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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6월9일 주일 낮 사도행전2장43-47 좋은 교회

그리운시냇가 2013. 6. 9. 17:42

 

성도는 아무리 힘든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힘이 나고 소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영혼을 소생시키고 불일듯 사명을 감당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이 소생하고 성령충만도 받아서 힘차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에는 남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한 목사님이 거제도에 있는 한 교회에 부임해서 목회를 시작 했는데 시찰 교역자회가 있어서 갔더니 모임 후에 시찰장 목사님이 광고하기를, “오늘 점심은 “할매 곰탕집”에서 식사를 하겠습니다” 하더랍니다.

 

거제도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이 목사님은 그 광고를 듣고서 속으로 “아니 목사님들이 모였는데, 곰탕은 무슨 곰탕!” 하면서 별로 기분이 안좋더랍니다. 그래서 아는 목사님에게 “교역자들이 모였는데, 곰탕을 먹으러 갑니까?” 했더니, 그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그 곰탕집은 이곳 거제도에서는 아주 알아주는 유명한 곳입니다. 먹고 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한번 먹어보세요!”하더랍니다.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그 곰탕 집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주차를 해 놓고 비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는데 집도 허름하고 내부 시설도 구닥다리에 형편 없는데다가 안을 들여다 보니까 앉는 자리도 좁고 불편합니다.

 

그런데 손님은 얼마나 많은지! 그 불편하고 구석진 음식점에 손님이 바글 바글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서 식사를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다른음식점으로 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사님들이 기십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들어가서 곰탕을 시켜 먹었는데 먹어 보니까 정말 맛이 기가 막히더랍니다. 국물도 진국에 고기도 부드럽고 맛있는 고기가 씹히는데 그 맛이 다른 어느곳에서 먹어본 곰탕보다 맛이 있더랍니다. 게다가 김치와 깍두기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두가 곰탕을 먹느라고 말도 잘 안하고 열심히 먹기만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그 허름한 식당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리면서 곰탕을 먹는지가 이해가 되더랍니다. 그후에 이 목사님이 그 곰탕집의 단골손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곰탕 집이 개성있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손님을 끌듯이 교회도 예배가 살아있고 사랑이 넘치고 갈급한 영혼에 생명수를 제공하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드려지고 전도에 열심을 품으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부흥성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2010년에 출판된 책 가운데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김종훈 회장의 경영철학은 “훌륭한 일터 만들기” 즉 직장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 이었습니다. 김종훈회장은 그 책에서 회사가 잘되는 법을 소개 했습니다.

 

“회사가 잘되려면 출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회사를 만들어라!, 아침에 눈을 뜨면 직장에 가서 일할 생각에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지는 회사를 만들어라!, 휴가를 갔는데도 회사의 동료들과 직원들이 보고 싶어서 빨리 출근하고 싶어지는 회사를 만들어라!” 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는 곳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가고 싶은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늘 교회가 가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교회를 좋아 했는지 그들은 모이면 헤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모여서 예배 드리고나면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교제하고 나중에는 아예 함께 동거 동락했습니다.

 

그러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왜 사람들이 모이고 싶은 교회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첫째로 예배가 뜨거운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2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사도의 가르침은 설교를 말합니다, 교제하고 떡을 떼는 것은 성만찬을 말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말씀에 감격하여 기쁨이 넘치고, 천국을 경험하는 그런 예배가 드려지는 교회가 가고 싶은 교회입니다.

 

지난 수요일날 시애틀에서 이사오신 박승옥집사님과 강오심권사님의 조카 고채금집사님이 강오심권사님의 초대로 우리교회의 수요저녁예배에 동참하셨습니다. 박승옥집사님은 미국에서 오셨는데 독일마을에 집을 지으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승옥집사님과 고재금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 이런 시골교회에서 이렇게 은혜스러운 예배가 드려질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나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을 하시더랍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런 예배가 드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고, 찬양을 통해서 감동이 넘쳐 흐르는 교회입니다.

