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4년2월2일주일낮롬14장13-23 명절이 즐거우셨습니까?

그리운시냇가 2014. 2. 2. 22:12

 

 

오늘은 명절주일이라 교회에서 식사를 대접하지 않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잔치하시라고 일부러 배려를 했으니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특송을 해주신 김재수집사님과 김부송권사님 가족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전에 김부송권사님의 소개로 아드님이신 김강은집사님이 다니는 대전 새로남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김강은집사님이 헌금시간에 특송을 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찬양을 들어 보니까 참 은혜스럽고 감동이 되어서 김강은집사님이 저희 교회에 오시면 꼭 특송을 좀 부탁 드려야 되겠다 싶어서 김부송권사님에게 오래 전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가족들이 함께 특송을 해 주시는 바람에 김강은집사님의 특송은 못들었지만 다음 기회에는 꼭 솔로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금 사모님이 헌금시간에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셔서 그러면 헌금시간에 특송을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미리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못하고 부탁을 드리는건 실례지만 김강은집사님 뵙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럼 헌금시간에 특송을 부탁드립니다.

 

설 명절이나 추석 명절은 시골 교회의 잔칫날입니다. 그런데 금번 설 명절은 수요일과 주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명절이 되는 바람에 성도님들의 자녀들이 수요예배와 주일예배에 거의 동참을 못하고 귀경하셨습니다.

 

시골교회는 명절에 흩어진 자녀들과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자녀들 집으로 명절을 쇠러 가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또 자녀분들도 일찍 귀경길에 오르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참석을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김재수집사님과 김부송권사님은 자녀들에게 “올해는 남해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가라”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재수집사님과 김부송권사님의 자녀분들이 오늘 주일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 예배에 동참해 주시고 하나님께 특송까지 올려주신 자녀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명절에 있었던 일들을 간증을 좀 하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명절이 시작된 후에 지난 목요일날 정세관집사님과 고예진집사님이 혜영이와 선우를 데리고 제일먼저 교회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정세관집사님과 고예진집사님은 박육이집사님의 사위와 딸이시고 고재준집사님의 매제와 여동생입니다.

 

지난주 예배시간에 제가 박육이집사님과 고재준집사님을 전도한 이야기를 했는데, 두분을 전도하신 분들이 바로 정세관집사님과 고예진집사님입니다. 정세관집사님의 딸 혜영양은 서강대학교 3학년인데 올해 보스턴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합니다. 아들 선우군은 올해 고3 입니다. 한바탕 입시전쟁을 치러야 할 나이입니다.

 

정세관집사님과 고예진집사님은, 저희 남해세광교회가 개척한 초기에, 저희교회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때 교회가 큰 힘을 얻도록 많은 헌금으로 섬겨주신 분들입니다. 금번에도 고향교회를 찾아 오면서 성도님들을 위해서 과일상자도 가져오시고 저에게 150만원의 헌금을 주고가셨습니다.

 

딸 아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야 하고 아들 아이는 이제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경제적인 지출이 만만치 않을텐데도, 귀한 사랑으로 고향교회를 섬겨주신 정세관집사님과 고예진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지난 수요일날 새벽에 나창희집사님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남편 지영달성도님과 같이 경매사로 일하는 분이 계신데 이분은 서면의 장항 항구에서 생선 경매일을 하시는 부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부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집사님 권사님 부부인데, 권사님이 감암 경매장에 오셨다가 나창희집사님 집에 오셔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창희집사님에게 어느 교회를 다니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설천에 있는 남해 세광교회를 다닌다고 했더니 “아! 그 남해 세광교회 목사님은 남해에서 설교 잘하기로 소문났고, 착하고 좋은 목사님이라고 정평이 났던데, 집사님은 참 좋은 교회를 다니시네요!” 하고 칭찬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나창희집사님이 저에게 하는말이 “그 권사님은 우리동네에서 정 반대쪽의 남해 끝쪽 동네에 사시는 분인데,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반대쪽 마을에 사시는 권사님이 우리교회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칭찬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랬어요!”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름지기 좋은 소문이 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이 함께 한다는 증거 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이곳에서 고생하면서 목회한 보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교회를 사랑하시는구나!”라는 생각에 이런 평판을 듣게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교회가 앞으로도 좋은 평판과 칭찬속에서 부흥 성장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사실 그동안 설천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가장 가슴아픈 일이 바로 교회에 대한 평판이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토박이 주민들이 교회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정말 마음이 상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천에 세워진 교회에 대한 첫 인상은 “교회는 싸우는곳”입니다. 두 번째는 “목사 쫓아내는 곳”입니다. 세 번째는 “언행일치가 안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무슨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쁜 소문들이 점점 사라지고 교회가 칭찬을 받고 있으니 춤을 추면서 기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의 방주가 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일을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심겨질때까지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설날 아침에 새벽기도를 마친후에 통성기도 시간에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오늘이 민속명절인 설날인데 오늘 제가 무슨일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는데 감동이 오기를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라”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끝난후에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제 집사람과 함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류복례권사님과 김미선성도님이 주신 떡과 김명심집사님이 가져오신 사과와 정세관집사님이 가져오신 배와 장모님이 주신 강정까지 한보따리를 싸들고 진주 고려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신 정두애권사님을 심방 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병실에 네분이 입원해 계셨습니다. 저는 정두애권사님을 만나서 “권사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했더니 권사님이 “목사님 오셨습니까? 오늘이 무슨날인데요?” 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구정명절입니다. 설날이예요!” 했더니 “오늘이 설날이예요? 병원에 있으니까 구정인지도 몰랐네!” 하면서 일어 나십니다.

