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안 졸고 한가지만 잘 깨닳으면 인생이 180도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주제는 성령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성자 예수님과,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신후에 세상에 오신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중에 한 분 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저도 이름이 세가지입니다. 제가 교회에서는 목사님이라고 불리우고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라 불리우고 아내에게는 여보 라고 불리우는 것처럼 하나님도 한분 이면서 세분이라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름이 세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분이면서 한분이기에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쉽게 비유한다면 태양이 둥그런 본체가 있고 거기서 뜨거운 열이 나오고 그리고 빛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한 분 이시지만 그 역할과 사역에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불리워 집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에게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시고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도와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주시고 천국이 믿어지게 하여 주시고 옛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지혜와 결단과 힘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무슨일이 있어도 성령님을 모셔야 하고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16절에 보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나에게 성령의 임재(臨齋)가 있을 때 가능해 집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최대교회 성도들이 그때부터 변화된 삶을 산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신실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오면 예배중에 또는 기도중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그러면 은혜를 받아서 좋은 생각을 결심하게 됩니다. “아!, 내가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나도 하나님을 위해서 이런일을 해야지!”하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마음이 바뀝니다. “다음에 하지 뭐!”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가면 “지금 어려운데 내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가서 하지뭐!” 그래서 성령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것은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명한 무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감동받은 첫 번째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고, 두 번째 생각은 내 생각이고, 세 번째 생각은 마귀의 생각이다”
이 말은 명언입니다. 정확한 진단입니다. 은혜를 받았을때 성령께서 주신 첫 생각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생각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달라지고 변질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생각 에 내 생각이 끼어들고 거기에 더하여 마귀가 뿌리는 가라지까지 더해져서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생각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까? 16절 중간에 보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17절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적하기 때문”이라고 증거 합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욕심은 절대로 하나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육체와 영혼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므로 사람은 영혼을 가진 생령(生靈)이 되었다”라고 창세기 2장7절은 증거 합니다. 우
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영혼에 성령께서 오셔서 내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육체는 죄의 속성이 남아 있기에 그때부터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욕심이 서로 대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우리의 옛사람이 사라진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다 해도 우리의 생각과, 몸의 기질과, 생활 습관은, 오랜 세월동안 죄로 물들어 있었고 세상 습관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 믿었다 해도 당분간은 예수믿기 전의 습관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예수믿은 김상철성도님은 고백 하기를 “목사님! 앞으로 제가 서서이 변화 될겁니다. 앞으로 믿음생활을 잘 할겁니다!”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남양의 김민섭씨가 돌아 가셨는데 김상철성도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오라고 초대를 하는 바람에 남해 장례식장에 다녀 왔습니다. 가서 보니까 우리 남양 분들이 많이 와 계셨습니다. 고재준집사님도 계시고 떼드리의 김규섭집사님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김상철성도님이 촌수로, 팔순이 다되신 김규섭집사님의 할아버지 뻘 된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문상을 하러 빈소로 갔더니 김상철성도님이 상을 당한 가정의 상주들에게 저를 인사를 시키면서 “이봐라 우리 목사님 오셨데이! 단대이 챙기라 잉!” 하면서 저를 소개 하셨습니다.
김상철성도님은 상을 당한 가정의 모든 가족들에게 저를 소개 시키고 싶어서 저를 초대하신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기를 잘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상철성도님이 얼마나 저를 좋아 하시면 가족들이 다 모인 상가에 저를 초대 하셔서 인사를 나누게 하셨겠습니까? 돌아 오면서 사모와 함께 “김상철성도님이 참 마음이 깊은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도 김상철성도님이 택시를 타고 오셨는데 저를 불러서 갔더니 택시 기사를 소개시켜 주시면서 이 택시 기사가 동생벌 되는데 앞으로 우리 교회에 데리고 나올 겁니다. 하고 전도를 하셔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때부터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성령 사이에 싸움이 시작됩니다. 예수 믿기전까지 오랫동안 내 안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죄의 세력이 아직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우상숭배를 하면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체험 했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이 내리자 바로왕이 진절머리를 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보냈습니다. 바로왕의 군대가 추격하자 하나님은 홍해바다를 가르고 그들을 물에 빠뜨려 수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도 그들의 본성은 좀처럼 바뀔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바다를 갈라서 마른땅처럼 건넌 지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원망불평을 했고 광야에서 지낸지 두 달 보름이 되자 종살이를 하던 애굽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원망불평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빠져나오는 데는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 되는 데는 무려 사십년이 걸렸습니다. 우상숭배와 죄악에 물든 마음이 부서지고 깨어져서 새사람으로 변화되기가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교회에서 직분까지 받았어도, 심지어는 성령 체험을 하고서도, 여전히 세상 죄악을 뿌리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사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원망불평하면서 사는 습관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었으면 믿은 그 순간부터 신앙훈련, 영성훈련, 기도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열심히 신앙훈련을 받으면 믿음이 쑥쑥 자라나고 믿음이 강해지면 더 이상 마귀에게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때 레슬링경기인 그레꼬로망형 66㎏급에서 김현우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김현우선수가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김현우선수를 보니까 오른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눈텡이가 밤탱이가 되어서 눈에 계란만한 시퍼런 혹이 달려 있었습니다. 김현우선수는 눈이 부어서 앞도 안보일 정도 입니다.