 

아울러 가고싶은 교회는 기도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내 영혼이 살고 내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사는데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반드시 부흥합니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수녀는 기도를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긴 여인입니다. 그녀는 기도하면서 늘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I am nothing.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979년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받을때도 소감을 말할 때 그녀는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I am nothing.“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계가 존경하고 그녀를 위대한 여인으로 숭앙하는데도 자기는 고백하기를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인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물론 테레사에게도 만나면 웃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모함하고 시기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비판하고 정죄할 때마다 테레사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세요! 주님! 저를 도와주셔서 저 사람들 앞에서도 제가 미소를 띠게 하여 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웃으면서 일을 했더니 일이 쉬워졌다고 그녀는 고백 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조수를 뽑을 때 언제나 세 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첫째, 잘 웃는 사람, 둘째, 잘 먹는 사람, 셋째, 어디에서나 잠을 잘 자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또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은 어려운 시련도 잘 견디고 일도 잘하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가능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언제나 성령충만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는 늘 풍성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오늘본문 42절에서도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기도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고 병고침의 역사도 일어나게 됩니다. 기도가 풍성한 교회가 가고 싶은 교회입니다.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님은 영국 런던에서 목회를 했는데 1870년대 당시에 2만명이 모였으니 세계 최고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은 평소에 외부에서 교회를 방문하는 인사들이나 목사님들 또는 사절단이 오면 그들을 항상, 본당보다 아래층으로 먼저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본당 아래층에는 기도실이 있었는데 그 기도실에는 365일 날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바글 바글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은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이것이 제 목회의 비밀이요! 우리교회가 부흥한 비결입니다! 저 성도들이 나의 힘이며 우리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 발전소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청소년시절에 다니던 홍광교회나 청장년때 다니던 서울 세광교회에도 날마다 저녁이면 기도하러 오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늘 철야기도하는 분들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런 교회가 부흥성장 합니다.

 

스펄젼목사님은 설교보다도 성도들의 기도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 했습니다. 영국교회는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황금기를 누리고 세상을 구원해 내는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이 전에 벧엘교회에 새벽기도를 하러 갔는데 성도가 몇 명 안되는데도 교회가 떠나갈것처럼 우렁차게 기도를 하더랍니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우리도 새벽마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라야 오고 싶어 집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배와 함께 “사랑의 교제”를 강조합니다. 42절에 보면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모든 표현들이 교회에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들 입니다. 그들이 헤어지기 싫어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나면 먹고 마시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고,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힘을 잃습니다.

 

이만재 씨가 쓴 책 가운데 “교회에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안다니는 사람이나 교회 가기 싫은 이유가 소개 되는데 그 이유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마디로 “교인이나 세상사람이나 별반 다를게 없어서 교회가기 싫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뭔가 다를줄 알았는데 막상 교회에 가서 보니까 교인들이 더 쫌생이 같고 속도 좁고 그놈이 그놈같아서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주셔서 귀하게 쓰임받은 일군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본래 수도원의 수도사였습니다. 그가 제일 관심을 기울인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루터는 조그마한 죄도 자기의 마음속에 남겨두질 않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자기생각이 엉뚱한 쪽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게되면 그는 얼른 성당으로 뛰어가서 “신부님 내가 이런 죄악된 생각을 하는 바람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세요!”하고 고해 성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네 죄가 사해 졌느니라”라고 선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루터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또 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면 집으로 가다말고 다시 성당으로 가서 또 고해 성사를 했다고 합니다.

