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생에 성공하려면”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작년에 서울 중부경찰서는 천도제라는 기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3년 동안 약 172억원의 병원 공금을 빼돌린 서울 중구 소재의 대학병원 경리과장 최(53.여) 모씨와 더불어 그녀에게서 돈을 받아 챙긴 무속인 김(51.여) 모씨를 구속했습니다.
병원 경리과장이었던 최씨는 남편과 부모가 다치는 등 집안에 우환이 계속되자 점집을 찾아가서 무속인 김씨와 상담을 했는데 무당인 김씨는 남편의 전 부인의 죽은 영혼이 구천을 떠돌면서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으니까 남편의 전 부인을 위해서 천도제를 지내지 않으면 더 무서운 화가 남편에게 임할 것이라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경리과장 최씨는 전 재산을 다 털어서 5억원을 들여서 천도제를 지냈습니다. 그 후에도 무속인 김씨가, 기도를 멈추면 큰 화가 올 수 있다고 공갈협박을 하면서 최씨를 미혹하자 최씨는 결국 병원 공금을 횡령해서 무당인 김씨에게 주었는데 그렇게 사기를 당해서 무속인 김씨에게 갖다바친 돈이 무려 172억원 이었습니다. 최씨는 병원 운용자금을 부풀려서 신청하고,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진료비를 몰래 빼돌리는 방식으로 3년동안 172억원을 횡령한 것입니다.
무속인들은 사기를 쳐서 떼돈을 벌면 우선 제일먼저, 집을 사고 자기집에 부처님을 모신다고 합니다. 즉 무속인이 스님으로 탈바꿈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속인들은 굿을 하는데 굿보다 격이 높은것이 천도제라고 합니다.
천도제는 죽은 사람의 떠도는 넋을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부처에게 비는 행위가 천도제입니다. 그런데 굿은 무당이 할 수 있지만 천도제는 스님이 와서 염불을 해야 천도제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속인들은 천도제를 집례해야 돈을 많이 벌수 있기 때문에 가짜 스님 행세를 하면서 사기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도제는 무지해서 지내는 제사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 즉시로 천국과 지옥 둘중에 한곳으로 갑니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당들은 있지도 않은 영혼이 떠돈다고 천도제를 지내서 떠도는 영혼을 달래야 한다고 하면서 천만원 일억원씩 받아 먹고 사기를 치면서 천도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최씨를 속이고 172억원을 사기친 김씨는, 무속인 협회에도 등록되지 않은 사이비 무당이었습니다. 그는 자칭 동자보살로 사칭해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점집을 차리고 운영해 왔습니다. 무속인들은 하루에 평균 4명이 사기혐의로 구속이 된다고 합니다. 사기꾼에게 걸리면 인생이 끝납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무려 30년 동안이나 성실하게 인정 받으면서 근무하던 경리과장이, 사기꾼 무당에게 걸려서 하루 아침에 인생을 망쳤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녀의 나이가 53세인데, 이제부터 행복한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시기에, 점쟁이에게 속아서 전 재산을 다 날리고 7년동안 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으니 패가망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멋지게 출발했고 그 과정이 아름다워도 마지막 마무리가 잘못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변화시킬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일을 늘 근심걱정하면서 지냅니다.
둘째 실수를 하고도 똑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 합니다.
셋째 사소한 일에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자기 주장을 철회 하지 않습니다.
넷째 항상 남을 부러워 하면서 살아갑니다.
다섯째 일을 하다가 중간에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와 반대입니다.
첫째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둘째는 꿈이 있습니다.
셋째는 인내와 의지가 있습니다.
넷째는 끝없이 배우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합니다.
성공자의 첫 번째 비결이 “할수있다” 라는 자신감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윌리 아모스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성공은 캔에 담겨 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 하기를 “흑인은 수영을 잘할 수 없다! 왜냐하면 흑인은 신체 특성상 다른 인종에 비해 체지방보다 근육 비율이 높아서 물의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스포츠에 대한 인종적 통념은 거의 사실로 여겨졌습니다. 흑인 수영선수가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8 서울올림픽에서 수리남의 흑인 선수 “안토니 네스티”가 접영에서 우승하면서 이 이론은 깨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10년 전 까지만 해도 흑인이나 유색인종은 골프 같은 스포츠에서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통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대회를 제패하고 계속 우승 하면서 그런 통념도 깨졌습니다.