 

저희는 정두애권사님과 김태봉집사님과 함께 병실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났더니 정두애권사님 건너편 침대에 계신분이 눈물을 닦길래 “교회 다니세요?” 하고 물었더니 “저는 권사입니다. 지리산 밑에 덕산에 삽니다”하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지리산 밑에 덕산마을에서 사는데 다리를 다쳐서 입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설날 가족들도 못만나고 병원에 계시다가 목사가 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마음이 기뻐서 눈물을 흘리신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예배후에 배와 사과를 깎고 떡과 강정을 병실에 계신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그리고 권사님에게 위로를 해 드린후에 김태봉집사님이 집에 다녀와야 겠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김태봉집사님을 모시고 남해로 돌아 왔습니다.

 

저는 그날 병원심방을 하면서, 이스라엘의 명절날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소망없이 지내고 있는 병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명절에 질병 때문에 부모형제나 자녀들도 만나지 못하고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처량하게 세월만 보내고 있는 병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인것을 깨닳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 사랑이지만, 주님이 하신일을 본받아서 행할 때 보람도 느끼고 기쁨도 느꼈습니다.

 

남해로 돌아오는길에, 이종한성도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종한성도님이 남해에 왔다가 사택을 들렀는데 목사님이 안계셔서 그냥 간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종한성도님은 친구의 전도로 예수를 믿은후에 어머니를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정봉임집사님도 이종한성도님의 어머니 박해순성도님을 전도 하느라 무진 애를 쓰면서 섬기셨습니다 .

 

이제는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아무도 안계신데도 이종한성도님께서 과일과 헌금까지 넣어서 문안인사를 드리고 가셨습니다.

 

저희가 교회에 도착한지 얼마 못되어서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 가족이 교회를 방문하셔서 다과를 함께 하면서 의미있는 대화를 나눌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김예슬집사님의 고백을 통해서 가정에서 여자의 위치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위치 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도 모셔야 하고 함께 사는 외할머니도 모셔야 하고 남편도 수발해야하고 두 자녀도 키워야 하고 이제 2월달이면 어린이집에 선생님 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일도 잘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일도 쉬운일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여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일도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위치가 집안에서 여자의 위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윤기원집사님이 떠나신 후에 조내원집사님과 강소애 집사님이 소원이와 강슬비양을 데리고 방문해 주셨습니다. 설 명절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보고싶었던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참 마음이 기뻤습니다.

 

조내원집사님은 정보 통신부의 후원 속에서 태국과 사업이 성사되기 일보 직전에 태국의 방콕에서 데모가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사업이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내원집사님이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조내원집사님은 지금까지 저희 교회가 설립된 이후로 5년동안 변함없는 사랑으로 매달 45만의 후원금을 보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조내원집사님이 복을 받는 모습을 반드시 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업의 문이 닫히거나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고 꼬일때에는 무조건 하나님앞에 근신하면서 겸손히 엎드려서 기도하는것이 모든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리고 백광영집사님 가족이 어제 오전에 다녀 가셨는데 제가 설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너무나 피곤해서 새벽예배를 드린후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백광영집사님이 다녀가실 때 못 뵙고 말았습니다.

 

백광영집사님께서 금번에 그림액자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제 집사람이 그 그림을 보는 순간에 너무나 은혜스럽다고 하면서 감탄했습니다. 저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제가 오늘 오후에 저희교회 카페에 올려 놓겠습니다.

 

명절중에도 어제 이진숙집사님이 오셔서 사모님과 함께 교회와 식당과 화장실을 청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진숙집사님과 최원산 성도님의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해서 직장엘 다니는데 2년동안 부지런히 일을 해서 소나타라는 새차를 사서 타고 왔다고 합니다.

