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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3년 12월18일 수요저녁 창47장1-9 변화된 야곱의 축복

그리운시냇가 2013. 12. 18. 23:33

 

지난 월요일날 박철호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박철호집사님 아들 박태완군이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전주 장신대와 부산 고신대에 합격 했다는 소식은 이미 광고를 통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박철호집사님과 태완군의 기대와 바램은 서울 장신대에 가는것이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박철호집사님과 태완군 그리고 우리 남해 세광교회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서울 장신대에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태완군의 합격 소식을 듣고서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새벽마다 열심히 합심해서 특별기도를 한 보람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무한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박철호집사님과 태완군 그리고 미성양이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특별 찬양도 해 주실 계획입니다.

 

그리고 윤기원집사님도 남해 힐튼호텔 골프클럽에 입사원서를 냈는데 월요일날 합격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이제 26일날 면접시험만 보면 됩니다.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은 24일날, 다음주 금요일에 남해로 이사를 오신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김예슬집사님이 걱정을 하면서“목사님! 남해로 이사를 갈려고 준비는 하고 있는데 직장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예요?”하길래 “집사님!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서 믿음으로 발을 내 디디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직장이 되게 해 주실거예요!”하면서 이사를 하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직장에서 서류심사가 합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시는 바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월요일날 김안순집사님이 사천에서 새로 시작한 음식배달 가게에 심방을 했는데 가보니까 사천 시내에 꼬레아이 치킨집 옆에 한 열평쯤 되는 피자가게를 음식점으로 얻었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이 거기서 일을 시작 했는데 김안순집사님이 음식사업을 시작하는 그 주간부터 우리가 특별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처음에 열 다섯명 음식을 주문받고 일을 시작 했는데 저희가 특별기도를 시작한 그 주간에 하나님께서 배달 주문이 130명으로 늘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김안순집사님이 지금은 눈 코 뜰새없이 바쁜 가운데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정말 기적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까 일순간에 복이 굴러 들어왔습니다. 김안순집사님이 대박이 났다고 좋아 하셨습니다. 그동안 남해 세광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더니 하나님께서 그 수고한 분복을 사업 축복으로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개업 축하차 난 화분 꽃도 선물하고 저녁식사도 대접 하면서 김안순집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김안순집사님 가게에 가 있는데 마침 박철호집사님에게 합격 했다는 전화가 와서 제가“할렐루야!”하면서 가게가 떠나갈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김안순집사님께서 그동안 자기가 잘못한게 너무나 많다고 하면서 최근에 회개를 많이 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제가 김안순집사님에게“건축 헌금 작정한 일이 너무 부담이 되면 그만 두세요”하고 조언을 했습니다. 김안순집사님께서 건축을 위해서 5000만원을 헌금 하겠다고 작정을 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하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2년만 더 기다려 주시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건축 작정한 것을 해 보겠다는 말에 고맙다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박인순집사님께서 손녀딸 이슬기양이 경북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용강의 김인석성도님이“경북대학이 참 좋은 대학입니다! 경북의 서울대학이 경북대학입니다”하시면서 이슬기양이 합격한것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지정심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후에 손녀딸 정수연양이 경찰시험에 열 번이나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면 반드시 합격 할겁니다! 걱정 마세요!”하고 지난 일년동안 정수연양을 위해서 열심히 합심기도를 했는데 금번에 정수연양이 경찰시험에 합격해서 우리 모두가 얼마나 기뻐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김상철성도님 아들 김기준형제와 도란 자매도 서로 만나서 데이트를 했는데 두사람 다 마음에 들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기준형제에게 전화가 왔는데 도란자매가 너무나 아름답고 학벌도 좋고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좀 부족한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길래

 

"김기준성도님도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신실한 믿음과, 남쪽에서는 최고의 천재적인 컴퓨터 기술로 우리나라 최고의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고 그리고 겸손함과, 진실함과 온유함이라는 훌륭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니까 용기를 가지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데이트를 하세요"하고 권면을 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키작다고 기죽지 말고 주님이 주신 달란트와 신앙인격이 있으니까 열심히 최선을 다 해 보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두사람이 반드시 하나가 되어서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 지고 예쁘고 똑똑하고 키도 큰 자녀도 낳을 줄 믿습니다.할렐루야!