요즘 골프 역사가 특히나 짧은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세계 무대에서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닙니다. 이 모든 선수들을 한마디로 “세리 키즈”(Seri-Kids)라고 합니다. 박세리 선수가 맨발로 물속에 들어가서 공을 쳐내면서 연장에 또 연장전을 거듭한 끝에 US 세계여자오픈대회를 제패하던 광경을 지켜보던 초등학생들이 크게 감동을 받고서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세상에서 점점 달라지는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던 “윌리 아모스”라는 사람이 “성공은 캔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 I can 이라는 캔속에 말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I can”은 “나는 할수있다”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야기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세상적인 성공방법의 비결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공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소개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비참하고 절망적인 환경속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영국 수상인 윈스턴 처칠은 중학교에 다닐때 3년동안이나 영어점수에 낙제를 받아서 진급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너는 성공하기는 틀렸다” 라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릴때 하도 공부를 못해서 “열등아”로 분류되었습니다. 심지어 학교수업에 도무지 따라오질 못하니까 가르치던 선생님이 화가나서 에디슨을 집으로 쫓아 보낸적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문학가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았기에 몇 번이나 학업을 포기 하려고 고민을 했습니다.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의 계기를 만든 제임스 와트도 학교에 다닐때 “얼간이”로 낙인 찍혀서 놀림을 받았습니다.
헬렌켈러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대입 시험에 떨어져서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얼굴도 못들고 다녔습니다.
링컨은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오랜 세월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위대한 천문학자 갈릴레오는 본래 양복 수선공으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는 25세에 고향 취리히에서 가까운 곳에 빈민학교를 설립하여 80명의 고아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키면서 노력을 했지만 그러나 학교에서 일하는 두 직원의 반목과 불화로 인해서 결국 페스탈로찌가 운영하던 고아원은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방금 말씀드린 이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이기고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인생이 아무리 소망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안내자가 되어 주셔서 보람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수있는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서 받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예배를 통해서 받게 됩니다.
제가 방금 소개해 드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고 예배를 통해서 소망을 품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인생 성공의 첫 번째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신령이란 말은 “영”(Spirit) 즉 “성령”, 또는 “거듭난 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성령에 감동되어서 예배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영으로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진정”이라는 말은 “진리”(Truth)를 말합니다. 즉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때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 모든 사람들은, 예배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MBC에서 끝장토론의 사회를 보았던 백지연 앵커가 국내외의 많은 유명 인사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비결은 “크리티컬 매스”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알마. 2011)라는 책을 펴 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은 크리티컬 매스를 통과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였다”라고 주장 했습니다. 크리티컬 매스라는 말은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인데 “임계질량”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충분한 수 나 양”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물을 끓이기 위해서 필요한 온도는 섭씨 100도입니다. 99.9도로는 절대로 물이 끓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00도가 크리티컬 매스입니다. 반드시 통과 해야만 하는 마지막 과정이 크리티컬 매스입니다.
인생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거나 가난해서가 아니라 이 크리티컬 매스를 통과하지 못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실패했고, 성공한 사람들은 이 크리티컬 매스를 통과 했기에 성공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에도 크리티컬 매스가 있습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어떤 성도는 예배를 드리러 올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와서 감사와 감격속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가슴이 냉랭해서 오고, 예배를 드릴 때에도 전심으로 마음을 쏟아놓지 못합니다. 예배 중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락날락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즐겁고 신나게 찬송을 부르고, 말씀이 선포되면 “오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 하는 기대와 순종의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은혜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냉냉하고 딱딱한 사람은 말씀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오면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은혜에 동참해야 크리티컬 매스를 통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예배해야 할 때는 바로 이 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온갖 행복과 축복이 따라옵니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에 모든 왕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이스라엘 나라는 완전히 피폐해 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라” 라는 선지자를 세워서 신앙의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겸 학사였습니다.
에스라 7장 10절에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에스라는 당시에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인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살아갈 힘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에스라는 “마실 물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요 먹을 양식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기근이다”라는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 합니다.
