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서 “인생에 성공하려면”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한번 더 설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성공하려면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예배를 통해서 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이 인생과 신앙에 성공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를 통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수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인격을 가져야 하고 네 번째는 감사하는 신앙을 가질때 인생은 행복해 지고 풍요로워 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이어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수있는 비결 몇가지를 소개 합니다. 출애굽기 31장 1절로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브살렐을 부르시는 내용이 소개 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6대손인 브살렐을 성막 제작의 책임자로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신앙생활과 인생에 성공하는, 중요한 또 한가지 비결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즉 나를 부르신이가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을 갖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속한 모든 축복이 나의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임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소개한 에디슨, 루즈벨트, 제임스왓트, 링컨, 아인슈타인, 톨스토이같은 모든 사람들은, 처음에는 누가봐도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형편없는 인생으로 시작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할 때 예수님이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기적같은 일들을 해 냈습니다.
브살렐에게는 어떤 은사를 주셨습니까? 출애굽기3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를 주셨으니”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때에나 어느 시대에도 일꾼을 부르시고 성령 충만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어떤 재능이든지 재능을 주셨습니다. 다만 그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그 재능이 감추어져 있기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내 속에 잠재된 재능과 달란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면 그것이 은사가 됩니다. 김안순집사님은 음식 만드는 은사를 통해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그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면 그 재능이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래를 잘하는 것과 찬양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음악적인 지식이 있고 음악에 재능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성가대를 지휘 하면 은혜스러운 성가대를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못한 사람이 성가대를 맡아서 지도하면 그 사람은 음악적인 재능만 강조하면서 노래만 잘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연습을 하다가 자꾸 틀리면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내기에 오히려 은혜가 안됩니다.
제가 청년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성가대 대원들 중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성가대로 봉사를 하려는 사람들은 비록 노래는 잘 못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에서 성가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시립 합창단 지휘까지 한 경력이 있는분이, 제가 섬기던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왔습니다. 성가대원들은 유능한 지휘자가 왔다고 모두들 좋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가대의 찬양이 자기 마음에 안들었는지 파트 연습시간에 개인적으로 연습을 시키면서 심하게 쫑코를 주는가 하면, 연습을 하다말고 툭하면 연습을 중단시키고 신경질을 내면서 “목소리를 이렇게 내라 저렇게 내라” 하면서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모든 성가대원들은 은혜가 소멸되고 기쁨이 사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성가대 전체의 영성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찬양하는 즐거움과 기쁨마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느날 지휘자가 또 심하게 구박을 하길래, 제가 십자가를 지고 성가대 지휘자에게 이렇게 건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지 세상 합창단처럼 노래를 잘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비록 음악적인 재능은 많지 않아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모였으니까 너무 그렇게 구박하면서 가르치지 말아 주십시요!”라고 건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휘자가 얼마후에 사표를 내고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한분이 지휘자로 오셨는데 이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노래를 못해도 좋으니까 성실하게 모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세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니다. 그런데 그 지휘자가 온 다음부터는 성가대가 천국으로 변했습니다. 모여서 성가 연습을 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지 모든 성가대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모였고 그분이 성가대를 지도할 때가 가장 은혜스러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가대가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도 똑같은 간증을 하셨습니다. 이분이 뉴욕에서 유학공부를 했는데 큰 교회에서 연합 찬양발표회가 있어서 참석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성가 경연대회나 연합 찬양 발표회때면 지휘자, 반주자, 소프라노솔로, 앨토솔로, 바리톤솔로등, 솔리스트들은 사진과 경력과 이름을 팜플렛에 소개 합니다.
팜플렛에 보니까 한 교회의 성가대 멤버들이 쟁쟁합니다. 대부분 솔리스트들이 줄리아드 음대 출신이고 지휘자와 단원들도 수준이 최 정상입니다. 그런데 막상 찬양을 들어보니까 별로 은혜가 없더랍니다.
다른 한 교회는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성가대 였는데 그 성가대는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지 찬양을 들으면서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그 성가대는 얼굴에도 찬양에도 은혜 받은 감동이 있더랍니다. 은혜받은 마음과 성령의 감동으로 찬양을 했기 때문에 듣는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 달란트가 있더라도 믿음없이 은혜없이 봉사하면 그 봉사는 나의 교만과 내 영광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면 그 사람은 은혜의 통로가 되어서 은혜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돈 버는 재능이 탁월합니다. 손 대는대로 돈이 착착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돈은 잘 버는데 돈을 쓰는일에는 수전노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돈은 많지 않지만 이웃과 잘 나누고 잘 섬깁니다. 미국에서는 한시간 일해서 5달러 또는 7달러를 법니다. 한달 죽어라고 일해봐야 5달러 임금으로 일하면 960달러를 벌고, 7달러를 받으면 1350달러를 법니다. 우리돈으로 하면 100만원에서 140만원 정도를 버는데 두 부부가 벌어도 200만원에서 300만원밖에 안됩니다.