 

우리 남해 세광교회는 정말 기적이 계속되는 교회입니다.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다 응답해 주십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래서 합심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벽마다 시마다 때마다 교회의 기도제목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조내원집사님과 김동문집사님의 사업문제를 놓고 날마다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 제목들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박에스더 집사님의 기도 제목도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정평관집사님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면서 서울 세광교회 권사님들까지 합세해서 3년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 왔는데 정평관집사님에게도 사업의 문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축복해 주셔서 본교회 건축도 잘 마무리 지으시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필리핀에 선교하러 다니시고 올 겨울에도 목사님 모시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보름동안 선교를 하러 가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만났는데 정평관집사님께서 우리교회의 사정을 아시고 다시 저희 남해 세광교회의 건축을 위해서도 헌신하실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집사님이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듣더니 저에게“목사님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하면서 저희에게 소망을 주시는 바람에 정평관집사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알고서 돌아오는길에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누구든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만족한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많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망년회라는 것을 합니다.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은 한해의 모든 아쉽고 괴로운 마음들을 잊어버리자는 뜻에서 잔치를 하는 모임을 망년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망년회 때에는 으레 술이 따르게 마련이고, 마셨다 하면 과음을 하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쉬운 이야기와 한탄의 소리도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망년회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송구 영신예배를 드리면서 한해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다시 새해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고백하면서 소망중에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남해 세광교회도 매년, 일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날에는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서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그리고 즐겁게 찬양하고, 푸짐한 상품을 준비해 놓고 빙고게임을 하면서 행복한 연말 연시를 맞이합니다. 올해도 엄청난 상품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일년동안 교회를 위해서 수고한 분들을 위해서도 상을 준비 했습니다.

 

금년에는 남해 서도가이시며, 저에게 서예를 가르쳐 주시는 박홍빈선생께서 판소리도 하시는데 판소리 명창의 대가를 모시고 오셔서 두분이 함께 공연을 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12월 31일날 저녁에 모두 오셔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고 공연도 보시고 그리고 송구영신예배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올 한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이제 서운했던 모든 일들은 다 떨쳐 버릴 시간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서운한 일들이 생깁니다. 서운한 일들이 마음에 남아 있으면 그 생각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거리가 멀어 집니다. 가족간에, 이웃간에, 성도간에, 서운한 일들은 다 떨쳐 버리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인 저를 통해서도 본의 아니게 서운한 일들이 있었다면 다 용서하시고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서운한것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서운한것을 이기게 됩니다. 우리가 올 한해동안 큰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게다가 한해의 열매와 결실이 요구되는 이 때에 많은 기도 제목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편 내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해서 절대로 서운해 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사는 “새옹지마”입니다. 안되는 일도 더 잘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포석임을 믿어야 합니다. 전에 새옹지마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중국 국경 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래서 이웃 주민들이 “아이고 노인장! 말이 유일한 재산이었는데 말이 도망을 갔으니 이젠 어떻게 삽니까?”하고 노인을 위로 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면서 태연자약(泰然自若)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도망간 말이 암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과연 노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을 잃어 버린것이 복이 되었네요!”하면서 축하를 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면서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이 노인의 아들이 그 암말을 시험하기 위해서 말을 타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또다시 “아이고 안됐네요” 하고 위로를 하자 노인은 “내 아들이 다리가 부러진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면서 여전히 담담하게 말을 했습니다.

 

얼마 후에 북방의 오랑캐가 쳐들어 와서 전쟁이 벌어 졌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징집령이 내려서 젊은 사람들은 모두 다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노인이 사는 동네의 모든 청년들도 다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동네 청년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다가 다 죽었는데 그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안나갔기에 노인의 아들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사 새옹지마”(人間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일이 생각대로 안됐다고 슬퍼 하지도 말고 일이 잘됐다고 우쭐대지도 말라는 교훈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산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요한 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경을 상고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백미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면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점이 발견 됩니다. 모든 아버지는 자라나는 아들들에게 가장 큰 인생의 의미입니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아들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력은 더욱 큽니다. 모든 아들들은 자라날 때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에 가장 큰 충격은,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혹은 아버지와 따로 사는 아들이나, 또는 아버지가 곁에 있어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사는것이 가장 가슴아픈 일입니다.

 

사실 아버지의 태도가 아들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성경에서 이삭은 겸손한 인물, 순종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삭은 나약하고 유약한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위대한 아버지 아브라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들은 자기 스스로를 왜소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있거나 사업상 잘나가는 아버지들은 바빠서 집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잘나가는 집안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그림자만 보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이삭이 그러했습니다. 게다가 이삭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길만한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자기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더니 갑자기 자기를 꽁꽁 묶고서 칼로 자기를 죽이려고 내려치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불에 태워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사건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한 위대한 사건으로 알고 있지만, 그러나 아들 이삭의 입장에서보면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입니다.

