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배후에 새남해 라이온스클럽에서 저희 교회를 섬겨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새남해 라이온스 클럽의 증경회장이신 김상철성도님의 협조로 우리가 귀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상철성도님과 새남해 라이온스 클럽의 문철옥회장님, 그리고 저희를 섬겨주시기 위해서 오신 모든 회원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어제 새벽예배때 나창희집사님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경찰시험에 합격한 아들 홍석군이 제주도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벌써 2년차가 되어서 진급시험을 쳤는데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석군이 순경에서 경장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한지 3년 된 막내딸이 아기가 없어서, 임신하게 해 달라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는데 드디어 임신을 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 주셨습니다. 해운대에서 옷가게를 경영하던 큰딸도 서울에 가서 자기가 원하는 좋은직장에 취직이 되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둘째딸은 교회에 다니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고 합니다.
나창희집사님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 그 집안에서 한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더니 하나님께서 마치 오벳에돔의 가정에 복을 주신것처럼 범사에 형통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창희집사님은 성경읽기 대회에서도 매년 전 교인중에 3등 안에 드는 열정으로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계십니다. 심방을 가보면 나창희집사님은 늘 성경을 읽고 계십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말하기를“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모든 행복의 근원이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게 되어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황제인, 메넬리크 2세가 어느날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그는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하면 성경의 능력이 나에게 나타날까?” 하고 생각하다가 성경을 한 장씩 찢어서 씹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먹으면 낫겠지”싶어서 마치 약처럼 성경을 씹어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책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불량으로 죽었습니다. 뇌일혈로 쓰러졌는데 그만 소화불량으로 죽은 것입니다. 성경을 오해했기에 빚어진 참사입니다. 성경은 찢어서 먹는다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읽어서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그대로 준행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주일을 성수 하라면 주일을 성수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면 이웃을 사랑하고, 술취하지 말라면 술 마시지 말고,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으니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 하신대로 성경대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이 언약하신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땐가, 제 집사람이 헌금계수를 마친후에 하는말이“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창희집사님에게 복을 주시지요!”합니다. 그래서“그게 무슨 말인데?”했더니“부활절이고 추수감사절이고 절기때마다 나창희집사님이 가장 헌신적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이 나창희집사님에게 복을 주실 수 밖에 없지요!”합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법칙이 나창희집사님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대로 하늘에서도 상급을 예비하시고 땅에서도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방치되어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올때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왕이된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자기가 거하는 왕궁으로 모셔오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모세가 만든 궤입니다. 크기는 가로가 1미터 22센티이고 세로와 높이는 똑같이 76센티미터 입니다. 그러니까 강댓상 만한 궤 입니다.
그런데 궤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겉과 속은 온통 금으로 둘러 쌌고 윗쪽 덮개에는 천사날개가 달린 두 사람의 그룹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금으로 만들어서 그 덥개를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법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맛나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는 항상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을 했는데 법궤를 모시고 가는 곳마다 전쟁에 승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법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권능의 상징이었습니다. 법궤를 모시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어느날 이스라엘과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때 이미 성령이 떠난 사울왕이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전쟁에 대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법궤를 빼앗아간 블레셋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나라로 들여 왔는데 그때부터 블레셋나라에 엄청난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걷잡을수 없는 재앙이 나라에 창궐하자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그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때 사울왕은 하나님의 법궤가 다시 돌아왔는데도 그 법궤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는 아미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이 왕이되자 다윗왕은 제일먼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로 결심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긴 세월동안 방치되어 있는 것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법궤를 옮기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우리게 됩니다.