 

최원산성도님이 너무나 기뻐서 "우리 이차를 타고 남해 드라이브좀 하자" 해서 최원산성도님과 이진숙집사님 그리고 이동에 사시는 최원산성도님의 형님까지 모시고 해오름예술촌과 남해 일대를 돌아보고 오셨다고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성공해서 명절에 한보따리 선물을 싸들고 부모님을 찾아와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면 일년의 시름과 일생의 시름이 다 사라지는듯한 기쁨을 누립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명절이 되면 멀리서 오는 자녀들 손주 손녀들 그리고 형제나 친지들을 섬기느라 몸살이 나는데도 마음이 기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봉임집사님과 정영자집사님 그리고 박천엽집사님이 자녀들, 손님들 섬기다가 몸살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명절에는 세벳돈도 엄청나게 나갑니다. 저도 찾아오는 성도들의 대학생자녀나 중고등학생 자녀들 세벳돈과 용돈주느라 기둥뿌리가 뽑혔습니다. 설이 지난 새벽에 차량운행을 하는데 성도님들이 세벳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는 세벳돈으로 60만원 나갔다 아이고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나갔다”하시면서 세벳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윤옥희권사님은 “그래도 손주 손녀들이 말처럼 쑥쑥 자라서 잘 커서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오는게 그렇게 즐거울수가 없어요”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런데 어제 청소를 마친 사모님이 저에게 “목사님! 이진숙집사님이 앞으로 꽃꽂이를 하시겠데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댓상에서 주일 예배 준비를 하다가 “아이구 이진숙집사님이 정말 귀한일로 헌신을 하시네?! 그럼 꽃살돈을 드릴께요!” 했더니 사모님이 “이진숙집사님이 꽃을 사서 하신대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놀래서 아니 꽃을 직접 사서 하신다고요? 하고 물었습니다. 적어도 매주 꽃꽂이를 하려면 한주에 5만원씩은 들어갑니다. 이진숙집사님이 학교에서 일용직으로 버는 급여로는 그런 헌신을 하기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월급의 삼분의 일 정도를 꽃꽃이 값으로 써야 하는데 그런 엄청난 헌신을 작정 하셨으니 대단한 헌신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진숙집사님이 드디어 새벽기도에 나오고 계십니다. “목사님 저는 죽어도 새벽기도에는 못나오겠습니다”하면서 권옥란권사님하고 똑같은 고백을 하셨는데 드디어 권옥란권사님의 뒤를 따라서 새벽기도에 나오고 계십니다.

 

제가 이진숙집사님에게 종종 "집사님은 반드시 새벽기도를 해야 합니다. 사위가 전도사님이시고 딸이 사모의 길을 가야 하는데 어머니가 딸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장모님이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사위전도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목회는 기도로 하는것이지 내 능력이나 인간적인 재능으로 하는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지금부터 열심히 기도해야 사위와 딸이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얼마나 시험이 많고 고난이 많은데 그 모든 시험과 고난에서 승리하려면 가족들이 불철주야 기도로 도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진숙집사님이 드디어 새벽기도에 나오시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 꽃꽂이를 헌신 하시겠다고 작정 하셨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크게 감동을 받으셨을줄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진숙집사님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더 큰 기쁨과 축복을 주십니다! 자고로 교회에서 꽃꽂이 하신 분들은 신기하게 하나같이 재물의 복을 받으셨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꽃꽂이로 헌신 하시는 분들은 꼭 재물의 복을 받더라”라는 간증들을 하셨기에 저도 이진숙집사님에게 그런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금번 설 명절에 고향교회를 찾아 오셔서 귀한 사랑으로 교회와 주의 종을 섬겨 주신 모든 성도님들과 예배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제가 설교 준비를 하다가 문득 “내 설교의 특징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결론이 “내 설교를 듣는 사람은 졸지 않는다”였습니다.

 

제 설교가 두루뭉실하거나 형이상학적이지 못합니다. 깊이가 있거나 의미심장 하지도 않습니다. 어렵지도 않고 부풀리지도 않습니다. 단순하고 직설적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솔직하게 전합니다. 그래서 현장감이 넘칩니다 마치 현장 중계차가 중계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조는 분들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설화법으로 설교 하신적이 많습니다. 현장에서 당사자들을 만나서 당사자들이 당하는 모든 문제들을 놓고 직접 설교를 하셨습니다. 저도 설교중에 우리 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당사자들이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당사자들에게 직설화법으로 말씀 하실 때 기적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제 설교에는 많은 분들이 등장했습니다. 또 앞으로도 몇분이 더 등장합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서 나와 관계된 사건들이 소개 될 때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여 실천하면 그런분은 오벳에돔의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로마서14장19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라고 증거 합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15장 2절에서도 가정이 행복하고 교회도 행복한 교회가 되려면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라고 하면서 선행과 덕행을 강조했습니다.