 

루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성당에 찾아와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오니까 나중에는 신부가 짜증이 나서 “루터야! 죄를 좀 모았다가 한꺼번에 가져오너라!”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정도로 루터는 자기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 후에 루터는 카톨릭 사제 수업을 받고 신부가 됩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면 죄를 멀리하고, 죄가 사라지고, 죄를 안지을줄 알았는데, 성당에서 아름다운 수녀들과 함께 지내고, 신도들을 목회하고 상담하면서 그리고 성도들의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성도들의 적나라한 죄악을 알게 되니까 오히려 점점 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어떻게 하면 내 죄를 깨끗하게 할 수가 있을까?”를 고민 하다가 로마에 가서 성지 순례를 하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1510년 11월에 로마로 갔습니다. 루터는 스칼라 산타 성당(Scala Santa)으로가서 “거룩한 계단”이라고 불리우는 28개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면서 당시의 관례에 따라 계단을 한계단 한계단 무릎으로 기어오를 때마다 주기도문을 한번씩 외우고 계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런 고행을 통해서도 사죄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후에 루터는 독일로 돌아와서 로마서를 공부 하다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라는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행함으로는 절대로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공로로도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도 믿음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루터는 그 후에 비로소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종교개혁을 감행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죄를 멀리하고, 죄문제를 해결받은 사람을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보혈의 공로로 정결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됩니다.

 

정치권과 재계에서 종종 세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저들이 온갖 방법으로 돈 세탁은 할 줄 알면서 왜 마음세탁은 안 하는걸까?”하고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게 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양심세탁과, 인격세탁, 그리고 영적인 세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으면 하나님이 쓰시는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사도는 목회사역을 감당할 디모데에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후서 2:21) 라고 권면 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 보혈로 정결함을 받고 주님께 쓰임 받는 일군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더불어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얼마나 사랑이 넘쳤는지 날마다 잔치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예수님도 늘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자고로 교회에서는 먹고 마시는 행사가 많아야 합니다. 먹는데 팍팍 써야 합니다.

 

요즘 부흥하는 교회들은 건전한 놀이문화를 활용 합니다. 낚시대회, 볼링대회, 체육대회, 부처별 야유회등 모두가 서로 어울려서 놀때는 놀고 일할때는 열심히 일합니다.

 

정평관집사님이 다니는 교회도 단기선교때나 건축때는 전 교인들이 모두 다 열심히 동참하고 놀때는 신나게 놀면서 즐겁게 사랑을 나눕니다. 그런 교회가 부흥이 됩니다.

 

네 번째로 좋은 교회는 전도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47절에서 보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전도가 되겠습니까? 베드로와 열 한 제자가 나가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도 보면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여지는 교회가 진짜 잔칫집 같은 교회요, 기쁨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지난 수요일날 김상철성도님이 처음으로 수요일날 교회에 오셨습니다. 지난 주일날 김상철성도님이 예배가 끝난후에 저에게 “목사님! 제가 수요일날 김민우씨와 박덕매씨를 전도하러 오겠습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마음이 기뻤습니다.

 

김민우씨와 박덕매씨는 제가 개인적으로 전도대상자 1호로 삼고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우리교회 바로 앞집에 사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김민우씨와 박덕매씨를 전도 하려고 지금까지 5년동안 무진 애를 쓰는데도 눈하나도 깜짝 안합니다.

 

5년동안 우리 교회에서 잔치가 있거나 별미를 만들면 다른집은 몰라도 김민우씨와 박덕매씨 집에는 꼬박 꼬박 음식으로 섬겼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받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바윗돌에 계란 던지기입니다.

 

그런데 김상철씨가 하는말이 김민우씨가 자기 친척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요일날 전도하러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수요일날 김상철성도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한잔 하고 성경책을 들고 오셨습니다.

 

예배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 오셨는데 김상철성도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내가 아무리 교회 가자고 전도해도 씨도 안먹히네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꿈쩍도 안합니다” 합니다. 그러면서 “남해에 꽹과리 치고 농악을 잘하는 사람에게도 전도해서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했는데 안옵니다” 하면서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계신 하나님이 누구를 가장 기뻐 하시겠습니까? 자기땅을 내고 돈을내서 교회를 세웠다고 교회에서 어른노릇하고 왕노릇하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비록 술은 마셨지만 성경책을 들고 전도하러간 김상철성도님을 좋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헌금 많이내고 상석에 앉아서 왕노릇하는 그런 사람이나 전도하지 않는 성도보다 비록 술은 한잔 마셨을 지라도 전도하는 김상철 성도님을 백배나 좋아하십니다 믿습니까? 술을 안마시고 전도했으면 100점 이지만 그래도 술마시고라도 전도하러 간것은 99점입니다.