다윗은 나라가 복을 받는 결정적인 비결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열두 지파로 나누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도 하나님 중심으로 모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법궤를 모셔오는 일에 전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라고 증거 합니다. 즉 이스라엘 영토 최 남단에서부터 최 북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들을 다 불러 모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그 날에 모든 천부장, 백부장, 그리고 장수들이 동원되었고 8절에 보면 궁중의 악사들도 동원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을 하였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이제 준비를 마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새로 만든 수레에 싣고 웃사와 아히야로 하여금 수레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백성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법궤는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벱궤가 오는 도중에 큰 사고가 벌어집니다. 법궤를 실은 소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펄쩍 펄쩍 뛰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수레에 실려있는 법궤가 기울어지면서 넘어지려고 하자 수레를 끌던 웃사가 놀래서 법궤를 붙잡았는데 그 순간 웃사가 즉사해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잔칫집 분위기는 졸지에 초상집으로, 장례식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법궤의 운반작업은 취소되었고 다윗왕이 기울였던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웃사는 죽고, 다윗왕은 낙심해서 왕궁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모든 백성들도 비통한 마음으로 다들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런일이 벌어진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7장 9절에 보면 법궤는 반드시 어깨에 메어 운반하라고 하나님이 명령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법궤를 소 수레에 싣고 옮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신 또 한가지 이유는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댔기 때문입니다. 민수기4장 15절에 보면 법궤는 고핫자손이 메고가되 절대로 성물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다윗은 법궤를 옮길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하셨고 급기야 웃사를 치심으로 웃사는 직사해 죽고 맙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사실 법궤를 메고 가는 것 보다 수레에 끌고 가는 편이 훨씬 편리합니다. 시간도 단축되고 또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편리주의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또하나는 합리주의입니다. 법궤가 떨어지려고 할 때 그 법궤를 손으로 잡아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의 생각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편이주의적 발상과, 합리주의적 생각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물결이 밀려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좀 있는 목사들은 골프치러 다니고, 총회장과 노회장이 되려고 수천만원, 수억원씩 돈을 쓰고, 교회안에 볼링장 당구장 수영장에 심지어 춤추는 시설까지 갖추고, 교회를 대물림하여 자식에게 목회를 하게하고, 교회마다 목사와 중직자가 갈등을 빚으면서 싸웁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그런 교회 그런 목사는 꼴도보기 싫다고 교회에 오지않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니까 점점 새벽기도 철야기도 하는 성도가 줄어들고 그래서 모이기를 싫어하고 집에서 TV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성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법궤를 옮길때에 죽은 사람은 웃사입니다. 그러나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다윗왕입니다. 이 모든일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다윗이기에 다윗이 모든 일을 책임 져야합니다.
사실 다윗도 어느정도 영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이 엄청난 역사를 준행하면서 즉 법궤를 옮겨오는 중요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기도했다는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전에 다윗은 무슨일이 있던지 사사건건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면서 일을 준행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중대한 일을 앞두고 전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거룩한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종이나 선지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던지 신앙의 원로들을 모아서 조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장 1절에 보면 다윗이 불러모아서 의논하고 상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군인들 이었습니다.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적어도 이런 중요한 일을 준행하려면 대 제사장과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상의를 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수행하면서 하나님의 종들과 의논하지 않고 군인들과만 상의한 것입니다.
게다가 처음에 말씀 드린대로 민수기 4장 15절과 같이 법궤는 고핫 자손이 운반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 하셨는데 아비나답의 아들들에게 맡겼고 그리고 법궤는 어깨에 메어야 하는데 수레에 실어서 옮겼으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은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당시에 다윗은 이전과 달리 신앙이 느슨해져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도망다닐때에는 시종일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또 헤브론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서 백성들을 다스릴 때에도 마음의 생각이 오직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왕이 되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도 승승장구했고 모든 것이 다 형통 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영적이 긴장이 풀리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 했습니다.
다윗은 영적인 긴장이 풀어 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기독교 인터넷신문에 의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한 수도원에서 수십명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그중에 한 아이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시기질투를 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이 원장에게 몰려와서“원장님은 왜 그 아이만 사랑하는 거예요?”하면서 따졌습니다.