 

“덕을 세우라는 말에서 덕은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언행심사” 또는 “남에게 이익을 주거나 도움을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언행심사에서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덕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전에 “러브스토리”'(Love Story)라는 영화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상영이 되었습니다. 그 영화에서 유명한 명 대사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주인공인 하버드 법대생 “올리버”와 아내 “제니”가 처음으로 큰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때 충격을 받은 제니는 집을 나가 버립니다.

 

그때 격한 말로 제니에게 상처를 준 올리버가 후회를 하면서 집을 나간 올리버를 찾아 다닙니다. 그런데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제니를 찾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보니까, 제니가 집 앞에 서 있었는데 제니는 열쇠를 가지고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추운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 문 앞에서 밤 늦게까지 벌벌 떨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올리버가 제니에게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려고 했더니 제니가 올리버의 입술을 자기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했던 말이 바로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입니다 이 말은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라는 말입니다. 그때부터 이 말이 전 세계의 선남 선녀들에게 유행처럼 퍼졌습니다.

 

하지만 “연애나 결혼을 위한 카운슬러”들은 이 대사만큼 연인들에게 해를 끼친 말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못했을때 “미안하다”는 말을 빨리해야 빨리 관계가 풀어지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이 유명한 영화의 대사 때문에 그때부터 많은 연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서 서로의 관계를 망치는 일이 허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러브스토리”라는 영화가 아주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명화 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영화에서 나온 잘못된 대사 때문에 수 많은 젊은이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깨졌다는 것입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관계과 회복되고 덕을 세울수도 있는데 잘못해 놓고도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변화되기가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죽을때 까지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변화라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저도 제 인생을 돌아보면 교회학교 교사를 하면서 15년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고등학교 교사로 10년간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시 목사가 되어서 수십년간 설교를 하면서 살아 왔지만 제가 사람을 변화시킨 경험을 이야기 해 보라면 자신있게 이야기할 간증이 거의 없습니다.

 

제 평생에 저를 통해서 변화된 사람을 자세히 찾아보면 기껏해야 몇사람 정도에 불과합니다. 죽을때까지 안 변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입니다. 멀리 볼 것이 아닙니다. 내 가정을 보아도 내 자식이 변합니까? 내 남편, 내 아내가 변합니까? “변해라, 변해라”하면서 날마다 잔소리를 하면서 살아 왔지만 변하지 않습니다. 변화가 있어야 덕을 세우면서 살수가 있는데 변화가 없으니까 덕을 세울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에는 분명한 공식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깊어지면 상대방이 달라지기 시작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뭔가 변화되어야 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었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잘하면 나도 그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싶고, 즐겁게 해주고 싶은 그런 욕망이 생깁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면서 사는 비결을 배우려고 교회에 온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영혼에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면서 살수있는 한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예수님이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비로소 인간이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진리를 깨닫고 변화된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까? 고작해야 자식들과 부모밖에 모르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니까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놀라운 진리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우리의 시야가 그만큼 넓어졌고 우리의 인생의 무대가 세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땅끝마을에서 선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생의 시야가 이와같이 넓어지지 못한분은 성령을 받으면 넓어 집니다. 아직까지 인생이 변화되지 못한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시면 변화가 이루어 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그렇게 변하지 않던 사람도 성령이 임하시면 일 순간에 확 변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성령받는 일입니다.

 

제가 말씀 드린대로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신속하고 빠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을 들을때 이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본문 로마서 14장 1절로 12절까지는 두가지 문제를 언급합니다. 하나는 먹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어떤 특정한 날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신앙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오늘날에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가 깨지고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배당 안에 성탄추리 장식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해에 갑자기 몇몇 지식이 많은 교인들이 성탄추리에 대해서 따지면서 이의를 제기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추리는 본래 그 기원이 이교도에서 온 것이고 성경에도 근거가 없으니까 예배당 안에 절대로 크리스마스 추리를 세워서는 안된다! 당장 크리스마스 추리를 철거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돈을 드려서 만들어놓은 크리스마스 추리 장식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자 열심히 정성을 드려서 크리스마스 추리를 만든 사람들이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도 안된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하면서 그들과 싸웠습니다. 두 파가 나중에는 세상 법정에 고소를 했는데 “크리스마스 추리는 예배당 안에 장식하는것이 맞다” 라고 판결이 났습니다.

 

교회에서 사랑이 깨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 묻혀 버리는 이유도 이런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로 갈등하다가 교회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먹는 문제와 날에 대한 문제로 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13절에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한 마디로 말해서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어서 형제들 앞에 시험드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로 3절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이 있는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믿음이 없는 사람을 받아 주라고 권면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언행심사를 비판하고 없신여기는 일은 믿음좋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증거 합니다.

