집사님 이름이 없는곳이 없을 정도로 일등신도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쫄딱 망한후에 불공을 드리러 갔는데 돈을 못내니까 그때부터 절에서 자기를 박대 하더랍니다. 그래서 화가나서 절에 다니는 것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그후에 전도를 받고 부산 반석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후에도 다시 힘든일이 있어서 사천으로 왔고 사천에서도 음식장사를 하고 이것 저것 하다가 또 망해서 낙심해 있다가 죽으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리 남해세광교회에서 부흥회를 할때 하나님이 우리 교회로 보내 주셔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충성된 일군으로 헌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또다른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위대한 신학자요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나는 고통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검은 구름 몰아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누구나 다 세찬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 뿐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몰려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대하느냐에 따라, 고난이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집회의 강사로 초청되어 기도원에 가서 4일동안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 열심히 설교를 한 후에 숙소에 돌아와 숙소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순간, 굉장히 큰 벌이 그 목사님의 목덜미를 쏘아 버렸습니다. 갑자기 날아와서 쏘는 바람에 피하지도 못하고 벌에 쏘이는 바람에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침대에 나가떨어졌습니다. 정신이 혼미하고 죽을것 같이 아팠습니다.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누가 이 방안에 벌을 가둬놓고 나를 골탕 먹인거야? 당장 쫓아가서 집회를 관장하는 목사님을 만나서 항의를 하던지 숙소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한번 따져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누워서 통증을 참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한편으로 “강사인 내가 따질일이 아니지! 벌에 쏘인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여기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따지려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통증이 가라앉자 목사님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집회를 잘 마쳤는데 손가락 만한 큰 벌이 나를 쏘는 바람에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벌이 제 방에 들어와서 제가 벌에 쏘였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 가지 감동을 주시더랍니다.
첫째는 “네가 이번에 목을 많이 쓸 텐데, 벌에 쏘이는 것은 봉침을 맞은 것이다. 네가 들어서 알다시피 봉침은 일반 항생제의 2,000배의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느냐? 네가 하루 세 번씩 4일동안 설교를 하다보면 목에 큰 무리가 갈텐데 그러면 이 산속에서 어떻게 병원까지 가서 주사를 맞거나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 먹겠느냐? 내가 미리 항생제와 더불어 보약 한 첩을 너에게 쏘았으니 걱정 마라!”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벌에 쏘인것이 감사한 일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산이라서 밤에는 기온차가 심한데 왔다 갔다 하다가 감기에 걸릴수도 있으니 내가 미리 너에게 몸이 따뜻해 지는 주사를 놓았으니 네가 감기에 안걸릴거다”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벌에 쏘이면 몸에 열이 나고 면역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따뜻하게 잠도 자고 목도 피곤하지 않게 집회를 잘 마쳤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해석의 차이입니다. 일이 생겼을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가운데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고난과 고통조차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들의 부족한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뿐,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살고 있는 한 집사님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는데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모텔에 잠시 머무를 때 목사님이 찾아와서 전도를 해서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봉사도 나름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습관을 고치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술만 먹으면 짐승으로 돌변하여 아내를 두들겨 패는 바람에 아내는 종종 눈덩이가 시퍼렇게 되어서 밤중에 목사님댁으로 도망 쳐 오곤 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아내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온 가정이 난장판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가서 상담하고 달래면 그 때는 머리를 끄덕이며 듣는 것 같은데, 술만 먹으면 또 난리를 치기를 반복하는 살벌한 가정이었습니다.
이쯤 되자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개입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남편이 손대는 일마다 다 망했습니다. 그 남편이 절망에 빠지자 비로소 하나님께 돌아 왔습니다. 아내를 따라서 새벽기도에 나와서 회개하고 엎드렸습니다. 이 집사님이 새벽에 은혜를 받고 철저하게 회개 했더니 부부관계도 회복되고 가정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그때부터 충성스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집사직분도 받고 열심히 충성을 하자, 하나님께서 이 집사님에게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 때까지 자기가 살던 오클랜드의 노스쇼어 지역에는 중국집이 없었는데, 노스쇼어 지역에 중국집을 개업하라는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이 마침 한국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친척이 있었기에 그를 6개월간 초대해서 중국집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척으로부터 6개월 동안 열심히 중국 요리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얼마후에 친척 요리사는 한국으로 귀국했고 이 집사님이 홀로 주방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가게가 얼마나 잘 되는지 식사 시간이 되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수년 동안 중국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다가 중국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다시 식품 제조공장을 차려서 오클랜드 시내에 있는 한국식품점과 중국식품점 등 아시안 식품점에 식품을 납품하는 큰 사업체를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나중에는 오클랜드 한국인 식품협회 회장이 되었고 안수집사가 되어서 매주 주일예배 후에는 교회에서 수백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봉사팀 팀장으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사업이 망한 것은 하나님의 회초리였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회초리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형통한 가운데서는 가르치실 수 없는 교훈을, 고난을 통해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히 고난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고난을 통해 잘못을 회개하게 하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가면 4명의 역대 대통령 기념관이 있습니다. 금번에 저희가 홍경희장로님의 배려로 대통령 기념관을 돌아 보았습니다. 미국을 세운 죠지 워싱톤, 미국 독립 선언문을 만든 토마스 제퍼슨,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20세기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플랭크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루스벨트대통령의 기념관이 세워진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1933년에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여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네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을 다스렸습니다.
대통령에 오른 그는 국내적으로는 1930년대의 대공황 타개를 위하여 뉴딜정책을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연합국을 리드함으로써 미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점은 그가 대통령에 네 번씩 당선되었고, 세계 평화에 앞장섰다는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그는 부장 판사의 아들로 상류 가문에 태어나 명문 그라톤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한 명문가 출신으로서 정치인이 되었기에 그는 그저 귀티가 물씬 풍기는 차가운 성격의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39세 때 척수성 소아마비 증세로 인해서 그는 다리를 못쓰는 중증장애인이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23년 동안 휠체어와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귀족이요 차가운 성품의 그가 중증 장애인이 되자 그의 인격과 신앙이 180도로 변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체장애의 어려움을 통해서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었고, 서민의 애환을 이해하고 서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질병과 싸우면서 인내를 배웠고 고난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 하면서 경제 대공항 앞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국민들을 격려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시민들은 장애자인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입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 지금까지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의 한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기념관은 지붕이 없이 야외에 조형물들을 세워 놓았습니다. 루스벨트 기념관은 루즈벨트대통령의 동상이 있고 그 옆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좋아한 애견 팔라의 동상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기념관에는 이런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질병은 그를 강인하게 만들었으며,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고통을 나누는 마음을 가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인내심을 길러 주었다.”
루즈벨트는 다리를 못쓰는 고통으로 인해서 겸손해 졌고 성숙한 인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물로 준비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쇠풀무 애굽에서 단련시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쇠풀무”는 용광로를 말합니다. 쇠붙이가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아져서 새로운 연장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구부러진것 녹슨것 부러진것도 용광로 속에 집어넣고 녹여서 다시 빚으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찌꺼기들이 다 제거되고 깨끗한 쇠로 또는 금이나 은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의 풀무속에 넣어서 버려야할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시고 정금같은 믿음의 사람을 만드십니다. 우리중에 지금 고난 중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세워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한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도 고난을 잘 통과하여 변화되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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