그러자 원장이 아이들에게 숙제를 하나 내 주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수십마리의 새를 기르고 있었는데 원장이 아이들에게 새를 한 마리씩을 꺼내 주면서“너희들은 지금부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몰래, 해가 질 때까지 내가 나누어 주는 이 새를 죽여서 나에게 가져와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자 해 질녘에 아이들이 새를 죽여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마당에는 죽은 새들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사랑하는 그 아이는 유일하게 새를 산채로 그냥 가져왔습니다. 원장이 그 아이에게“너는 왜 새를 죽이지 않고 그냥 가져 왔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원장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셔서 아무도 보지 않는곳을 하루종일 찾아 다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저를 보고 계신것 같았어요!”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장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이래서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는 거란다! 너희도 이 아이같은 믿음을 가지도록 해라! 그러면 너희도 사랑을 받게될 것이다”
다윗은 처음에는 하나님과 철저하게 동행 했지만 긴장이 풀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수요일날 말씀 드린것처럼 “코람데오”즉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간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면 좀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이제 법궤를 만진 웃사가 즉사하자 다윗은 심히 두려워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중단하고 법궤를 그 근처에 있었던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법궤가 오벧에돔에 거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큰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본문 14절에 보면“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오벳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조명하면서 오벳에돔이 복을 받은 이유를 깨닫고 우리도 오벳에돔이 받은 축복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웃사가 죽은 후에 이 언약궤가 어떻게 해서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겨 졌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러나 성경 학자들은 이때에 오벳에돔이 자원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자청을 해서 언약궤가 오벳에돔의 집으로 갔을 것이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그러면 오벳에돔은 어떤 믿음이 있었길래 하나님이 진노 하셔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와중에도 그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이는 일을 감행 했습니까?
오벳에돔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하나님이 진노 하셔서 저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 갔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모시기만 하면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 이시기에 반드시 복을 주실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마치 삭개오가 갈등과 고민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을때,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이고 예수님 앞에서서, 지나간 과거를 회개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을 함으로써 큰 복을 받은 것처럼, 오벳에돔도 하나님을 모실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에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들인 것입니다.
오벳에돔은 생각 하기를“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와 재앙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고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라는 하나님의 싸인임에 틀림없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시험과 고난은 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가서 극진히 하나님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데도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재앙이나 고난스러운 일들은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셔서 주시는 징벌이 아닙니다.“이제부터 너는 더욱 마음을 잡고, 오직 믿음으로 살고, 그리고 나와 동행하면서, 나만 바라보고 살아라”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벳에돔처럼 고난과 환란이 닥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내 집에 모셔 들이고, 그 하나님을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내 인생의 구세주로 모셔 들이고, 하나님을 극진히 섬길때 오벳에돔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나에게도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들인 오벳에돔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들인 오벳에돔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첫째는 방금 말씀 드린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을 멀리할때 오벳에돔은 앞장서서 하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이것이 오벳에돔이 복을 받게된 결정적인 첫번째 동기 입니다.
둘째로 오벳에돔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집에 모셔드린 후에 신령과 진정으로 제사를 드렸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오벳에돔은 그 이름의 뜻이“예배하는 자,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벳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집에 모신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셋째로 오벳에돔이 복을 받은 이유가 역대상 15장 21절에 나옵니다.“오벧에돔은 수금을 타서 찬양을 인도하는 자였으니”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 옛날에 수금을 타면서 찬송을 했다면 오벳에돔은 음악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고로 어느 나라든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주로 연예인이나 가수 또는 궁중 악사나 세상 즐거움과 영광을 만끽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오벳에돔은 자기가 가진 음악적 재능과 달란트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용 했습니다. 그가 평소에 늘 수금을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 했기에 그는 나중에 역대상 15장 21절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금을 타면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서 찬양을 인도하는 찬양 사역자가 됩니다.
오벳에돔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집에 모셔 들인후에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를 드렸고 또한 수금을 타면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오벳에돔이 얼마나 극진히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 했으면 언약궤를 집에 모신지 3개월밖에 안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복을 쏟아 부어 주셨겠습니까?
게다가 더욱 놀라운 기록이 역대상 26장 4절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오벳에돔의 여덟명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여덟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더불어서 오벳에돔의 아들들 여덟명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 직무를 잘 감당 했다고 역대상 26장 8절은 증거 합니다.