 

지난주 금요일날 김상철성도님 댁에서 아들 김기준성도님과 경혜숙성도님을 만났습니다. 두분이 서울에서, 다니는 교회에서 만나서 교제를 했는데 드디어 사랑이 무르익어서 금번 명절에 김기준성도님이 여자친구인 경혜숙성도님을 모시고 부모님께 첫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김상철성도님은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다는 소식을 접한 날부터 거의 매일 교회에 찾아와서 “목사님! 우리 기준이가 드디어 날짜를 잡았습니다. 2월 7일날에는 상견례를 하고요! 4월12일에는 피로연을 하고요 4월26일날 결혼식을 합니다. 이번 구정때 둘이서 인사하러 남해에 온답니다! 제가 정말 좋아 죽겠습니다” 하면서 김상철성도님은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네 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드디어 노총각 아들이 장가 간다고 모든 동네 사람들이 축하하면서 기뻐하고, 남해읍시장에서도 강둘자성도님 아들이 장가 간다니까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김상철성도님이 증경회장으로 있는 라이온스 클럽에서도 김상철성도님이 며느리될 여자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게 우리 며느리 될 여자요!”하고 자랑을 했더니 다들 “참 인물이 좋네요 축하 합니다”하면서 모든 분들이 축하를 하더랍니다.

 

저도 김상철성도님에게 “이제 며느리 될 분이 인사하러 올 날이 며칠 안남았으니까 그동안 건강관리도 잘하시고 술도 절제 하셔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며느리를 만나세요”하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

 

런데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설 명절인 30일날 서울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오기로 했는데 그런데 30일날 새벽 2시에 김상철성도님이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저를 기다리다가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더니 김상철성도님이 “목사님! 교회 문을 좀 열어 주세요!”하시길래 제가 나가서 교회문을 열고 히터를 키고 김상철성도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금번에 사촌동생도 자녀를 결혼 시키는데 피로연시간이 문제가 있어서 피로연 시간을 좀 바꾸어 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그 일을 상의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로 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오셨습니까?” 했더니 “아들이 장가 가는게 너무나 기뻐서 잠도 안오고, 또 교회와서 기도도 하고 싶고, 목사님과 상의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김상철성도님이 술을 한잔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서울에서 오는 며느리자리를 볼 날인데 술을 드시면 어떻게 합니까?” 했더니 “너무나 좋아서 한잔 했습니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새벽기도 하기 전에 지금 한잠 주무시고, 그리고 새벽기도가 끝나면 집에 가서 푹 주무신 후에 아들과 며느리를 맞이 하세요”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김상철성도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에 함께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전화 였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하고 저녁때 김상철성도님 댁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상황이 심각합니다. 김상철성도님이 술을 너무나 많이 마셔서 인사불성이 되어서 계시고 아들 김기준성도님은 술취한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울상이 되어있고, 강둘자성도님도 상황이 하도 험악하니까 아들과 며느리자리에게 “너희는 저녁식사를 한 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 가라”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상황이 보통 심각한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백년가약을 맺고 새출발을 하려고 준비하는 신랑 신부가 들떠서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왔는데 아버지가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아들과 며느리자리에게 넋두리를 하면서 횡설수설 하고 있으니 아들과 며느리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래서 김기준성도님이 망연자실해서 너무나 실망해서 비통한 얼굴을 하고있었습니다. 강둘자성도님도 이런 상황속에서는 서로가 상처만 받겠다 싶어서, 아들과 여자친구에게 저녁식사를 한 후에 상경하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난감한 상황입니까? 그런데도 김상철성도님이 저를 보더니 “목사님 기도좀 해주세요!” 합니다. 그

 