 

이삭은 자기를 묶어서 죽이려 했던 아버지가 너무나 무서웠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그러나 이삭에게 있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그날의 사건은 큰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와의 사건들을 생각할 때, 이삭이 조용하고 겸손한 순종형 인물이 된 것은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온유하고 유약했던 이삭은 나중에 어떤 아버지가 됩니까?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한 후에, 쌍둥이 아들을 얻었는데 형 에서는 털이 많고 피부도 붉고, 매우 남성적이고 외향적인 아들 이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내성적이고,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연악한 성품의 이삭이 누구를 더 좋아했겠습니까? 이삭은 당연히 큰아들 에서를 더 좋아 했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모습의 야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강인한 에서 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습니다. 야성적이고 저돌적인 사냥꾼에 당당한 큰아들인 에서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날의 부모들도 자녀를 키우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 나는 이런 것을 못했는데 넌 꼭 그것좀 해봐라! 나는 이런 직업을 부러워 했는데 너는 꼭 이 직업을 가져봐라!”하면서 자식에게 이런 저런 직업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리만족을 위해서 자녀를 키우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자식을 편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 마음에 드는 어떤 아들, 어떤 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자녀는 소외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자녀의 자발성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의사결정권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갖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인생을 선택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나고 자녀는 자녀입니다. 자녀는 나와 독립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삭의 편애 속에서 자라난 야곱은 심각하게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평생 소원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서 소외된 아들로 자라 났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있어서 소원은 오직 한가지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아버지의 약속을 이어받을 소중한 아들인 것을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기를 쓰다가 결국 형의 장자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형에게 사기를 치고 다시 아버지에게도 사기를 치게 됩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사모하다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서 멀리 하란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도망중에 광야에서 돌베게를 베고 잠을 자다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부재를 떨쳐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자 참된 위로와 힘을 얻게 되고,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같은 야곱 인생의 결론 부분입니다. 금의 환양한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가뭄이 들어서 먹고 마실 것이 하나도 없게되자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서 양식을 사오도록 보냅니다.

 

그런데 애굽에 간 아들들이 거기서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알고보니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대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모든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대합니다. 야곱은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 가족 70인을 거느리고 애굽 땅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두사람이 만났습니다.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22년 만에 만나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해 합니다. 야곱과 요셉 부자의 극적인 상봉 장면은 가히 인정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그때 야곱은 “이제 내가 죽어도 족하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을 만난 요셉은 형들 다섯명을 데리고 바로왕에게 가서 인사를 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창세기 47:7) 라고 증거 합니다. 야곱은 바로왕을 만나서 바로왕을 축복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도 다시 바로를 또 축복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세기 47:10)

 

야곱의 평생 소원은 축복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의 인생이 많이 변했습니다. 축복을 구하던 자가 축복 하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야곱의 일생중에 마지막 모습은 하나님의 축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받기를 원해서 나왔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중에는 세상과 이웃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사람으로 변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딸입니다. 저도 제가받은 축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가 저 사람을 축복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기도할 때 계속해서 나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야곱에게도 이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축복받기를 원했던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탈취한 것도 축복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사기를 치자 오히려 축복이 떠나 갑니다. 형과 아버지에게 사기를 친후에 고난이 시작됩니다.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부모 형제도 중요 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신것을 확신하는것이 진짜 복입니다.

 

야곱이 도망가다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변화되기 시작 합니다. 야곱은 크게 두 번 하나님을 만납니다. 첫 번째는 고향을 떠나서 처량한 나그네 신세로 외삼촌집으로 가던중에 벧엘에서 돌베게를 하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 조상에게 주었던 그 축복을 네게 주겠노라”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아주 중요한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28:14)

 

야곱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때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이유는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복을 주시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그 축복을 나만 움켜쥐고 나만 누리게 하기 위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선포하고,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라고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닳은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너는 이제 복의 근원이 되라 너는 이제 남을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라는 말씀을 들은 후부터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이 열려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축복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선포 받았지만 여전히 의심하고,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이었기에 하란에서 사는 동안에 연단을 받게 됩니다.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정말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야곱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에 그에게는 이제 여유와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험난한 인생길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왕이 야곱을 만났을때 야곱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8-9)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방금 말씀 드린대로 바로왕 앞에 선 야곱이 바로왕에게 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바로왕에게 행한 축복은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닙니다. 구약 시대 족장들의 축복권은 일찌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권을 가지고 바로가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로왕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축복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세상에서 왕은, 권세와, 부를 가지고 제일가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축복하는 자격과 권한은, 하나님을 믿는 야곱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애굽은 천하에 제일가는 강대국 이었습니다. 바로왕은 그런 나라의 왕좌에 앉은 사람입니다.