이와같은 축복이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은 오벳에돔이 평소에 자기 자식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였고 또한 자식들에게도 하나님 경배하는 법을 가르쳤기에 오벳에돔의 여덟 아들들이 하나같이 다 복을 받은 것입니다.
더불어서 역대상 26장 8절에 보면“이는 다 오벳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 하는 자니 오벳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명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오벳에돔의 자식들과 손주 손녀들이 육십이명인데 그 모든 자손들이 하나같이 능력이 있고 그 맡은바 직무를 잘 감당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오벳에돔 한 사람이 하나님께 극진히 예배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믿음의 본을 보이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쳤더니 하나님께서 그 집안에 큰 복을 내려 주신것입니다. 역대상 26장 6절에 보면 “그 손주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큰 용사가 되었다고”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더불어서 하나님은 오벳에돔의 집과 그 소유에도 복을 내리셨다고 오늘 본문 마지막절인 14절은 증거 합니다. 오벳에돔이 복을 받은 결정적인 원인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오벧에돔이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웃사가 죽었을때 아마도 큰 소요가 일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12절에 보면 당시의 상황을 잘 증거 합니다.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그렇게도 법궤 모셔오기를 원해서 이 거대한 역사를 주도했던 다윗도 크게 겁을 먹고 두려워 하게 됩니다. 그래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들이는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법궤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20년 이상 머물었던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웃사가 직사해 죽었으니 아비나답이 절대로 자기집으로 모시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좋은 다윗이 손을 들고 포기를 했는데 누가 나서겠습니까?
그런데 이런때에 오벧에돔이 나서서 법궤를 자기집으로 메어갔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할 때 그가 나선 것입니다.
이사야서 6장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모두가 꺼려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보낼 사람을 찾으셨는데 그때 이사야가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이사야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사명을 잘 감당하고 별과같이 빛나는 선지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때에 오벧에돔이 이사야처럼 자원하여 헌신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이 사람이 가드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가드는 구약시대의 팔레스틴 지도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습니다.
당시에 웃사가 죽은 다곤의 타작마당은 다윗 성 즉 예루살렘성 근처입니다. 법궤는 이미 아미나답의 동네인 기럇여아림에서 약 13키로 정도 동쪽으로 예루살렘성 동쪽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가드는 기럇여아림에서 오히려 서남쪽으로 20키로나 더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니까 법궤가 왔던 반대 방향으로 더 먼 거리를 이동한 것입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사람들중에 그 누구도 법궤를 모실사람이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시려고 하지 않자 그 멀리 사는 오벧에돔이 죽을 각오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오벧에돔 집에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14절을 다시보면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이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감동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20년이 넘도록 법궤를 모신 아비나답은 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미나답도 법궤를 모시고 20년을 섬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복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은 불과 3개월동안 법궤를 모셨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엄청난 복을 쏟아부어 주시고 자자손손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자원하여 섬기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모두가 피하고 꺼릴 때 오벧에돔은 자원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잘못 섬기면 자기가 죽을지 누가 죽을지 모르는 두려운 상황에서 그리고 모두가 꺼려하는 일인데도 오벧에돔은 기꺼이 자원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면 똑같은 법궤를 섬겼는데 왜 어떤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까? 아미나답이 복을 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웃사가 저주를 받아서 죽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뭔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비참하게 죽은 것처럼 9절에서 웃사는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다가 직사를 했습니다.
웃사가 직사해서 죽은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고 또한 성경학자들은 그가 불경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불경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오벧에돔이 복을 받은 이유는 오벳에돔이 무엇보다다도 우선해서 하나님께 극진히 예배 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전심 했기 때문이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경외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건강과 재물과 자녀의 복과 명예와 범사가 잘되는 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오벳에돔은 자기 식구들만 하나님을 섬긴것이 아닙니다. 역대상 13장 14절을 보면“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들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권속이란 그 집안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벳에돔은 예배를 드릴때에 자기 식구만 모아서 예배를 드린것이 아니라, 자기 권속 즉 부모님과 형제들과 친지들까지 모두 초청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치 고넬료가 가족들과 친지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서 늘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한 것처럼 오벳에돔도 모든 권속들까지 다 모아서 하나님께 여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오벳에돔이 그렇게 모든 권속들을 돌아보고 형제들까지 돌아 보았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가문에 복을 내려주시고 그리고 소유와 재물에도 큰 복을 주셨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사실 형제 전도 하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섬기고 사랑하고 베풀고 기도하는데도, 죽어도 예수 안믿는 형제나 친척이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집안이 다 형제 우애가 좋은것도 아닙니다. 살다보면 형제들끼리 원수가 되어서 안만나고 지내는 형제들이 부지기 수입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의 가정은 형제간이나 자녀들이 모두가 다 화목하고 행복한 집안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과 집안에 복을 주십니다.