래서 제가 집으로 들어가 앉아서 일단 기도부터 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서로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는지와 더불어 오늘의 만남이 있기까지 또한 얼마나 많은 기도로 준비하면서 기다렸는지를 고백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일의 실태래를 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날 제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기도를 한 후에 저는 먼저 김기준성도님과 경혜숙성도님에게 “그동안 부모님이 얼마나 사모하는 마음으로 두분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비록 아버지가 오늘 술을 마시고 두분을 대한것은 두분에게 심히 섭섭하고 가슴아픈 일이 될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처음 만나는 며느리 자리에게 술을 마시고 만난것은 실수지만 그러나 아버지가 자기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마음이 기뻐서 술을 한잔 마신 것이니까 절대로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고 아버지의 진심만을 보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동안 김상철성도님이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서 그 먼곳에서 새벽기도를 다닌것과 더불어 날마다 저를 찾아와서 두분과의 만남을 학수고대 하면서 기다린 이야기를 소개 하면서 김기준성도님과 경혜숙성도님에게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비로소 아들 김기준성도님도 마음을 추스르고, 그리고 경혜숙성도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하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소개 하는가 하면, 그날 여자친구를 데리고 서울에서 남해까지 여자친구를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를 시켜 드리기 위해서 찾아온 김기준성도님은 아마도 인생을 살면서 그날이 가장 들뜨고, 흥분되고,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키워주신 부모님 앞에서 그 어느때 보다도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온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내 나이가 사십이 다되되록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낸것 때문에 늘상 근심하던 부모님에게 이제야 내가 효도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하는 뿌듯한 마음으로, 부푼 꿈을안고 들떠서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와서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 김기준성도님이 기대했던 즐거운 만남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술취한 아버지를 보는 순간 서울에서 차를 타고 내려올때 부풀었던 가슴은 마치 풍선이 터져서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처럼 비참한 마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 감정이 격해지면 극단적인 행동도 하게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보니까 명절날 부모자식간에 만났는데 아들과 어머니가 아무것도 아닌일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아들이 화가나서 어머니를 찔러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기쁨이 변하여 실망이 되면 누구라도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온 자녀와 부모가 서로 상처를 받고 낙심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날 제일 큰 문제가 된것은 김상철성도님이 마신 술이 제일 큰 문제가 되었지만, 그러나 김상철성도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김상철성도님이 아들과 며느리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흥분이 되고 너무나 감정이 격해져서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아들과 며느리를 만날수가 없어서 술을 한잔 마신 것입니다. 

 

김상철성도님이 성령이 충만해서 자녀들을 만났으면 더 바랄것이 없었겠지만, 그러나 김상철성도님은 신앙적으로 볼 때에는 아직  신앙의 초보자입니다. 그러나 김기준성도님은 30년동안 신앙생활을 한 신앙의 베테랑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버지가 오늘같이 중요한 날 정말 한심한 짓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죽고싶은 심정 이었겠지만 그러나 김상철성도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평소에 해오던 대로 당연한 일을 한 것입니다. 김상철성도님이 교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은 신앙의 초보입니다. 그래서 믿음좋은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참고 받아주고 품어야 합니다.

 

