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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6월12일 수요저녁 요한계시록1장1-20 천국에 계신 예수님을 본 사도요한

그리운시냇가 2013. 6. 13. 18:01

  

오늘 함께 읽은 요한계시록 1장은 사도요한이 받은 계시의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이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주신 계시라고 1장 1절에서 증거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라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이며 지구의 종말과 구원의 완성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성경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1장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계시하신 것은 당시에 고난을 겪고 있던 초대 교회 성도들뿐 아니라 시대 시대마다 고난중에 믿음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는 귀한 계시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사도요한은 4절로 5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일곱 교회에 문안 인사를 전한후에 6절에서는 성도를 택하여 복주신 주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와(Α) 끝 글자인 오메가(Ω)인데,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입니다.

 

더불어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스리시는 역사의 주관자라는 말씀인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성과 전능성 그리고 완전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사도요한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환란과 고난중에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계시 였습니다.

 

왜냐 하면 그 당시에 세계는 로마 황제, 즉 로마의 권력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는 신으로 추앙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만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선포는 신적인 존재인 로마 황제를 부인하는 선포 이면서 황제를 정면으로 대항하는 말이기에 이 고백은 “나는 죽어도  오직 주님만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요 하나님만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은 목숨을 건 믿음이 아니면 고백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크리스챤들이 오직 생사화복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 합니다. 특권층이나 재벌들이나 힘있는 나라의 권세자가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비록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어둡고 캄캄한 현실 저 너머에는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만 바라보면 반드시 소망중에 승리하게 됩니다.

 

작가 오혜령(吳蕙齡)씨는 희곡 작가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수필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30대 후반의 한창 나이에 위암과 임파선 암이 발견 되어서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 임박하자 그녀는 자기가 그동안 겸손을 가장한 교만함으로 살아 왔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사랑했던 한분이 그녀가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매주 꽃을 보내주었습니다. 하루는 그분이 “희망을 버리지 말라”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 50송이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그 백합꽃에 얼굴을 파묻고 30분 가량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누군가가 자기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정신없이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님이 자기를 찾아 오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외쳤습니다.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그런데 그순간 지성인의 탈을쓰고 주님을 나몰라라 하면서 살아왔던 죄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회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님께 용서해 달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 지는데 회개하고 또 회개를 했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회개하면서 지내기를 무려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3개월만에 죽는다고 했는데 그녀가 6개월을 넘긴 것입니다.

 

어느날 그녀가 혼자서 기도하면서 찬양을 하는데 온 몸에 오한이 덮쳐왔습니다. 너무나 떨려서 자리에 누웠는데 오한이 너무 심해서 “이제 죽는 가보다” 하면서 이불을 덥고 떨고 있는데 이상하게 겨드랑이에서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질 않았습니다. 그 순간 어깨에 나 있었던 복숭아씨 만한 멍울도 잡히질 않았습니다. 복수로 가득 차 있던 배도 갑자기 꺼지기 시작 했습니다. 성령의 치유가 임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날 진동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자기 안에서 임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감격해 했습니다. 그후로 그녀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난 그녀는 인생을 새롭게 살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집을 개방해서 노인들을 섬기는 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갈데 없는 병든 노인들을 모시고 그들을 섬기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중생한 후에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 합니다.

 

“당신 없이 인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면서 많은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나의 지난날들은 죽은 날들 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제 인생의 그물을 채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바닷가에서 저와 함께 계셨던 부활의 주님,

저는 그 주님을 알지 못하고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를 했지만 빈 그물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제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셨지만 저는 그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멋대로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이 저를 찾아 오셨기에 주님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제 저에게 생명의 그물을 던지라고 분부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인생의 바닷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녀가 고백한 평범하지만 진솔한 시 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이하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을때 제자들은 절망하고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과연 세상은 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고 그들과 결탁한 악한 종교 지도자들이 세상을 주관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의 마음은 끝없이 요동 칩니다. 그래서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평안은 로마 황제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강은 내가 주는 것이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마귀는 믿음좋은 사람의 마음에도 불안과 두려움의 가라지를 뿌려 댑니다. 그래서 마귀가 강하게 역사 하니까 태산을 옮길 것 같은 믿음을 가졌던 제자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부어 주시자 제자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회복되었고 소망이 넘쳤습니다.