그런데도 한 집사님 부부는 십일조내고 감사헌금내고 주정헌금내고 구역헌금내고 그리고 그 나머지로 생활 하면서도 선교하고 구제하고 아이들이 아르바이트한다고 뭐 팔러오면 도네이션하고, 가난한 이웃을 돕고, 선교사 오면 대접하고, 목사님 오시면 대접하고, 교회에 음식해가고 학교에 음식 해가고 직장에 음식 해가고, 하여튼 섬기는 일에 일등입니다.
제가 그렇게 사는 분을 보면서 “저분은 정말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크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욕망덩어리 욕심 덩어리인 인간이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눔과 섬김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그런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늘 쪼들리고 힘들게 살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그런 분이 유명한 분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 할 분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가 사는 이유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으로 열심히 헌신하면 하늘나라에 집이 지어집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크리스챤입니다.
비록 이땅에 쌓을것이 없고 가진것이 없어도 내가 봉사하고 헌신하고 섬기고 헌금하고 베푸는 모든 것들로 하늘나라에 아름다운 집이 지어지고 풍성한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섬기고 사랑하고 베푸는 삶은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성공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입니다.
이어서 신앙생활과 인생승리의 또하나의 비결은 오래참음 즉 인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신앙인의 덕목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랑입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고백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이루면서 살고,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살려면 무엇보다도 인내의 믿음이 필요 합니다. 부부가 서로 인내하지 못하면 모든게 다 말짱 도루묵입니다. 내가 쌓아놓은 신앙도 다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전에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라는 말이 유행할때가 있었습니다. 죽고 못살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 인데도 남자가 군대에 입대하고 나니까 여자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딴 남자를 만납니다. 그래서 군대간 남자친구를 헌신짝처럼 벗어 던진 여자를 향해서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래 참아주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열매도 맺을수가 없습니다.
“참을 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의 성공은 인내심에서 온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잘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합니다. 조급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빨리 해치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생긴 단어가 “빨리 빨리”입니다.
이제 “빨리 빨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출입하는 외국의 식당이나 유원지나 어디든지 외국인들도 이제는 한국사람을 만나면 “빨리 빨리”라고 하면서 손을 흔든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한국사람들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빨리 빨리”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급한 국민성을 가진것은 아닙니다. 차재호 교수에 의하면, 구한말(舊韓末)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끈기와 인내심이 있고 고통과 억압을 잘 견디는 국민”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시대와 6·25 전쟁 중에 쫓고 쫓기는 삶 속에서 우리국민에게 “조급증”이라는 병이 생겼습니다.
한겨례신문에 한국인들이 조급한 증거 아홉가지가 소개 되었습니다.
첫째, 외국인은 자판기의 커피가 다 나온 후에 불이 꺼지면 컵을 꺼낸다. 그러나 한국인은 자판기에 돈을넣고 커피를 누른 다음에 컵 나오는 곳에 손을 집어넣고 기다린다. 그래서 가끔 뜨거운 물이 손에 튀어서 커피를 받다가 손을 데기도 한다. 둘째, 외국인은 사탕을 천천히 빨아서 먹지만 한국사람은 사탕을 와드득 와드득 깨물어 먹다가 이빨이 부러지기도 한다.
셋째, 외국인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아서 천천히 먹지만 한국인은 아이스크림을 이빨로 팍팍 베어먹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를 친다(급히 먹으면 전대뇌동맥에 급속한 혈류 증가로 머리가 아픔)
넷째, 외국인은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차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 천천히 승차한다. 한국사람은 버스가 저 멀리서 오는게 보이면 무조건 도로로 내려가서 버스가 문도 열기전에 버스를 따라가면서 버스를 타려고 달려간다.
다섯째, 외국인은 택시를 잡을때 인도에 서서 “택시!” 하고 손을 들지만, 한국사람은 택시가 오면 도로로 뛰어 내려가서 택시를 따라가면서 택시와 같이 뛰면서 “연신내! 연신내!”하면서 외친다.