 

전도 안하는 사람은 하나님앞에서 낙제입니다. 59점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을 가장 기뻐 하십니다. 종종 말씀 드리지만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은 전도상입니다.

 

전효인집사님은 남해에 오면서부터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서 전도하고 싶어서 견딜수가 없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그 고백대로 어디서든지 사람만 만나면 전도를 하고 다닙니다. 우리도 같은 열정으로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전효인집사님은 지난주에 총회 신학대학원에 입학 하셨습니다. 앞으로 신대원 3년 과정을 사이버 원격신학으로 컴퓨터로 공부하고 여름과 겨울에 신학대학원에 가서 계절학기 수강을 하면서 6학기를 마치면 목사고시를 보게 됩니다. 

 

전효인집사님이 신학대학원에 입학 하셨기에 집사님은 오늘부터 우리 남해 세광교회의 전도사로 임명을 받고 교역자로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전효인집사님은 그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오랜 세월동안 수준높은 성경공부와 더불어 각종 영성훈련을 받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된 일군을 우리 남해 세광교회에 보내 주심을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전효인집사님이 전도사님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모두가 기도 바랍니다. 

 

김안순집사님도 음식전도를 하기로 작정 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은 다음달에 남해로 이사해서 음식점을 개업하고 새출발을 하기로 했습니다. 할렐루야!

나창희집사님도 우리교회의 전도지를 만드는데 20만원이나 들여서 전도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서울 세광교회의 임화자권사님도 우리교회 명의로 4000장의 전도지를 만들어서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전도 하라고 사람도 보내 주시고 전도지도 보내 주시고 동네 정자마다 수박 사들고 전도 하라고 여기 저기서 수박값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가서 전도만 하면 기적이 벌어질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다섯째는 교육에 충실한 교회입니다. 예배가 뜨거운 교회, 감동적인 예배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42절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는 설교와 교육입니다. 초대교회는 교육이 충실한 교회였습니다. 은혜로운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성도들은 교회로 달려왔습니다.

 

당시에 그들의 삶과 현실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날마다 새로웠습니다. 교회에 오면 은혜로운 말씀과 성령의 교제가 있었기에 그들은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이어서 여섯째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교회는 섬김이 있는 교회입니다. 44절로 45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고 증거 합니다.

 

어느날 로렌스(Brother Lawrence)라는 사람이 싸움과 갈등이 많기로 소문난 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문제가 많은 수도원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가 온것을 보고 “노 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수도원에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는 일을 하는것은 수도원의 전통 이었습니다. 노수도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식당으로 갔습니다.

 