 

한편 야곱은 가나안 땅에 살던 촌부입니다. 기근이 심하여 애굽땅에 이민 온 야곱은 아무런 부도, 권세도 없고, 풍채도 없고, 참으로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시골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축복의 권한은 바로왕이 가진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야곱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7절에 보면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과 바로왕중에 하나님을 믿은 야곱이 더 높은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권의 자격을 세상의 부자나 권세자에 주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예수믿은 우리가 축복하면 사회도 복을 받고 나라도 복을 받고 세계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10:12-13)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을 만나거나 이웃집에 가거나 이웃 동네에 가면 그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빈 축복이 그들에게 합당하면 그들이 복을 받고 그들이 복을 받기에 합당치 아니하면 너희가 빈 축복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의 축복을 받은 애굽왕 바로가 야곱에게 “네 연세가 얼마뇨?”라고 물었습니다. 야곱은 그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면서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생애와 조상들의 생애를 “나그네길”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야곱의 이런 신앙고백은 천국을 믿는 확신속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로 14절에 보면 야곱을 비롯한 모든 믿음의 족장들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니라”

 

야곱을 비롯해서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본향, 즉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았던 나그네들 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이 땅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천국만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땅이 아무리 풍요로울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로 거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내 나그네 인생길을 험악하게 보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야곱의 고백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야곱은 한평생 험난한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의 조부 아브라함도, 그의 아버지 이삭도 야곱처럼 그렇게 심하게 고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왕이 왜 하필 나이를 물었습니까? 바로왕은 야곱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그만큼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네 나이가 얼마냐?”라는 질문 속에는 야곱의 인생을 총망라하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습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시간 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윤회 적인 시간 관 입니다. 이것은 불교나 힌두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간 관입니다. 시간이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윤회 적인 시간 관은 돌고 돌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개미도 되고 개미가 죽으면 코끼리도 되고 코끼리가 죽으면 뱀도 되고 돌고 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윤회설입니다.

 

두 번째는 변증법적 시간 관 입니다. 이것은 정이 있으면 반이 있고 정과 반이 만나는 합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정, 반, 합의 삼각형의 관계로 이루어져 간다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의 시간 관입니다.

 

세 번째는 직선적 시간 관, 혹은 종말론적 시간 관입니다. 기독교의 시간 관은 직선적입니다.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습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만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이 아닙니다. 봄은 왔지만 그 봄은 내년에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전무후무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게 사용하느냐가 지혜로운 삶을 사는 바로미터입니다.

 

바로왕은 “당신의 연세가 얼마냐?”라는 질문을 통해서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소”라는 물음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야곱의 인생 이력서는 참으로 파란만장합니다. 성경의 인물가운데 야곱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은 드뭅니다. 그러면 야곱이 왜 그렇게 험악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까? 그 이유가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세상이 험악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왜 험악합니까? 그 이유는 마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 하셨지만 마귀가 개입하면서부터, 마귀에게 넘어가면서부터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덩굴과 엉겅퀴를 내었고 세상은 약육강식의 살벌한 싸움터로 변했습니다(창3:18-19). 마귀가 지배하면서, 세상은 악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기에 사람들이 인생을 살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두 번째로 세상을 살기가 험악한 이유는 세상도 악하지만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악해진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롬1:28). 창조 당시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서 순결하고 아름답고 착했지만 사람이 사탄마귀의 손아귀에 넘어 가면서부터 사람은 죄의 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부터 사람의 심성은 한없이 거칠고 악하게 변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후에 가인의 후예들은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매진합니다(창4:22), 그들은 온갖 음란문화와 타락한 쾌락문명을 만들고 그 문명속에서 타락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이 타락하고 사람이 악해졌기에 인생을 살기가 험악해지는 것입니다.