여섯째, 외국인은, 야구구경이나 축구를 볼때 야구는 9회말 2사 부터라고 하면서 “힘내라 우리 편”하면서 끝까지 응원하고 축구는 2대 0으로 지고 있어도 끝까지 앉아서 관람하면서 희망을 갖는다. 한국사람은 9회말 2사가 되면 “다 끝났다, 나가자!”하고 떠들면서 와르르 나가 버리고 축구도 2:0으로 지고 있으면 끝나기 5분 전에 다 나가서 관중이 반으로 줄어든다.
일곱째, 외국인은 영화의 마지막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OST를 감상하면서 여운에 젖지만, 한국사람들은 영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일어나서 나간다.
여덟째, 외국인은 식당에서 여러 시간동안 대화하고 즐기면서 식사를 하지만, 한국사람은 앉기가 바쁘게 여기요 “우짜라곱주세요!” 즉 “우동 짜장면 라면 곱빼기로 주세요” 하고 소리를 질러서 음식을 시킨후에, 5분도 안되어서 다시 “빨리 주세요”하면서 음식을 재촉하고, 음식이 나오면 10분 내에 후닥닥 먹고 일어난다.
이와같이 한국 사람들은 조급증에 걸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도 조급증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기도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원망하면서 은혜를 다 쏟아 버립니다.
사업을 해도 당장 대박나기를 원하고, 기도를 해도 당장 엄청난 축복이 쏟아지기를 고대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5장 10절로 11절에 보면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시험과 훼방을 가져다준 사탄마귀를 이기고 이전보다 갑절이나 복을 받은 욥처럼 인내를 통해서 축복을 얻어야 진짜 축복입니다.
인내(忍耐)라는 말은 참을인(忍)자에 견딜내(耐)자를 씁니다. 그중에 참을인(忍)자는 마음 심(心)자 위에 칼 도(刀)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내한다는 말은 “칼로 마음을 베어내는 고통을 참는 것”이 인내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는 것이 인내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여려워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난을 이기게 하여 주시고 내 인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견디는것이 인내입니다.
“꿈꾸는 죽장수” 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소개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철호집사님은 천연소재 목욕용품을 수입해서 판매하여 월 매출액 20억원의 엄청난 소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IMF를 맞아서 환율이 급등했고 결국 1998년도에 부도가 나서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김철호집사님은 먹고 살 길을 찾다가 결국 모 여자대학 앞에서 호떡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호떡장사를 하면서도 항상 정장을 입고 호떡을 팔았습니다. 다 망해서 알거지가 되었는데도, 비록 내가 지금은 호떡 장사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중한 존재요 호떡장사도 외식 사업이다” “나는 외식사업가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장을 입고 호떡 장사를 한 것입니다.
아내는 잘살다가 망한 후에 신경질과 우울증에 걸려서 툭하면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들끼리 집을 지키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철호집사님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호떡장사를 했습니다.
그가 마음에 품은 말씀은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때가 되기까지 하나님만 신뢰 하면서 인내 하나로 묵묵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호떡 장사를 하다가 어느날 하나님앞에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시 성공하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전심하겠습니다”
그가 호떡장사를 해서 조금 돈이 모이자 그는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요리학원을 열었습니다. 한창 요리학원이 인기를 끌때라서 수강생들이 몰려들었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요리학원이 잘되자 친구가 혼자 하겠
다면서 배신을 하는 바람에 김철호집사님은 또다시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을 만들어 팔라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집이 서울대학교 병원 근처에 있었는데 기도중에 그 근처에 죽집이 하나도 없는것을 발견하고 그런 지혜를 얻게된 것입니다.
그는 6개월간 혀가 마비될 정도로 죽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02년 9월달에, 서울 대학로의 후미진 골목 2층에 다섯평짜리 가게를 얻어서 죽집을 개업 했습니다. 그런데 죽이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소문난 맛집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때부터 가맹점 문의가 빗발쳐서 한식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죽집 1,000호점을 돌파했습니다.
일반 음식점의 경우 창업 3년 후면 85% 이상이 문을 닫는데 김철호씨가 창업한 죽 체인점은 폐업률이 1% 이하였습니다. 이 죽집이 바로 국내 최대 죽 전문 프랜차이즈인 “본죽(BonIf)”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김철호 대표는 매일 1시간씩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김철호집사님은 “본 사랑 복지법인”을 만들어서 전국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나눔의 사역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주님의 일을 하다가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서 일하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무엇보다 먼저 고난 당하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참으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참으면, 주님의 영광을 우리도 누리게 됩니다.