이 노수도사는 한 달, 두 달, 석 달, 식당에서 접시만 닦았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젊은 수도사들은 그가 일을 잘 못한다고, 일을 늦게 한다고 멸시와 구박을 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자 수도원을 감독하는 총감독이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그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보이지 않자 총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은 어디 가셨는가?” 그러자 젊은 수도사들이 대답합니다. “원장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총감독이 깜짝 놀라면서 “아니 무슨 소린가? 내가 3개월 전에 원장을 임명하고 파송했는데? 원장이 안 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총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 보면서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 한 수도사가 “아니 그럼 3개월 전에 온 그 노 수도사가 우리 수도원의 원장님으로 오신분인가?” 하더니 서로가 수군 수군대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 노 수도사가 설거지를 하다말고 앞치마를 한 채로 총감독과 수도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 왔습니다. 노 수도사는 총감독에게 “먼길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총감독이 “이보게 로렌스! 원장이 앞치마를 입고 뭘하고 있는겐가?”하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모든 수도사들이 감전된듯 충격을 받고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후부터 노 수도사의 인격과 품행에 감동한 모든 젊은 수도사들이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켜서 새출발을 하는 바람에 그 수도원은 가장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섬기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직분과 신분의 상관관계입니다. 사람들은 직분을 받으면 당연히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아랫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섬김을 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들이 모든 공동체에 깔려있는 마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가르침과는 정 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또 예수님은 누가복음2장 26절로 27절에서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말씀에 대단히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큰자와 높은자가 대접을 받지만 예수믿는 공동체 에서는 높은자가 낮은자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는 섬기는 자로 왔으니 너희도 어디서나 섬기는 자가 되어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었으면 직분이 중직자가 될수록 더욱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병폐는 중직자가 되면 아무것도 안하고 섬김만 받고 마치 권세자가 된것처럼 교회에서 군림하고 부려먹고 지시하고 큰소리 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신앙의 연조가 깊어지고 중직자가 될수록 섬김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보다 섬김이 많아졌다면 그만큼 내 믿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어느 날 랍비가 “진리는 길에 널려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야”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진리가 그렇게 흔한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합니까?” 그러자 랍비는 “그야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진리의 돌을 주울 수가 없는거야”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쓰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에서 낮추다의 헬라어 “타페이노오”는 일반적인 겸손이 아니라 멸시와 천대와 굴욕을 당때도 여전히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수모와 멸시를 당해도 하나님 때문에 참고 인내 하는것을 말합니다. 멸시 천대를 받으면서도 만인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말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과 핍박도 참아내고 섬기는자가 복있는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에는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가 세워 졌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당에 들어가는 문은 세상에서 지어진 교회 중에서 가장 낮고 작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문을 겸손의 문이라고 부릅니다.

 

만왕의 왕,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러 들어 가는데 교만하게 뻣뻣하게 서서 들어가서는 안되겠기에 문을 그렇게 낮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야만 베들레헴교회에 들어갈수가 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출 때 가정과 교회에 평화가 옵니다.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자신을 낮추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뭔가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가 쓴 소설 “동방순례”에(Journey to the East) 보면 사람들이 동방으로 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교단에서 동방순례를 계획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례길에 많은 사람들이 동행 했습니다. 교단에서는 선교를 목적으로 파송 했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진리를 찾아서, 어떤 사람들은 뱀을 잡아서 돈을 벌 목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금을 찾아서, 어떤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목적으로 동방순례에 동참 했습니다.

 

그런데 동방으로 여행하는 순례단 중에 레오(Leo)라는 하인을 동행하게 했습니다. 레오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걷고 하면서 여행하는 동안에 섬기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레오는 순례자들이 힘들어 할 때 노래를 불러주고 휘파람도 불어주고 물도 떠주고 때로는 기도도 해 주면서 지친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레오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만 하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일행 중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레오가 사라지자 여행길에 기쁨이 사라졌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급기야 갈등과 불화가 심해져서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동방순례를 포기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서서이 레오를 생각하게 됩니다. 레오가 사라진 후부터 싸우고 갈등이 생긴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본부로 돌아온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보니 자기들을 섬기던 하인 레오가 바로 자기들을 파송한 교단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레오가 순례단을 이끈 진정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레오의 리더십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었습니다.

 

헤르만 헷세는 신학교를 다녔던 경험을 통해서 성경에서 배운 예수님의 리더십을 동방순례라는 소설로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역사는 섬김의 리더를 찾습니다. 섬김이 있는 사람이 참된 리더입니다. 좋은 교회는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착한 행실, 곧 이웃을 향한 섬김이요, 구제입니다. 우

 

리가 사는 이 지역이, 지지리도 예수 안믿고 지독하게 전도가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예수믿는 중직자에게 선한행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 교회 였습니다. 그런 교회에 누가 오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교회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하는 곳이요, 행복한 곳이요, 은혜와 기쁨이 있는 곳이요, 좋은 은사와 구원을 나누어 주는 곳이요, 구제하고 돕고 섬기는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전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소개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아들이 70대의 노모에게 “어머니 나 요즘 교회가기 싫어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왜 교회에 가기 싫은데?” 했더니 아들은 3가지 이유를 댔습니다. 우