제가 설천교회에서 시무할 때 잊지 못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5년전에 백주열집사님의 어머니 박교비집사님이 89세 생신을 맞이 하셨는데 그때 백주열집사님의 형제분들이 어머니 박교비집사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남해에 오셨다가 주일예배에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사시는 백주열집사님의 남동생 부부가 얼마후에 멀리 부산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대형 난 화분 두개를 보내 오셨습니다. 제가 본 난 화분 중에는 가장 큰 난 화분 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교회도 아니고 형님이 다니는 교회에 제수씨가 그렇게 큰 화분을 두개 씩이나 보낸다는 것은 정말 보통 성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난 화분의 축하리본에 자기 이름을 써서 보내지 않고 백주열집사님과 정봉임집사님의 이름 즉 형부와 동서의 이름을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화분을 백주열집사님 아들 백광문집사님 부부께서 부산에서부터 싣고 남해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화분 사서 옮겨 보셨습니까? 화분하나 사면 차안에서 한사람이 화분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화분을 나르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잘못하면 꽃이 부러지고 대가 부러집니다.
그런데 백주열집사님 동생 부부가 사주신 난 화분을 정봉임집사님 아들 백광문집사님 부부가 부산에서 남해까지 실어 왔습니다. 아마도 보통사람 같으면 "화분을 남해에서 사면되지 왜 부산에서 사서 보내느라고 이렇게 사람을 함들게 하는거야?!"하고 투덜거릴만 합니다. 작은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사주신 화분을 남해까지 배달한다는 일도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백광문집사님 부부께서 그 화분을 싣고 오셔서 강대상까지 옮겨주시고 주일예배까지 드리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백주열집사님의 큰아들 백광영집사님은 열심히 돈벌어서 동생들 공부시키고, 결혼할 때 목돈 대주고, 그리고 섬기는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고, 부모님 구원하고, 부모님께 집까지 지어드리고, 여름이면 휴가 받아서 단기 선교가고, 하여튼 백광영집사님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런데 매년 명절이 되면 백광영집사님과 옥연순집사님께서 고향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 오시는데 항상 저에게도 꼭 와이셔츠나 케잌 또는 과일등을 사서 선물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감동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전에 소개해 드렸지만 다시한번 말씀 드립니다. 백광영집사님딸 은지가 초등학교 6학년때 여름방학때 설천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왔는데 그때 부모님과 친지들이 주신 용돈 12만원을 모아서 강댓상에 올렸는데“교회학교 수련회에 보태 쓰세요”라고 써서 헌금을 올렸습니다.