 

사도요한은 오늘 본문 5절과 6절에서 예수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절하반절~5)

 

예수님은 속죄의 제사로 우리를 온갖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택함받은 우리에게 영원토록 왕 노릇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왕노릇하는 이 특권과 영광은 예수믿은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입니다. 이 특권을 가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죄와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역할, 즉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7절에서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심판과 더불어 종말에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다시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무서운 심판 때문에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7절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천국과 지옥 그리고 종말에 대한 비밀이 담겨있는 요한 계시록을 보여주신 이유가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잘 소개 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이 구원의 길이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만날때까지 주님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요 인천 상륙작전으로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맥아더 (Douglas MacArthur) 장군은 74세에 중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의료진이 진단한 후에 이틀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역전의 용사답게 그는 다시 회생하여 건강을 회복하고 10년을 더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빼어난 강연으로 용기와 힘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가 죽음의 사경에서 건강을 회복했을때 BBC 방송의 기자들이 찾아와서 건강 회복을 축하하고 격려하면서 회견을 청했습니다. 기자들은 “그토록 심한 중병으로 다죽게 되었는데도 어떻게 다시 회복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맥아더는 “비록 몸과 마음은 비몽사몽간에 사경을 헤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이 안좋아 지면 오직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가지 말씀만 되뇌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첫째는 요한복음 11장 4절인데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라는 말씀이고 또 한 말씀은 요한복음11장 24절 말씀인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건강이 나빠질 때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다시 강건함을 회복한 것은 오직 이와같은 주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근심 대신 평안이, 슬픔 대신 기쁨이, 절망 대신에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야 합니다.

 

이어서 오늘본문 9절에 보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증거 합니다. 사도요한은 환란과 고난에 동참했다고 증거 합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핍박과 환란을 당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중에있는 사도요한에게 특별한 계시를 허락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온갖 고난을 당했지만 끝까지 인내할 때 비로소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하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1979년도에 장기려박사님이 사회봉사 부문의 최고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최선을 다한 그의 인품에 반한 친구와 지인들이 이북에서 내려와서 홀로 사는 그에게 아름답고 인품좋은 여인을 중매했습니다. 그런데 장기려박사님은 끝내 재혼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북한에 있는 아내만 사모하면서 살다가 가셨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주님을, 세상 즐거움이나 쾌락과 바꿀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세상 명예나 부귀영화나 그 어떤것과 바꿀수는 없습니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주님 때문에 어려움이 와도 사도요한처럼 참고 인내 하면서 주님을 따라가면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만 따라가다가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었지만 거기서 그는 천국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특히 사도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귀한 형상입니다.

 

공관 복음서를 읽어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장면들이 여러곳에 나타 납니다. 바울사도의 서신인 고린도전서15장 6절로 8절에서도 부활의 주님이 바울사도를 포함해서 500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정확한 묘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만 다행 스럽게도 사도요한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는데 그 주님의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장 12절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을 가장 정확하게 알수있는 소중한 본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이런 귀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겠습니까?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부패한 카톨릭을 개혁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 했지만 그러나 계시에 대한 은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 마르틴루터는 요한계시록이 상징과 환상, 그리고 생소한 언어들로 되어있고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이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루터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과 더불어 모든 인간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대속의 주님이라는 위대한 사실을 깨닫고 종교개혁을 감행하여 인류역사에 길이 빛나는 최대의 업적을 남겼지만, 그러나 신령한 영적인 계시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에 요한계시록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폄하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인류역사의 종말과 더불어 천국과 지옥을 가장 잘 묘사한 계시의 성경입니다. 특히 성경 66권 중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고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성경에서 가장 압권적인 계시임을 알게 됩니다.

 

사도요한은 부활하셔서 하늘 영광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12절부터 16절까지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 천국에 계신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계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계십니까? 12절에서 사도요한은 자기 귀에 들려진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

 

13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촛대 사이에 계셨는데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다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촛대 사이에 계셨는데 여기서 촛대는 요한계시록 2장 20절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즉 예수님은 일곱 교회 사이에 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교회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엄청난 건물들이 세워지고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세계 곳곳에 지어져도 그런 건물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오직 교회에 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훼방해도 예수님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기에 교회는 수천년동안 건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마귀의 권세를 이기셨기에 음부의 권세는 절대로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교회를 지켜주는 것은 경찰이나 세콤이나 용역업체 직원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교회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준행치 않는 교회는 주님이 버리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에 보면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성령이 떠나고 은혜와 소망과 부흥과 기쁨이 사라짐으로 교회가 망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주님을 외면하거나, 주의 종과 성도들이 세속적으로 타락하면 성령과 은혜의 촛대를 옮기심으로 그 교회는 끝장이 납니다.