오늘본문 느혜미야 8장 3절에 보면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에스라 당시의 수문 앞 광장은 그렇게 넓지도 편하지도 않습니다. 돌과 바위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언제 모였습니까? “새벽부터 정오까지”모였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새벽을 6시로 친다면 정오까지 12시까지 무려 여섯 시간이나 모여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시간 예배를 드립니다. 한시간 넘으면 성도들이 시계를 쳐다보고 몸을 비비 틀면서 괴로워 합니다. 우리가 에스라시대의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여섯시간동안 말씀을 들었는데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이 다 모였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아이들까지 모였습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다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은혜를 받아야 가정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와 세계의 역사는 사람이 바꿉니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오늘본문 3절을 다시보면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 단어는 “귀를 기울였다”라는 단어 입니다. “귀를 기울였다”는 말은 “헤루트”라는 히브리어 인데 이 말은 나무에 정교하게 조각을 할때 쓰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32장 16절에도 이 단어가 나옵니다.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하나님이 십계명을 돌에 새기셨는데 “새기셨다” 라는 말이 바로 “귀를 기울인다”라는 말과 똑같은 "헤루트"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조각가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슴깊이 받을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사람들이 그 말씀을 새겨 들을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땅에 얼굴을 대고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상숭배와 세속적인 삶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자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말씀을 듣고 겸손하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의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을 예배하는 천상예배가 소개 됩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요한계시록4:10-1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예수님 앞에서 엎드렸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예배를 히브리어로 “샤카”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170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몸을 숙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엎드려서 경배하고 복종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 주위에 서 있던 존귀한 장로들은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렸다”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럽고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상급으로 주신 영광의 면류관, 금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24장로들은 그 존귀한 면류관을 벗어서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결국 두 가지로 귀결 됩니다. 첫째는 엎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드리는 것 입니다. 예배의 정말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극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8절로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영혼에 감동과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변화의 징조가 바로 눈물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챤 의사인 이병욱 장로님이 “울어야 합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암 전문가인 이병욱 장로님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는 사람은 산다는 사실입니다. 울면 병이 낫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때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슬픔에 빠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장례식이 거행되는 날에는 영국사람들 모두가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3일 동안에 모든 국민들이 슬퍼하면서 울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영국에는 심리상담소로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다이애나비의 죽음 이후에 심리적 육체적 질병들이 현격하게 줄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다이애나비로 인해 흘린 눈물이 그 해답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심리학자들은 “다이애나 이펙트”(Diana Effect), 또는 “다이애나 신드롬”(Diana Syndrome)이라고도 말합니다. 다이애나 때문에 흘린 눈물이 눈물을 흘린 사람의 상처를 치유한 것입니다.
나와 특별한 관계도 아닌 다이애나 때문에 울다가 병을 치료받았다면 하물며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은혜를 받고 감격해서 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다가 은혜를 받아서 죄인됨을 께닫고 흘리는 회개의 눈물과, 구원에 대한 감사의 눈물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울때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 입니다.
에스라가 성경을 낭독하고 왕과 모든 백성들이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린 후에 그 다음의 장면이 12절에 소개 됩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예배를 통해서 진정한 행복을 맛본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 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 전 까지는 먹을것 때문에 싸우고 욕심과 이기심으로 갈등과 불화만 계속 되었었는데,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자 사람들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예배를 통해서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을 받고, 전무후무하게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성공한 솔로몬 왕이 말년에 무엇 때문에 실패하고 망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를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나라가 번창하고 부귀영화의 복을 누리게 되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등한히 하고, 술과 여자와 세상적인 쾌락을 좋아하고, 나중에는 이방여인들이 들여온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타락하고 강성했던 나라는 두 동강이가 되고 맙니다.
그런가 하면 예배의 모범을 보인 사람들은 영국의 청교도들입니다. 청교도들은 영국 국왕이 예배를 못드리게 핍박하니까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집과 땅과 재산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복을 내려 주셨고 그들은 복에 복을 받아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축복의 조상들이 되었습니다.
미국 남군의 유명한 리 장군에게 어느날 대통령이 수요일 저녁에 저녁만찬에 초대한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리 장군은 “선약이 있어서 못갑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나와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무엇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은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링컨대통령은 “미국에 있는 남녀는 하나님과 성경과 안식일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절대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19세기 최고의 시인이었던 롱펠로우는 “주일은 일주일을 한 덩어리로 묶는 황금 고리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주일성수가 일주일의 행 불행을 결정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이 복되게 사는 첫 번째 비결로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니라”(출 31;1-7) 안식일을 지키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어서 두 번째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인생 성공의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기도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로 13절에 보면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만나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 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만나 주시면 어떤 문제도 해결 됩니다. 야고보서 4장 2절로 3절에도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하면 “너희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기도를 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네 욕심을 채우고자 기도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김달성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결핵성 늑막염이 악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염이 되어서 옆구리에 호스를 끼고 피고름을 호스로 뽑아 내면서 5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현신애 권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받게 되었는데 현신애권사님께서 병이 낳을 수 있는 지침을 주셨습니다.