 

야곱도 험악한 세상의 피해자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돌아보면 야곱은 사람들과 얽히고 섥힌 일들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서 집을 떠나야만 했고, 멀리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에서 사는 동안에는 교활한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해서 20년간 고통을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외삼촌의 악한 아들들과도 갈등을 빚었고, 야곱이 고향땅에 돌아온 후에는 딸 디나가 추장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중에는 장성한 자기 아들들에게까지 배신을 당하고, 큰아들이 자기 첩과 간통하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실종되고, 하여튼 야곱의 인생은 이런 악순환이 일평생 계속 되었습니다. 이 모든일들이 벌어진 이유는 사람들의 악함 때문에 빚어진 일들입니다.

 

세 번째로 야곱이 험악한 인생을 산 이유는 자신의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야곱 자신도 “발뒤꿈치를 붙잡는 자”로 태어나서 남을 속이고 사기치고 욕심과 아집속에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일은 반드시 쟁취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한번 마음먹고 욕심을 낸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는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 권을 빼앗았고, 아버지까지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외삼촌과 그 집의 형제들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나중에는 야곱은 더 큰 갑부가 되어서 그들을 따돌렸습니다.

 

게다가 야곱은 신앙적으로도 이기적이었고 문제가 많았습니다. 자기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서원기도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지만, 그러나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자기가 드렸던 서원기도를 다 저버리고 내멋대로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이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이, 야곱을 험악한 세월로 몰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세상에 욕심을 품고 세상적으로 살면 그의 인생은 험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본능적으로 형의 발뒤꿈치를 붙들고 나오면서부터 야곱은 형을 이겨 장자 권을 빼앗은 자요, 장인으로부터 네 여자를 부인으로 취한 자요, 아닌 척 하면서 어느 정도의 농간으로 장인의 재산을 뺏은 자요, 에서의 축복을 은근슬쩍 빼앗은 자입니다. 그러나 남을 속이고 등친만큼 야곱의 삶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집착하고 땅의 것을 욕심내면 낼수록 그만큼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야곱의 일생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통스럽고, 슬픈,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인생을 살아온 야곱은 바로왕 앞에서 “내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런 인생이 어찌 야곱뿐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돌아보면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을 살아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네 연세가 얼마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 질문은 “너는 네 나이에 걸 맞는 인생을 살았느냐? 네 나이에 걸맞는 인격의 사람으로 살았느냐?”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네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 오는것을 기억하고 마지막 준비를 잘 해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다윗이 기도한 것처럼 “주여! 나의 날 수 계수 함을 알게 하사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오늘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이렇게 고난이 많은 세상을 사는 중요한 이유가 또한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이 악하고 사람이 악하고 내가 악해서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 가지만 그러나 사람이 고통을 전혀 안 당하고 그저 즐겁고 평안하고 행복하게만 살면 누구든지 세상만 좋아 하다가 죽어서 지옥갈 사람이 부지기 수입니다. 그래서 세상만 좋아하다가 지옥에 가서는 안되겠기에 하나님께서 고통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고통과 질병과 힘든 일들을 겪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래서 구원받아서 하늘나라를 사모하면서 사는 믿음을 갖게 되기에, 하나님께서 고통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찬송가 479장에 보면 “괴로운 인생 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 갈 내 고행 하늘나라”라고 노래 합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아 오는 동안에 인격이 다듬어지고, 믿음이 다듬어지고, 종국에는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아들 요셉을 인하여 바로 왕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게 되고 아들 요셉의 후광을 힘입어서 처음으로 고센 땅에서 평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아온 야곱에게는 참으로 모처럼 맛보는 행복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축복받기를 원했던 야곱이 이제는 바로왕을 향해서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들어가면서 축복하고 나오면서 축복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불만과 불평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직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섭섭한 일들이 생각나서 부모님을 싫어하거나 미워하고 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내 인생은 왜 이따위인가? 하고 스스로 자책하거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부재 경험을 인생 마지막까지 끌고가면서 마음아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이 모든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해야 합니다.

 

리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훨씬 더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축복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나를 축복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면 모든 사람이 복을 받도록 나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밟고사는 이 땅에 복 내려주세요! 하나님! 제가 만나는 사람에게 복을 주세요!”라고 축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을 축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일백 삼십년 나그네 길에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종국에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험악한 인생을 살았지만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았기에 행복한 인생으로 마무리 하게 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험악한 인생을 살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축복의 사람으로 인생을 살다가 우리의 나그네 인생 여정이 끝날 때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당도하여, 생명강 맑은 시냇가에 백합화 피고,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 찬송가를 부르는중에,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아쓰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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