김기준성도님과 경혜숙성도님이 비록 나이는 부모님보다 어리지만 수십년동안 믿음생활을 해 왔기에 믿음좋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일이 벌어지면 정작 믿음좋은 사람들도 믿음과 사랑을 발동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이런날에,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에, 나와 여자친구에게 이런 모습밖에 못 보여 주는가?”하면서 비통해 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김기준성도님과 경혜숙성도님에게는 “아버지가 오늘 술을 마신것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니까 그것만 보지말고,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기다리시고 그리워하고 사랑하시고 보고싶어 하셨던것만 기억하세요!”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자녀는 무조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이 마음에 안들어도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김기준성도님도 마음이 풀어져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락 상황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날 김기준성도님이 마음의 본질인,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은 외면하고 비 본질인 아버지가 술을 마신것만 보고서 섭섭해 했다면 이번 혼사는 어쩌면 대단히 큰 시험과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강둘자성도님도 이런 난감한 상황 속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고 “오늘 서울로 돌아가라”라고 말씀 하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가 다 끝난후에 김상철성도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오늘 가버리면 난 다시는 교회 안간다”하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교회 다시는 안간다”라는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너희들 제발 가지 말아라”라는 말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 술이 취해서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너희들과 같이 있고싶다” 라는 호소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참 마음입니다. “비록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기다리지 못해서 술을 한잔 마셨지만 그러나 내 마음은 정말 너희를 사랑한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그날 김상철성도님의 자녀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다시한번 깨닳았습니다. 아들 김기준성도님과 경혜숙성도님도 아버지의 진심을 알았기에 다음날 아마도 평안한 마음으로 귀경했을 거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일이 벌어져도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하고 정죄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 것이 믿음좋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김안순집사님이 음식을 해오면 “돈을 십만원씩이나 주는데 반찬이 이게 뭐야? 오늘은 먹을게 없네?” 하고 트집을 잡거나 절대로 원망불평을 해서는 안됩니다. “김안순집사님이 그 멀리 사천에서부터 음식을 해 오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꼬? 그 바쁜 와중에 오늘도 수고가 많았구나!”하고 생각 하면서 위로하고 칭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성도님이 똥누러 가서 화장실에서 늦게 나오면 “무슨똥을 그렇게 오래 눠? 뭘 처먹었길래 저렇게 오래걸려?”하면서 투덜댈게 아니라 “에고! 시금치 가린다고 밤새도록 앉아서 고생하더니 똥구멍이 막혔나보다! 내가 소화 잘되라고 저 집사님에게 시래기국이라도 끓여먹게 시레기를 좀 주어야 겠구나!”하고 위로하면 그런 분에게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다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일로 근심하고 시험에 든다면, 그것은 형제를 낙심시키고 실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을 하지 말라”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점을 건드리면 터집니다. 그것을 비켜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20절과 21절에서 바울사도는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그 자체가 악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먹으면 깨끗한 것이고, 더러운 마음으로 먹으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사람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행 할 때에만 좋은 결과가 나타 납니다. 사랑없이 행하면 악한 열매가 맺히고 사랑으로 행하면 선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21절에서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믿음좋은 사람이 제사음식을 먹는것을 보고 믿음없는 사람이 “너는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왜 제사음식 먹는거냐?”하고 따지거나 시험에 들어서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생길것 같으면 아예 제사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또한 믿음이 깊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 이해하고 양보하고 사랑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아직도 주초문제가 신앙의 수준을 정하는 규례처럼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거나 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절대로 중직자가 될 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담배문제는 성경에 기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전에도 한번 소개해 드렸지만 19세기 최고의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님은 아주 골초 였습니다. 심지어는 목사가 되어서도 항상 담배를 피우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스펄젼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 근처의 담뱃가게에서 선전문구를 써 붙여 놓기를 “스펄젼 목사님이 잘 피우는 담배를 파는집”이라고 써 붙이고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누군가가 스펄젼 목사님에게 전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앞의 담배가게가 목사님이 잘피우는 담배를 판다고 선전을 하면서 담배를 팝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면, 이제는 내가 담배를 끊을때가 되었군”하고 고백을 하시더니 그날부터 담배를 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교회의 한 직원이 “목사님! 목사님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신앙의 본질문제가 아니기에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고 늘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왜 담배를 끊기로 결심 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목사님은 “나는 상관이 없는데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게 되거나 또는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 때문에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덕이 안되는 일이기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기에 내가 담배를 끊기로 한걸세”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믿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안믿는 사람이 보고 그일로 나를 정죄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되기에 담배를 끊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과 21절의 말씀도 이와 동일한 내용을 증거한 것입니다. 더 쉬운 예를 든다면 어떤 유명한 누드화가가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가 어느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화가는 자기가 구원받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목사님에게 선물을 했는데 아름답고 예술적인 여자의 나체화, 즉 누드화를 선물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누드화를 거실에 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성도가 목사님의 사택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거실에 걸린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성도는 깜짝 놀래서 “어머머 세상에! 목사님 사택에 어떻게 저런 홀딱벗은 여자그림이 걸려 있어? 이건 말도안돼!?”하면서 속으로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 성도는 “저렇게 불경건한 목사님 밑에서 나는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수없어!”하고는 구역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구역장을 통해서 목사님에게 들어갔습니다. 이럴때 목사님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실 한국 사회에서도 예술과 외설 사이의 문제가 종종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어떤 것은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정죄를 당하는 외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과 외설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벗고있는 작품을 보고 나서 마음에 아름다운 미적 감각이 우러나오면 예술이고, 그 여인의 작품을 보고 군침이 돌면 외설이다” 

“그 작품을 애인과 함께 같이 볼 수 있으면 예술이고, 친구와 함께 은밀한데서 보는 것은 외설이다”

“보고 나서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예술이고, 몸의 한 부분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면 외설이다”

“비디오나 씨디를 빌려주었는데 다시 돌려주면 그 비디오나 씨디는 예술이고, 안 돌아오면 외설이다”

 

자 이 성도가 목사님 거실에 붙어있는 그림을 보고 시험에 들었으면 목사님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책상 위의 벽에도 아름다운 김연아선수가 스케이팅을 하는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손연재선수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체조를 하는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조카들이 수영복을 입고 허용식집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어와서 그 사진을 보고 “목사님! 목사님이 어떻게 저런 야한 사진들을 벽에 붙여 놓을수가 있어요?” 하고 시험에 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유 불문하고 그 사진들을 다 띠어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합니다. 저는 김연아나 손연재선수의 아름다움과 그녀들이 국가적인 명예를 고취시킨것과 그들이 준 감동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볼때마다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약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목사님이 불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당장 떼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증거하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 가를 따지지 말고 항상 믿음이 깊고 믿음이 큰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감싸고 돌보아 주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것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덕을 세우고 형제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본문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라고 증거 합니다. 사도바울은 먹고 마시는 문제로 싸우지 말라고 권면 했습니다. 이것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성령 안에서 세 가지가 있는데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증거 합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이 세 가지가 함께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집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빠져도 안됩니다. 의 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평강이라는 것은 서로 서로 화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도 불편함이 없는 만남을 말합니다. 온전한 화목이 평강입니다. 또 희락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마음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으면 안됩니다. 나 자신에게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의를 이루고 이웃에게는 화목을 이루고, 내 마음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의의 문제입니다.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화평의 문제입니다. 이기의 문제가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8절은 성도가 받아야할 평판에 대한 결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기뻐하심을 받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섬기는것 같은데 사람들로부터 개떡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사람은 엉터리 신자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다하는데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불완전한 신자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자신에게는 기쁨이 충만하고,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받는다면 그런 사람이 진짜배기 성도입니다.