“첫째 죄를 회개하세요. 둘째 힘써서 기도하세요. 셋째 의심 없이 하나님의 치유 약속을 믿으세요” 였습니다.
전도사님은 권사님이 가르쳐 준대로 열심히 기도 하면서 현신애권사님을 찾아가서 매주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받은지 몇 달이 지난 어느날 집회중에 현신애권사님이 전도사님을 앞으로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갔더니 권사님이 호스를 뽑더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믿으면, 믿는 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 하신후에 환처에 밀가루반죽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 와서 쉬는데 놀라운일이 벌어졌습니다. 누워 있는데 갑자기 자기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된 것입니다. 마치 바울사도가 자기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서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고백하면서 신비한 환상과 계시를 체험한 것을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증거한 것처럼, 전도사님도 그런 신비한 체험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와서 방 천장위에 둥둥 떠 있는데 방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 몸의 호스를 빼낸 구멍에서 아주 흉측한 지네같은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놀래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 시커먼 지네같은 벌레가 얼마나 큰지 굻기는 검지 손가락처럼 굻고 크기는 젓가락만한데 그 벌레가 호스를 뺀 구멍에서 슬슬 기어나오더랍니다.
전도사님은 그 벌레가 너무나 징그럽고 흉측스러워서 쳐다보기도 싫더랍니다. 그런데 그 벌레가 몸에서 기어 나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난번에 류인종집사님께서 성좌산기도원에 갔을때 아들 류강윤목사님이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들의 간을 뱀이 칭칭 감고 있네요”라고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더럽고 악한 세력이 간을 둘러싸고 있는것을 원장님은 영적으로 꿰뚫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지네같이 흉측스러운 벌레가 옆구리에서 빠져나가는 환상을 본 그 다음날부터 기적이 벌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옆구리에서 흘러 나오는 피고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고름이 나올때마다 하루에 대여섯번씩 패드를 갈아 끼윘는데 점점 줄더니 한달 두달 지나면서 피고름의 양도 줄고 농도도 묽어지고 옆구리의 구멍에도 새살이 나오면서 구멍이 막히더랍니다.
그렇게 5개월쯤 지나자 아주 좁아진 실구멍을 통해서 물같은 분비물만 나왔고 나중에는 하루에 화장지 한 장 정도만 붙여 놓아도 될 정도까지 모든 증상이 정상으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6개월이 되자 피고름이 완전히 멈추고 구멍도 완전히 막혔습니다. 그래서 농염이 시작되어 피고름을 받아 내기 시작한지 5년만에 기적적으로 농염이 사라진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수술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가서 X-ray를 찍고 검진을 한후에 담당 의사와 사진을 같이 보았는데 의사선생님이 X-ray 사진을 보더니 달걀만한 크기의 빈 주머니 같은 공간이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 선명히 찍혀 있는 보고는 감탄을 하면서 “야!, 거참 신기하네 완전히 낳았습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은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전도사님은 비로소 깨끗하게 낳은것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 하면서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 이시구나”(출 15:26). 라고 생각 하면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예수님의 이름권세가 흉악한 병의 결박을 깨뜨린 것을 알고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더러운 벌레같은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도 감사를 드렸습니다.(요일 3:8).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언약의 말씀이 실현된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전도사님은 피고름이 마른후에 5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습니다. 비록 옆구리에 흉터는 남았지만 목욕탕에가서 목욕을 하는데 그 감격은 마치 하늘을 날아갈것 같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중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찬송 부르면서 신나게 목욕을 하셔야 합니다.
그때부터 김달성전도사님은 열심히 준비해서 목사안수를 받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계십니다.
한국교회 신유은사 사역의 대명사 였던 현신애 권사님은 본래 황해도의 불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권사님은 어릴 적부터 건강이 나빠서 많은 병을 안고 살았습니다.