김현우선수가 예선전부터 계속 상대 선수와 부딪히다 보니까 결승전때에는 눈이 크게 부어 올라서 혹달린 사람이 나와서 경기를 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김현우선수가 올림픽에 나가기 전에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나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습니다!”라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김현우선수는 태생부터 운동선수 체질이었고, 체형과 근력도 타고난 선수 였지만 그러나 그는 365일 쉬는 날 없이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아침훈련으루부터 시작해서 웨이트트레이닝, 매트 훈련, 야간 훈련까지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직옥훈련을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그가 금메달을 딴 후에 기자들에게 한 말은 “죽기 살기로 해서 하나님과 부모님을 감동시키고 싶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고,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김현우선수의 금메달은 정말 땀흘린 댓가요 훈련의 결과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 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신자다운 영성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대충 훈련하고 대충 노력하면 금메달은 커녕 후보 선수에서도 퇴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잘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일군이 되려면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라고 명령 했습니다. 이 말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도 육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 헛갈리는 어중간한 성도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었지만 여전히 육신에 속하여 사는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고전3:1) 라고 바울사도는 증거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 믿음이 자라나지 않은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신안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과 니고데모는 둘 다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72명으로 구성된 최고의 권력기관인 산헤드린 회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입니다. 종교 지도자면서 정치 지도자입니다. 그들은 부자요 대단한 권세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치에 있었던 니고데모가 어느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찾아 왔습니까?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뭔가 해결되지 않는 영적인 갈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낮에는 찾아오지 못하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바리새인들과 공회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출교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나라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도, “혹시라도 내가 예수님을 찾아 갔다가 공회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거나 배척당하거나 출교를 당하거나 권력과 명예와 재산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니고데모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사실 니고데모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왔고 오랜 세월동안 종교생활을 해 왔습니다. 교회에 와서 열심히 주일을 성수하고 성경도 보고 직분도 받고 봉사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니고데모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3:2)
그런데 예수님이 동문서답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예수님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니고데모에게 뜬금없이 거듭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살아 갑니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입니다. 내 생명을 돈 한 트럭하고 바꿀 사람이 있겠습니까? 세상을 다 준다해도 생명을 잃으면 그게 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고귀한 생명이 죄와 허물로 죽고 맙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은 인간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영이 죽됩니다. 살아 있지만 죽어 있기에 하나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영이 살아있어야 하나님을 압니다. 영이 죽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영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기관입니다.
사람의 영이 죽으면 육체의 욕심만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최고의 불행인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것도 죽음을 이기는 “새 생명”을 받는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죽음을 이기는 “새 생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죽은 생명을 새 생명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니고데모는 공부를 많이 했어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박사가 엉뚱한 말을 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3장4절)
니고데모는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영이 죽은 사람이기에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아노텐인데 세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새롭게 난다. 둘째, 두 번째로 난다. 셋째,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다시난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말은 사람의 육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이 다시 태어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6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육은 육을 낳지만, 성령은 영을 낳는다.”(NIV) 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첫 번째 출생은 육체적 출생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몸이 태어납니다. 두번째 출생은 영적인 출생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영을 거듭나게 하시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거듭남의 비밀을 니고데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요3장5절)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라는 말씀은 “물 곧 성령으로”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7장 38절로 39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 하신 것이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이 바로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변화 되는데 그때부터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은혜와 기쁨이 죽을때까지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사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요한복음1장 12절로 13절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처럼 불순종하면 성령님은 떠났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기만 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 와서 계십니다. 그러나 내가 죄를 지으면 성령님은 내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성령님을 찾지 않으면 성령님은 내 안에 안 계신 것처럼 조용히 계십니다.