이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해도 뭐라고 말할 사람이 없기에 솔직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설천교회에서 시무할때는 정말 십만원이 없어서 하고싶은 일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5년동안 교회학교를 위한 예산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매년 예산을 세울때마다 당회에서“장로님! 교회학교에도 예산을 투자해야 합니다! 교회학교의 부흥과 성장이 우리나라의 미래입니다!”하면서 매년 교회학교 운영비를 설정하자고 장로님께 건의를 드렸는데 관철이 안되다가, 드디어 부임한지 3년만에 교회학교 운영비로 한달에 10만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아이들 선물을 사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한달에 한번씩 교회학교 운영비로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사주고 싶은데 그것조차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제 사례비를 털어서 아이들 간식을 사고 여름 수련회와 동계 수련회를 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 제가 잊지 못하고 감사했던 일은 교회학교 수련회를 하면 김막순권사님과 윤옥희권사님을 비롯해서 몇몇 집사님들이 수련회 행사를 할 때 마다 굴까고 시금치를 팔아서 쌈짓돈을 모아 두었다가 저에게 2만원 또는 5만원씩 금일봉을 주셔서 그 헌금을 보태서 교회학교 수련회 행사를 치르곤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사랑으로 섬겨주신 성도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힘들고 여려운 목회를 잘 감당해 나갔습니다. 당시에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과 더불어 날마다 영적인 상처를 받으면서도 성도님들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기에 그 고난을 잘 견딜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광영집사님 딸 은지양이 고향교회에 와서 자기가 모아놓은 용돈 12만원을 강댓상에 올렸는데“교회학교 수련회에 보태쓰세요”라고 봉투에 써서 헌금을 올렸는데 그 헌금봉투를 보는 순간에 저는 목이 메어서 한참동안 헌금 호명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돈 많은 장로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 자서전이 담긴 책 펴낸다고 기천만원씩 드려서 책을 만들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식들을 위해서는 기천만원씩 아낌없이 쓰면서도, 교회학교 수련회나 여름성경학교에는 한푼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자기의 용돈을 모아서 드린 그 헌금을 보는 순간에 저는 억장이 무너질정도로 가슴이 미어지는 감동을 받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구정때 은지가 또 다시 설천교회에 와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세벳돈 받은것 교회학교 수련회에 보태 쓰세요”라고 써서 또다시 헌금을 드렸습니다. 저는 은지가 드린 그 헌금을 보면서“이 아이는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겠구나!”라는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의 종을 감동시킨 성도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주의 종을 감동시킨 성도는 하나님도 감동시킨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 저는 마음이 심히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당시에 사례비를 받았는데 십일조, 주정헌금, 감사헌금 떼면 100만원도 못되는 사례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례비가 4년동안 계속 제자리 걸음입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저도 인간인지라 속으로 기대를 합니다.“이제는 교회도 많이 부흥 되었고 재정도 헌금도 엄청나게 많아졌으니까 올해에는 그래도 장로님이 사례비를 한 10만원쯤 올려 주시겠지?”하고 기대를 하면서 새해를 맞이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노력한 만큼 성과급을 받는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4년동안 사례비는 항상 똑같고 오히려 4년째 되던 해에는 휴가비를 10만원 깍아서 사례비를 책정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이 상해서, 우울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구정날 은지가“세벳돈 받은것 하나님께 드립니다 교회학교 수련회에 보태 쓰세요”하고 헌금을 드렸는데 그 헌금봉투에 적힌 글을 읽는 순간에 또다시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찡 하는데“하나님께서 이 여자아이를 통해서 나를 위로하시는 구나”싶은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날도 헌금을 호명하다가 한참동안 말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은지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갖고싶은 것이 많고 사고싶은 것도 많을텐데 세벳돈을 모아서 하나님께 드린것을 생각 하니까 정말 제 가슴이 얼마나 뜨거워 지는지, 정초에 사례비 때문에 속상했던 제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은지의 헌신으로 인해서 다 씻겨지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은 얼마나 복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이 시골구석박지에서 목회를 하는데도 시마다 때마다 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의 헌신을 통해서 우리가 계획한 모든 일들을 하나 하나 준행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그리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늘 감격해 하곤 합니다.