결혼한 후에 첫 아기를 낳고 피를 토하면서 사경을 헤맸는데 봉천에 있는 서탑교회 여전도사님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기도를 받았는데 그때 그녀를 괴롭히던 폐결핵과 온갖 병들이 거짓말처럼 사라 졌습니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남편이 죽어서 큰집이 있는 충남 강경으로 외아들과 함께 이사를 해서 거기서 살았는데 현신애권사님은 거기서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교회에 충성봉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있는 집의 한 어린아이가 침상에 누워서 새까맣게 죽어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부모는 어디에 갔는지 없고 아이만 누워서 죽어가는 모습을 본 현신애집사님은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 아이 곁으로 갔는데 성령님께서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라” 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껴안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죽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생기를 얻고 되살아나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기적을 체험한 현신애 집사님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신것을 알고 그때부터 기도로 사람들을 고치기 시작해서 평생동안 수 많은 병자들을 고치면서 살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살아오면서 9차례의 수술을 받고 죽을날만 기다리던 소설가 임옥인 씨도 현신애권사님을 통해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고침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권사님을 통하여 치료의 비법을 전수 받고 기도에 전념 했습니다.
그 비결은 처음에 말씀 드린대로 “첫째 죄를 회개하라. 둘째 힘써 기도하라. 셋째 의심 없이 하나님의 치유 약속을 믿으라”였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나아온 사람들은 거의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첫 번째 방법이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가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는 것이라면 세 번째는 신앙인격입니다. 신앙인격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청산유수같이 잘해도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지난 9월 2일날 경기도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故 옥한흠 목사님 소천 3주기 추모예배가 열렸습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계의 어른이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을때 신문과 방송은 옥목사님의 소천을 짤막하게 방영 했습니다.
그래도 옥한흠목사님은 우리 한국 기독교계의 어른이신데 방송매체가 너무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전에 카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이나 불교의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보도를 하면서 장례식을 생중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계의 어른이신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너무도 조용한 가운데 장례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기독교의 낮아지고 약해진 위상을 보여주는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 했습니다.
어쨌든 사회의 평가는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옥한흠 목사님이 이루어 놓으신 제자 훈련이나 공정한 후계 선정 그리고 교회 연합운동과 약자를 위한 사회 사업등 여러 가지로 한국 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것은 그 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공과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 성도 뿐만 아니라 그 분을 아는 모든 성도들이 한결같이 옥한흠목사님이 돌아 가셨을때 슬퍼하고 안타깝게 생각을 했습니다.
옥한흠목사님이 돌아 가셨을때 제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간다고 했더니 사모가 반대를 해서 못갔습니다. 거기까지 뭐하러 가냐는 것입니다. 그냥 여기서 애도하면 되지 장례식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스승들이나 기도교에 어떤 일이 생겼을때 같은 신앙의 동역자들과 후배들 그리고 제자들과 성도들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야 우리 기독교가 더 힘이 모아져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옥목사님의 인생을 우리가 “성공한 목회자냐 실패한 목회자냐” 라는 단순한 잣대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옥한흠목사님은 성공적인 목회를 하신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사람들은 “옥한흠 목사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시키셨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만 그 분이 성공적인 목회자라고 결론 짓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교회를 대형교회로 만들면 성공했다?” 이건 기업적인 성공의 기준이지,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옥한흠목사님을 성공한 목회자로 여깁니까? 그 이유는 옥한흠 목사님이 소천하신 다음에 그분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에서 발견 됩니다.
사람들은 고백하기를 “옥한흠목사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신 목사님이셨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옥한흠목사님과 함께 한 세월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옥한흠목사님은 우리나라 개신교 설교자들 중에서 가장 무섭게 성도들을 책망하시고 꾸짖기로 유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옥한흠목사님의 꾸중을 들었기에 신앙이 제대로 성장했고 목사님이 성경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주셨기에 우리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책망하시고 때로는 위로와 사랑을 겸비한 목회자가 옥한흠목사님 이었습니다. 그래서 옥목사님은 타락한 세상에서 교인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을 찾게 만들어주신 목회자 였기에 성공한 목회자로 칭송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모든 성도들은 “목사님이 우리 곁에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고백 했는데 이것이 바로 옥한흠 목사님을 성공한 목회자로 인정하는 결정적인 고백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예수믿은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지고, 힘을 얻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면 그런 성도는 분명히 성공한 성도입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애를 썼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성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교회가 성공한 교회입니까? 예배당을 크게 짓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면 성공한 교회입니까? 그런 교회를 담임하면 성공한 목회자입니까? 큰 교회에 다니면 훌륭한 성도 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든지
그 교회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고,
그 목사님을 통해서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그 성도들을 통해서 이웃이 행복해 진다면
그런 교회는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한 교회요,
성공한 목회자요,
성공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성공한 신앙인에게서는 감사가 보여집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제가 전에 뉴 잉글랜드의 바닷가에 있는 한 집에서 불이난 사건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밤이되자 그들은 길을잃고 바다를 헤멨습니다.