반대로 내가 성령님을 사모하면서 성령충만을 구하면 성령님이 나에게 강하게 임하셔서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한편 성령충만을 받고도 교만하면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성령받아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해도(마7:22) 자기 영광을 위해서 권능을 행하면 예수님과 상관없이 지옥에 갑니다. 예
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 일하다가 타락했고 은사를 많이받은 고린도교회는 서로 싸우고 다투면서 파벌이 생겼고, 심지어 고린도교회는 바울사도가 사도가 아니라고 떠들어 대면서 바울사도를 무시했습니다. 이와같이 자기 영광을 구하거나 성령을 따르지 아니하면 교회도, 개인도 마귀에게 끌려다니게 됩니다.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스테이트 거리 343번지에는 세계최대 필름제조업체인 코닥 본사가 우뚝서있습니다. 그런데 코카콜라와 월마트와 함께 미국을 상징해온 코닥필름이 몇 년전에 경영난에 부딪쳐 파산보호신청을 했습니다. 회사가 망한 것입니다.
한때 코닥은 1970년대 미국 필름시장의 90%와, 카메라 시장의 85%를 점유했고 14만명의 직원을 고용한 거대한 공룡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도래를 과소평가하고 교만하게 운영하다가 결국 문을 닫게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만 했기에 주어진 결과입니다.
1866년도에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토마스 선교사는 대원군의 쇠국정책 때문에 대동강변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의 나의 스물 일곱 살 이었습니다.
토마스선교사는 원래 영국에서 중국으로 파송한 선교사 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온지 1년만에 아내가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사람을 만나서 한국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무참하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토마스선교사가 죽기 직전에 포졸 박춘권에게 성경을 던져 주었는데 그 성경을 읽은 박춘권은 장로가 되었고, 최치량은 평양교회를 설립했고, 박영식은 널다리 교회를 세웠습니다. 성령에 감동된 한 사람이 성경을 들고 들어와서 순교의 피를 흘렸는데 그 열매는 오늘날 천만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하노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358년의 역사를 가진 유명한 교회인데 웨일즈 부흥운동의 중심에 서있었던 성령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서, 성령이 충만한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 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선교사 이후에 하노버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노버교회는 사향길로 접어 들어서 지금은 매 주일 10명 정도의 성도들만 모여서 예배 드리는 초라한 교회로 쇠락해버렸습니다.
과거에 그렇게도 찬란한 세계 부흥의 주역이 되었던 영국 교회들은 이제 하나 하나 극장으로 식당으로 팔리고 이슬람교 사원으로도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교회가 걸어간 모습은 점점 무기력해져만 가는 한국교회와도 비슷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지 않거나 뜨겁게 기도하지 않고 적당하게 대충 믿으면 영국교회처럼 망하게 됩니다.
교회의 본질은 성령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되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도 성령이시오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앗하”인데 루앗하는 바람, 숨결, 생기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에서 성령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요14:6)인데 파라클레토스는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남을 돕는자, 변호사” 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6장 7절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가 승천해서 하늘나라로 떠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떠나셔야 우리를 돕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활동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나 갈릴리에 동시에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동시에 모든 성도를 도우실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치시는 스승과 교사가 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날 스승의 날에도 스승되신 성령님에 대해서 가장 많은 비중으로 성령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기차가 지나 가는데 서부를 달리는 기차들은 뒤에 화물칸을 보통 100개에서 많으면 150개씩 달고 갑니다. 화물칸 백개를 달면 기차의 길이가 일키로가 넘습니다. 엄청난 길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화물칸을 달고 갑니까? 우리나라는 어떤 기차든지 기관차 한 개로 기차를 끌고 갑니다. 그러나 화물칸을 100개 또는 그 이상 끌고가는 미국의 기차는, 앞에서 끄는 기관차가 3대 또는 4대입니다. 기관차 서너 대가 같이 끌고 가기에 그 많은 화물차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살이를 살아가다 보면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버거워 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짐과 처자식의 짐과 농사의 짐과 사업의 짐과 교회의 짐과 부모의짐과 이웃의 짐까지 짊어지고 가다보면 힘에 부쳐서 건강도 나빠지고 힘에 부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저 앉기도하고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이럴때에 힘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부탁께서 내 인생의 짐을 해결해 주시도록 그분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기만 하면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보면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증거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동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더 가까이에서 돕기 위해 서 내안에 내주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되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분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거처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함과 성결함을 유지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백광영집사님처럼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17절에 보면 예수 믿은 사람을 향하여 “그런즉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까? 그 비결을 다시 소개 합니다.