금번에도 동계 수련회를 하는데 서울에서 고경실권사님의 아들 김상협성도님께서 보내주신 후원금에서 100만원을 수련회 경비로 사용하고 정평관집사님이 80만원을 후원해 주시고 김예슬집사님과 김미선성도님 그리고 나창희집사님이 5만원씩 후원해 주셔서 부족함이 없이 동계수련회를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풍성한 가운데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때에 아이들에게 못해준게 한이되어서 지금은 아이들에게 원없이 먹이고 최고로 좋은 곳으로 데려가서 수련회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시골 구석박지에 살지만 예수 믿은것 때문에 복좀 받아봐라 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봉임집사님이 중병을 앓으면서도 애기를 업고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더니 결국은 그 자녀들이 복을 받고 그리고 시동생과 가족들 전체가 화목한 가운데 오벳에돔의 가문처럼 복을 받는 모습을 제가 지켜 보면서,“과연 하나님은 배우지도 못하고 가진것도 없이 이 험한 설천으로 시집와서 온갖 고난과 환란속에서 살면서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면서 주님과 동행한 정봉임집사님의 중심을 보시고 집사님의 가정에 오벳에돔처럼 큰 복을 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잊을수 없는 일은 설천교회 사택이 너무나 낡아서 여름에는 슬라브 지붕이 열을 받아서 여름내내 두달동안 밤에 방의 온도가 32도로 올라 갑니다. 겨울에는 방의 온도가 10도 입니다. 비가오면 대 여섯개의 대야와 양동이로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야 합니다. 정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가운데에서 5년을 지냈습니다.
나중에 제 집사람이 병이나서 모든 성도들이 힘을 합쳐서 사택을 수리하는 바람에 한겨울은 따뜻하게 지냈지만 결국 이듬해 봄에 교회에서 쫓겨 났습니다. 설천교회에서지낸 5년 동안에는 정말 애굽같은 고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류복례권사님과 류금련권사님께서 돈을 추념하셔서 방바닥에 까는 커다란 전기 장판을 사 주셨습니다. 그 전기장판을 깔아 주신 후에는 방바닥이 얼마나 따뜻한지 방 공기는 추워서 얼굴이 시리지만 방바닥은 구들장처럼 따뜻해서 행복한 밤을 보낼수가 있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교회가 갈라질때 우리 남해세광교회를 선택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같이 오벳에돔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너나 할것없이 거의 대부분의 모든 성도님들이 범사에 형통하고, 하는일마다 잘되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자손들도 잘되고, 손주 손녀들도 잘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복을 받고 있습니다. 한가정 한가정을 돌아보면 모든 가정들이 점점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감사 제목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복을 받지 못한 가정도 한 가정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가정도 사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입니다.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더욱 정금같이 만드시려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것들은 회개하고 깨끗하게 정화시켜서 더 큰 복을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자식이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장6-13)
징계를 받고 연단을 받는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서 또 한가지 잊지 못할 추억은 박육이성도님과 고재준성도님이 교회에 나오신 일도 잊을수 없는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 부산에 사시는 정세관집사님과 고예진집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목사님! 저의 장모님과 처남을 전도하고 싶은데 목사님께서 도와 주십시요!”하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당시에 기쁜 마음으로 박육이 성도님과 고재준 성도님을 찾아가서 만났는데 고재준집사님과 박육이 집사님은 제가 전도를 하러간 그 주부터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두분이 얼마나 충성되이 예배에 동참 하시는지 제가 두분이 교회에 나올때마다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교회에서는 늘상 중직자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서 마음이 갈기 갈기 찢어져서 슬플때가 많았지만, 그러나 주일마다 고재준집사님과 박육이집사님 그리고 전도한 많은 분들이 열심히 교회에 나오시는 것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고재준집사님이 신앙의 초보자로, 걸음마 신앙으로 시작 했는데 이제는 우리 남해세광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충성된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용광로같은 시험과 고난을 통과한 후에 아름다운 남해 세광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정말 이루 말할수 없는 핍박과 환란을 통과 해야만 했습니다. 마치 초대교회 시대에 핍박과 환란중에 아름다운 안디옥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핍박과 환란중에 우리 남해세광교회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세워진 교회들 중에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가장 행복한 교회처럼 느껴 집니다. 더바랄것이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우리 남해세광교회 입니다.