어부의 아내와 딸들은 해변가에서 하나님께 그들을 구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들이 사는 오두막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모두 다 바다에 나가고 없었기에 불을 끄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면서 집이 타는 모습을 바라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자정이 넘어서 남편과 아들들이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아내는 절망스런 얼굴로 남편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망했어요. 우리 집이 다 불타 버렸어요 이젠 어떻게 해요!”
그러자 남편은 “여보 염려 말아요! 우리가 밤새도록 폭풍에 길을잃고 헤멨는데 저 멀리서 불이 보여서 그 불을 보고 우리가 집으로 찾아올수 있었소 알고보니 그 불이 바로 우리집이 불탄 것이었구료 집은 불탔지만 나와 세 아들들이 무사히 돌아 왔으니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 그래서 그 가정은 감사 하면서 소망중에 새출발을 했고 금방 다시 일어 설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사요 춘천제일교회의 집사님인 황영희선생님도 큰 환란을 당했습니다. 황영희선생님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충성스런 집사님입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고 하루의 첫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가정예배로 시작할 정도로 모범적인 신앙가정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학교에서 퇴근하는 아내 황영희 집사를 데리고 함께 귀가를 했는데 집에 와보니까 집에 불이나서 다 타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황선생님은 다 타버린 집 앞에 털썩 주저 않아서 “하나님!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가정예배까지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긴 결과가 고작 이것이예요?”하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울다가 퍼뜩 지난 주일날 목사님이 하신 설교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일이 벌어져도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다 타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지?” 하면서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감사는 커녕 자꾸만 원망만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하나님이 감사하라고 했으니까 믿음으로 감사를 해보자 하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이들이 그날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서 그때까지 집에 오질 않았기에 아이들이 집안에 없었던 것을 감사 했습니다.
그리고 불이 났는데 옆집에 피해가 없는것도 감사했습니다. 최근에, 남편이 앨범과 사진들을 정리해서 컴퓨터에 보관한다고 얼마전에 모든 사진을 다 회사로 가져 갔는데 평생 간직해온 오래된 사진첩들이 불타지 않은것을 감사 했습니다.
불이 났지만 그래도 수돗물이 잘 나와서 씻고 청소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다 불타 버렸지만 은행에 저금해 놓은 돈과 아이들을 위한 적금은 불타지 않고 그대로 있는것을 감사 했습니다.
옷을 드라이를 해서 입는다고 남편옷과 자기옷 수십벌을 세탁소에 맡겨놓았는데 그 옷들이 남아 있는것을 감사 했습니다. 하나 하나 감사하다 보니까 감사할 일들이 열 두 가지도 더 되었습니다.
황영희집사님은 감사기도를 한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당분간 시부모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시부모님 집에서 석달을 지내는 동안에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다 보니까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더 좋아졌고 특히 십 년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누이와의 관계가 불난일로 인해서 회복이 되는 바람에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하나님께 계속 감사 하면서 지냈더니 뜻밖에 남편 직장에서 집을 지을수 있는 융자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불난 땅에 다시 4층 건물을 잘 지어서 살림집과 상가를 짓는 바람에 3년만에 융자받은 빚을 다 갚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황선생님은 권사가 되었고 남편은 장로로 임직해서 충성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불이나서 모든 것이 다 사라 졌어도 감사신앙으로 일관했더니 하나님께서 더큰 감사의 제목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 정상에 선 신앙인의 아름다운 모습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오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인생 성공의 비결은 예배와 기도와 신앙인격과 감사에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인생 성공의 비결을 따라서 삶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앞에 칭찬받고 인정받는 성공적인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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