살다보면 화가나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후에 예수님을 팔아 먹으려고 군병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다가와서 입을 맞출때 성질 급한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향해서 내리 쳤는데 그때 말고의 오른쪽 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요18:10).
그런데 이런 위급하고 급박한 상황속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 라고 말씀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저히 참을수 없는 일도 참으셨습니다. 사람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힐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납니다.
3년동안 동거 동락하면서 생사고락을 갖이 하겠다고 다짐한 가룟유다가 하루 아침에 배반해서 돈 몇푼 받고 스승을 팔아 먹었으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가룟유다가 찾아 왔을때 예수님이 화가나서, “베드로야 네 칼좀다오”하고는 그 칼로 “너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 하고 예수님이 먼저 가룟유다를 죽이셨어야 마땅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생각하고 참아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싸우고 싶고, 따지고 싶고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싶지만 참아야 합니다. 살다보면 이혼하고 싶고, 사업도 포기하고 싶고, 교회를 떠나고 싶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이것까지 참으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내하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참지 못하고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면, 몇배의 고통과 괴로움이 따라오게 됩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인내로 승리한 분들입니다. 승리한 신앙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내려주실 약속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세월을 참아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는데,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판을 무려 120년 동안이나 참아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의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의 세월을 인내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참아내다가 한계를 넘어서면 폭발해 버립니다. 내 기분, 내 감정, 내 아량으로는 결코 오래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 해야만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참는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인내하면 오래 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삼국지에 보면, 도원결의(桃園結儀) 이후에 운명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던 유비의 동생 관우가 오(吳)나라의 흉계에 걸려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대 그 소식을 들은 촉한(蜀漢)의 황제 유비는 즉시 백만 대군을 몰아서 오나라로 쳐들어갔습니다. 한 개인을 위한 복수전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때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당한 오나라는 새파랗게 젊은 “육손”이라는 장수를 발탁해서 방어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대임을 맡은 육손은 사령관으로 취임하는 그 날부터 촉군과 전쟁을 하는데, 육손이 이끄는 군대는 유비의 촉군에게 밀려서 점점 도망을 칩니다. 육손은 도망치면서 자꾸만 싸움을 회피 합니다.
그러자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들은 무엇보다도 죽기로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고, 용기와 용맹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이었는데, 육손이 싸우지 말고 자꾸만 후퇴하라고 하니까 화가나서 당장 적과 싸워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성화를 부립니다.
그런데도 육손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자기 계획대로 후퇴에 후퇴만 거듭합니다. 그러자 오나라 장수들이 뚜껑이 열려서 너나 할것없이 육손에게 온갖 모욕적인 언사들을 퍼붓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도 육손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장수들과 군사들의 비난을 참고 견뎌 냅니다.
이렇게 오나라 군사가 대항을 하지 않고 자꾸만 도망가자 유비가 이끄는 촉군의 군대는 육손의 군대를 치면서 계속 따라 갔는데 그것은 육손의 계략 이었습니다. 육손은 작은 싸움에서 계속 패하는 척 하면서 유비의 군대를 점점 깊숙이 유인합니다. 그래서 유비의 군대는 적진으로 점점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뱀처럼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게 됩니다.
이런 지연작전을 군사 용어로 청야(淸野)작전이라고 합니다. 즉 청야작전은 아군의 영토를 내어주는 대신에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적의 병참선을 길게 만듭니다. 그래서 적의 강한 예봉을 피하면서 동시에 아군의 전투력을 보존하고 전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손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모든 장수들에게 “이제부터 후퇴하지 말고 나가서 유비의 군사를 치라”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육손이 이끄는 15만 대군이 유비의 백만 대군을 모조리 격파하고 700여리에 걸친 촉군의 진지를 완전히 진멸하게 됩니다.
유비는 주력부대와 장수들을 다 잃고서 백제성까지 물러난 뒤에, 두 번 다시 형주를 도모하지 못하게 됩니다. 유비는 결국 그 전쟁을 치른 이듬해인 223년에 사망하여 삼국통일의 여망은 사라지고 맙니다.
여기서 육손이 15만 대군으로 촉나라의 백만대군인 유비의 군사들을 물리친 결정적인 동기가 바로 인내입니다. 모든 장수들이 화가나서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데모를 하면서 난동을 부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육손은 부하 장수들이 벌이는 악담과 온갖 수모를 끝까지 참아냅니다. 그것이 전쟁승리의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 성공의 비결도 오래 참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인내하면 인내 할수록 성공은 커지고 그 열매는 풍성해 집니다. 우리 신앙의 종말에도 인내가 필요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환란과 고난이 임하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난리가 벌어져도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도 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내의 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인생승리와 신앙승리의 비결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goal)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운대로 실천 합니다.