첫째는 내 마음을 열고 성령님을 초청하고 모셔 들이면 그분은 내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동거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러니까 내가 성령님을 초대해야 합니다. “성령님 내 마음에 들어오세요 내 인생을 다스려 주세요 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인도해 주세요”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 성령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23)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성령이 기뻐서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세 번째는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성령을 선물로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전에 냉장고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중고 냉장고를 사서 썼는데 한 2년 지나니까 냉장실도 안되고 냉동실도 작동이 안됩니다. 그런데 냉동실에는 눈이 쌓인 것처럼 얼음이 결빙이 되어서 냉동실이 얼음꽃으로 꽉 찼습니다.
그래서 냉장고를 수리하는 분을 불렀더니 냉장고에 있는 모든 내용물을 다 꺼내놓더니 뜨거운 물을 부어서 얼어있는 냉동실의 얼음을 다 녹이고 냉장실도 다시 청소를 한 후에 말려서 전기선을 꽃았더니 다시 잘 작동이 됩니다.
그래서 원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냉장기계에서 찬바람이 나와야 하는데 얼음이 얼어서 찬바람이 나오는 통로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냉장이 안되어서 냉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날 저는 귀중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 속에 죄가 가득차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에 성령은 오실수도 없고 내안에서 일하실 수 도 없다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이사야 59장1절로 3절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죄가 있으면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막혀 버립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죄를 이기고 크리스챤답게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1907년 평양장대현교회로부터 시작된 성령강림의 역사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해가 바로 1907년이요, 부흥의 중심에 서 있던 교회가 장대현교회입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14일 동안 전국남전도회 부흥사경회가 장대현교회에서 열렸습니다. 그날 말씀의 불이 선포 되는데도 분위기가 냉랭하고 은혜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길선주 장로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일전에 친구가 죽으면서 자기 아내는 무식하여 재산을 관리할 수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맡아서 잘 관리해 주게나” 하고 부탁하고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중에서 일부를 착복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이시간에 저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길선주장로가 목멘 소리로 회개하자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마음문이 열렸고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너도 나도 앞 다투어 나와서 줄을 서서 자신의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날 모든 사람들이 통회자복 하면서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이 회개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 전체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개인적인 회개가 성령강림을 가져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나 자신이 성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한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새롭게 만듭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교회의 변화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할 때 일어나게 됩니다.
넷째 성령님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충만이 임합니다. 사도행전10장에 보면 이탈리아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소개 됩니다. 고넬료는 항상 경건한 삶을 살면서 기도한 장교입니다.
그가 어느 날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환상의 계시는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계시 였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사람을 욥바로 보내서 베드로를 초대했고 베드로가 올때 고넬료는 자기 가족과 이웃까지 다 모아놓고 기다렸습니다. 모인 무리앞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하자 그곳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로 46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라고 증거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하고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때 늘 성령이 임하기에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성령충만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안수기도를 받을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8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서 안수하며 기도했더니 성령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나에게 안수를 하면 성령님이 임할 것을 믿고 안수기도를 받으면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19장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푼 후에 그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했더니 성령님이 임하셔서 방언과 예언을 했다고 증거 합니다.
구약성경에도 안수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다는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신명기34장9절에 보면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할렐루야!
혼자서 기도할 때 임하지 않던 성령님이 주의 종이 안수를 하면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대망(待望)하며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요엘서2장 28절로 30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예수님도 승천 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1:4-5)라고 말씀 하셨고 오순절 날에 한 곳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할 때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체험 했습니다.
그 광경이 사도행전2장1절로4에 소개 됩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우리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을 받게 됩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성령받을 때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누가복음11장13절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할렐루야!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이 구하면 좋은 것을 주시는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끝으로 성령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기도 합니다. 출애굽기31장에 보면 성막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기술자를 세워 주시는데 하나님이 직접 지명을 해 주시면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유다 지파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과 단 지파의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에게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다”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구약시대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을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사무엘상10:9-10)
다윗도 마찬가지로 사울이 기름을 부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필요로 하실 때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분입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성령님을 모셔 들이고 그분과 동거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에 형통한 은혜가운데 살게 됩니다 .
아무쪼록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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