 

그러나 교회가 머리되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높이고 주님 말씀대로 준행하고 주님을 극진히 예배하고 주님을 정성껏 섬기고 찬양하면 주님은 그런 교회에 복을 내려 주시고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아울러 13절에 보면 주님은 “인자 같으신 이”로 소개 됩니다. 문법적으로 관사가 없기에 이것은 어떤 특정한 인물같은 모습이 아니라 “사람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사람 같은 인격적 존재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 아홉가지가 그 다음에 소개 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었다고 13절은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반바지를 입거나 파자마를 입거나 잠옷을 입거나 한복을 입거나 양복을 입거나 청바지를 입거나 몸뻬를 입거나 추리닝을 입거나 쫄바지를 입거나 군복을 입거나 연미복을 입거나 속옷을 입으신것이 아니라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었다고 사도 요한은 증거 합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래서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는 분입니다.

 

더불어서 두 번째로 예수님은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13절은 증거 합니다. 금띠는 왕이 띠는 것입니다. 금띠는 위엄과 영광의 상징으로서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재림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때에는 영광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14절과 같이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머리털과 수염이 흰 양털과 흰눈같다는 것은 죄가 없고 성결하신 주님의 모습을 증거한 것입니다.

 

네 번째로 주님의 눈은 불꽃같다고 14절은 증거 합니다. 주님의 눈은 우주 만물을 훤히 들여다 보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75억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꿰뚫어 보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다섯 번째로 15절에 보면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고 증거 합니다. 주님의 발은 심판주의 발입니다. 그의 발이 단련한 빛난 주석같다는 말은 주석같이 강한 발로 세상 만물을 밟아 깨뜨려 버리실 수 있는 심판의 발을 가지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한 부자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부자는 예수믿고 살아온 사람은 천국에 아름다운 집이 준비된다는 사실을 알고 천사에게 자기가 거할 집으로 안내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천사가 그 부자를 데리고 가는데 천국에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저택들이 즐비했습니다. 좋은 집을 지날 때마다 “내집이 저집 아닌가요?”하고 부자는 천사에게 연신 물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들을 지나서 형편없는 동네가 나오자 부자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가 혹시 착각해서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면서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가장 허름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초라한 집 앞에 도착해서는 “여기가 당신이 머무를 집입니다.” 라고 천사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자는 놀라서 “아니 왜 제가 이런 초라한 집에서 지내야 합니까?” 그러자 천사는 “지금까지 당신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투자한 것으로는 겨우 이런 집 밖에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6장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갚아 주리라”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아포도세이” 라고 하는데 “보상해준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삶에는 결코 후회함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보람있고 가치 있는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 성도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되고 주님으로부터 큰 상급을 받게 됩니다.

 

한가지를 더 소개 합니다. 가난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농부가 죽어서 천국 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한 부자가 천국 문 앞에 도착해서 역시 천국으로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천국문을 열어 부자를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농부를 보지 못했는지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자 천국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부자가 천국에 온 것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윽고 다시 조용해지더니 베드로가 나와서 천국 문을 열고 농부를 들어오게 했습니다. 농부는 당연히 자기도 천국에서 환영하는 음악과 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농부도 천국에서 사랑이 넘치는 환영을 받았고 천사들도 농부를 반겨 주었지만 아무도 노래를 불러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왜 저를 위해서는 부자를 환영했던 것과 같이 음악도 없고 노래도 불러 주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세상에서 가난하다고 차별대우를 받았는데 천국에서도 편애를 받나 싶어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다른 구원받는 사람과 똑같이 소중하게 여깁니다. 당신도 모든 사람들처럼 천국의 모든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은 매일 천국에 들어 오지만, 아까 온 사람 같은 부자는 백년에 겨우 한 사람밖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오면 기뻐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주는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이어서 여섯 번째로 15절에 보면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증거 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을때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정말 이 세상에서 그 어느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소리 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 내는 소리중에 천둥소리 다음으로 가장 큰 소리가 바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는 것은 주님의 권세와 위엄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 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가 엄청난 물소리와 같이 이 세상에 울려 퍼진다는 말씀입니다.

 

일곱 번째로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고 계신다고” 증거 합니다. 주님이 오른손에 일곱별을 잡고 계신다는 말에서 일곱별은 교회의 사자들, 즉 목사님들을 비롯한 모든 주의 종들을 힘있게 붙잡고 사용하시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주의 종들을 붙잡으시고 마지막 때에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를 목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게 하시고 전도와 선교와 구제와 각종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덟 번째로 16절 중반에 보면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고 증거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말씀이 곧 검이라고 증거 합니다. 주님의 입에서 검이 나온다는 것은 주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홉 번째로 16절 하반에 보면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생명력이 넘치고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시기에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은혜의 빛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고 믿는 성도들에게도 생명의 빛을 비춰 주심으로 우리가 소망중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도요한은 이와같이 예수님의 모습을 아주 세세하고 정확하게 보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일곱교회를 향하여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사도요한이 본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 모습은 다음 주일날 계속해서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이 이와같이 영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감사 하면서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서 꿈속에서라도 주님을 만나는 영광을 체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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