 

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교회가서 사람들 만나기가 싫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삭막하고 냉냉하고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배가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사람들이 다 존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그래도 너는 꼭 교회에 가야 한다” 라고 하면서 교회에 꼭 가야 할 3가지 이유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로 교회에 가는 것은 너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가야한다”

둘째로 “교회에 가야 구원받고 복을 받기 때문이다”

셋째로 “네가 꼭 교회에 가야 할 이유는, 네가 바로 담임목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에 가야한다”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목사도 교회에 가기 싫어한다는, 그야말로 현대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점점 교회에 오기를 싫어합니다.

 

말로만 떠드는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나, 섬김만 받는 장로가 시무하는 교회는 삭막합니다.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뫼됨됨한 성도들만 있는 교회는 죽은 사해바다와 같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부인이 저녁 무렵에 창문 너머로 한 남자가 병원 옆에 있는 보리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병원 원장이었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일에 분주한 원장이 일과가 끝나자 병원옆에 있는 보리밭에 나가서 땀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고 놀랜 것입니다. 그녀는 원장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 병원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보리밭에서 일하던 원장은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였습니다. 다음날 이 부인이 슈바이처박사에게 “선생님은 왜 의사가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는 “나는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없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가지 초대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동기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 사람은 터지지 않은 불발탄과 같아서 늘 엉뚱한 곳에서 터져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기 이전까지는 무기력하고 한심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사건을 통해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자 그때부터 예배에 열심을 내고 사랑으로 교제하고 기도하기를 힘쓰고,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서로 돕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찬송이 넘치고, 새 술에 취하여 방언을 말했습니다. 성령받은 후부터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한 번 가보고 싶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가 바로 가고 싶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교회에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계속 기도하며 나아갈 때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게 될줄 믿습니다.

 

47절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칭찬을 받으면서부터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많아 졌다고 증거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았고 하나님은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도리 아끼라(羽鳥明)의 “보람 있는 인생”이라는 글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공 “봇슈”는 여섯 살 때 마을에서 놀다가 호두나무에서 호두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검정색 호두였습니다. 그 순간 검정색 호두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봇슈는 호두를 주머니에 넣고 집에가서 아버지가 퇴근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는 모습이 보이자 봇슈가 달려가서 매달리면서 “아빠! 오늘 이거 주웠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검정색 호두예요?” 아버지는 그 호두를 받아들고서 “봇슈야 고맙다 아빠를 위해서 이걸 가져 왔구나” 하고는 몇 번이나 봇슈에게 고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서 봇슈가 청년이 되었을때 아버지가 돌아 가셨습니다.

 

어느날 봇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상 서랍 구석에서 검정색 호두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봇슈는 “어머니, 아버지 책상 서랍에 검정호두가 있네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 그 호두가 거기 있었니?” 네가 어릴 때 주워서 아버지께 드린 검정호두구나! 아버지는 퇴근만 하시면 그 호두를 꺼내서 가지고 노셨단다”

 

봇슈는 아버지에게 호두를 드린후에 자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아들 봇슈가 준 그 호두를 평생동안 귀중하게 간직하고 날마다 만지면서 사랑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것과 이웃을 위해서 행한 선한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않고 언제나 기억하십니다. 느혜미야 13장14절에 보면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기억 하옵소서”라고 고백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한것과 맡겨주신 직분을 위하여 충성한 사람의 모든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에 순종한 노아에게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복을 주셨다고 창세기 8장은 증거 합니다.

 

사도행전 10장2절 이하에 보면 “고넬료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노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정욕을 멀리하고 경건하게 살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항상 기도하는 고넬료를 지켜 보시다가 그 가정에 성령을 부어 주시고 온전한 구원의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실만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실만한 충성된 헌신봉사를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남해 세광교회와 우리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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