 

성도들은 교회 앞에 덕을 세우고, 모든 신자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덕을 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화평하게 하고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는것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 덕을 세우는 성도들이 많으면 그런 교회는 생명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남군 총사령관 이었던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이 패잔병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후퇴하다 포토맥 강에 도착했을 때, 뒤에는 링컨이 지도하는 북군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와서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리 장군은 부하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북군 입장에서는 리 장군을 포로로 잡고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링컨(Abraham Lincoln)은 상황보고를 받은후에 승리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미드(George Gordon Meade) 장군에게 즉시 남군을 공격하라는 전보를 쳤습니다. 그러나 미드 장군은 작전회의를 하면서 신중을 기하면서 준비하다가 그만 시기를 놓치고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리 장군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바람에 밤새 강물이 줄어들었고 리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포토맥 강을 건너서 도망을 쳤습니다.

 

링컨은 리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서 미드장군을 총사령관 자리에서 해임하기로 작정을 하고 미드장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는 잘못에 대한 책망과 함께 엄중하게 책임을 추궁하는 편지였습니다.

 

미드 장군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판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링컨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링컨이 그 편지를 발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격노한 마음으로 미드장군을 총사령관 직에서 파면한다는 편지를 썼지만 그 편지를 보내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비록 미드장군이 실수를 했지만 책망보다는 무언의 기다림으로 다시 기회를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링컨은 분노를 삭힐 줄 알았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라고 했고 26절 에서도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첫째는 구원이요 둘째는 덕을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한분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밀라드 훌러”는 해비타트 운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헤비타트운동은 사랑의 집짓기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밀라드 훌러”라는 변호사이자 사업가에 의해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그는 이미 나이 28세에 백만장자가 되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이혼선언을 하고 그에게서 떠나 가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 이유가 무엇이냐”하고 물었더니 그녀가 “돈이 인생의 전부인줄 아는 당신의 삶에 환멸을 느꼈어요”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인생을 돌아보고 신앙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정말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에 그는 목사님의 권면으로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클래런스 조던 박사가 이끄는 코이노니아 농장을 방문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인종을 초월한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그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즉시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고 곧 자기의 재산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살던 집을 제외한 일체의 엄청난 빌딩들과 사업체와 땅과 재산과 수십만불씩 나가는 여러대의 자동차와 수백만불의 요트와 수천만불의 자가용 비행기까지 모두다 팔아서 드디어 무주택 영세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백만장자에서 졸지에 집이 하나밖에 없는 빈 털털이가 되었지만 그러나 그는 헤비타트 운동으로 인해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고 삶의 참된 가치를 찾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이라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 받고, “마르틴루터 킹 인도주의상” 이라는 최고의 시민상을 수상받기도 했습니다.

 

해비타트직원중에 한 관계자는 그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 했습니다. “그는 욕심을 버렸기에 하나님을 만났고, 물질을 포기했기에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했고, 자기가 가진 특권을 포기했기에 진정한 행복을 얻었으며, 자신을 버렸기에 이웃을 찾았고, 쾌락을 버렸기에 명예와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사람을 평가한 글을 보면서 “이 사람은 깨닳은 후에 예수님처럼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신 주님의 희생정신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밀라드 훌러”의 삶을 연구한 학자들은 그의 삶을 가르켜

 “망치의 신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의 병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망치로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깨닳은 밀라드 훌러도 섬김의 망치를 들고 이웃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생을 살았기에 그는 망치의신학을 가지고 살았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향을 받은 지미 카터대통령도 그리고 정근모 박사도 모두가 사랑의 망치를 들고 가난한 이웃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에 전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자가 망치를 들고 집을 짓는 지미카터에게 “대통령을 지낸 분이 이런 일을 하시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지미카터는 “대통령을 한 후에 이런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저에게 대통령을 시킨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참된 인생의 가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이웃사랑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닳은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분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야 나라도 제대로 되고 교회도 제대로 되는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힘겨워 하는 이웃들을 세우기 위해서 꼭 망치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정겨운 악수와, 간절한 중보기도와, 소리없는 미소와, 변함없는 관심등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이웃들을 구원하고 이웃에게 덕을 세우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언행심사로 가족들과 이웃에게 덕을 세움으로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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