옆으로 기어가는 게를 잡아서 그릇에 넣어두면 금방 밖으로 빠져나오지만 두 마리를 넣어 두면 두 마리가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발버둥 친다고 합니다. 게는 서로를 끌어내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나면 서로를 끌어 내리려는 습성이 사라지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지배하게 됩니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했는데 마지막 순서로 이어달리기 경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6학년부터 시작해서 1학년 순으로 이어 달리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에 1등으로 달리던 1학년 백군 아이가 결승선에 거의 다 와서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2등으로 달리던 청군 아이가 1등을 할 수 있는데도 달리기를 멈추고 넘어진 친구아이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고 함께 결승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학부형들과 아이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날은 청군과 백군 모두 다 승리한 날이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준 그 아이는 교회에 다니는 아이 였습니다. 남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도와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기에 그 말씀을 실천 하려고 그런일을 한 것입니다. 만약에 6학년이 마지막에 뛰었다면 그런일을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기뻐 하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고 남이 성공하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기가 승자가 되려고 안깐 힘을 쓰지만 하나님은 모두가 함께 승자가 되고, 함께 같이 사는 상생의 원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서로가 성공하고 서로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교훈을 주셨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그 신앙이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은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작은 일에 시험 들고, 시험이 오면 신앙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내멋대로 행하면서 방황합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만년 갓난아기 신자가 넘쳐 납니다.
오랫동안 믿음생활을 했는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은 지, 수년 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신앙수준이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에베소서4장 14절에 나옵니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거나 기도하지 않거나 신앙인격이 다져지지 않으면 마귀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고 충성을 다하는것 같아도 신앙인격으로 무장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타락해서 “언제 저사람이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예배드리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마귀의 간사한 유혹과 세상풍조에 빠지지 않도록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처럼 장성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으면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고 세상적인 풍조에 흔들리면서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은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야 하지만 신앙은 어린아이에 머물면 안됩니다.
어린아이는 지금 맛있고 좋으면 땡입니다.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항상, “지금 좋은 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처럼 쉽게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말씀에 붙잡혀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러야 합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열 여섯 살때 일입니다. 1850년 1월 6일 주일 아침에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쳤습니다. 당시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스펄전은(Charles H. Spurgeon)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섰지만 눈보라 때문에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갔는데, 그 교회는 교인이 열명도 안되는 작은 교회 였습니다. 그런데 눈보라 때문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도 못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집사님이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초라한 옷차림에 얼굴이 창백한 빼빼 마른 한 집사님이 예배를 인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음도 엉망이고 엉터리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찬송이 끝나고 이 집사님이 성경 이사야 45장 22절을 읽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어서 집사님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잃은 성경말씀은 아주 간단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선언 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데 무슨 힘이 듭니까? 바라보는 데에는 손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라보는데 배워야 합니까?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무식한 자도, 바보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데는 나이도 필요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야만 바라 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린아이들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내 자신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바라보라! 내가 너를 위해 피를 흘리노라!
나를 보라!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노라!.
나를 보라. 내가 무덤에 묻혔느니라!
나를 보라. 내가 부활하였노라!
나를 보라. 내가 하늘로 올라가노라!
나를 보라. 내가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있노라!
불쌍한 죄인들아!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으라!”
그 집사님이 외치는 말씀이 스펄젼에게는 점점 하나님께서 외치시는 말씀으로 들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스펄젼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보게 청년!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요!”
스펄젼은 그 순간 놀래서 전기에 감전된것 같았다고 훗날 고백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스펄젼은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됩니다. 마침내 스펄전은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받는 믿음의 거장이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떤 위기를 만났을때, “위기의 상황에서 나만 바라보느냐? 아니면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사모하느냐?” 가 중요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이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만 바라 보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신앙생활에 승리 하려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스가랴 4장6절에 보면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정치적인 힘이나, 군사적인 힘, 경제력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없이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내 경험 내 의지 내 지혜를 내려놓고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결국 인생과 신앙생활의 승리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능력을 부어주셔야 큰 산이 평지가 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계속 됩니다. 그럴때에 내 감정대로 행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참고 예수믿는 성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품어야 합니다. 내가 참고 품으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십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은 사람에게 선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상을 쌓는 길이요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길이참고 주님의 인격과 성령충만을 받아서 인생에 성공하고 신앙에 성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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