심재수 사장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은행이나 공공장소 또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있는 현금 입출금기를 만들는 회사의 사장님입니다 1500만원이나 하는 ATM현금 입출금 기계를 4000대나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는 중소기업체에서 잘나가는 사장님 이었습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때 회사에 부도가 나서 집까지 경매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 포기할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심재수사장은 끝까지 회사를 지켰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포기하면 자기가 만든 현금 인출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출기가 고장이 났을때 AS를 해줄수가 없기에 자기가 개발한 현금 인출기를 사용하는 고객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느라고 끝까지 회사를 지키면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써비스를 했습니다,
그러나 생활을 말이 아니었고 심재수사장은 술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심재수사장님이 학창시절에는 교회를 좀 다녔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도가 나서 집도 빼앗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고통 중에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교회를 나갔는데 어느날 먼저 믿음이 성장한 아내가 “여보, 오늘부터 새벽 기도를 해야되겠어요.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때가 된것 같아요 내가 새벽 기도를 할께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그래! 새벽 기도를 해야 복을 받지! 나는 잠이 많아서 새벽 기도를 못나가지만 당신이라도 새벽 기도 나가!”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를 나가던 아내가 그만 몸이 아파서 새벽 기도를 못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몸이 아파서 드러눕자 심재수사장은 고민을 하면서 지냈는데 하루는“네가 새벽기도를 나가라”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새벽기도하기를 원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힘들어도 새벽기도를 나가자!" 하고는 새벽 기도를 나갔는데 새벽기도에 나간 첫 날,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새벽 기도에 그토록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기도실에 천명쯤 되는 성도들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하는지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그는 그날부터 열심히 새벽 기도를 나갔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여전히 끝나면 술도 마시고 세상모임에 동참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새벽기도가 끝나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 복을 달라는 기도를 해야 겠다는 마음에 감동이 와서“하나님, 저에게 축복을 안 주시면 제가 어떻게 남을 전도하겠습니까? 이렇게 고난만 당하는 저를 보면 누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하나님, 제발 저에게 복을 좀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네가 술을 끊으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의 기도에 응답해 주리라”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날로 술을 끊고 더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그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동안은 예배를 드릴때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늘 뫼됨됨 했는데 술을 끊고 난 후부터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예배를 드릴때마다 감동이 되고 은혜를 받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 졌습니다,
일본의“후지스”회사에서 연락이 오기를“당신회사를 인수하고 합병하겠다”라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회사가 부도가 났어도 AS를 위해서 끝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더니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최선을 대해야 한다는 일본의 기업가 정신과 맞아 떨어져서 심재수사장의 기업을 후지사가 인수합병하겠다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망한 회사가 졸지에 다시 새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재수사장이 대표직을 사임 했는데도 후지사에서 심재수사장을 대표이사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금융업이 성장하던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ATM기계를 사용하기 시작 하면서 주문이 폭주했고 그래서 그때부터 회사가 다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수사장은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심취했는데 열왕기상 3장 4절에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내용을 읽을때 그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솔로몬이 복을 받은 이유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기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1년을 365일로 따지면 2년 9개월 정도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건데”“나도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자”하고는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 새벽 기도를 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는 새벽예배에 나오면서 매일같이 하나님앞에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천번제 새벽기도를 시작한지 일년쯤 지났는데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그 해 연말에 300억 이상의 흑자가 났습니다. 자기가 예상했던 금액의 두 배나 흑자가 나면서 회사는 점점 번창했고 월급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후지사에서 표창장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700억의 흑자가 났습니다. 정말 승승장구 하면서 기업이 엄청나게 성장 했습니다.
심재수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으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나는 드디어 성공을 했습니다.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새벽 기도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후로 심재수 사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성전건축과 선교와 불우이웃을 돕는일에 전념하고 간증집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복을 받고 사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영혼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습관 관습 기호품을 다 끊어야 합니다. 셋째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오벳에돔처럼 내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더불어서 우리가 복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하고 구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해야합니다.
오늘 김상철성도님이 증경회장으로 봉사 하시는 새남해 라이온스 클럽에서 저희 교회에 오셔서 우리 성도님들의 점심식사를 섬겨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새남해 라이온스 클럽의 회원들은 한달에 55,000원씩 회비를 내고 또 시마다 때마다 특별회비를 내서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100년동안 교회가 감당해온 일들을 이제는 많은 사회단체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더욱 분발해서 부지런히 이웃을 섬기고 돕는일을 해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오벳에돔처럼 하나님을 극진히 섬김으로 오벳에돔이 받은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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